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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 KIM Junghan

10분 전
15분 분량

김정한


지난달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대상 "인디의 별"은 김정한 감독의 <코뿔소 이슈>(2025)였다. 새벽비행에 출품된 졸업작품이지만,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 동기보다 서너 살 많았던 감독은 오후 두 시 비행 정도로 느껴졌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다. 작품이 그린 사춘기 소년의 욕망도 데일 듯 뜨겁고 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빛도 따갑기 그지없다. <코뿔소 이슈> 이전에 <기니피그 숨기기>(2022)와 <그늘의 고라니>(2023)가 있었다. 모두 숨기기도 드러내기도 곤란한 욕망과 죄의식을 다룬다. 내가 나로 살려면 정체를 숨겨야 할까 드러내야 할까. 솔직한 건 용감한 걸까 위험한 걸까. 애초에 본능은 눌러야만 하는 걸까. 사춘기부터 이어진 고민을 두 번의 시험 비행 끝에 시리도록 눈부신 세상으로 날려 보냈다.  

    

2026년 10월 인터뷰

여기 있다

더 잘 만들고 싶었다

심사 결과가 뜻밖이었나요?

제 작품에 대해서 좀 내려놓고 있던 상황이었어서 초청됐을 때 “대박” 그랬는데, 상을 주셔서 진짜 너무너무너무 감사했어요. 


작품 발표를 하고 난 다음에 영화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어요?

약간 그런 것도 있었는데, 애초에 BIAF 지원 제작 중간발표에서 피드백이 오고 가는 중에 제가 자신감이 상실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더 잘 만들 걸, 연출적으로 더 고민할 걸’ 여기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BIAF에서 상영하는데도 ‘아쉽다 아쉽다’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했어요.


중간 심사 피드백 의견을 반영해서 수정을 했나요?

따로 수정하지 않았고 완성을 했어요. 양가적인 감정이었는데, ‘여기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최대치야. 이걸 잘 완성하자’”랑 ‘더 잘하고 싶어’ 이 두 개가 계속 싸웠어요. 


더 잘하고 싶지만 일단은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네, 그게 저한테 무조건 좋은 것이다라고 믿음을 가지며 매듭을 지으려고 했죠.


호원: 작품을 기획했을 때의 내 생각하고 완성됐을 때의 내 생각하고 매치가 됐을 때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하다가 내 생각이 디벨롭이 되는 경우가 있고, 중간에 크리틱처럼 누가 태클을 걸었는데 고치기에는 늦었을 수도 있고 수긍을 못해서 못 고친다도 있을 텐데

레이아웃, 연출, 타이밍 하나하나 고민해서 끼워 맞췄던 과거의 나를 내팽개칠 수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붙여 뭉쳐져 있는 하나의 뭉텅이인데 아주 작은 방향 수정도 약간 많이 결이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하였어서, 결국 계속 돌아왔던 것은 내가 이 작품을 왜 구상했었지? 하며 초반의 동기와 구심점으로 계속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호원: BIAF 제작지원 기간은 1년인가요?

재작년 5월 6월부터 시작해서 작년 7월에 끝났으니까 1년 꽉 채우고 조금 넘어서 끝난 거죠.


피칭 행사 자체는 영화제 기간에 있어요?

그렇죠. 재작년 10월 이때쯤이었죠. 프리 프로덕션을 만들고 한 20%에서 25% 완성된 상태에서 PPT 준비해서 발표하고 예선하고 본선 해서 선정됐었습니다. 


호원: 작년 BIAF가 첫 상영이었죠. 그때는 분위기가 어땠어요?

관객 반응은 좋았어요. 교수님들도 엄청 서포트해 주시고 선후배 분들 친구들도 작품 너무 좋다 하고 학교 내부행사에서도 작품상 받도 했는데도 제 스스로 계속 질타하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더 잘 만들고 싶었다’는 생각에 계속 잡혀 있었어요.


호원: “잘”의 기준이 어디까지였을까요.

밑도 끝도 없이 ‘더 고민할 걸’… 하며 후회했어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 당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해내었고 그럼으로써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는, 현재의 나를 이뻐해 주는 태도를 올여름이 돼서야 갖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다시 철벅철벅하며 네 발로 기어 나오고 한동안 정신없었어요 (웃음)


3학년 때 작품 <기니피그 숨기기>나 나 휴학 때 작품 <그늘의 고라니>를 보면 주제 고민은 오랫동안 한 것 같아요.

그렇죠. 

기니피그 숨기기 (2022)
기니피그 숨기기 (2022)
그늘의 고라니 (2023)
그늘의 고라니 (2023)

<기니피그 숨기기>나 <그늘의 고라니>는 이미지가 스케치 같거든요. 그게 원하는 완성도였어요?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미술과 완성도보다 스토리텔링을 가장 신경 썼어요. 이 정도 퀄리티면 괜찮고 음악이랑 액팅 잘 나오면 된다 이런 생각이 더 컸었던 것 같아요. 


