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JOUNG Yumi
- seoulanimator

- 7월 24일
- 16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13일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점심시간 <파라노이드 키드>(2024)와 <안경>(2025)을 단독 개봉하는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들렀다.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과 영화 굿즈인 포스터 사진을 찍는 젊은 여성들과 30분 남짓한 상영을 보고 나와 부산에서 아침 일찍 상경한 정유미 감독을 홍대 인근에서 만났다. 싫어도 버릴 수 없는 제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은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지만, 납득한 건 최근이다. 7년의 공백 후 쏟아낸 <존재의 집>(2021), <파도>(2022), <서클>(2024)은 한 자리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접힌다. 어느새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지우고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는 정유미 감독과 카페 맨 구석 자리에서 긴 수다를 떨었다.
2025년 7월 인터뷰
안 해봤던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파라노이드 키드 (2024)
개봉 첫날인데, 어떠세요?
많이 봐주시면 좋겠는데,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개봉이 떨린다기보다는 내일 토크하는 것도 있고 거의 혼자 있다가 오랜만에 사람들은 많이 볼 거니까 신경이 쓰이죠.
포스터 증정 이벤트도 하더라고요.
저도 몰랐어요.
극장 상영과 마케팅에 대해서는 PD님이 담당하시나요?
네 저는 거의 전혀 관여를 안 하고 PD님이 거의 북 치고 장구치고 하고 있습니다.
개봉이 결정된 건 언제쯤이었어요?
칸 영화제 가기 일주일 전쯤이었어요.
칸 영화제에 됐다는 소식을 듣고 메가박스에 연락이 온 건가요?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결정되고 한 1~ 2주일 정도에 그쪽에서 얘기가 나온 것 같아요.
<파라노이드 키드>랑 <안경>을 엮었어요.
제일 최근 두 작품이기도 하고 주제도 연관이 있어요. <파라노이드 키드>는 저도 만들 때도 안 해본 걸 해보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고 꼭 영화제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온라인 매체에서 틀어도 상관없고 형식은 상관없다. 다른 작품들은 대사도 없고 조금은 덜 친절한데, <파라노이드 키드>는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잖아요. 많이 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이 시점에 <파라노이드 키드>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어릴 때 끄적거린 걸로 냈던 책이라서 부끄러워하는 책이기도 해요. 근데 저 그림을 그때 그릴 때나 지금이나 감정의 모양은 비슷하더라고요. ‘언젠가는 조각조각 나 있는 거를 묶어서 하나의 주제를 던지고 싶다’ 이런 생각에 어색하게나마 내레이션을 썼어요.
호원: 20년 전 책이더라고요.
제가 대학교 때 저거를 싸이월드에 썼거든요. (웃음)

호원: 그 감성이!
그래요. 맞아요. (웃음) 거기다가 조금씩 올리는 그림이었는데, 그거를 출판사 대표님이 보시고 출간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때 그림은 나무판에다가 그렸어요. 사진 찍어서 스캔하는 식으로 아날로그 작업 했었어요. 내레이션에 맞게 그림을 끼워 넣었어요. 그래서 조금 내용이 다른 거죠.
호원: 2005년의 그림 순서랑 2011년 판형의 그림 순서랑도 다르고 이번 영화에 나오는 순서도 다른데, 순서를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을 하신 건 아닌 거예요?
순서 생각하지 않고 내레이션을 썼어요. 어떻게 보면 삽화처럼 그 장면에 어울리는 그림을 배치를 한 거죠.
호원: 그러면 있는 장면이 붙는 내레이션이 아니라 내레이션을 아예 따로 쓰신 거예요?
동시적인 것도 있어요. 흐름에 맞춰서 내레이션을 조정하기도 했고 그림을 조정하기도 했어요. 엔딩의 메시지나 느낌은 이걸로 가야 되니까 그거는 들어갈 수 있는 그림들이 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조절했어요.
메가박스에서 처음 연락을 했을 때도 한 30분으로 구성하게 다른 작품 하나 붙여달라는 요청이 있었나요?
<안경>만 제안을 받았는데, 제 입장에 그래도 영화관에 표 끊고 들어와야 되는데, 보고 가는 게 짧으면 너무 왔다 갔다 귀찮은 일 같은 거예요. 뭐라도 더 보고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파라노이드 키드>는 좀 더 편한 작업이니까 보시면 좋겠다.
처음 세상에 작업을 내보였던 2005년과 최신작이 나온 2025년,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진짜 신기한 게 20대 때 가졌던 모티브와 이미지를 여전히 가져가고 있어요.
2005년 책을 2011년에 다시 작업해서 내기도 했으니 애착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림이 실물로 보면 되게 크고 또 굉장히 많이 그렸거든요. 그래서 책의 결과물이 아쉬웠어요. 사족처럼 붙인 글들도 마음에 안 들었고 그래서 좀 더 마음에 드는 버전의 뭔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호원: 싸이월드에 업로드할 때 45장 이상으로 작업을 해 놓으신 건가요?
