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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 IM Chaerin

  • 작성자 사진: seoulanimator
    seoulanimator
  • 9월 14일
  • 18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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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전래 없는 낭보가 날아왔다. 창작 애니메이션 개발을 지원하는 미파 피치Mifa Pitch 세션에서 임채린 감독의 <한 Haan>이 단편 부분 시클릭상Ciclic Prize을 받은 것이다. 하회탈을 쓴 양반들이 접시 위에 누운 여인을 보며 붓을 놀리는 이미지는 그 전형성 때문에 도리어 의문을 일으켰다. 신종 오리엔탈리즘인가? 한류가 안시까지 침투한 건가? 갈필 수묵화는 전작인 <나는 말이다>(2022)와 유사하다. 전통적인 석판화 기법을 개량한 ‘키친 석판화’로 이중섭의 이미지를 포획했던 임채린은 이제 유럽의 자본으로 조선시대 이야기를 풀어낼 작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품 스타일도 작업 스타일도 스트레이트 어헤드, 앞을 보며 나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2025년 9월 인터뷰

내가 나를 증명한다

이래서 귀신들이 생긴 건가

<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중학교 때 국사 공부하잖아요. 거기에 『삼강행실도』 책 이미지가 나오고 열녀에 대한 설명이 있었어요. 성종이랑 세종 그리고 광해군 때 편찬돼서 “절개를 지킨 여성” 이렇게만 설명하는데, 이미지는 여자가 잘려 죽거나 살해당하는 장면인 거예요. 국사책에서는 열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없었어요.


<나는 말이다> 끝나고 제가 손목 수술을 하고 독인 프로듀서한테 <나는 말이다> 배급사 추천해 달라고 이메일 보냈거든요. 근데 이 사람이 내가 배급을 할 테니까 그냥 내가 프로듀서인 것처럼 넣자. 내가 메인 프로듀서가 되어야지 독일 정부에서 이거랑 <아이즈앤혼즈>(2021) 점수 다 넣어서 네가 돈을 몇천만 원 받을 수 있다 제안을 한 거예요. 그걸 해 줄 테니 나랑 다시 일을 하자 했는데, 저는 <아이즈앤혼즈> 계약이 안 좋았거든요.


나는 끝까지 솔직하고 정직하고 싶다. 만약에 네가 나랑 같이 일하고 싶으면 점수 따는 그거 없이 그냥 같이 지원금을 따든가 해야 할 거다라고 얘기했더니, 이 사람이 저한테 페이스북 메신저로 “실험 애니메이션 감독은 돈도 못 벌 텐데, 너는 공짜로 돈이 나오는 걸 강물에다 던지냐. 너는 앞으로 돈을 못 벌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어요. 화가 너무 많이 났는데, 그때 든 생각이 ‘이래서 귀신들이 생긴 건가’ 였어요.


그때는 아직 미유랑 연락이 없고 손목 수술해서 그림도 못 그리고 <나는 말이다> 로테르담 상영이 확정 안 됐어요.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이 사람마저 그러니까 너무 화가 나는데, 복수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귀신 생각을 했어요.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보여줬을까. 조선시대는 항상 희생양을 보여줬잖아요. 거기서 중학교 때 열녀에 대한 관심이 생각나서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죽는 방식에 대한 분류도 다 해놨더라고요. 독살당해 죽거나 도적한테 팔 잘려 죽거나 호랑이한테 남편 대신 물려 죽거나 이런 것까지 있는 거예요.


그거에 비해서 충신이나 효자들 보면 죽임 당하는 게 별로 그렇게 강하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서 효자의 주 종목 중 하나가 자기 손가락 자르기거든요. 남자는 손가락 잘라서 올라가는데, 여자들은 처참하게 죽어야지 올라가니 열녀도 귀신이 돼서 다시 돌아올 수 있구나 이런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했나요?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 열녀라고 하면 나오거든요. 거기서 이미지를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제출하고 쓸 수 있거든요. 다운 받아서 보니까 충신 효자도는 다 합해서 700 몇 명이면 열녀가 700 보다 더 많아요. 그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썼던 것 같아요.


충신에서 여자들도 3명이나 들어있어요. 여자 노비가 자기의 주인을 섬기다가 대신 죽거나 하는 것도 올렸더라고요. 그래서 여자 수가 살짝 더 많은 거예요. 그리고 슬펐던 게 누구누구의 처라고만 얘기하고 여자 이름이 없어요. 민 씨는 김기삼의 처인데 이렇게 죽었다. 심지어 대군의 처도 이름이 안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 식이어서 한국 여자로 분개하면서 프로듀서한테 당한 거 이것저것 해서 이런 작업을 해보자 하게 됐어요.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일까

<한>이라고 했을 때는 민족의 한처럼 응어리진 마음이구나 생각했는데, 작품 마지막을 보면 사람 이름이 “한”이에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이중적인 의미가 있어요. 사실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랑 비교한 게 『자기록』(1792, 풍양 조 씨)이거든요. 18세기에 양반 가문집 여성이 자기 인생에 대해 기록한 건데, 그분이 기록한 이유가 20살 때 남편이 죽으니까 자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실패를 해서 살 수밖에 없었어요. 이 여자는 죽을 때까지 남편이 죽은 게 내 탓이 아니고 나도 진짜 죽고 싶은데 죽을 수가 없었다 이런 한을 풀이했거든요. 이 여성이 <한> 주인공의 이야기의 바탕이 돼요. 


『자기록』이 좋았던 게 글이 꽤 길어요. 이걸 현대 한국어로 번역한 게 최근에 나와서 보니까 이 사람이 언니가 있었어요. 언니한테 자살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언니도 “너한테 계속 살라고 하는 것 또한 아닌 것 같다. 네가 죽는 건 맞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울면서 그걸 써놨더라고요.


