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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ion Note_The Sea on the Day When the Magic Returns

  • 작성자 사진: seoulanimator
    seoulanimator
  • 8월 24일
  • 10분 분량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 The Sea on the Day When the Magic Returns | 2022 | 24mins | dir. 한지원 HAN Jiwon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와 <이 별에 필요한>은 제작기간이 상당 부분 겹쳐있다. 두 작품 다 사랑을 말하지만, 태도는 사뭇 다르다. 하나는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이다. 절망 다음 희망이라니, 뻔한 해피엔딩이라고 섣부른 단정을 금물이다. 인생의 괴로움을 꼭꼭 씹어 창작의 자양분을 소화한 두 작품의 결말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어떤 상황에도 한지원의 캐릭터는 성장한다.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로 카페가 가득 차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이었다. 인생 풍파에 노련해진 한지원 또다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시동하고 있었다.


제작노트: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

단편을 영원히 할 것 같아요

이 관계가 끝나면 어떨지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는 한 장면을 떠올라서 작품을 기획했다고요.

아주 예전에 했던 인터뷰인 것 같은데, 지금 제가 유추를 해보자면 아마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장면이었을 것 같아요.


2017년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작업을 하고 있을 때쯤에 떠올린 건가요?

<마법이 돌아오는 날에 바다>라는 제목으로 기획이 정해지고 이야기가 써진 시점은 그렇게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015년? 4년? 3년? 제가 한참 연애 관계 안에 있을 때 이 관계가 끝나면 어떨지를 상상하면서 쓴 미완성의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떠나고 싶어 하는데 화분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여자에 대한 얘기였거든요. 화분을 사면 떠날 수 없을 것 같고 떠나지 못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고 그런 내용이었는데, 화분이라는 메타포도 다른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관계가 끝나고 나서 이 감정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에 쓴 거라서 마치 타임캡슐처럼 그때 제가 남겼던 시나리오를 가지고 와서 여기서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초기에 작업했던 이미지가 완성된 거랑 달라지기도 했나요?

“굴”이라는 제목으로 인스타에 테스트 컷을 몇 개 올린 게 있어요. 미니미 남자애가 단발머리로 나오고  여자도 쇼트커트머리로 나오는 버전이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클립 영상들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이미지 테스트를 하고 있었어요. 


호원: 남자가 사 오잖아요.

그 석화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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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단단한 안식처에 정착하고자 했던 과거의 욕망과 떠나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세진의 깨달음 이전과 이후의 대비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장치 -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 기획안 연출의도 중


호원: 그즈음에 집이라는 제목으로 <존재의 집>(2021, 감독: 정유미), <상실의 집>(2022, 감독: 전진규), <나무의 집>(2023, 감독: 김혜미), <엄마의 집>(2024, 감독: 김창수)이 있어요.

굳이 말하면 <건축가 A>(2022, 감독: 이종훈)도 (웃음)


호원: 또 하나는 아파트예요. 집이라는 단어가 들어왔을 때는 거주 목적의 건물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장소처럼 상징적으로 쓰여요. 근데 아파트는 실제 거주를 하는 구체적인 장소로서 쓰여요. <마돌바>에서는 아파트 광고에서 차가 들어가서 180도 돌면서 분양사기 당한 걸 보여줬을 때 되게 섬뜩했거든요. 저거는 적어도 저 감독이 집을 알아보고 다닌 거다.

맞아요. (웃음)


두려움에 반영인가요.

진짜 맞아요. 어떤 관계가 더 이상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정도로 너무 많이 저질러 버린 순간이 있잖아요. 연애 관계에서 임신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같이 집을 사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평생을 일해도 나 혼자는 절대 못 갚을 돈으로 뭔가를 같이 계약을 한다라는 거. 근데 청년 세대가 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그렇게 많지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덫이죠.


호원: 그 장면에서 말도 안 되는 청사진의 광고를 지나서 현실에 폐허처럼 버려진 장면을 탁 보여주죠. 이거는 애니메이션이니까 가능한 표현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이 현실을 보여줄 때 라이브 액션보다 얼마큼 더 강하게 사람을 푹 찌를 수 있는지를 보여줘요. 그전 해, 이후 해에 아파트가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이 막 보이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지금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고 이제 아파트를 장만해야 되는 나이대가 됐구나. 그래서 아파트가 되게 현실적인 삶의 주거 공간이 됐구나.’

