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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 MIN Sung-ah

  • 2020년 5월 24일
  • 10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4일


<다섯 번째 계절>(2009)의 마지막, 바위산 위의 고라니는 숲을 밀고 들어오는 도로를 내려다본다. 코로나 시대, 인적이 사라진 도시에 동물들이 찾아온다. 떠오르는 질문은 같다. 다음번 계절 우리는 공존할 수 있을까? 강산이 변하고 천지가 개벽한 2020년, 민성아는 <보리야>와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를 연달아 내놓았다. 게다가 지금도 맹렬하게 작업 중이다. 5월 첫날, 화창했던 하루가 저물어가는 서울에서 비 내리는 아침을 맞이한 민성아를 만났다. 긴 침묵을 보상하듯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모니터 너머로 쏟아졌다.


<밥묵자>는 대학원 졸업작품인가?

2003년에 들어가서 2007년에 졸업했다. 3년 과정이었는데, 2학년 때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1년을 중국에서 보내고 와서 의욕이 과잉돼서 졸업작품을 2년 동안 했다.    

 

<밥묵자>의 기획은 언제 했나?

2000년이다. 원래는 대학교 졸업할 때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때다. 플래시는 이미지가 벡터잖아. 그런데 그림을 스캔을 받아서 넣었다. 비트맵을 거기서 돌린 거다. 굉장히 조악하게 했다.           

졸업작품으로 두 번, 7년 동안 한 거다.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7년 내내 한 건 아니지만, 두 번에 걸쳐하면서 애니메이터로서의 정체성 고민을 많이 했다. 대학 때 시각디자인과를 다녔는데, 졸업할 즈음 열정 많은 교수님이 학과장으로 오셨다. 졸업작품으로 “어떤 걸 해도 좋으니까 너희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거, 10년 뒤에도 하고 있을 거를 하라."라고 하셨다. 나는 시각디자인과에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유일한 학생이었다. ‘과연 내 애니메이션에는 뭘 넣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일본이든 중국이든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해외에서 봤을 때 한국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 없잖아. 나 스스로도 구별을 잘 못하겠는 거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을 객관화해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국에 갔다. 그래서 그 차이를 가장 많이 봤다. 한국이랑 중국이 어떻게 다른가.      

 

중국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

당시 가장 친한 친구가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대학교 전공은 같은데, 4학년 때 자기는 미술 쪽이 아닌가 봐 그러면서 중국어 쪽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 친구를 가까이 보면서 한 마디씩 배웠다. 가기로 결정되고부터 3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서 같이 카페에 가서 발음 교정하고, 소리 내는 걸 배웠다. 또 내가 어렸을 때 한자 학원만 열심히 다녔다. 고향인 광주에 향교가 있는데, 학원이 망해서 없어지면 갓 쓰고 한복 입고 수염 기른 할아버지가 하늘 천 따지 하는 데 가서 한문 배우고 그랬다. 한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나가서 한국 애니메이션이란 어떤 것이라는 감을 잡았나?

되게 당연한 건데, 1년이나 보내고 알았다. 처음에는 비슷한 점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알던 한국의 옛날 모습이 여기 그대로 있네?’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시장에서 봤던 것들, 낮은 화로에 계란 익혀서 팔고, 한국에는 지금 어디서 찾아야 되는지 모르는 철로 된 개구리 장난감 같은 게 가게마다 있었다. ‘너무 비슷하다. 이러니까 비슷하다고 생각하겠구나'라는 인상이 컸다.


그런데 6~7개월 지나니까 차이가 보이더라. 사람들의 습관에 녹아 있는 것들, 오랫동안 해왔던 행동양식 그리고 자연적인 조건들이 결정하게 한 것들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져 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서 지붕 처마의 각도 같은 것. 한국에 있으면 사람들이 “한옥의 처마가 아름답다.”라고 얘기를 해도 ‘중국의 처마도 아름답고, 일본의 처마도 아름다워’ 그랬는데, 처마의 곡선이 우리의 시각적인 만족을 위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처마의 각도가 올라가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달라지게 된다. 일조량이 적은 곳일수록 처마가 더 많이 올라가게 돼서 훨씬 더 곡선적인 형태가 나오는 거고. 그렇지 않은 곳은 직선이어도 상관없는 거다. 

‘내가 어려서부터 봐왔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내가 보기에, 내가 느끼기에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 애니메이션에 넣게 되면 그게 한국적인 게 되는 거구나’라는 결론을 1년이 지나고서야 갖게 됐다.


