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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 KIM Kyeongbae

2019년 피제이의 뮤직비디오 <서울소리>와 2022년 단편 애니메이션 <아멘 어 맨>을 봤다면 빨강과 검정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을 텐데, 김경배 감독의 작업실은 여름 바다와 소녀들이 등장하는 이온 음료 광고를 떠오르게 하양과 파랑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 공감을 얻은 작품 테마는 불안과 공포로 어둡기 그지없지만, 그가 하루종일 머무는 공간은 아주 환했다. 햇살이 밝고 봄기운이 훈훈한 3월의 이른 오후, 경의선숲길공원 끝자락 홍제천 인근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휴일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 작업 중이라는 김경배 감독을 만났다. 이날도 여전히, 한 번도 충족되지 않은 완성도에 대한 자기 기준을 높이고 있었다.


AMEN A MAN (2022)


요즘은 뭐 하고 계세요.

돈을 벌어야 돼서 외주 작업을 하고 있고 단편 시나리오를 공부하면서 써보고 있어요.


어떤 부분을 공부하나요?

이전 작품을 했을 때 스토리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꼈어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단편을 만들면서 안 하면 공부를 할 동기 부여가 안 될 것 같았어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는 거예요?

일단 시나리오를 써보고 영화 만들기에 관한 서적들을 읽으면서 수정해요. 쓰고 나서 책을 읽다 보면 ‘이것만큼 하지 마라!’ 하는 걸 제가 해놔서 아이고 하면서 빼고 이런 느낌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진 거군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이걸 어떻게 전달을 해야 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내가 상상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사람들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까’. 대사 하나도, 단어 하나 선택에도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잖아요.


언제까지 끝내겠다는 계획은 있나요?

그런 건 딱히 없어요. 외주는 정해진 기간이 확실히 있어서 항상 내가 원하는 퀄리티를 못 내고 마감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속상했었는데, 단편 작업은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느낌을 듬뿍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작을 했어요. 단편도 제작 지원을 받으면 마감일이 정해져 버려서 너무 아쉽더라고요. 내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단계에서 세상에 공개를 해야 되니까 그게 슬퍼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언제까지 완성해야지라는 건 없고 러프하게 올해 안에 시나리오 작업을 끝내자. 내년에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지원 사업을 내보거나 스토리보드나 콘셉트 아트를 1년 내내 공부해서 그 이후에 제작지원을 내볼까 하고 있습니다. 좀 길게 잡고 있습니다.


구상하고 있는 작업이 어떤 건지 힌트를 주실 수 있나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멘 어 맨>도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죠. 위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죄책감이 노인이 되어서도 남아 있잖아요.

맞아요.


이 작품은 감독님이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는데 내놓은 건가요?

네.


어떤 부분이 아쉬웠어요?

작품에 제일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게 본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나 잘 알잖아요. 너무 많이 봤고. 사실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어요. 스토리가 제일 마음에 안 들어요. 소재를 잘 엮어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보시는 분들이 확 와닿게끔 스토리텔링을 못 한 것 같아요. 애니메이팅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요. 마음에 드는 연출들은 있어요. 13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보니까 막 휘몰아치는 연출들만 있는 게 아니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잔잔한 연출들이 있는데, 그런 걸 내가 과연 잘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아멘 어 맨>의 이야기가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건 의도적인 연출 같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좀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건가요?

제가 의도한 건 맞아요. 처음에는 노인이 꾸는 꿈이 나오다가 노인이 깼는데 비현실적인 재판받는 공간이고 갑자기 과거 연극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해서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지?’ 하고 사람들이 점점 궁금해하도록 이야기를 몰고 가는 것까지는 제 의도였는데,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요.


제비 의상이 아프리카 부족 의상 같은 느낌도 들고 <독수리 오 형제> 같은 SF물 슈트 같기도 했어요.

제비 의상은 그냥 계속 많이 그리고 지우고 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어요. 아이들이 하는 연극이니까 진짜 초등학생들이 만들었을 것 같은 부직포라든지 문방구에서 팔 것 같은 가면에 고무줄을 연결해서 눈구멍만 뚫어놓을까 망토는 꽃 포장지로 쓸 만한 얇은 천에 검은 색깔을 입혀서 클립으로 고정할까 이런 식의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니까 마술사 같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제비 같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다가 나온 거예요. 작품 중간에 아예 제비로 변한 것처럼 보이게끔 만들어놓은 연출들이 있는데, 그런 연출들이랑 잘 묻으려면 이게 전신에 다 붙어있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의상을 디자인했어요.


