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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 HAN Jiwon

  • 작성자 사진: seoulanimator
    seoulanimator
  • 5일 전
  • 28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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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에 공개된 주얼리 브랜드 스톤헨지의 크리스마스 시즌 영상 <뭐든 될 수 있을 거야>의 제목처럼 한지원은 매번 기대치를 갱신한다. 웹애니메이션 시리즈 <딸에게 주는 레시피>(2017-2019) 이후 6년, 작품 형식과 상영 매체는 물론 작업 방식과 제작 규모도 다른 작업을 한 층 두 층 더하며 넘사벽을 쌓아 올렸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여름을 상징할 두 작품, 한지원에게 두 번째 인디의 별을 안긴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2022)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2025)의 제작기를 청했다. 단편과 장편을 만드는 사이에는 시리즈 <아만자>(2020.9.1-11.3, 카카오TV)와 <그 여름>(2021.7.9-10.16, 라프텔)도 끼어있다. 낮 최고기온 35도, 햇볕이 쨍쨍한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마주 앉은 그는 제각기 만만찮았던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원하게 쏟아냈다.


2025년 8월 인터뷰

항상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이 별에 필요한 Lost in Starlight | 2025 | 98mins | dir. 한지원 HAN Jiwon


너무 잡아야 될 것 같아서 동시에 하게 됐어요


<이 별에 필요한>의 출발이 2018년 12월에 공개된 스톤헨지의 <뭐든 될 수 있을 거야>죠?

맞아요. 근데, 공식적인 시작은 아니에요.


실제로 이걸 장편으로 개발해야겠다고 한 건 언제쯤이에요?

클라이맥스 대표님이 <아만자>라는 작품을 같이 하고 끝나면 스톤헨지 같은 작품을 같이 해보자 하신 게 2019년쯤이고 <아만자> 끝난 다음 바로 이야기 쓰면서 기획 개발이 시작된 거죠.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하고 <이 별에 필요한>도 제작기간이 겹쳐있고 거기에 다른 작품들도 했어요.

제가 <마돌바>를 5년 가까이했어요. 2018년에 제작지원을 받고 <마돌바>를 한참 해야 되는데, 대표님이 <아만자>를 말씀하신 거예요. 제 입장에서는 장편과 세트로 온 제안이잖아요. 너무 잡아야 될 것 같아서 동시에 하게 됐어요. 


무리해서 <아만자>를 진행을 한 다음에 연말에 두 달 정도 작업을 해서 제작지원 심사 통과를 했어요. 한 6~70%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제작비가 없어서 멈춰 있었어요. 그 사이에 <그 여름>을 받아서 했고 광고 작업들을 해서 제 사비로 <마돌바>를 완성한 거예요.



<마돌바>와 <이 별에 필요한>의 캐릭터 구도가 비슷하더라고요. 둘 다 엄마가 부재하고 아빠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여자 주인공은 억척스럽고 생활력이 있는데 남자 주인공은 배신자이거나 지질한 친구고요.

제이가 지질한 친구에 속하는 건가요? (웃음)


소심한 면이 있죠.

두 작품 다 사랑에 대한 내용이이다 보니까 저의 애정관이 형성된 환경적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마돌바>는 많이 변환되긴 했지만 제 경험에서 나온 감성을 소재로 했고 <이 별에 필요한>도 상업적으로  변화되었지만 마찬가지예요. 제가 사랑에 대해서 되게 고민하던 시기 이후에 나온 잠정적인 답 내지는 질문이 많이 반영된 작품이에요.


<이 별에 필요한>은 처음에 우주인이 되는 여성 서사가 중심이었고 중간에 기획사에서 연애 이야기를 원했다고 들었어요.

처음부터 우주인을 소재로 한 예전 작품의 정서를 살리되 연애 얘기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대표님이 제안을 주셨어요. 상업적인 프로젝트고 당연히 주인공만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이야깃거리들이 있어야 되고 저도 마침 관심이 있는 소재였어요.


시나리오를 몇 고나 썼나요.

판타지 성향이 많이 가미된 초기 버전들도 있고 턴테이블을 매개로 시간 여행을 하는 버전도 있었어요. 사실 제가 90분 정도 되는 장편에 어느 정도 이야기가 들어가야 될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어요. <그 여름>도 시리즈 구성을 한 다음에 그걸 편집해서 60분이 된 거지 처음부터 60분의 호흡을 생각하면서 했던 건 아니에요. 러닝 타임을 어떻게 채울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굉장히 많은 시도를 했어요. 


첫 작품이니까 너무 확 가기보다 내가 다룰 수 있는 걸로 정리해 보자. 땅에 붙은 이야기 또 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돌아왔는데, 거의 10 몇 고까지 갔었어요. 그래도 5~6고 정도부터는 지금의 형태랑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투자 직전에 각색 작가님이 붙어서 같이 작업을 해 주셨어요. 강현주 작가님이 작업해 주신 구간도 중요한 장면들이 많아서 공동 각본으로 올라가게 됐어요.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나온 이후에 투자를 받았나요.

작가님이 들어오시기 직전 타이밍에서부터 사실은 넷플릭스랑 기획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어요. 넷플릭스 관계자가 받은 다음에 내부를 설득하는 피칭을 하는 단계에서 조금 더 시나리오를 보완합시다라고 해서 작가님이랑 집중적으로 다듬었어요.


그 당시에 시나리오 외에는 어떤 게 준비되어 있었어요?

미공개 파일럿 영상이 있어요. 영진위에서 하는 40분에 애니메틱만 내면 되는 초기 지원 사업 있잖아요. 시나리오가 수정되고 있는 단계여서 애니매틱이 안 쓰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대표님께 파일럿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제안드렸어요.


호원: 파일럿은 몇 분짜리예요?

1분 30초 정도예요.


40분짜리 에니메틱을 만들고 1분 30초짜리 파일럿도 만들었군요.

파일럿을 내부 피칭을 할 때 시나리오랑 기획서랑 같이 보내드리기도 했고, 구인을 하거나 내부 미팅이나, 배우분들 섭외를 위해 보여드리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잘 활용했어요. 파일럿에 들어가는 미술설정들은 투자 이전에 미리 작업한 건데,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 중, 후반부부터는 윤재안 작가님이랑 캐릭터 디자인을 시작해서 캐릭터 디자인이나 제이의 집 공간 구성이나 바이오돔의 디자인이나 파일럿에 등장하는 주요한 무대의 미술을 먼저 시작했어요. 이 미술설정 중 일부는 유지됐고, 일부는 이후 미술팀이 생기고 나서 바뀌기도 했어요.


파일럿과 본편은 난영이 캐릭터 디자인도 똑같이 생겼고 제이도 유사한데, 그림체가 약간 달라요. 그리고 내용도 시나리오가 확정되면서 수정된 부분들은 파일럿과 많이 달라요. 예를 들면 엄마가 화성에서 동굴에 매몰돼서 사망하는 설정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 폭발 사고를 당한다거나 그런 장면 클라이맥스 장면들이 있는 식으로 조금 달라요. 그래도 중요한 소재, 감정적인 부분, 두 주인공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이별하는 전체적인 구성인 똑같아요. 특히 20 30을 위한 어느 정도 농도 짙은 키스신이라던가, 작품의 특징적인 부분은 동일한 파일럿이었어요.


큰 팀이 꾸려진 게 2022년 겨울부터였어요.


호원: 넷플릭스가 붙은 시기가 언제쯤이에요?

2022년 9월부터 저희가 투자를 받았어요.


제일 처음에 꾸렸던 크루들은 누구였나요?

저와 재안 님이 있는 아주 소규모 구성 같은 경우는 투자 전에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자본이나 지원 사업 비용으로 했었고 투자받고 본격적으로 큰 팀이 꾸려진 게 2022년 겨울부터였어요. 가장 먼저 꾸려진 팀은 제작부, 애니메틱팀이랑 3D팀, 캐릭터디자인팀이었어요. 제가 애니메틱을 3D로 작업할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미술팀인데, 미술팀 구인에 난항을 많이 겪었어요. 내부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을 저랑 같이 주도해 주신 배두호 작가님이 계셔요. 인디애니페스트에 출품한 감독님이에요.