『동국신속삼강행실도』나 「열녀전」 같은 경우에는 쓴 사람들이 다 남자 학자들이잖아요. 『자기록』은 여성이 썼으니까 확실히 감정적으로 어떤 상태인지랑 여성이 어떻게 가부장제에서 살아남았는지가 있어서 좋았어요. 이렇게 처음에는 처녀귀신 생각을 하다가 열녀로 갔다가 열녀랑 반대인 이 여성이 초점이 맞았어요.


처음에 여성 주인공이 자기 목을 죄는데, 사실 국가에서 자살 유도하는 거니까 완전히 자살은 아니잖아요. 「열녀전」에 어떤 여성이 무서워서 큰 칼 말고 작은 칼로 자기 목을 뚫었는데 숨이 계속 쉬어져서 (상처 때문이 아니라) 굶어 죽었다고 남자 학자가 기록을 남겼더라고요. 대본을 쓸 때 이것저것 다 합치게 된 것 같아요. 『열녀전』이나 『자기록』을 봤을 때 딱 든 생각이 기록하는 남자였어요. 하회탈도 양반을 상징하니까. 


정강이부터 칼을 데서 살을 떼어 준 삼봉은 남편이나 시댁 어른인가요.

남편일 듯해요. 정강에서 발끝 그것도 「열녀전」 기록에 따온 거예요. 여기서 더 한 게 피가 1.8근이나 나왔다고 써놨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책 뒤에 숨어가지고 ‘이 여자는 우리가 시키는 대로 죽는다’ 이런 식으로 쓴 것 같아서 가면 뒤에 숨어서 웃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자가 옷을 많이 겹쳐 입고 최대한 노출이 없는 게 조선시대의 규범이었잖아요. 처녀귀신이 한복을 길게 입었는데, 아예 완전 천이면 어떨까. 천을 자유자재로 해서 여자 몸이 다 가려지면 어떨까. 천을 뒤집어쓴 여자가 온갖 천한테 목이 죄이거나 얼굴이 찢어지거나 이런 식으로 이미지 번역을 하면서 자기의 분노나 원한을 표출하는 게 어떨까 했어요.


프란시스 베이컨의 고기 시체 이런 거에서도 영감 많이 받았어요. 자기의 손가락 잘라서 피를 먹여 살렸다 이런 것도 있어서 처녀귀신이 손가락을 잡아먹는 것도 하고 불교 이차도 순교에서 보면 피가 위로 솟아 올라갔는데 우유였다 거시서 빌려가지고  마지막에는 진짜 거꾸로 솟는 느낌.



호원: 일본 애니메이션 잔혹 장면처럼

좀 잔혹하긴 한데, 여자를 대상화해서 하면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 하는 거랑 똑같잖아요. 그걸 분리시키는 게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이미지도 빨간색 하고 귀신 나올 때 완전 추상적으로 변하게 하려고 했어요.


중학교 때 책을 읽고 왜 이런 이야기가 있어야 했을까. 세계적으로 아직도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지금 여성의 인권이랑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이렇게 설명하는 인텐션 노트 쓰고 히스토리컬 노트에는 열녀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찾아보니까 인도에도 그런 게 있었어요. 힌두교에서도 남편이 죽으면 화장을 할 때 여자가 같이 불타 죽어야 했거든요. 가부장제가 심했던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여성이 어떻게 희생당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졌구나 얘기를 하게 됐고 이거랑 반대로 『자기록』은 당시의 여성이 썼던 이야기고 이 여자는 그걸 이겨내려고 한다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 다음에 처녀귀신 얘기를 했어요.


귀신이 돼가지고 복수를 하면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자유의 몸이다 얘기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사또나 이런 사람들이 처녀귀신을 도와준다고 나와 있어요. 처녀귀신 또한 가부장제에 속해 있다. 처녀귀신의 한이 풀어지면 처녀귀신은 오히려 열녀로 봉해주더라고요. 이 이야기에서는 죽어서도 여성한테 자유란 없다. 귀신 이야기가 옛날에 기록되어 있는 거 보면 남자의 존재가 무조건 있어야 하고 남자에 의해 해결이 되는데,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질문하면 항상 남자였다 하면서 여성이 글 쓰면 어떨까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수묵화는 다 붓펜 작업이에요. 한 장씩 그리는 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어요. 갈필법으로 하려고 했는데, 애니메틱 같은 경우에는 프로크리에이트에 있는 붓펜으로 하고 있어요. 애니메이터 고용하면 일 분담을 프로크리에트로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TV페인트 다 옮기고 있어요. 캐릭터는 주인공 한과 기록하는 양반 남자들로 나눠져 있어요.


한국의 호흡이랑 다른 것 같아요

TV페인트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거는 프랑스 스태프들을 써야 돼서인 거죠.

이번에 안시에서 상 받은 게 제작지원 플러스 레지던시예요. 거기에 있어야 해서 갈 준비는 하고 있어요.


언제 가요?

한 11월 중순에 갈 것 같아요. 미유 스태프가 프로크레이트에서 TV페인트로 붓펜 다시 만들어 주고 있는데 될지 한번 봐야죠.


미유 내에 실질적인 제작 스텝이 있는 거예요?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많이 도와줘요. TV페인트도 파일 다 변환해야 하잖아요. 레이어 같은 거 피가 있으면 그 뒤에 목이 있고 이런 거 다 변환해 주는 사람은 있어요.


근데 애니메틱은 다 혼자 했었어요. 미유에서도 2년 동안  제가 이번에 딴 제작지원금(Aides avant réalisation aux films de court métrage)을 못 따서 제가 프랑스 지원금 The French National Centre of Cinema (CNC) 웹사이트에서 누가 언제 땄는지 찾아보면서 조사했어요. 지원금 되는 데 1년 걸렸다니까요.


애니메틱도 나왔고 애니메이션만 들어가면 되나요?

질감이랑 애니메이팅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질감을 그리는 게 오래 걸리더라고요.