호원: <기니피그 숨기기>도 <그늘의 고라니>도 아예 영화제는 내지를 않은 거죠.

주변에서 내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제가 소극적이었어요. 나중에 더 잘 만들어서 내려고 했던 마음도 있었고요.


호원: 그러니까 제목이 다른 거야. 두 개는 “그늘”과 “숨기기”고 이슈는 던지는 거지.


고민을 끝내고 이제 보여줄 때가 됐다는 거죠.

이제 앞에다 떡하니 드러내놓고 “짠” (웃음) 


다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텐데

세 작품에 공통적으로 동물들이 등장해요.

『목욕은 즐거워』(글: 마쓰오카 교코, 그림: 하야시 아키코)도 영감 많이 줬었고 저 3학년 때 뉴스 보니까 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탈출(2023년 3월 23일)도 했었고 옛날(2005년 4월 20일)에도 여기서 코끼리 탈출했던데요. 그런 게 되게 심장 뛴다. 이성적으로 통제되는 우리 사회에서 저런 본능, 야생 동물이 확 나왔을 때 사람들이 다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텐데… 뭔가 생동감이 느껴지고 스릴 있다.


기니피그가 주변에 흔했나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니까 2010년대쯤? 마트동물코너에서도 보이고 네이버카페로 분양도 조금씩 하는 분위기였어요.


분양가가 어느 정도 했었나요?

책임비 2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통통한 걸 좋아해서 봤는데, 햄스터보다 큰데 길쭉하고 귀여워서 데려왔죠. 걔 이름이 바보였고 두 번째 데려온 애가 똥깨였어요. 오래 살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두 마리가 저희 집을 거쳐 갔었습니다. 실제로 똥깨는 8년 넘게 살다 기니별로 갔는데 되게 오래 산 경우였어요.


  • 반려 기니피그 "바보"
  • 반려 기니피그 "똥깨"

기니피그는 뭘 먹어요?

건초랑 펠렛, 약간 영양제 뭉친 과자 같은 거예요. 건초는 자율배식, 펠렛은 아침 한 숟갈 저녁 한 숟갈 배식해 줬어요.


그럼 마른 똥을 싸는 거예요?

맞아요. 똥 엄청 많이 싸요. 사실 기니피그가 거의 똥 만드는 공장이에요.


겁먹으면 뿌직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많이 싸요?

걔네가 항문에 괄약근이 없대요. 그래서 안에서 형태가 됐으면 내보내는 느낌인 것 같아요. <기니피그 숨기기>에서도 얘가 똥을 싸고 싶어서 싸는 건 아니지만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막을 수 없는 어떤 것이 계속 분출된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고라니는 교통사고 뉴스가 종종 있었는데요.

그런 영향도 있었겠죠. 근데 고라니는 쌍둥이가 군대에서 키웠었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고라니 이미지를 검색했는데, 되게 이가 뾰족하더라고요.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사슴의 부드러운 이미지랑 배반돼서  재밌다. 뱀파이어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또 수컷만 이래서 페니스 같다는 인상도 있었고요.


길쭉한 송곳니는 수컷만 나는 거예요?

수컷 송곳니가 완전 겉에서 다 보이게 엄청 길게 난데요. 작은 악마 같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코뿔소 이슈>에서는 한 작품 안에서 두 가지 상징 동물이 나타나는데, 이건 그 안에서의 심경 변화랄지 성장을 보여주는 건가요.

그렇죠. 도마뱀은 재빠른 마음의 동요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도마뱀은 되게 흐물흐물하니까 덜 여문 느낌이었으려나요. 참새한테 찢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정받고 싶다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세 번이나 다른 방식으로 시도했어요. 연습, 연습, 실전 이런 느낌이었나요?

4학년 되니까 힘 제일 많이 줬던 것 같아요. 저는 학교에서 굳이 저를 숨기지 않고 편하게 다녔었는데, 가족들한테도 얘기했지만 항상 작품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러면서 재밌게 보면 좋겠다. 너무 전면에 주제를 앞세우기보다는 재밌으면서 ‘아 이런 뜻일 수도 있겠다’하면 좋겠다. 그 두 개가 맞물려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통해서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고 싶다.

맞아요. 


쌍둥이 중 하나는 미술을 하고 하나는 음악을 한 거잖아요. 둘 다 두 가지 소양이 있는데, 일부러 하나씩 선택한 건 가요?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쟤 왜 피아노 하지?’ 그 친구는 되게 보수적인 면이 있고 성향도 저와 다르다고 해서 저를 지지해 주는 동시에 비판도 하거든요. 피아노를 생각해보면 되게 무겁고 공간도 제한적이잖아요. 제한된 상황에서 최대한 자기를 표출하려고 하는 그런 방향이 맞지 않았나. 


