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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 IM Chaerin

Eyes and Horns 원화 전시@Animafest Zagreb

<Eyes and Horns> 원화 전시 @ ANIMAFEST ZAGREB 2021 (6/7-12)


미로 속에 갇힌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모티브로 한 피카소의 판화 시리즈에 영감을 받은 단편 애니메이션 <아이즈앤혼즈>가 2021년 전 세계 영화제를 돌고 있다. 동작과 행위가 서사를 대체하고 언어 대신 음의 높낮이와 리듬의 장단에 기대는 작품은 <창세기>(2017) <꽃>(2018) <메이트>(2019)를 만든 임채린 작가의 신작이다. 팬데믹 시대 미국과 독일에서 판화 기법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그는 백신을 맞고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 참석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가격리를 끝낸 참이었다.


Eyes and Horns & Festivals


자그레브는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보셨나요?

네. 안시도 가고 싶었는데, 미국 아티스트 비자 준비하는 게 힘들어서 안 갔어요. 자가격리하면서 비자 준비하고 어제 제출했어요.

<아이즈앤혼즈>는 칼아츠 실험애니메이션과 석사학위 청구 작품입니다. 그런데 자그레브에서는 제작국가가 독일과 한국으로 되어 있었어요.

독일, 한국, 미국 이렇게 마지막에 있어요. 자그레브 제출할 때 프로듀서가 뺀 거 같아요.


칼아츠가 좋은 학교이긴 한데, 제가 작업하면서 혼자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 전 작품은 학교 판화실이나 컴퓨터그래픽실을 잘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제 컴퓨터 아니면 제작사 쪽 컴퓨터로 했어요. 팬데믹 때문에 학교 시설 이용을 거의 안 했어요. 편집을 완성해서 사운드 믹스만 하면 되는데, 학교에서 일정을 계속 미뤄서 힘들었어요.


그 전 작품은 제작국가가 미국으로 돼있어요. 그러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미국에 살면서 유색인으로서 외국인으로서 인종차별이나 문화 소외를 느꼈어요. 전 확실히 한국인이 맞는데, 영화제 참석하니까 '이게 왜 미국 꺼?' 이러면서 매치를 못할 때가 있었고요. 저도 이게 언짢았는데, 독일 프로듀서가 (제작국가에) 한국 넣는 게 자기들도 좋다 해서 넣었어요.


학교 작업을 별도의 제작사랑 계약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라이프치히 국제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영화제(DOK 라이프치히)에 제 작품 두 편이 됐어요. 두 번째 갔을 때 ‘이번에는 구경만 하면 안 된다. 진짜 나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더스트리 미팅에서 독일 프로듀서 파비안을 만나서 이렇게 작업할 거다 얘기를 하고 이메일로 끈질기게 업데이트를 해서 몇 개월 만에 계약하게 된 거예요. 제가 아마 처음일 거예요.


Eyes and Horns & Printmaking


파비안&프레드의 프로듀서가 외부에서 제작비 지원을 받았나요?

자기들 자금으로 해줬어요. 대신에 저도 제 노동력은 제공했고 계산해보니까 반반 되더라고요. <아이즈앤혼즈>는 프레임마다 레이저 커팅이거든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기술이어서 독일 제작사 없었으면 작업 못 했을 수도 있어요.


프로듀서랑 얘기를 할 때 기법에 대한 구상이 다 서 있는 상태였나요?

네. 애니메이팅을 이미 반쯤 끝낸 상태였어요. 학교 판화실에 있는 엄청 오래된 레이저 커팅 기계로 시험하고 잉크 묻히고 해 봤어요. 4분짜리 애니메이션이면 몇 천 프레임이잖아요. '돈이 많이 들겠다. 돈이 필요해' 이렇게 결론이 나온 거 같아요.


레이저 커팅한 판은 아크릴판인가요?

