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5_SPECIAL_JUNG Seunghee
- seoulanimator

- 3시간 전
- 21분 분량

<빛과 동전> 이후 두문불출했던 정승희 감독은 우주에 대해서 질문하는 아이(<우주보자기>)와 어두운 방 안에서 마당에 묶인 개를 지켜보는 소녀(<안개 너머 하얀 개>), 장난감 총을 들고 숲 속을 휘젓는 어린이들이 (<보이지 않는 눈>) 등장하는 단편을 들고 돌아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스템 얘기를 했던 어른이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얘기하는 어린이가 된 듯했다. 보이는 것이 생각을 지배하기도 하고 생각이 보는 것을 지배하기도 하니까 자주 이사를 다녔다는 정승희 감독은 그 와중에 남은 것과 잃어버린 것들에서 정체성 문제에 도달했다. <기억은 먹구름>은 개인의 눈과 사회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까 고민하는 어른이 등장한다. 이는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창작자와 겹친다. 중편을 너머 장편을 꿈꾸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2025년 10월 스페셜 : 정승희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우주보자기 (2015)
언제 다시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지 않던 기간에도, 일러스트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언젠가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들을 구상했어요. 그림책이나 그래픽노블, 애니메이션 등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보드도 만들고 캐릭터 배경 이미지도 만들고 그랬어요. <우주 보자기>나 <안개 너머 하얀 개>나 <보이지 않는 눈>은 그때 구상했던 작품들이에요.
<우주보자기> 지원은 2013년쯤 받았는데, 기획한 거는 2010년쯤이었어요. 그러니까 실제 공백은 5년 정도인 셈이죠. 연출이나 스토리를 좀 달리해서 가능하면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그림책이나 그래픽노블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독립출판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고 기성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려면 편집자 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작업이라서 제가 의도한 방향으로 마음껏 작업하기가 어려웠어요. 또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다 보니 애니메이션 움직임이나 연출이 잘 맞을 것 같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더 강해지기도 했고요.
그 당시에, 건강문제도 있고 주변에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서, 조용히 머물며 창작도 할 곳을 찾다가 2010년에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우주보자기>는 제주도 내려가기 전, 프랑스 파리에 잠시 머물 때 구상을 시작했어요. 결혼해서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가 아는 분 집이 비어있다고 놀러 오라고 해서 일거리를 싸들고 떠났거든요.
파리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도서관이나 서점 같은 데를 돌아다니며 책도 보고 작품 구상도 했어요. 그러다가 <우주보자기>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천을 사서 염색도 해봤고요. 처음엔 친구가 안 쓰는 커튼을 줘서 거기다 일반 물감으로 했는데 만져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몽마르트르 근처 가면 동대문처럼 천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실크천을 조금 떼왔어요. 처음엔 모르고 아무 염색약이나 칠했더니 뻣뻣해지더라고요. 실크 염색하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알고 화방 다니며 물감도 사고 페인트칠할 때 쓰는 비닐도 구해서 방에 쫙 깔아놓고 염색을 했어요. 그렇게 염색 테스트 몇 개 찍어보고 스토리보드 만든 거를 가지고 돌아왔어요.
한국 와서도 계속 작업을 하려고, 스토리보드에 나오는 아이 캐릭터 그린 종이도 오려서 염색한 천에 올리고 촬영을 했는데, 눈에 보이는 대로 촬영이 안 되는 거에요. 처음에는 디카로 찍었는데, 오브제 촬영 방식으로 작업한 건 처음이라 실내 촬영 조명 개념이 없었던 거죠. 실내에선 색이나 디테일이 잘 안 찍혀서 밖에 나가서 촬영했더니 빛은 좋은데 바람이 불어서 못 찍고 그런 식이었어요.
제주도 가서도 '햇볕이 좋으니까 색은 좋네' 그러면서 사다리 타고 찍고 했는데, 바람 때문에 도저히 내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 수가 없는 거예요. 카메라도 이 카메라는 안 되겠다 해서 좋은 카메라 사고 또 검색해서 조명도 사고 그랬어요.
일단은 먼저 해보시는 거군요.
네, 예산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처음엔 가능한 수준에서 시도해 보다가 원하는 게 안 나오면 점점 무리를 해서라도 환경을 만들어 갔던 거 같아요.
호원: 제작지원을 받은 상태였어요?
그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작지원을 꼭 받아야만 창작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외주일 하는 틈틈이 구상한 작업들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주에 내려가니 하던 일은 크게 변한 게 없는데 희한하게 더 여유가 생겨서 제 작업할 시간이 더 많아지긴 했어요. 직접 손바느질하고 미싱 돌리고 해서 우주보자기 캐릭터로 인형도 만들었는데 제주도를 떠난 뒤로는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안 하게 되네요.
그래서 제가 작업하는 공간을 중요시해요. 어디서 어떤 시선으로 뭘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각도 태도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주보자기는 그렇게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심정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 같아요.
제주도에 가서는 촬영만 했나요?
아뇨, 제주에서도 추가로 염색도 하고 캐릭터도 더 만들어서 촬영 테스트를 했어요. 가끔 비행기 타고 서울 오면 동대문 들러서 천도 사고요.
호원: 염색 작업하면서 폐기하거나 유보한 것들도 많아요?
그러기도 했어요. 천의 두께 질감 조직에 따라 염색이 잘 되는 천과 움직임 표현이 잘 되는 천이 달라서, 색 표현은 좋은데 움직임 표현이 힘든 경우도 있었고 반대도 있었죠. 원했던 느낌이 안 나오면 폐기하고 다시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씬마다 천도 조금씩 다르고 염색 방법도 다르게 했어요. 아쉬운 부분이 있을 때 더 원하는 느낌을 살리려고 조금 더 그렸다가 망치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멈출 수 없어 더 칠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작업하기도 했고요.