흥미도 좀 달랐어요. 제가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걔는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고 퍼포먼스적인 면에서도 저는 자신감이 낮은데 걔는 무대에서 확 집중받는 걸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걔도 그림을 좀 그리거든요. 저는 부들부들 지저분한데, 저랑 다르게 마감이 깔끔해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간 건 언제예요?

전역하고 나서요. 제가 고등학교 때 자퇴하고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서 2년 동안 캐나다유학을 다녀왔어요. 그때 첫 1년 동안은 화석 많이 나오는 앨버타주의 배드랜드(badland) 동네에 있다가 다음 1년은 밴쿠버에 파인아트스쿨에서 공부하고 한국 돌아와서 군대를 갔거든요. 그런데 쌍둥이가 몰래 반수를 해서 예종 피아노과를 간 거예요. 제 입대날이 대학발표날이었어서 새벽에 까까머리 하고 훈련소 가면서 걔가 톡방에 올린 합격증 보는데 '나도 전역하고 가볼까'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 다른 애들 다 학원 가는데, 학원 가서 잘 그린다 소리 안 듣고 싶어서 학원은 안 갔었어요. 연필로 혼자 세밀 묘사하면서 해리포터 그리고.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그림 대회 상을 많이 받았어요. 이때부터 인정욕구가 도졌나 싶기도 하고 (웃음)


중학교 3학년 때쯤 디즈니 <타잔>(1999)을 보고 유튜브에서 <타잔> 메이킹 영상을 찾아보면서 ‘근육 묘사 너무 멋있다.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글렌 킨 멋있다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 이러다가 정유미 감독님 <먼지아이>(2009) 보고 ‘와 저거 마술 같은데 확실하게 뭔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수수께끼 같은데 재밌다 묘하다’ 했어요. 


<먼지아이>는 어떤 채널로 봤던 거예요?

그때 단편 애니메이션을 많이 찾아보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 단편 애니메이션 보고 ‘자기 스스로 뭔가 만들어서 자기만의 얘기를 하는 게 멋있다.’ 


파인아트스쿨로 가기로 결정을 했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나요?

그랬는데 확실히 애니메이션은 아니었고 그림 좋다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가서 유화 조금 하고 도자기 같은 것도 했어요. 거기서 중간 발표 하는데 그때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매미가 나오는 다큐멘터리 보면서 매미가 변태 하는 거, 날개가 착 나오는 것을 했었어요.


  • 매미 (2013)
  • 매미 (2013)

호원: 유학을 갔을 때나 국내에 들어와서 입시 준비 할 때 스타일이랑 입학 이후 스타일이 많이 차이가 나요 아니면 그 기세로 계속하고 있나요?

전역하고 학원 가서 1년 조금 넘게 바로 입시 가서 학교를 들어갔는데, 다른 친구들이 학원에서 오래 익혔던 유려한 선이 안 나오고 제 선은 꾸물꾸물했거든요. 


학원에서도 원장선생님이 붙으면 스토리 때문에 붙고 떨어지면 그림 때문에 떨어진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저는 제 그림이 사연이 있어 보여서 좋았어요. 안 다듬어진 그림을 어떻게든 완성도를 올려서 하는 모습이 제가 좋았어요. 안 그린다고 얘기 하긴 하지만 멋있고 예쁘게 아니메의 스타일로 그리는 게 쉽지 않았어요. 


호원: 스토리에서 입시 계에서 주목할 만한 재능이 있었던 거예요?

입시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지만 사실 동시에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사실 인생에서 정말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예요. 제가 정확하게 노린 포인트에서 친구들이나 강사선생님 원장선생님이 막 웃고 절망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약간 신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받고 (웃음)


원하는 만큼 이쁨을 받은 것 같아요

호원: <기니피그 숨기기>부터 세 편이 학생 작품 치고는 길어요. 짧아야 8분이고 나머지는 10분, 11분 되니까.

어느 정도까지는 내가 보는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있어야지 사연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게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학년 때는 뭐 했어요?

<틈>이라는 정기작을 했어요. 누가 똑똑거려서 문을 열고 안 보이는 상태에서 손을 넣어서 만지작거리는 거예요. 어떤 외부의 새로운 경험이나 성적 자극과 마주하는 제 모습을 표현해보고자 하였어요. 주인공의 손이 뭔가 낯선 손과 서로 애무하듯 어루만지다 암전이되고 뭔가 많을 손들이 나오면서 자궁 같은 틈으로 다시 주인공을 집어넣는 엔딩으로 마무리돼요. 아마 그때는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게 두렵다, 꺅 무서워하며 다시 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거는 길이가 어느 정도예요

그거는 한 7분. 근데 사실 줄이고 싶어요.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고 그러면 서사적인 건 놔야겠죠? 근데 제가 서사적인 거를 계속 생각을 하나 봐요.