플렉시글라스plexiglass 두꺼운 걸로 했어요. 레이저 커팅 기계가 보통 벡터만 취급을 하는데, 그 기계가 jpg도 취급하더라고요. 그래서 곧바로 할 수 있었어요. 2D애니메이션 한 거 다 하나씩 낱장으로 png나 다른 파일로 프레임 번호 붙여서 넣으면 독일에서 다다다다 새겨줬어요.


크기는 긴 쪽이 10cm 정도예요. 프로듀서 만나기 전에 사이즈 별로 시험해 봤어요. 크게 하면 돈이 더 많이 들고 조그맣게 하면 돈은 아끼지만 연필 선이 거칠어지는 픽셀화가 심해지더라고요. 적당한 선을 찾았어요. 계약하고 제가 학교에서 한 샘플을 독일 쪽에 보냈어요. 프로듀서가 제 샘플이랑 유사하게 만들도록 레이저 커팅하는 회사에 시켰어요. 어느 정도 맞췄는데, 매우 우연적인 것도 있었어요. 판 재질에 따라서 빛이 반사되는 것도 다르거든요. 제가 학교에서 한 거랑 다르게 나오더라구요. 스캔하고 편집하니까 다양한 느낌이 나올 수 있었어요.


플렉시글라스는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요?

전작인 <메이트>가 판화 작품이었어요. 2D 애니메이팅 먼저 해서 그걸 또 동판에서 그리는데, 진짜 손목이 너무 아팠어요. <아이즈앤혼즈>는 판화 애니메이션은 하고 싶은데, 두 번 그리는 건 전혀 효율적이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을 했어요. 레이저 커팅해서 잉크 찍고 시도해보니까 판화처럼 나오더라고요. 처음에 작품 구상했을 때는 플렉시글라스 자체로 애니메이션 하기보다는 그 판에 잉크 발라서 찍는 드라이포인트 느낌으로 하고 싶었어요.


판화 기법은 칼아츠에서 배운 건가요?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 다닐 때, 동양화 수업도 듣고 서양화 수업도 들었거든요. 판화 수업을 4학년 1학기 때 들었는데, 동판화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막 밤새고 열심히 하니까 강사님이 뿌듯해하셨어요. 김미로 작가님인데, 졸업 후에도 제가 가끔씩 상담하면 조언해주세요.


Eyes and Horns & Picasso


<아이즈앤혼즈>는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Vollard Suite'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어요.

제가 석사 2학년 끝나고 한국에 들어와서 판화 자료 더 보고 싶어 하니까 미로 샘이 피카소의 볼라드 스위트 추천하셨어요. 보니까 반 남자 반 괴물인 미노타우로스가 벌거벗은 채로 성적인 걸 자랑하듯이 강조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피카소가 자기 자신을 미노타우로스랑 비유해서 그린 게 제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의 요소가 집합된 것 같았어요. 거기다가 피카소라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성적인 걸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게 부러웠어요. 나도 그럴 수 있는 지위나 권한이 있는 성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여름 방학이면 이미 학교에서 졸업작품 생각하라 채찍질해요. 그래서 뭘 해야 할까 하다가 볼라드 스위트 보고 '내가 진짜 싫어하는 에너지가 넘치네' 생각했죠. 저희 아빠도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이세요. 1년 만에 다시 같이 지내다 스트레스받은 상태에서 이걸 보니까 영감이 폭발해서 애니메이팅 하기 시작했어요.


바로 애니메이팅부터 시작 한 거예요?

제가 작품 할 때 스토리보드 안 해요. 이야기 미리 짜는 거 못하고 충동적이거나 감각적으로 그리는 건 잘 해요. 의식을 하면 안 되는 거 같아서 그리면서 넣는 편이에요.


이미지를 잡는 것은 자동기술적으로 하지만 구현하는 건 판화라서

뒤가 힘들죠. 둘 다 작업 시간은 1대1로 비례하는 것 같아요. 애니메이팅 하는 것도 오래 걸리고 판화도 오래 걸리고.

