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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 SEO Pyoungwon

서평원



서평원 감독은 2017년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2학년 때 <로드킬>을 발표하고 2023년 두 번째 단편애니메이션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작업이 뜸했나 싶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고 202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입학 전 이미 실사 단편 <복귀>를 찍었다. 유튜브 개인 채널에서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의 개인 작업과 외주 작업도 확인할 수 있다. 팀작업과 개인작업을 번갈아 하고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숨 쉬듯 오가는 그는 첫 번째 휴학 중에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을 만들었고 또다시 학교를 쉬어가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2024년 봄, 동료들과 쓰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매번 다른 카페에서 작업하는 재미에 빠졌다는 서평원 감독을 만났다.    


2024년 3월 인터뷰

푸른 봄의 꿈


도래지 (2023~)


남도영화제 지원받은 작품은 제목이 있어요.

<도래지> 예요. 영문도 Doraeji예요. <미나리 Minari>처럼. Doraeji가 영어로는 없는 말이니까 상징적이지 않을까 했어요.


배경은 순천인 거예요.

철새랑 소녀 얘기인데 파주랑 순천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이 됩니다.


잠 못 드는 고등학생


<헬로, 데어 Hello, There>를 본인 작품으로 치지 않아요.

첫 작품인 게 의미가 있는 거지 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팀 작업에서 오는 의미가 있고 거기서 애니메이션 작업이라는 걸 조금 맛본 것 같아요.


고등학교 수업 2학년 때 수업에서 만든 건가요?

애니고가 ‘모의 애니’라고 완전 연습을 하나 만들어요. 그다음에  본 작업이라고 만든 게 <헬로, 데어>에요. 1학년 여름 방학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 만들고 끝나자마자 졸업 작품을 만들어요. 


팀 작업을 해보니까 ‘나는 팀이 아니다’였나요?

혼자 다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팀 작업은) 협의를 하고 협상을 해야 되잖아요. 팀에 맞는 이야기가 있고 개인 작품에 맞는 제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았어요. <로드킬> 만들 때는 이 이야기는 내가 혼자 안 만들면 애들이 피곤하겠다 싶어서 저 혼자 했습니다.


로드킬 (2017)


고등학교 2학년 때 해외 입양 된 소년과 부모의 갈등을 소재로 삼았어요.

제 개인적인 경험 바탕으로 한 거예요. 다 똑같이 초중고 다니며 살아왔는데, 제가 미국에서 살았던 이민 경험이 크더라고요. 입양 같은 부분들은 각색했어요.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를 좀 더 날카롭게 보여주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일반적인 설정이면 그냥 순리대로 흘러가는 건데, 부모가 특정한 아이를 딱 골라서 입양을 하는 부분에서 (아이의) 자기 의지는 없는 걸 부각하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잘할 수 있는 이야기고 미국의 밤길 이미지가 정말 매력적이다 싶어서 구상했어요. 


[호원] 미국에서는 어느 쪽에서 이민 생활을 했어요.

동부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었어요.


이민을 갔던 시기가 몇 살 때쯤이에요?

유치원 졸업하자마자 가서 초등학교 졸업 직전에 왔어요. 저희 엄마 아빠랑 형이랑 넷이서 갔다가 한 4년만 살고 왔어요.


갔더니 안 맞았던 건가요?

어른들의 사정에 맞게 움직였어요. 미국에 가서 공부했던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돌아와서 바로 초등학교로 편입했나요?

원래 초6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초5로 들어갔어요. 겨울방학 직전에 한국 학교를 처음 다녔어요. 문화가 다르다 보니까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렸어요. 영어에 슬슬 적응할 때쯤 와서 한국말은 잘 못하니까 학교에서 좀 힘들었죠.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거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서양화도 하시고 아버지도 영화, 연극배우를 하셨어요. 미국에 단독주택이 있었는데 지하실을 어머니 작업실로 했었어요. 거기서 어머니가 구체관절 인형도 만드시고 수업도 하시고 여러 가지 하셨어요. 거기서 저도 그림도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콘텐츠는 없었나요?

제가 도라에몽을 되게 좋아했어요. 미국에 살 때 한인 마트 옆에 한국 만화방에서 책 하나에 원 달러 해서 일주일인가 빌릴 수 있었어요.  『도라에몽』랑 『유희왕』, 같은 거를 엄마가 맨날 빌려주셨어요. 일본 만화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시작한 것 같아요. ‘나 만화가를 하고 싶어’. 중학교 올라오면서 내가 뭘 해야 되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애니고 준비하면서 확고해진 거 같아요.