<그늘의 고라니>는 서사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에요. 다른 연출을 시도해 본 건가요?

네, 좀 덜 서사적인 걸 하면서 이미지적인 걸 시도했어요. 퀴어랑 성욕, 죄책감이 결부돼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4년 동안 한 가지 주제에 천착했어요. 졸업 작품을 공개하며 나의 생각을 보여준 거란 말이에요. 이제 다른 주제로 넘어갈 것 같아요 아니면 계속해서 같은 주제를 작업을 할 것 같아요?

넘어가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만큼 이쁨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던 제일 중요한 이벤트를 맞이하고  인정받았다 사랑받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보다 더 큰 인생의 딜레마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요. 삶의 딜레마 이런 거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년 말 올해 초에 조금 힘들었어서 뭘 위해 살지 이런 생각도 하고 상담도 받아보고 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좀 담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근데 퀴어를 엮고 싶기도 해요.


호원: 시상식으로 다시 가서 "인디의 별" 발표할 때 심사위원이 심사평을 하잖아요. 듣는 순간에 ‘어, 나네’ 했죠?

네, 심사평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참새, 울타리, 정체성, 이런 얘기를 하니까… 분명 주변 좌석에서도 다 들었을텐데 "헐? 와? 미쳤네, 엥? 꽥? " 약간 고장나면서 호들갑 떨었어요. (웃음) 확률은 낮지만 아주 만약에 진짜 상을 받으면 앞에 가서 이 얘기를 해야지 했는데, 말을 잘 못 했어요.


호원: 감독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에 대한 심사평이 어떻게 들렸는지 궁금해요.

너무 멋있게 써주셔서 인스타에도 올렸어요. 인류애적으로 아우르는 느낌의 글이라 ‘이 글을 보면 누구든지 너른 마음이 될 수 있겠다. 제 애니메이션보다 글이 더 멋있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웃음)


시각 이슈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이미지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이미지

호원: 작품이 사건 중심이면 시놉시스도 명확하고 스토리보드도 명확할 텐데. 감독님 작품은 사건도 있지만 흐름이 중요한 작품인 것 같아요.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스토리보드까지 나왔나요?

스토리를 먼저 고민하고 했던 건 아니고 코뿔소가 계속 나오는 장면 재밌겠다 이러면서 바로바로 이미지들이 나왔어요. 스토리보드가 먼저 조금씩 나와서 마지막에 정리하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에는 꾹꾹 누르고 열을 계속 누적시켜서 후반에 카타르시스를 터뜨리는 쪽으로, 그 압력을 최대한 주자. 이 단편은 그래야 한다 마음먹었었어요.


호원: 영화적으로 뭔가 일이 벌어지는 식으로 장면화가 되는 경우가 있고 그림책처럼  탁 펼쳤을 때 이 한 장에 얘기가 담겨 있는 경우가 있는데, <코뿔소 이슈>는 그림책처럼 시작을 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장면 전환이나 이런 것들이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장면 독특한 설정 독특한 구도 독특한 컬러가 있는 것 같아요.

레이아웃 하고 콘셉트 아트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동화적이고 삽화적인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이게 영화이면서 또 영화는 아니니까.


동화책 외에도 이미지 작업, 비주얼 작업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나요?

실뱅쇼메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 영화 좋아하고, 제인 캠피온 감독님 진짜 좋아합니다, 카리스마 완전 대박.


호원: 파란색으로 시작을 했는데, 코뿔소가 등장하면서 심상치 않은 핑크색도 눈에 들어오고 목욕탕에 들어갔더니 다른 남자들은 다 붉은색으로 돼 있고 이 친구만 파란색을 유지를 하고 있어요. 컬러 자체가 어떤 정체성을 얘기를 하나? 아닌가? 그걸 노렸나? 이렇게 색에 현혹됐어요.

의도했어요.


그건 정체성을 다르게 본 거예요 아니면 코뿔소가 핑크니까 주인공을 구분하기 위해서 선택한 한 거예요?

코뿔소는 영롱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체성을 나누는 것도 구분 지어지는 거니까 그렇게 했죠.


비주얼적으로도 잘 보이게 하려고

그게 훨씬 예쁘죠. 약간 핫핑크 같은 느낌도 있어서.


호원: 핑크는 도발을 하는구나 그렇다면 주인공을 파란색으로 했던 거는 일반적으로 남자애들을 파란색으로 했던 지점을 따라가나 했더니 목욕탕에서는 다들 붉은색인데 얘만 또 파란색이에요.

붉은색은 얘가 보고 흥분하는 주체를 그렇게 했고 얘는 파란색으로 갇혀 있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약간 변화를 주려고 코뿔소와 마주 보고 앉을 때 주인공을 주황빛으로 했어요.