<Eyes and Horns> 드라이포인트 테스트 @CalArts


<아이즈앤혼즈> 생각했을 때 저는 드라이포인트로 할 줄 알았거든요. 하면 할수록 레이저 커팅한 거 자체가 너무 예쁘고 그거를 캡처해서 빛의 작용을 이용하는 게 판화 잉크로 찍는 것보다 더 재밌는 거예요. 재료들 쓸 때 마지막 영상을 저도 상상 못 하겠더라고요. 계속 뜻밖의 뭔가를 찾고 그거를 작품에 넣어요. 애니메이팅 하다가도 판화 하다가도 새로운 거 발견하려고 해서 지루한 느낌은 안 들었어요.


라인 옆에 번지는 빛 효과가 특이하긴 했었어요.

그게 사실 그림자예요.


반전한 거예요?

반전하고 제가 포토샵으로 보정해서 컬러 이펙트를 넣었어요. 피카소가 허공에다 그렸던 라이트 드로잉 아시죠. 저런 걸 어떻게 할 수 있나 생각 하다가 그림자를 반전하니까 빛 같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플렉시글라스가 두껍거든요. 그림 새겨진 거랑 거리가 있으니까 허공에 뜬 느낌이 드는 거예요. 여러 번 레이저 커팅 하면서 두께를 정한 다음에 독일 쪽에 두께도 맞춰달라고 했어요.


제목을 “눈"과 “뿔"로 한 건?

피카소가 여자가 많았잖아요. 몇 번째인지 까먹었는데, 그분도 유명한 화가(프랑수아즈 질로)였어요. 그분이 피카소와 함께 한 인생에 대해서 쓴 자서전 같은 데서 피카소의 첫인상이 눈에서 불이 나오는 거 같았다고 했어요. 피카소 작품들 보면 사진만 봐도 눈이 다 부릅 부릅하거든요. 그래서 눈을 한 거고 미노타우로스는 뿔이 있잖아요. 그게 남자 성기랑도 비슷하고 남성미 같은 걸 담은 것 같아서 뿔을 했어요.


사운드 작업은 어떻게 했나요?

이 작품은 피카소에게 영감을 받은 거다 보니까 이미지들이 매우 클래시컬하잖아요. 그리스 신화적인 느낌도 있어서 클래식적인 음악으로 하면 절대 안 되겠다. 여기에 현대적인 느낌을 넣을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다가 프로듀서가 펑크락 느낌을 하고 싶다고 먼저 얘기를 했고 저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 사운드 믹스하는 교수님이 계신데, 같은 학교 음악 쪽 과에 교수님 제자들이 있었어요. 이 뮤지션들이랑 잘 맞을 것 같다고 소개받았어요. 더 대곤스The Dagons라고 락밴드 느낌 듀오인데, 남자분이 드럼이나 기타 하시고 여자분이 목소리 성악 같이 하시거든요. 밴드 홈페이지 가보니까 맘에 들 것 같은 거예요. 예감이 좋았어요.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부터 맞았어요?

처음에는 고칠게 많았어요. 각 신마다 의미하는 게 달라서 음악이 신마다 달라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미팅을 많이 했어요.


미팅은 어떻게 했어요?

비대면으로. 저는 팬데믹 시작 전에도 독일인이랑 비대면으로 계속했어요.


화상회의 아니면 이메일?

둘 다 열심히 하고 SNS로도 새벽에 서로 마구 쏟아냈어요. 미팅을 매주 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프로듀서도 엄청 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스케쥴, 예산, 크레디트랑 일하는 사람까지는 합의를 하고 그 이외에 그림 내용이나 이런 건 제가 주관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4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끝낼 테니 그 프레임을 다 처리해달라" 하면 "알겠다. 그런데 그걸 넘어가면 안 된다."


