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 Erick OH
- 3일 전
- 14분 분량

제주공항에서 차로 20분 남짓. 시내 고층 건물과 외곽의 저층 상가, 해변에 짓다만 리조트, 숲 속 캠핑장을 지나면 산비탈에 뚱하니 선 건물이 하우스오브레퓨즈House of Refuge다. 에릭 오 감독의 회고전 <O>는 이곳의 개관전시다. 대학 시절부터 다수의 단편을 제작하고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던 에릭 오는 2015년 소속사 BANA (Beasts And Natives Alike)와 이 전시와 동명인 단편 애니메이션 <O>를 시작으로 <무지개 칠하는 법 How to Paint your Rainbow>(2018), <오페라 Opera>(2020), <메타모더니티 Metamodernity>(2022), <오리진 Origin>(2022)을 만들었다.
2022년 서울의 갤러리 SPACE K에서 프리즈 기간 특별 상영한 <오리진>은 제주 전시의 첫 장을 여는 중요한 조각이 된다. <O>의 하이라이트는 16K 대작 <오페라>. 처음부터 극장을 벗어나고자 했던 야심작인데, 판데믹 때 영화제로 우회했다가 아카데미 최우수단편애니메이션 후보작이 됐다. 2025년에는 전시에서 선보인 <서퍼 Supper>를 극장으로 가져왔다.
한편에선 프리랜서 디렉터로 톤코하우스의 시리즈(<피그: 더 댐 키퍼 포엠>(2017-2018), <오니: 천둥 신의 전설>(2022)), 바오밥하우스와의 VR 애니메이션 <나무>(2021)도 작업했다. 2026년 3월 말, 전시가 막을 내리면 아예 다른 매체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모호한 경계 따위 아랑곳없이 창작의 영토를 넓혀가는 그를 잠시 붙들었다.
2026년 3월 인터뷰
다음 궤도로
처음부터 전시를 하고 싶었어요
2013년 10월에 인터뷰 끝에 “<사과 먹는 법>(2011)을 통해서 하나의 챕터를 닫는다”라고 했는데, 그다음 챕터가 <O>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전시를 생각하셨나요.
기법적인 얘기부터 하자면 저는 늘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회화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대중적 관점이 일본 아니메라든가 지브리, 디즈니, 픽사의 서사가 있는 애니메이션만 생각을 하는데, 애니메이션의 정의는 그것보다 훨씬 크잖아요.
생명이 있지 않은 것을 착시를 불러일으켜서 살아 있게끔 하는 움직이는 그림의 형태에 늘 집중했어요. 그러면서 이거를 화면 안에만 두는 게 아니라 훨씬 체험적으로 공간으로 가지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 폭의 그림을 보는 행위는 시간성을 초월하잖아요. 그냥 1초만 봐도 되고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되고. 기승전결이라는 플롯 안에서 정해진 러닝 타임과 감독의 시선이 담긴 카메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움직이는 그림이지만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체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주제적으로는 제가 20대 초반에 만들었던 <더 백>(2006) 때부터 이미 순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탐구를 해왔던 것 같아요.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시작이나 끝, 탄생과 죽음이라든가 아주 미시적인 세계에서부터 거시적인 우주까지 한 결로 꾸준히 이어가면서 ‘우리는 한 원으로 이어지고 있구나’라는 태도가 작품마다 드러났고 이번만큼은 그걸 작정하고 탐구를 해보자였어요. 아예 전시 제목도 “O(오)”잖아요. 거창하게 붙이지도 않고 그냥 원. 모든 게 순환이에요. 두 가지 아이디어가 합쳐져서 이 전시가 되었어요.
지금 전시의 형태가 실현된 계기는 뭔가요?
조금 더 실질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오페라>라는 작품을 빼놓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제작 기간 동안에 <오페라>라는 작품이 탄생을 했고 그게 아카데미라는 생각지도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근데 그러고 나서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오페라>는 처음부터 전시를 하고 싶었어요. 코로나가 풀릴 때쯤 BANA와 같이 의논을 하다가 <오페라>를 통해 펀딩과 주목을 받은 지금이 모멘텀인 것 같다. 작품 하나만 걸지 말고 확장해서 더 큰 얘기를 해보자 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오고 갔어요. 그러면서 제주도라는 공간을 찾음과 동시에 <오페라>의 경험을 더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신작들을 제작하게 된 거예요. <오페라> 외에 나머지 작품들은 전시를 준비를 하면서 기획했어요.
