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YEO Eun-a
여은아 감독은 아주 가깝지만 서로 소통이 안 되는 세 사람의 칭칭 얽힌 관계를 그린 <고치>(2015, 한국영화아카데미)로 날개를 폈다. 곧이어 장편 <장미여관>(2018, 한국영화아카데미)을 완성하고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심야상영관> 시리즈로 도시 괴담 여섯 편을 웹에 살포했다. 2023년 공개한 <유령이 떠난 자리>는 2022년, 새해의 도래를 알리는 방송으로 시작한다. 달력은 여전히 2020년 12월에 머물러 있으니 관객은 꼬박 1년이 봉인된 흔적을 탐색하는 셈이다. 실제 우리가 맞닥뜨리는 건 훨씬 긴 누군가의 삶이다.
여은아 감독은 한결같이 어둡고 무섭고 무겁고 슬픈, 공포를 사랑한다. 연초 인터뷰에 본인이 어울리는가 자문했다는 그에게 이보다 어울릴 수는 없다며 (마음속으로 여은아를 세 번 외치며) 대학시절 습작부터 편의점에서 그린 뮤직비디오, 단편과 장편, 웹애니메이션에 현재 제작 중인 옴니버스 프로젝트까지 다채로운 필모그래피에 질문을 쏟아냈다. 2024년 서울엔애니메이터는 발행인/편집자 이경화와 공동편집자 나호원 2인 체제로 운영된다. 1월엔 여은아 감독 인터뷰와 데뷔작 <고치> 리뷰를 선 보이고 2월엔 신작 <유령이 떠난 자리> 제작 노트와 작품 리뷰를 공개한다.
2024년 1월 인터뷰
그 짜릿한 감각
습작들 (~2013)
학부는 상명대 디지털콘텐츠학과에서 게임을 만드셨다고요.
보통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많이 좋아해서들 가는데 저는 그 당시에는 게임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주로 스토리 공포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또 3D로 모델링하는 게 적성에도 잘 맞았고 재밌기도 했고요.
만화 학부라는 데 들어가서 2학년에 전공을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 종이에다가 그리는 거였거든요. 출판만화 가던가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가던가. 그 두 가지를 선택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가는 전공이 저희 전공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었어요.
그때 기억나는 게 한정석 감독님이라는 스톱모션으로 광고나 짧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하시는 분을 통해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됐었어요. 사실 <더 문 (The Moon)> 전에 제가 혼자서 습작으로 만들었던 것들이 있긴 있어요. 스톱모션을 찍긴 찍었는데, 붙여보니까 아니다. (웃음)
<더 문>은 미로 게임을 홍보하기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했어요.
저희 과랑 컴퓨터 소프트웨어과 같이 해서 게임을 만드는데 저는 기획까지만 했어요. 그 게임도 제가 지금 하는 것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어둡고 공포물이었요. 날개를 가진 인간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깃털이 하나씩 떨어지는데 깃털이 다 떨어지기 전에 달까지 가야 된다는 몽환적인 내용의 게임이었죠.
어떤 공포 게임을 좋아하셨나요.
저는 <사일런트 힐>(1999, 코나미)이요. 컴퓨터로도 아마 할 수 있을 거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에요.
고등학교 때는 제가 만화 동아리를 만들었었어요. 부장이었어요. 대학교 가서 방황을 좀 했던 게 만화동아리를 했지만 라이트 했다고 해야 되나 부 안에 오타쿠가 없었어요.
나도 오타쿠는 아니었다.
제 자신이 오타쿠라고 생각했지만 대학교를 갔더니 대화에 끼기가 힘들었어요. 오히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대학교 가서 많이 봤어요.
예고는 아니었고요.
일반고 문과였어요.
[호원] 입시 준비도 따로 하시진 않았어요?