처음에는 칸만화로 시작을 했지만 나중에는 움직이는 게 좀 더 좋았어요. 옛날에 이지툰이라고 gif처럼 움짤 만드는 게 있었어요. 네이버 블로그를 한 3년 동안 하면서 그걸 배운 거예요. 내 캐릭터가 움직이니까 칸만화보다 재밌다 싶어서 애니메이션과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로드킬>은 학교 수업과 연계해서 진행되었나요?

[만화 애니 기초]라고 있어요. 줄여서 “만애기”라고 불러요. 일주일에 6시간 정도가 있는데, 그게 전공 시간이에요. 1학년 때는 전공 시간에만 하다가 <로드킬> 할 때는 수업 시간에도 뒤에서 노트북 켜고 했어요. 선생님들이 이해는 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너무할 정도로 (수업 시간에) 작업을 많이 하긴 했어요. 


애니고는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아요? 야작도 많이 하고.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작업했어요. 어차피 수업시간에 작업하는데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신티크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만애기" 수업 외에 아트워크나 시나리오를 위한 수업은 없었나요?

시나리오 없고요. 애니메이션 관련은 애니메이션 시간에만 있어요. 다른 활동이라고 해야 되나 다른 거 만들어보고 다양한 매체를 테스트해 보는 시간은 금요일에 3시간 정도 있었어요. 근데 아트워크를 배우 없었던 것 같아요. 기숙사 선배 형들이 많이 알려줬어요. 일본 아니메를 엄청 집요하게 좋아하는 형들이었는데, 실력이 대학생 이상이었어요. 그 형들이 없었으면 제가 여기 없지 않을까 싶긴 해요.


일본 만화 좋아하고 일본 아니메 좋아하는 형들한테 배운 거 치고는 일본 색이 묻어나는 것 같지 않아요.

지금도 그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테크닉이나 제가 연출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부분이 없었으면 되게 평평했겠다. 일본 작화를 은근 참고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때 그 형들이 요시나리 요우 같은 애니메이터를 연구했어요. 1학년 때 애니메이션 작화에 대한 부분을 많이 학습을 했던 것 같아요.


취향 맞는 친구들끼리 연구하는 동아리처럼

오히려 저는 취향이 안 맞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시니까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기획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헬로, 데어>는 "만애기"에서 기획 시간을 따로 줬었어요. 개인 작업은 제가 <헬로, 데어> 마무리 작업할 때부터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작업 시간을 1년밖에 안 주는데 남들 시작할 때 똑같이 구상을 시작하면 혼자서 완성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소스를 계속 떠올려보다가 <로드킬>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스토리보드, 애니메틱스를 빨리 만드는 걸 목표했어요.


제가 고블랭 작업을 좋아하는데 비메오나 유튜브에 제작 과정이 많이 나와 있어요. 콘셉트 아트부터 스토리보드, 애니메틱스, 러프 애니메이션, 성우 녹음, 고블랑에서 했던 정규 과정처럼 저도 순서대로 차근차근하려고 노력했어요. 캐릭터 디자인을 완성해 놓고 애니메틱스 하고 성우 선 녹음하고 립싱크를 맞추고. 학생 때 저는 집요하게 따라 하려고 했어요.


[호원] 팀 작업할 때 그 과정이 없었어요?

선녹음이나 애니메틱스를 완벽하게 해 놓고 진행하는 작업이 없었어요. 저는 애니메틱스의 중요성을 그 뒤에 깨달은 것 같아요. <로드킬>할 때 애니메틱스 작업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 할 때 애니메틱스를 꽉 잡고 진행했어요.


애니메틱스 만들 때까지는 얼마나 걸렸어요?

작업 기간이 14개월인가 그랬는데 한 6~7개월을 했던 것 같아요. 애니매틱스가 완성이 안 되면 시작을 안 하겠다는 주의였어요. 립싱크를 꼭 맞추고 진행하고 싶었는데, 성우 구하는 것도 처음이어서  9월까지 끌었던 것 같아요. 마감이 (다음 해) 2월인데, 9월까지 애니메틱스를 하고 진행해서 엄청 타이트하게 본 작업을 했어요.


[호원] 성우로 감독님 목소리도 들어가죠?