<크로노스>(2022)

맞아요. 처음엔 외부에서 미술감독을 구하다가, 내부에서 3D 프리비즈를 담당하고 계셨던 배두호 작가님께서 미술감독 경력이 있으셔서 저랑 미술 디렉션을 같이 봤어요. 하지만 페인팅의 기법적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디렉션과, 실질적으로 페인터 팀들을 이끌면서 프리와 메인 미술을 이끌어나갈 페인팅에 특화된 팀과 미술감독을 구하는 것이 꼭 필요했는데, 마침 레드독 산하에 ‘오롯이’라는 미술팀의 미술 감독인 김성민 감독님이 저희 프로젝트의 존재를 들으시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오롯이는 세계적인 레벨의 미술팀이에요. 원래 레드독이랑 프리 프로덕션 미술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오롯이 팀의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같이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미술은 저와 두호 작가님이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김성민 감독님이 아트디렉터로, 이렇게 셋이서 주도적으로 미술팀을 꾸려갔어요.


재안 님 같이 계신 디자인팀이랑 제작부가 가장 처음에 꾸려진 팀이었고 그 이후에 미술팀, 레이아웃, 애니메이터 이런 차례대로 들어왔어요.


어떤 거를 내부에서 하고 어떤 거를 외부 스튜디오에 넘겼나요?

프리 프로덕션 같은 경우는 레드독 미술팀이랑 저희 내부 미술팀이랑 협업하는 방식으로 공동 개발했고 전체 애니메이팅 분량으로 봤을 때는 메인 프로덕션에서 한 60% 정도를 외부에서 만들었고 40% 정도를 내부에서 했어요. 촬영, 마지막 컴포지팅 같은 경우는 저희가 비중이 더 많아요. 레드독에서 작업했던 걸 저희가 다시 갖고 와서 거의 전체를 하나의 결로 보이도록 만졌어요.


작업 배분을 어떻게 했어요?

감정 묘사나 캐릭터 연기가 제가 직접 디렉션을 하고 싶은 장면들은 내부 애니메이터 팀원들과 함께했어요. 애니메이팅은 손짓 발짓을 해서 전달도 해야 되고 제가 직접 그려서 애니메이팅 디렉션 하고 싶을 때도 있는데, 레드독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팀이니까 긴밀하게 많이 얘기해야 되는 신들, 좀 특수한 신들을 내부에서 하고 일반적으로 구두로 연기를 디렉션을 해도 무리 없이 이해를 할 수 있고 또 배우들의 연기 레퍼런스 영상들이 있는 경우는 나눠서 드리기도 했어요. 타이밍이나 연기, 표현해야 되는 이펙트의 디자인 등 특수한 컷들은 내부에서, 연기가 어느 정도 구두 전달만 해도 상상 가능한 컷들, 움직임보단 모델이 중요한 대화씬, 스펙터클이 중요한 컷들은 레드독에 드리리는 식이었어요.


내부에서는 좀 더 난도가 있는 장면을 소화한 건가요?

레드독이 원래 게임 홍보영상이나 액션작품도 많이 했고 복잡도가 높은 작화를 잘하는 2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잖아요. 화성에서 토네이도에 휘말리는 장면 같은 다이내믹한 액션 신을 레드독에 드렸어요. 내부 프리 팀은 마이크 님* 제자들부터 시작해서 약간 유럽 스타일의 애니메이팅을 하시는 분들을 꾸렸었어요. 그래서 섬세한 감정 묘사를 잘하시는 분은 내부에 두고 제가 직접 관리를 했죠.


*Mike Nguyen: July Film 공동창업자,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스쿨 교수, 캐릭터 애니메이터, <아이언 자이언트>(1999, 감독: 브래드 버드) 총괄 애니메이터.


“한 컷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호원: 레드독이랑은 <그 여름>도 같이 했던 거죠.

<그 여름>은 제가 메인 프로덕션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근데 <이 별에 필요한>은 레드독에 맡긴 컷이라고 해도 제가 컨펌을 계속하고 윤재안 작감님께서 레드독의 모든 컷을 다 보셨어요. 연출 컨펌을 하고 애니메이팅 디렉션도 전 컷을 본 거 같아요. 레드독이 클립스튜디오 파일을 보내주시면 제가 컨펌을 하거나 그 위에다 드로잉을 해서 돌려드리고 그걸 다시 해주시면 또 재안 님이 받아서 그 위에 작감하고 이렇게 한 컷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호원: <그 여름>에서 안 나오는 한지원의 색깔이 <이 별에 필요한>에는 많이 들어갔어요.

그게 이번에 시도해 본 새로운 목표이기도 했어요. <그 여름>은 예산도 너무 적고 기간도 되게 짧아서 제가 메인 프로덕션에 관여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레드독 내부 감독도 있고 작감도 다 있는데, 외부에서 한 번 더 컨펌을 본다는 거는 타임라인이 늦어진다는 뜻이잖아요. 기간과 예산 내에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레드독이 어떻게 움직이는 팀인지 외부에서 큰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파이프라인을 제가 잘 모르기도 해서, 메인프로덕션에 어떻게 관여해야 할지 아예 상상이 안 가기도 했거든요. <그 여름>을 통해서 레드독에 대한 신뢰도도 올라가고, 앞으로 이런 부분을 긴밀하게 해 보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생겼어요. 그걸 <이 별에 필요한>에 적용해 본 거구요.


해외 스태프들은 감독님이 직접 꾸리는 크루에 속하는 거죠.

크레디트를 보면 레드독이랑 저희 파트가 나눠져 있어요. 저희가 먼저 나오는데 거기에 해외 스태프들이  소속되어 있어요. 특히 엘리스 카인 찬 같은 경우는 저희 리드 애니메이터로 스튜디오에 직접 오진 못했지만 원격으로 매일 소통했던 헤드스태프예요. 멜라니 권Melanie Kwon이라든가 젠Zhen Tian이라든가 영어 이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도 다 해외에서 원격으로 작업하신 애니메이터 분들이에요.


감독님이 인스타그램 보고 섭외하시는 건가요?

외국 분들 중에는 그런 경우는 많이 없고 오히려 지원해 주신 분들이에요. 엘리스 카인 찬 같은 경우는  넷플릭스 작품이라는 것도 공개를 못하는 첫 번째 공고였는데, 너의 작품을 좋게 봤다 그러면서 지원해 주셨어요. 


처음부터 국문 영문 구인을 했군요.

<이 별에 필요한>의 애니메이팅 스타일도 아트 스타일도 완벽한 아니메 향으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고블렝 졸업생들이 많이 하는 유럽이랑 일본 스타일이 섞인 듯한 애니메이션팅 스타일을 염두에 뒀었거든요. 그런 희망사항에 글로벌하게 구인을 했는데, 딱 맞춘 듯이 엘리스가 지원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제작 기간이 코로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원격 작업이 당연했을 수도 있겠어요.

원격 작업에 대한 스태프들의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제가 힘들더라고요. 미팅을 너무 많이 해야 되니까. 일반 상업 현장에서는 감독이 일일이 애니메이터들한테 설명을 안 하나 봐요. 근데 저는 독립 출신이고 같이 일했던 감독들이 작가님들한테 그런 걸 설명하는 게 당연하고, 설명을 해도 왠지 불안한 사람인데 (웃음) 


전체적인 연출 방향 같은 걸 타임 존에 따라 반복 설명했군요.

원래 포부는 해외 아티스트들과 많이 협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이 힘들더라고요. 또 영어로 해야 되니까 에너지도 좀 더 드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디렉트로 소통을 할 협업에서 중요도가 높은 역할을 분들만 해외 스태프로 두고 대부분 국내 스태프로 꾸렸어요.


넷플릭스에서 작품을 공개했으니 앞으로 구인하면 전 세계에서 우르르 달려올 것 같아요.

공개된 다음에 인스타나 제 포트폴리오 계정으로 해외 분들이 다음에 같이 하자 인사해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예전보다는 작업자분들께 더 알려지지 않았을까 해요. 확실히 소통에 추가적인 시간적, 정신적 비용이 들긴 하지만, 해외 스태프들이랑 작업하는 경험을 좋아해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저는 음악 영화라고도 생각했어요.””


가장 길게 작업했던 스태프는 음악 감독님이라는 인터뷰를 봤어요.

재안 님을 제외하고 제일 긴 스태프일 거예요. 음악 감독님 같은 경우는 시작하자마자였던 것 같아요. 제가 러프하게 그린 썸네일을 3D 애니메틱으로 만들고 3D 애니메틱 위에 2D로 캐릭터를 그려서 세 단계로 작업을 했는데, 중간에 3D 프리비즈 단계에서부터 음악 감독님이 거기에 음악을 붙여보기 시작하셨어요. 