제가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다녔나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취미로 미술학원을 계속 다녔어요. 원장님 친구분이 웹툰 작가였는데, 그분이 강사로 오셔서 고3 때 저랑 만화를 좋아하는 제 친구 두 명으로 만화반을 했었어요. 입시를 체계적으로는 하지 않은 게 가나다군이 있으면은 전부 다 다른 과에 지원을 했었거든요. 수채화로 하나 하고 여기는 칸만화를 그리고 여기는 상황 표현을 하는 식으로 그때는 상황에 맞게 그리면 된다 생각하고 입시를 했었어요. 백영욱 선생님한테 기초를 많이 배웠었죠.
게임을 만들다가 애니메이션이 재밌다고 느낀 계기가 있어요?
인터넷을 통해서 음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B급 영화라든가 B급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하나를 파기 시작하면 연관된 거를 계속 찾아보는데, 좀 많이 봤어요.
그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유리 노르슈테인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체코의 애니메이션 이런 것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영상을 막 보내주고 하면서…
얀 슈반크마예르 좋아하셨겠네요.
정말 좋아했죠.
처음으로 영상을 만들겠다고 한 게 종이배 500개를 접어서 움직이는 스톱모션을 만들려고 했었어요.
운동장에서 모래를 파서 물결치는 걸로 해서. 유투 노래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을 했던 건데, 처참하게 실패를 했죠. 500개를 하나하나 움직인 다음에 한 컷을 찍고 다시 500개를 움직인 다음 한 컷, 이렇게 하는 거잖아요. 그때 성공한 게 한 1초 정도 있었어요. 딱 돌려보는 느낌이 엄청나게 짜릿하잖아요. 그때부터 정말 하루 종일 하고 그 몇 초 돌려보는데 약간 중독이 되면서… 근데 애니메이션 하시는 분들이 다들 그러시지 않을까요?
종이배 하나 크기가 어땠나요?
이(손가락 길이)만 한 것도 있었고요. 클로즈업 용으로 2~30cm만 한 것도 있었어요.
500개를 운동장에 놓으면 전체는 어느 정도였나요?
전체가 한 이(가슴너비) 정도였던 것 같아요.
한 5~60cm?
네, 이게 출렁출렁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500개를 하면 멋지겠다!
맞아요.(웃음)
힘들겠다는 생각은 안 한 거죠.
힘든 거는 항상 생각 안 했어요. 일단은 이 그림을 만들어야 돼.
<더 문>은 드로잉이었어요. 다 수작업으로 했었나요?
<더 문>도 처음에는 스톱모션이었어요. 인형도 만들었고 세트도 찾아보면 집에 있을 것 같아요. 그랬는데 실패를 하고 나서 다시 드로잉으로…
어떤 점에서 실패였어요?
철사로 (뼈대를) 해서 위에다가 살점을 붙였는데, 움직이다 보면 다 갈라지고 인형이 으스러지고.
지점토 같은 거를 붙였나요?
스컬피를 사용했어요.
영 안 돼서 포기하고 그림으로
네. <더 문>은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연필로 그려서 스캔한 다음에 프린트한 거 위에다가 연필을 한 번 더 했었던 것 같아요.
리터치를 하는 건가요?
네, 프린트를 하면은 짜글짜글한 느낌이 나거든요. 그거를 다시 한번 더 스캔을 해서 썼었어요. 그때는 제가 진짜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애니메이션을 했거든요. 종이 한 장에 하나씩 그려서 스캔을 하면 종이 사이즈가 똑같으니까 여러 장을 겹쳐도 위치가 바뀌지 않잖아요. 근데 그때 저는 (종이 한 장) 여기저기에 그려서 합친 거예요.
스캔받아서 위치를 맞춘 거예요?
네.
애니메이션 기초 수업이 따로 없었나요?
저는 3D 애니메이션을 했었어요. 모델링을 하고 매핑을 하고 애니메이팅을 하는데 애니메이팅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거의 포기를 했어요. 그때 3D MAX를 썼었는데, 모델링 뒤에 리깅을 하는 단계에서 포기를 했죠. 거의 찍어 먹어봤다 정도인 것 같아요.