호원: 전체를 염색하고 별을 점찍듯이 한 거예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천을 펼쳐놓고 그리는 경우랑,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 묶어서 색을 칠한 후에 어떤 패턴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색을 더 해 가면서 그리는 방식이었어요. 별은 어느 정도는 뿌리는 방식으로 한 다음에 별이 빛나는 것처럼 하나하나 번지게 덧칠하고 빛을 더 하고 다시 점을 찍는 식으로 선택적으로는 더하는 작업들을 한 거예요.
텍스처를 받아서 디지털로 작업한 게 아니고 배경은 전부 수작업으로 한 거예요?
안 그래도 디지털로 한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합성하거나 편집하는 건 컴퓨터에서 했는데, 천은 수작업으로 염색하고 캐릭터는 종이에 연필 드로잉해서 소스는 하나하나 촬영했어요. 한 번에 다 같이 찍지는 않고 천을 당기는 것만 찍어서 아이랑 합성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작업했어요.
호원: 중심에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텐션도 있고 여기서 잡아가는데 저기서 다시 나오면서 이어져 있는 텐션도 있고 그런 것들이 결국 주름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죠.
맞아요. 주름 잡히고, 감쌌다 펼쳐지고, 말리고 솟아나고 겹치고 출렁이고 당겨지는 등 다양하게 변형되는 보자기의 특성을 살려서, 우주를 형상화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그냥 ‘천’이 아니라 우주의 모습이 염색된 ‘보자기’라면 그 자체로 우주를 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주름을 표현하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핀 같은 거 꽂아서 모양 잡아가면서 한 컷씩 스탑모션으로 촬영하는데 갑자기 핀이 쑥 빠져버리거나 하면 앞에 걸 다 버려야 하니까 난감했어요. 그럼 다시 또 하고, 나중엔 핀 꽂고 물 묻혀서 모양 잡아서 찍고 말렸다가 해서 다림질도 엄청 많이 했어요. 막 감기고 이런 건 나중에 철사를 쓰기도 했고, 터널 같은 모양은 투명 아크릴통에 감고 모양 만드는 식으로 하기도 했어요.

작품의 캐릭터는 평면이잖아요?
네, 3차원적 보자기에 대비해 한 차원 낮은 2차원적 존재로 설정해서 종이인형으로 만들었어요. 움직임 때문에 팔다리 분리된 인형을 여러 세트 만들었고, 동물 같은 경우는 종이를 휘거나 하는 식으로 굴곡을 주기도 했어요.
호원: 다람쥐가 돌리는 바퀴가 어떨 때는 평면인데 어떨 때는 깊이감 줘서 투사했잖아요. 캐릭터를 세워놓고 카메라 각도 맞춰서 찍은 건가요?
네, 캐릭터를 세워놓고 각도를 바꿔가며 촬영하긴 했는데, 캐릭터랑 행성에 달린 바퀴 회전하는 거랑 따로 촬영해서 합성했어요.
본격적인 촬영은 제작지원을 받고 난 다음에 들어갔나요?
스토리보드 만들 때 보자기 염색해서 촬영해 둔 거랑 캐릭터 일부 촬영했던 걸 본 작품에 사용하기는 했는데, 애니메이팅 작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한 건 제작지원받고 나서 했죠. 다른 일을 줄이고 이 작업을 혼자서 한다면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해 스태프를 안 쓰고 제가 거의 작업했어요. 제작지원을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장면들을 시작한 거죠.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컷아웃처럼 한 거예요?
아뇨, 직접 종이에 얼굴, 몸, 팔, 다리, 다 따로 그리고 모자 만들어 씌운 걸 동작 만들어서 하나씩 움직이며 찍은 것도 있고요, 움직임에 따라서는 얼굴, 몸, 팔, 다리 따로 촬영해서 컴퓨터에서 합성만 해준 것도 있어요. 일반적인 컷 아웃이나 디지털 컷 아웃처럼 팔 하나 그려서 움직이고 그러는 게 아니라 2D 드로잉 애니메이션처럼 프레임마다 모든 관절을 다 한 장씩 일일이 그려서 촬영한 걸 컴퓨터로 불러서 합성한 것도 있고요.
캐릭터는 연필로 그렸는데, 아이가 쓴 모자는 다른 재질이잖아요. 그건 그림에다 일일이 붙였어요?
네, 모자는 천으로 만들어서 얼굴에 씌우고 얼굴, 몸, 팔, 다리 다 붙여서 촬영한 것도 있고요. 움직임을 촬영한 다음에 나중에 캐릭터 몸에 합성한 것도 있어요. 모자는 진짜 움직임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원래는 실크 같은 걸로 했다가 니트 같은 걸로 만들어서 씌우는 작업은 나중에 했죠.
<정글> 때와 마찬가지로 만드는 방법하고 주제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모자를 따로 만든 건 캐릭터에 움직임을 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주제와도 관련이 있어요. 보자기는 평면처럼 보이지만 3차원, 아이는 종이인형이라 2차원인데 아이에게도 3차원적인 특징을 주고 싶었던 거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고차원적 잠재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제에 맞는 적절한 표현방법을 찾는다는 게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같은 스타일의 작업을 계속하게 되면 즐겁지가 않고 더 힘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마다 마치 첫 작품처럼 하게 되니까 늘 시행착오가 많고 결과물도 생각했던 것만큼 표현하지 못해서 때로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호원: <우주 보자기>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주 속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엔딩 크레디트에서 푸엥카레와 우주에 대해서 상상을 한 과학자들도 말씀을 하셨어요. 평행우주의 멀티플은 사실 커튼 같은 거라는 설명을 하는 과학자들도 있어요. 우주론에 대해서 공부를 어느 정도 한 상태에서 보자기가 결합이 된 거예요?
