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 LEE Kyutae
- 2020년 4월 24일
- 12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4일

3년 전 4월 8일과 9일 네이버 로고는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 풍경이었다. 분홍과 연두 초록색 색연필로 슥슥 그린 평화로운 봄은 이규태의 루핑 애니메이션이었다. 2020년 봄엔 그릴 수 없는 어떤 날의 스케치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한 작가는 날마다 추억의 풍경의 갱신한다. 앉아서 그림만 그려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매주 공을 차고 있다고 했다. 운동도 그림이 된다. 그림도 운동이 된다. 일상을 그리고 이야기를 엮고 움직임을 만지는 이규태를 만났다.
돌아보다 (2008)
필명으로 쓰고 있는 kokooma는 학교 다닐 때 별명이었나?
생긴 것도 좀 연결은 되는 것 같은데, 딱히 부르는 별명은 아니었다. 한글로 고구마를 쓰면, 뜻을 모르고 봤을 때 직선으로 되어 있는 글씨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당시에 필명을 멋있게 짓는 게 유행이었다. 되게 멋있는 외국 이름들. 그래서 고구마라고 지었다. 멋이 없는 이름으로 (웃음) 영어는 선배가 알파벳 K로 써주셔서 그때부터 그렇게 썼다.
예술고등학교에 갔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나?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술을 시작해서 예고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학년 때는 조소, 디자인, 서양화, 동양화를 실습해보고 2학년 때 전공을 정한다. 조소를 하다가, 애니메이션을 한다고 했을 때 서양화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꿨다.
1학년 때 아는 3학년 형이 만들었던 프리즘이라고 애니메이션 동아리 비슷한 게 있었다. 그때 비디오테이프, 옛날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든가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봤다. 2학년 때 미술전시회 행사가 있었다. 입시 전에 전공 선택하고 조소면 조소, 서양화면 서양화 작업을 해서 학교에서 전시하는 거다. 그때 친구랑 같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자른 다음에 거기다 라이트 박스를 대고 동화를 하는 거다. 수업시간에도 하고 너무 즐거웠다. 몰랐을 때는 ‘아 이런 게 있구나' 신선해 했고 한 번 해보니까 ‘아 움직이네' (웃음) 그러면서 학교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시작을 했다.
프리즘에서는 영화제 출품은 안 했나?
<98>이라고, 옛날에 무서운 얘기가 있었다. 난간에서 98, 98 하면서 뛰고 있으면 경비 아저씨가 도와주러 오는데, 그 아저씨를 떨어뜨린 다음에 99, 99 뛰고 (웃음) 그 얘기를 그냥 해봤다. 그때 신문부 활동도 했었는데, 친구가 그렸던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둘이 같이 만들었다. 그게 <나라 살리는 만화>다. 되게 더운 날 음료수를 먹을 것처럼 동전을 넣었는데, 알고보니까 저금통이었던 얘기. 그 당시가 IMF랑 약간 힘든 시기랑 맞물려서 (웃음) <나라 살리는 만화>는 배급을 정식으로 하진 않아도 청소년영화제였던가? 거기 내서 은빛상? 인기상? 이렇게 받기도 했다.
학교에 애니메이션 수업이 따로 없고 동아리에서 알음알음했나?
애니메이션 본격적인 거는 내가 있을 때와 다음 몇년 정도까지만 이어진 걸로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어떻게 어떻게 한 게 나한테는 되게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나름 작업실도 있었고 되게 의욕적으로 재밌게 했다.
한예종으로 온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나?
일단은 수능을 안 봤고, 여러 가지 매력적인 부분이 많이 있었다. 2000년에 입학했는데, 그때 만났던 기수가 다 너무 좋아서 되게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밤새는 것도 과제하는 것도 밥 먹으러도 항상 같이 갔고 지금도 계속 연락하는 친구들이 많다.
1학년 과제전 할 때는 애프터이펙트 많이 썼고 포토샵 썼고, 2학년 때는 수작업 베이스로 컷아웃 정식으로 했었고 3학년 때는 컷아웃인데 움직임은 손으로 동화한 느낌으로, 4학년 때 졸업작품은 디지털로 했었다. <돌아보다>(2008)는 전부 다 디지털로 했다. (원, 동화도) TV페인트로 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시기가 배경이다. 뭔가를 발견하고 계속 연마를 해서 갔지만,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목표가 사라지고 만다는 공허한 얘기다.
언제 기획했나?
