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 SPECIAL_KIM Kangmin
김강민은 한국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공부하고 무대영상 감독을 하다가 캘리포니아예술대학(칼아츠)에서 실험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석사 졸업 작품 <38-39°C>(2011) 이후 <사슴꽃>(2015), <점>(2017), <꿈>(2020)까지 발표한 다섯 편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모두 부모자식 간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다. 그는 그래픽 디자인과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하며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와 배경 디자인, 재료와 기법들을 선보였다. 오로지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면서 반복되거나 진부해지는 기색 없이 이야기 전달력을 높이고 자기표현의 영역을 넓혀왔다.
2024년 6월 스페셜: 김강민
맨손에서 AI까지
김강민은 2017년, 2018년, 2021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BIFAN) 공식 트레일러를 제작했다. 영화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트레일러 영상은 또 한편으로 작가의 특색을 드러내기에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2017년 만든 첫 트레일러의 만족도는 다음 해 작업으로 이어졌다. 공포영화의 아이콘 프레디 크루거를 주인공으로 한 2018년 트레일러는 여전히 회자되는 전설이다. 25주년이었던 2021년 트레일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작품이다. 호평이 자자한 BIFAN 트레일러 세 편과 최근 작 <Flower>(2024)를 통해 김강민이 실험한 기법들을 압축 정리했다.
BIFAN이 아직 PIFAN이던 시절,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트레일러로 시작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2018년 특별전에 <나이트메어>(1984)를 상영하면서 포스터와 트레일러에도 프레디 크루거를 기용하여 ‘판타스틱 정체성의 확인’했다. 본래 원작의 팬이었던 김강민은 영화제의 의뢰를 받자마자 <나이트 메어>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침대에 누워 자던 글렌(조니 뎁)이 아래에서 솟아난 금속 손에 이끌려 아래로 끌려 들어가고 그 자리에서 붉은 피가 치솟아 천정에 퍼지는데, 김강민은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그 아래의 공간을 상상한 것이다.
1분 25초짜리 영상은 찰나만으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프레디 크루거를 활용한 전반부(35초까지)와 <나이트 메어>의 장면을 오마주 하며 2017년 트레일러의 추락하는 핑크색 인물 모티브를 재현한 후반부로 구성되었다. 프레디 눈 깜빡할 새 지나가는 클로즈업은 공포감 조장을 위한 연출로 보았는데, 기성 피겨를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겸연쩍은 고백을 들었다.
기법 하나: 스티로폼 멜팅
2018년도 트레일러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한 기법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경과 소품을 녹이고 그 과정을 정방향이나 역방향으로 재생한 것이다.
2020년 작 <꿈>에서 아들의 배가 재생(03:16~03:22)되거나 작은 파편들이 자라나 온전한 신체(6:46~7:13)를 이루는 장면도 같은 기법으로 만들었다.
기법 둘: 스탠딩 컷아웃
2017년 로고와 심벌을 손보며 분위기 바꾼 BIFAN의 트레일러를 맡은 김강민은 다양한 기법을 동원했다. <38-39°C>의 납작한 종이 퍼펫을 입체 공간에 세워 촬영했던 스탠팅 컷아웃 기법과 거친 질감이 눈에 띄는 검은 용지에 흰색으로 만든 이미지가 교차한다.
퍼펫을 고정하는 작은 핀은 움직임이 빨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보인다고 해도 거슬리지 않는다. 달리는 속도와 계속 교차되는 스타일은 한 눈 팔 새를 안 준다. 게다가 13초부터는 진행 방향이 가로에서 세로로 바뀐다.
아파트 벽을 타고 달리는 사람과 그 앞에 더 빨리 바위를 건너 뛰는 개들의 동작은 하나 하나 박제된 듯하다. 마치 영화를 촬영한 필름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움직임의 속도, 재료의 질감 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조명이다.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와 아파트 벽면에 드리운 노을 조그만 창에 어룽져 일렁이는 빛은 화면의 생기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게 한다.
기법 셋: 스트라타컷
영화제 심볼 ‘상상세포'의 시각화에는 데이비드 다니엘스가 창안한 스트라타컷(strata-cut)을 선택했다. 사람 머리에서 튀어나온 클레이 뭉치 단면에는 칼 자국과 공기 구멍이 선연하다. 빙글빙글 돌면서 입자가 조밀해지는 비정형 이미지는 종잡을 수 없는 상상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꿈>처럼 흑백 영화로 만든 25주년 기념 트레일러는 짧지만 완결된 이야기 또는 긴 서사의 예고편 처럼 보인다.