실질적인 작업은 디지털로 하는 건가요.

싹 다 할 것 같은데, 사실 지금 포르투갈 코프로듀스 시스템 해가지고 포르투갈 지원금도 신청했거든요.

만약 되면 리소 프린팅을 하려고요.


특정 장면을 리소 프린팅으로 하는 거예요?

(귀신) 신들은 리소 프린팅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질감이 더 나을 것 같고 빨간색은 진짜 쨍한 색깔이 필요한데, 리소가 딱 적합할 것 같아요. 돈이 생기면 A4 사이즈 한 장에 프레임 한 8개 인쇄해서 스캔하고 컴포지팅 할 생각이에요.


프랑스 지원 제도는 언제까지 완성본 제출해야 된다 하는 건 없나요?

지원금 시스템이 한국이랑 매우 달랐던 게 2년이거나 더 오래 줘요. 제가 본 감독들은 다 하나 따면 무조건 다른 것도 따야 한다는 게 있었어요. 쬐그만 거 하나 따면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한 4개까지 따서 제작을 하더라고요. 제가 본 프랑스 쪽 감독들은 돈을 많이 따는 게 내 능력을 보여주는 거고 그걸로 사람을 고용해서 냅다 돈을 들이붓자 이런 식이더라고요.


호원: 한 프로젝트에 이쪽저쪽 기관에서 제작 지원금을 받는다는 거예요?

초기 사전 제작 지원금도 있고 그전에 대본 제작 지원금도 있잖아요. 그걸 한 프로젝트로 계속 딸 수도 있어요. 저같이 CNC 프랑스 정부 지원금에 시클릭 레지던시 및 지원금도 합해서 딸 수 있어요.


호원: 집행하는 기관은 같은 데예요?

다 따로따로 해요. 프랑스 지방 정부에서 주는 돈(regional funding)이 또 따로 있어요. 그 경우는 거기 가서 고용을 하거나 거기 사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이런 조건이 있어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4월에 계약을 했으면 11월에 내놔야 되잖아요.

2년 안에 이것도 따고 저것도 따고 제작은 사람 많이 고용하면 6개월 안에 끝나니까 빨리 끝내자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


보통은 2년 정도 호흡을 보고 작업을 하는군요.

확실히 한국의 호흡이랑 다른 것 같아요. 미유 쪽에 작업 많이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안나 부다노바Anna Budanova는 저보다 일찍 2021년 초에  최신 작품 <두 자매 Two Sisters>을 만들었을 거예요. 근데 아직도 지원금 따고 있어요. 이 친구도 “누구 눈치 안 보고 재촉 안 당하고 여유롭게 할 거다” 하는 마음가짐이더라고요.


그러면 2027년쯤에 완성될까요?

2027년에 영화제 투어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얼마 동안 진행한 건가요?

2022년 9월~10월에 수술했으니까 2023년 6월 달부터 했거든요. 손목 좀 나아서 움직일 때부터 했는데, 그때 미유한테 뭐 보여줄 만한 거 있냐고 연락이 왔어요. 대본을 쓴 적이 없고 제가 잘하는 게 뭔지 아니까 넌-내러티브로 할 생각이었어요. 미유 쪽에서 이야기나 콘셉트는 좋은데, 넌-내러티브인 게 문제라고 했어요.


2023년 10월~12월에 덴마크에 새 작품을 들고 다시 갔었거든요. 레지던트 지원금으로 <Egg>(2018, 감독: Martina Scarpelli) 만드신 이탈리아 감독한테 컨설팅을 받고 대본을 어떻게 쓸까도 의논해서  방향을 잡았어요. 


2023년 10-12월, 2024년 4-6월 총 6개월 간  덴마크 레지던시  Filmværksted Viborg에 머물며 <한>을 기획 개발했다. (사진 제공; 임채린)
2023년 10-12월, 2024년 4-6월 총 6개월 간 덴마크 레지던시 Filmværksted Viborg에 머물며 <한>을 기획 개발했다. (사진 제공; 임채린)

호원: 감독님이 지원하기 전에 미유에서 먼저 연락을 한 거예요?

2020년도에 <나는 말이다>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연락을 해 봤어요. 자기랑 안 맞는데 너의 전 작품도 좋다 얘기하더라고요. 그 후에 제가 미유 갤러리에 포트폴리오를 또 보냈었거든요. 미유 갤러리도 좋으니까 어떻게든 콜라보했으면 좋겠다 이메일 보냈는데, 몇 달 후 2023년 1월쯤에 비디오 콜을 하자 해서 만났는데, 그건 갤러리에서 전시할 거에 대한 거였어요.


2023년에 4월에 프랑스에서 만났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보내달라 해서 그 후에 보냈어요. 그때 미유가 프로듀싱은 안 하고 1만 유로 정도 줄 테니까 한국에서 돈을 더 많이 따서 네가 혼자 하라 했는데, 제가 아니다. 널 설득하겠다 해가지고 덴마크 가서 새로 포맷을 만들었어요. 이때는 대본이 없어서 스트럭처를 만들고 네가 원하는 내러티브는 여기 있고 여기가 추상적인 부분이다 해서 보냈어요. 트리트먼트를 써서 이미지 보여주니까 저한테 계약하자 그래서 지원금 신청을 2024년 1월부터 했어요.


지원금 신청하기 전에 작가 계약을 하는 건가요.

지원금 신청할 때 계약서를 보여줘야 해요. 네가 우리한테 저작권을 주면 우리가 그거에 대한 보상을 이렇게 해주고 그런 게 다섯 페이지 정도있거든요. 계약하고 작년 2월에 시클릭 지원금 신청을 했는데, 그때는 떨어졌어요. 


떨어지고 나서 미유 프로듀서가 지원금 담당부서 분한테 이 작품에 있어서 뭐가 부족한지 솔직히 지적을 해달라고 했어요. 이 사람이 스크립트가 묘사하는 것도 많고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열녀나 한국의 귀신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안 되어 있다. 서양인으로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 컨설팅하는 말티나도 저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맞는 말 같다” 하니까 다시 대본 갈아 썼어요. 