아 이게 하나의 오페라구나
어렸을 때 이집트 여행 갔었을 때의 기억 이 <더 백>을 비롯한 작업들에 반영이 됐다고 하셨어요. <오페라>의 형태가 피라미드니까 어렸을 때 경험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더라고요.
피라미드는 디자인을 하다 보니까 나온 거예요. 제가 실제로 피라미드를 본 것도 잊을 수 없는 체험이지만 그 경험 때문에 <오페라>가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페라>는 처음으로 제 시선이 내면이 아니라 외면으로 향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그전까지는 저를 중심으로 내가 누군지 인간은 누군지 한 개인의 내면의 여정을 표현하는 작품을 많이 했어요.
전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제가 무기력감에 휩싸인 적이 있었어요. 그게 계기가 됐어요. 사실 세계는 늘 정신없는데, 그제야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세상에 얼마나 아픔이 많고 부조리도 많은지. 전쟁이라든가 인종차별이라든가 젠더 갈등이라든가 테러리즘이라든가 환경오염이라든가 모순 덩어리인 우리 삶을 보면서 처음으로 어떤 사명감 아닌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나만 표현하고 성찰하는 게 아니라 뭔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를 할 만한 장을 여는 역할을 예술가가 해야 된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오페라>라는 세계관을 디자인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게 문명사회와 역사거든요.
사회는 기쁘고 슬픈 일들이 하나씩 순서대로 벌어지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잖아요. 여기선 결혼식이 열리고 저기선 장례식이 열리고 여기선 누군가 탄생을 하면 저기선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선형적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계급과 구조를 보여주는 삼각형 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각났어요.
무한순환하면서 역사가 계속 반복되는 거죠. 2017년쯤에 트럼프가 처음으로 당선이 되고 한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됐을 때였어요. 정치적인 색을 떠나서 사회가 분열이 되는 거예요. 저는 미국과 한국을 다 저의 집이라고 생각해요. 증오가 만행하는 걸 보면서 이 작업을 했는데, 시간이 흘러 전시를 시작하는 때에 또다시 트럼프가 당선이 되고 윤 대통령이 탄핵이 됐어요. 그래서 ‘이것 또한 <오페라>네’ 웃지 못할 사이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은 인간의 역사가 장엄한 오페라 같아서 붙인 건가요?
오페라라는 워딩 자체가 “Labor” “일”에서 파생이 된 거예요. 그게 가장 컸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장엄하고 웅장하게 수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던지는 거죠. 세 번째는 “오페라”라는 제목만 가지고는 예상을 못하게 하고 싶었어요. 보고 나면 ‘아 이게 하나의 오페라구나’ 납득이 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건 무조건 세상에 토해내야 된다
<오페라> 전까지는 일상과 병행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셨는데, 이렇게 큰 작업할 때는 전과 다른 루틴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픽사 재직 당시에는 시간이 한정되니까 좀 빠른 호흡과 혼자서도 쳐낼 수 있는 규모의 작품을 했어요. 그러면서 시간 분배해서 작업하는 데 단련이 됐나 봐요. 일하는 것과 내 거를 한다라는 이분법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이미 그때 구축이 됐고 그 연장선이었어요.
<오페라>는 제작기간이 4년이라고 했지만 4년 내내 이걸 한 건 아니에요. 그 사이에 거의 1년은 아예 멈추고 <댐 키퍼> 시리즈만 하기도 했어요. <오페라>는 한 세 번 정도 완전히 셧다운이 됐다가 지속했던 프로세스였어요.
프리랜서 디렉터로서 파이낸셜 한 일을 한참 하고 휴식기가 생기면 그때부터 한 세 달은 집중하고 다시 어떤 일이 생기면 나오고 그런 식이었어요. 픽사에서 저를 계획하는 게 단련이 안 돼 있었으면 참 힘들었을 거예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이건 무조건 세상에 토해내야 된다’하는 동기가 너무 강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분노도 있었고 엄청난 슬픔도 있었고 한 인간으로서 이거 안 하면 내가 미칠 것 같다는 엄청난 원동력이 있었어요.