살짝 들어갔어요. 아이폰 녹음을 해서 모노일 거예요. 아빠 배우도 선배 형이 해줬는데 그것도 모노예요. 이어폰으로 들으면 한쪽에만 나와요. 엄마 배우가 스테레오로 나오고. 그런 재미가 있습니다.



[호원] 플롯이 되게 입체적으로 짜여 있어서 <로드킬>을 볼 때 맨 마지막에 애니고 크레디트 보고 충격 먹었어요. 고등학생이 영어 대사를 친다는 게 무슨 패기일까라는 것도 있었고 기타도 치신 거죠?

제가 장범준을 좋아해서 기타를 초6 때부터 했었거든요. 장범준이 자기 음악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잖아요. 그래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때는 가수를 꿈꿨었어요. 


[호원] 애니는 가수가 되기 위한 발판인 거죠. (웃음)

<로드킬>에다가 제가 그때 하고 싶었던 거를 꾹꾹 눌러 넣은 것 같아요. 


[호원] 고등학생 작업은 자기도취에 빠져서 얘기가 과잉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로드킬>은 냉정하게 작품을 바라봐서 놀랐어요.


그 비결은 뭘까요?

원래 제목이 “트라우마”였어요. 처음에는 사슴을 치지를 않아요. 안용우 선생님이라고  담임 선생님이 졸업 작품을 담당해 주셨거든요. 선생님이 아예 사슴을 치는 게 더 임팩트 있을 것 같고 로드킬이라는 이미지가 센 것 같다고 마무리를 딱 해 주신 것 같아요. 사리 분별이 안 될 때 선생님이 항상 잡아주셨어요. 저한테는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첫 장면 밤길이 수묵화 같더라고요. 특별히 미국의 밤 이미지를 멋지게 느꼈던 순간이 있을까요?

멋졌다기보다는 이 이미지는 좀 맛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밤길 이미지가 새벽에 공항 가는 느낌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미국에 살 때 크로거(Kroger)라고 마트가 있었어요. 거기서 집 가는 길에 한 10분쯤 걸리는 숲길이 있어요. 숲이 <로드킬>에 나온 것처럼 생겼어요. 엄마랑 형이랑 셋이 장보고 집 가는 길에 순록 두 마리가 지나가는 거예요. 그걸 쳤으면 제 가족은 아마 다 죽었을 거예요. 그때 이미지가 정말 셌던 것 같아요. 그때 엄마가 밤길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생긴 거죠. 엄마랑 그때 있었던 이미지를 갖고 와서 만들어 보면 재밌겠다.


부부 싸움할 때의 그림체가 확 변하고 마지막에 사슴을 바라볼 때도 톤이 달라져요. <혼자 익숙해지는 법>도 2D와 퍼펫을 같이 썼는데, 이미지나 기법을 혼합하는 걸 즐기나요.

수작업이 들어가면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매체가 다르다고 느낄 때 이 컷이 좀 특별해지잖아요. 이 컷은 왜 오일파스텔을 썼을까 걸고넘어지잖아요. 사람들이 컷의 중요성을 되새겨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애니메이션은 친구들과 함께 독학한 거예요?

완전 초반에 공 튀기기랑 걷기, 특징 걷기, 표정 연습 정도는 하는데, 그 뒤에 심화 과정은 기숙사가 학교인 것 같아요. 기숙사 안에서 다들 노트북이랑 작은 책상을 통째로 들고 움직여요. “나 오늘 여기서 작업하고 간다” 이러면 새벽 3~4시까지 불이 켜져 있는 몇몇 방에서 다 같이 작업하면서 서로 피드백 주고 그런 식으로 불탔던 것 같아요.


배우의 연기를 보고 애니메이팅을 한 것 같았어요. 애니메이션 작업은 어떻게 했어요?

친구들한테 부탁하기도 하고 제가 촬영한 다음에 타이밍을 참고를 했어요. 제가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때는 인체도 많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게 제 거를 보고 따라 하면 인체는 틀리지 않겠다 싶어서 비디오 촬영에 의존을 많이 했어요. 


졸업 작품 상영회를 하나요?

4월에 해요. 고2에서 고3 넘어갈 때 시사회를 위해서 달려가는데, 시사회 전날까지 작업을 해요. 사실은 시사회 때도 완성이 안 될 것 같아서 예고편을 올릴까 싶었어요. 꾸역꾸역 하고 한 달 쉰 다음 영화제 때문에 보완 작업을 했어요. 