아파트가 특히 한국적인 공간이고 그 안에서 되게 많은 이야기가 일어나고 어떻게 보면 기형적인 형태의 건축물이잖아요. 그 지점이 창작자들한테 영감을 주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호원: 김상준 감독의 노스탤지어도 처음에는 도시괴담처럼 시작하고 요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진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아파트들은 어쨌든 괴담을 갖고 가요.

그리고 아마 다들 아파트에 안 살 걸요. (웃음)  


저도 사실 되게 떠나고 싶거든요


세진이가 지향하는 거는 관광통역사잖아요. 어딘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해서 대리만족하는 건가요.

사실은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관광통역안내사가 두 가지가 있는데, 외국에 가시는 분이 있고 한국에 남아서 한국의 관광명소를 소개해 주는 분이 있는데, 세진이의 최종 목표는 외국에 가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지금 당장 그러니까 본인의 알고 있는 지식 안에서 해소할 수 있는 길, 어떤 투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하는 장면 묘사를 꼭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다 영어 공부를 하잖아요. 외국에 가서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단 여기는 아니라는 걸 알아서 영어를 배우는 마음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치열하게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이 주는 감정들이 저는 마음속에 그려졌어요. 그래서 마치 주문처럼 영어의 문장들을 달달달달 외우고 다니는 캐릭터들을 상상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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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없어지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구도예요. <마돌바>가 공개했을 때쯤에 어머니께서 “나는 이렇지 않다”라고 꼭 얘기해 달라는 하셨어요.

엄마는 아빠도 걱정하시긴 했는데… (웃음)


지나치게 이입하시는 거 아닌가요.

제가 어떤 관계를 겪고 나서 관계 이후에 남는 감정들에 대해서 쓴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걸 아마 두 분 다 아실 텐데 거기에 그려지는 부모가 어떨지 궁금해하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호원: 작품에서 엄마는 도대체 왜 떠난 거예요?

저는 그게 원초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도 사실 되게 떠나고 싶거든요. 항상, 언제나.


호원: 저는 마치 떠날 수밖에 없는 살을 타고 난 사람으로 읽었어요.

제가 가장 여성의 관점으로 작업했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나한테 계속 뭔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그것이 나한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면서 공기처럼 들이마시면서 사는 공간에 사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래서 ‘어딘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아니야’ 그런 마음이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게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알코올 중독에 하고 있는 일도 그렇고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해 보이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잖아요. 엄마랑 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사실은 그녀가 꿈꿨던 삶과 다른 부양해야 되는 사회적인 압박들이 생겨난 환경이었겠죠. 엄마 같은 경우는 구체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여성들이 이렇게 계속 억눌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는 환경에서 떠나는 것 말고 어떤 선택이 있지?’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떠나는 결정을 내려봤던 순간이었는데, 그 순간까지 가기가 너무 어렵지만 물리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게 너무나 간단한 일이더라고요. 사회적인 압력, 기대, 관계에서 형성된 인력, 관성. 이런 것들로 인해서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내가 속해서는 안 됐을 장소였던 거예요. 그런 장소에서 그런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했던 생각들이 얼마나 유효한 생각들이겠어요. 그런 것들에서 떠난다라는 행위가 저는 가장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이었고 유일한 답이었고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그걸 먼저 보여준 거죠. 


남편을 두고 아이를 두고 떠나는 일이 도덕적으로 굉장히 지탄받는 일이잖아요. 근데 그녀를 위해서는 그거밖에 없었을 유일한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세진이도 자기가 절대로 떠나면 안 되는 상황들이 있지만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그런 부도덕한 엄마의 샘플을 보고 배우는 거죠. ‘사회가 요구한 대로 항상 살 필요는 없어’라는 거를 아이러니하게 캐치하는 과정을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호원: 그거를 어른들은 운명이라든지 팔자라든지 살이라 그러는데, 작품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방울 소리를 내는 게

무속 같은 느낌도 들죠.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에 엄마가 무당이에요. 좀 더 적극적으로 떠나는 인물이긴 하지만 <마돌바>랑 똑같이 떠나는 엄마가 주인공 중 한 명이에요. 