개인 프로젝트의 가장 큰 리스크는 엄청난 자유고 누구도 완성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데드라인이 있어야 끝내는데, 이건 저만 놓으면 그냥 없는 작품이 되는 거죠. 근데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제작 과정에 조금 더 뚜렷한 게 보일 때쯤에 BANA에서 봐줬어요. 그전까지 이걸 피칭할 생각도 안 했어요. 이건 ‘개인의 숙원 프로젝트이니 혼자 만들 거야’ 했던 거죠. 그래서 포스트 프로덕션만 펀딩 해서 완성한 작품입니다.
작품이 워낙 크고 많은 일이 일어나잖아요. 파트별로 잘라서 작업해서 합친 건가요?
극 J적인 계획을 했어요. 첫 몇 달은 그냥 드로잉만 했어요. 하나의 완결된 콘티를 짤 필요는 없었고 블루 프린트가 두 개 필요했어요. 낮 장면 하나, 밤 장면 하나. 중간에 트랜지션은 작은 썸네일로만 준비를 했고요. 어느 정도 계획이 선 다음에는 실제로 해야 되는 애니메이션을 구분해 보니까 스물 두 피스로 나눠지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아 이거는 스물 두 장면으로 이루어진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였어요.
애니메이터 열댓 명이 애니메이션에 참여했고 한지원 감독님도 한 시퀀스를 작업을 하셨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염치없는데, 그런 식으로 알음알음 물어 물어서 작업을 할 수가 있었죠. 합성하시는 분도 세 분 정도 있었어요. 사다리처럼 단위별로 한 장면에 대한 애프터이펙트 파일이 따로 있고 이거를 뽑아서 합친 마스터 파일이 있었어요.
그 파일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건가요?
16K인데, 막판에는 예상하실 수 있다시피 렌더링 싸움이었습니다.
호원: 전체 사이클이 있고 각 레벨마다 사이클에 맞춰서 분량이 정해져 있고 그 레벨에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 동작 사이클도 맞춰져야 되고, 모든 움직임이 사이클에 맞춰서 할당된 것 같더라고요.
어디에서 시선을 시작을 해도 다 연결된 것처럼 결국 한 바퀴 훑을 수밖에 없게 연출한 거죠.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계산해야 돼요?
아주 단순화해서 로직을 설명드리면 결국 5분짜리 네 개예요. 낮 동안 벌어지는 사이클.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트랜지션 애니메이션, 잠을 잔다던가. 그리고 밤 사이클. 밤에서 낮으로 일어나는 트랜지션. 그 네 종류 애니메이션이 시퀀스마다 있는 거죠. 거기에 먼저 집중을 한 다음에 이걸 연결해 주는 레이어가 하나 더 들어와서 캐릭터들과 요소들이 순환 장면들을 넘나들도록 얽히고설키게 연출했습니다.
호원: 이런 정교한 작업은 다 타이밍이 달라서 움직임이 시선을 이끌어 나가는 식으로 배치해야 될 것 같거든요. 초짜인 감독은 잘못하면 가장 핵심적인 액팅이 동시에 맞물리거나 중첩돼 버릴 수도 있어요.
한 번에 보여도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가야지 서로 충돌하면 안 되죠. 사운드도 여기서 똥이 “팍” 하는 건 들려야 되거든요. 베테랑, 초짜 말씀하셨는데, 어쩔 수 없는 짬 있잖아요. 당연하게 이거는 그래야 된다고 구상한 것 같아요.
전례 없던 형식을 취해보고 싶었어요
전시 리플릿에는 일곱 작품이 있고 실제로 배치된 건 여덟 작품이에요. 어떤 순서로 작품을 구상하셨나요?
저는 영화적인 스토리텔링과 회화와 공간의 스토리텔링을 같이 연구하면서 작품 생활을 해왔어요. 이걸 어떻게 블렌드 시킬까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정말 전례 없던 형식을 취해보고 싶었어요.
입구부터 전개가 되고 클라이맥스인 <오페라>를 지나 나오는 걸 생각하면서 동선과 작품의 순서를 짰어요. 동선 자체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과정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전시에는 결국 세 개의 메인 피스가 있거든요. 입구 천장에 <오리진>이 있고 중간에 <오페라>가 있고 마지막에 다섯 개 레이어로 된 게 <오르빗>인데, 그게 과거 현재 미래예요. <오리진>은 말 그대로 근원이니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오페라>는 지금 우리 문명의 현주소 리플렉션, <오르빗>은 결국 우리가 승화되고 어떻게 귀결돼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오페라>에 있는 게 다 회오리치듯 한 점으로 수렴되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메꿔주면서도 작품으로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들을 중간중간에 배치한 거예요. 모든 작품들이 5분이라서 다 같이 밤이 오고 다 같이 낮이 오는 시간성에 대한 싱크도 맞췄어요.