20대 때 밤에 그냥 일기처럼 그렸어요.
호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때의 상상력이 괴랄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속에서 나오는 내향적인 사람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 사람 안에 되게 강한 것들이 있었구나.
사실 회화를 할 때는 훨씬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더 직접적이고 더 괴랄하고 거칠기도 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하면 에너지였거든요. 애니메이션 하면서 저 스스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서 굉장히 정제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 에너지를 써야 된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앞으로 작업을 한다면 검열을 하기보다는 괴랄할지라도 즉흥적인 걸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호원: 움직임으로 가면서 스틸 이미지에서 받았던 느낌이나 감정이랑은 다른 느낌을 갖는 지점도 있어요. 혹시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면서 해석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이 작품은 <존재의 집>을 같이 했던 친구랑 작업을 했어요. 제가 연출을 했지만 애니메이션은 하지 않았어요. 디테일한 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방향은 상의하면서 했어요.
호원: 자기 머리에 있는 거를 가위로 자를 때 일러스트 느낌하고 애니메이션 느낌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 일러스트에서는 왠지 자기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잘라내는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자기를 케어하듯이 머리를 다듬으면서 잘라주는 것 같아요.
<안경>에서 두 사람이 껴안는 모습을 볼 때 <파라노이드 키드> 첫 장면에서 소녀의 옆모습에서 다른 머리가 쑥 나와 있는 이미지가 연상되었어요.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걸 지금 알았어요. 저한테는 안 보이는 제 모습이라는 게 일종의 무의식이잖아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너무 답답했어요. 그 그림을 그릴 때도 안 보이는 게 중요한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할까도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내레이션을 항상 해보고는 싶었었는데, 저는 글을 잘 못 쓰니까 계속 내가 할 게 아닌가 이런 마음 때문에 미뤘어요. 근데 항상 떠오르는 분은 배두나 배우님이었어요. 배우님 아우라가 매력이 있잖아요. 이 작업 아니더라도 뭐가 됐든 한번 같이 해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파라노이드 키드> 내레이터를 떠올렸을 때 너무 여성적인 성우는 안 어울릴 것 같다. 그냥 사람으로 보이는 목소리였으면 좋겠다. 배두나 배우님은 저한테 그런 느낌이었어요. 사실 바쁘신 분한테 제안을 드려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PD님은 굉장히 긍정적이시거든요. “배우님이 좋으면 할 수도 있지” 그래서 제안드렸어요.
우리가 20대 때 우상이었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20대의 이미지가 있어요. 꼭 20대의 목소리로 해야 되는 건 아니었나요.
절대 그렇진 않았어요. 만약에 제가 20대 때 만든 작품이었으면 20대 배우를 썼을 수도 있지만, 제가 쓴 내레이션은 중년에 어울리는 내용이에요. 저는 20대 때 그런 생각 전혀 못 했었거든요. 지금쯤 되니까 이게 그렇겠거니 느껴져요. 물론 젊은 사람들한테도 좋을 수 있지만 중년에게 의미 있는 내용 아닌가.
호원: 배두나 배우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이해했나요.
작업할 때는 지금 우리 나이 때부터 시작해서 30대, 20대 이런 식으로 세네 번 하셨어요. 처음에는 좀 더 무거웠어요. 어른의 목소리로 했더니 안 어울리더라고요. “고등학생 정도의 느낌으로 가볼까요?” 했던 버전이 이 버전이었어요. 무겁지도 않고 적절한 느낌이에요.
호원: 당일 스튜디오에서 영상 띄워놓고 하셨어요. 아니면 스크립트만 보고 진행을 하셨어요?
스토리보드와 이미지를 드렸어요. 스토리보드 옆에 있는 내레이션을 읽으셨고요.
소리에 그림을 맞췄어요?
애니메틱 릴을 만들고 성우 녹음하고 애니메이션을 했어요. 목소리를 깔면서 애니메이션을 맞춘 것 같아요.
내레이션의 감정이나 길이에 따라서 애니메이션 신 길이도 조정을 하고
빡빡하게 내레이션을 하는 게 아니라 붙어 있던 곳의 간격을 벌리기도 하는 식으로 위치 조정을 했어요.
20대 때 그렸던 거를 20년 후에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지금도 의미 있는 부분을 찾았나요?.
그때 그렸던 느낌이랑 약간씩 뉘앙스를 다 바꿔서 지금 유효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거기 보이는 형체가 어려 보이니까 어린 사람의 얘기 같지만 그 감정들은 늙어도 비슷할 것 같아요. 저희가 힘들 때 마음은 아이의 마음이고 아픔은 또 아이의 마음으로 회귀하고.
호원: 대사가 딱 귀에 들어오는 게 어른이 된 내가 아이인 나를 안아주는 장면이었어요. 20대의 나를 40대의 내가 안아주는 거기 때문에 그 장면 보면서 진짜 감독이 자기를 받아들였다는 게 보였어요.