여성들에게 떠날 자유를 주고 싶은가 봐요.

제가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제 안에 항상 그 욕망이 있어요.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애니메이션적인 건 뭐지?


2018년 제작지원을 받아서 한 1년 바짝 작업했다가 한 3년은 놓았다가 돈 벌어서 다시 들어간 거잖아요.

<아만자>와 <마돌바>를 병행할 수 있다는 오판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아만자>의 작업량이 많았고, 욕심을 많이 부리게 된 거죠. 그래서 아만자 완성을 위해서 <마돌바>를 중간까지만 하고 멈춰야 했어요. 딱 심사를 통과할 정도로만 완성 아닌 완성을 하고 하고 멈췄던 상태가 제 인생 최고의 수치스러운 경험이었어요. 그때 완성이 안 돼 있었던 거는 차치하고 없었던 장면도 있었어요.


스토리보드에는 있었는데, 못 만들었다는 뜻인가요?

기왕 이거를 완성을 할 거면 진짜 잘해야 될 것 같은데, 기존의 이야기만으로는 아쉽다 해서 더 붙였어요. 세진이가 물속에 가라앉아서 겪는 모든 일들이 다 완성심사 이후에 추가된 연출이에요.


물에 가라앉아서 비행기도 오고 차도 오고 하는 와중에 엄마가 하와이에서 마법을 가르쳐주는 순간 이런 신들이 다 처음 스토리보드엔 없었어요. 그러니까 물에서 올라온 다음은 있었는데 물 안에가 없었어요. 그리고 하와이에서 엄마를 마주한 장면에서 엄마한테 왜 떠났냐고 흔든다거나 하는 상호작용도 원래는 없었고 한 컷 정도로 콤팩트하게 끝낼 예정이었어요.


호원: 오프닝은 처음부터 생각을 했던 건가요?

그거는 아주 처음부터 있었던 연출이에요. 


호원: 오프닝 보면서 중간에 숨을 안 쉬다시피 하다가 알람 소리와 함께 딱 깨고 소름이 돋았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모든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마돌바> 오프닝이에요. 제가 한겨레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는데, 오프닝을 쓸 때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를 쓰지 말고 일어난 직후나 일어나고 있을 때를 쓰라고 하는 거예요.  ‘그으래?’ (하고 해 본 거예요)  <이 별에 필요한> 오프닝을 쓸 때도 <마돌바> 때처럼 강력하게 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호원: <이 별에 필요한>에서도 엄마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다가 끊어지고 55분쯤에 제이가 난영이 집에 가서 QR 코드로 엄마의 사고 장면을 딱 보는 게 반복이 되는데 이번에는 수신자 입장에서 반복돼요. 이게 한지원의 연출 공식 첫 번째구나.

제가 <코피루왁>로 할 때도 영화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화적인 게 대체 뭐지?’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애니메이션적인 건 뭐지?’ 이런 고민들 끝에 탄생한 방식인 것 같아요.



호원: 또 하나는 동선이랑 움직임은 이어지는데, 배경만 바뀌면서 전환되는 거

제가 애니메이션이지만 편집적인 매력이 있는 작품들을 좋아했어요. 그런 매치 트랜지션의 기법을 쓰면서 나의 호흡이랑 어울린다라는 걸 느껴봤던 건 <딸에게 준 레시피>가 최초였고 실제로 마법적인 효과로 쓸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서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게 <마돌바>였고 <이 별에 필요한>에서도 마법적인 전환 효과들을 좀 썼죠. 매치 트렌지션이 영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는데, 저는 되게 적극적으로 쓰는 이유가 애니메이션은 로케를 하지 않아서 (웃음)


호원: 서유석의 “사모하는 마음”은 알고 계셨던 노래예요?

<마돌바>를 위해서 곡을 찾다가 알게 된 노래예요. 옛날 음악들을 듣는 걸 워낙 좋아했어서 서유석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게 번안된 음악이라고 하더라고요. 세진이의 기본 욕망이랑도 어울리는 지점이 재미있었어요.


호원: 그 노래도 똑같은 톤으로 들리는 게 아니라 차 안에서 밖으로 나왔다 하면서 입체감 있게 들리는데, 스스로 손을 놔버린 아빠의 무책임한 상황에 노래가 왠지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아빠가 흥얼거릴 법하면서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노래를 찾고 싶었어요.