호원: 상영용 영상과 달리 공간 안에서 사운드와 라이팅이 새롭게 추가되거나 전시용으로 바뀌었을 것 같아요.
음악부터 얘기하자면 통으로 다시 다 썼어요. 영화제에 접했던 <오페라> 음악과 전시의 음악은 완전히 달라요. 풍은 비슷한데, 비교해 보면 알게 돼요. 원래는 저도 신작들만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이게 완전 충돌하는 거예요. 단순한 음악 디자인이 아니고 새로 다시 기획을 해야 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이 공간은 사운드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가 없으니 하나의 곡처럼 해석했어요. 여기서 클라이맥스가 터질 때 다른 데서 음악이 새어 들어오더라도 화음이 되게끔 음을 다 맞춘 거죠. 개별적인 음악이지만 조화되게끔 전체적인 음악 디자인을 했어요. 그거를 250이라는 프로듀서가 잡아주었어요.
순환의 개념을 가장 추상적이고 시적으로
호원: 들어가자마자 <아일랜드 Island> 봤을 때 한쪽 벽면이 아니라 기역자로 꺾어서 양쪽에서 마주 보며 흘러내려서 바닥으로 고이는데, 감독님이 2차원 스크린 평면을 뚫고 확장을 하고 싶었다는 게 보여서 약간 전율이 느껴졌어요. 가장 애니메이팅이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구현됐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러니하게 그 작품이 초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마지막에 구상하고 완성한 작품이에요. 마치 프롤로그처럼 이 경험을 깔아줄 하나의 인트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일랜드>는 어쩌면 <오리진>보다도 이 전시회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연출했어요.
무릉도원 같은 느낌도 받았어요.
호원: 대개의 영상은 수평적으로 보는데, <아일랜드>는 동선도 그렇고 스크린 폭도 세로로 길어서 동양화의 풍경처럼 느껴져요.
호원: <오리진>은 위에 있는 이미지와 밑에 바닥에 반사되는 이미지가 있어서 처음엔 위를 보다가 그다음에 밑을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이것도 이 장소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세팅이죠.
처음부터 천장에 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닥의 우물에 대한 아이디어는 공간팀에서 먼저 제안했어요. 우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었는데, 버려진 유적을 들어가는 느낌을 강화시키는 요소들이 여기저기 필요했어요. 그래서 벽도 부서져 있는 식으로 만들었고요. 우리의 리플렉션으로 반영된 음과 양을 얘기하기 적합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 거죠. 하늘에도 있지만 물속에도 있고. 장자의 나비 꿈같은 맥락도 있어요. <아일랜드> 다음으로 공간감을 확장하는 전시화를 보여주는 좋은 구조라고 생각을 했어요.
호원: <아일랜드>랑 <오리진> 동선을 통과하면서 시선을 스크린처럼 한쪽 벽에만 박아놓지 않겠다. 꺾이는 코너를 봐라. 그다음에 위를 보고 바닥을 봐라. 두 작품으로 관객의 시선을 흩어놓겠다는 의도가 보였어요.
맞습니다.
머리 위의 <오리진>을 보면서 우주의 탄생을 목격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액체 금속이 녹아내리는 듯한 이미지는 평소에 작업하시는 스타일하고 달랐어요.
이 전시에서 다른 거는 다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인데, <오리진>만 VFX랑 CG가 들어간 작품이에요. 한 생명이 잉태를 해서 절정을 지나 완숙되었다가 폭발하고 소멸해서 다시 하나의 씨앗으로 돌아가는, 아까도 말씀드린 순환의 개념을 가장 추상적이고 시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적인 맥락부터 잡았던 것 같아요.
