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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 KIM Kangmin

풀숲에서 벌레 잡으며 놀던 어린 시절, 각종 보양식과 장난감으로 맞벌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뿌연 구름 속 같았던 학창 시절을 지나자마자 제 손으로 천직을 찾았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인과 스톱모션을 기반으로 음악과 무대를 위한 영상을 만들었고 LA로 건너가 실험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유학생과 프리랜서로서 타지 생활이 10년을 훌쩍 넘었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김강민은 석사졸업작품 <38-39°C>(2011)과 <점>(2017)에서 평면 캐릭터로 본인과 아버지, 본인과 아들의 관계를 박진감 있게 펼쳐냈다. <사슴꽃>(2015)과 <꿈>(2020)은 유일한 아들에게 쏟아진 사랑의 무게를 가늠하게 하는 복합적인 이야기다. 독창적 입체 캐릭터들을 구현한 남다른 재료는 알뜰한 살림꾼의 묘수다. 2021년부터는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만들 거리가 많은 그에게 수업이 끝난 저녁의 캠퍼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번 학기는 언제 시작했나요?

크리스마스 끝나고 1월 말쯤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 화, 수, 목 오는데, 목요일이 제일 시끌벅적해요. 스튜디오 갤러리들이 다 오픈해요. 5월 둘째 주에 졸업 작품 상영하는 학생들은 지금(4월 중순) 엄청나게 바쁜 시간이에요.


어떤 과목을 가르치세요?

1년짜리 MFA 석사 졸업 작품 수업이 하나 있고 스톱모션을 위한 카메라랑 조명 수업 그리고 2.5D라고 스톱모션 컷아웃 퍼펫 수업을 학기당 하나씩 하고 있어요.


분야가 세세한 것 같군요

3D 과목도 있고 스톱모션 쪽은 2D도 있고 CG도 있고 세분화되어 있어요. 저는 평평한 퍼펫을 유리에 올려놓고 찍는 걸 가르치고 있고 입체적인 퍼펫 만드는 수업 하는 분이 따로 계세요.


제가 (연구실에서) 스크래치 온 필름을 하고 있었는데, 실험애니메이션과다 보니까 접하기 힘든 테크닉들도 제 수업 시간에 소개하고 있어요.


실습 위주 수업인가요?

카메라랑 조명 수업은 직접 다 만지고 설치하는 수업이고 컷아웃 퍼펫 쪽은 퍼펫 디자인하는 과정부터 해서 어떻게 촬영하는지 들어간 다음에, 스토리 전개 쪽에서는 이론이 들어오기도 해요.


사슴꽃 (2015)


<사슴꽃>은 어린 시절 기억으로 만든 것이죠.

제가 79년생이거든요.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 그 중간 어느 정도일 거예요. 크레디트에 나오는 사진이 있어요.


당시에 그 사슴 농장에서 찍은 건가요?

그 일이 벌어진 그날 사진이에요.


감독님은 외아들이신가요?

외아들이죠. 인천 구월동의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나 바삐 일을 하시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얘기해 주셨는데, 제가 세 살 때 집에 혼자 두고 밖에 나가서 일을 보고 오시고 그랬대요. 애들을 키워보니까 세 살짜리를 집에 혼자 두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근데 야쿠르트나 이런 먹을 거 주고 (나갔다) 들어오면 제가 혼자서 껄떡껄떡 울다가 잠든 게 보이더래요. 저는 당연히 기억 못 해요. 근데 어머니는 외아들을 그렇게 키웠으니까 아직도 저한테 미안하신 거죠. 그래서 돈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들이 장난감을 많이 사셨었던 것 같아요. 보양식도 그중에 하나였겠죠.


사슴 피 말고 다른 기억나는 것도 있으세요?

지네 가루를 삼계탕에 넣거나 별의별 거 다 먹었어요.


지네 가루라는 걸 먹을 때도 알았나요?