이 3D 애니메틱이 나올 때까지 반년 정도 걸렸던 것 같고 그전부터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나눴어요. 3D 프리비즈도 완성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음악 감독님이 본인의 상상으로 감을 잡아나가시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천천히 시작을 하다가 구체적으로 완성된 그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런 거였구나 하면서 바꿔보기도 하셨어요. <Bonvoyage> 같은 중요한 곡은 이야기에 대해서 들으시고 작업을 미리 시작해서 여러 데모를 만들어서 보내주셨어요.


박성준 감독님의 스타일을 원래 알고 계셨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작업을 해봤다거나 아는 분은 아니에요. 회사에서 여러 후보들을 주셨고 그 안에서 제가  음악을 들어보고 음악 감독을 부탁을 드렸어요. 여러 음악 감독님들 중에 제일 일렉트로닉 하고 키치 한 스타일, 그러니까 요즘 음악을 하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통 음악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마지막에 겨우 하는데, 기획할 때부터 음악이 같이 들어갔네요.

이게 저는 음악 영화라고도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제이가 음악을 하는 캐릭터고 이야기나 연출에도 음악 감독님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이랑 같이 가는 타임라인이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이가 부르는 음악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너무 좋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곡이 작품 다 만든 다음에 하루 만에 만들어주세요 한다고 나올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상태에서 여러 번의 시안들이 나온 다음에 나오는 곡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라라랜드>(2016, 감독: 데이미언 셔젤) 인터뷰 같은 것도 찾아보면서 음악 영화의 음악 협업은 어떻게 하나 보면 대부분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루어지더라고요. 그 정도는 안 되더라도 초기부터 이야기는 많이 나눠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기억하는 첫 작품이 <코피루왁>(2010)이잖아요.

음악을 못 잃나 봐요. (웃음)


음악 감성이 케이팝처럼 메이저가 아닌데, 박성준 감독님은 아이돌 하고도 작업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냥 음악을 잘하시고 되게 감이 좋으신 분이에요.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셨냐고 여쭤보니까 힙합을 하고 싶어서 중학교 때 힙합 클럽 가서 공연을 보신게 시작이셨다더라고요. 지금 프라이머리 님이 만드신 팩토리 컴퍼니에 소속되어 계셔요. 힙합이나 전자 음악을 베이스로 시작을 하셨고 다방면으로 잘하시는 것 같아요. 대중음악에 잘 맞는 캐치한 음악도 잘하시고, 인디스럽고 감성적인 음악도 잘하시고, 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전자음악적인 질감도 잘 다루셔서 저희 작품에 정말 잘 맞으셨던 것 같아요.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팀이 크다는 거는 계속 새로운 변수를 마주할 수밖에 없어요


캐릭터 디자이너에 작화 감독까지 맡은 윤재안 님은 어떻게 섭외하셨어요?

재안 님은 저희 학교 후배님이세요. 처음에 VCR의 회식 자리에서 만났는데, 그때 처음 만나 인스타를 팔로우한 이후, 오랫동안 틈틈이 피드를 보면서 되게 잘 그린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이 별에 필요한>을 하게 되었는데, 장편은 내가 다 못 그리니까 내 그림체로 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거를 맡을 사람을 고민하다가 재안 님이 생각났어요. 인스타로 캐릭터 디자인부터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 제안드렸고 나중에는 작화 감독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감독님의 그림체로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재안 님이랑 디벨롭한 아트 스타일에 제 스타일이 같이 들어가 있어요. 원래 재안 님은 캐릭터 데포르메가 훨씬 더 있고 등신이 더 만화적이에요. <이 별에 필요한>보다는 단순한 조형을 많이 하셨는데, 피드백을 하면서 그림을 서로 왔다 갔다 교환해서 만들어진 스타일이에요.


감독이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제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분명히 만족스럽게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찾았어요. 정말 장인 정신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룩을 맞추고 더 예쁜 그림을 만드는 것만 신경 쓰는 사람이 있는 게 너무 중요한 부분이더라고요.


이전부터 워커홀릭으로 유명했지만, 이번 작업하면서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과장이 아니고 진짜 생물학적으로 죽을 뻔했어요.


나눠서 해야겠다 했지만 밸런스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군요.

팀이 크다는 거는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열심히 대비를 해도 계속 새로운 변수를 마주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2D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그리는 습관이나 이런 그림 실력 이런 것들이 투명하게 반영되는 제작 방식이잖아요. 2D 애니메이션이 상업적인 포맷이 됐을 때 들어가야 하는 품이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구요.


혼자 작업하면 내가 나를 컨펌하면서 만드니까 그런 품이 거의 안 드는 편이에요. 근데 하나의 컷이 러프에서부터 시작해서 클린업 나올 때까지, 러프, 1 원화, 2 원화, 작감 두 번 거치고 라인 트레이스하고 컬러하고 7단계가 걸리거든요. 이 기회들마다 다 잘못될 가능성들이 있는 거예요.


사이사이에 검수를 봐서 어떻게 이거를 교정하느냐가 파이프라인에서 되게 중요하고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손을 놔버려야 되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러라는 얘기도 너무 많이 들었는데, 재안 님이랑 둘이 우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면서 다 잡아냈어요. 


클립스튜디오 파일로 작화를 보고 수정하는 거예요?

저희 내부는 주로 TV페인트를 썼고 레드독은 클립스튜디오를 썼어요.


파이프라인을 같이 설계했어요


호원: 현실적으로 계산을 해도 안 나오는 스케줄이기도 하고 스케일이기도 한데, 아귀가 맞으면서 다 챙긴 게 보이는 거예요. 진짜 미친 듯이 집중을 했거나 팀워크가 아주 좋았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저희는 팀워크도 좋았던 것 같아요.


호원: 중간에 결혼까지 했으니까 『미키 7』처럼 한지원 1, 한지원 2, 한지원 3, 한지원 4 하고 비슷한 워커홀릭들이 미친 듯이 했겠죠.

독립 감독들 내지는 유럽 스타일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 프로덕션이랑 협업을 했을 때 생각보다 작업자분들이 수동적이고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어요. 작업자분들 입장에서는 원래의 방식이 아닌 공정으로 작업해 달라고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결의 피드백들을 많이 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대부분 장당 단가로 일하고 계신 분들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작업자 분들 입장에서도 같이 욕심을 내주지 않으면 협업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희 팀에는 내부인 클라이맥스에도, 외부인 레드독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오롯이 쪽에서 먼저 같이 하고 싶다고 한 게 업계에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형성됐다는 방증 같아요.

성민 감독님뿐만 아니라 레드독 분들이 다 열정적인 분들이에요. 오롯이 바깥에 있는 레드독 애니메이터분들이나 연출감독님이셨던 김신영 감독님이나 제작PD님들까지도 사실은 제가 무리하거나 보통 잘 안 들어주시는 요구를 많이 했을 텐데 많이 들어주셨어요. 특히 대표님이나 내부의 감독님들이나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하는 분이 단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나중에 일정이 급해졌을 때 저희가 “이거 내려놓읍시다. 제가 이거 포기할게요”라고 했을 때도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자고 하셨던 분들이거든요. 


호원: 오롯이 팀이 <그 여름>에는 안 붙었나요?

그때 성민 감독님은 참여 안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여름>은 제가 한 키 비지Key BG를 크리에이티브 섬으로 넘겨서 배경 작업을 한 것 같아요.


호원: <그 여름>이 서로에게 그다음으로 나가기에 좋았던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그 여름>에만 올인할 수 있는 상황이면 메인프로덕션도 보려고 했어요. 근데 당시에 제가 병행을 했거든요. 제가 한정된 기간밖에 작업을 못 했던 부분도 있고 큰 회사랑 작업을 하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어서 뭘 해야 되는지도 몰랐어요.


<그 여름> 때는 “감독님이 미술 디렉션 하시고 컨펌 체계는 이러면 될 것 같고” 이런 식으로 파이프라인 설계를 다 레드독이 해주셨었요. 저는 감독이긴 하지만 파이프라인 자체를 설계하는 역할을 못했죠. <그 여름>이 나오는 걸 저도 지켜보면서 이런 과정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고 <이 별에 필요한> 파이프라인을 같이 설계했어요.


저는 개성이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별에 필요한>을 제가 일어로도 보고 영어, 중국어로도 봤어요.

프랑스어도 짱이에요. (웃음)


한국어 버전에서 영어 쓰는 캐릭터의 대사도 영어 버전은 또 다른 사람이 했더라고요. 대본을 가지고 통째로 다시 녹음을 하나 봐요.