시작은 자궁 속일 수도 있고 알껍질일 수도 있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막이 깨지면서 속살이 드러나요. 무균질에서 외부에 노출되면서 점이 생겨요. 무균질이었기 때문에 면역력 약한 우리의 속살이 외부의 물질로 오염이 돼 가는데, 그게 사상적인 걸 수도 있죠. 근데 그게 지혜일 수도 있는 거예요. 무언가 알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점점 오버되니까 딱딱하게 굳어가고 그 딱딱하게 굳은 것이 마치 번데기처럼 또 하나의 보호막이 되었다가 팡 퍼지고 그게 꽃잎이 되고 그러면서 계속 뻗어 나가는 거예요.
나뭇가지가 손을 뻗는다는 개념으로 생각을 했는데, “계속 알고 싶어. 더 배우고 싶어”라는 의지가 담긴 의미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면서 절정으로 치닫았다가 소멸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여정이죠. 펼쳐졌을 때 메탈적인 요소라든가 용암 같은, 물이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하고 생체 이미지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한 것들이 다 의도한 맥락의 이미지입니다. 눈동자 홍채 같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죠
<스피릿 Spirits>은 전시 리플릿에는 없어요.
정령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보여주고 <오리진>에 넣었던 사운트랙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이 상황에 이런 게 벌어지고 있다는 맥락을 만들었어요. 이 안에도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죠. 결국에는 다 함께 춤추고 폭발하면서 다시 별이 되는 서사로 만들었어요.
춤이 상모 돌리기 하는 것처럼 격렬해요.
상모 돌리고 누구는 막 흔들고.. 애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웃음)
호원: 저는 되게 공포스러웠거든요.
귀엽고 그로테스크한 걸 같이 가는 게 제 일관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이 전시회에서도 섬뜩하면서도 애정이 가는 거를 조화롭게 담으려고 했어요. 보시는 분들의 가치관에 따라 이 전시 자체를 염세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여기서 희망까지는 아니지만 위로를 받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호원: 정령들이 튀어나온다는 설정이 제주도라는 지역이 가진 스토리이기도 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전시장에 배치된 식물들이 다른 곳이었다면 피상적으로 느껴졌을 텐데 제주도였기 때문에 정령과도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자칫하면 테마파크처럼 될 수 있는 요소라서 저희들도 어떻게 해야지 자연스럽게 들어올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로 다른 에너지 사이에서 우리들은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호원: 식사하는 공간으로 넘어가면 저울을 배치를 해놓았어요. 이게 이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브라 Libra>는 애초에 벽이 아니라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게끔 기획하신 거예요?
골조만 있던 때부터 거기는 움푹 패어 있어서 “이거는 무조건 활용을 하자” 했었어요. 여기에 뭔가 쏘면 좋겠는데, 너무 섬세한 것보다는 멀리서 그쪽을 향해 걸어 들어오면서 딱 집중할 수 있는, 추가 왔다 갔다 하는 이미지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이 서사에 맞는 이야기를 디자인한 거죠.
호원: 오른쪽에 <오페라>가 있고 왼쪽에 <서퍼>가 있는데, 이 두 작품은 마주 보고 있지만 규모로 보면 비대칭이에요. <리브라>를 뚜렷한 이미지로 보여주면 너무 힌트를 많이 주는 것 같으니까 보일락 말락 하게 전체의 밸런스를 잡아주려는 의도처럼 보였어요.
그게 어두워지면 더 선명해져요. 진짜로 밤에만 등장한다거나 대놓고 빛을 활용해서 연출하고 싶었어요. 해가 쨍한 날 그림자의 움직임에 맞춰서 애니메이션을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현실적으로 뿌연 날도 있다 보니까 이거는 제 상상에 그쳤고 외부 벽만 고쳐서 지금 <리브라>가 된 거예요.
호원: 건축적으로도 가장 시퀀스가 재미있게 활용이 됐고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빛을 이용해서 이 작품은 볼 때마다 다르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저울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부드러움과 단단함일 수도 있고 시작과 끝일 수도 있고 미시와 거시일 수도 있고 음과 양일 수도 있는 반대하는 에너지가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서로 다른 에너지 사이에서 우리들은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열쇠는 인생의 답을 의미하는데, 계속 왔다 갔다 하죠. 그 자체가 존재의 현 상태 같은 거예요. 절대 어디에 멈춰 있지 않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이 우주에서 우리는 찰나처럼 가겠구나 그런 자조 섞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죠.
호원: <아일랜드>랑 <리브라>도 따로 상영용으로 만드실 거예요?