호원: 그 작품의 두 빌런 남자가 자기가 책임질 상황을 주체를 못 하고 뺀질 대면서 도망가려는 지질한 심리를 내가 너무 잘 알겠는 거예요.

이 작품의 아빠는 빌런인 동시에 무해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의도적으로 유해하려고 하지 않는, 적극적으로 무기력한 사람을 그리려고 했었고 그래서 그 노래가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엄마를 향한 마음이 ‘나는 사랑이었어. 그녀가 왜 떠났는지 이해가 안 돼’.


호원: 가려면 곱게 혼자 가지. 딸이 분명히 올 걸 아는 지근거리에서 메시지를 남겼다는 거는 진짜 싫다.

되게 외로운 사람인 거죠. 사실은 죽고 싶지 않은 거고 살려달라는 거기 때문에 세진이가 그렇게 오랫동안 못 떠났던 거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한테 도망치려면 다른 명분이 필요했고요.


“전형성을 뒷받침 할 만큼의 당위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작품에서 한심한 남자들은 있어도 악랄한 남자는 없는데, 여기만 악랄한 남자가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 전형적인 빌런이 나오는 얘기를 쓸 것 같나요?

전형적인 빌런이 있는 서사가 진짜 재미있는 서사라는 생각은 들어요. 근데 그 전형성을 뒷받침할 만큼의 당위성이 저한테 필요한 것 같아요. <마돌바>에서는 그 당위성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살풀이 같은 작업이기도 하거든요. <마돌바>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를 지적질하거나 고발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자 다짐했아요.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나한테 가장 큰 원칙인데, 어떤 외압 내지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너무 에둘러 가면 포인트가 전달이 안 될 수 있으니까 갈 수 있는 방법이 뭐였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만들어 낸 게 작은 준호 캐릭터 정도의 유해함이었던 것 같아요.


빌런에 대해서 제가 충분히 공감이 되고 당위성이 느껴지면 얼마든지 하고 싶고 굉장히 악한 빌런도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저한테 어떤 화두가 있을 때이지 않을까 해요.


다음에는 쌍둥이 언니인 람한 작가하고 협업으로 SF 작업을 할 거라고 들었어요.

한 개는 클라이맥스랑 준비하고 있는 장편이고 따로 진행하고 있는 단편이 있어요. 둘 다 판타지 성향도 있고 SF 성향도 있어요. 장편은 판타지 성향이 좀 더 강하고 단편은 SF 성향이 좀 더 강해요.


아까 쓰고 있다고 얘기한 무당 나오는 건

그거는 장편이에요. 양자물리학적인 SF적인 개념과 무속 신앙을 합친 테마고 다루고 있는 거는 사람의 심리예요. 사람의 마음이 크리처가 돼서 활동하고 전투를 벌이기도 하는 내용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장르적인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어떤 당위성이나 공감을 못 느끼면 사실 상상력이 펼쳐지는 편이 아닌데, 이 작품을 하면서 장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에 적극적으로 장르물들을 보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면 강력한 빌런이 나오나요.

강력한 빌런인 동시에 또 아니기도 한데, 그런 미묘한 게 있죠.


연애와는 상관없나요?

꽤 상관있어요.


지금은 어떤 단계인가요?

트리트먼트 형식으로 쭉 구조를 설계하고 있는 단계예요.


저는 단편을 영원히 할 것 같아요.


두 가지 프로젝트를 왜 또 동시에 하는 건가요?

그냥 제 성향인 것 같아요. 특히 기획 개발은 겹쳐져 있지 않은 경험이 없었어요. 장편은 스케일이 큰 작품이고 비용이나 기간도 많이 필요한 작품이어서 실질적으로 만들어질 조건까지 가는 데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을 거예요. 그동안 저는 하고 싶은 단편 작품들을 하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한창 이 작업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또 다른 작품을 기획을 하는 게, 전환이 잘 되는 편인가요?

제가 습관이 됐나 봐요. 오히려 서로 좋은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의 구조가 명확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설계도 나름 열심히 하지만 저는 생각보다 무의식을 굉장히 신뢰하거든요. 제가 소재를 길어 올리는 것도 제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여기서 고민을 하는 게 분명히 도움이 돼요. 그리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고민을 해본 내용이 서로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단편은 어느 정도까지 얘기할 수 있어요?