처음에 판화 다 스캔하기도 전에 애니메이팅이 더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듀서에게 돈 더 쓸 수 있냐 그랬더니 “안 된다. 창의적인 방안을 생각해 내” 그래서 “알겠다. 어떻게 생각해봐야지” 했는데, 이 작품의 기술적인 테마가 빛, 라이트 드로잉이잖아요. 라이트 드로잉 하니까 시아노타입Cyanotype, 빛에다 놓아서 인화하는 사진 기법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시아노타입으로 많이 해서 돈도 아끼고 작품에도 다양한 게 들어갔어요.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시아노타입도 신기해하더라고요. 효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돈 아끼는 재미도 있고 (웃음)

레이저 커팅 완성된 판을 우편으로 받아서 작업했나요 아니면 이미지 파일을 받았나요?

제가 학교에서 한 게 한 2 ~300개 정도 있어서 그걸로 시아노타입 했고 독일에 있는 몇 천 개는 스캔을 해달라고 했어요. 뒤에 놓는 종이도 고르고 해상도 맞춰서 이 구간은 300 dpi로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이 장면은 무조건 800 dpi 돼야 한다.


주로 사용한 종이는 어떤 거였어요?

판화지도 많이 썼고, 수채화 용지도 쓰고 그냥 스케치북도 썼어요. 크로키북 같은 거. 종이 재질 따라 느낌이 되게 다르게 나와요. 독일에서 스캔을 해주는 제작사 쪽 편집자가 저한테 종이를 한 열 가지는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럼 제가 색깔 보정 넣어 보고 이 종이로 해달라 했죠.


완성본은 학교 선생님이 먼저 봤어요 아니면 프로듀서가 먼저 봤어요?

프로듀서한테 보여줬어요. 프로듀서가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전혀 안 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느낀 것만 얘기해서 피아 교수님(Pia Borg)에게 보여드렸어요. 실험 애니메이션, 실험 영상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제가 저희 과에서 제일 좋아하는 분이에요. 편집할 때 도움 많이 받았어요.


이미지 순서도 바뀌고 편집하는 방식도 완전 다 달라졌어요. 제가 <꽃>까지는 처음에 어느 정도 구조를 정하고 그걸 벗어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메이트> 작업하면서 랜덤한 정신이 돼서 편집하기 전까지는 구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됐어요. 편집할 때 완전히 달라질 때가 많아요. <아이즈앤혼즈>가 1차 편집 때 9~10분 됐거든요. 교수님, 프로듀서 다 "네가 진짜 생각하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면 있을 이유가 없다. 짧고 강렬한 게 좋을 거다" 해서 그걸 목표로 잡았어요.


Mate and Exhibition


작업방식이 바뀐 건 경험 상의 깨달음 때문인가요?

<꽃>까지는 한국에서 학교 다닌 영향이 있었던 거 같아요. 디자인과는 틀이나 형식을 위주로 생각하거든요. 그때는 이야기가 없고 추상적인 애니메이션을 이해 못했어요. (웃음) 애니메이션 하면 디즈니 이런 것만 보잖아요. 그래서 처음 칼아츠 와서 적응이 안 됐어요.


<꽃>도 작업 방식이 실험적이긴 한데, 큰 틀이나 내레이션을 넣은 건 한국에서의 영향이 남았던 것 같아요. 그걸 끝낼 때 '이 작품은 이미지로 충분히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내레이션을 굳이 넣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살짝 오더라고요. 친구들도 의견이 반반이었어요. "내레이션이 있어서 이해하기 쉽다,", "내레이션은 쓸 데 없다. 이미지에 집중하는 게 좋지." 처음에 정한 대로 끝냈는데, 그 이후부터는 이미지로만 감정이나 주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이미지가 다양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판화 작업을 많이 하니까 구조 같은 걸 생각 안 하게 되더라고요. 잉크 찍고 두 번 세 번 프린트 하면 점점 연해져요. 이것 저것 시험해보고 싶은데 그런 걸 먼저 짤 수는 없더라고요. 항상 우연인 것 같아요. <메이트> 작업하면서 '잉크 묻힌 채로 스캔하면 어떻게 나오지? 이런 방식으로 해보면 어떻게 나오지?' 그러면서 구조는 신경 안 쓰게 됐어요.