이번에 전시됐던 작품 중에 상영 버전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건 <오페라>, <오리진> <서퍼> 정도였던 것 같아요.
호원: <서퍼> 쪽으로 방향을 틀면 가운데 테이블이 있어요. ‘너도 여기서 너의 식사를 받아봐’ 하는 것처럼 보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게끔 만들었어요.
저는 전시 내내 작품 속과 밖을 블렌드 해버리는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화면에서 보이는 것의 일부가 피지컬 하게 외부로 나오지만 그게 명확하게 아이덴티컬 하지도 않아. 이 모든 게 통째로 작품 속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을 주고 싶었던 거죠.
호원: 2025년 영화제 때 관객들이 <서퍼> 보면서 적극적으로 반응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복잡하고 어려운 <오페라>를 이해하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오페라> 기획할 때부터 <서퍼>도 같이 머릿속에 두고 계셨어요?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오르빗>이랑 <오리진>이랑 <오페라> 아이디어가 거의 비슷하게 나왔어요. <오페라>를 완성할 때쯤부터 3부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어요. <서퍼>는 공간이 정해지고 구상한 신작 중에 하나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오페라>라는 작품을 모르고 봐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함께 보면 재미가 배가 될 수 있죠. <오페라>에서 본 무수한 것들을 한 편의 식사처럼 간략한 버전으로 연출한 거예요. <오페라>에서 절하는 신상이 후추통이고 거대한 고래가 그냥 발라 먹는 생선 요리고 똥도 있고 하트도 있는데, <서퍼>는 거시적인 시점으로 바라본 우리의 삶이고 <오페라>는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서 본 거라는 맥락이었습니다.
호원: <서퍼>는 거의 감독님 혼자 작업하신 거죠?
혼자는 아니고 소수의 팀이 있었어요. 애니메이터 두 분이랑 저랑 셋이 애니메이팅 했고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의 멤버만 데리고 했습니다.
<서퍼> 식탁 양쪽에 팽이버섯 같은 애들 있잖아요. 동그란 캐릭터랑 유사하기 때문에 나온 건가요?
걔네들은 그냥 양쪽에 지키고 있다가 굳어져 버린 가여운 존재들인데, 낮에는 깨어나고 밤에는 내려앉고. 바로 전에 본 <스피릿>에 나오는 연결성도 생각했어요.

호원: <서퍼>의 스케일이나 디테일은 전시 공간에 맞춰서 작게 잡으신 건가요?
모든 게 다 뒤섞여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오페라> 방도 기둥이 세워져 있잖아요.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는데 안전상의 이유 때문에 이거는 구현 안 된다. 막상 했는데 임팩트가 덜하다 이래서 계속 변주를 주고 결단을 내린 최선의 결과를 보신 거예요. 제가 애초에 의도한 대로 나온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더 나아진 것도 있어요.
원래는 동등한 사이즈를 원하셨던 건가요?
공간 동선이 나오기 전에는 누가 봐도 미러링 돼 있는 배치를 원했어요. 똑같은 크기를 쏘진 않더라도 명확하게 의도가 드러나게끔 삼각형 둘이 마주 보게 배치를 하고 싶었었는데, 그러려면 포기해야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이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차라리 이거에 더 힘을 쏟자 결정을 내린 거죠.
신전 들어가는 느낌을 의도한 거예요
호원: <오페라>는 확실히 큰 스케일로 봐야 되는 거고 <서퍼>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만 프라이빗 룸에서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중간에 문처럼 세팅을 해놓은 게 영화 혹은 건축적인 장치처럼 납득이 되더라고요.
저도 구현을 하다 보니까 스스로 이게 맞다는 게 설득이 됐어요.
호원: 사찰에서 ‘이 문을 통과하면은 다른 세계로 가는 거야’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문을 통과하면 강이 있어요. 레테의 강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은데, 그 안에 물고기 떼가 돌아다녀요. 전시장 세팅하면서 나온 아이디어인가요.
작품을 딱 이 정도 거리에서 봐야 좋은데, 이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하지 하다가 물을 놓으면 되겠다 한 거예요. 물 하자마자 물속에서 뭔가 떠오르는 듯한 이미지도 멋있을 것 같았어요. <오페라>에서 결국 물고기가 튀어나와서 다 먹어버리잖아요. 그 물고기가 자연을 상징하는 요소거든요. 물을 어떤 거대한 우주적인 샘 같은 영역이라고 하자. 물고기는 여기에 헤엄치는 수많은 물고기 떼 중에 하나일 뿐인 건데 우리한테는 엄청 거대하다는 걸 암시하는 거죠.