대학교 때 만들었던 버전과 대학원 때 만들었던 버전에서 가장 큰 차이는?

기술력이다. 기획은 똑같았다. 대학교 때는 다 할 수가 없어서 주인공이 모험하고 어디 뛰어다니는 건 들어내고 먹는 장면만 넣었다. 두 번째 버전에서 나머지 빠져 있던 장면들까지 다 넣었다.  

실제 배경은 어디인가? 청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외가댁이다. 항상 방학 때 갔다. 내가 시골에 가지고 있는 기억은 항상 여름과 겨울. 봄은 없어. 가을도 없어. (웃음)

 

곤충과 식물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현장에서 채집했나 도감을 많이 봤나?

도감도 보고 현장에서도 많이 따왔다. 우리는 거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 그냥 풀이다’하지 이게 어떤 풀인지 모른다. 다 공부를 하면서 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은 되게 옛날스럽다. 50년대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본 사람들은 다들 “옛~날 애니메이션, 옛~날 배경”이라고 하는데, 한복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현대에도 입을 것 같은 옷으로 하고 싶었다. 위에는 간단한 메리야스 같은 거, 아래는 몸빼나 고쟁이 느낌으로. 


밥묵자 (2007)
밥묵자 (2007)

다섯 번째 계절 (2009)

졸업하고 2년 후 <다섯 번째 계절>이 나왔다. 

졸업하고 나서 배급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학교는 한 스무 군데 내고는 멈추는 거 같아서 내가 낼 수 있는 데를 다 냈다. 그걸 여름까지 했던 것 같다. 당시에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작업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약간 딜레이 됐다. 거의 일 년이 다 된 가을, 겨울쯤에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수묵담채화 같은 인상이었는데, 다시 보니 명백한 디지털이었다.

내가 그림 실력이 그렇게 탄탄하진 않다. 어디서 뭘 배운 것도 아니고 많이 그려 본 것도 아니다. 모든 그림은 애니메이션 하려고 그리는 거다. 동화하면서 실력을 쌓는다고 할까? 동화 몇 만장 그리면서 형태가 좋아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그림을 흉내 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한다. 가장 많이 쓰는 연필로 스케치하고 디지털로 채색을 한다. 캐릭터는 부어서 색칠하는 거 외에는 다른 사람이랑 작업을 할 때 스타일을 맞추기가 어렵다. 최대한 손이 덜 가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려고 고민을 하다가 나온 스타일이다. 

 

수묵담채화처럼 번지는 느낌은 캐릭터 레이어를 많이 써서 냈다. 어떤 레이어는 좀 덜 번지게, 어떤 레이어는 확 풀어서 좀 더 번지게 했다. 눈, 코, 입은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몸에 있는 털은 번지게 하는 방식으로 했다. 포토샵에서 레이어를 나눠서 작업하고 레이어를 따로따로 저장한 다음 에프터이펙트에서 한꺼번에 불러와서 같은 효과를 넣는 식으로 작업했다.  


사계절 전환의 연출과 음악이 잘 어울렸다. 음악을 먼저 작업했나?

나는 음악이 항상 먼저 있었으면 좋겠는데, 실제로 그렇게 해보진 못했다. 내가 음악에 조예가 없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이 가진 힘은 여러 번 경험했다. <다섯 번째 계절>할 때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계속 생각하면서 했다. 원래는 <밥묵자> 음악 했던 분하고 하고 싶었는데, 그분이 심각하게 아프셨다. 그래서 그때 나왔던 애니메이션들을 쭉 보고 김태성 작곡가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지막에 나왔던 음악처럼 약간 노스탤직 하면서 귀에 남아서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을 원한다.”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처음에는 정말 비슷한 음악이 왔다. 한번 들으면 그걸 흉내 낸 음악이라는 생각이 딱 든다. 실제로 두 곡을 바로 옆에다 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곳이 없다. 그니까 뭐라 할 수가 없어. (웃음) 정말 고민하다가 작곡가 분한테 “이건 너무 비슷해서 나중에 내가 항상 변명을 하고 다녀야 될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작업해달라.”라고 했다.        


음악이 잘 붙는다. 음악을 받고 다시 편집을 했나?

음악 하신 분이 영상에 맞춰 작업을 해 주신 거다. 내가 음악에 맞춘 부분은 딱 하나 있다. 오목눈이가 철조망에 붙어 있다가 발자국 소리 나면서 하나씩 날아간다. 그 높낮이가 음악이랑 맞춰져 있다. 음계처럼. 그 부분만 음악에 맞춰서 새를 옮겼다.