그 뒤에는 입시 준비를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놀았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바로 병역 특례로 군복무 대신에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졸업식 날 병무청에서 TO가 안 나왔다고 전화를 받은 거예요. 어떡하지 하다가 빨리 군대를 갔다 와서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8년 5월에 입대했어요.


복귀 (2020) 


단편 영화 작업은 있어요?

제가 2020년 1월에 제대하고 3월에 입학했잖아요. 2월에 12분짜리 하나 찍었어요. 신병이 첫 휴가를 나왔는데 포격 도발 소식을 들어서 복귀를 해야 되는 거예요. 애니고 때  영상과였던 친구가 촬영감독을 하고 스태프를 다 구해준 거예요. 덕분에 한예종 선배들이랑 같이 작업을 했어요.  


입학하기 전에 포트폴리오 삼아서 만든 건가요?

배우기 전에 내가 연출을 얼마큼 할까. 


촬영은 몇 회 차나 나갔어요?

무려 4회 차를 했습니다.


[호원] 12분짜리를 4회 차!

저희 부모님도 많이 도와주셨고 미술 감독 친구랑 조연출 친구가 회의하러 면회를 와서 같이 스토리보드 짜고 병장 말년 휴가 때도 배우들 미팅하고 제대하자마자 1~2주 뒤에 촬영이라서 그냥 바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이 작품으로 영화제도 갔나요?

이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스태프에 대한 미안함도 많이 배웠고 감독으로서 결과물을 못 보여줬을 때의 죄책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걸 처음으로 느껴본 거예요. 그래서 좀 힘들었어요. 근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실사 영화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거예요. 날씨도 제가 마음대로 못하고 제 뜻대로 되는 애니랑은 다르다는 걸 그때 깨닫고 더 성장을 했던 것 같아요.


학교 들어가서 배우고 난 다음에는 어떤 작품 하셨어요?

두 개를 했는데, 하나는 <사생>이라고 아이돌 사생팬에 대한 스릴러예요. 작년 4월에 <자판기>라고 멜로를 해보고 싶어서 벚꽃 피는 시즌에 했었어요. 아직 둘 다 공개를 안 했어요. <자판기>는 올해 유튜브에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 쪽은 온라인으로 바로 공개할 계획인가요.

<자판기>는 웹드라마 형식이라서 유튜브에 올리려고 했던 거예요. <사생>은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좀 많더라고요. 아무리 만져도 뭔가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애니메이션은 안 그랬는데 영화하다가 살짝 미뤄두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재촬영을 저는 거의 안 한다 주의거든요. 애니메이션은 고치면 되잖아요. 그냥 컷 버리고 새로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니까 계속 끙끙 앓는 것 같아요.


배우 부르고 스태프 부르고 하는 게

벌써 토할 것 같은 거예요.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 (2023)


[호원]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은 카운팅이 안 되나요?

휴학하고 sba 제작 지원을 받아서 만든 거라 학교 작품이 아니잖아요. 선생님한테 자문받은 것도 없으니까 독립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휴학을 언제 하신 거예요?

2021년 2학기부터 쉬었어요. 제가 <혼익법>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코로나 때 학교 다니는 게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작품 하면서 이 시기를 빨리 넘겨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애니메이션 집에서 하잖아요.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은 코로나 터지고 기획을 한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맨날 얘기할 때마다 <로드킬> 얘기가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좀 부끄러워지는 거예요. 제 딴에는 벌써 4~5년 전 작품인데 그만 우려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획했어요.


이야기도 코로나 기간에 떠올린 건가요?

군대에서부터 이 제목을 생각했어요. 이야기랑 소스는 상병 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1~2분짜리였어요. 벽에 배드민턴 치고 있다가 실수로 튀어나간 셔틀콕을 누가 집어주고 같이 치다가 또 옆에서 혼자 치고 있는 사람을 보고 같이 치자고 하면서 끝나는 단편이었어요. 너무 짧다 보니까 살을 붙이고 붙이고 붙이는 과정에서 스토리 짜는 게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어릴 때 움짤 만들듯이 가볍게 시작했고

채색도 거의 없고 단순하게 하고 싶었는데, 제작지원을 받으려면 형식이 좀 있어야 되고 길이도 있어야 되고 완성도도 있어야 되니까 뜻하지 않게 자꾸만 스케일을 키운 것 같아요.


그럼 지원이 결정되고 휴학을 한 건가요?

되든 안 되든 쉬면서 제작지원 준비해야겠다. 근데 저 안 되자마자 할 것도 미리 생각을 해놨어요. 따로 개인 작업해서 포트폴리오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놀지를 못하는 성격인가 봐요.