이런 기회가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제작 중인 시점에 얘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한국인으로서 자국에서 두 갈래가 있는 것 같아요. 외주로 생계를 벌면서 지원금 따거나 애니메이션이랑 별개의 직장을 가지거나. 2022년에 <나는 말이다> 제작을 할 때 감독 모임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가 SBA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제도)가 사라진다 할 때쯤이거든요. 그래서 감독들이 다 말이 많았어요. 어떻게 사냐고 하는데, 제가 거기서 솔직하게 얘기를 했어요. “외주 아니면 다른 일 하면 사는데, 나는 내 작업으로 돈을 벌고 싶다. 유럽은 지원금을 다 통합해서 버는 시스템이고 작업을 하면서 다 먹고살더라. 나는 이 길이 맞는 것 같다” 저는 솔직히 더 나은 제작 환경과 기회를 가진 유럽이 많이 부러웠고 분했어요.


시클릭에서 12월부터 9개월간 제작 들어가요. CNC 프랑스 정부 지원금도 이제 나와서 배분될 거고 이때쯤이면 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했고 이런 기회가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한국인이라고 한국에서만 돈 딸 필요 없다. 원하면 밖에서 딸 수 있다. 이런 경험담 얘기하고 싶었어요.


단편이 저 같은 경우에는 약 1억 5천이에요. 만약 포르투갈 지원도 따면 2억이 넘을 것 같아요. 포르투갈 같은 경우에는 프로덕션 스튜디오 피로 30%를 가져가거든요. 그 외에 70%는 사람을 고용하는 데 쓰는 거예요


이쪽 분야에서 프랑스나 유럽 친구들을 사귀면 다들 경쟁적이에요. 영화제 어디에 들어가는지가 진짜 이 사람들의 생계에 어느 정도 걸리는 거예요. 미유가 저한테 처음에 주겠다는 돈이 어디서 나오냐면 CNC 프랑스 정부 지원금에 점수 제도가 있어요. 독일이랑 똑같게 프로덕션 스튜디오가 상을 많이 타고 칸 영화제에 가고 해서 점수가 높으면, 작품 할 테니까 돈을 좀 달라하면 자동으로 줘요. 그런 식의 시스템이 있어서 열심히 하면 유럽 쪽이 더 승산이 있는 것 같아요.


<한>도 대본을 처음으로 쓰면서 많이 배웠거든요. 애니메틱도 저는 그전에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한국적인 문화나 정서에 대해서 지원금 신청할 때는 다들 이해가 안 된다 했는데, 대본을 열심히 쓰고  애니메틱 열심히 하고 인텐션 노트도 쓰다 보니까 설득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경험도 전 재미있었고 저한테 한국인이면 한국인답게 살라고 하는 사람한테 엿 먹이고 싶은 것도 있어서 잘 만나게 된 것 같아요.


2024년 10월 프랑스 레지던시 NEF Animation 체류 당시 (사진 제공: 임채린)
2024년 10월 프랑스 레지던시 NEF Animation 체류 당시 (사진 제공: 임채린)

난 잃을 게 없다

호원: 이전까지의 작업에서 애니메이팅은 스트레이트 어헤드로 했는데, <한> 같은 경우는 애니매틱을 만들어 놨으니까 상당 부분의 애니메이팅은 애니매틱을 따라서 가는 식이에요?

맞아요.


이제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스태프랑 할 거고

제가 색칠 못할 것 같아요. 이번에 외주 수채화 하는데 미칠 것 같습니다.


호원: 컬러링은 애니메이팅 뽑은 다음에 맡겨도 되지만 스트레이트 어헤드를 하느냐 아니면 동화를 쪼개느냐는 다이내믹한 표현을 할 때 크게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래서 2분의 1 지점이 생긴 것 같아요. 귀신이 되기 전에는 내러티브 컷을 넣어서 설명 위주로 한 다음에 제가 마음껏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스트레이트 어헤드 방법으로 가게 되었어요. 컷으로 한 게 처음에는 머리가 엄청 아팠어요. 열심히 그리는데 중간에 리듬이 끊긴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 안 하려고 노력을 하고 예쁜 일러스트를 그린다 생각하니까 견디면서 하게 되더라고요.


호원: 여인의 얼굴이 돌아가는 거는 2D에서 바로 그린 거예요 아니면 3D 모델링을 한 다음에 트레이싱을 한 거예요?

저 3D 안 해요.


저는 AI인가 했어요.

제가 다 했어요.


호원: 스트레이트 어헤드처럼 기세 좋게 나가다가 정교하게 혹은 매끈하게 하려다 보면 자기의 장점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선의 매끈함에 빠져서 다른 기회 놓칠 수도 있어요.

그래서 2분의 1 지점으로 하고는 있는데


호원: 그래서 저도 프란시스 베이컨 같은 느낌이 나왔을 때 속이 좀

뚫리죠! 저도 뚫려요. 저는 2분의 1 귀신 나온 부분이 그전 작품의 연장선 느낌이거든요. 그전에 걸 좋아한 사람들은 이걸 좋아하긴 하겠죠. 프랑스에서는 뮤직비디오도 정부 지원금 주거든요. 그걸 만드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다들 처음부터 그리기보다는 로토스코핑 하더라고요. 제 작품은 선이 흐물거리면서 가는 느낌이면 여기는 진짜 매끈한 느낌이랄까. 원래 제작된 옛날 영화를 캡처해서 그 위에다 그리더라고요. 


그전에 제가 혼자 답답했던 게 내러티브 만들기 전에 보자기 뒤집어쓴 귀신 이미지를 레지던시의 다른 외국인 감독들한테 보여주면 다들 “아 너 또 스트레이트 어헤드 할 거지” 하면서 “그러면 넌 지원금 필요 없겠다. 그냥 혼자 하면 되겠다” 이러는 거예요.