다섯 번째 계절 (2009)
다섯 번째 계절 (2009)

한동안 개인 작업이 뜸했다.

<다섯 번째 계절>을 너무 열심히 했는데, 그걸 하면서 정말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내 인생이 그렇게 잘 풀린 때가 없었는데, 앞으로는 그냥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그전까지는 나한테 ‘안 된다. 안 된다’하는 상황들이 많았다. 집에서도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싫어하셨다. 그림으로 대학 가면 서포트 못해준다 해서 내가 돈을 벌어서 다녔다. <밥묵자>를 하고 나서 다들 “잘한다. 잘한다. 너는 계속 그렇게만 해.” 이렇게 됐다. 그전까지는 다 안 된다니까 '나는 할 수 있다'를 증명해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목표가 사라진 거다. 나는 애니메이터가 되는 게 목표였던 거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것에 너무 삶의 무게가 쏠려있어서 개인적인 삶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삶의 모든 것이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배경으로 나오는 한옥을 잘 그리고 싶어서 한옥에 대한 책을 읽다가 한옥학교에 입학 상담을 하는 식이다. 당시에는 내 취미, 혹은 관심사가 한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따져보면 이것도 모두 애니메이션을 위한 것이었다. 내 미래에 애니메이션 이외의 것이 그려지지 않아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 일상을 회복하고 나서야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악어가 쿵, 작은 새가 포르르 (2013)


<악어가 쿵, 작은 새가 포르르>는 제3회 CJ문화재단 그림책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공모작이다. 원작은 직접 골랐나?

한 200권쯤 읽어 보고 골랐다.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짧고 간단하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쓰진 않았다.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할 때 어떻게 연출하려고 했나?

그때 당시가 기억이 안 나. 나이가 들어가지고 (웃음) 책에 있는 캐릭터의 형태가 애니메이션을 하기에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어서 새로 그렸다.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 (2020)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는 그림책에 비해서 귀신을 제외한 그림체의 선이 강해졌다.

<보리야>를 2012년부터 해서 되게 오래 작업했다. 그게 끝나고 나니까 좀 다른 걸 하고 싶었다. 완전히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제작지원 결정이 된 게 2월 말인가 그랬는데 10월 말에 제작을 끝내야 했다.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는데 내용을 짜다 보니까 너무 긴 거다. ‘최대한 짧게 한 6분? 6분 좋다’했는데, 내용이 6분 안에 안 끝나. (웃음) 하다 보니까 10분이 됐다.

 

프랑스에 와서 작업하는데, 여기서 인력을 섭외해서 할 상황이 아니었다. 혼자 소화하려고 ‘어떻게 하면 화면을 급조하지 않은 것처럼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때 그림으로 꽂혀 있던 책이 『거리에 핀 꽃』 (글: 존아노 로슨, 그림: 시드니 스미스)이다. 대사가 하나도 없이 수묵으로 되어 있는 책인데, 거친 종이, 까만색 잉크 표현들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애니메이팅을 다 그릴 수는 없으니까 퍼펫처럼 해보자. 이게 또 너무 단조로워 보일 수가 있어서 중간에 둘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애니메이팅이 들어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 연출이나 성우 캐스팅은 직접 한 건가?

한국에 계신 PD님이 주로 해주셨다. 캐릭터에게 맞는 목소리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훨씬 더 나이 든 목소리였으면 했다. 나이 든 연기를 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나이 든 좀 거칠고 갈라지는 목소리를 바랐다.        

 

귀신은 어떤가? 귀신은 상당히 젊은 목소리였는데?

귀신은 젊어서 죽었거든. 죽어서 약간 미라화 돼서 나이 든 모습이긴 하지만, 일단 젊은 사람이다. 한 40대 정도? (웃음) 그래서 귀신 캐릭터의 목소리는 찾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보리야 (2019)


<보리야>는 불어 더빙 버전을 봤다.

아직 한국어가 안 입혀졌다. 7월에 SICAF에서 틀텐데, 나는 정말 한국어로 틀고 싶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때문에 여름 전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불어 캐스팅은 어땠나? 

보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목소리였으면 했다. 그게 추상적이니까 ‘허스키한, 굵은 목소리의 여자아이였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목소리가 찾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PD님한테 “남자아이 목소리는 어때요?”했는데 주는 샘플은 여자아이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모나 목소리를 들었는데 굉장히 강단 있어 보이는 톤이 좋았다.