졸업 전시회를 하고 나서 강희진 감독님이 방명록에 관심이 있다고 남겨놓고 가셔서 그때 이후로 대화도 해보고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제가 그때 광고 회사를 들어갔다가 3일 만에 나왔었어요.
출근했더니 집에 안 보내줬나요?
3일 동안 휴대폰 광고를 하나 하고 안 되겠다. 지금 좀 불안정하더라도 뭔가를 좀 더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나왔어요. 아카데미는 1년 과정이니까 부담도 없고 애니메이션을 한 번 더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카데미 들어가서 <고치>를 하게 된 거죠.
하나 건너뛰었는데 2013년에 파나류당의 <내게로> 뮤직비디오가 있잖아요.
제가 취미로 드럼을 쳤었어요. 드럼 선생님이 파나류당 밴드의 멤버셨는데, <더 문> 느낌으로 하나 만들어 줄 수 있냐 해서 저한테 음악만 주고 완전히 알아서 해달라 해서 만든 거예요.
학교를 졸업하고 아카데미에 입학하기까지 1년 정도 공백이 있어요. 사실 <내게로>는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에서 그린 거예요. 용산에 있었는데, 굉장히 손님이 없는 곳이었어요. 콘테랑 목탄을 써서 그렸어요.
흑백이다가 우주 광석 같은 거 나오는 장면은 칼라잖아요.
그런 거는 포토샵에서 컬러를 조금 입히고
음악 듣고 떠오르는 대로
네, 가사에 개미가 나올 거예요. 개미가 손 위를 기어 다니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을 했던 것 같아요.
고치 (~2015)
아카데미에 들어가자마자 <고치>를 기획했나요?
입학을 봄에 했고 7월에 스토리보드 제작에 들어갔어요. 아카데미가 4 쿼터로 나눠져 있었는데, 1~2 쿼터 때는 월화수목금 매일 수업이 있고 실사 영화 과제도 있었어요. 그때는 소재를 정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까지. 3~4 쿼터 때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짜여 있었어요. 교수님으로는 이성강 감독님, 연상호 감독님, 장형윤 감독님 이렇게 세 분이 계셨어요.
초기부터 만들고 싶은 소재가 있었나요?
이야기도 한 3~4개 썼어요. <고치>도 처음에는 더 추상적인 내용이었어요. 제목도 “고치병”이라고 진짜로 벌레들이 나와요. 주인공 미나는 애벌레고 엄마는 진짜 고치의 모습으로 나오고. 곤충들만 나오는 내용이었는데, 인간이 등장하고 대사가 붙는 식으로 바뀌었어요.
목탄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데, 포토샵 하고 TVP로 작업했다고요.
<고치> 전에는 실제로 목탄이랑 이런 걸로 작업했어요. 입학 동기가 4명이었어요. 그중에 TVP를 다룰 줄 아는 언니를 통해서 배운 거죠. 이걸로 하면 간단하게 할 수 있겠다. Artrage라는 프로그램도 사용했는데 주 프로그램으로 저 두 가지를 썼습니다.
이런 게 있는데, 또다시 수작업할 필요는 없지.
네. 또 그전에는 길어봐야 3분이었는데, 이거는 12분이니 넘었으니까요.
소재가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하면서도 무거운 이야기예요.
리서치를 하면서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제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런 걸 다루고 싶어 지더라고요.
첫 번째 등장하는 언덕길에 있는 폐허 같은 아파트는 모델이 있나요?
회현에 있는 시민 아파트도 갔었고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었어요. 그 아파트가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더 문>도 그런 구조로 되어 있거든요. <고치> 같은 경우에는 그 앞에서 여자가 휠체어를 끌고 올라가는데, 굉장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좀 주고 싶었어요. 오르막이어야 했고 아파트 창문도 다 어둡고 주인공 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잖아요.