<기니피그 숨기기> 하고 <그늘의 고라니>를 봤을 때는 선이 뭉툭했는데, <코뿔소 이슈> 넘어오면서 가늘어졌어요. 나 이제 본격적으로 세밀하게 들어가겠어라고 스타일의 변화를 준 건가요?

네. 그리고 앞에 거랑 다르게 색을 넣게 되니까 선을 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거는 제가 그리면서 만들어진 이유인데,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우글우글하는 게 심리 상태상 이런 상황을 묘사하기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라인은 통제가 안 되는 게 문제죠.

저는 효율 추구형이기도 하단 말이에요. 이게 애니메이팅 하기에도 이 선을 일정하게 부드럽게 하기가 너무 오래 걸리는 거예요. 제가 정통 애니메이션을 쫓지 않아서 약간 구불텅 한 것도 허용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호원: <코뿔소 이슈>는 펜 압에 따라서 굵기 변화를 반영하게끔 지정을 했나요?

네, 최대한 불규칙한 방향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도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잖아요. 후반부의 낙원 장면은 야수파처럼 표현 돼요. 거기서 나온 댄스에서 에리카 러셀(1951~)이 얘기가 나온 게 아닌가 싶은데. 


  • 코뿔소 이슈 (2025)
  • 코뿔소 이슈 (2025)

호원: 에리카 러셀이 아니라 슈비츠게벨(1944~)인데 (웃음)

저희 교수님 중 한 분이 제가 춤추는 장면을 생각하니까 “에리카 러셀처럼 해봐”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었어요. <트라이앵글>(1994)도 보고 그래서 그 느낌이 들어갔겠죠.


낙원의 비주얼은 기조가 가는 선 위주니까 차별화시켜야 되겠다 해서 강렬한 색과 면을

네. 그러면서 보는 재미도 주고 눈을 행복하게 해 주리라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염두에 두었던 화가가 있나요? 저는 루소가 떠올랐어요.


호원: 마티스도 나오고 고갱도 나오고.

맞아요. 저 루소 좋아했어요. 제작 초기 단계에서 스타일을 어떻게 하지 하는데, 제 애인이 마티스 힌트를 줬어요. 갑자기 마티스가 확 들어왔죠. 클라이맥스 전까지 톤 빠진 그것도 마티스 그림 중에 저녁 복도의 느낌에서 어두운 색들 차용하고 그 이후에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참조한 앙리 마티스 (1869~1954)의 작품

청각 이슈

호원: 탱고도 처음부터 넣어야지 눈을 즐겁게 해 줘야지.

그렇죠.


탱고는 안무가 있던데 원래 있던 걸 참고한 건가요 이거를 위해서 의뢰한 건가요?

제가 탱고를 찾아보다가  어느 열정적인 댄서분이 탱고 대회에서 엄청 멋있게 하신 게 있는 거예요. 그분이 우승하셨어요, 그 대회에서. 이 음악에 하신 게 아닌데, 너무 쓰고 싶다. 그때는 일단 애니메이팅을 하고 제작지원 선정되면서 인스타로 연락을 드렸죠. 아르헨티나의 '야니나 무지카'라는 프로페셔널 댄서이셨는데, 테스트 애니메이션 보내드렸더니 “마음껏 쓰세요”라고 쿨하게 답장해 주셔서 열심히 모션을 따서 작화하고 크레디트에 올렸어요.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썸네일 스케치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썸네일 스케치

호원: 장면을 먼저 생각을 한 거예요. 음악을 먼저 생각한 거예요?

<POR UNA CABEZA>를 먼저 생각했어요. 제가 <여인의 향기>(1992)를 본 거 아니었고 <쉰들러 리스트>(1993) 초반에 그 음악이 들어가요. 음악이 진짜 강렬하다. 이 스릴 넘치는 이 멜로디는 누구든지 사랑에 빠질 만하다. 그래서 쓰고 싶었고 작곡가는 사망연도 보니까 저작권 괜찮겠다. 쌍둥이 통해서 선후배 모아서 음악을 듣고 저희가 녹음을 진행을 했었거든요. 완전히 새로 만든 거예요.


제가 반골 기질이 있어요. 그 곡이 <여인의 향기>로 유명하잖아요. 한국에서는 다 <여인의 향기>로 안단 말이에요. 약간 장난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여인만 향기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남인의 향기를… (웃음)


호원: 잘 알려진 곡을 넣는 순간 그것 때문에 어필을 할 거냐 이것 때문에 위험을 감수를 하느냐 판단을 해야 되잖아요.

<여인의 향기>를 봤던 분들도 추억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했고 그 음악이랑 그 영화가 유명했을 때에서 시간이 많이 지나서 명곡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아요.