<메이트> 화면 구성이나 비율을 보면 극장 상영보다는 전시를 의도를 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영화제 가다 보니까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판화만 생각하면은 전시가 맞고, 혼합할 거면 전시용 영상도 하고 싶어서 염두에 두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당에서 종교화 보면 3단으로 나눠져 있잖아요. 거기서도 영감 받았어요. 주제 자체가 짝짓기 의식 같은 거라.

Mate 오프닝 장면 3단 구성 판화
Mate (2019) 오프닝 장면 3단 구성 판화

<메이트>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판화를 진짜 하고 싶었어요. <꽃>을 3D로 하니까 마우스 클릭만 하잖아요. 실제로 만지는 걸 너무 하고 싶었어요. 1학년 끝나고 한국에 갔을 때 미로 샘한테 "판화 또 하고 싶은데, 에칭처럼 선으로 하는 거 말고 명암을 낼 수 있는 애쿼틴트 같은 거 하고 싶다. 그런데 칼아츠에는 부식이가 없다. 다 실크스크린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 메조틴트를 얘기하더라고요. 메조틴트는 부식액을 안 써도 돼요.


판화 기법은 정했고 뭐에 대해서 얘기를 할까? 이 작품은 판화 기법 시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이미지는 루프 형식으로 하자. 그 전 작업이 성 이미지와 성 이분법에 대한 거였으니 그 연장으로 클리토리스랑 고추가 서로 밀고 당기는 이미지로 단순하게 시작한 거 같아요.


엉켜있는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 이미지는 심해 생물 같아요.

제가 예전에 스쿠버다이빙했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나온 거 같아요. 추상적이고 꾸물꾸물 거리는 고추와 클리토리스가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을 그리자 했는데, 그리다 보니까 심해 느낌이 났어요.


판화인 줄을 모르면 그냥 연필 소묘로 알았을 거예요.

선으로 하는 거는 뻔하게 느껴져서 면적인 걸 너무 하고 싶었어요. 메조틴트는 동판이 있고 수 천 개의 바늘이 모아진 망치 같은 게(메조틴트 로커 mezzotint rocker) 있거든요. 동판화에 누르면 니들 자국이 남아요. 그걸 여러 방향으로 한 열 번 반복해요. 그럼 거기가 완전히 거친 사포 같은 느낌이 돼요. 거기에 삼각형 나이프 같이 생긴 스크래퍼로 그리면 긁은 부분이 부드럽게 쓸려나가거든요. 슥슥 하면서 연필 느낌이 나요. 슥슥 소리가 들려요. 버터 바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그 부분은 나중에 잉크를 묻히고 닦아 내면 하얘져요. 사포 같이 거친 부분은 잉크가 까맣게 남고요. 동판 표면을 부분적으로 거칠게 하기 위해 룰렛도 많이 썼어요.

한 판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 거예요?

루프에 따라 다르게 했어요. 서로 똥꼬 냄새 맡는 것처럼 빙글빙글 도는 장면은 A3 동판에 하고 서로 이어져서 밀고 당기면서 회전하는 장면은 A4 사이즈예요. 서로 밀고 당기는 움직임이 48 프레임이라면 48 프레임이 들어갈 수 있게 사이즈를 조절해서 사각형 모음 같이 전사시킨 다음에 하나씩 긁어요. 한 판에 루프 하나가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애니메이션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그걸 다 판화로 만든 거잖아요. 판화가 그렇게 좋았나요?

판화의 매력이 한 번도 같은 게 안 나와요. 똑같은 판이어도 잉크를 넣고 닦아내고 찍는 과정에서 변주가 많아요. 잉크를 덜 닦거나 프레스 압력을 덜 넣거나 이러면 이미지가 다르게 나오는 거예요. 그게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원래 수작업 좋아하던 사람인데, 3D 하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꽃> 작업이 다 3D잖아요. 렌더링 하다가 컴퓨터 꺼지면 다시 시작하고 하는 걸 몇 번 겪다 보니까 컴퓨터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어요.


컴퓨터가 과부화 될 만큼의 작업이었나요?