네, 그게 제일 중요한 대사였어요. 어떻게 보면 앞 쪽은 그 장면을 위해서 감정을 가져온 거고 그게 지금 제일 하고 싶었던 거예요. 기억이 남는 게 배우님이 엄마 대사 때 울컥하시면서 멈췄어요. 이게 감정적으로 느껴진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임캡슐 같은 느낌도 있어요. 20년 지나서 다시 열어보면서 나 이랬구나.
그림도 유행이 있고 메시지도 유행이 있는데, 옛날 얘기라면 하면 안 되지 않나 걱정했는데, 내용은 지금 유효하다고 느껴지고 이미지도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 보이지 않을까.
호원: 이번에는 처음부터 컬러를 쓰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저한테 컬러는 좀 더 풍부한 느낌이라서 컬러라고 느껴지지도 않아요. 그냥 컬러가 있는 원화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안경 (2025)
KIMHĒKIM은 어떻게 읽어야 하죠?
그냥 김해김이라고 읽어요.
이 브랜드를 전부터 아셨어요?
몰랐어요. 패션도 별로 관심 없고 옷을 잘 모르니까. 이분이 원래는 파리에서 다른 브랜드 일을 하시고 공부를 하셨는데, 영화제에서 우연히 <연애놀이>(2013)를 보셨대요.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 때 영감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인스타로 쪽지를 보내셨는데, 제가 인스타 확인을 거의 1년을 안 했어요. 늦게 확인을 하고 연락해 봤더니 협업을 제안하셨어요. 그때 처음 이 브랜드 옷을 봤거든요. 처음에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막막했는데, 옷을 보니까 왜 좋아하셨다는지 알 것 같고 이미지에서도 연결되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안 해봤지만 재밌을 수도 있겠다.
호원: DM 확인한 건 언제쯤인가요?
아마 지난 인터뷰(2022) 할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 해에 미팅을 처음 했어요.
처음에는 브랜드 홍보 영상 제안이었나요?
한 2~3분 정도에 패션 필름 같은 짧은 광고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하셨다가 이분이 생각을 바꾸신 거예요. "이렇게 도모해서 하는데, 광고로 만들면 아쉬울 것 같다. 그냥 감독님 작품을 하시고 대신에 자기 의상이나 소품을 사용해 주시면 될 것 같다. 영화제에서 틀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고 하셔서 중간에 바꿨죠.
KIMHĒKIM의 디자인을 캐릭터에 반영한 작품으로
그분의 디자인 역사를 다 주셨어요. 처음에 이분이 브랜딩을 할 때 몇 가지 중요한 디자인이 있거든요. 그 디자인이 제가 봤을 때도 굉장히 예뻤어요. 그냥 주인공이 입는 옷이라는 도구적으로만 쓸 게 아니라 이야기에 본질적으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개의 방에 나오는 세 가지 의상이 영감의 디자인 같은 거군요.
많은 디자인 중에서 그 세 가지가 제일 흥미로웠어요. 제일 특이한 질감의 옷들이었거든요. 딱 이야기를 짤 수 있는 옷들. 하나는 털로 만든 옷이고 두 번째가 진주가 중요한 모티브인 옷이고 세 번째가 이불 모티브 옷이거든요. 이 세 개는 전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짜본 거죠. 고민을 많이 했고 골치가 아픈 방식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재미있는 지점도 생겼어요.
호원: 머리 땋듯이 하는 디자인의 옷이 이미 있었던 거예요?
마지막에 나오는 착장은 그 옷의 완성된 형태고 실제로 그 옷을 만들 때 땋아서 작업을 하시는 걸 봤어요.
세 번째 이불 옷이 제가 보기엔 리넨 침대 시트 느낌인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세 번째 착장은 원래는 이불이 아니라 리본이었어요. 리본이 또 중요한 디자인 모티브인 옷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옷을 마지막 변신 옷으로 했는데, 이분이 중간에 이불을 모티브로 한 옷을 만드신 거예요. 첫 번째 옷처럼 땋는 장면이나 진주처럼 깨는 장면이 없고 마지막 옷은 딱 변신으로 끝나는 옷이라서 뭘로 돼도 크게 상관없어요. 근데 리본하고의 연결성보다 이불의 연결성이 더 강해서 바꿨어요.
가방이나 안경 같은 소품도 KIMHĒKIM의 디자인이죠.
가방도 굉장히 클래식하고 원형적인 디자인이어서 좋았어요. 안경도 다양한 게 있는데, 그중에서 마지막 진주 달린 안경이 고민이 되긴 했거든요. 적절한 호기심이 들고 이전하고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그 디자인을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위해서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 거 아닌가요.
양가적인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눈물은 슬픔인데, 어떤 슬픔이 나중에 보면 기쁨이 되기도 하고 의미가 바뀌잖아요. 슬픔이 해소가 되고 났을 때 의미가 귀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호원: 어머니는 눈물에 진주를 만드신다라는 시*가 있었죠.