아파트도 낡아서 재건축으로 다 빠져나가고 오갈 데 없는 사람만 남아 있는 곳인가 싶더라고요.
저는 작업을 할 때 이게 판타지인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인지가 헷갈리게끔 해요.
미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커다란 바퀴벌레는 밟아 뭉개는데요, 감독님도 곤충을 무서워하지 않나요?
네. 그런 편이에요.
평소에도 곤충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나요?
원래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그 작업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걸 들여다봐야 되잖아요. 곤충표본을 파는 곳이 있어요. 생으로 팔기도 하는데 주로 표본을 많이 봤어요. 나방도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고. 영등포에 곤충박물관 이 있는데 거기 가서 원하는 디자인을 골라서 표본이랑 누에나방 알을 사 왔어요. 집에서 알을 부화를 시키고 고치 짓는 걸 관찰했는데, 그때 같이 살았던 친구들이 좀 싫어했었죠.
알이 나방이 되기까지 관찰했나요?
네. 누에나방이 되는 건데요. 5일~2주 정도까지로 수명이 짧아요. 누에나방은 입이 없더라고요.
실질적인 첫 작품인 <고치>가 상도 받고 지금도 보기 드문 공포 애니메이션이어서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을 것 같아요.
졸업 상영회에서는 제가 상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긴장하고 보셔서 내가 그렇게까지 무거운 걸 만들었구나.
등장인물들이 광기 어리잖아요. 남자친구도 집착이 심한 남자여서 그 부분이 웃기긴 하지만 미친 사람 같아서 불안하고 마냥 웃기지는 않았거든요.
녹음을 할 당시에도 제가 설명을 해드렸어요. “미나야 사랑해” 이거 진짜 사랑해 가 아니다. 여자를 정말 나의 소유로 하고 싶은 광기 어린 사람이어야 된다. 왜냐하면 <고치> 안에서의 관계들이 단절돼 있는 느낌을 줘야 되기 때문에 각자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는 느낌을 줘야 되는 거예요. 녹음할 때도 김준한 배우님이 되게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미나 사랑해! 한 10번 외쳐주세요.” (웃음)
완성된 영상을 보면서 녹음을 했나요?
다른 분들이랑 가녹음을 한 번 했었어요. 학교에서 수업 중의 하나로 배우 두 분인가 오셔서 다른 작품도 대본 리딩하는 것처럼 해 주셨어요. 그거를 바탕으로 해서 1차를 만들고 그다음에 다시 입힌 거죠.
본 녹음을 할 때는 실제 영상을 보면서 녹음을 했나요 아니면 대본만 보고 했나요?
처음에는 대본만 보면서 연습을 했었고 녹음할 때는 가편집된 영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고치>를 졸업영화제 일주일 전에 완성했거든요.
<고치>와 <장미여관>의 주인공이 똑같은 이름이에요.
저는 이름을 지을 때 아무 의미 부여를 안 해요. 딱 들었을 때 ‘이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안 들었으면 했어요. 미나는 전혀 그런 게 없어 보여서 했던 거죠.
아카데미 졸업할 때부터 장편을 할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고치>를 완성하고 2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경제적인 부분에서 애니메이션을 계속해야 할지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이벤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더 다시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장미여관 (~2018)
마지막 작업으로 생각했던 장편의 소재는 학교 다닐 때 생각한 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나요?
새로운 이야기예요. <장미여관>은 원래 처음에는 좀 더 수위가 있었는데, 톤 다운이 된 거예요.
톤 다운이 된 이유는 뭐예요?
처음에 애니메틱이 2시간짜리가 나왔었어요. 필요 없는 거를 쳐내는 과정에서 캐릭터들도 많이 사라졌고 이야기가 심플하게 됐죠.
기획 계기는 뭐였나요? 당시의 사건 사고라든지 케이팝의 위상이라든지.