제가 관여하는 건 없어요. 미국이나 브라질이나 몇몇 국가처럼 제이가 노래하는 것까지도 번역해서 성우 분이 하신 경우는 연출적인 부분이랑도 연관이 있으니까 주요 국가에 한해서 캐스팅을 하는 과정에 저한테 귀띔을 주시긴 했어요. 


목소리 취향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고 당당한 여성이나 다정한 남자에 대한 이미지도 다른 것 같더라고요. 프랑스어 버전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모든 나라의 캐스팅이 다 좋았어요. 난영이의 캐릭터, 허스키한 태리 배우님의 톤이라든가 에겐남스러운 제이의 섬세해 보이는 톤이라든가 인디 아티스트니까 조금 더 톤을 캐주얼하게 한다거나. 태국 정도만 좀 다르게 간 것 같고 전체적으로 거의 다 반영해 주셔서 좋았어요. 


프랑스가 진짜 숨 넘어가는 싸움 연기를 너무 잘하고 중국어 버전으로 보니까 약간 <중경삼림>(1994, 감독: 왕가위) 같고 재미있더라고요. 일본은 제가 좋아하는 여자 성우분(하야미 사오리)이고 남자 성우분(타케우치 슌스케)도 제이에 대한 해석을 너무 잘해주셔서 저는 다 만족했어요.


호원: 영화감독이 캐스팅을 할 때처럼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 디자인을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외모의 모델이 있잖아요. 인디애페스트 트레일러 캐릭터는 예쁘게 잘 뽑았는데, <마돌바>에서 미모를 톤다운 시킨 것처럼 <이 별에 필요한>에서도 미모를 눌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캐릭터들은 다 그림적으로 매력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얘가 예쁘다는 이야기적 설정이 없으면 다른 이야기적 설정을 반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예뻐야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난영이는 과학자고 자기를 꾸밀 시간도 없어서 머리도 풍비박산이고 노메이크업이라는 설정이어서 얼굴에 점이 많아요. 입술은 약간 메이크업한 상태 같은 느낌으로 표현을 했어요. 저는 그런 개성을 담으면서 매력 있고 호감 가게,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미인이라는 설정이 난영이에게 있지는 않아요.


드라마 보면 못생긴 설정인데, 예쁜 배우를 쓰잖아요.

그런 경우도 있죠.


판타지 필터 같은 느낌을 거부하시는 건가요?

맹렬한 거부라기보다는 제가 보기에는 난영이 예뻐 보여요.(웃음)


호원: '일부러 점을 집어넣어서 외모의 톤 다운을 하려고 애를 썼구나.'

저는 개성이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게 외모를 깎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캐릭터를 생각할 때 애니메이션 캐릭터지만 ‘그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다’ 이런 것들이 있어요. 당연히 예쁜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고 저는 난영이는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요즘에 예쁜 얼굴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난영은 예뻐요. 저는 제이 코가 크고 뭉툭해서 돌쇠 같다고 생각하지만

난영도 제이도 저는 자연스럽고 힙한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따지자면 아이돌 같은 인물이 아니라 모델 같은 느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개성 있고 보기 좋은, 뭔가 호감 가는 애들. 장르적 미형을 취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해야 되는 그림체적인 선택들이 있는데, 저는 거기에 살짝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유럽 애니메이션이나 미국 애니메이션 2D 작품들 보면 캐릭터 얼굴이 입체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데, 저는 그런 해석들을 조금 더 넣고 싶었어요. 미형을 만들기 위해서 플랫 하게 만드는 느낌보다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은 입체적인 조형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태리 배우와 홍경 배우의 연기 영상도 촬영했잖아요. 그들의 외모를 반영하고 싶지는 않았나요?

디자인이 다 된 다음에 캐스팅이 돼서 쉽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배우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애니메이팅을 하게 되잖아요. 캐릭터 디자인이 끝났다고 해도 이거를 어떻게 그리는지는 연기의 영역에도 해당이 돼서 약간씩 그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호원: 김태리 배우는 이미 염두에 두고 작화를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었는데 그러진 않았어요? 

처음부터 김태리 배우님을 생각하고 난영이 얼굴을 만든 거는 아니에요. 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규모로 메이드 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감히 그런 대스타를 제가 모시게 될 거라는 상상을 초반에는 하지 못했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랑 김태리 배우님이 너무 잘 맞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캐스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30대 연애 이야기, 하나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호원: 작품들 따라가다 보면 항상 주인공이랑 감독님 제작할 때 나이기 비슷한 것 같아요.

난영이가 화성에 갔을 무렵 그리고 극 중 난영이 나이가 제 나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30대 여성이 하는 고민인 거죠.


나이 설정은 자연스럽게 따라간 걸까요?

자연스럽게 제 또래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뭔가 엄청 고집하는 부분이라기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일 때 연출이 제일 잘 돼요. 아직은 스스로도 이입할 수 있도록, 좀 편안하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런 세팅이 되는 것 같아요.


막상 우리의 어린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주인공은 중고등학생이니까

사실 저는 학원물을 별로 안 좋아해요.


데뷔작은 학원물인데

그때 당시에 제가 학생이었으니까


<그 여름>도 학원물인데 

학교 다닐 때 추억이 많으신 분들은 학원물을 되게 잘하실 것 같은데, 제가 계속 그림만 그려가지고 학교 다닐 때 추억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여름>은 학원물이라는 장르적 설정보다는 “첫 연애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성장”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면서 만들었어요. 이야기 비중도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에 대학시절 이야기로 넘어가니까 완벽한 학원물이라고 보긴 어려운 거 같아요.


애니메이션이 제작이 되려면 되게 중요한 요소가 타기팅이잖아요. 특히나 이 작품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TV판으로 만들어졌다 이러면 나이를 확 내렸어야만 했을 거예요. 근데 OTT고 제 개성을 많이 존중해 주시는 분위기였어요. 


30대 연애 이야기가 왜 2D로 나오면 안 되는가. 저는 보고 싶거든요. 너무 재밌을 것 같고. 30대나 20대 중후반들의 실상을 다루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다룬 상업 작품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하나도 없잖아요. 하나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라고 해서 고집했던 부분이었어요.


호원: 이런 스타일로 장편을 뽑아낸 경우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성 감독은 없는 거예요.


남성 감독은 있어요?


호원: 찾으면 억지로 찾겠지만

굳이 따지면 <마인드 게임> (2004,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도 성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긴 하죠.

초현실이나 SF 영역까지 가더라도 일상물이나 현대물 중에 주인공 캐릭터가 30대인 경우가 되게 적어요.

솔직히 로맨스 장르에서는 아예 없는 느낌이고. 그래서 왜 없을까.


30대가 돼서도 애니메이션을 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누아르 장르는 사실상 다 아저씨들 나오는 얘기잖아요. 꼭 그 나이대가 등장해야지 또래 관객이 좋아하는 거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SF 색채를 더 강하게 하고 싶었어요


과학자인 여자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예술가를 정했어요.

T와 F의 조합이랄까요. (웃음) 저는 순수 과학과 예술의 영역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박사님들을 만나서 자문을 구할 때도 박사님들이 되게 예술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심지어는 소설을 쓰고 그림책을 만들고 계시더라고요. 예술가도 과학자도 지금 당장 사람들의 피와 살을 이루는 생산적인 역할이 아니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순수한 호기심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게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러운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호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생님들 자문을 받으면서 준비를 잘했어요.

저는 과학적인 설정이랑 개발 과정들을 훨씬 더 많이 넣고 싶었어요. 박사님들의 조언도 많이 받았는데, 많이 잘려 나가서 실제로 화면에 반영된 부분은 조금이에요. 어쨌든 거기에 나오는 모든 화성의 설정들, 우주선, 난영이가 개발한 생명체 탐지기가 구동하는 방식 그리고 난영이가 갑자기 막 발견해서 하는  이상한 소리 이런 게 다 맥락에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에요.


<뭐든 될 수 있을 거야> 할 때부터 과학 자료를 쓰셨잖아요. 직접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더 신났을 것 같아요.

SF 색채를 더 강하게 하고 싶었어요. 근데 로맨스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는 게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성이라서 많이 참았어요.


호원: 과학적인 디테일이 소품처럼 배치는 되지만 작품 전체 얼개에서 보면 안 맞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너무 잘 맞췄어요.