병이 있어요. 작업병.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에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도 있고 직장 동료하고 배드민턴 동아리의 이야기도 있고, 여러 결이잖아요. 어떻게 이런 형태의 이야기가 되었나요?

혼자에 익숙해지려면은 혼자가 아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만들었던 거예요. 이야기를 붙이려다 보니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내용이 재미가 없어요. 제가 느낀 점을 말하는 건데 사람들한테 강요할 수가 없잖아요. 비유를 해서 내용은 재미없더라도 눈은 즐겁게 해 주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선사시대는 오락성이 짙은 걸 의도하고 만들었어요. 비유가 처음에는 여러 가지였어요. 알피지 게임에서 쪼랩을 데리고 와서 도와주는 형식으로 비유를 했었는데 통일이 필요한 것 같아서 아예 선사시대로 바꿔버렸어요. 


선사시대로 하니 본능적인 것이라는 게 즉각적으로 와닿아요.

게임 아이디어가 계단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생각을 못했으면 선사시대까지 안 갔을 것 같아요. 이렇게 비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게임보다 더 세련된 방법이 없을까라고 해서 선사시대로 바꿨어요. 게임 콘셉트 아트는 참 아직도 고마워요. 거기서 확 바뀌었어요. 이렇게 비유로 하면 하면 재밌겠다.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저는 배드민턴 동아리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고등학교 때 애니고에서 배드민턴을 많이 쳤어요. 그때 기억이랑 이거를 엮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여러 가지를 믹서에 다 갈아 넣은 것 같아요. 작은 거에 살을 많이 붙인 느낌이다 보니까 정리하는 게 어려웠어요.


스톱모션 내면세계는 애초에 스톱 모션을 하고 싶어서 넣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내용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거를 위해서 이야기를 다 맞춰놓은 것 같아요.



[호원] 깔끔하게 12분 안에서 정리했어요. 이거 안 붙는다 싶을 때 이 설정이 들어가서 잘 붙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원룸이 상자처럼 쏙 빠져나오고 스톱모션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유니버스들이 다 결합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호랑이 스톱모션 만드는 데 두 달을 썼던 것 같아요. 호랑이가 두 컷인데 모형을 옆모습용이랑 앞으로 나오는 장면용 두 개를 만들었어요. 움직이게 하는 거랑 안 움직이는 것 두 컷에 시간을 많이 썼는데 그 부분을 기억을 많이 해 주셨어요.  


스톱모션 감독은 따로 섭외를 하셨잖아요.

박재민 감독이라고 <성인식>(2022)이라는 작품 만든 친구가 있는데 애니고 후배거든요. 이 친구가 열정이 있고 잘한다고 추천받아서 같이 해보자고 제가 먼저 연락을 했었어요.


스톱모션 기법이 필요한 거지 직접 찍고 싶은 건 아니었나요?

찍는다는 기준이 애니메이팅을 직접 하는 것도 있고 퍼펫만 만드는 것도 있고 배경만 만드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인데 저는 디렉팅이 하고 싶었어요.


스톱모션은 <로드킬>에서 오일파스텔을 넣은 것처럼 환기시켜 주는 역할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2D에서 3D로 가는 거니까 내면세계가 그만큼 더 생생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호원] 그 설정이 중요했어요. 내면세계에 구멍을 뻥뻥 뚫어서 외부와 내부에 다시 한번 경계가 생기고. 단지 내 마음속의 구멍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얘기가 다시 한번 쫙 펼쳐지는 설정이 되니까.


처음에는 실연담인가 했는데, 기분 좋게 배신을 당했어요. 연애에 대한 생각은 일절 없었던 거예요?

최대한 배제하고 싶었어요. 어떤 이별이든 있을 수 있겠다. 결국에 나 혼자 있는 상황이 됐다는 거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어요. 어디에도 끼워 넣고 싶은 공통분모를 하고 싶어서 연애 색깔을 많이 뺐던 것 같아요.


배경이 성수동이잖아요. 현대 서울의 시그니처인 장소를 반영한 거예요?

성수라는 이미지가 주는 젊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홍대입구는 차가운 느낌은 안 드는데, 성수는 공허한 게 살짝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지점에서 시원하면서 여백들이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서 성수역을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또 성수역 많이 왔다 갔다 할 때 구상했던 작품이기도 해요. (주인공이) 사는 데는 이태원 쪽이에요. 제가 남산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잠실타워 많이 그리잖아요. 근데 저는 서울 하면 남산타워 같아요. 