「프로듀스 101」(Mnet, 2016년 1월 22일 - 4월 1일 방영)에 「Pick Me」(아이오아이, 2016)라는 뮤직비디오와 「그것이 알고 싶다」 (SBS,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년-잿빛으로 돌아온 동생’) 편을 보고 쓴 짧은 시놉시스에 살이 붙으면서 장편 시나리오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호원] 그래서 취재를 다니셨어요. 원래부터 뭔가를 할 때 준비를 튼튼히 하나요?
저는 뭔가 할 때 두루뭉술하게 아는 제 상상력으로 하는 거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데를 한번 가보면 원래 이런 이야기와 완전히 생각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조건 직접 현장에 가보고 하는 편이에요.
<장미여관>의 현장은 어딘가요?
영등포도 갔었고 인천 간석 오거리랑, 청량리는 지나가기만 했어요.
현장에 가서 이런 분위기겠다 보는 건가요? 로케이션 헌팅인가요?
성매매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가 힘들잖아요. 그 당시에 어떤 천주교에서 봉사활동을 나가는 노인분들에 껴서 과자 드리고 했는데, 인터뷰가 잘 되지는 않았어요. 아무래도 경계하는 게 있었어요.
장소나 이미지 리서치가 아니라 이야기를 위한 리서치를 주로 하신 거군요.
이미지는 거의 인터넷 서치 위주고 방석집 같은 데는 낮에 가서 외관 같은 거는 많이 찍어 오고.
방석집 거리도 나오지만 “장미여관”은 대저택이잖아요. 이런 성채를 지은 이유가 뭔가요?
일단 그런 모양 여관들이 많았어요. 제가 시작을 했던 것이 반짝반짝하고 예쁜 공간이 있고 그거와 반대되는 공간이 있다. 궁전 모양 여관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을 했어요.
1년 만에 만들었나요?
<장미여관>은 거의 2년 만에 만들었어요. 시나리오 쓴 것까지 합치면 거의 2년 반 정도.
[호원] 제가 이 작품의 크리틱을 들어갔는데, 장편 시나리오까지는 크리틱이 필요하겠지만 그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계속 뭐라고 코멘트를 하면 감독이 길을 헤맬 것 같더라고요.
헤맸습니까?
저는 크리틱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주변에 계속 물어봐요.
[호원] 사적인 자리랑 아카데미의 크리틱은 전혀 다른 분위기라
그렇죠. 근데 저는 크리틱을 하면은 어쨌든 다 참고가 돼요. 진짜로 나랑 안 맞는 분도 열 마디 하시면 그 속에서 아주 조그마한 아이디어라도 제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잘 빼먹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장편을 하면서 제일 힘든 거는 어떤 부분이었어요. 외주 업체?
저는 초보 감독인데 실력자들이 같이 붙어서 하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작업을 스텝에게 지시했을 때 그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은 경우 제가 작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 요. 모든 부분을 어느 정도 제가 따라가면서 해야 됐던 것들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작업 일정 관리 부분은 계획한 대로 진행이 된 편이었나요?
PD님이 일정 관리를 잘해 주셨죠.
팝 산업과 성매매 산업 양면을 보여주고 외모에 대한 욕망과 환상을 처절하게 깨부수는 건 감독의 냉철한 시선인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스트레스 해소인지 궁금했어요. 우선순위가 비판인지 공포인지,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쾌감을 주고 싶었는지.
비꼬는 면도 있고 이 모든 일이 하나의 세계에서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두 가지의 상반된 공간을 다루고 결말에 그 공간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결말을 쓰거든요. 제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공포보다 비판에 가까운 것 같고, 계속 토론거리가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작품을 통해서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길 때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심야상영관 (~2021)
그리고서 창의인재동반사업으로 웹애니메이션 <심야상영관>을 만들었어요.
<장미여관>을 하고 나서 또 그런 거는 못하겠더라고요. 단순하고 되게 가벼운 걸 하고 싶어서 만들었죠.