*「어머니·6」 (1975, 정한모, 『새벽』
호원: 저는 단추 바느질 하는 장면 보면서, 전체를 안 보여주고 손과 바느질을 정교하게 세 번을 반복하는 지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의상에서는 세 개의 진주가 포인트이기 때문에
맞아요. 3개의 단추가 딱 달려서.
눈에 띄는 액세서리 중에 첫 장면에 등장하는 신발도 빠질 수 없죠.
그 브랜드에 있는 것 중에서 큰 리본 달린 신발이 저는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첫 장면은 그 신발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호원: 여자 주인공 캐릭터의 비율이 <연애 놀이>나 다른 작품에 비해서
갑자기 길어졌죠. (웃음)
옷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모델처럼
제가 혼자 할 때는 비율도 제가 편한 비율로 쓰고 디테일에 신경 안 쓰고 하는데, <안경>은 옷과 그 옷이 보이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옷이 보이려면 이 정도의 비율은 나와야 돼’하면서.
호원: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였는데 비율이 달라지면서 느낌이 되게 달랐어요.
사실 더 퉁퉁하고 조금 못생긴 게 저한테 더 익숙한데, 옷이랑 어울리려면 다리도 가늘어야 되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
<존재의 집>이 <안경>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시력 검사대의 빨간 지붕집인데, 제가 가진 집이 있잖아요. (웃음) 시점만 교체해서 넣었어요.
호원: <존재의 집>의 집은 따로 모델이 있었어요?
서울 서대문 쪽에 있는 근대 건물**이에요. 제가 그때 인터넷으로 집 형태를 막 뒤지다가 적당한 집을 찾은 집이었어요.
** 홍난파 가옥 (서울시 종로구 송월1길 38)
시력 검사를 하는 방에 이사하기 전처럼 온통 천으로 뒤집어 씌워놨잖아요.
거기가 처음에는 안경점인가 질문을 했어요. 안경점이면 간판도 안경 모양을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특정되지 않고 저 사람에 맞춰서 다 제공할 수 있는, 안경원처럼 보이는 사람도 신처럼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낀다면 그 많은 물건은 천을 걷었을 때 뭐가 나올지 모르는 공간으로 하고 싶었어요.
호원: 근대 건물처럼 저 어렸을 때는 동네에 야매 의사가 있었어요. 이가 아픈 사람이라면 치과를 해주고 눈이 안 좋으면 안과를 해주고
(다 같이 웃음)
설정은 비슷하네요.
진짜 안에 사람에 맞춰서 들추는 게 달라질 수 있는 거죠.
호원: 시력이 안 좋으세요?
옛날에 안경을 꼈죠.
호원: 진짜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은 저 푸른 벌판에 있는 집을 들여다볼 때 작품에서처럼 뭔가 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 집이 모티브이긴 했어요. 항상 그 집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일종의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라고 하나요? 우리 기억에 있는 뭔가 익숙한데 이상한 공간 언캐니한 공간인데, 옛날이었으니까 사진을 찍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누군가의 집이었다는 건데,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호원: 정기적으로 눈 검사를 할 때마다 왜 저 이미지는 안 바뀔까. 지금은 눈을 스캔을 하면 자연스럽게 시력 측정이 되지 않나. 온갖 생각을 다 하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들여다본다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한테 관음증 같은 묘한 기분을 줘요. <안경>에서 두 번째 공간 나올 때 내가 집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도 있잖아요. 들여다본다라는 욕망이 보이는 게 재미있었어요.
제일 첫 신에서 캐릭터가 바깥에서 들어가는 집이 있잖아요. 유럽 건물 같은데, 이게 KIMHĒKIM 파리 본사인가 궁금했어요.
파리 본사는 아니고 실제 파리의 건물을 그린 빈티지 그림이에요.
호원: 파리에는 여전히 그 건물이 계속 있는데, 한국에서는 근대에 있다가 허물어지고 레트로가 돼죠.
<나의 작은 인형 상자>는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되는 이야기인데, <존재의 집>은 밖에서 안으로 안 들어가고 부수잖아요. 이번에 <안경>에서 비로소 잠깐 들어가서 만나는 거여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 재미있는 전환이었어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죠. 나오고 들어간 거죠.
호원: 차 꺼낼 때 처음에 Sleep이 나오고 두 번째가 Anti-stress, 세 번째가 oblivion 그리고 마지막에 Love.
숨겨놓은 의미 같은 건가요?
본질적인 해결 방법이 아닌, 잠깐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들인 거죠.
호원: 그게 다 사실은 진통제잖아요. 잠을 자거나 사랑을 하거나 망각을 하거나
그렇게 피할 수 있는 방향
고통에 어떤 해결책을 원하느냐.
저는 사실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인데, 어떤 사람들은 술을 먹기도 하잖아요. 중독도 일종의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이잖아요.