호원: 탱고 음악이 코뿔소랑 잘 어울렸어요.

귀여운 걸 노렸어요. ‘여러분 이 순간 제 영상을 귀엽게 봐주세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이미지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이미지

낙원으로 간 줄 알았는데 끝은 비극적으로 가요.

그런 게 나오긴 하죠. 제가 학교에서 전필이랑 전선 두어 개 빼고는 다 교양을 들었거든요. 와서 계속 그림만 그리는 게 그렇다 생각했어요. 그때 한창 들었던 게 필라테스도 있고 전통 춤도 있고 탱고, 스포츠 댄스가 있었단 말이에요. 눈에 안 보이는 힘의 균형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 보이지 않는 힘이 왔다 갔다 하며, 결국 두 사람이 서로 힘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묶여있는 것이구나.


음악은 쌍둥이의 도움을 받았고 음향은 프리 사운드를 찾아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면 재밌겠다 이 생각이 더 컸던 것 같긴 해요.


호원: 대사가 안 들어가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만큼 음향에 예민해야 하고

맞아요. 이 느낌을 최대한 내고 싶으니까 제가 일일이 해야지. 또 음원을 찾는 게 일곱 난쟁이들이 보석 캐는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호원: 이걸 레퍼런스로 가져와서 전문으로 사운드를 하는 분한테 의뢰를 하는 경우가 있고 자기 선에서 딱 끝내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프리 사운드에서 현악기 빠바바방 하는 게 있어서 그걸 레퍼런스로 해서 쌍둥이 친구한테 부탁을 했는데 느낌이 안 살아서 저작권 표기 잘하고 그냥 가져가야겠다 했습니다. 


호원: 사운드 작업할 때 내가 이 사운드 이런 의도로 디자인을 한다 그런 기준이 있나요?

최대한 제가 생각하는 느낌에 비슷한 걸로. 프리 사운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제일 잘 되는 걸 내가 캐스팅한다는 생각으로 한 세네 개 가져와서 붙여보는 거죠. 피치도 조절해 보고 그래서 딱 맞는 거 있으면 이제 딱.


최종 믹싱까지 직접 다 하는 거예요?

네, 음질이 아주 나쁘지 않은 이상 그냥 이걸로 하자 한 것 같아요. 프리사운드도 많이 썼는데, 또 제가 갖고 있는 음악 항아리가 꽤 거대하거든요. 학교 생활하면서 현장에서 쓴다는 것도 이렇게 저렇게 모아서 거기서도 많이 썼습니다.


촉각 이슈

호원: 이전 작품들에서는 표정이 거의 없었는데 <코뿔소 이슈>에서는 그래도 표정이 조금씩 들어갔죠.

친구가 얘기해 줘서 알았는데 <코뿔소 이슈>도 주인공 표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표정이 없었던 것 같아요.


호원: 이걸 표정으로 봐야 될지 안 봐야 될지 애매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고라니>나 <기니피그>가 워낙에 표정이 없다 보니까.

그게 아무래도 제가 이 사회에 살면서 스스로를 항상 통제하고 검열하고 한 것들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호원: 그래서 중요하게 보이는 게 터치였어요. 특히나 질감이 전달되는 거. 대사가 없다는 거는 말로써 소통을 안 하는 거고 표정이 없다는 거는 넌버벌 커뮤니케이션이 없는데, 결국은 터치를 통해서 무언가  주고받는 게 생겨요. 특히 <코뿔소 이슈>는 터치가 중요하게 설정된 부분이 있어요.


도마뱀이 건너가는 장면 같은


호원: 결국은 감촉이 나한테 전해지는 것.


  • 코뿔소 이슈 (2025)
  • 코뿔소 이슈 (2025)

<그늘의 고라니>에서 수풀 같은

네, 거기서도 촉각적인 거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코뿔소랑 도마뱀 같은 경우에는 계기 같은 게 있었어요?

코뿔소가 뛰는 영상을 봤었는데, 너무 육중해서 맞서다가 내가 날아갈 것 같은 거예요. 코뿔소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쓰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도마뱀은 재빠르고 쏜살같은 속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 해서 썼습니다.


호원: 저는 그 두 개가 촉각적으로 다가왔었거든요. 도마뱀이 팔에서 빠져나갈 때 나한테 주는 촉감하고 내가 코뿔소를 안거나 만졌을 때 주는 촉감이 워낙에 대비가 돼서 감각적으로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도마뱀이 나오고 비늘 같이 갈라진 핑크빛 피부가 나오잖아요.

그게 주름이에요. 반짝반짝하니까 비늘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궁극적으로 주름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동급생 친구의 다리를 잡고 있을 땐데, 뭔가 야릇한 상상을 하면서 피부를 만지는 컷에서는 코뿔소죠.