『행복한 왕자』는 처음 기획할 때부터 있었나요.

네, 단편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혼자 구상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던 중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돼서 누나한테 요즘 친구들은 연극 어떤 거 하냐고 물어봤어요.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를 하면서 연극을 하거든요. 누나가 “이번에 이거 해”라고 보여준 게 『행복한 왕자』를 베이스로 한 연극이었어요. 예수님을 왕자님으로 형상화해서 연극을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동화책에 관심이 생겨서 읽었는데, 저는 ‘왜 아무도 제비 생각은 안 해주지?’ ‘제비는 남쪽으로 가야 안 죽는데, 왕자는 왜 제비한테 자꾸 이렇게 무례한 부탁을 할까?’


물론 동화책 마지막에는 왕자와 제비를 가엽게 여긴 신이 그 둘을 보살펴준다지만,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동화책 제목 자체도 “행복한 왕자”잖아요. ‘제비는?’ ‘제비가 다 했는데…’ 그런 지점들이 불편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계속 생각해 왔던 사람이 행동하는 기준, 위선 이런 것들을 엮어서 디벨롭 시켰어요. 2020년 7월에 지원을 결정이 됐고 2020년 8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15개월 정도 한 것 같아요.


작업은 단계별로 차근차근 잘 진행된 편이었나요?

아니요. 제작 기간 안에서 몇 월까지는 스토리보드 끝내고 몇 월까지는 애니메이팅 끝내고 나름 정해놨었거든요. 그 기간이 넘어가기 전에 어쨌든 끝내야 된다라는 압박감이 있어서 일단은 어떻게든 만들어 놓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어요. 근데 애니메이팅을 하다 보니까 연출이 너무 구린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 일주일 정도 스토리보드로 돌아가서 20컷, 30컷 정도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멘 어 맨>에서 성우 섭외는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기존 애니메이션 성우하시는 분들의 톤이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원한 자연스러운 연기와는 약간 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예 영화배우 분들을 찾아보다가 어린이 성우를 키워내는 학원에서 포트폴리오를 받아서 제일 실생활을 연기하는 톤으로 하는 친구를 제비(주인공) 역할로 했고 왕자님 같은 경우에는 연극을 하는 거니까 오히려 성우톤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컨택을 했어요.


목소리 연출은 사실상 처음이지 않았어요?

네, 아주 정신이 없었어요. 녹음실을 빌려서 하는 것도 처음이다 보니까 제가 너무 부족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 친구들은 초등학생이었는데 성우 쪽 일한 경험이 많아서 제가 디렉팅을 세세하게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한 번 더 녹음을 요청을 한다든지 되게 프로페셔널하더라고요.


<아멘 어 맨>은 <서울소리> 바로 다음 작품이었죠.

<서울소리>가 2019년 11월에 끝났고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것저것 읽으면서 시나리오 준비를 해서 2020년도에 제작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SEOULSORI (2019)


제작지원을 받아도 단편에만 집중하기는 힘든데, 바로 단편을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서울소리>는 창의인재 동반사업에 참여해서 만들었던 건데, 그 이전까지는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는 생각이 안 들거든요. <서울소리>를 만들고 나니까 ‘이다음 스텝은 뭘까’ ‘단편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했어요.


<서울소리>라는 뮤직비디오는 이미지적인 연출을 많이 했고 스토리가 배제되어 있었어요. ‘서사 구조를 가진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마침 반년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까 ‘이건 기회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한 두 달 정도밖에 없었다면 생각을 못 하지 않았을까. 제가 너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스튜디오 피보테가 멘토였습니다.

팬이었어요. 광고나 뮤직비디오를 전문적으로 스타일리시하게 뽑아내는 스튜디오들이 막 생겨나서 인스타그램에서 대중의 눈에 띄던 시기였거든요. 쉘터라든지 VCR이라든지 한지원 감독님, 오서로 감독님 작업들이 막 올라오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중에서도 피보테 분들의 작업에 제가 좋아하는 다이내믹하게 장면이 바뀌고 색을 강렬하게 쓰는 뮤직비디오가 많았어요. 그런 걸 보면서 ‘멋있다’ ‘진짜 잘한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창의인재 멘토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무조건 지원해야겠다’.