처음부터 찾아보고 한 건 아니었어요. 보자기는 펼치면 납작한 2차원이잖아요. 그런데 주름을 잡거나 비틀거나 매듭을 짓는 식으로 자유자재로 변형이 되기도 하죠. 제가 보자기를 선택한 이유는 그런 보자기에 원근법을 이용해 3차원 그림을 그린 다음 변형하면,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고차원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늘 우주에 관해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이 많은 주제이긴 했어요. 보통 우주를 무한하다고 하는데, '무한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가 저의 관심사였어요. 그리고 지구가 어떤 모양인지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에 삶이 달라진 것처럼 우주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삶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2차원의 눈으로 보면 3차원의 지구가 무한하게 느껴지듯이, 내가 3차원 시각의 한계에 갇혀 무한하다고 여기는 우주도 내 시각의 한계를 벗어난 더 높은 차원의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 무한한 모양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사람들이 세상사도 기존에 알던 관념에서 벗어나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답답했던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이미 3차원 시각과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무한한 우주를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차원으로 낮춰서 3차원 우주가 그려진 2차원의 보자기를 활용해 고차원을 표현한다면, 익숙한 차원을 뛰어넘어 우주의 신비를 상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주가 그려진 2차원 평면의 보자기가 주름지고 말리고 비틀리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면 변화무쌍한 우주의 모습과 끈 이론, 막이론, 웜홀, 평행우주 등 현대우주론의 가설을 표현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와 관련된 과학이론이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갖고 그 질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과학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현대우주론의 가설들을 판타스틱하게 표현하기에 적절하다는 확신이 들어서 개념을 더 발전시키기도 했어요. 과학자들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영향받아 추론하고 증명하고 우리는 또 과학이론을 공부하며 상상력을 발휘하잖아요. 저는 소설 볼 때도 그렇고 SF 같은 경우도 그런 자극을 주는 게 좋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독립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이런 식의 SF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봐줄지 걱정도 됐는데, 제가 관심 있던 주제라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안개 너머 하얀 개 (2018)
<안개 너머 하얀 개>도 <우주보자기>랑 <보이지 않는 눈>랑 같은 기간에 구상을 하셨다고 했어요.
그 배경이 제주예요. 2010년도에 내려가서 제주에 있는 2년 동안 구상했고 스토리보드는 <우주보자기>랑 같이 만들었어요. 제작지원은 2016년에 받았나 그래서 2017년, 2018년에 상영을 했던 것 같거든요.
제주에서 모티브가 되는 개나 소녀를 봤나요?
사실 최초 모티브는 안개였어요. 한라산을 넘나들 때 안개가 끼면 앞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딱 제가 있는 주위만 보이는 상황으로 차를 타고 가야 해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전모를 알 수 없고 오직 눈앞의 세계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안개는 앞서 언급한 무한한 우주와도 닮았고, 우리 인생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주변에 누군가 분명 있지만 보이지 않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쪽으로 나아가면 뭔가가 보이잖아요. 또 분명 내가 지나온 길인데 뒤돌아보면 안개에 가려져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요. 그런 안개를 보면서 내가 전부터 하고 싶었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안개를 통해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에는 묶여있는 개들도 많고 돌아다니는 개도 많아요. 제가 이사 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주택 2층에서 내다보니 뒷집에 묶여 있는 개가 보였어요. 누가 드나들기는 하는데, 사람이 사는 집 같지는 않았어요. 비쩍 마르고 지저분한 개가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걸 보며 신경이 쓰였는데, 어느 날 그 개가 사라졌어요. 그 순간 안개와 그 안개의 희뿌연 색을 닮은 하얀 개를 연결시켜 기획이 시작된 거였어요.
작품 안에서 개는 친구도 찾아오고 같이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오히려 소녀가 집을 안 나가고 있죠.
처음에는 묶여 있어서 나가지 못했고 말뚝이 뽑혀서 한 번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잖아요. 소녀는 나갈 수 있지만 나가지 못하는 아이여서 개가 나가길 바랐는데, 다시 돌아와서 조금 화가 난 거예요. 자유로울 수 있지만 스스로를 가둔 아이와 묶여 있는 개를 대비해서 서로에게 감정 이입하는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은 다른 작품만큼 기법에 욕심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거 수채화로 다 그린 거예요. 욕심 많았어요. (웃음)
호원: 안개는 형태라는 게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면서 안개를 어떻게 그렸을까 했어요.
그래픽노블로 만들려고 테스트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스토리보드를 아예 그림책처럼 만들기 시작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없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한 끝에 나름대로 적절한 표현을 찾았어요. 자세히 보면 강아지나 소녀도 내부를 그린 게 아니라 외곽을 그리는 식으로 표현을 했어요. 하얗게 보이는 안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하얀 걸 칠한 게 아니라 외곽의 라인이 없어졌다 있어졌다 이런 식으로 안갯속에 사라지는 방식으로 수채화로 한 장씩 그린 거예요. 컴퓨터 안에서는 그 맛을 살리기가 쉽지가 않아서 수작업으로 했는데, 작화는 디지털로 했어요. 그거를 프린트해서 채색을 한 거예요. 채색을 하면서 문제가 커진 거죠.
호원: 아트웍을 촬영한 분량도 있고 스캔을 한 분량도 있어요?
처음엔 촬영을 했다가 나중에 고급 스캐너를 사서 했어요. 촬영을 하면 그 자체로는 좋아 보이는데, 합성을 하려고 배경을 하얗게 빼면 어차피 다 날아가는 거예요. 스튜디오에도 맡겨 봤는데, 스튜디오에서 찍어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필름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스캐너를 사서 하나하나 스캔받았어요. 애니메이션이 되려면 반짝반짝 흔들리면 안 되니까 배경 날릴 건 날리고 위치를 딱 맞췄어요. 움직임이 중요하고 많으니까 제가 혼자서 하기 힘든데, 수채화로 그릴 수 있어야 되니까 미술 쪽에서 구직하는 분들을 구하면서 또 우여곡절이 많았죠.
호원: 수채화는 어떤 종이를 썼어요?
경제적으로는 안 맞지만 수입지예요. 일반 종이에서 구현되는 거랑 번짐이 달라요. 수입지 중에서 어느 정도 표현이 되는 거를 사서 잘라서 썼어요.