안경 꺼내주는 서랍이 작고 많은 게 한약방 서랍 같았는데, 통하는 게 있네요.
그런 옛날 나무 서랍을 보고 했어요.
호원: 퀘이 형제 작품에도 고가구와 서랍이 나오는데
옛날 도서관 독서 카드 보관함 같은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물건을 좋아했어요.

브랜드 이름을 넣은 거는 감독님의 판단인가요?
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됐지만, 그분들도 돈을 쓰셨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여줘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떻게든 넣으려고 했어요.
호원: 제작지원으로 할지 협찬으로 할지 후원으로 할지 뉘앙스가 다르기는 하죠.
협업이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브랜드와 공적 지원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반 반 정도 됐어요. 사실 목표는 브랜드 지원으로 1년 안에 완성을 하려고 했는데, 작업이 길어지고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2년 넘게 걸렸어요. 길이도 지금 15분에 맞췄는데, 원래는 20분이었거든요.
KIMHĒKIM은 섭외 연락이 닿는 데도 1년이 걸렸고 제작을 하는 데도 원래 계획보다 1년 넘게 걸렸어요. 팬심으로 후원한 것 같네요.
그 마음이 크셔서 일단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죄송했어요. 그분들은 분명히 노출하고 싶었던 계획이 있었을 텐데, 맞춰주신 거죠.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요?
처음에 원하는 스토리 라인을 주셔서 제가 그걸로 한번 짜보려고 했거든요. 고민하던 중에 다시 연락이 와서 감독님 생각으로 작품을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시나리오에서 의견 여쭤보고 중간에 에피소드 하나씩 보여드리고 의견을 들었어요.
스토리보드 나오고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 이후에 펀딩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 주셨어요. 펀딩을 받으려면 작품이 길어져야 되는 부분도 있었고 영화제를 가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가 되었어요.
영화제들이 출품 시기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베를린은 겨울에 마감이고 칸은 봄의 마감이고. 완성은 거의 다 되었고 베를린 영화제가 코 앞이었어요. 베를린 갔던 경험도 있으니까 좀 더 안정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PD님이 오랜만에 칸에도 내보자 하셨어요. 칸이 안 되면 1년을 다시 묵혀야 되는데, 이렇게 작업이 길어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고민하다가 낸 거예요.
영화제에 출품하기 전까지는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시는 거예요?
작업을 완성까지 하고 나면 너무 지겹고 정말 꼴도 보기 싫고 제가 계속 보고 있으니까 뭘 고쳐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게 좋은지 안 좋은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런데 몇 달 놀다가 보면 달라 보이거든요. 좀 더 고칠 게 보이고 또 문제가 있으면 고치기도 해요.
일단 내버리면 확실히 끝인가요?
영화제에 선보이면 그때부터는 끝인데, 지겨워서 안 할 뿐이지 하려고 하면 계속 건드릴 수 있어요.
호원: 베를린도 훌륭한 영화제고 칸도 훌륭한 영화제잖아요.
영화제 두 개의 성격이 참 다른 것 같아요. 베를린은 아카이빙을 열심히 하면서 대대적으로 행사를 많이 하고 칸은 프라이빗하게 뭔가 스페셜한 느낌을 주니까 좋아하는 것 같아요.
프라이빗하다는 거는 한 작품 한 작품 집중해서 다뤄주는 느낌인가요?
칸은 작품 수가 많지 않다 보니까 조금 더 관심이 있는 것 같긴 해요.
<먼지아이>로 감독주간 가셨을 때랑 <안경>으로 비평가주간 갔을 때의 차이는 어때요?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시기에 어떤 프로그래머와 어떤 집행위원장님이 계시냐에 따라서 많이 바뀌는 것 같았어요. 선정되는 작품도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2년 전에 <파도>를 칸에 냈거든요. 비평가주간 프로그래머님이 그때 감독주간에 계셨는데, 최종에서 안 됐지만 지기가 <파도>를 밀었다고 하셨거든요. 그분이 또 제 작품을 선택하신 거예요. 정말 좋았다고 얘기하시는데, 그 취향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저랑도 취향이 비슷했어요. 프로그램 보는데, 제가 되게 재미있어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제가 최근에 영화제에서 영화를 많이 안 봤거든요. 나태하게 힘이 빠져 있었는데 이번에 갔을 때 되게 재미있었어요. 미술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한 작품들을 많이 선택하셨더라고요. 옛날에 갔을 때랑 지금이랑 영화도 많이 바뀌었구나 느껴지고 다른 작업이 재밌으니까 자극도 되고 신이 났어요. 비교를 한다면 어릴 때는 정신도 없고 다른 영화도 안 보였는데, 이번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음악은 뭘로 들으세요?
애플 뮤직에 보면 큐레이션이 엄청 잘 돼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엠비언트 계열이나 클래식 계열 쪽을 계속 들으면서 ‘작업하고 정서가 연결이 돼’ 그러면 붙여 보는 거예요.