군대 다녀와서 복학하고 휴학을 한 번 더 했다. 3학년 때 했던 작업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좀 많아서 집에서 선택한 컷들을 작업하면서 졸업작품 기획을 했다. 4학년 1학기 때까지 다녔어서 나름 목표한 데까지 하고 2학기에 복학했다.
권영환 작가가 그때부터 사운드를 했다.
프리즘에서 애니메이션 같이 만들었던 고등학교 동기다. 워낙 재주가 많다. 기타 치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밴드도 고등학교 동아리 때부터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림, 만화, 애니메이션, 사운드 그러면서 뮤직비디오까지 하다가 졸업하고 사회의 쓴맛이라고 해야 될까... 상실감을 느끼고 유학길에 올라서 지금은 조형예술하고 있다.
음악 만들어 주는 신현모도 고등학교 때 친구다. 같은 미술 전공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을 했다. 스쿨SKOOL이라는 밴드였는데, 쇼 프로에도 나가고 구본승 밴드라든가 방송활동을 좀 하다가 음악 쪽으로 갔다. 지금도 음악 하면서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만화창작집단 쾅의 멤버들은 한예종 동기들인가?
졸업할 때쯤에 넷이서 거의 맨날 게임만 했다. 같이 스타크래프트 하다가 어차피 같이 노니까 다르게 한 번 놀아보자 하면서 시작했던 게 쾅이었다. 다 같은 학교 친구였고 다 만화나 그림책이나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욕심도 많고 하다가 안 되기도 하니까 생각보다 준비 기간이 길었다. 기다려야 되는 기간들이 서로 있어서 시작은 2009년도 초반에 했는데, 모이고 정리되고 하다 보니까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때까지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RUN RUN RUN (2008)
쾅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할 때마다 다 회의를 했다. 사소한 것도 치열하게 얘기를 해서 옆에서 보면 싸우는 줄 알았을 정도다. 열정이 많았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어떤 놀이를 만드는 어떤 첫 번째 행위였던 것 같다. 작업은 결국엔 혼자 하지만, 어떤 마감처럼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어 갔던 시도였고 그런 것들이 이어지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확실히 됐던 것 같다.
개인의 작업뿐만 아니라 작은 판으로써 지속적인 창작 움직임을 만드려고 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서로 작업들 보고 피드백도 해주었다. 내가 선택하고 판단한 거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빠지고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넘겨주었던 것 같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서로 주고받았다.
처음부터 웹진 형태로 해야겠다고 정했나?
일단 작업이 중심이었다. 자금도 그렇고 작업 자체에는 도움이 안 되는 제작 시간은 최소화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나눈다는 개념이었다. 가장 간소하게 올릴 수 있는 웹 게시를 선택했었다.
<RUN RUN RUN>(2008)은 학교 다닐 때 한 건가?
쾅을 시작한 시점에 작업실에 들어가게 됐다. 여덟 명 정도 사람들이 정릉의 옛날 단독주택에서 작업실을 같이 했다. 고로로 픽처스 멤버가 여섯일곱 명 정도고 추가로 각자 회화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영훈이라는 동기 친구랑 같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미지는 최영훈 작가 스타일이다. 공동 감독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초반 기획은 계속 달리는 콘셉트였다. '그냥 끝까지 달려 나가자!' 달리게 한 건 배낭이랑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넌 주인공 달리게 해라. 내가 배낭 달리게 할게.” 거기에 배경이 디딜 때마다 세계가 만들어지는 콘셉트여서 “배경 움직임도 할게.” 이렇게 된 거다. 주인공을 영훈이가 달리게 하다 보니까 거기에 맞춰서 이미지들이 됐던 것 같다. 재밌었다. 너무 즐거워서 아르바이트 끝나고 뛰어가고 그랬다. (웃음) 빨리 하고 싶어서.
몸이 큰 아이 The Big Boy (2012)
그다음이 <THE BIG BOY>(2012)다. 2010년 쾅 0호에 실린 『Each other』는 2014년에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THE BIG BOY>는 애니메이션이 먼저 나오고 2014년에 만화가 나왔다. 만든 순서가 어떻게 되나.
만화를 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기본이다. 쾅 0호를 시작할 때까지 작업을 하는데, 말씀드렸다시피 속도가 달랐다. 쾅을 준비하면서 처음에 했던 게 『몸이 큰 아이』였다. 『몸이 큰 아이』를 끝내고 나서 창간호까지 시간이 있어서 『Each other』를 한 거다. 타이밍이 맞았으면 『몸이 큰 아이』가 그때 나왔을 텐데, 다 준비가 안 됐으니까 다시 사이클을 정해서 이번엔 진짜 해보자 해서 나온 게 『Each other』였다.