재질이나 이런 것 때문에 한 프레임 당 렌더링이 네 시간 걸릴 때가 있었어요. 그러면 컴퓨터 서너 대를 밤새워서 가동해요. 다음날 '몇 개까지 했니?' 수집하러 다녀요. 그런데 컴퓨터실에서 수업하면 꺼야 돼요. 강제로 종료하는 일 안 당하고 싶었어요. 서울대학교 졸업 작품이 다 색연필로 그린 거거든요. 그때는 더 이상 수작업하기 싫다고 3D 했는데, 3D로 해보니까 수작업 다시 해야겠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거 같아요.


여기에는 꽹과리도 나오고 장구도 나오는데

음악 감독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는데, 마침 한국 악기에 심취해 있을 때 제가 음악을 맡아달라고 한 거예요. 밀고 당기는 움직임을 위주로 반복하는 느낌이랑 장단이 잘 맞았어요.


첫 상영은 전시로 했나요?

학교 지하실에 안 쓰는 녹음실 같은 게 있었어요. 거기가 소음 흡수하는 우둘투둘한 벽으로 되어 있는데, 제 작품 텍스처랑 너무 맞는 거예요. 프로젝터를 바닥에 설치하고 세 면으로 했어요.


작품 원본 판도 진짜 예쁘거든요. 열심히 잉크 닦고 포장하고 이거는 고추랑 클리토리스랑 싸우는 장면, 이거는 화해하는 장면 이렇게 다 분류해서 쌓아 올리니까 판이 얇아져서 딱 통 하나를 채웠어요. 미국에서 제일 싼 창고에 보관 중이에요.

<Mate> 전시 @CalArts


볼륨이 크진 않지만 동판이니까 무겁긴 하겠어요.

엄청 무거워요. 겨우 옮겼어요. 이거 들고 한국 못가 (웃음).


<메이트> 마지막 장면 보면 음각에 빛을 비추잖아요. <아이즈앤혼즈>에도 그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연결점이 확실히 보이죠. 잉크를 입히고 닦았을 때가 판이 제일 예쁜 거예요. 그걸 어떻게 포착하지 하다가 로스트럼Rostrum 카메라 설치되어 있는 데 제 공부방 스탠드 들고 가서 빛 움직이면서 하나씩 찍었어요.


그게 제일 첫 번째 찍은 장면이에요. 그때는 움직임을 완성 안 했고 주인공들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해서 쟁여놓았어요. 편집할 때 마지막 장면 뭘 해야 하지 하면서 일 년 전에 만든 걸 꺼냈는데 딱 맞았어요.


Flora and Gender Images


<꽃>이 칼아츠에서 첫 번째 작업이었죠.

한국에서 2016년도에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있었잖아요. 페미니즘 얘기가 제일 많이 나왔던 때였어요. 저도 그때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가부장적인 걸 더 이상 견디고 싶지도 않고 새로운 문화에서 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겪은 남녀차별, 성평등에서 시작한 거 같아요.


미국 가니까 성차별은 좀 나아요. 근데 인종차별이나 밖의 사람으로서의 소외감이 너무 심한 거예요. 그리고 학과가 백인 중심으로 돌아가요. 제가 아니다 싶으면 대드는 성격이라 미국 백인들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분노나 슬픔이 바탕이 된 것 같아요.

들어가자마자 분위기를 캐치를 하고 대항할 정도였으면 언어는 어려움이 없었나 봐요.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 3학년 초반까지 미국에서 한 3년 반 살았어요. 그래서 영어는 어느 정도 했어요. 한국 학교에서 어른들이 저랑 같이 다니는 친구한테 “야 쟤 외국에서 살다온 애 맞지?” 이렇게 뒤에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살짝 서양에 물든 애 취급받았어요. 그렇게 소외당한 경험이 있는데, 다시 가니까 유색인종이다 보니 또 소외되는 쪽이 되는 거예요. 혼자 화가 나서 작업했어요.


3D는 그 전에도 해봤나요?