제가 그런 놀이를 할 때 남자인 내가 친구를 낯선 남성으로 인식하며 느껴지는 흥분이나 어떤 단단함 이런 거를 같이 넣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레이아웃도 생각을 많이 했는데, 거꾸로 보는 장면도 다리를 벌리는 남자(주인공), 그리고 그 사이로 들어가는 남자(친구), 이런 식으로 성적 뉘앙스가 풀풀 풍기는 장면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호원: 여성적인 퀴어에 대해서는 그나마 시각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남성적인 퀴어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덜 만들어진 것 같아요. 더하기 남성적인 퀴어에서도 마초적인 거를 선망을 하는 퀴어가 있는가 하면 부드러운 걸 선망을 하는 퀴어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제껏 제가 접수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정말 직설적인 화법이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거에 집중하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호원: 덜 다뤄진 소재일수록 안전하게 가자라는 판단을 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이 작품 같은 경우는 “뭐 어때 나는 이건데” 이렇게 보여주는 게 있어서 좋았어요.

그 태도에 의지했던 것 같아요. 현대 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크게 발생하면서 남성, 특히 그 남성기에 민감한 부분이 있는데, 물론 잘못된 방향에서의 경우는 완전 비판적이지만, 제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되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저의 태도가 "아 얘 어떡하면 좋지, 내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되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 위에 탑승해 버리는(?) 마음으로 접근한 것 같습니다.


호원: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이제껏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다루면서 판을 뒤집은 경우가 의외로 없었어요. 이랬던 게 언제가 있었지 따지고 봤더니 1999년에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아이에 대한 성적 폭력을 얘기했고 그다음에 <아버지의 방>(2016) 때 개인의 트라우마를 확 터뜨려서 환기가 됐었고 그다음이  <코뿔소 이슈>였던 것 같아요. 다른 영역에서는 충분히 얘기가 되는 지점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상당히 천천히 되는 편이예요. <코뿔소 이슈>가 애니메이션이니까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를 잘 보여줘서 좋았어요.

정말 인상 깊게 본 단편이 있었는데 제목이 <푸시 Pussy>(2016, Renata Gasiorowska), 저 뜻이 여성기의 속어거든요. 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해서 편안하게 수음하면서 여러 감각을 느끼는 여성기를 아기 동물 같이 한 걸 옛날에 재밌게 봤었어요. 제가 그런 감각적인 촉각적인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안에 동물적인 면모도 커서 그런 것 같아요


호원: 이런 작품일수록 섬세한 결이 중요하거든요. 내가 어느 부분에서 스쳐 지나가고 느낌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역시 두 번 테스트하고 세 번째 만드니까 그런 건가. (웃음) 

아핫, 그런것 같네요.


존재 이슈

호원: <기니피그 숨기기>에서 거실 벽에 걸린 십자가가 되게 눈에 띄었거든요.

저희 집이 기독교 집안이었어요.

기니피그 숨기기 (2022)
기니피그 숨기기 (2022)

호원: <기니피그 숨기기>는 응접실의 십자가가 하나로 딱 정리가 되더라고요. 결국은 이 안에서 압박감을 느끼느냐 벗어나느냐

제가 교회도 열심히 다녔었어요. 사춘기 올라가면서 내가 좀 다르구나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던 때, 여름성경학교 가서 몇백 명 모여있는 대강당 마룻바닥에서 설교시간에 그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고 지옥불에 떨어져 온몸이 불에 탈 것이고 이러면서 막 겁을 주니까, 엄청 울었거든요. 통성기도 다 끝났는데 애가 혼자 계속 엎드려서 꺼이꺼이 울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왜 그래 정한아” 그럼 또 말 못 하고. 그런 슬픈 기억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품은 한으로 나중에 찬양팀 따라 하며 춤출 때는 또 엄청 흔들어 제끼고, 땀 뻘뻘 흘리면서.


호원: 그래서 <기니피그 숨기기>의 소년이 <코뿔소 이슈> 소년보다 더 어리게 설정된 것 같아요.

맞아요. 저희 어머니가 이제 은퇴하셨는데, 가정 선생님이셨거든요.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 예물, 결혼, 가정, 인테리어, 이런 거 있고 성 이런 게 있단 말이에요. 저희 집에도 있던 건데, 그거 보면 남자 여자 성기 사진 있고 일러스트 있고 하는데, 어릴 때 되게 신기했어요. 되게 조숙했던 것 같아요. 


저희 교회 어린이 도서관도 가보면 그런 여러 교육카테고리 책 중에 성장, 우리들의 성 이런 책들 있잖아요. 그 특히 성이랑 성기 설명 부분이 항상 닳아 있어요. 너덜너덜. 이것만 애들이 많이 봐가지고. 아무튼 되게 강렬했어서 그것도 연출에 넣었습니다.