'주제를 정해 작업한 것을 뭉쳐서 어떤 호에 낸다' 이런 식인가?
주제는 굳이 정하진 않지만 일정 정도는 공유했다. 처음엔 계간 형식이어서. 3개월 안에 각자 완성을 하는데, ‘언제까지 콘티’라든가 나름의 일정들을 약속하고 진행했다.
『몸이 큰 아이』를 먼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건?
보통 애니메이션을 진행할 때 기존에 했던 원고들 중에 '하면 좋을 것 같다' 싶은 것을 선택한다. 그 당시의 목표가 '이미지를 그대로 영상으로 구현해보자'였다. 그래서 『몸이 큰 아이』를 먼저 선택했다.
확실히 만화와 이미지가 상당히 비슷하다. 만화 원고를 사용해서 만들었나?
텍스처나 배경 이미지들은 그대로 살리고 움직임들을 최대한 이질감 나지 않게 디지털로 구현을 한 거다.
항상 뭐든지 애니메이션으로 하면 좋겠다고 하고 있지만, 만화를 할 때는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서 하진 않는다. 만화랑 애니메이션이 호흡이 달라서, 애니메이션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그 사이에 만들었던 만화들 중에 골라서 만들었다.
그때 딱 정한 게, 컴퓨터가 집에 있으니까 '집에서는 애니메이션, 밖에서는 만화'였다. 밖에 있을 때는 노트 펴고 최대한 편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온라인에 오픈해도 보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올리고 나서 딱히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뭐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그 당시에 정릉이 되게 춥고 열악했다. 그래서 근처 헬스장을 끊어서 밤에 거기서 씻고 그랬다. 헬스장에도 스케치북을 가져갔다. 최대한 밖에서, 카페 같은 데서 한다거나. 그리고 집에 가면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은 지원을 받아서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꼭 해야 되는 이유가 있었다. 안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상황 분리를 확실히 해서 진행하니까 동시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Each Other (2014)
<서로가>(2014)는 만화에서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THE BIG BOY> 때 일단은 한 번 그대로 옮겨 봐서 해소가 됐는지 아니면 또 다른 다른 방향이 하고 싶어서였는지, 그대로 옮기는 거는 배제하고 재해석했다. 만화의 터치를 그대로 살리기에는 너무 욕심만 과한 것 같아서 아트워크들을 단순하게 풀면서 애니메이션으로 갔다. 그래야지 애니메이팅에 집중을 할 수 있으니까. 연출도 애니메이션에 맞게 다시 하고 캐릭터도 다시 잡았다.
애니메이션에 비해 만화 버전은 좀 더 잔인하다. 만화 독자와 애니메이션 관객을 다르게 보는 건가?
전혀 아니다. 만화를 했을 때 심리 상태와 시간이 지나고 심리 상태가... 만화 할 당시는 정말 그랬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할 당시에는 좀 순화가 됐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푼 거지, 관객을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았다.
제목은 영어로 지었다가 한글을 붙이나?
보통은 한글이 먼저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배급을 하다 보니까 영어 제목을 넣는다. <몸이 큰 아이>, <서로가>, <여기의 겨울> 이렇게 당연히 한글 먼저 했던 거 같다.
2015년에는 <Swap Meet>라고 vimeo에서 작가 14명이 모여서 작업했다.
너무 즐거웠다. 기획했던 친구 케일럽 우드Caleb Wood에게서 메일이 왔다. 거기에 참여하는 친구들도 관심 있게 봤던 친구도 있고 영화제에서 봤던 친구도 있고 하다 보니까 ‘어 재밌겠다’ 해서 참여를 했었다. 그래서 그분이 한국에 왔을 때도 봤고 파트너로 작업했었던 데이비드 프로서David Prosser도 한국에 왔을 때 만났었고 너무 신기했다.
룰이 되게 간단했다. 짧게 할 거고 이미지를 교환해서 애니메이팅 하면 된다.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게 다 모이니까 한 편의 재미있는 작품이 됐다. 같은 주제 안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보여서 좋았다.
배경은 <서로가>의 스타일이다. 그걸 위해서 그 당시의 이미지를 재활용한 건가? 아니면 그 스타일로 그린 건가?