거기서 처음 배웠어요. 그것도 사실 포트폴리오 만들려고 했거든요. 3D 모델링 아티스트로 취직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만들다가 배웠어요.


미국에서 취직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왜 실험애니메이션과를 간 거죠?

칼아츠 광고에는 돈도 잘 버는 성공적인 작가를 만든다고 쓰여있었어요. 캐릭터애니메이션과는 학부 밖에 없는데, 학사를 두 개 따는 거는 저한테 도움이 안 되잖아요. 석사 하면서 캐릭터 애니메이션 수업 청강하거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꽃>은 텍스처가 처음에는 얇은 종이를 접은 것 같기도 하고 휴지를 뭉친 것 같기도 한데, 그러다가 비눗방울 같은, 비닐 랩 같은 느낌으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금박을 입힌 금속 같은 꽃이 됩니다.

처음에 하얀색 텍스처로 작업하다가 점점 발전하는 걸로 했어요. 처음부터 색깔을 넣으면 마지막에 이전까지 것과 대항할 수 있는 임팩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때 Z브러시라는 3D 프로그램으로 시작을 했거든요. 디폴트 재질이었어요. 두 번째 구간은 섹스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섹스가 섬세한 행위라서 깨질 것 같은 부서질 것 같은 유리 느낌, 색깔도 현란한 에로틱한 느낌이 날 수 있는 재질을 넣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여성 하면 장신구, 액세서리를 생각하는데, 남자 성기도 꽃 같으니까 옛날 금속 장신구에서 영감을 받아서 아주 데코레이션적인 걸 만들까 해서 넣은 거 같아요.


꽃잎 설정이어서 여러 겹의 레이어로 모델링한 건가요?

모델링도 Z브러시 안에 디폴트 모델이 있어요. 눈, 코, 입, 귀 이런 게 있어요. 귀를 비틀어서 꽃을 만들었어요. 여성 성기 닮은 건 그 기본값 모델링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매만져서 꽃잎 같이 만들었고 남자 성기가 나올 때는 만들어 놓은 여성 성기 모델링에서 만들었어요. 실제로 태아 성장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여자였다가 나중에 남자 애들 성기 자라나잖아요. 그거랑 비슷해서 재밌더라고요. (웃음)


여기 사용된 비브라폰이란 악기는 어떤 소리를 내나요?

처음에 나오는 쀼욱쀼욱 소리가 그 악기예요. 음악 감독이 처음에 방향을 제대로 못 잡았는데, 이걸 넣어오니까 맞더라고요.


<메이트> 음악 감독과 같은 사람이죠. 칼아츠 학생이었나요?

작곡과 학생인데, 친구 추천으로 알게 돼서 재능 맞교환했어요. 그 친구 졸업 연주회 포스터랑 책자 제가 디자인하고 인쇄까지 도와주고 대신 그 친구는 제 꺼 음악 해주고요.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정한 건 학부에서 들은 애니메이션 수업 때문인가요?

관람객으로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애니메이션 수업이 재밌어서 열심히 했어요. 근데 그 이후에도 일러스트레이션 쪽을 더 좋아했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을 열심히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사람들이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을 좋아하는지도 알겠고 한국은 일러스트레이션 판도 작은 것 같고 비슷한 스타일이 많은 것 같고. 한 장으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적은 것 같은데, 영상은 이야기를 넣을 수도 있고 이것저것 선택하고 시험할 수도 있고 더 재밌는 거 같아서 4학년 졸업작품 하면서 애니메이션 하고 싶다고 결정한 거 같아요.


The Genesis and Tattoo


창세기라는 주제를 동양적, 여성적인 시선으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요?

<꽃>이랑 비슷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남자 옷 입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사회가 원하는 여성으로서의 면모가 없었어요. 사회가 원하는 여자가 될 수도, 될 생각도 없었어요. 그게 바탕이었고 저의 부모님이 천주교라 어렸을 때부터 일요일에 성당학교를 다녔는데, 성경에 말도 안 된다 싶은 것만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맨날 아저씨, 수염 기른 할아버지가 있으니까 '진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하나님인가? 그런 하나님 원하지 않는데...