[호원] 그만큼 공간을 잘 포착을 하고 연출을 잘한 거예요. 여기가 어디일까 혹은 저기가 여기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거는 보는 사람들이 거기에 이입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거니까.



[호원] 스톱모션으로 까만 배경에 꽃이 피는 장면은 재민 감독이 다 한 거예요?

제 아이디어인데, 꽃을 어떻게 구해야 될지 고민하다가 꽃무늬 이불을 쓰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걸 막 굴리면 비닐봉지로 움직이는 파도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동대문에 갔는데 마침 꽃무늬가 섬세하게 돼 있는 게 있었어요. 한 2만 원에 사 와서 그걸 썼어요. 


[호원] <사라지는 것들>(2022, 김창수)에서 상여 지나가는 장면이 되게 인상적이었거든요. 그 작품은 죽음을 차분하게 보는데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에서는 할머니의 시점이 아니라 손주의 시점에 보니까 비슷한 이미지인데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제가 장례식장 갈 일이 있었었는데, 가끔은 무서울 때가 있어요. 곡소리가 정말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라고 느껴졌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마음속에서 안으로 먹는 느낌이었거든요. 그게 얼마나 힘들까. 계속 곱씹는 거잖아요. 그거를 파도로 저는 했던 것 같아요. 손자가 위로해 줄 수 있는 범위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어주면 그나마 낫지 않나.


[호원] 장례식 정서가 되게 어려워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을 할 때 얼마큼 슬퍼해야 되는지 얼마큼 공유해야 되는지. 옛날처럼 우리가 장례식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어서 젊은 친구가 겪는 뻘쭘함, 불편함, 낯섦이 이 안에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이게 곧 닥칠 나의 일이라는 감각은 없죠?

가족이 죽는다는 공포를 처음 느낀 것을 담았어요. 평생 같이 있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인생에서 없어지는 거예요. 그 뒤로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더 느낀 것 같아요. 언제까지 있어줄 사람들이 아니니까 후회 없이 잘해야겠다. 그래서 생긴 습관이 동영상을 많이 찍어요. 괜히 사진도 많이 찍고 얘기도 많이 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에 제가 <로드킬> 작업해야 된다고 저녁을 안 먹었거든요. 바쁘다고 다음에 보자고. 근데 그날 밤에 돌아가신 거예요. 그냥 밥 먹을 걸. 내가 밥 먹었으면 안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이 생각도 드는 거예요. 그래서 후회할 짓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호원] 장례식 장면이 들어가서 얘기가 풍성해졌어요. 나보다 더 살아본 사람이 갑자기 혼자가 되었을 때 그 구멍을 어떻게 메우는지 할머니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니까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 때 주변 피드백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저는 적극적으로 받는 편이에요. 어머니한테도 물어보고 여러분한테 물어봐요. 지금 하는 거는 무분별한 피드백은 피하려고 해요. 저랑 맞는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가닥도 잡히는 부분이 있지만 분명히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껏 구하는 것 같아요. 너무 다른 좋은 의견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나이에 맞지 않는 연륜의 냄새는 이런 적극적인 피드백 과정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은 팀 작업이어서 물어볼 사람들이 항상 있었죠. 


[호원] 팀원들은 비슷한 연령대나 젊은 친구들일 거잖아요.

맞아요. 그 친구들이 정말 많이 봐줬어요.


콘셉트 잡는 것까지도 혼자 다 하고 애니메이션만 스태프들이랑 같이 한 거예요?

콘셉트아트는 제가 다 해요. 메인 프로덕션에서만 같이 하고.


작업은 뭘로 했어요?

TVPaint로 하고 애프터이펙트랑 포토샵으로. 이번엔 포토샵을 거의 안 쓰고 배경을 다 프로 크리에이트라고 아이패드 어플로 했는데, 좋은 게 카페에서 작업할 수 있어요.


카페로 나가서 하는 거는 틈틈이 해야 돼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

기분 전환인 것 같아요. 저는 애니메이션 작업의 단점이 고독이라 생각했어요. 너무 집에서 박혀서 하면 노동같이 느껴지는데, 카페에서 하면 놀러 나온 느낌이 들더라고요. 우스갯소리로 말씀드리자면 신선놀음 같잖아요. 애니메이션은 과정이 90%고 시상식이나 영화제는 10%잖아요. 없을 수도 있고. 90%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컸었어요. 애니메이팅 할 때는 큰 화면이 필요해서 집에서 해요. 근데 배경이나 프리 프로덕션 구상할 때는 밖에 나와서 해요. 