원작을 보고 너무 좋았어요. 제가 살면서 봤던 글 중에 제일 감동을 많이 받은 글일 거예요. 김보영 작가님도 애니메이션 너무 좋아하시고 원래 만화를 그리시던 분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시나리오 단계로 제가 일단 각색을 했지만 영향을 받아가면서 가보고 싶은 그런 프로젝트예요. 


자매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니까 장편과 단편의 이미지가 비슷할지 전혀 다른 결일지 궁금하네요.

단편은 오가닉 SF의 성향을 띠어요. HBO맥스에서 했던 <스케빈져스 레인>(2023, 감독: 조셉 베넷, 찰스 휴트너)나 <바람계속의 나우시카>(1984,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작품들이 오가닉 SF예요. 30대 여자 기자와 그 여자와 유사하게 생긴 외계 생명체 이런 구성으로 지구를 바탕으로 해요. 장편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되 내면세계들 안에 들어가면 환상적인 비주얼이 펼쳐지고 주인공도 여고생이에요. 둘 다 SF적인 성향이지만 장르 안에서는 서로 다른 느낌이에요.


지금 한지원의 작품 세계는 ‘SF기’ 인가요.

영화 시장 안에서 봤을 때는 SF가 되게 적잖아요. 인디 애니라는 신에서 봤을 때도 SF는 적잖아요. 그런 신에 맞춰가면서 스스로의 관심사를 정제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옛날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좋아했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다 SF 작품들이거든요. <이 별에 필요한>을 릴리즈를 해보고 나서 그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이런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고 이런 거 좋아한고 말을 했는데, 그 작품들에서 창작자의 입장으로서 설명할 수 있는 기법적인 부분, 작가로서의 관점적인 부분은 영향을 받았지만, 왜 가장 큰 줄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이 별에 필요한>을 하면서도 SF적인 부분을 더 많이 넣고 싶었는데, 녹록지 않았던 상황들도 있었고 <마돌바> 같은 경우도 판타지 부분들이 있잖아요. 내가 적극적으로 해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역량이 갖춰질 때까지 시간이 걸렸던 걸까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내 주변에서 영감을 받고 스스로의 이야기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의 연출과 상상을 하는 성향이어서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렸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지금 두 개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해야 되는 상황이 있을까요?

<이 별에 필요한>을 통해서 얻게 된 좋은  관계성이라고 할까요? 전작을 함께 한 상업 스튜디오가 같이 있어서 이 프로젝트 개발하는 동안은 비용 때문에 다른 일을 받아야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근데 단편은 제가 사고처럼 작품을 만났어요. 그 작품이 충격적으로 좋았어서 그거를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서두른 것도 있어요.


이 두 작품을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편은 내년도 안에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쓰고 있는 장편 이야기가 투자 수순으로 넘어가서 실제로 팀을 꾸리려면 단편이 끝나 있어야 돼요. <이 별에 필요한> 같은 경우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서 투자까지 가는 데만 거의 1년 반, 2년이 걸렸으니까 그 타임라인을 생각해도 그게 맞을 것 같고 장편 메인 프로덕션을 시작해서 나오게 되면 그것도 또 2~3년 후겠죠. 사실 장편은 정말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어요. 스케일이 큰 만큼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는 거 같아요.


“외할머니 표 오이지”*는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건가요.

이제 놔줄 때는 됐죠.

*<딸에게 주는 레시피>(2017-2019) 제작 당시 서비스로 기획했던 에피소드 


호원: <그 여름> 이후에 <이 별에 필요한>을 연타로 하면서 한지원의 단편은 더 이상 못 보게 되는 건가 두려웠거든요.

저는 단편을 영원히 할 것 같아요. 상업 프로젝트는 가감 없이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는 될 수가 없어요. 물론 외부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더 좋은 거를 계속 고민해서 뾰족하게 다듬고 둥글게 만들고 하는 것도 좋은데, 정말 불안에 떨면서도 오롯이 제 감각을 다 테스트해 보고 싶은 순간들도 있어요. 그런 걸 해볼 수 있는 게 단편 말고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상업을 하면 할수록 단편을 계속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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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25년 7월 9일 @ 망원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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