처음에는 피라미드 통째로 하나만 딱 두고 싶었는데 구상을 하다 보니까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게 확대한 게 필요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왼쪽 면은 확대경으로 본 것 같은 연출을 줬고 공간에 별들이나 이런저런 요소들을 더 넣었죠. 오른쪽은 너무 비어 있으면 그러니까 연기나 이런 소스를 넣는다던가 조경을 신경을 써서 <오페라> 공간을 꾸몄어요.
호원: 목욕탕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도 역할을 했겠죠
그렇죠.
그리스 로마 시대가 떠오르기도 하고
약간 신전 들어가는 느낌을 의도한 거예요.
호원: <오페라> 같은 스케일의 작업을 또 하실 거예요?
저는 사실 하고 싶죠. 근데 저도 그때 패기가 있었다 싶은 게 그때처럼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미친 듯이 들이박지는 못할 것 같아요. 충분한 예산까지는 아니더라도 펀딩을 받아서 멋있게 풀릴 거야라는 플래닝을 갖고 들어가고 싶어요. 제 로망은 제주 전시가 막을 내리면 이거를 트래블링 쇼로 발전시키는 거예요. 해외 어딘가에서 하게 됐는데, 그대로 가는 건 재미없으니까 신작을 하나 더 만드는 거죠.
호원: 스케일이 크게 보일수록 매력적이니 <오페라>의 궁극적인 미디어 파사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쏘는 거다!
피라미드가 이 작품의 종착점이 아닐까. (웃음)

애니메이션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죠
호원: <오르빗>은 계속 돌아다니면서 레이어 사이도 들여다보고 양쪽 끝에 가서 관통해서 보기도 하면서 최대한 관객들의 동선을 늘리더라고요.
당연히 전통 셀 애니메이션 기법이 생각나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실제로도 5~60년대에는 10미터짜리 다운 슈터로 찍었잖아요. 그걸 현대판으로 리바이벌하고 싶었어요. 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죠. 그건 기법적인 부분이고요. 다섯 레이어로 다섯 개의 개별적인 이야기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감상법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호원: 아는 사람들은 디즈니의 멀티플레인 카메라를 옆으로 뉘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멀티플레인 카메라보다는 포토샵 레이어가 생각났어요.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웃음)
호원: 다섯 개의 레이어 스타일이 다 다르더라고요. 오가닉 한 스타일, 메카닉 한 스타일, 지오메트릭 한 스타일, 코즈믹 한 스타일 등 그것도 감독님이 추구하는 우주의 다양한 레벨 같은 거겠죠.
이 세계관 안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다섯 분할을 한 거죠. 제일 첫 레이어는 사람이 걸어가고 있잖아요. 정자에서 시작해서 아기가 됐다가 노인이 돼서 소멸하고. 삶의 여정에 얻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을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로 연출했어요.
두 번째는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생명에 대한 레이어 그러니까 오가닉 한 건데, 인간도 생명의 일부면서 이 둘을 분리한 데는 저의 양가적인 태도가 들어있어요. 인간을 굉장히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우리가 뭐길래 자연과 분리를 해’라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적으로 보는 태도가 동시에 들어가 있어요. 사실은 이 전시회 내내 우리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질타하고 싶은 마음. 애정하면서도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있어요.
세 번째는 시간에 대한 레이어예요. 시간이야말로 저희들이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물리 에너지이기 때문이죠. 네 번째는 음과 양의 에너지예요. 그냥 빛과 그림자일 수도 있는 상반된 두 가지 에너지고, 마지막은 공간과 차원과 우주의 어떤 확장성에 대한 레이어예요. 그런 것들을 다 합쳤을 때 전체 전시가 얘기하고 있는 하나로 이어지게 연출한 거죠.
호원: 양쪽 끝에서 내가 멀티플 레이어를 관통하듯이 보면 이건 정석적인 애니메이션 멀티플레인을 보는 거죠. 근데 바닥에도 이미지 비율이 왜곡된 두 레이어들이 합쳐지더라고요.