첫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멘토님이 음악 하시는 분들을 여러 명 알고 계셨고 그분들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은 음악을 리스트업 해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멘티 분들이랑 한번 쭉 들어봤어요. <서울소리>라는 음악을 들었는데, 같이 듣고 있던 피보테 감독님들도 그렇고 음악을 만드신 분도 그렇고 저와 같이 했던 다른 멘티 분들도 그렇고 한국적인 음이 너무 아름답다 하며 듣고 계시는데, 저 혼자 너무 심각한 거예요. ‘난 이게 좀 과부하가 오는 느낌이다’ ‘뭔가 어둡다’ 생각했고 그런 식으로 풀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자신이 있으면 해야 된다” 하셔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경쟁자는 없었어요?

네, 다행히도. (웃음)


처음엔 어떤 이미지들이 떠올랐어요?

한국적인 음악이니까 '한국적인 색을 넣어볼까' 생각을 했었는데, 어줍지 않게 했다가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될 것 같아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강렬한 걸로 가자' 해서 빨간 색깔 반복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색깔이 5개일 뿐 전통적인 오방색은 아니고 색깔마다 상징적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하회탈 말고는 어디 거다 특정할 수 없더라고요.

처음에 저도 국가별로 나눠서 국가의 상징들을 가져와서 디자인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겁이 났어요. 창의인재도 제작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디자인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기간 내에 완성을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었고 엄청 빠르게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그걸 다 캐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색이랑 형태로 구분을 짓자’고 그렇게 디자인했어요. 동글동글한 게 있으면 각진 게 있고 네모, 세모, 별 이런 식으로. 색깔도 보라색,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 이렇게 차이를 두고 접근을 했어요.


도입부에 소년이 능행도 같은 족자 그림을 보고 있어요. 한국적인 사운드라서 갖고 온 거예요?

맞습니다. 한국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했는데, 시작에 한 스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어요.


족자를 보고 있던 소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그렇죠.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도 소년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 안으로 다양한 문화들, 정보들이 들어와서 혼란을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서울소리> 노래 자체도 EDM 같은 외국 음악이랑 콜라보가 된 거예요.


족자 그림은 능행도가 맞나요?

딱히 모델이 있는 건 아닙니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느낌 나게 만들었습니다.


가마 퍼레이드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진 않았군요.

마지막에 보면 주인공이 가마에 실린 채로 자기 방 안으로 들어왔던 여러 문화에 이끌려 가거든요. 그 복선 같은 느낌으로 넣어놨습니다.


<서울소리>를 전시에서 가마 뒤로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프레임 리본이 늘어져 있는 게 서낭에 매달린 천처럼 보였어요. 전시 기획하고 세팅하는 데도 직접 참여하셨나요?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일주일도 안 됐을 거예요. 갑자기 “우리 전시해야 돼요” 해서 급하게 했던 거라서 ‘이 작품의 분위기를 깨지 않게끔만 해보자’ 했습니다.


능행이 무덤 보러 가는 거잖아요. 가마가 상여 같은 느낌도 들고 무속신앙이 연상되었는데, 프레임을 리본처럼 늘어놓을 때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냥 있어 보이게 만들자 해서 막 했습니다.


가마 대용 서랍장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인터넷 검색해서 30~40만 원 주고 대여했어요. <서울소리>가 족자 안 그림에서 가마 문이 퉁 열리면서 시작되거든요. 그것처럼 가마 안에 영상을 넣어놓으면 멋있지 않을까... 그리고 뒤쪽 벽에 소년이 바라보고 있는 걸 넣었어요. 소년의 안경은 거울로 걸어놨어요. 소년을 보고 있으면 소년의 안경 속에서도 영상이 보여요. <서울소리> 시작할 때 소년이 가마를 들여다보잖아요.


안경을 쓴 소년의 이미지는 <서울소리> 이전부터 짧은 애니메이션 클립이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조금씩 나와요. 본인의 모습인가요?

네, 저를 투영시켰던 것 같아요.


그림에 동그라미 2개에 ‘ㄱ'자가 들어간 사인이 들어가 있었죠. 안경에다가 “ㄱ"을 쓴 건가요?

제가 대학생 때 작가명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꾸김’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그때도 우울했어서 ‘꾸겨진 김경배’라고 해서 ‘꾸김’이라고 썼었는데, 스펠링이 ggookim이었는데 G 두 개를 합쳐놓은 느낌이었어요. 근데 근데 안경 같은 느낌도 있어서 이거 좋다 해서 썼었는데 지금은 안 쓰고 있습니다.


김병개도 쓰셨잖아요.