[호원] 애니메이터가 그동안 골방에서 자기 혼자 고독하게 싸우면서 작업을 했는데 프로크리에이터를 통해서 카페에 나와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작업을 하는 거는 큰 전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니메이션 작업하는 게 더 이상 고문은 아니구나.

바람 쐬고 좋은 커피 마시고 그 순간 작업하고 있는 제 자신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작업할 때 오늘은 어디 카페 갈까 생각하는 게 재밌어요. 홍대 갈까 안국 갈까 미술관 잠깐 들렀다 갈까. 그래서 다음에는 작업실을 하지 말까 생각했어요. 작업실이 있어도 카페를 가더라고요. 요즘에는 출퇴근식으로 카페 왔다 갔다 해요. 


혼자 작업하는 데 익숙해지셨네요.

요즘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가족이랑 관계가 더 좋아져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도 그전보다 연락을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했나 봐요. 



음악에는 어느 만큼 진심이에요?

저는 음악 되게 중요시하고 있어요.


음원을 내고 싶을 정도로 진심이에요?

제가 직접 작곡하고 플레이하는 데 까지는 욕심이 없어요. 앞으로 할 작업에 테스트 정도는 내가 정할 수 있고 디렉팅 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해외에 나갔을 때 영어로 프리토킹하는 것처럼 음악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타 쳐서 멜로디는 이런 느낌이다 이런 정서다 러프까지는 보내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윤석철 <꿈이었으면> 뮤직비디오 1분 30초 정도 루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셨죠.

루프 작업이 제가 지향하는 뮤직비디오는 아니고 저는 연출이 들어가는 뮤비를 하고 싶어요. 비트 쪼갤 때 숨어있는 음에서 컷을 연출하는 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메인 멜로디 말고 숨어있는 베이스나 안 들릴 법한 비트를 컷 연출을 하면 그 음악이 들리더라고요. 


개인 작업 중에 짧은 루프들이 있잖아요. 카페에서 낙서하듯이 만드는 거예요?

가끔 꽂힐 때가 있어요. 한 4일 만에 만들었던 거예요. 비슷한 시리즈를 한 번에 폭발적으로 만들고 털어내는 느낌인 것 같아요. 사실 최근에도 몇 개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바빠서 못 했어요. 


언젠가 라라랜드에서


[호원] <로드킬> 이후에 애니메이션 결국 하게 될 거다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뭐로 하지가 고민이었지 애니메이션을 한 번 더 한다는 건 확고했어요. <혼익법> 만들고 나서 당분간 실사에 집중을 하려고 했어요. 지원이 아니었으면 실사를 준비하고 있었을 거예요.


[호원] 영화 전공을 택한 것도 애니메이션은 이 정도로 했으니까 라이브 액션을 배우고 싶다 그런 건가요?

형들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애니메이션 기법이라는 게 초반 가르침 이후로 지구 궤도 밖으로 나가면 혼자 날아가야 한다고 느꼈어요. 대학교 애니메이션과에서도 배울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다음 매체를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림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닌가 봐요.

어떻게 보면 또 집착을 해요. 저 오서로 감독님 되게 좋아하거든요. 애니메이팅 실력이 워낙 뛰어나셔서 옛날부터 동경했어요. 싱어송라이터처럼 스토리도 좋은데 작화도 좋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그때부터 꿈꿨던 것 같아요. 내러티브가 약하니까 학교 가서 시나리오를 배워야겠다. 그리고 촬영 기법을 배우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도 풍성해질 거라고 느꼈어요.


제가 <라라랜드>를 보고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애니과를 가면 장편을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애니과는 단편을 알려주는 곳이라는 인상이 컸었고 시나리오 작법이나 캐릭터 분석을 해서 플롯을 알고 120분짜리를 만드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영화과를 가서 장점만 배워서 나중에 원하는 걸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호원] <헬로, 데어>는 애니메이션 공동 작업을 했던 거고 <로드킬>로 애니메이션 개인 작업을 했고 영화과 가서 감독으로서 팀 작업을 했고 다시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 혼자 했다가 영화 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도래지>도 거의 개인 작업이긴 해요. 상의 안 하고 혼자 할 때 마음의 편안함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컷을 한 번 넘기면 되돌릴 수가 없잖아요. 완벽하게 하고 넘겨줘야 되는데, 타임 리밋이 엄청 쪼개져 있다 보니까 부담감이 큰 거예요. 혼자서 회화적으로 하면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금은 혼자 하고 있어요. 영화과에서도 팀 작업을 하지만 영화과에서는 인간적인 걸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만들 때 있어서 감독이 인간이 안 돼 있으면 좋은 작품을 못 만들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호원] 영화하다가 흑화 되고 애니메이션하면서 다시 백화 되고