어머니는 저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주셨어요. 사슴 피도 제가 다 직접 봤으니까. 그런 거 안 숨기시고, 저도 음식을 먹을 때 비위가 약한 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작품에 곤충들이 많이 등장하잖아요. 풀밭에서 많이 놀았나요?

부천판타스틱영화제(BIFAN) 25주년 트레일러 만든 거 있잖아요. 계속 벌레 죽이는 거. 그게 저예요. 그때 인천에 살았던 곳이 그린벨트 지역이었어요. 저 혼자 놀면서 동물, 곤충, 벌레 엄청 많이 죽였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곤충의 제왕이었어요. 박스 안에다가 말벌 잡아서 알코올 주사 같은 거 놓고 진짜 제대로 채집을 해서 제출했던 기억이 나요. 그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까 쥐가 제 걸 다 파먹었더라고요. 부천영화제 시그널 필름 만들 때 영감을 그런 데서 받은 거죠.



<사슴꽃>을 시작한 당시가 기억나세요?

졸업 작품 <38-39°C>가 잘 된 편이었거든요.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헨리 셀릭의 디즈니 장편 일 제안을 받았어요. 비자까지 약속받은 거죠. 일을 하러 갔는데, 어느 날 아무 경고 없이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해외에서 온 180명의 아티스트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된 거죠. 프로듀서가 저한테 “너 2주 안에 한국으로 안 돌아가면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다”라고 연락했어요. 회사가 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하던 아내는 학기 중이었어요. 저만 돌아가서 <사슴꽃> 아이디어를 한국콘텐츠진흥원에다가 발표하고 미국에 와서 탁탁탁탁 만든 거죠.


작업 아이템을 <사슴꽃>으로 정한 이유는 뭔가요?

졸업 작품 이후로 스톱모션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항상 생각 중이었던 것 같아요. 노트에 사슴 피 먹은 얘기와 다른 얘기들을 적어놓은 게 있었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을 할 때 에릭 오랑 션 킴 두 친구를 만났는데, 다 애니메이션 하는 친구니까 사슴 피 아이디어를 얘기했더니 ‘저걸로 무슨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거지?’라는 표정이 보였어요. 그게 오히려 저한테는 좋았어요. ‘이거 하면 색다르겠다’ ‘이걸로 한번 가보자’ 졸업 작품의 평평한 퍼펫으로는 회사들이 저의 애니메이팅 능력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그래서 테크닉적으로도 입체적인 거 만들어보고 싶던 찰나였어요.


왜 미국으로 돌아가서 만들어야 했어요?

아내가 미국에 있어서. 몇 개월 동안 떨어져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미국에서 하다 보니까 이쪽에 수월하게 찾을 수 있는 게 많았어요. 돈도 없는 상황이니까 샌프란에서 생활하기가 힘들어서 아내랑 차에다가 짐이랑 강아지 다 싣고 포틀랜드까지 먼저 올라갔어요. 거기에 라이카가 있거든요. 혹시나 모르니까 포트폴리오 주고 LA로 내려와서 할리우드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곳에 살았어요.


좁은 아파트에서 장비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어요. 그때 3D 프린터가 나왔거든요. 3D 프린터로 퍼펫을 만들고 촬영은 (연구실) 뒤 테이블에 계시는 은사님(Stephen Chiodo)의 스톱모션 스튜디오(CHIODO Bros.)에서 엄청 더운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만들었어요. 옛날 실사버전 <닌자 거북이>에 사람들이 쓰고 나오는 가면 제작한 분이고 이번에 <마르쉘, 신발 신은 조개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2022)도 이분이랑 같이 한 거예요. 넌덜레스(NONE THE LESS)는 프로듀서인데, 지금 라이브액션과에 재직 중인 김기진이라는 친구의 회사예요. 콘셉트적인 거나 조명 쪽으로 도움을 줬어요.


3D 프린터는 그전에 써본 경험이 있었나요?