그걸 작업했을 당시에 그렸던 그림들 중에 그리다 만 것을 (웃음) 보내 줬다.
랜덤 맞교환 방식이었는데, 배경 이미지를 받아서 애니메이션 작업한 건 당시 경험한 에피소드인가?
그쪽에서 파트너를 정해주었다. 정하는 방식은 랜덤이었고.
에피소드 주인공은 스팍스 에디션Sparks Edition 두 명이다. 스팍스의 장준오도 고등학교 때 친구다. 그 당시에 스팍스에 대한 이미지가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워서 (웃음) ‘어 아닌데? 그게 아닌데?’ 싶어서 만들어 본 거다. 되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작업실이 국민대 앞이었는데, 화장실에서 벌레가 나왔다. 그 친구가 보지도 않고 살충제 한 통을 다 뿌려서 그 자리에 거품만 만들어 놓고 화장실은 국민대로 갔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둘 다 벌레 너무 무서워한다. 무서워하는 친구와 용기 내 잡는 준오, 이거를 잘 맞춰서 한 거다.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
오래 걸리진 않았다. 즉흥적이고 재미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애니메이션 작업보다는 훨씬 빠르게 진행했다. TV페인트로 한 걸 흐리게 출력받아서 연필로 다시 그렸다. 놀랄 때 색이 확 변할 때마다 다른 색깔 색연필로 그린 거다.
사운드도 직접 했다.
가볍고 놀이 같은 거여서 라이브러리에서 찾아서 직접 했다. 친구가 유학 중이기도 했고.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예전에 그린 그림을 루핑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걸 많이 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쪽에서 프로젝트처럼 뭔가를 한다고 해서 참여했다. '어떤 걸 할 수 있을까'하다 가볍게 움직임을 루프로 넣었다. 생각보다 재밌으면서 귀찮기도 하고 그러더라.
여기의 겨울 Here Winter (2017)
<여기의 겨울>(2017)은 만화가 2015년 QUANG Short Comics로 나왔다.
원고를 완성하고 그것도 그냥 만들어야 되는데, 뭘 할 수 있을까 찾다가 하게 된 거다.
극 중 인형극 장면에 박재인 감독의 <Piece, Peace>(2013)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놀이 같은 기분으로 한 건가?
내가 작업을 하는데 재인이가 뭔가 도와줄 게 없냐고 하는 거다. 당연히 있는데, “동화를 좀 해줘” 이런 것 보다 ‘같이 하면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주인공이 연극 무대로 떨어진 장면이 있는데, 그 무대 안 쪽을 연출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제안을 했다. 완전히 확 분리될 수 있어서 그 친구도 도와주지만 작업의 일환으로써 좀 더 즐겁게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 장면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여주인공 자체가 박재인 감독 아닌가?
맞다. 그래서 새로 막 하지 말고 기존 인물들을 등장시켰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서 정해졌다.
박재인 감독과는 어떻게 만났나?
재인이도 계원예고, 한예종이었다. 그 친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처음 알았었는데, 프리즘에 잠깐 왔었다. 학교에서 서로 인사하는 정도였다가 얘기를 많이 하게 된 건 정릉에서 작업실 생활하면서다.
만화책 앞 날개에 ‘정릉의 겨울은 추웠고 인도의 겨울은 따뜻했다’라고 쓰여있다. 정릉의 작업실은 아직 있나?
지금은 없다. 너무 옛날 건물이라 허물어졌다. 허물기 전까지 살았다. 작업실이랑 원래는 따로 있었는데, 나중에는 집을 아예 그리로 들어갔었다. 마지막엔 사람들 다 빠지고 재인이만 같이 있었다.
2018년에 발간한 작품집 『Jaein』은 프러포즈 북으로 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그림 속 장소마다 함께였나?
다 같이 갔었다. 따로 그걸 위해서 그린 게 아니고 여태까지 그렸던 것을 모아서 낸 거다. 그래서 의미 있는 책이다. (프러포즈는) 말은 못 하고 책 제목이 『Jaein』이다 정도.
현재 진행하고 있거나 기획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나?
<가끔 그런 날>이라고 쾅에서 했던 선 중심의 정말 짧은 만화를 거의 그대로 애니메이션화 하고 있다. 예전에 수제 책으로 만들었던 책인데, 애니메이션으로 진행을 하다가 잠깐 멈춘 상태다. 동화는 다 끝났다. 전체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뭔가를 하고 싶은데, 그 상태로 지금 1년이 지났다. 이제 마무리 지어야지.