무수한 곤충을 잡고 공포영화를 즐겨 보면 김강민의 과거가 물씬 느껴지는 메뚜기 소년 캐릭터는 비극적 트라우마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프레디 못지 않은 공포물 주인공 감이다. 1970년대에 나온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가면라이더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기법 넷 스탠딩 와이어 퍼펫
종이와 폼(스폰지 종류), 와이어를 주재료로 사용한 캐릭터와 소품은 명암 대비가 강한 조명 아래 자연스레 융화된다. 흑백 영상에서 빛은 무엇보다 강력한 요소로 장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거미에게 찔린 남자의 머리가 빛나는 장면은 80년대 괴수 영화 <더 씽 The Thing>(감독: 존 카펜터, 1982)의 포스터를 오마쥬 했다. 작살을 든 남자와 촉수 괴물 캐릭터의 이미지나 구도 등도 영화에서 빌려는데, 이를 알아챈 BIFAN 팬들은 더 환호했다. 25주년 트레일러는 몇 번을 봐도 질린다는 반응이 없었고 온라인 상영관에 올라온 짧은 버전 대신 풀 버전을 올려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기법 다섯: 다운 슈팅
여러가지 재료들로 모양을 잡은 심볼은 유리 테이블 위에 물, 알코올, 물감 등의 재료로 섞으며 실험한 영상을 바탕에 깔고 유리창에 낀 성에 같은 이미지와 앞서 합성했다.
기법 여섯: 타임랩스
앞서 보았던 거미에게 찔린 안구에 퍼지는 독 이미지는 검정 스폰지 위에 키보드 먼지 제거 스프레이를 뿌려서 만들어냈다. 스프레이를 거꾸로 들어서 사용하면 매우 차가운 바람이 나와서 잠시 얇게 얼어버린다. 그것이 녹는 과정을 촬영했다.
Flower (2024)
김강민은 손으로 그린 선의 떨림이나 수채 물감의 농담, 빛과 액체의 번짐이나 화학 작용의 예상치 못한 효과,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실수’라고 표현하는 기계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미지를 찾는다. 3D 프린터나 AI를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법 일곱: 김강민 AI
최근 김강민은 과거 작업 영상 클립과 직접 만든 이미지 자료를 LensGo AI에 올려서 조합하며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다섯 번 돌리면 두 번은 쓸만한 이미지가 나온다고 한다. AI 특유의 울렁거림을 잡는 게 관건이다.
재직 중인 칼아츠 실험애니메이션 석사과정 졸업 전시회 트레일러가 그 실험의 결과물이다. 꽃을 주제로 직접 촬영한 영상 소스에 여러 가지 텍스처를 섞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그림 1 스크래치 온 필름으로 만든 사람이 그려진 이미지 한 장을 AI에 레퍼런스로 주고 타이틀에 적용했다.
그림 2 꽃은 종이에 그린 애니메이션, 배경은 AI로 통해서 만들어서 합성했다.
그림 3, 4 스크래치 온 필름 애니메이션에 <꿈>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사용해서 AI 제작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2개의 유리 위에 올려놓고 작은 조명을 손으로 움직이며 실사로 촬영한 후 AI를 통해서 일렁이는 효과를 넣었다.
스크래치온필름 + 표백제로 만든 애니메이션 <The Night Wood>(2008)를 AI에서 꽃 텍스처로 바꿨다.
<사슴꽃>에서 3D 프린터로 제작한 꽃이 피는 애니메이션에 AI로 실제 꽃의 텍스처 부여했다.
원래 장면에서는 비어 있는 중심부를 AI가 채워 넣었다
The Trace of Emotion
현재 김강민은 학부 때 만든 클레이메이션 <The Trace of Emotion>(2008)을 AI로 다시 작업하고 있다. 창작의 범용 도구가 된 컴퓨터처럼 AI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김강민의 데이터로 훈련시킨 ai가 김강민 작품을 만드는 건 가능하겠지만 “김강민 스타일로 만들어 줘"라는 명령어는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김강민 스타일은 특유의 취향과 예측 불가능한 우연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Zoom 인터뷰 2024년 4월26일, 서면 인터뷰 2024년 5월 18일~5월 24일
대담: 2024년 5월 15일 모은영(BIFAN 프로그래머), 나호원, 이경화 @합정동
진행/작성: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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