[호원] <장미여관>이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목적지였어요 아니면 내 길을 찾아가기 위한 경유지 중 하나였어요?
저는 그때그때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거든요. 지금도 그렇고요.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할지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갑자기 실사를 할 수도 있고 <심야상영관>을 또 할 수도 있고 예상할 수 없어요.
장편 완성하고 나서 애니메이션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건가요?
그만뒀다가 다시 할 수도 있는 거고 기회가 오면 하는 거고 저는 그렇게 편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심야상영관> 은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봐야지였나요?
일본의 야미시바이 (闇芝居)」(ILCA, 2013~)라는 공포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있어요. 그거를 제가 좋아했었거든요. 한국의 야미시바이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SCP로 만들려고 했었거든요.
SCP가 뭐예요?
참여형 도시 괴담 프로젝트 같은 건데, 사람들이 상상 속의 몬스터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다 같이 살을 붙여나가는 거죠.
공동 창작인가요. <심야상영관> 끝부분에 제보 이메일 주소가 떠요. 혹시 메일 보낸 사람 없어요?
외주 메일이나 다른 채널에서 작가로 일할 생각 있냐. 우리는 구독자 몇 명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혹시 들어오실 생각 있냐 이런 메일들이…(웃음)
창의인재 이후에 더 작업을 하신 거예요?
두 편(<뱅뱅이(상), (하)>, <치충>)이 창의인재고 sba에서 지원받아서 세 편(<고로나 바이러스>, <환청>,<차박>)인가 만들었고요. 그다음 한 편은 제가 개인적으로 만들어서 올린 거예요. 근데 하나를 올리고 나서 저희 집 고양이가 아파서 끊겼을 거예요.
<심야상영관>의 이야기는 매번 떠올리는 거예요 아니면 이야기보따리가 있나요?
<심야상영관>은 제가 시놉을 써놓은 게 엄청나게 많아요. 요즘에도 뭔가를 해야겠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면 가끔 찾아봐요. <고로나 바이러스> 에피소드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확진자들의 동선 파악을 하는 데 엄청나게 열을 올리고 했던 실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제가 상상력을 보태서 썼던 이야기고 <치충>은 한국의 괴담 한국의 요괴를 소개하는 책에서 보고 시작을 했고, 이야기마다 출발점들은 다 달라요.
하지만 공포 외길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웃음)
다른 쪽은 전혀 유혹이 느껴지지 않나요 로맨스라든가
로맨스를 해도 이토 준지 작품처럼 약간의 로맨스가 있는 공포가 되지 않을까.
없었던 일 (2023~)
네. 세 가지가 색깔이 확실하게 달라요.
프리 프로덕션이면 애니매틱스까지 나오는 거예요?
네. 전체 애니메틱스랑 샘플 영상 정도.
공포라는 대전제만 공유했나요 아니면 조금 더 구체적인 공통 주제가 있나요?
세 가지 이야기의 주제가 각자 살아있으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주는 큰 주제가 있는 형식이에요.
구체적으로 감독님의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절박한 심정의 인물이 점차 강한 신념을 가지면서 위험에 빠지는 내용이에요.
[호원] 이번에도 취재가 들어갔나요?
사이비종교 마을이나 폐종교시설 같은 곳을 방문했는데 출입이 아예 불가능한 곳도 있고 쉽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이 드론으로 찍은 영상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많이 참고했어요.
[호원] 현장에서의 고민이 강렬한데, 작품으로 옮기는 게 되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취재가 이미지를 구상하는 거 외에는 도움이 안 됐다고 할까. 그 사람들을 실제로 인터뷰를 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호원] 작업을 위한 디테일 사전 조사 정도만 하는 거지 충실하게 팩트를 재현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 자체가 과장되고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예요. 어떻게 보면 <장미여관>이랑 비슷하고 <고치>랑도 좀 비슷하고.
인터뷰 2024년 1월 10일 @ 방배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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