디지털로 애니메이션을 하고
라이트 박스에 라인 프린트 한 걸 깔고 수채화 종이를 올려서 라이트 껐다 켰다 하면서 한 거예요. 그래서 노안이 확 왔어요.
붓으로만 전부 다
라인을 비춰보면서 바깥을 수채화로 강약을 주면서 그린 거죠. 칠하는 데가 있고 안 칠하는 데가 있고 옅은 데가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서 외곽은 조금 진하고 안개 쪽으로는 퍼지는 식으로 칠한 거거든요.
수채화 종이는 두께가 있었을 텐데
네 그래서 프린트할 때 좀 진하게 했는데 그래도 선명하게 보이진 않아서 힘들었죠. 아마도 그때 시력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이거 왜 이렇게 초점이 안 맞아?’ 이랬는데, 노안이 온 거예요. 밝으면 또 잘 안 보이니까 어둡게 해 놓고 라이터 박스를 하도 봐서.
호원: 부천만화축제에서 전시가 됐다고는 들었는데, 정식 출판은 안 된 거죠.
코로나 때였나 전시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가보니 부스에서 상영도 하면서 도서 전시도 하더라고요. 독립출판 지원을 받아서 출판사 통해 인쇄를 하긴 했지만 앞뒤가 비쳐서 판매는 어려웠어요. 명암을 살린 수채화 느낌을 표현하려면 두꺼운 수입지를 써야 했는데 그건 단가도 안 맞고 책도 너무 두꺼워지더라고요.
호원: <안개 너머 하얀 개>는 소녀를 통해서 자기 연민도 보여주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투사하잖아요. ‘감독님이 이런 서정적인 작품도 하셨네’
그동안 서정적인 작품을 할 기회가 없긴 했지만, 제가 주변 상황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 당시 제 정서가 작품에도 어느 정도 투사가 되었을 것 같아요.
호원: 보통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아이의 시선으로 초기 작품을 하고 어른들의 시선으로 다음 작품을 만들죠. 감독님은 초기에 어른의 시선으로 사회를 보고 공백기 지나서 아이 같은 시선으로 세 작품을 뽑아내요. 근데 이 세 아이가 다 다른 거예요. <우주보자기>의 아이는 자기의 한정된 시야로 세상을 보려고 하고 <안개 너머 하얀 개>의 소녀는 시선이 되게 방어적이고 <보이지 않는 눈> 같은 경우는 겁 없이 덤비고.
보이지 않는 눈 (2021)
보이지 않는 눈>은 제목이 아이디어 구상할 때부터 나왔어요?
시작부터 그렇게 정하긴 했어요. 너무 직접적인 게 아닐까 더 좋은 게 있다면 수정할 생각은 있었는데, 만들고 나서 내용적으로 봤을 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받아들여질 것 같다. 제목이 오히려 상상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꾸지 않은 거 같아요.
실제로 눈이 나빠지기 전에 기획안은 나왔던 상태였던 거죠.
제목이 제 시력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요. (웃음) <보이지 않는 눈>이라는 제목이 이중적인데요, 보는 이의 눈보다는 보이는 대상의 눈에 초점을 두었어요. <안개 너머 하얀 개> 작업하면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 신청해서 2017년에 선정됐어요.
<보이지 않는 눈>을 떠올린 계기는 뭔가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되고 그 사람 때문에 힘들고 안타까운 경우도 있는데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을 쭉 했던 것 같아요. 또, 앞에서 이미 말한 것 같긴 한데 평소에 눈에 보이는 세계 이면의 존재,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각적 한계, 편견, 사상 같은 것들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어렸을 때 친구들하고 산에 새 잡으러 갔다가 허탕치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어요. 어린이책 작업 했던 경험도 있고 해서, 그걸로 뭔가 풀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왜 아이들은 새를 잡지 못했을까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이 무언가를 잡으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 때문에 차마 해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사형집행관이 사형수 눈을 보면 죄책감이 생겨서 사형수의 눈을 가린다는 걸 본 것 같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죄의식과 타인의 눈에 담긴 내면을 느낄 때 생겨나는 동질감처럼 눈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전의 독립영화는 영화관에서만 상영이 되는 거였지만 제가 다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영화관에서 상영된 이후에 컴퓨터나 OTT 플랫폼에서 볼 수 있게 됐어요. 한 번 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영화처럼 계속 살펴보고 그림책처럼 분석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여러 가지 코드를 심은 것 같아요. 원근을 통해서 보는 차이 그리고 위, 아래 빛과 어둠, 착시를 통해서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시각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연출로 표현하려고 했죠.
<보이지 않는 눈>에서 경이로운 포인트는 명암 표현이에요.
그거는 TV페인트에서 했거든요. 옛날 같으면 페인터 같은 느낌으로 그릴 수 있는 툴이 있더라고요. 프레임을 보면서 연필로 그리듯이 그린 거죠. TV페인트를 배우면서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는 편집도 할 수 있더라고요. 다 해놓고 편집하는 거랑 그리면서 편집을 하는 거는 연출할 수 있는 폭이 다르더라고요. 배경을 밑에 깔고 그 위에 캐릭터를 올려서 배경과 캐릭터를 동시에 애니메이팅 하고 채색하니까 카메라 워크가 역동적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도 할 수 있었어요.
가장 수작업 같이 보이는 게 가장 디지털적인 작업이네요.
근데 하나하나 그린 거니까 디지털 연필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수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죠. 처음에는 기간 안에 다 하기 힘들어서 러프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명암을 추가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나중에 디테일하게 더 디테일하게 그러다가 <기억은 먹구름> 작업이 겹쳐서 포기하고 다음 작업에 들어갔어요.
전통 드로잉처럼 보이는데 광각으로 왜곡된 화면도 있고 카메라가 핸드헬드처럼 공간을 누비면서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에요.