열심히 했어요. (웃음) 음악이나 레트로한 소재를 쓰는 것도 그냥 소재로만 휘발되는 것처럼 보이면 그거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화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작품의 중심 된 감정에 많이 접해 있도록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호원: 난영이 출연한 방송에서 생명체 탐지기 설명을 하면서 미생물이 호흡을 통해서 내뿜은 유기물의 흔적을 다룬다는 게

자문 구한 대사예요. 생명체를 직접 탐지하는 거는 안 된대요.


호원: 과학자들은 아는데, 일반인은 모르기 때문에 진행자가 “화성에서 미생물 외계인을 만날 수도 있겠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거예요.

탐지를 하는 장치라고 했을 때 레이더는 움직임의 변화를 통해서 측정을 하고 뭐는 특정 값을 통해서 유출을 하고 이런 개념들이 있고 생명체 탐지를 하려면 어떤 조건을 만족을 해야 되는지 디테일하게 자문을 받고 저도 공부를 했어요.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난영이 껌종이에서 노이즈 제거하는 소재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 과학적으로도 맞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생물체 탐지기 안에 원자력 전지가 들어 있고 이 원자력 전지에서는 새어 나오는 에너지 때문에 간섭이 발생해서 측정값이 부정확해지는 에러가 있을 수 있는데, 그거를 차폐막으로 감싸서 차단을 하는 거예요. 그 차폐막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예요. 


차폐막은 여러 레이어로 되어 있어서 레이어의 순서를 어떻게 하고 어떤 소재로 이거를 감싸는지가 난영의 연구 주제예요. 그게 과학적인 소재로 끝나면 관객들은 별 관심이 없을 수 있으니까 주제랑 감정이 이어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차폐막의 소재가 어렸을 때 만들었던 우주인 인형의 은박지와 비슷해서 영감을 받는 거죠. 제이와의 편안한 시간에서 어렸을 때 자기가 만들었던, 자기의 성취에서 영감을 받아서 사랑이 주는 안정감을 통해서 발전해 나가는 것처럼. 어린 시절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해서 성장한 것처럼 과학이랑 감정을 엮은 거죠.


화면 그래픽에는 어떤 문자들이 나와야 되는지 “특정 소재들이 노출되는 걸로 하면 꼬투리 잡힐 수 있으니까 그냥 무슨 레이어, 무슨 레이어 이렇게 해라”라든가 상세한 조언들을 받은 결과예요.


호원: 엄마한테 보냈던 은박지 우주인인데, 이 레이어 코팅이 자기가 탈 우주선에 탑재를 할 로봇의 핵심 부품이고 그 로봇의 기능은 생명체를 탐지를 하는 거고 난영은 이걸로 엄마의 흔적을 잡아야 되고, 모든 게 하나로 모이는 엄청난 설정이에요

그냥 쓱 지나가기 쉬운 부분인데,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호원: 이게 멀티플 레이어처럼 되게 애니메이터적인 발상이에요.

그러네요.


호원: 레이어를 어떻게 까느냐에 따라서 룩이 달라지고


레이어 많이 까는 걸로 유명한 분이시고

맞아요. 맞아요. (웃음)


자문은 시나리오 쓰는 단계에서 받은 건가요?

설정 자체가 판타지도 있고 더 아스트랄한 시절부터 조금씩 받았어요. 이야기가 많이 바뀌어서 아마 허탈하셨을 거예요. 어느 정도 여쭤볼 게 있으면 모아놨다가 메일 드려서 중간중간에 대여섯 번 정도 왔다 갔다 했고 미팅을 하기도 했고 항우연 직접 찾아가서 연구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어요. 항우연은 대학 캠퍼스 같기도 하고 넓은 공간에 낮은 건물들이 있어요.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원의 모델인가요?

아버지 연구소는 제가 초반 스케치를 해서 만든 디자인 중 하나예요. 감옥 같아 보이기도 하고 미래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낙관적이고 싶은 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작품의 배경이 여름이에요. 땀을 약간 흘리지만 숨 막히게 더운 기색은 없어요. 2050년의 한국이 기후 위기를 해결했다는 뜻일까요?

난영이 바빠서 항상 저녁때 만나서 노을 신이 많고 새벽이나 밤 신이 많거든요. 그리고 집 안에서 만나거나 그래서 칼국수 먹는 장면 정도를 제외하고 쨍쨍한 바깥에서 만나는 날이 별로 없어요. 완전 더운 분위기를 살린 장면보다는 좀 서늘한 여름밤에 맥주 마시는 장면이 중요한 신이었어요. 어른의 퇴근 후 데이트 같은 느낌들이 많이 나와서 그랬던 것 같아요.


비가 중요한 장면으로 앞뒤로 등장을 해요. 반하는 순간은 작은 친절 하나면 충분한가요 아니면 이미 빠져 있었던 건가요.

사실은 이미 있는 거죠. 대부분 처음 딱 본 순간부터 ‘뿅~’은 아니지만 약간 ‘이것 봐라?’는 있는 거잖아요.  그게 어느 순간 터지느냐의 문제인 거죠. 난영이는 성격상 계속 밀어내는 식으로 틱틱거리고 제이는  성격상 더 푸시하고 그런 잔잔한 케미들이 깔리다가 어느 한순간에 드러나는 느낌을 생각했어요.


점점 우리나라 기후가 동남아 기후처럼 바뀌어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스콜 같이 확 비가 내렸다가 확 그치는 장면들을 넣었어요. 식물도 훨씬 더 많게, 거리에 가로수도 아열대 지방 식물들이나 좀 더 남쪽 지방의 것들을 쓰는 식으로 미래에 기후가 점점 더워져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작은 상상을 한 건 있어요. 


2050년에 기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저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모든 게 저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을 해서 이들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거는 인류가 많이 노력을 해서 조금 속도가 늦춰졌다는 가정을 했어요.


원래 세상에 대해서 낙관을 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사실 비관적인 편인데, 낙관적이고 싶은 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2050년을 다룬 작품들이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택하는 경우는 많은데, 저는 생활감이 있는 다른 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미래가 이런 페이스로 된다면’에 초점을 맞춰서 기후도 그에 맞춰서 낙관적으로 설정을 했던 것 같아요.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지금 종로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게 표현한 게 재미있었는데, 종로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을지로 일대는 전부터 많이 갔었고 이야기를 쓰면서 세운상가라는 공간을 여러 번 가게 되면서 너무 매력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나사 같은 작은 부품을 를 판매하거나 용접 같은 제조일을 하시는 분들과 새로 들어온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방이 어우러져 있는 분위기가 젊은 주인공한테 잘 맞는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을지로 일대가 사람들이 힙지로 힙지로 하면서 사이버 펑크적이다라고도 이야기하잖아요. 이 공간을 배경으로 했을 때 한국적이면서도 생활감 있는 근미래의 모습을 제안해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호원: 청계천 위로 브리지를 놔서 새롭게 한 번 레이어를 얹었네 싶었어요.

청계천 다리는 거기에 있어요. 세운상가가 처음에 생길 때는 진짜 최첨단 전자상가의 느낌이었잖아요. 엄청난 기대 속에서 만들어진 건물인데 오래 지나면서 퇴물처럼 돼버려서 그 공간을 아티스트들이랑 지자체랑 같이 리노베이션 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었더라고요. 제가 갔을 때만 해도 그런 노력을 한참 하고 있었고 그 노력의 끝물쯤에 제가 알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이거를 허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또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지게 된 장소가 됐는데, 우리 작품에만 옛 세운상가의 마지막 모습이 담기는 거 아니냐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호원: 낙산공원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에서도 나오고 요즘에는 이게 서울을 보여주는구나.

서울이 매력 있는 게, 도시 한복판에 궁이 있고 문이 있고 성곽이 있는 조합들이 재미있잖아요. 다른 분들도 그런 것들을 매력 있게 생각하니까 같이 나오는 것 같아요.


호원: 2026년에 엄마가 사고를 겪고 2051년 얘기입니다. 말 그대로 근미래인데, 현재에다가 어떤 레이어를 얻느냐가 도전적인 과제예요.

저는 너무 많이 안 바꾼 부분이 대범했다고 생각해요. 근미래라고 해도 더 확 가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 선택인데,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선택한 건 많이 안 바꾸는 거였어요. 미래적인 방향을 설정을 할 때 생활감을 유지하고 너무 장식적이거나 우주선처럼은 절대 안 하려고 했어요. 