애니메이션에 대사를 전혀 안 쓴다. 만화는 대사가 있는데 왜 그럴까?
성우 녹음이라던가 연기가 되게 큰 숙제였다. 아직 안 해봐서 어려운 영역이고 자연스럽게 멀리 했다.
사운드와 음악은 작업은 같은 친구들과 계속한다. 본인 작업을 잘 이해하기 때문인가?
다른 분들과 아예 해본 적도 없고 그 친구들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사운드적인 해석도 이미 영상을 전공한 친구라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포인트들을 잡아낸다. 음악 같은 경우도 그 누구보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많고 그 친구의 음악을 알고 있기 때문에 “너의 기타가 너무 좋다.” 하면서 맡긴다. 딱히 주문할 필요도 없다. “여기는 어떤 느낌이야.”하면 다 알아서 해준다.

조그만 몰스킨 노트에 그림 작업을 한다.
졸업하고 나서 2010년도 즈음에 작업을 열심히 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작업을 하고 또 아르바이트하고 작업을 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다. 초반에는 그림도 되게 큰 사이즈에 열심히 그렸다. 보정을 한 번 하는 것도 밤새는 경우도 있었다. 보정한 다음 날 ‘원래 게 낫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 안에서 얻은 것도 있겠지만, ‘내 욕심이었나?’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약간 병적으로 자료도 안 보고 그냥 최대한 혼자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노트도 재료도 그렇게 가고 자료도 보고, 좀 더 편하게 편하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색연필뿐만 아니라 유화 등 다른 재료와 스타일이 보인다. 고등학교 때 서양화를 하면서 재료 교육을 받았나?
서양화 전공을 하면서 예종반이라고 따로 있었다. 학교에서 예종 가고 싶은 사람끼리 모았다. 다른 사람들 전공 수업할 때 예종반으로 수업을 갔다. 그때 재료를 되게 다양하게 사용했었던 것 같다. 아크릴, 수채화, 사인펜, 색연필, 오일 파스텔, 유성, 수성, 건성 다 다뤄보면서 혼합해서 사용하는 식으로 작업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때 연필로 동화를 하면서 애니메이션 했던 거 그리고 재료를 다양하게 써봤던 게 7~8년 후 졸업 작품을 할 때 나온 거다. '그때 했었으니까'라는 기억이 자신감으로, 믿는 구석으로 나왔다.
인스타그램에 그리는 것과 비슷하게 꾸준히 많이 올린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으니까 쉽게 쉽게 너무 고민하지 않고 그렸던 것 같다. 소재도 너무 깊은 데서 안 찾고 주변의 친구들, 갔던 여행, 내가 좋게 봤던 것들을 그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작업량도 많아지고 매일 올릴 수 있는 상황이 됐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책 표지와 삽화 작업을 국내외로 많이 했다. 기존 작업을 쓰기도 한다.
처음에 의뢰할 때 기존 그림을 써도 되냐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내 상황이 안 됐을 때 기존 그림도 되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 매체 연락은 보통 메일로 오는데, 인스타를 보고 연락을 주시는 것 같긴 하더라.
영어를 잘 하시나?
아니다. 번역기를 되게 잘 돌린다. (웃음) 정말 기본 단어만 한다. 영어를 잘하는 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것만큼 욕심이 많다.
홈페이지 소개 보면 ‘Illust-comic-ani'라고 되어 있는데 순서에 의미가 있을까?
작업하는 순서가 그렇게 연결된다. 그림 하나에서 만화가 되는 경우가 많고 거기서 애니메이션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작대기로 연결해 놨다.
일러스트는 밝은 느낌인데 초반의 만화 작업들은 많이 어둡다.
작업마다 분위기나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공』은 내 유년 시절 이야기다. 매화 상황에 맞춰서 해당 탈을 쓰는 에피소드가 나열된 형식이다. 『공 구르기 전』은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얘기다. 전체적으로 작업에 깔려 있는 거는 외로움이다. 지금 그림은 밝지만, 기본적으로 쓸쓸하고 외롭고 이런 감정, 혼자인 느낌을 옛날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좋은 건 아니지만, 그때 느낌이 작업이랑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만화는 이야기로 풀어내다 보니까 좀 더 직접적으로 담기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집은 안락하긴 하지만 어둡고 답답한 느낌이다. 세상은 비바람 치고 눈보라 치고 상당히 거친데도 나가고 싶어 하고.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부분들이 좋지만, 자유가 없는 삶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군대가 가장 극단적으로 무서운 곳이다. 자유가 없으니까.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같은 경우 조금 편안함을 주지만, 크게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차라리 힘든 곳에 놓여 있는 게...