숲 속의 동물과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듯 쫓고 쫓기며 모험하는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연출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일상적인 공간을 벗어난 숲 속에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고, 보려 하지 않았던 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어요.

그런 연출은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살던 지역 주변에 산이 있어서, 직접 산을 오르며 찾아다니는 앵글로 찍어보기도 하고, 시선도 바꿔가면서 촬영하기도 했는데 그런 자료를 종합해서 그렸어요.
청설모 찾아서 숲에 따라 들어가기도 했어요. 얘는 한 번 나타나기도 힘든데, 쫓아가면 확 도망가 버리더라고요. 그걸 따라다니는 거는 쉽지가 않아서 카메라를 설치해 보기도 했는데 너무 빨라서 쉽진 않았어요
작업 할때 개미도 키워봤어요. 개미를 어떻게 찍나 고민하고 있으니, 남편이 개미 키우는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몇 마리나 사셨어요?
정확하게 기억 안 나지만 100마리 단위로 팔아요. 움직임을 봐야 되니까 젤리 같은 거 주고 통로로 오게 해요. 사실 개미는 밖에서 잘 죽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집에서 키우다가 어떤 애가 죽어 있는 거 보면 죄의식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잘못해서 개미가 뛰쳐나오면 어디로 들어갈지 모르니까 놀라서 남편한테 막 죽이라고 하고선 마음이 불편해서, 결국에는 옆에서 타고 오르는 거 좀 찍은 다음에 산에다가 방생했어요.
보통은 인터넷으로 동물 영상 같은 거 찾아서 움직임 연구하는데, 감독님은 ‘청설모를 보려면 산으로 가야지’였나요?
청설모 다큐도 보긴 했어요. 청설모 생태를 보기도 하고 얘가 이렇게 내려오는구나 이해했는데, 잘 촬영된 앵글을 보면 저도 모르게 영향받을 것 같고 그래서 나만의 시선으로 작업을 하려면 직접 촬영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찍어보니까 휙 날아가 가지고 배경만 남아 있더라고요. 먹을 거 주고 나무 아래서 하루 종일 기다려 보기도 하고, 쫓아가다가 거미줄에 걸려서 두드러기 나고 호흡곤란이 와서 약 먹고 병원 가기도 했어요.
총 쏘는 것도 시선을 봐야 되니까 장난감 총 같은 거 들고 가서 산에서 촬영했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긴 했을 거예요. 그런 과정도 재미있었어요.
호원: 청설모가 제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좀 긴 것 같았어요.
강아지들도 키우다 보면은 얼굴 다 구별하는 것처럼 청설모도 생긴 게 다양하더라고요. 어떤 애는 사납기도 하고 아기같이 예쁜 애도 있고 몸도 다 다르더라고요.
그중에서 마르고 길쭉한 애가 뽑힌 건가요.
남편이 양재시민의 숲을 산책하다 청설모를 봤다는 거예요. 회사에 가면서 저 혼자 내려주면 찾으러 다녔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통통하고 덩치가 컸던 것 같고, 아직 어린아이일수록 마르고 길쭉했던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제가 그리다 보니까 그렇게 그렸을 수도 있어요.
호원: 마음에 드셨나 봐요. 얘가 <기억은 먹구름>에도 나오더라고요.
거기서는 어떤 동물을 쓸까 하다가 청설모가 기억하고 연결됐어요. 청설모는 도토리를 겨울에 먹기 위해서 낙엽 속에 숨기는데, 나중에 기억을 못 해서 못 찾는 것도 있대요. 못 찾은 도토리는 나무로 자라기도 하고요. 도토리를 저장하고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다시 도토리나무가 자라고... 그런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초반에 애들이 우유팩을 과녁으로 총 쏘기를 하는데. 우유팩에 다람쥐 같은 게 그려져 있어요.
제가 숲 설정을 하려고 청설모 잡는 거에 대한 걸 찾아봤어요. 보면 중간중간에 나무에 망이 있어서 걸려서 죽어 있는 청설모도 있거든요. 청설모가 덫이 있는 걸 피해서 내려오기도 해요. 청설모가 호두였나 뭐를 먹어서 유해하다고 해서 잡았던 거예요.
산불조심 경고하는 것처럼 중간중간에 현수막이 있었죠.
그렇게 공고도 하고 진짜 청설모가 걸려서 잡히는 자료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농장이 있는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아무 죄의식 없이 장난감 총질하고 놀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처음에 얘네들이 쫓아갈 때 보면은 어른들이 총 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청설모를 사냥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곳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막상 걔네가 청설모를 맞닥뜨렸을 때 쏠 수는 없었고, 하늘 멀리 날아가는 새를 향해 허공에 총질하죠.
청설모 브랜드 우유는 아니고
애들이 그림 그려놓고 맞추면서 놀고 있었던 거죠. 우리를 지켜보는 다른 눈으로 CCTV 같은 것도 넣었고요.

호원: 이 작품은 아이컨택을 하면서 관객들을 쪼는 거예요. 애들이 겨냥을 했을 때 눈은 겨냥을 당한 청설모 입장에서 바라보는 건데, 관객 입장에서는 쟤네가 나를 공격할 수도 있겠네.
그 장면은 화면 밖의 관객의 시선도 염두에 두고 연출했어요. 그리고 그 숲에 사는 개미는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존재, 밟았는데도 밟았는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잖아요. 시선에 따라 개미도 엄청 큰 인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이들도 숲 속 개미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존재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애들을 멀어지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기도 하는 식으로 연출했던 것 같아요.
보통 밝은 데서 어두운 데는 볼 수 없는데 어두운 데서 밝은 데는 보이잖아요. 밖이 어두워졌을 때 불을 켜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만 낮에는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잖아요. 거기에 한 번 봤을 때 보이지 않지만 잘 보면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들도 심어놓긴 했어요.
개미는 언제 들어온 거예요?