서울은 뭐를 계속 붙이잖아요. 일반 주택을 증축하고 오래된 빨간 건물 1층에 힙한 카페가 있는 식으로 개발이 되고 그래서 제이의 집도 옥상 위의 창고로, 미래적인 조형을 섞되 자재는 우리가 보는 것들을 붙이고 붙였어요.


호원: 세운상가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홍콩 느낌 나는 거예요. 예전에 인터넷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사람들한테 <공각기동대>(1995, 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인터넷이라는 거는 홍콩의 뒷골목처럼 수많은 전깃줄과 꾸불꾸불한 골목으로 이어져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힌트를 줬던 것처럼 아시아에서 찾은 새로운 근미래의 풍경이구나 싶어서 재밌었어요.

<공각기동대>가 사이버 펑크 비주얼을 처음 제시한 고전 같은 느낌이잖아요. 우리 머릿속에 일본 애니메이션 청춘물 하면 구름과 전신주 이런 게 생각나듯이 근미래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상징적인 작품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좀 과장하자면 <공각기동대>랑 <허>( 2013, 감독: 스파이크 존즈)를 섞은 느낌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공각기동대>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 두드러진 디자인인데, 저희는 그런 디스토피아적인 요소들은 사용하지 않았어요. 홍콩과 서울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어 나갔던 것 같아요.


건물이 증축된 것도 있지만 디지털 사이니지가 중첩돼서 복잡한 느낌이 들어요.

보통은 배경 라인을 디자인을 하신 분들이 간판도 같이 하시는데, 저는 그래픽적인 영역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해야지 예쁘게 나온다고 생각해서 간판을 디자인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분들과 홀로그램 디자인을 하신 분들을 따로 놓았어요. 배경 라인 디자인을 할 때도 간판 디자인에 대한 레퍼런스를 많이 드리고 간판 디자인을 유독 잘하시는 분한테만 맡겼어요. 레트로한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봤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게 그런 사인들인데 디자인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지금 상가에 공실 많고 점점 황량해지는 분위기인데, <이 별에 필요한>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서 대학생 때 하는 게임하고 있어요.

술 게임 되게 오래가지 않아요? (웃음)


내가 가본 곳이니까 그곳에서의 내 기억이 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게 애니메이션 작품에 실제 있는 장소를 넣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호원: 홀로그램이랑 사이니지랑 보면서 계속 레이어를 깔듯이 실제 공간과 가상이 같이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데에서도 유리를 통해서 반사되는 모습이 보여요. 난영이가 숙소에서 유언을 녹음할 때 자기가 있고 유리에 비치고 홀로그램이 나오고 홀로그램도 비치고 네 개가 나와요.

그런 비치는 이미지들을 연출적으로 일부러 많이 쓰려고 했어요. 아예 비치는 상만 가지고 연출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저희 이야기 자체에 관계에서의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맥락도 있어요. 


생명체 탐지기도 반사된 빛을 분석하는 분광기를 탐지의 메인으로 하고 있는 장치예요. 빛과 어둠 그리고 반사된 이미지, 실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대비를 계속 쓰고 있기 때문에 반사상을 더  많이 쓰고 싶었어요. 공연장 대기실에서 싸우는 장면에서도 거울을 이용하는 부분이나 난영이 집에서 반사상을 이용하는 부분이나 더 더 더 더 많이 쓰고 싶었는데, 2D에서 반사상을 쓴다는 거는 2배 3배로 그려야 한다는 거니까.


호원: 반사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죠. 모든 장면 라이팅이 정확하게 설계가 돼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거의 모든 장소에 식물이 있어요. 제이의 허름한 숙소에도 식물이 있고 세운상가의 기둥에도 화분이 배치되어 있어요.

배경 라인 디렉션 할 때 식물을 추가해 달라는 말을 엄청 많이 했었어요. 저는 식물도 비도 화성과 다른 지구의 모습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구를 표현할 때는 화성의 황량함과 다른, 생명이 가득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공간들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엔딩에 대한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호원: 화성 프로젝트를 데메테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이거는 엄마와 딸의 문제이기도 하고 식물을 키우고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실 저는 이 작품은 비극으로 가겠구나 아니면 감독은 또 하나의 결말을 숨겨놨구나 했어요.

해피 엔딩으로 가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지만, 엔딩에 대한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제가 한 선택은 거의 죽는 것처럼 보여주는 길이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순화된 버전인데 중간에 한 번 나왔던 애니메틱을 본 사람들이 다 난영이가 죽은 줄 알았던 버전도 있었어요. 난영이가 유언을 재생하잖아요. 얘는 죽을 수밖에 없어라고 감정선을 마지막까지 가져가고 싶었어요.


해피 엔딩은 타협이에요. 아니면 낙관적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나요?

<마돌바>가 사랑의 절망 편이면 여기는 처음부터 희망 편이었어요. 근데 저는 사람 자체가 어두운 속성인 것 같아요. (웃음) 해피 엔딩으로 가는 목표를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대로만 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있었어요. 


호원: 난영이가 유언까지 남기면서 가는 거는 사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건데, 난영이가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밖에 없죠. 근데 마지막에 얼음새꽃이 왜 나왔지? 엄마가 실종됐던 장소였으면 애초에 거기서부터 발굴을 했을 텐데, 난영이가 거기까지 간 이유는 크레이터 충돌 때문에 탐색을 하러 간 거란 말이에요. 근데 데메테르라면 여기가 하데스고.

그 장소가 무너졌고 지진 때문에 입구들이 유실돼서 찾을 수 없게 됐는데, 크레이터가 충돌해서 생겨난 임팩트 때문에 구멍이 노출이 되면서 새로운 루트가 생겼고 거기를 난영이가 찾아서 들어간다는 설정이에요. 이런 것들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지는 않아서 작품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상징적으로 읽힐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호원: 저는 그래서 좋았어요. 제목을 말장난처럼 이별과 이 별로 한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식으로 읽든,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다.

그렇게 원하는 방향성에 따라서 감정을 더 크게 느껴주시거나 아니면 더 깊은 맥락에 대한 부분들을 느껴주시면 만드는 입장으로는 너무 감사하죠.


호원: 내가 우울할 때는 해피 버전을 볼 수 없어 (웃음)

처음부터 해피 엔딩으로 가자라는 명확한 목표 지점도 있었지만, 난영이가 너무 죽는 것처럼 보일 때 “이게 열린 결말인지 닫힌 결말인지 애매할 때 어떤 해소감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분도 있을 수 있고 여성 서사로서 이야기 전체를 봤을 때 딸이 엄마가 했던 선택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떤 거를 이루어내는 것들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피드백도 있었어요. 고민하다가 엄마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난영이는 돌아오는 엔딩을 생각했어요.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감정을 따라 쭉 보게 되면은 넘어가요"


노들섬을 야외 콘서트 하는 공간으로 선택했어요. 조그만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던 인디밴드가 메이저 무대로 진출한 느낌이었어요.

노들섬 공연장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요. 인디 밴드에서 좀 더 큰 밴드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밴드여서 제이가 들어오면서 앨범을 내고 쇼케이스를 크게 한다는 설정을 했어요.


호원: 그 장면에서 제이의 귀걸이 위치가 바뀌어요. 난영이랑 제이랑 사귀면서 둘이 LP샵을 다니다가 중간에 커플 귀걸이를 사서 난영이는 왼쪽에 꽂고 제이는 오른쪽에 꽂아요. 심지어 두더지 밴드 미팅 때 반사로 보인단 말이에요. 근데 노들섬 공연할 때는 인이어가 오른쪽에 꽂히고 귀걸이를 왼쪽에 꽂았어. 그리고 다시 했을 때는 오른쪽으로 가는 거예요. ‘이건 귀를 완전히 뚫은 피어싱이 아니라 붙이는 거다!’ (웃음)

너무 열심히 봐주셨는데, 저의 실수라고 하기 죄송하네요. 난영이 점도 그렇고 피어싱의 위치도 내부의 애니메이터들과 레드독에게도 너무 헷갈리는 문제였어요. 제가 훅업 개념이 부족해요. <마돌바>에서도 여기 있던 게 저기로 간다거나 오른쪽 왼쪽이 바뀐다거나 그런 실수 많이 했어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감정을 따라 쭉 보게 되면은 넘어가요. 캐릭터 옆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감정선인데, 예전에 했던 설정에서 귀걸이는 오른쪽에 있단 말이죠. 그러면 오른쪽을 보여줘야 되는데 이쪽 앵글로 가니까 그 맛이 안 살아 그런 감정이 아니야. 화면 안에서도 오른쪽을 바라보는 거랑 왼쪽을 바라보는 거랑, 전진하는 거랑 후퇴하는 거랑 주는 감각이 다르잖아요. 공연 장면에서는 그냥 오류를 만드는 방향으로 타협안을 냈던 것 같아요.