사서 테스트 기간이 좀 길었어요. 마야를 지인한테도 물어보고 유튜브에서 배우면서 테스트를 많이 했죠. 주인공 캐릭터도 완벽하지 않아요. 손이 옆으로 안 펴져요. 앞으로 밖에 안 돼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디벨롭을 시킬 수는 없었어요.


마야로 조립도를 디자인해서 3D 프린터로 출력한 것인가요.?

마야에서 입체적으로 모델링하면 이 상태로 레이어를 쌓으면서 뽑아내요. 얼굴도 턱부터 머리까지가 하난데, 쭉 한 번에 뽑는 거죠.


캐릭터가 디자인 보다 각지게 나왔어요. 제가 마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각이 많이 져있으니까 빛에 따라서 그 빛의 변화가 눈에 잘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디자인보다 최종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요.


<사슴꽃>에서 맨 끝에 모기에 물리고 얘가 피부병이 난 상태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차 타고 가는 장면의 빛이나 쉐도우, 질감이 너무 표현이 잘 돼서 제일 좋아해요.


종이 인형처럼 만들고 싶으셨던 거죠?

고급 3D 프린터는 좋은 텍스처를 뽑아내요. 제가 갖고 있는 건 그 정도가 아니라서 플라스틱 재질이 너무 잘 보이니까 그 위에 종이를 덮었죠. 그랬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각 인형 아니면 종이 인형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거기에 철사 같은 뼈대를 삽입하신 거예요?

애니메이팅 할 때 분리가 돼서 움직여야 하니까 따로따로 프린트를 해서 접목시켰죠. 디자인 단계에서 뼈대가 들어갈 구멍을 계산했어요. 뼈대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다 플라스틱 조인트예요. 레고랑 똑같은 거예요.


소품도 3D프린터로 만들었나요?

피가 든 그릇 있잖아요. 피 안으로 주인공이 빠져들어갈 때 피의 텍스처가 쫙 보여요. 레이어들이 교체되면서 계속 움직이는 거예요.


스톱모션은 어쩔 수 없이 실수에 관한 거예요. 3D 프린터도 실수를 하더라고요. 꽃피는 장면에서 질감이 보이는데, 플라스틱을 뜨겁게 녹이다 보니까 가끔씩 글루건처럼 이쪽 면하고 이쪽 면에 줄이 연결이 돼 있어요. 원래 클린을 하고선 깨끗하게 촬영을 하는데, 저는 그대로 남겨놓고 칼라만 올린 다음에 촬영을 했더니 꽃피는 장면이 되게 오가닉 하게 나오더라고요.


배경은 어떤가요? 나무 잎 보고 팽킹가위가 떠올랐어요.

그걸로 수채화 종이를 잘라서 평면 레이어를 계속 겹친 거죠.


살아있는 사슴뿔에 톱질을 해서 피를 마시잖아요. 어렸을 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충격적이지 않았어요. 진짜요. 그 사슴의 눈이 아직도 기억나고 제가 사슴 머리를 만졌던 것도 기억나요. 사슴을 눕히는 과정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그랬거든요. 한 가지 다른 거는 사슴 피가 빨리 굳어버려요. 실제로는 거기다가 소주를 섞었어요. 어린 나이의 저한테 그렇게 먹인 거죠. 제가 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는 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냥 독특한 경험처럼 느껴져요.



소년이 사슴 귀에다 “미안해 금방 끝날 거야” 속삭였잖아요. 그 대사는 작품을 만든 시점에 생각하신 건가요?

작품 만들 때 생각을 했어요. 제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제 백그라운드가 그래픽 디자인이니까 키네틱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거든요. 크레디트 디자인도 저한테는 중요한 편이고요. (귓속말을) 속닥속닥 하고 한글이 나오고 뿔이 잘리는 장면에서 글자가 착착착 잘리는 것처럼 연결하면 좋은 편집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그전에 2D도 있다가 3D 스톱모션이 나오고 CG도 있었고 여러 테크닉을 보여줬거든요. 이런 부분에서 한글 타이포가 나오는 장면으로 가면 전체적으로는 조화롭게 플레이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2015년 <사슴꽃> 완성 이후는 어땠나요?