시작부터 있었어요. 청설모랑 대비되는 작으면서도 집단적인 거를 생각하니까 개미가 떠올랐어요. 개미는 다른 거에 비해서 작고 우리가 쉽게 죽일 수 있지만 또 군집을 이루고 있잖아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한 마리도 의미가 있는 존재고 얘네들이 크게 모였을 때 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 기획해서 지원받았을 때는 무리 지어서 쫓아오는 장면이 더 있었거든요. 근데 약간 작위적인 것 같아서 삭제하고 마지막에 임팩트 있게 표현하는 게 낫겠다고 바꾼 거예요.
우리 개개인도 하나의 우주 같은 소중한 존재이지만, 인터넷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든 현실에서 보이는 사람이든 뭉뚱그려서 어떤 부류로 매도당하고 함부로 취급받는 경우가 있잖아요.
마지막 부분에 화나서 몰려가는 개미들이 나오잖아요. <정글>의 악몽이 떠오르더라고요. 이런 개미나 벌레 이미지는 본능적으로 혐오하는 이미지인가요.
개인적으로 벌레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존재를 엄청 무서워하긴 해요. 그런데, 마지막의 그 개미의 얼굴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거는 얘네들이 복수할 거다 이런 의미라기보다는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눈이 크게 확대되면서 관객과 시선을 딱 맞춰서 비로소 생명체로 존재를 강하게 인식시켜 주는 의미였어요
그리고 개별적으로 잘 보이지 않고 존재감이 없는 존재라도 집단을 이루게 되면 상대에게 강한 존재로 인식되잖아요. 음악도 김동욱 감독님이 그 부분부터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하시며 많이 고민해서 작업해 주셨던 거 같아요.
호원: 뒷부분에 땅 입장에서 개미를 밟으면서 아이들 발자국 지나가는 거 극장에서 보면서 너무 멋있기도 하고 진짜 무섭다는 것도 느꼈어요.
청설모가 예뻐서 괴롭히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작은 개미처럼 징그럽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아 하나의 생명체로 감정 이입이 잘 안 되면 함부로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시선으로 개미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개미의 시선으로 사람을 보여줘서 개미도 사람과 비슷한 존재처럼 느끼는 상태에서 밟고 지나가니 무섭게 느껴질 수 있죠.
호원: 작품 엔딩 크레디트가 한 페이지짜리인데, 움직이잖아요.
개미가 화면에 가득 차면서 끝났는데, 크레디트가 나오는 동안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개미들의 전진이 계속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호원: 명확한 의도 파악은 안 됐지만 히치콕스러웠어요.
음악은 딱 맞춰서 잘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음악이 개미들을 계속 상상하게 하는 게 좋았어요.
호원: 귀여움은 아닌데 은근히 끝까지 분위기를 잡아주는 게 있었어요.
아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고 생각해서 신나게 웃으면서 가는데 교묘한 여운이 남는 느낌으로 하려고 했는데, 히치콕스럽다고 하시니, 나름 잘 표현한 것 같아 뿌듯하네요.
기억은 먹구름 (2024)
<기억은 먹구름> 아이디어는 언제 어떻게 나온 거예요?
구체화시킨 건 2018년 정도예요. 제작 중인 중편도 <기억은 먹구름>하고 같이 생각했던 건데, 어떤 걸 먼저 어떻게 넣을까 단편으로 할까 중편으로 할까 이러고 있었던 거예요. 2018년에 <안개 너머 하얀 개> 마무리해서 상영하고 <보이지 않는 눈>은 제작해야 될 때부터 기획은 있었던 거예요. 2021년도에 콘진 제작지원을 받고 2022년에 제출한 다음에 수정하고 2023년 완성했던 것 같아요. 상영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2024년에 배급을 시작했다는 거죠.
볼 때마다 부족한 게 자꾸 보이니까 홀로그램 장면도 보완하고, 작화 퀄리티도 보완하면서 2024년부터 영화제 출품을 시작했어요.
<기억은 먹구름>이 될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계기가 뭐였나요?
제가 기억에 대한 강박이 있어요. 기억이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는 거죠. 그래서 뭐든지 생각나면 메모를 하고 클라우드에 다 저장해요. 애플 제품을 쓰니까 아이클라우드 안에 이미지든 자료든 메모든 잔뜩 저장해 놨는데, 어 느날 그게 사라진 거예요. 시스템에 뭔가 이상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애플이랑 실랑이를 했는데 결국 데이터는 못 찾고 보상으로 에어팟을 받았어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기억은 불완전한 거고 완벽하다는 시스템 역시 조작되거나 잘못될 수 있다. 남아 있는 기록이 진실인가도 알 수 없다'라고 생각했고, 기억한다는 것과 기록한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 졌어요. 그리고 완벽한 기억을 위해 모든 개인의 기억이 빠짐없이 기록되고 공유되는 세상이라면 자신의 기억과 다른 사람의 기억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그런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그런 생각들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기획할 당시에는 근미래를 설정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설정했었는데, 작품 발표하기 전에 뉴럴링크랑 애플비전이 나왔어요. 지원받고 제작해서 발표하는 데까지 시간이 흐르다 보니 거의 현실에 가까워져서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도 했는데, 관객과 대화하다 보니 그렇기 때문에 더 공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초반부터 제목은 기억은 먹구름이었나요?
처음 가제는 달랐는데, 이미지랑 작업 완성하면서 나중에 지금처럼 정했어요. 작품의 테마가 기억에 대한 것인데요, 클라우드가 구름이잖아요? 기억의 불완전성을 전달하려면 먹구름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되었어요.
주인공의 기억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설정이 있어요. 내 기억을 누군가 본다는 게 그 창작자랑 수용자의 은유 같았거든요.
클라우드에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부분인데요. 다들 클라우드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 느낀 것을 업로드하고 그 대신 자기도 다른 사람의 기억을 공유받을 수 있어 손쉽게 누구나 잘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거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세상으로 설정을 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기억 저장소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저장소 용량을 늘리기 위해 사람들은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게 되는 거고요.