내레이션이 영어로 되어 있는데, 한글 버전이 있나요?

한국어로 하고 싶었는데, 성경이 서양 것이잖아요? 느낌이 애매했어요. 한국어로 하는 순간 내레이션 핀트가 안 맞았어요. 비주얼 스타일도 올드 타투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그것도 서양 기법이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해서 그냥 영어로 했어요.


마지막 장면의 타투는 실제 타투인가요?

아니에요. 제가 모델하는 친구들 한테 부탁해서 사진 찍은 다음에 그 위에다가 불투명 종이 올려서 하나씩 그리고 합성한 거예요.


타투를 중요한 모티브로 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나왔나요?

미대 졸업하고 먹고 사는 거 어렵잖아요. 보니까 다들 타투 아티스트 하더라고요. (웃음)

제가 그전까지는 사실적인 그림 못 그렸는데, 디자인과 가서 잘 그리게 됐어요. 제 동기들 몇 명이 이 정도 그림 실력이면 타투 아티스트 해도 되겠다 그래서 타투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서적 같은 것도 찾아보면서 '재밌겠다. 돈벌이도 되겠다' 하다가 '이걸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한 것 같아요.


Independent women


2019년에 칼아츠에서 한국 독립애니메이션 작가 세미나를 하셨죠. 9명의 작가는 어떻게 선정했나요?

이민 가족에서 온 사람들도 생각하고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서 공부하면 정체성이 어느 정도 섞이는 것 같아요. <국민체조>하신 이규리 감독님 경우에는 그게 느껴졌어요. 외국인의 시선으로 우리나라 문화를 바라본 작품 같고 정유미 감독님은 외국에서 보는 한국 작품에서 딱 맞는 것 같았고 정다희 감독님은 프랑스에서 활동하셨고 한국에서도 많이 좋아하시고 김승희 감독님 작품은 한국 여성으로서의 고충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의도적으로 여자 감독님만 하신 건가요?

네. 한국 작가들도 그렇고 유럽 작가들도 여자분들이 영화제에서 더 두각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독립 애니메이션 하면 여자분들이 먼저 생각나요. 디즈니나 이런 캐릭터 애니메이션 생각하면서 백인 남자 이미지가 생각나고. 그래서 여자분들로 모으고 싶었어요. 작품도 좋고. (웃음)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보면 동물과 바다 속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했는데, 신화적인 세상, 심해와 덜 진화된 생물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도 좋아했어요. 거기다 취미로 스쿠버다이빙 엄청 좋아했었거든요. 서울대학교 수중탐사 동아리였어요. 여름방학 때 울릉도나 거문도 이런데 가고 했어요.


제가 성격이 엄청 현실적이에요, 실생활 할 때는 효율적이지 않은 생각을 안 하는 느낌이다 보니까 작업할 때는 반대 방향으로 쏠린 것 같아요. 효율성이나 스케줄 생각 안 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리다보니까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인간관계에 이미 스트레스받잖아요. 굳이 인간에 대해서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어요. 작품은 항상 세상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한 거 같아요.


미국으로 돌아가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요?

작품을 영화제에 내면 반응을 볼 수 있잖아요. 어디에 들어가고 어디에 안 들어가고. 제 작업은 유럽 쪽, 특히 독일에서 호응이 있고 한국엔 제출을 해도 반응이 없더라고요. (웃음) 확실히 한국에서 저같이 캐릭터 없고, 내러티브 없고, 재료 기법 시험해서 추상적으로 하는 사람을 많이 못 본 거 같아요.


새로운 실험 영상 애니메이션으로 덴마크 레지던시에 붙었어요. 한국인, 특히 한국인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싶어요. 이번에 크로아티아에서도 한 대만 친구에게 너는 웨스터나이즈 된 한국인 같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도대체 한국인이라는 기준이 뭐지? 내가 덜 한국인인가?' 한국 여성으로서 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었어요.

 

인터뷰 2021년 7월 1일 @사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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