호원: 애니메이션 판이 전 세계적으로 험악해졌구나.

“넌 돈 필요 없잖아”라는 소리를 들은 게 한 네 번은 되는 거예요. 이번에 미유에 가서도 다른 감독이 저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들으면서 질리는 거예요. <아이즈앤혼즈> 후에 곧바로 <나는 말이다> 하니까 제가 봐도 어느 정도 <아이즈앤혼즈>랑 중첩되는 부분이 있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호원: 그거는 그거대로 작가의 스타일이자 특징이기도 한데

근데 그걸로 사람들이 제가 다음에 뭘 할지를 얘기하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완전히 반대로 가자 한 게 이 정도인데, 반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제작사를 차려서 공동 제작자인 거예요 아니면 그냥 고용 감독으로 계약한 거예요?

고용 감독으로 했어요. 


저작권은 미유가 가지고

저작권은 저에게 있지만 이윤분배 비율이나 양도 기간 등을 정해서 프로듀서한테 작품을 이용할 권리를 넘겨주는 계약(Autheur’s contract)을 한 거예요.


수익성은 없으니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다’였나요?

맞아요. 이걸로 내 생계가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 같다. 명성이 별로 내 생계에 도움이 안 되고 외주도 하니까 난 잃을 게 없다 이런 느낌이었어요. 저작권을 넘긴다는 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민감하긴 하잖아요. 근데 미유 쪽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 다 좋다고 피드백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을 것 같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독일 프로듀서 일 겪고 나서 ‘이 작품이 내 마지막 아닐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즈앤혼즈> 때 불공정 계약을 하고 안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같이 일해야 해서 진짜 싫었거든요. 엄청 애써서 만들었는데, 이 사람이 배급을 하고 이 사람이 에디팅까지 관여했다고 쓰게 만들었거든요. <나는 말이다> 하면서 ‘아 이게 끝이 아니구나’ 상쾌했어요. <한> 만들고 나서도 다음 작품 하겠죠. 인생은 계속되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나도 한국인인데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호원: 남들이 충분히 예측할 것 같은 자기 작품의 요소들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하세요?

뭔가 19금이 나올 것 같다. 싸우는 장면이 나올 것 같다. 제가 주로 하는 게 트랜지션을 하면서 형상이 몰핑 하는 거잖아요. 그런 스타일을 함으로써 얘는 대사가 없을 것 같고 음악이나 사운드에 애를 써가지고 움직임과 함께 어느 정도의 전개를 보여줄 것 같다.


제 스타일이라고 하면 “너는 뮤직비디오 만들면 되겠다”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음악도 제가 진짜 0.4초까지 다 엄청 고려해요. 제가 작곡가 엄청 못살게 굴거든요.


호원: 스타일이나 기법에서도 뭔가 반복된다거나 하는 거는

넌-내러티브니까 또 춤사위 하나 보이지 않을까 이런 동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호원: 라인은 거칠 거고 또 이중 작업으로 긁어내거나

판화나 사진 기법을 쓰고 이 사람은 자기가 한 장씩 색칠 안 하겠지 이런 느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말이다> 할 때 스태프 한 명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저한테 “감독님은 색칠하세요?” 해서 제가 “저 안 하는데요” 했거든요.


호원: 그게 임채린일 거야라는 게 사실은 칼아츠 실험애니메이션과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모린 퍼니스의 라인과 수잔 피트 같은 형상과 폴 베스터 같은 재료나 기법에 대한 시도, 2천 년대 초반에 돌아가신 줄스 엥겔이 좋아했던 추상적인 형태의 운동 그런 것들이 그 이후로는 많이 사라지긴 했었거든요.

저는 그 교수님들한테 영향 안 받았다 생각했거든요. 교수님들 작품 제가 엄청 열심히 찾아는 봤는데,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하면 말이 안 나와가지고.


4년 전 인터뷰에서 한국인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고 했었는데 그게 <나는 말이다>가 된 건가요?

네, 제가 아티스트 비자 떨어지고 한국에 와서 이제 어떻게 할지를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외국 영화제 만난 분들이 저한테 백인이 했어도 될 법한 작업을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한국인인데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말이다>가 나온 거거든요. 


<나는 말이다>는 태몽 중심이고 태몽 자체도 한국적인데, 저희 엄마가 자주 저한테 “태몽이 좋았으니까 네가 지금 죽을 것 같아도 괜찮을 거야” 얘기를 해요. 태몽에서 시작해서 이중섭의 한국에서 남성 작가의 입지 이런 걸 다 함께 결합을 해보자가 <나는 말이다>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찾아보니까 이중섭 작가 아내분이셨던 야마모토 마사코 씨가 뒤에서 돈을 다 대주셨더라고요. 저는  여성 작가니까 만약 내 남편이 돈을 다 벌고 나한테 이렇게 대주면 사람들이 날 그래도 칭송을 할까 이 생각도 드는 거예요. 또 한편으로 이중섭 작품도 엄청 좋아해요. 은지화 작품 진짜 좋더라고요. 공경하면서도 할 말 조금 해야겠어 이런 느낌으로 한 게 <나는 말이다>예요.


호원: 진짜 싫어하면 언급조차 안 하는데, 이중섭도 그렇고 피카소도 그렇고 임채린 감독의 애증이  녹아있어요. 부정을 하는 대신에 비판적으로 ‘나의 은혜로 너를 새롭게 깨어나게 해 주마’.

<아이즈앤혼즈>도 작업 초반에는 완전 피카소로만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피카소의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아내분이 현대미술가예요. 자서전 『라이프 위드 피카소 Life with Picasso』(1964, 프랑수와즈 질로)라는 책을 썼거든요.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 써놨는데 거기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게 이 사람이 이혼을 하려고 하니까 피카소가 “너는 날 벗어날 수 없어. 난 피카소야” 해서 ‘이 사람은 나의 대타를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써놓은 거예요. 거기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호원: 좋을 때는 피카소, 이중섭한테 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는데, 삐딱선을 타면 애새끼가 되는 거죠.