선댄스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했을 거예요.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하잖아요. 눈이 엄청 많이 와요. 감독들한테 부츠랑 코트를 줘요. 리조트에서 상영관까지 눈길을 밟고선 걸어가는 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엄청 울었어요. 그전까지 힘들었던 것들이 다 몰려와서 감정에 북받쳤어요.


<사슴꽃> 하고 나서 비자를 다행히 받을 수가 있었고 본격적으로 LA에서 스톱모션 커리어를 쌓아가게 됐어요.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했어요. 애니메이터 어시스턴트로 스튜디오 장비 클린하고 정리하는 것부터 한 다음에 애니메이터, 다음에 아트 팀에 가서는 소품 만드는 거, 그다음에 프로덕션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그다음에 포스트 프로덕션 하는 사람, 디렉팅까지 모든 포지션에서 경험을 쌓을 수가 있었어요.


LA 쪽에 5~6개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제 목표가 모든 회사에서 일을 해보는 것이었어요. 거의 모든 회사에서 장편, 뮤직비디오, TV 시리즈를 했어요. 가장 최근에는 애플 TV+ 시리즈 <세모, 네모, 동그라미 모양 친구들 Shape Island>(2023)를 했고요.



상영하러 가는 길에 감정이 북받쳐서 우셨다고요.

그때 ‘제발 창조주가 나한테 힘들 때 작품 좀 안 만들게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점>(2017)도 그렇고 <꿈>(2020)도 그렇고 다 힘들 때 만들었어요.


<점>은 첫 아이를 낳은 기념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까 일에 업&다운이 너무 심해요. 보통 여름에 가장 바빠요. 크리스마스 스페셜을 많이 만들거든요. 광고부터 시작해서 일이 몰리는데, 일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두 달이 될 수도 있고. 두 달이 넘어가면 은행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게 보이고 조바심이 커져요. 이제 책임져야 될 자녀까지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 시기에 나보고 뭔가 만들라는 거네’ 해서 친구들 회사 ‘오픈더포탈 Open The Potal'에 가서 “나 이런 아이디어가 있어. 내가 너네들한테 돈을 갖다 줄 수는 없어. 이거를 내가 최대한 빨리 만들게. 우리 한번 어워드 위닝 스튜디오를 만들어보자.” 제안하고 그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다운 슈터 테크닉으로 4주 안에 만들었죠. 다행히 상을 받아서 친구들한테 트로피도 주고 그다음에 일이 들어와서 하게 되었어요.


<꿈>은 조금 다른 게, 계속 남들을 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까 잠깐 멈추고 작품을 하나 해보자 하고선 계획 없이 일을 멈췄어요. 그러고 나서 노트를 폈는데, 어머니 꿈에 대해 적어놓은 것들이 있었어요. 하루 이틀 만에 글도 다 쓰고 퍼펫도 만들어서 카메라로 들여다봤더니 ‘이거 되겠는데’ 느낌이 오더라고요.


(2020)


<꿈> 할 때 둘째가 태어난 상태였죠.

<꿈> 프리미어를 둘째 돌잔치 때 했어요. 오픈더포탈 주차장에 음식 차리고 친구들과 부모님 모셔둔 상태에서 조그마한 프로젝트로 상영했죠.


어머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니는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연로하신 분들한테는 칼라풀한 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나 봐요. <꿈>은 블랙&화이트니까 그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밋밋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과거에 비해서 많이 내려놓고 미디엄을 컨트롤하는 작가로서 또 다른 단계에 접어든 듯했습니다.