여기에다 기억공인인증이란 설정을 넣었어요. 사회적으로 존재를 보증받는 기억인 셈이죠. 사실 지금도 언론이나 인플루언서 같은 공인된 미디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에 다른 이들이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모든 기억들이 집단화되어서 점점 비슷한 기억을 갖게 되는 사회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런 식으로 기억이 공유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기억, 차이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이고, 그게 독립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창작과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인공을 남들과 아직 공유하지 않은 자신만의 꿈, 상상력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걸로 설정했던 거예요. 하지만, 도태되지 않기 위해 다른 이의 기억을 계속 공유받아야 하고 기억이 공유될수록 점점 자신만의 고유성이 사라져서 꿈꾸는 것도 쉽지 않게 되는 거죠.
주인공이 찾는 쌍둥이가 실체라기보다는 나의 거울 같은 존재. 내가 외면이면 내면인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인공의 기억이 깨진 거울처럼 부분 부분 조각난 상태인 거잖아요. 전자뇌 수술후 기억 메커니즘이 바뀌면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어떤 존재에 대한 기억은 있는데, 그게 쌍둥이인지 자신인지 불분명한 상태인 거죠.
그런데, 자기와는 이질적인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 더 강하니 쌍둥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실재하는 쌍둥이가 아니라 기억 속 자아의 잔상일 수도 있는데 불완전한 기억만으로는 그걸 구분하기는 어렵죠. 그리고 전자뇌를 장착한 뒤로는 기억이 공유되어 타인의 영향을 받으니 사실은 쌍둥이라고 생각한 게 다른 사람의 기억일 수도 있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주인공의 내면, 전자화되지 않은 무의식적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요. 그렇게 쌍둥이라는 상징이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호원: 2018년 이전까지는 복제만 있었고 공유라는 개념은 없었는데, 클라우드 기술이 나오고 우리가 많은 걸 거기에 올려놓으니까 기억과 정체성 문제가 새로운 얘기가 됐어요.
완벽한 기억을 위해 클라우드에 자신의 기억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기억이 공유되는 사회에서 모두가 같은 기억을 같게 된다면 그런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 그런 물음이 좀 더 현실성을 갖게 된 거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기억과 기록은 다르다는 거였어요. 지금 우리 셋도 똑같이 이 상황을 보고 있지만 무엇을 저장할 것이냐는 서로 다 다르고 나중에 그걸 기억해 낼 때도 그때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 다른 거잖아요. 카메라로 찍고 비디오로 재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죠.
또, 내가 이걸 꼭 기억해야지 하는 사실들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풍겨오는 냄새, 바람이 피부에 닿는 느낌, 이런저런 소음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저장되었다가 그런 것들이 자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서 불쑥 솟구쳐 나오기도 하잖아요.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향이 트리거가 돼서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만일 그런 개별적 기억의 차이가 사라지고 모든 기억을 클라우드로 공유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상황에서도 기억의 고유성은 유지될까 하는 걸 작품에서 다루고 싶었어요. 완벽한 공유, 완전한 기억. 그런 걸 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처음에는 기억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메모리가 사라져 방전되는 짧은 에피소드로 시작했다가,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디테일이나 블랙코미디적인 상황을 덧붙이고 스토리도 좀 바꾸면서 몇 년에 걸쳐 다듬었어요.
처음에 구름이 쪼그라들어서 뇌로 들어간 다음에 덮개를 씌우는데, 머리만 덮는 게 아니고 비전프로 같은 걸 쓰는 느낌으로 눈까지 덮어요. 그건 기억이 나의 관점에 달렸다는 의미일까요?
전자뇌 아래쪽에 달린 전자눈이 마치 안경을 쓰듯 주인공의 눈을 덮어버리는데요, 내가 지금 나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내 눈만이 아닌 제3의 눈을 통해서 보게 되는 상황을 물리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사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뭔가를 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고 믿지만, 알게 모르게 특정한 시각을 강요받고 있기도 하잖아요. 작품에선 두 눈이 겹쳐져서 혼재된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전자뇌 부분은 조금 더 객관적이고 실재하는 걸 기록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컬러로 표현했고, 그 아래쪽 사람 영역은 드로잉으로 구분해서 표현했어요.
꼭대기에 달린 눈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상징 같은 건가요?
네, 꼭대기에 달린 눈은 개인의 의지를 벗어나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눈으로 설정했어요.

호원: 재밌는 포인트가 비공인 기억 저장 시스템이에요. 이 설정이 절묘했어요. 기억은 잃고 싶지 않고 돈은 없어서 야매를 쓰는데, 야매는 어느 순간에 폭주를 하거나 문을 닫아버리면 다 날아가 버리는 거잖아요.
비공인기억센터는 공인된 클라우드에 업로드되어 동기화되지 못한 기억이 보관되고 거래되는 장소로 설정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안정적인 기억저장소가 아닐 수는 있는데, 공인되지 않은, 즉 남들과 똑같지 않은 고유한 기억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가치를 지니는 곳인 거죠. 나쁘게 보면 암거래상이고 좋게 보면 독립영화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죠.
메모리가 모자라서 어쩔 줄 모르는데, 자비에 감사하라며 하늘에서 내려와서 급속 충전을 해 주는 존재는 종교같이 보이기도 하고 기술과 마술이 공존하는 느낌이었어요.
호원: 사이비 테크노 야매 사회죠.
그 부분은 사이버펑크적인 설정이에요. 신용사회에서 신용이 없는 사람들이 생존하려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겠죠. 지금도 많은 단체들이 후원금을 모으며 자비에 호소하잖아요.
시스템적으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적선하듯이 숨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인가요.
안 그러면 사회가 멈춰버릴 테니까. 사회시스템을 운영하는 소수만 있다고 해서 사회가 돌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종교적이거나 미신적인 건 아니었네요.