자기한테 반대하거나 자기가 원하지 않은 거 하는 순간 엄청 쪼잔해지면서 완전히 사람이 약은 게 나오니까 거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즈앤혼즈> 작업을 할 때쯤에 나이가 많은 남자 감독이 저한테 플러팅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경우를 칼아츠에 있던 1년 안에 두세 번 당했거든요. 너무 빡친 거예요. 남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걸까. 연인 관계에서도 내가 을의 포지션이어야지 사랑을 받는 건가 이런 생각도 한 거 같아요.


피카소 이야기 보면서 ‘진짜 약은 남자 많구나. 저 사람도 약았고 내가 사귀었던 사람도 약았구나. 


이중섭은 약은 남자들 중에 좋아하는 한국 작가여서

이중섭은 전쟁의 고달픔에 있으니까 약았다고 말 못 할 것 같아요. 약았다기보다는 얄밉다는 느낌이죠. 


호원: <아이즈앤혼즈>도 그렇고 <나는 말이다>도 그렇고 계속 형태가 바뀌면서 남자이면서도 여자이거나 여자이면서도 남자이거나 그런 식으로 성적으로 계속 치환이 되거나 변하는 것 같아 보여요. 사실은 <꽃 Flora>(2018)도 그렇고 성을 한편으로 구분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드로진Androgyne의 개념을 갖고 있나.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거(헤르마프로디토스) 좋아했는데, 솔직히 그거는 그냥 나오는 거 같아요. (웃음)


호원: 스트레이트 어헤드의 특징 중에 하나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 안에 감춰뒀던 게 나오거나 순간순간에 이래야 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진전을 시키다 보면 내가 여기까지 왔었나? 그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죠. 

확실히 감정 표현을 말로 하는 것보다 그리는 게 더 편하긴 한 것 같아요. 



가부장제에 대해 얘기하는 내 작품에 어울리는구나

<나는 말이다> 은지화 부분은 은박을 깔고 붓으로 그린 듯한 그림을 합성한 건가요?

아니요. 석판화예요.


호원: 석판화를 하고 은박지을 구긴 거예요 아니면 구긴 다음에 찍은 거예요?

이거를 롤링하고 말리면서 자동으로 구겨졌어요. 유성 잉크여서 말리는 데 한 3일 걸리거든요.


호원: 표면이 이렇게 울퉁불퉁한데 라인은 울퉁불퉁한 느낌이 잘 안 보여서 은박지는 은박지대로 스캔을 하고 그 위에 레이어에 브러시 터치를 해서 합성을 했겠지 한 거예요.

석판화를 하면 문제점 중 하나가 그림을 한 장씩 그리고 다시 그걸 옮겨야 하는 거예요. 기름종이로 옮기려고 했는데 안 돼요. 그래서 방법을 찾은 거예요.


컴퓨터로 하면  일정한 선으로 그리잖아요. 그걸 다 종이로 인쇄를 해서 그 위에 붓펜으로 터치도 해요. 그걸 복사기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 A4 사이즈로 자른 알루미늄 포일에 복사해요. 복사가 되면 살짝 회색 선으로 나오거든요. 거기에 콜라를 부어요. 콜라를 붓는 석판화를 키친 석판화라고 하거든요. 원래 쓰는 비싼 액체 대신에 콜라를 쓰는 거예요. 빈 공간에는 안 달라붙고 선에만 잉크가 달라붙게 하는 프로세스예요. 그렇게 하고 물로 세척한 다음에 롤링을 해요. 잉크가 눌리면 선만 까맣게 올라와요. 


그래서 종이가 구겨지는군요.

넣는 데도 구겨지고 나왔을 때도 구겨지고 콜라로 한 1분 세척할 때랑 롤링할 때도 구겨지거든요.


그런데도 라인은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네요.


호원: 나중에 리터치를 했어요?

안 했어요. 이게 끝이고 스캔을 했는데, 스캐너가 비싼지랑 싼지에 따라 다르게 나와요.


여자 켄타우로스의 모습으로 시작을 해서 중간에 이중섭의 황소 이미지가 나와요. 이 부분은 태몽 하고는 상관이 없는데, 다른 의미가 있나요?

초반에 가부장제 다룰 때 남편이 여자의 젖을 물어뜯는 장면이 있거든요 거기서 아이들이 나오는데, 황소라고 생각했고 이중섭이라 생각했던 거에서 달리는 말이 나오잖아요. 저는 그게 말 그대로 이중섭 작품에서 시작했는데, 내가 나왔네? (웃음) 이런 느낌이거든요.


나의 이미지를 켄타우로스로 한 거는 왜인가요?

칼을 휘두르는 말이었으면 좋겠었거든요.


호원: 그러면서도 화살을 맞잖아요.

화살을 맞죠. 아까 얘기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여자 성기와 남자 성기를 가진 신도 좋아하고 그냥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간 것 같긴 해요.


앞에 했던 작업이 미노타우로스랑 연관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처음 만들 때는 완전히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즈앤혼즈>랑 <나는 말이다>가 비슷한 점이 생각보다 많은 거예요. 켄타우로스가 그래서 나온 것 같고 스핑크스 같이 생긴 게 호랑이처럼 달리는 게 있거든요. 그건 엄마 생각해서 한 거예요. 저희 엄마 태몽이 호랑이거든요.



수묵화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이중섭 작품의 영향인 건가요 아니면 전 작품이 서양 작품이랑 다를 바 없다는 피드백의 영향인가요?

그것도 있었던 것 같고 석판화 프로세스에서 얇은 선은 기름종이에 잘 안 옮겨져요. 