호원: 오류이기에는 방향성이 유지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바뀐 이유는 인이어 때문인 거예요. 인이어랑 귀걸이랑 같이 쓰면 그릴 때도 지저분하고 임팩트도 없고 해서 바꿨구나. 근데 마지막 다시 만날 때는 확실히 그 방향성을 유지해서 제이는 왼쪽에서 뛰어오고 난영이는 오른쪽에서 오는 거예요.


감독님이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 중에서 제가 너무나 긍정적으로 읽었던 게 <마돌바>에서 비행기 티켓의 날짜가 다르다. 제 나름대로 이래서 마법적인 표현인가 했더니, 감독님이 “어 오류인데요”.

진짜 방심할 수가 없다. 근데 이렇게 해석해 주시면 제가 실수라고 안 하고 이거를 얘기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웃음)


호원: 요번에 재미있었던 실수가 또 숫자에 관한 건데, 2051년 6월 12일 일요일이라고 뜨는 거예요.

대원들의 생일은 나름 유명한 위인들의 생일이에요. 굳이 지어내는 거면 말이 되게 같은 공력으로 하는 편인데, 홀로그램은 디자이너 분들이 임의로 채워 넣거나 설정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나중에  이렇게 누군가 이거 이상해요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요.


호원: 찾아봤더니 월요일이에요.

그래도 하루 밖에 안 틀렸네요. (웃음)


호원: 또 하나 숫자가 보였던 게 난영이랑 로사의 SNS 게시물 수와  팔로워 수예요. 로사의 성격과  난영이의 성격이 그 숫자로 표현돼요. 난영이는 게시물이 하나도 없는데, 팔로워 수가 12.7K이야. 로사는 게시물이 천 개가 넘어서 팔로워 수가 난영이보다 많은데, 팔로우하는 거는 난영이가 조금 더 많아.

난영의 게시물이 없음이라고 나온 걸 난영이가 제이를 차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의 개인적인 설정은 난영이가 비공개로 바꿨거나 지웠다예요. 헤어진 상태니까 마음에 대한 정리 과정에서 사람들이 SNS를 많이 지우잖아요. 어쨌든 난영이의 피드가 비어 있고 로사는 가득 차 있는 걸 봤을 때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기능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해요.


호원: 처음에는 난영이가 쿨하게 게시물 안 올리는 건가 했다가 아니 지웠겠다 하는 순간에 난영이가 화성으로 갈 때의 마음가짐 하고 로사의 마음가짐이 너무 다른 거예요.

난영이가 너무 진지한 캐릭터여서 로사가 캐릭터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이에요. 원래는 로사가 더 텐션이 높은 캐릭터였어요. 특히 강현주 작가님이 각색을 해 주셨을 때 로사 분량이 엄청 많았거든요. 티키타카와 찐친 케미 이런 것들을 많이 해 주셨어요. 지금은 로사가 한국에 없고 홀로그램으로 소통하잖아요. 작가님이 처음 각색을 해 주셨을 때 로사랑 난영이랑 같이 한국에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하셨어요. 난영이랑 로사가 마치 <섹스 앤 더 시티>(1998-2004, 제작: HBO) 같은 드라마처럼 남자 얘기도 하고 같이 카페에서 대화하는 신도 있고 그랬거든요. 근데 분량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이슈로 많이 뺐죠.


"현재가 과거가 됐을 때 남아 있을 게 뭘까"


로사가 노란색 크록스를 신고 있잖아요. 과학자 선생님들이 신고 계신 걸 본 건가요?

의학 드라마 같은 데서 크록스 많이 신고 나오는데, 저는 그게 생활감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크록스 디자인 자체가 아이코닉 하잖아요. 지금 세대에 있어도 아주 미래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디자인인 것 같고 사람들이 딱 보면 뭔지 알아서 반가워할 소재죠. 우리가 생각할 때 박사든 의사든 전문가로서 가운을 입고 프로페셔널한 느낌인데, 그들은 그게 일상이고 편한 상태라는 설정의 일환이었어요. 가운 안에 난영이 입고 있는 티셔츠도 편안하고 널디한 차림들이고요.


드론을 타고 올라오는 축하 리본은 지금도 가능할 텐데 25년 후에 이렇게 쓸 수도 있겠구나.

이게 여기 있을까 하면은 딱 그만큼 되돌아가보는 거예요. 10년 20년을 되돌아갔을 때도 그게 있으면 미래에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호원: 얘네들도 인간이네라고 느낄 수 있었던 드론 이벤트에 삐뚤삐뚤 그린 그림도 있고 난영이가 손글씨로 연락처를 쓴 것도 있어요. 난영이가 유언을 남길 때 그 영상에 그 사인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런 게 저는 귀여운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갑자기 종이 줘서 글씨 쓰라고 하면 어색하거든요. 지금도 이런데 미래에는 종이를 거의 쓰지 않아요. 사실 과학자든 예술가든 열심히 작업하는 캐릭터들의 공간을 디자인하려고 하면 종이를 그리고 싶은 유혹이 너무 강렬하거든요. 노트를 그려서 거기 음표를 그려야 될 것 같고 난영이도 종이 같은 것들이 많아야 될 것 같고. 그런 것들을 다른 소재들을 디자인해서 넣고 종이를 적극적으로 안 보여주는 선택들을 했어요. 그래서 난영이랑 제이가 만났을 때 제이가 종이를 건네는 행위가 특별해지도록 했어요.


호원: 근미래라면 왠지 EDM을 해야 될 것만 같지만 제이가 통기타를 연주하고.

기타의 역사를 생각하면 저는 그때도 100퍼센트 있을 것 같아요. 미래에서 모든 게 다 바뀌는 걸 상상했다기보다 현재가 과거가 됐을 때 지금 것 중에 미래에 남아 있을 게 뭘까 생각하고 했던 게 많은 거 같아요.


호원: 그랬을 때 눈에 와닿는 게 제이의 작업장 귀퉁이에 생수통 정수기가 있는 거예요.

왠지 있지 않을까 (웃음) 그리고 제이는 좀 열악한 느낌을 좀 주고 싶기도 했달까요.


호원: 서울역 처음에 도착했을 때 안내 방송으로 “에어택시 운전자는 드론 추돌사고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해요. 에어택시가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택시예요?

맞아요. 지금 같은 페이스로 기술이 발전했을 때 2050년쯤에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에어택시가 있지만 작품 안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어요. 주인공들이 타는 모노레일도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들이고, 초미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지구 신에서 목적이 아니었어요. 레트로한 세계관과 지금의 현대적인 생활감 있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밸런스 안에서 탈락된 것 같아요. 


지구를 너무 번쩍번쩍하게 미래로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화성에서 뭘 해야 되지 이런 생각도 있었어요. 여럿이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으니까 오랫동안 우주 개발이 멈춰 있다가 다시 재개하는 설정을 넣었던 것도 우주 개발의 타임라인이 잠깐 멈춰 서서 살짝 주춤한 기간이 있다는 식으로 상정했어요. 어느 정도 미래적으로 해나 갈까에 대해서 제 개인적인 취향도 있지만 작품의 정서나 주제성도 포함해서 그리고 화성과 지구의 조율까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 (제공: 넷플릭스)

"음악이 물성이 있는 느낌이 저는 너무 좋거든요."


호원: 작품이 중간 지점부터 달리기 시작을 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관계 빌드업 하다가 중간부터 10분 단위로 탁탁 치고 나가는 거죠. 키스하면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는 장면에서 ‘콜드플레이인가’ 했어요.

음악 감독님과 90년대 2천 년대 초반 음악 레퍼런스를 많이 가지고 오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제이가 락을 하잖아요. 락톤은 어떤 톤으로 가져갈지가 중요했어요. 펑크일 수도 있고 헤비메탈일 수도 있잖아요.  공교롭게 요즘에 90년대 2천 년대 초반 음악들이 유행을 하고 옛날에 흩어졌던 밴드들이 재결성해서 내한하고 그러잖아요. 20년에서 25년 주기로 음악 내지는 패션 유행이 돌기도 하니까 25년 후면 그 음악이 다시 유행하는 시기거든요. 


호원: LP 평소에 들으세요.