사회의 균열을 봉합하는 그런 역할을 주로 종교가 맡아왔으니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긴 한데요,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조금 덜컹거리더라도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일종의 사회적 장치인 셈이죠. 미래가 천국이 아닌 한, 좋든 싫든 그런 시스템은 유지될 거라 생각해요.
호원: 작년 서독제 프로그램 노트에서 김보람 감독이 여기에 늘 반복되는 세 가지 움직임은 ‘터치’ ‘스크롤’ ;스와이프’ 다 그랬는데, 그 세 가지 기본 반복 더하기 좀비처럼 걷는 거예요. 특히나 불안하면 더 그러는데, 안물가 나오니까 이 작품 무대에서 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 작품이 대사에 의존하는 편이 아니라서 인물의 동작에 리듬을 타는 마임이나 무용적인 요소를 활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SF에서 어려운 게 지금 사는 현실과 다른 세계를 긴 설명 없이 짧은 장면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해야 하는 거라, 작품 속 사회의 모습을 풍경과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전자뇌를 달고 눈앞의 홀로그램에만 의존하게 되니 스마트폰 보며 걷는 현대인들처럼 거북목에 단순한 행동만 반복하고 걸음걸이도 달라지게 되는 거죠. 그런 특징을 변화가 없는 반복적인 리듬에 맞춰 영혼 없이 걷는 식으로 표현했어요.
호원: 구체적인 사건 대신에 동작으로서 상황들이 몽타주처럼 전개돼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을 주인공의 경로를 따라가며 보여주는 식으로 빠르게 편집했어요. 제일 신경 썼던 장면 중의 하나는 방전된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캐릭터 동작에도 많이 신경을 썼어요.
그 부분이 가장 공연의 한 장면 같죠. 근데 그런 움직임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로봇 같아요.
주인공은 반은 로봇, 반은 인간인 사이보그 같은 존재잖아요. 가장 중요한 두뇌 부분이 전자뇌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으니 배터리가 떨어지면 전자뇌가 멈춰서 고장 난 로봇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는 거죠. 사고와 기억이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자뇌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 그런 로봇 같은 움직임을 강조하기도 했어요.
우리가 VR 안경 쓰면 남들이 보기에는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우스운 모습이잖아요. 홀로그램을 조작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죠.
특별한 행동이나 사건은 아니지만 그런 게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을 때 어떨까?’ 그런 부분을 고민을 했어요.
방전된 인간 이미지는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기계화된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은 다음에도 클라우드에서 불멸하는 기억이란 측면에선 육체와 정신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흔한 SF중의 테마 중의 하나가 “로봇에게 영혼이 있는가”잖아요. 그리고 두뇌만 분리해서 살아있다면 과연 생명은 계속될 수 있을까 이런 테마도 있고요. 그런데, 이런 철학적 질문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때그때 새롭게 질문되고 정의되는 것 같아요.
저는 새로운 기술적 변화는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는 편이에요. 제가 미래 사회가 어떻게 될지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면 그 변화된 환경에 맞는 삶의 태도와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해답은 없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기억은 먹구름>은 기법 상으로 도전적인 게 있었나요?
머리에 쓴 전자뇌는 실제 모형과 채색으로 표현하고, 전자뇌 아래쪽의 사람의 얼굴과 몸은 연필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패드에서 그렸어요. 그런 방식이 전자뇌를 더 이성적으로, 사람은 좀 더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데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TV페인트는 그리고 편집하는 게 편하긴 한데, 제가 살리고 싶은 실제 연필 같은 느낌이 덜했거든요. 패드에서 그리니까 제가 원하는 연필 같은 느낌이 좀 더 났던 거 같아요.
소프트웨어는 프로크리에이트로 했어요?
예. 짧은 시간 안에 단순하게 그리면서도 그 자체로 느낌이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어요.
차기작
진행 중인 작업은 제목이 뭐예요?
가제는 <다차원 롤러코스터>라고, 서로 다른 차원에 사는 여러 캐릭터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지금 미니어처 배경도 만드셨는데, <우주보자기>처럼 2D 캐릭터와 3D 배경을 합치는 거예요?
네, 3D도 하고, 우주보자기처럼 평면종이와 패브릭도 활용하고, 기타 다양한 표현을 해보려고 했어요. 스태프는 최소한으로 쓰고 최대한 내가 다 한다 이런 주의로 하다 보니 디지털에서만 계속 시간을 쓰면서 오는 피로감이 있더라고요. 나도 즐거우면서 할 수 있는 방식을 찾다 보니 '역시 수작업이지!' 뭐 그런 게 아니라 우연 속에 필연을 만들어가며 대처할 수 있는 수작업만의 묘미가 있더라고요. 하여튼 가능한 한 수작업과 컴퓨터 작업을 적절히 조화롭게 병행해보려고 해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이면 25분까지 만들어야 되나요?
딱 20분이었어요. 20분은 또 20분대로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5분짜리에 나오는 애들로 20분을 늘릴 수는 없으니까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많고 배경도 다양하게 나와야 되잖아요. 이거 하나가 단편 3개 만드는 수준이어서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계획한 마감은 언제예요?
원래는 올해 안에 끝내려고 했어요. 근데 점점 길어져서 거의 장편 만드는 수준으로 시간을 쓸 것 같아서 지루하지 않게 최대한 압축해서 마무리하고 길게 담고 싶은 얘기는 장편으로 하려고 해요.
이번 얘기도 처음엔 장편으로 해볼까 했었는데, 제가 대부분의 작업을 주로 혼자 해와서 바로 장편을 하는 것보다는 우선 중편 정도로 단편보다 좀 더 긴 호흡의 작업을 하고 장편을 시도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시간 정도라도 긴 호흡의 작업을 하고 싶어요. 시작은 제가 단편 하듯이 혼자서 많은 걸 해야 될 것 같은데, 팀이 없으니까 차라리 마음이 더 편한 부분도 있어요. 물론 단편도 기회가 될 때 미다 계속하고 싶고요.
인터뷰 2025년 8월 28일 @ 평창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