평소에 작업송으로서 틀어 놓는 게 아니고 작품에 어울리는 곡을 찾는 용도인가요?
두 가지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작업송으로도 듣는데, 작품의 무드가 결국 음악이에요. <파라노이드 키드> 같은 경우는 엔딩곡이 중요한 테마였거든요. 마지막에 무조건 그 곡이 나오는 분위기로 끝내겠다 이런 생각이어서 제일 처음에 정했어요. 그런데 <안경> 경우는 어떤 좋은 느낌만 주면 상관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주야장천 듣다가 찾았어요.
서클 (2024)
호원: 7년 휴지기 이후에 갑자기 작품들이 막 이렇게 나와요. <존재의 집>, <파도>, <서클>, <파라노이드 키드>, <안경> 그리고 그 사이에 <그림자 아이> 작업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그림자 아이>는 멈춰 있는 상태입니다. (웃음) 작업 순서는 <존재의 집> 먼저 시작했고 <존재의 집> 할 때 <그림자 아이> 거의 비슷하게 시작했어요. 근데 <그림자 아이>하면서 <파도> 제안이 왔고 <파도> 제안이 오고 난 이후에 KIMHĒKIM 제안이 왔고 그때쯤에 <서클>도 같이, 그러니까 <파도>랑 <안경>이랑 <서클>, <파라노이드 키드>까지 동시에 작업을 했어요.
4개 작업이 오버랩 돼 있어요. 원래는 시간을 텀을 두면서 하는 편이었어요. 제가 연필로 작업을 다하니까 그렇게밖에 못하겠더라고요. 최근에는 협업도 하고 다른 애니메이터들하고도 작업을 하고 형식도 중요했어요. <존재의 집>이랑 <파도>랑 <서클>이랑 세 개 다 원신 원테이크인데, 원신 원테이크는 저한테 크게 부담이 없어요. <안경>처럼 신이 많은 작업들이 힘들고 부담스럽고 이야기를 완결시키는 게 항상 어려운데, 원신 원테이크는 처음부터 주제가 뭐고 엔딩 장면이 뭔지를 알고 들어간 작업이라서 완성에 대한 부담이 없고 같이도 할 수 있더라고요.
“존재의 집”이 <안경>에 나오는 이유와 <파도>의 인물들이 <서클>에 나오는 이유를 알겠네요.
특별한 게 아니라 정말 효율적인 부분이예요. 그 캐릭터 그대로 가도 상관없고요.
한 영화의 캐스팅을 가지고 다음 영화를 찍는 느낌
맞아요.
호원: 대가들이 공백기 이후에 복귀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캐롤라인 리프 감독이 초기에 샌드 애니메이션이나 페인트 글라스로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딱 멈췄다가 필름 스크래치로 복귀를 했어요. 감독님도 혼자 힘들게 작업을 하다가 멈춰서 다른 식으로 그림 작업을 하다가 복귀를 했을 때 작업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몰아치기가 가능했죠.
저는 연필로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렇게밖에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 방식을 했던 건데, 그때는 이제 못하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연애 놀이>까지는 연필그림으로 하셨는데 <존재의 집>부터는 디지털 드로잉인 건가요?
<존재의 집>도 연필로 원화 작업은 다 했어요. 책에 있던 이미지는 연필로 레이어를 다 따서 작업을 했고 애니메이션을 제가 하지 않았죠. 저는 동화하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원화는 그냥 그리면 되는데, 이거를 움직이는 게 너무 어렵죠.
호원: <존재의 집>은 레이어 하나씩 한 조각이 떨어지는데, 이게 끝까지 가요. 수백 개의 레이어를 아날로그에서 물리적으로 하면 레이어가 아무리 얇아도 어느 만큼 두께가 되는데, 디지털로는 레이어가 데이터이기 때문에 두께가 없는 거예요.
콘셉트와 형식이 하나로 미니멀하게 갈 수 있어서 원신 원테이크가 재밌어요.
최종 결과물에서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에펙에서는 산처럼 쌓이겠죠
버벅거리는 거죠. (웃음)
<파도> 작업도 저는 비효율적으로 했거든요. 사이즈도 엄청 크게 시작해서 엄청 버벅거리는데,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구나 나중에 깨닫는 시행착오가 항상 있어서 진짜 잘하시는 분이 있으면 협업하고 싶어요.
호원: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단순하고 무식하게 하는 데서 진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허둥지둥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부분에서 밀도가 생기긴 해요.
<파도>의 캐릭터들을 데리고 <서클> 얘기를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항상 애니메이션을 연극처럼 보여주면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영화학교에 갔기 때문에 컷을 배웠지만 지금도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하면 연극 형식으로 이야기를 짜요. 좀 더 클로즈업이 들어가거나 다른 각도에서 보이는 거를 만들 뿐이에요.
<안경>의 방도 연극 무대 같네요.