 

그 녹음이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하루종일 했다. 같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한다는 게 지치는 일인데, 아이가 끝까지 웃으면서 주눅들지 않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홉살인가 그랬는데 되게 똑똑한 애였다. 완전 프로페셔널.    


<밥묵자>의 묵이와 할머니는 땅딸막한데 <보리야>의 엄마도 보리도 되게 늘씬하다. 좋아하는 여성의 외형인가?

나는 그림 스타일이 개성 있고 확고한 타입의 작가가 아니다. 작업 이외에 드로잉 작업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면 이런 식의 캐릭터들이 나온다.

 

아마도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보아왔던 많은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책에 등장인물들이 곱고 늘씬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는데, 작가로서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보리는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엄마는 그렇지 못했다.

 

보리가 묵이에 비해서 시골아이 같은 느낌이 덜 한데, 엄마 캐릭터가 또 훨씬 덜 시골 아낙 같아서 이런 결과물이 되었다. 좀 더 캐릭터의 배경이나 상황이나 성격에 따른 캐릭터 디자인이 되었어야 하는데 <보리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2012년에 시작해서 2019년에 완성했다. 도중에 프랑스로도 이주했다. 실질적인 제작기간이 어떻게 되나?

3년이다. 중간에 쉰 기간이 많다. 2012년에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아서 완성을 해야 했다. 당시에 완성본이라고 냈던 게 10분 조금 안 됐던 것 같다. 칼라 없이 애니메이팅이 1초에 여섯 장 들어가는 식으로 해서 제출을 하고 덮어놨다. 

 

2013년도부터 프랑스 쪽 제작사 여기 저기를 두드렸다. ‘일본 애니메이션 같다’, ‘어디서 맨날 보던 거 같다’는 피드백만 있어서 포기하고 있다가 2016년이었나? 지금 일하고 있는 MARMITAFILMS하고 연결이 되었다. 이쪽 PD님이 내가 가진 이야기들을 좋아하셨다. 여기서는 한 군데서 크게 받는 게 아니다. 방송국도 있고, 지역도 있고, PD님이 여러 군데서 조금씩 받아서 제작비를 만들어 주시면서 프랑스로 와서 작업을 하게 됐다.    

 

빠졌던 애니메이션 다 집어 넣고 칼라링 넣고 배경에도 칼라 넣고 들어냈던 장면들 다시 넣었다. 50%는 한국에서 50%는 프랑스에서 한 것 같다.  


인상적인 보리밭 시퀀스가 세 번 나온다. 보리가 외출할 때, 물에 빠졌다가 나왔을 때, 다시 집에 갈 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실제 겪었던 이야기다. 내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하나 있고 세 살 적은 남동생이 하나 있다. 언니는 항상 나를 집에 두고 자기 또래의 다른 언니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다. 동생은 뱀 잡으러 다니는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혼자 시간을 되게 많이 보냈다. 보리처럼. 

 

혼자 냇가에서 다슬기 같은 걸 따면서 놀다가 쪽 미끌어져서 빠졌다. 물 속에서 기억이 되게 생생한데 ‘나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뭔가를 잡고 나와서 다리 위로 올라와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던 차에 동네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일상적인 인사를 하셨다.

 

그때 ‘내가 방금 물 속에 빠져서 죽었어도 아무도 몰랐겠구나.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갔겠구나’ 굉장히 외롭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혼자 놀면서도 외로웠는데,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몰라.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그 바로 다음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몸이 젖어 있으니까 감각이 살아나는 거다. 그전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고 느끼지 않았던 것이 느껴지는? 풀벌레들이 날아가는 소리, 바람 소리, 보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름에 얼마나 빨리 말라. 옷이랑 피부에 햇빛이 앉으면서 수분이 사라질 때 반짝반짝거리는게 눈에 보였다. 햇빛이 찬란하게 떨어지는데, 그 입자 하나 하나가 온 세상에 이렇게 차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인간만 찾아서 외로웠는데, 다음 순간에 이 세상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는 생명들이 느껴지는 거다. 

 

보리가 물에서 나와 혼자 앉아서 울고 쭉 화면이 빠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새들이 날아다니고 보리밭은 흔들린다. 내가 당시에 보리밭에 앉아서 느꼈던 것을 표현했다. 


<보리야>는 초반에 완성했을 때 음악이 있었나?

마지막에 하게 됐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에 쓰인 “꽃의 동화" 같은 느낌이었으면 했다. 극이 끝나고서 사람들이 입으로 흥얼거릴 수 있는. 굳이 한국 음악일 필요는 없고 처음 들어도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음악이었으면 했다.