확실히 프로젝션 엔지니어들이 가장 고생한 작품이에요. 투명 LED는 너무 비싸서 반투명 스크린에 쏘는 방식으로 했어요. 바닥에 투영되는 각도랑 이미지들을 어떻게 겹칠지 계산을 하느라 그분들이 정말 애를 많이 먹었죠.
호원: 소스는 레이어마다 한 프로젝터에서 나온 거예요?
맞아요. 하나당 하나로 쐈어요.
호원: 스크린에는 제대로 된 비율로 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는 레이어의 반사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고
물론 의도한 만큼 바닥에 나온 걸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었어요. 근데 그게 오히려 또 맛인 것 같아요. 스크린을 완벽히 컨트롤하고 바닥은 앵글이 주는 대로 어우러지게끔 조화를 잘 계산을 했죠.
호원: 우연히 얻어낸 결과를 아름답게 하는 것도 예술적 능력이거든요.
발견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도 작품의 일부였어요.

계속 확장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호원: <코로나>는 코비드(Covid-19) 때문에 생겼던 새로운 인식도 있었지만, 외부의 스파이크 같은 코로나 형태를 이 전시를 관통하는 캐릭터로 배치하셨더라고요. 결국은 이 형태가 감독님 작업과 세상을 연결을 하는 구체적인 지점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이것도 굉장히 직관적이고 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눈치 빠른 사람은 보자마자 ‘이거 코로나 바이러스다. 근데 이게 다 캐릭터들로 이루어졌네’ 이럴 거예요. 좀 전에 말씀드린 인간에 대한 사랑과 질타가 함께 들어가 있는 작품이죠. 우리는 정말 생명의 근원일까 아니면 우리가 바이러스일까.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게끔 하는 거였죠.
<아일랜드>에도 세 명의 캐릭터가 서 있거든요. 오브제적으로 그거랑도 연계시키고 싶었어요. 처음 들어가자마자 있던 애들이 우리가 이 여정을 다 경험하고 나왔더니 하나의 구가 돼서 여기에 있구나. 그때 맞이해야 할 감정도 있을 것이고. 어두울 때 더 잘 보이는데, 거기에 <아일랜드>에서 쐈던 걸 그대로 사용해서 그 요소들이 유영하고 다니거든요. 음악도 <아일랜드>랑 똑같은데, 같은 음악을 거꾸로 돌린 거예요. 그것도 처음과 끝을 연결해 주는 느낌을 의도한 거죠.
이 캐릭터를 부를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애칭이 두 개 있어요. 가까운 측근들이랑은 동글이라고 부르는데, 공식 이름은 ‘오스 oss’ 예요. 그게 제 어린 시절 별명이었거든요.
호원: 제가 감독님 모시고 처음 했던 행사가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 회고전이었는데, 그때 픽사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걸 할 준비를 하는 단계라고 하셨어요. 한 사이클이 돌아서 2026년은 또 다른 스텝을 준비하고 있는 지점이에요.
제 여정이 그랬듯이 계속 확장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내러티브 구조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미국에서 계속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와 동시에 아예 애니메이션이 아닌 매체들도 고민하는 중이에요. 글도 쓰고 싶고 실사 영화도 도전을 해볼까 하고 게임도 관심이 생겼어요. 스토리텔링의 원형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이게 역확장이 되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이디어도 애니메이션적으로 떠올랐고 15년 동안 쭉 애니메이션에 집중을 해 왔는데, 이번에 전시가 애니메이션을 벗어나 볼 용기를 줬던 것 같아요. 올해나 내년쯤에는 ‘에릭 오 감독이 이런 것도 하네’라는 시도를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지론은 ‘별로인 게 나와도 거기서 배워서 다음 거 하면 된다’ 거든요.
호원: 감독님의 작품은 2차원 스크린을 벗어나서 갤러리 공간으로 나오고 결국은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서 도시나 삶의 공간으로까지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저 나름대로 비전을 갖게 되더라고요.
지금 제가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전시를 기점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 이런 시도와 실험을 계속하고 싶어요. 3월 31일까지는 전시에 더 많은 분들이 올 수 있도록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그 후부터 뭘 하든 간에 저의 행보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Zoom 인터뷰 2026년 2월 5일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이미지 제공: BEASTS AND NATIVES ALIK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