그렇게 제한을 걸었을 때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찾을 수도 있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자 아이>가 다음에 나오겠구나 했는데, <서클>이 튀어나와서 놀랐거든요. 하다가 벽에 부딪혀서 딴 걸로 기분 전환해 볼까였나요?
<그림자 아이>가 제가 7년 쉬고 처음에 시작한 작업이거든요. 완성에 대한 현실적인 감이 없는 이야기를 짰고 그래서 좀 더 어려워요. 일단은 끝까지 펼쳐놓긴 했는데, 완성을 한다면 다시 만들어야 된다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작업 기회가 왔을 때 새로운 것들은 해야겠다 생각해서 쭉쭉했고, 숙제처럼 남겨져 있습니다.
호원: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서클>에는 13명과 커다란 테디베어 인형과 커다란 떡갈나무와 한 마리의 푸들과 그다음에 잠깐 날아갔다가 마지막에 돌아오는 새가 있는데, 실제 저 크기의 동그라미 안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없을까 얘기해요. “저 동그라미가 뭘까? 제도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경계일까? 서클은 동그라미이기도 하지만 동아리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소속감을 느끼고 일정 기간 동안에 유지가 되고 하나의 방향성이 공유가 된다면 사회라고 읽을 수가 있는데, <서클>은 사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두 가지가 다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일단은 모티브는 항상 두 가지로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인 틀로도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 안의 관념으로도 읽힐 수도 있다. 인물들이 다 다른 사람 같지만 내면으로 보자면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관념들로 보일 수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저는 좀 더 제 안에 관념으로 생각을 하긴 했어요.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벗어나는 걸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잖아요. 저기 줄 서 있으면 같이 안 서면 불안해지는 심리가 외부에서도 작동을 하고 내부에서도 작동하는데, 나중에 이유를 모르면 불필요한 경계가 돼버리잖아요. 필요에 의해서 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또 의심해 보기도 하고.
호원: 진짜 생각할 거리를 잘 던져준 거예요. 한 명씩 다 떠나고 작품을 다 봤다고 생각을 했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다 지나가고 새가 다시 들어오면서 내가 뭔가 놓쳤구나.
새가 왔다가 마지막에 날아가잖아요. 새라는 게 1차원적으로 자유롭게.
호원: 그 선이나 제도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새밖에 없죠.
무의식은 그냥 당연히 깔려버려서 그게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관념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틀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어떤 불편함이나 고통을 통해서 경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럴 때 그거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불편함이 오히려 기회가 되는 거죠.
호원: <연애놀이>의 커플이 나와서 드디어 저 커플이 결혼을 했단다. (웃음)
너무 재밌게 읽어주셨는데, 사실 연결까지는 생각을 안 했어요. 부부들이 굉장히 전형적인 틀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입장의 사람들이니까.
호원: 다 전형성들이 있기 때문에, 저 안에 한 명을 더 추가를 하면 어떤 캐릭터를 추가를 할래 라는 질문도 해요.
사실 끝도 없이 들어갈 수 있죠. 원래는 한 스무 명까지 캐릭터를 써놓았어요. 이 공간에 빡빡하게 들어간다는 느낌도 중요하고 의미상으로도 틀이 만들어지는 캐릭터도 있어서 여러 개 뽑아서 우선순위를 정했어요.
인물 수만 따지면은 감독님 작품 중에는 블록버스터
근데 걸어갔다가 걸어오는 거 (웃음)

이전 작품들은 중심인물의 내면 이야기라면 <파도>하고 <서클>은 사회적인 맥락으로 읽혀요.
내가 내가 겪는 것들도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의 얘기구나. 구조 안에서 생기는 이야기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내 개인의 얘기는 결국 다 보편적인 우리 인간의 고민이다.
과거와 화해를 했던 <파라노이드 키드>와 비슷한 시기의 작업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던 걸까요.
이전에는 제 심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너무 개인적인 얘기를 푸는 건가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문제들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같은 맥락에서 다들 가지고 있다고 느껴요.
제 상처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들 어떤 고통이 발생하고 있는 지점, 자기가 자기를 수용하지 않는 지점에서 생겨난 감정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나의 부족함이나 일종의 그림자를 없애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게 이 세상의 흐름이고 교육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메시지였구나 느끼게 됐어요. 저는 그냥 없애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부족한 그대로 가야 된다 생각해요.
호원: <먼지아이>도 그렇고 <연애 놀이>도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걸로는 다 가요. 스토리상으로는 되는데, 만드는 사람이 진짜 그거를 수용을 하고 내 안에 반영이 되는 거냐였죠. <안경>이나 요즘 만들어지는 작품에는 진짜 성숙한 게 보여요.