<나는 말이다>는 석판화 기법을 해보고 싶다는 게 먼저였나요?

이중섭 작품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때마침 키친 석판화 인스타그램 계정을 봤어요. 질감이 비슷하면서도 붓펜적인 느낌이었어요. 돌로 하면 섬세한 거 할 수 있는데, 키친 석판화는 거친 걸 써야지 이미지가 남아요. 쿠킹포일에다가 빨리 그리는 거여서 대체로 크레용 아니면 유성 마카로 해요. 제가 찾은 게 붓펜 스타일 유성마카예요.


석판화라면 정말 돌에다가 그림을 그려서 찍는 거예요?

돌에다가 그리고 여러 가지 건강에 안 좋은 액체를 섞어서 그걸 지워요. 여기서 잉크를 올리면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석판화가 어려운 이유가 이 액체 공정에서 잘못해서 그림이 없어져요. 롤링했는데 그림이 안 나올 때가 많거든요. 쿠킹포일에다가 하는 키친 석판화가 코비드 때 부엌에서 하면서 즐길 수 있고 값이 싸다 해가지고 사람들이 쓴 거거든요.


호원: 판화라는 걸 잘 몰라도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고 이걸 갖고 애니메이션을 만들라는 권유는 안 하는데, 그걸 굳이 한 거잖아요.

처음에는 키친 석판화 재질 보고 은지화 생각을 하고 반했는데, 부엌 석판화라는 게 가부장제에 대해 얘기하는 내 작품에 어울리는구나 했어요.



내가 그 과정을 알고 내가 했다는 걸 내가 안다

호원: 가령 은박지 텍스쳐가 매력이 있어서 한다면 그냥 은박지만 구겨서 스캐닝을 하고 그 위에 레이어로 라인 드로잉을 하면 되는 건데, 왜 굳이 이렇게 했을까?

내가 이게 가짜란 거 알잖아요.


호원: 사람들이 누구나 판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감히 그걸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결국은 손목이 나가는 이중 노가다 삼중 노가다인데, 임채린이라는 이 젊은 감독은 그걸 알면서도 했고 두 번이나 했고


<메이트>(2019)까지 세 번이에요.

요새 AI가 난리잖아요. 결국에는 AI 아트랑 내가 하는 거의 차이점은 내가 그 과정을 알고 내가 했다는 걸 내가 안다는 거잖아요.


호원: 사람들에게 ‘이거 진짜 내가 일일이 했어’라는 거를 어필하기 위해서 크레디트 나올 때 자기가 작업을 하는 거 넣거나 유튜브에 메이킹 영상을 바로 붙이거나 그러는데

전에 영화제 잘 됐던 작품 중에 세상의 모든 도구를 하나씩 수채로 해서 애니메이션 만든 게 있었거든요. 다 좋았는데, 끝에 산더미 같은 종이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런 걸 내가 했어!’ 거기 깨졌어요. 그거 보면서 난 저런 거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판화를 하는 이유가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는 게 좋아서라고 했는데, 지금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나의 시간, 내가 직접 들인 노력, 몸으로 한 체험 쪽으로 바뀐 건가요?

네. <아이즈앤혼즈>까지는 재료의 다양성을 이용할 수 있었거든요. 키친 석판화는 어떻게 전사시킬지도 해결 방법을 찾아봐야 했잖아요. 이런 라인을 원하고 이런 결과물을 원한다. 저는 이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선이 깔끔하게 잘 떨어져서 합성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찍을 때마다 주의 깊게 잘한 건지 아니면 버린 게 많은 건지.

버린 거 많이 없었어요. 총 합해서 40장 정도 버렸어요.


짧은 작업 기간에 완성을 했어요.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나요?

장면 중 하나가 12 프레임만 더 했으면 멈춰 서지 않았을 텐데, 덴마크에서 끝을 내야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전날까지 밤을 계속 새워서 하고 아침 8시인가 DCP 만들고 그날 짐 다 정리하고 떠났어요.

*임채린은 덴마크의 애니메이션 레지던시 오픈 워크숍(2021-2022)에서 <나는 말이다>를 제작했다.


고구려 고분 벽화 같은 부분에서 0.5초 정도 멈추거든요. 레지던시에 다른 컨설팅 하시는 분이 저한테 다 좋은데 여기 이 부분이 멈춰가지고 걸린다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건 나중에 고칠게요 하고 안 고쳤어요. 그때 이미 손목이 아팠거든요.


호원: 실험 작품은 멈췄으면 멈춘 의도를 보는 사람들이 미적인 의도로 받아들여야겠다.

이래서 실험 애니메이션을 싫어하는 사람 많다고. (웃음)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도 약간 있는 거죠.

실험 재밌긴 재밌는데 한계가 있는 게 사람들이 자꾸 저한테 “이거의 의도는 뭐야” 얘기하고 동료들은 “너 또 혼자 하겠네. 돈 필요 없겠네” 그러고 미유 프로듀서는 “넌-내러티브 하면 밀어주지 않겠다”는 느낌이어서 이게 다 결합돼서 이번 작품(<한>)이 된 것 같아요.


화가 나서 시작했는데 움직임 그리는 것 자체가 재밌어요

호원: 작품 쭉 해오면서 중요한 테마들을 건드리잖아요. 성정체성도 그렇고 페미니즘도 그렇고 가부장제도 그렇고 인종차별도 그렇고 중요한 키워드들이 나오는데, 사전에 뭐를 읽고서 준비를 하는 식이에요?

다 그냥 화가 날 때?


공부를 해서 작품을 하는 사람이 있고 직관적으로 추리를 해서

직관적인 것 같아요. <한> 도 엄청 공부하진 않았어요. 그냥 이것저것 찾아보고 『자기록』 책 사고 이런 식이었고 <아이즈앤혼즈>도 그 부인이 쓴 거 살짝 읽고 저희 아버지랑 싸우고.