<기니피그 숨기기> 만화 버전
<기니피그 숨기기> 만화 버전

호원: <기니피그 숨기기> 엔딩에서 아이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걸 엄마가 잡아요. 속으로 엄마는 아이를 잡으면서도 기니피그는 던지겠구나 싶었는데, 진짜 그렇게 됐어요.

엄마가 기니피그가 쥐 같다고 못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근데 저는 쥐도 <라따뚜이>(2007)로만 접해서 귀여운 느낌인데, 엄마는 쥐새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호원: 부모 입장에서는 가능한 리액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새끼는 잡아야 되는데, 내 새끼가 기니피그 때문에 그러나 싶으면.

근데 기니피그는 살아서 계속 꾸잉꾸잉 하면서 마무리되니까 그래도 기니피그는 언제나 있습니다.


호원: 그렇게 결정을 했을 때 아이가 어떤 리액션을 할지 궁금했었어요. 엄마를 밀치거나 울거나 바닥에 드러눕거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의외로 차분하게 넘어갔어요.

아무래도 욕망의 동요를 상징하는 것이니까, 그런다고 절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엄마 앞에서는 ‘잘 돌려보냈죠?’ 이러고 눙친 것 같긴 해요. 코뿔소도 그렇고 맨 처음에 공사장 인부를 보면서 기니피그가 생긴 건 마음속에 있는 걸 시각화를 했던 거니까.


호원: 감독도 주변에 한편으로는 맞춰 주면서도 내 안에다가 꽉꽉 눌러놓는 기질도 있거든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앞에서 “네~” 이러고 뒤에서는 ‘아니요’.


<그늘의 고라니> 주요 무대가 손바닥이잖아요. 아니 손등이라고 해야 되나.

손의 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맥락에서 손을 한 것 같아요. 정체성과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 <그늘의 고라니> 제작 노트
  • <그늘의 고라니> 제작 노트

호원: <기니피그 숨기기>에서 십자가 나온 것 보면서 필요 이상으로 죄의식을 갖거나 결국 주변에 잘 순응하기 위해서 나 혼자 어쩔 수 없이 눌러야 되는 그런 게 있었겠구나 혹은 지금도 있나 싶기는 해요.

그런 죄책감도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쌍둥이한테 제 얘기를 했을 때 “오케이, 그런데 엄마 아빠한테는 그런 거 얘기하지 마 부모님 힘들게 하는 거야.” 그랬는데, 저는 “의미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진짜 누군지 얘기하는 게 나한테 중요한 일이다” 해서 걔는 항상 “너는 우리 가족 힘들게 하는 애”라고 해서 엄청 많이 싸웠어요. 나중에 부모님한테 얘기하는데 또 쌍둥이는 ‘내가 이 레어한 상황을 직접 눈앞에서 목도하네, 존잼’ 이러기도 했어요. (웃음) 


한국에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제대로 된 직장 갖고 손주 안겨드리고 뭔가 이런 전통적인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니까 ‘내가 죄를 짓고 있나’ 이런 생각도 했는데, 요즘에 잘 컨트롤하고 있어요. 또 뭔가 비혼이 트렌드기도 한 것도 있고 (웃음)


호원: 창작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막혔을 때 작품으로 푸는 경우도 있어요. 너무나 예민한 사람들은  그러다가 작품하고 자기를 동일시해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젊은 감독이니까는 오히려 쿨하게 자기가 거리를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노력도 많이 합니다. 이것도 제가 상 받아서 부모님이 축하해 주시고 하는데, 그러니까 스쳐 지나가시면서 “다음에는 다른 주제를 하는 게 어떻겠냐”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다 같이 웃음)


그래서 제가 "혹시, 참새가 되고 싶으신가요?"그랬거든요. "또 다른 영감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작품에서 뵙겠습니다" 막 이렇게 넘어갔어요 (웃음)


쌍둥이도 똑같이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너무 그 주제에 매몰 안 되면 좋겠다” 근데 “이게 나한테 너무 중요한 건데 어떻게 해. 나는 내가 느끼고 보는것을 표현하는 사람인데 어쩌라고” 이렇게 투쟁을 하죠.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이미지
<코뿔소 이슈> 제작 과정 이미지

호원: 젊은 감독들의 평균치의 작품들은 에너지가 없어요. <코뿔소 이슈>는 코뿔소가 불끈하는 게 있어서 좋은 거예요.

저도 기획하면서 ‘이거 너무 불끈인가?’ 근데 이 불끈하는 거를 제대로 묘사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불끈’에 매달려 볼까 이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호원: 자기 연민에 안 빠지고 불끈! (웃음)

어쩌라고 지금 불끈했는데. (웃음) 제가 항상 어떻게든 이 별안간 솟은 힘을 유연하게 해소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싶은 것 같아요. 

인터뷰 2026년 10월 19일 @ 구의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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