사실 <먼저 아이>도 더 수용하고 싶었어요. 엔딩에서 더 포옹하고 싶었고 더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솔직하게 잘 모르겠는 거예요. 버리는 방향은 아니겠거니 짐작을 했을 뿐이고 그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정도까지 얘기를 했어요. 지금은 약간의 맛을 본 상태예요. 여전히 저는 수용이 어려운 사람이고 여전히 저는 습관적으로 가자면 저항을 많이 하는 사람이지만 그 맛을 봤더니 좋았고 그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내 삶이 펼쳐진다면 좀 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호원: 작품은 해결이 됐어도 내가 그만큼 끌어올려지지 않으면 50대에도 작업을 하고 60대에도 작업을 하고 70대에도 작업을 하고
그렇게 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작업을 못하는 시기에는 혼란스러웠어요.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미 했던 얘기에 대해서 반복하기는 어렵고 그래서 창작자는 그게 같이 가줘야지 계속 작업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호원: 너무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좋겠어요.
그럼요. 작업이라는 거가 잘 살려고 하는 거지 작업이 우선은 아니니까.
호원: 엔딩 크레디트 보면 매치컷 작품에는 법률도 있고 재무도 있고 해서 이건 기업이다.
그게 아니라 PD님이 회계사님 도움도 받아야 되고 또 계약서를 꼼꼼하게 하지 않았을 때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변호사님 점검을 받았어요.
호원: 매치컷 소속의 변호사는 아니고
그분이 저희보다 큰데 어떻게 저희 소속이 되겠습니까? 저희가 그분 밑에 들어가면 몰라도 (웃음)
호원: 배급은 매치컷에서 자체로 아니면 해외 에이전시를 섭외를 하는 거예요?
해외 영화제를 가는 작품은 그쪽 나라에서 연락이 오고 그렇게 하기도 해 봤고 PD님이 직접 배급해보기도 했어요. PD님이 너무 버거울 때는 외부에서 하는데, 해외 배급사랑 했을 때 장편이고 상업적인 작업이면 되겠지만 단편은 결과에 대해서 보고를 받지는 못하더라고요. 해외랑 했을 때는 영화제로 굉장히 많이 갈 수 있고 저희가 했을 때는 연락 오는 쪽에만 파일 보내는 식으로 하게 되고 장단점이 있어요.
호원: 작품을 만드셨으면 책도 내셔야죠. 이 작업 하나하나가 어떻게 보면 확장이고 아트웍이기도 하고, 원신 원테이크는 설치 안에서 퍼포먼스나 인스톨레이션 아트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PD님도 그렇고 감독님도 뭔가 계속 재밌는 걸 구상을 하실 것만 같아요.
애니메이션은 시간과 공을 많이 쓰는 작업인데 비해서 마지막에 너무 짧게 끝나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나름 해보려고 한 게 책이었는데 고민이 계속되긴 해요. 제 작업이 애매한 지점이 있어요. 완전 아트북도 아니고 완전 상업도 아니고 중간지대에 있어요. 『먼지 아이』랑 『나의 작은 인형상자』는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았잖아요. 가서 제가 느낀 거는 이거는 정말 어디에도 없는 이상한 책이구나. 보통 라가치상을 받는 작품들은 굉장히 대중적인, 물론 작품성은 좋지만 어디에 꽂혀야 되는 책이거든요. 근데 저는 어디 꽂힐지를 모르는 책이라서 상업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원: 뮤지엄 숍에 들어갈 책이죠.
이게 동화책의 형식으로 상을 받았지만, 많이 팔릴 수 있는 책은 아니니까 아트북으로 들어가야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포맷도 더 공을 들여서 만들어야 돼요. 페이퍼백을 저희가 만들긴 했지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작은 인형상자』 같은 경우는 조금 더 이야기가 있는 책인데, 최근에 제가 만든 원신 원테이크 작품은 책으로 바뀌었을 때 어떨까 고민이 있긴 했어요.
호원: 아트북은 페이지 바이 페이지라는 한계가 있는데, 접고 접고 접고 펼치고 펼치고 이런 식으로 「이사」의 책 포맷을 새롭게 구성을 한 것처럼 작업 미디어 왔다 갔다 하면서 기존의 미디어 개념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일 수도 있어요.
앞으로 책을 만든다면 많은 부수를 찍는 책이 아니라 에디션 성향의 책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에 나올 건 <단추>인가요?
그게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마감이 있어야지 집중을 잘해서 마감이 있는 프로젝트를 어쨌든 하게 돼요. 작년에 너무 겹쳐하다 보니까 <안경>을 끝내면서 조금 텀을 둬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한숨 돌리고 해야겠다 생각을 해서 올해는 다른 작업을 안 시작했고요. 시나리오를 쓰고 있긴 해요.
지금 쓰는 시나리오가 장편인 건가요?
네, 연말까지 1고 정도는 써보려고 해요. 장편하고 단편은 너무 달라서 쉽지는 않은데,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호원: 제작 시스템도 거기에 맞춰서 바뀌어야
지금처럼 혼자서 하듯이 하면 안 되죠.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익숙하지 않지만 안 해봤던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 2025년 6월 11일 @ 서교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