분노는 일시적으로 격렬하게 오는 감정이잖아요. 근데 작업이 이중,  삼중으로 하는 긴 과정이란 말이에요. 처음의 동력을 어떻게 계속 유지하는 건가요?

작업을 처음에는 화가 나서 시작했는데 움직임 그리는 것 자체가 재밌어요.


분노가 맥스로 차면 작업이 시작되고 작업을 하면서 점점 분노가 내려가는 건가요.

분노가 내려가면서 ‘어 지원금 땄네. 이거 어떻게 맞춰가지?’


호원: 분노는 내려가고 이미지는 이미지의 힘으로 달려가는 거죠.

사실 <나는 말이다>가 너무나 촉박했어요. 부천 지원기간이 9개월인가 인데, 사전 심사하니까 7개월 안에 하라는 거예요. 그때는 분노 플러스 잘못하면 돈 토해내야 한다 이런 스트레스도 있었어요.


<나는 말이다>의 프리미어는 어디였어요?

월드 프리미어는 부천이었고 유럽 쪽은 로테르담이었어요.


갔었어요?

손목 수술해서 가방 못 들 것 같아서 안 갔어요.


가본 건 어디예요?

오타와 가고 크레테유 국제여성영화제 가고 인도네시아 영화제 갔어요. 한국에서는 애니씨어터 한번 갔었던 것 같아요. 오타와가 넌-내러티브 따로 내러티브 따로 되어 있는 게 좀 특이한데, 상영할 때는 다 섞어서 넣더라고요. 그때 오리카사 료 감독 거(<Miserable Miracle>(2023))가 대상 탔거든요. 제가 다 뿌듯했어요. 


동양인이라서? 

원래 내러티브 작품이 주로 상 타잖아요. 논-내러티브가 타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딜레마이긴 했어요

<나는 말이다>를 가지고 돌아다니니까 어떤 반응이 있었나요?

어떤 외국 분이 저한테 갑자기 말 걸더니 “나는 캐나다 사람이고 우리는 가부장적이지 않은데 공감이 됐어” 이러는 거예요. 제가 반응을 엄청 해주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좀 떨떠름했어요. 이 사람이 ‘서양인이 좋아해 줬어.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봐 줬어’ 이러면서 좋아하길 바라나 이 생각도 들더라고요. 서양 여성분들이랑 얘기하면 “그 정도로 힘들어? 우리는 안 그러는데” 이런 느낌이 있어서 기분이 애매했던 것 같아요.


호원: (서양)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의 문제를 아시아로 꺾어서 보는 경우가 있거든요.

자기는 인정을 안 하니까 남의 걸 투영해 가지고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문화원에서 일하시는 분이 오셔서 같이 밥도 먹었는데, 그분이 저한테 “캐나다도 성차별이 심한데, 여기 사람들은 그걸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얘기를 해서 핀트가 맞았어요. 


호원: <창세기 The Genesis>(2017) 때도 그렇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때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일상에서 안전하고 연계가 돼가지고 확 끓어오르는 시기와 맞아떨어지고 전 세계에서도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하고 같이 맞는 것 같아요.

강남역 살인 사건이 애니메이션 처음 할 때 딱 맞아떨어졌거든요. 그 후에는 개인 삶에서 은근하게 나오는 거 있잖아요. 그거에 화가 나면서 또 새 작업하고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 미파에서 피칭을 할 때 감독의 나라 얘기를 안 하고 지원금을 딴 나라만 얘기하니까 제 작품은 프랑스랑 포르투갈인 거예요. 피칭 사회자가 프랑스, 포르투갈 하면 제가 나와서 한국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당황한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감독이면 메인은 미유고 우크라이나가 코프로덕션이고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끝나고 쉬는 시간에 프랑스 친구가 저한테 “프랑스, 포르투갈이라고 말했는데, 네가 나와서 한국 얘기하니까 반응이 웃겼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게 딜레마이긴 했어요.


2025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미파 피치 세션 <한> 발표 (사진 제공; 임채린)
2025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미파 피치 세션 <한> 발표 (사진 제공; 임채린)

호원: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희생으로 보는 거는 모두가 다 알고 전쟁이라고 하면 오히려 요즘 이슈하고는 더 맞긴 해요.

요즘에 이슈에 맞추려면 그런데, 그건 제가 원했던 게 아닌 것 같아요.


호원: 사회적인 재난에서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약자고 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피해자였다는 거는 되게 일반적이어서 신선하지는 않아요. 

이번 작품은 프랑스나 서양 쪽은 잘 먹힐 것 같거든요. 근데 한국에서는 이 작품에 공감을 해 줄까 아니면  내가 중학교 때 배웠던 그런 거네 하고 지나갈까 궁금해요.


호원: 페미니즘도 90년대의 페미니즘과 2000년 2020년의 페미니즘은 결이 달라요. 되게 다양한 섹트에서 발화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한>이라는 작품이 어디에다 포커스를 둬야 될지 전략적으로 고민을 해야 될 거예요.

저는 감정적으로 인식하는 게 먼저여서 작업을 하면서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확실히 지금은 이데올로기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지금 미유에서 하는 우크라이나 친구 작업은 현대 이슈에 초점 맞추고 있거든요. 근데 열녀의 초점은 현대적이지는 않잖아요. 물론 제가 여성마다 겪고 있는 걸 생각해서 연관점을 찾긴 찾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페미니즘인지는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트렌드를 타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다들 한류 이러면서 하고 있는데, 아무도 생각 안 할 때 한복 나오는 걸로 오히려


호원: 사자 보이즈가 나오는 거야 (웃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그래도 지금 뜨니까 다행이다.  내 작품이랑 관련 없이 흘러가라 이러면서 


2년 뒤에 <케데헌 2>가 나오면서 처녀 귀신들이 우르르 나와

안 돼~ (웃음) 

인터뷰 2025년 8월 12일 @ 평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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