제 테마는 가족에 대한 건데, 재료나 디자인을 계속 바꿔왔잖아요. 졸업작품은 워터칼라 페이퍼랑 스탠딩 컷아웃 퍼펫이었고 <사슴꽃>은 3D 프린터를 사용해서 입체적으로 갔고 <점>은 칼라 페이퍼를 쓰면서 다운 슈터를 사용했고. 스토리랑 재료, 기법을 동시에 생각한 게 아니라 ‘이 스토리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료나 기법을 쓰자’는 느낌이 강했는데, <꿈>에서는 ‘이 스토리는 이런 테크닉, 이런 재료가 잘 받쳐줄 것이다’라는 걸 미리 알고서 들어갔어요. 가장 중요한 장면이 몸이 부서지고 자라나는 거였어요. 그 장면은 ‘스티로폼에 멜팅 기법을 쓰면 스토리를 더 잘 받쳐줄 것 같아’ 하고 계획하고 만들었어요.



예지몽이나 해몽은 동양에서만 봤지만, 서양도 별점이나 유령 믿는 거 보면 사람들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비슷하고 경험도 비슷하죠.


만들기 전에 제가 오픈더포탈에 있는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한국에서 호박 꿈은 이런 뜻인데, 너네는 어때?” 같은 사물인데도 해석하는 게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꿈이 끝날 때마다 일부러 설명을 넣어준 거예요.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렇게 해석이 된다고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알려주려고요.


거기는 호박을 예쁘고 귀엽다고 여기지만, 여기는 못생긴 걸 호박이라고 하죠.

맞아요.


꿈 후보가 더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꿈은 이 빠지는 꿈이 있잖아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도 있고 별의별 꿈을 적어놓았는데, 가족하고 연관된 꿈들, 호박 꿈이 있었고 엄마가 나를 걱정해서 꾸는 벌레 죽이는 꿈 그리고 시험 보는 꿈을 저는 긍정적인 꿈이라 생각해서 세 개를 붙이고 클라이맥스로 갔을 때는 분위기에 반전을 가져올 수 있는 꿈, 악몽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을 한 거죠. 비행기 사고로 인해서 제 몸이 부서지는 꿈에 엄마의 기도가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어버이가 되셨으니 어머니를 보는 시선이 그저 자식 입장이었을 때와는 달랐을 것 같아요.

애들 볼 때마다 ‘엄마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이해가 되죠. 작품 속에 '엄마의 사랑이 감사하지만 엄마의 그 특별한 꿈과 사랑 때문에 내가 못 즐기고 있는 것도 있어’ 말하는 게 있어요. 엄마만큼 내가 내 자식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내 자식들한테 엄마가 나한테 대했던 것처럼 대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큰 사랑을 받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 가족이라는 주제가 특별하게 다가오고 계속 탐구하고 싶은 것 같아요.


흑백인 데다 전반적으로 어두워요. 게다가 마지막에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잖아요.

사이렌 소리는 아니었고 그런 비슷한 음악이었어요. 오픈더포탈 친구들이 뮤지션이에요. 사운드랑 음악 해주는 친구(Barrett Slagle)가 저랑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웬만큼 컷들이 붙었을 때 내가 이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그래프를 그려서 줬어요. 보통은 작품의 텐션이 점점점점 올라간 다음에 클라이맥스에서 치고 내려오면서 끝나는데, <꿈>에서는 맨 마지막에 살짝 뒤틀어짐이 있거든요. 클라이맥스 전까지는 내가 엄마의 사랑과 기도로 보호를 받고 이렇게 자라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것 때문에 내가 보이지 않는 감옥에 사는 느낌을 살짝 전해줬거든요. 글이나 말이 아니라 타임라인 위에 정확히 그래프를 그린 다음에 “여기서 이런 미묘한 변화가 필요해” “여기선 최대 높이 치고 올라가야 돼” 이렇게 줘요.