실사 영화랑 애니메이션의 작업 프로세스에서 쌓여가는 스트레스 개념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는 사람에 치이는 스트레스라면 애니는 고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외줄 타기처럼 왔다 갔다 하는데, 하나에 좀 안 고이고 싶어서 작품을 실사했다가 애니 했다가 실사했다가 애니 했다가 하는 것 같아요. 원래는 <혼익법>하고 실사할 차례였는데 또 애니를 하게 돼서 (웃음)


[호원]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훨씬 더 크게 할 수 있는 거죠.

영화 업계에 있다 보면 결국엔 인맥이 넓어지잖아요. 애니메이션에서도 같이 작업을 하면 좋은 분들이에요. 영화과 애들도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어 해요. 그래서 저한테 애니메이션 어떻게 만들까 자문도 구하고 하는데, 결국 다 연결돼 있는데 너무 선 긋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나를 소외시키지 말라는 거예요? (웃음)

난 둘 다 너무 좋다.(웃음) 전 하나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것만큼 둘이 긴밀하게 엮여 있는 매체가 없는데 왜 자꾸만 나누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장편도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만드는 동력이 뭔가요?

애니고 가기 전부터 <위플래시>(2014) 데미언 셔젤 감독을 롤 모델로 삼고 있었어요. 감독님이 29살에 오스카를 탔어요. 30살에 선댄스 대상을 타고 그 나이대에 그걸 했다는 걸 본 뒤로 29살에 선댄스 대상 타고 서른에 오스카 후보 올라가는 게 제 목표예요. 목표가 있다 보니까 쉴 수가 없는 거예요. 할 게 눈에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게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목표로 삼으면 그 밑에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서른 이후도 생각을 해봤어요?

실사 장편을 먼저 들어가고 애니메이션 만들 수 있을 경지까지 가는 게 제 목표예요. 봉준호 감독님도 애니메이션 만드는데 꽤 오래 걸렸잖아요. 


이 먼 장래의 계획을 언제 다 세운 걸까요?

고3 때 <라라랜드> 보고 나와서 극장에서 애니고 가는 길에 친구들한테 “나 영화 해야 될 것 같다”라고 말했어요. 그때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군대 제대하고 데이미언 셔젤을 나무위키를 쳐봤는데, 이분이 스물한 살에 <라라랜드> 각본을 써서 11억 원을 투자받은 거예요. 제가 그거를 스물세 살에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나 군대에서 더 열심히 할 걸. 스물한 살에 이 사람은 장편을 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장편을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뭐 어떻게 되겠지’ 였는데, 어떻게든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장편 시나리오를 한두 개를 써놓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게 재작년 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쓰고 있어요?

단편을 하면서 시나리오 쓰는 게 힘들어서 지금은 멈춰 있어요. 장편도 각 잡고 앉아서 시간을 내서 써야 되는 거라는 것도 느껴서 <도래지>를 끝내고 교환학생 때 많이 쓰려고요. 물 좋은 곳에서 글 많이 쓰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도래지> 다음에는 학교 복학해서 단편, 장편 만들게 되나요?

단편 2개가 될 것 같은데, 올해 말에 찍어요. 한 18분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원] 제일 어려운 거는 졸업 작품을 만들까 말까 결정을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졸업 작품이라고 생각 안 하고 그냥 작품 두 번 할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실사 영화 두 번 안에 승부를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점점 길이를 늘려서 25분까지 찍어서 장편의 호흡을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저는 5분짜리 다섯 편 만든 사람보다 25분짜리 한 두 편 만든 사람한테 장편을 맡길 것 같아요. 


단편에서 장편으로 한 번에 투자받을 수 있는 건 메가 히트 작품 정도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도래지>나 앞으로 찍을 단편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일단은 지금 주어진 작품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도래지>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잘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인드컨트롤 하고 있어요.

 

인터뷰 2024년 2월 16일 @ 적선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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