사실 LP가 귀찮잖아요. 좋아하는 음악을 사서 들을 때 한정적으로 듣고 LP로 주로 듣지는 않아요. 근데 턴테이블이 있어서 LP를 살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음악이 물성이 있는 느낌이 저는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여행 가면 LP샵 가서 그 나라의 아티스트들 LP 사 오는 게 코스 중에 하나예요.


옛날에는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 LP 커버 작업하는 걸 좋아했다고 하죠.

그럴 것 같아요. CD보다 LP가 주는 그 묵직함이 분명히 있고.


호원: LP가 돌아가는 걸 보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게 CD나 파일로 재생을 하는 거랑은 전혀 달라요.

사실 음악은 못 만지잖아요. 보이지도 않고. LP는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저는 음악을 안 들어보고 커버를 보고 LP를 산 다음에 집에 와서 틀어보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이게 시각적이고 실존하는 물체라는 것과 내가 여기에 기대했던 것과 또 들었을 때 감각이 너무 좋더라고요.


호원: 제이랑 난영이랑 만나는 계기가 되는 아이템이기도 하고 엄마가 남긴 유품이기도 하고 난영이가 화성을 갈 때 풍경으로도 만들고, ‘이 설정들이 다 계획 속에 다 있었구나’

LP 우주의 장면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제가 양자물리학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다큐도 많이 보고 했었는데, 파동으로 음악을 표현하거나 에너지 장으로 비주얼적으로 연출을 하면서 그걸  LP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보여주는 것이 제 안에서 설득력 있는 비주얼이었던 것 같아요.


호원: 우주를 설명을 할 때도 블랙홀 주변에 생기는 걸 강착원반이라고 얘기를 해요. 애니메이션 역사하고 연결하면 레코드에 녹음된 소리를 재생을 한다는 게 죽은 사람을 소환을 한다라는 콘셉트 하고 같이 가죠. <메모리즈>(1995, 총감독: 오토모 가츠히로)  첫 번째 에피소드 <그녀의 추억 Magnetic Rose>(감독: 모리모토 코지)에서도 혼자 남은 여인이 오페라 가수인데, “나비 부인”을 재생하는 설정이죠. 이 작품에서 레코드를 통해 엄마를 회상을 한다면 결국 난영이가 저리로 갈 수밖에 없구나.

제가 모르는 사이에 난영이의 죽음에 대한 상징을 (웃음)


"넷플릭스랑 작업을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시사회 때 선물로 컵이랑 레코드 모양 코스터가 나왔어요.

레코드 판에 끼워본 사람들 있더라고요. 


그 아이디어는 홍보팀에서 낸 거예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열심히 해 주시는구나 되게 고맙더라고요.


호원: 좋은 작품은 모든 게 탁탁탁 맞는 거예요. 사람들도 거기서 영감을 얻어가지고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넷플릭스 팀에서도 레드독에서도 늘 하던 방식이 아니고 뭔가를 더 해보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시사회 했던 날도 언론 시사한 방에 대형 턴테이블 무대를 설치했어요. 티저 포스터 레코드 위에 난영이와 제이가 앉아 있는 정도 비율로 진짜 턴테이블을 만들어서 심지어 뚜껑도 열려요. 턴테이블 암도 움직여요. 좀 멀리서 찍은 사진 보면 턴테이블 무대가 보이거든요. 포스터처럼 LP라벨 위에 서가지고 진행을 했어요. ‘진짜 이렇게까지 해주신다고?’ 그런 느낌 (웃음)


작품 공개 뒤에 영화의 장면을 갖고 와서 배경이 되는 공간에 가서 비교하면 사진 찍는 홍보물을 보며 즐겁게 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거 하신 다음에 넷플릭스 팀원 분들 따로 세운상가 가서 뒤풀이하셨대요. 새로운 거를 하는 게 부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걸 즐기는 분들 위주로 잘 모인 것 같아요.


2025년 5월 30일 공개 전에 홍보 일정이 많았어요.

끝날 무렵쯤에 의미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니까 포스터를 여러 종 하자라는 의논이 오갔어요. 넷플릭스 작품들은 보통 스틸 샷이나 소재받아서 영화 포스터 업체들이 알아서 만들어 주시는데, 저희는 애니메이션이니까 제가 원래 하던 팀원분들을 리드하면서 포스터를 하겠다 하고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완성본 필름의 마지막 퀄리티 체크를 해서 보내고 포스터 2종을 작업을 했고 KT랑 넷플릭스가 컬래버레이션을 한 광고 애니메이션 납품을 했어요. <이 별에 필요한> 소재로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들되, 사이사이에 6컷 정도를 추가로 만들어야 돼서 한 달 동안 만들었어요. 그 마감 기간 중에 언론 시사, 라운드 인터뷰, 여러 가지 다른 매체 인터뷰 또 외신 화상 인터뷰 이런 것들이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어요.


이전 작업하고 가장 다른 부분이 홍보의 영역이었나요?

<생각보다 맑음>(2014) 때 생각났어요. 그때 개봉지원을 받은 프로젝트여서 인디스토리에서도 그렇고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에서도 신경 많이 써서 이벤트들도 많았고 인터뷰도 엄청 많았어요. 


겪어봐서 당황스럽지는 않았군요.

오히려 저는 더 많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퀄리티 체크 이후에 여러 나라 버전으로 더빙이 진행되나요?

퀄리티 체크는 말 그대로 에러 잡아내는 거라서 넷플릭스의 퀄리티 검수를 위임받은 업체들이 확인하고 리스트를 줘요. 더빙은 생각보다 타이트한 타임라인 안에서 와르르 된 것 같아요.


다른 언어로 본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작품이 공개된 후 지원되는 언어들을 본 거예요.

제가 무사히 파일 넘기고 넷플릭스에 가서 홍보 방향성을 주고받는 미팅에 저희가 쭉 참여했는데, 어느 시점에 포스터에다가 세계 각국 언어들이 얹어진 썸네일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겠는 언어들을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넷플릭스랑 작업을 하는 게 이런 거구나 그때 확 체감이 되었던 기억이 나요.


호원: 장편, 단편 차이도 있겠지만, 작업할 때마다 플랫폼이 계속 바뀌었잖아요.

가장 인상이 깊게 남는 플랫폼은 아무래도 넷플릭스가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보면 좋지’ 정도였는데, 글로벌하게 론칭된다라는 게 이런 거구나. 트위터에서 Lost in Starlight 치면 영어도 나오지만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프랑스어 각국의 언어들로 후기가 올라와요. 이런 거는 확실히 처음이죠.  


그 나라 말로 다 번역이 되어 있으니까

내가 진짜 큰 프로젝트를 끝냈구나를 막판에 여러 나라 언어의 더빙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 같아요. 성우분들도 한 분 한 분 유명하신 분들이잖아요. 녹음 연출 현장을 가이드했을 풍경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재미있고 감격스럽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보는 첫 번째 채널이자 제일 편한 채널은 TV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군다나 넷플릭스는 훨씬 더 넓은 채널이니까 작품이 닿는다는 면에선 극장보다 낫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맑음> 이후로 제가 극장 가는 횟수가 확 줄었어요. 제가 정신이 약하고 말랑말랑했을 때 만들었던 작품을 돈을 받고 티켓을 팔았던 경험이 저한테 많은 가르침도 줬지만 약간의 트라우마가 된 것도 있어요. 그래서 극장 환경에 압도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작품을 OTT로 보고 저도 그 변화에 심각하게 적응을 해버려서 작은 스크린으로 보는 게 시청을 저해한다는 생각이 잘 안 들더라고요. 특히 제 작품을 볼 때 저는 가능하면 작은 걸 좋아해서 (웃음)


자유도도 훨씬 많아요. 극장에 걸리거나 기존 방송 매체에서 방영을 하려면은 뚫어야 되는 산들이 있고 꼭 맞춰야 되는 기준이 있잖아요. OTT는 생각보다 그런 기준이 없어요. OTT의 성향 자체가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줘서 구독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유지하는 게 목적이잖아요. 극장은 무조건 많아야 돼라는 게 있어서 다양해지기가 어렵고 그 와중에 애니메이션은 항상 좁은 틀을 강요를 받아왔는데, OTT에서는 전혀 그 틀이 없는 거죠. OTT가 아니었으면 30대 연애 얘기가 나오는 게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 프로덕션 노트로 이어집니다. *2025년 8월 25일 게시 예정

인터뷰 2025년 7월 9일 @ 망원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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