작품을 내놓은 2020년이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때잖아요. 세상에 닥쳐오는 거대한 위기에 대한 경보음 같은, 기막힌 타이밍이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맞아떨어졌네요. 어둡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신 게 재밌는데, 저는 호러적인 건 고려를 안 했어요. 재료비를 10만 원만 사용했으니까 백그라운드를 만들 수가 없는 거죠. 블랙 백그라운드에 퍼펫을 세워놓고 찍었어요. 스펀지를 쓴 게 참 좋았던 게 중간에 서 있어도 질감이 풍부하기 때문에 화면이 비어 보이질 않더라고요. 빛이 백그라운드로 가지 않게 하려고 조명을 앞에서 많이 안 치고 뒤에서 때렸어요. 퍼펫에 빛이 어떻게 비치는가에도 집중을 많이 했어요.



커리어에서 번아웃을 느꼈을 때 선택했던 아이템이었는데, 어머니의 기운을 받고 싶었던 걸까요.

<꿈>에 네 가지 꿈이 있잖아요. 원래는 마지막 꿈을 <무릎뼈>라는 단편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비행기 추락 장면도 있고 스케일이 커서 두 달 안에 끝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꿈>을 먼저 만들었어요.


어머니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건가요?

<무릎뼈>는 엄마의 희생이 주된 키워드예요. 엄마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무릎뼈> 기획을 하다가 <꿈>을 하게 된 거죠. 마지막 꿈은 끝난 다음에 설명이 없잖아요. 사람들한테 먼저 던져주고 “<무릎뼈>를 보시면 이 꿈을 해석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식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무릎뼈>는 제작에 들어가셨어요?

내용은 다 있는데, 제가 교직을 택하고 이제 2년 차예요. 지금은 여기에 집중을 하면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나 이론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내 걸로만 공부하기보다는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공부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더라고요. 지금은 저만의 교육 철학을 디벨롭시키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무릎뼈>를 언제 제작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시련이 닥쳐야 들어갈 수 있는 작업인가요?

<무릎뼈>는 팀 작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어요. 소도둑 아이디어도 있는데, 이건 저 혼자서 할 수 있거든요. 이야기도 어느 날 도둑이 들어서 소를 잡아가고 도둑을 잡으러 가는 게 끝이에요. 유리 노르슈테인이 멀티 레이어로 투명한 플라스틱 위에 페인트를 써서 컷아웃 퍼펫을 만들어서 작품을 하셨는데, 그러한 기법을 가져오려고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 친구들> 할 때 투명한 재질 위에 애니메이션 페이퍼를 붙이고 파스텔로 그린 다음에 테두리를 샌드페이퍼로 미니까 백그라운드랑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블렌드 되더라고요. 이걸 조금 더 디벨롭시켜서 스톱모션이지만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보이는 아주 짧은 단편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교직 2년 차니까 두 번째 졸업 상영회죠.

그래서 이번에 더 울컥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두 번째는 저도 이 환경에 익숙해지고 학생들과의 교류가 더 원만해졌어요. 프로젝트가 되게 개인적인 얘기가 많아요. 미팅할 때 서로 많이 울어요. 그런 친구들이 정말 고생해서 만든 걸 알잖아요. 되게 뭉클하죠.


다운 슈터 설치해 놓고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들의 실사 영화의 장면을 캡처를 해서 로토스코프랑 스크래치 온 필름 기법으로 저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고 있어요. 학교에서 제가 시간 날 때 가서 하니까 1분 몇 초짜리 이미지가 나왔거든요. 졸업 상영회 때 시그널 필름처럼 사용하려고 해요.


개인 작업 시간이 줄어든 반대급부로 얻은 것이 있나요?

바뀐 생활을 통해서 얻는 게 훨씬 더 큰 것 같아요. ‘내가 얘를 가르쳐도 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너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요. 가끔은 저를 너무 작게 만드는 거 있죠. 그럴 때마다 ‘나도 뭔가 해야지’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학교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하면서 여전히 관객의 반응이 걱정되시나요?

더 심해질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실험 애니메이션하면 개인의 세계관에 빠져서 개인의 목소리에 집중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한테는 실험 애니메이션이든 상업 애니메이션이든 결국에는 다 소통인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면 만들수록 ‘관객한테 어느 정도 클리어하게 전달이 될 수 있을까’ 많이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줌 인터뷰 2023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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