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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NIMATOR Mimyo's review #3


케이팝의 ‘세계관’. 아이돌 그룹과 개개 멤버에게 설정을 부여하고 이를 다방면으로 노출하되, 서사적 빈틈을 두어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기법이다. 그런데 (적어도 aespa의 데뷔 이전까지) 가사는 팝송으로서도 기능해야 하고, 뮤직비디오도 아이돌의 미모나 안무 역시 담아낼 필요가 있는 게 케이팝이다. 여기에 아이돌 IP 확장의 욕망이 더해졌다. 서사 전달에 보다 적합한 미디어로서, 만화, 웹툰,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 등이 케이팝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세계관’ 영상물에 실사 인물이 등장할 때는 몇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 외계인, 초능력 등으로 범벅된 설정은 지금도 아이돌과 팬에게 낯 뜨거운 '흑역사' 취급을 받기에 십상이다. 하물며 판타지 연기를 진지하게, 잘 해내야 한다. 아이돌 팬덤은 서브컬처로서의 자의식이 매우 강해 판타지 세계관에 강한 애착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팬덤은 연출된 아이돌의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연인으로서 아이돌의 '진짜 모습'에 접근하고 있다는 감각을 원하는 경향성도 있다. 그렇기에 현실과 괴리된 판타지 연기는 아이돌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조역을 쓴다면 그것도 문제다. 팬이 보고 싶은 것은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그룹의 범주 밖으로 인적 확장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특성도 있다. 뮤직비디오 속 상대역으로 배우로도 곧잘 예민해지는 세계다.

이러한 난점들 위에 <끝날의 밤 (The Doom’s Night)>이 서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세계관을 담은 웹툰 『별을 쫓는 소년들』 의 예고편 격으로, 스튜디오 피보테가 작업한 애니메이션이다. 멤버들이 실사로 출연한 『별을 쫓는 소년들』 ‘스토리 필름’과 대조하자면, <끝날의 밤>의 감상은 상대적으로 명쾌하다. 실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감상자의 내적 갈등 상당량이 이미 소거된다. 또한 미덕은 세계관에 얽힌 정서를 이미지적으로 전달하는 데 충실히 역할하는 점이다. ‘세카이’ 계통의 서사와 그에 담긴 절망과 허무,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꿈 같은 것들로, 웹툰의 스토리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앨범 속 음악적 표정이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웹툰 독자가 ‘주인공이 살아 움직이는 기쁨’을 얼마나 느낄지는 다소 미지수다. 역시 활극보다는 공기를 담아내는 역할에 어울리게, 웹툰보다 한결 담백한 화풍으로 그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티스트 팬에게는 의외로 웹툰의 구체적인 내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앨범 속 세계관의 한 단면을 감상하는 정도의 연계성을 충분히 담보한다.

역시 스튜디오 피보테의 작업인 BTS의 <We are Bulletproof: The Eternal>는 뮤직비디오 포맷이다. ‘원작’의 ‘재현’보다는 독립된 작품으로서 구성된 듯한 외형이다. 절망 속에서 서로를 지킨다는 가사, 가슴 벅찬 사운드의 기복 등이 영상의 구성요소와 호흡에도 고스란히 맞물린다. 멤버들은 팬시하게 단순화되어, 팬들의 잦은 관심사인 ‘실사와 얼마나 닮았는가’ 같은 영역을 오히려 벗어난다. 이 선택을 강화하듯 멤버들은 상당 시간을 횡스크롤 액션 게임처럼 달리는 데 보낸다. 멤버들의 외모나 안무를 보여줄 이유도 없는바, 인물외적인 스펙터클을 마음껏 구사하기도 한다. 용트림하듯 날아오르는 고래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반딧불이가 별자리, 고래, 콘서트장의 응원봉 불빛 등으로 변하는 연출도 애니메이션으로만 가능한 시퀀스이자, 곡의 메시지와 청자의 감정을 강렬하게 연결하는 장치라 할 만하다.


‘세계관’과 미디어 확장은 기실 1세대 아이돌부터 시도되었던 바지만 지금 어느 때보다 케이팝 산업의 중대 관심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실효성이나 구체적 해법은 여전히 질문의 과정이라 할 만하다. 기획에서 비롯된 ‘세계관’은 팬에게는 때로 ‘회사가 마음대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 아이돌의 매력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귀찮은 숙제로 느껴지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품은 아이돌과 애니메이션이 매우 인상적으로 만나는 장면들이다. 아이돌의 이름이 붙기만 하면 팬들이 소비해줄 것으로 기대하기보다, 오히려 팬들이 반기지 않을 이유를 고민한 뒤 이를 섬세하게 우회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내 아이돌’이 직접 등장하지도 않는데 굳이 봐야 할 이유를 내실 있게 제안하고 있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웹진 『아이돌로지』 전 편집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프랑스 파리8대학 및 대학원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일렉트로닉 음악가로 활동했다. 케이팝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비평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돌리즘: 케이팝은 유토피아를 꿈꾸는가』를 썼고, KLF의 저서 『히트곡 제조법』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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