직장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나?
절대 못할 것 같다.

넷이 시작한 쾅은 지금 열 명 정도인 걸로 안다. 멤버는 어떻게 충원하는가?
회의를 거친다. 초반에는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하니까 학교에 있는 친구들 위주로 같이 했다. 나중에는 만화를 정말 하고 싶은데, 웹툰도 아니고 좀 상황이 같이 하면 좋을만한 사람들한테 제안을 했다. 내부적으로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지금 누군가에게 제안하고 그런 상황은 아니긴 한데, 다시 또 본격적으로 하려고.
쾅 활동 10년이 넘었고 60여 개의 웹진과 여러 출판물이 나왔다.
처음에는 계간이었다가 월간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격월간으로 다시 바뀌어서 한참 진행했었다. 지금은 또 다른 형식으로 기획을 했다. 사람마다 호흡이 되게 다른데, 좀 천천히 하고 싶은 친구도 있다 보니까 지금은 1년에 두 편씩 실제 잡지를 발행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첫 번째 거를 올해 중반 이후로 계획하고 있어서 다들 원고 진행하고 있다. 조금조금씩 사람에 맞게, 상황에 맞게, 하는 상태다.
창작 활동이 벌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애니메이션도 지원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다. 생계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쓰고 있으면 또 있는 대로 쓰고, 그냥 그렇게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매달 계속적으로 해나갔던 것들이 결국에 다 단단한 하나의 단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쾅에서 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었던 거고 또 애니메이션을 했기 때문에 다음 애니메이션도 기획할 수 있는 거다.
작은 모임을 여러 가지 한다. 용산 드로잉은 쾅의 부분집합인가?
친구 두 명이랑 재인이랑 네 명이서 용산에 살 때 겸사겸사 만나서 같이 밥 먹고, 밥 먹자 해서 만나다 추가적으로 놀이 개념으로 했던 게 용산 드로잉이다. 편하게 매일 그림을 올리는 거였다.
스펙트럼 오브젝트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분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취향들이 분명해진다. 물론 장점이 있지만, 다른 취향에 대해서 벽을 쌓는다. ‘이렇게 나이 들다 보면 너무 좁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어떤 친구가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얘기하다가 시작하게 됐다. 서로 작업을 하면서 영향을, 도움을 받은 무언가를 소개해 주는 거다. 초반에는 기준을 음악으로 잡아서 했다. 그걸 듣고 2주에 한 번씩 각자 해석을 해서 작업을 공유를 하는 모임을 갖는다. 헤비메탈 같은 거는 내가 평소에 들을 일이 없지만,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친구를 통해서 듣고 ‘아 이것도 이런 매력이 있구나’ 알게 된다.
스펙트럼 오브젝트 인스타그램 계정엔 2020년 기수 작가들이 태그 되어 있다. 다음 기수는 다른 멤버로 진행하는 건가?
원래 멤버로 활동하던 친구들 중에 몇 명이 참여를 못하고 있어서 분명히 한 거다. “올해 할래?”라고 물어봤을 때, “아, 올해는 좀 바빠”라거나 “올해는 다른 일이 있어"라고 하면 다음이나 다시 시간 될 때 하는 거고 올해 한다고 했던 친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는 거고 (웃음) 나름의 룰이다.
애니메이션 말고 달리 계획하거나 작업하는 게 있나?
요즘에 축구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CFC라고 Creator Football Club.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안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끔 격주로 주 2회씩 이렇게 하고 있는데, 참여하는 분들이 다 작업하는 분들이다. 큐레이터분들도 있고 회화하는 분들, 디자인하는 분들 다양하게 있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게 많은 것 같아서 즐겁더라. 지금 가볍게 시작하고 있는 거는 순서를 정해서 매주 하나씩 각자의 영역 안에서 게시물을 올리는 거다. 만화 하는 친구는 만화를 그려 올리기도 하고 모션을 하는 분들은 모션을 하기도 한다.
언급했던 모임들이 다 현재 진행형인가?
용산 드로잉은 이사하면서 없어졌다. 쾅, 스펙트럼 오브젝트, CFC가 지금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모임이다.

2020년 4월 14일 @석관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