 

바람 소리를 넣고 싶어서 공기가 흐르는 목관악기 연주자를 찾았다. PD님이 한국 문화원에 연락해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대금 연주자를 찾았고 그분이 파리에서 활동하는 주준영 작곡가를 연결해주셨다. 음악은 전화로 메일로 설명이 잘 안 된다. 대사관에 여권 만들러 딱 하루 파리 간 날, 한 세 시간 짬 내서 서로 보면서 얘기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샘플을 보내주셨는데 ‘이 정도면 되겠다' 싶더라. 


늙은 개

<밥묵자>랑 <보리야>와 작업 중인 <늙은 개>를 묶어 장편으로 개봉할 계획이다. <늙은 개>는 어느 만큼 진행됐나?

캐릭터 조금 나와 있고 지금 시나리오 하고 있다. 올해 9월에 작업 들어갈 것 같다. 개봉은 2022년 3월로 들었다. 

 

<밥묵자>와 <보리야>는 아이가 집 밖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돌아와서 밥 먹는 이야기다. <늙은 개>는 어떤 변주를 하게 될까?

배경은 같은 집이다. 근데 굉장히 색깔은 다를 것 같다.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고,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생각하는 캐릭터는 돌아가시는 분이다. 그리고 장례식을 진행하는 사람들. 

 

전체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가 되겠다.

사실 <늙은 개>는 대학원 실기 시험 볼 때 썼던 이야기였다. 그때 그린 다섯 장 짜리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해볼까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극화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보니까 부족한 점이 많아서 크게 바뀌었다.  


<늙은 개> 콘셉트이미지
<늙은 개> 콘셉트이미지

시골개 마루

2015년에 장편 <시골개 마루> 예고편을 만들었는데, 완전히 접었나?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고 나고 남아있는 동물들에 대한 사진첩이 나왔다. 사람들이 급하게 떠나면서 동물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살고 죽어 갔는지에 대한 거다. 그 책을 모티브로 한국 시골 설정 이야기를 짰다. 아직 놓지는 않고 있는데,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더독>(2018)이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작년에 개봉한 한국산 극장용 장편들이 줄줄이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투자가 많이 위축된 상황이다.  



프랑스에서 작업하는 건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다른 점은 PD가, 제작사가 있다는 거다. 권리관계 문제가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author right하고 copyright이 다르더라. 여기서는 author right이 프랑스 제작사에 있어야 제작 지원을 해준다. 한국에서는 제작사가 없이도 작가가 작품을 완성해서 판매도 출품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극장에 걸려면 국가에서 나오는 비자 같은 게 필요하다.

 

한국에 제작사가 있어서 제작사의 이름으로 이쪽 제작사랑 계약서를 썼으면 공동제작이 되는데, 한국 제작사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계약하면 프랑스 단독 작품이 된다. 계약서를 쓸 때 많은 권리를 넘겨줬다. 경험이 쌓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독립 하기도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또 엉떼미떵(intermittent 프랑스 예술인 고용 보험)이라고 창작자 생활 지원이 있다. 내가 1년 동안 일하면서 일정시간을 채우면 그다음 1년 동안 다른 일을 찾으면서도 일정한 금액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거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인 대신 세금을 엄청 많이 낸다. 감독은 내는 세금이 다르더라. 나는 65%를 냈다.     


<보리야> 스타일프레임
<보리야> 스타일프레임

자전적인 만화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만화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혼자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애니메이션은 10분짜리를 1년에 걸쳐서 해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적이다. 만화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넣어도 될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다. 내가 그렇게 특별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다른 분들이 그리면 또 다른 색깔이 되더라. 색깔이 달라지지 않고 완성하는 게 항상 고민인데, 만화는 가능할 것 같다.

 

당시에 생각한 건 출산에 관한 얘기였다.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다 집에서 낳으셨다. 자라면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리석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스물여섯 살에 언니가 첫 출산을 했다. 병원에서 언니를 봤는데 정말 반 죽어 있었다. ‘애를 낳는다는 게 저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언니의 출산이 완전 극과 극인데, ‘난 어떻게 애를 낳아야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스타일은 평범하다고 하는데, 대중적인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것인가?

모르겠다. 한 번도 ‘장편을 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단편의 한계가 명확하니까 주변에서 더 챙겨 주시는 것 같다. 나는 계획이 없다. 그날그날 살아남는 게 목표다.

 Zoom 인터뷰 2020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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