제가 어디에 노출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옛날에는 애니메이션을 SNS에 올리는데 ‘나 김경배가 만들었어요’라고 하는 게 부끄러워서 병개라고 적었던 거예요. 조금 숨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SNS 중에서 인스타그램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유튜브를 해봐야 되나 이런 생각도 하는데, 지금은 인스타그램 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서울소리>가 정보의 홍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는데, 영향을 받는 것들은 주로 SNS에서 접하나요?

<서울소리>할 때만 해도 SNS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까 나만의 스타일이 뭔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사실 잘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잘한 작품 하나를 보면 ‘이거 멋있는데’ 하고 이쪽으로 쏠렸다가 또 귀염뽀짝하게 잘한 거 있으면 ‘이것도 멋있다’ 또 쏠렸다가, <서울소리>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온 작품이에요.


2018년도에 작업한 웹애니메이션 <틀> 얘기를 해주시겠어요?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긴 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어요. 그때 마침 그라폴리오에서 공모전을 한다길래 10편짜리 시나리오 작업까지 해놨었거든요. 2편을 올려서 심사를 받았는데, 안 돼서 더 이상 만들지 않았어요.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인생에서 정말 어두운 시절을 겪고 있을 때였거든요.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회사에 취직을 하고 싶진 않고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너무 막연한 거예요. 그 우울한 시기에 ‘우울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우울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고 하거든요. ‘운동이라도 조금 해봐’ ‘밖에 나가서 햇빛도 좀 쐐봐’ ‘네가 집에만 있으니까 우울하지’ 그런 거 말고 우울해도 괜찮다는 내용을 구상했었어요.


어떤 남자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틀 속에 갇혀있다는 내용이거든요. 남자가 결국에는 틀을 깨고 나와서 자기의 감정을 다 쏟아내요. 그걸 본 사람들은 ‘틀을 깨고 나와서 쏟아내도 괜찮네’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우울하죠?


이제 그 시절의 챕터는 덮고 넘어간 건가요. 아니면 나중에라도 다시 꺼내서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방을 돌아다니는 에피소드들이 있어요. 어떤 방은 재단사의 방이에요. 주인공한테 양복 한 벌 맞춰 주는데, 너무 타이트하게, 완전 핏하게, 정말 숨 못 쉴 정도로 제작해 주는 거죠.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슬픔’ ‘기쁨’ 이렇게 보여주는 게 아니고 재단사의 방 이야기처럼 딱 맞춰진 옷에서 느껴지는 갑갑함을 통해서 시사하는 게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구성된 방이 틀이에요. 만들어 놓은 것 중에 재밌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혹시나 제가 우울해져서 우울감을 배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면 작품으로 배출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울할 때 우울한 걸 그려내면 해소가 되는 편인가요?

친구들을 만나서 술 마시면서 ‘나 우울해' 해서 친구들이 해주는 위로는 뭔가 떠 있는 위로예요. 서운해 할 수도 없는 게 저도 누군가의 우울감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니까 온전한 위로를 해줄 수가 없거든요. 그런 식으로는 위로가 안 되는데, 제가 그걸 작품에 잘 녹여내서 공개하고 극장 같은 데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제 작품을 볼 때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낄 때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은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셨더라고요.

네, 군대 전역하고 나서


초기에는 스타일이 달라요. 그때 펜네임을 꾸김으로 쓰시기도 했지만, 쭈글쭈글한 캐릭터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같았거든요.

그 당시에 그걸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사실 좋아해요. 일러스트 작업을 하라고 그러면 그때만큼 잘 그릴 자신은 없는데, 그렇게 그리고 싶어요. 사람이 감정을 표출해 낼 때 일그러지는 모습을 좋아해요. 주름이 너무 찌그러져서 화내고 있는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미친 주름을 좋아하는데,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하자니 쉽지 않아서 못하고 있어요. 지금도 과장된 표현을 좋아해요.

주름뿐만 아니라 덩치 큰 양감이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만약에 내가 일일이 그리지 않아도 된다면, 예컨대 AI가 도와준다면, 그런 스타일로 애니메이션 작업도 해보고 싶나요?

언젠가는 진짜 해보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을 풀로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의 묘사를 그런 주름으로 미친 듯이 해보고 싶어요. 그런 갈증은 항상 있습니다.


대학은 언제 졸업하셨나요?

2017년 2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과였잖아요. 졸업작품 흔적이 없더라고요

네, 없어요.


왜 없습니까?

그 당시에는 졸업 작품 상영회 때만 틀고 유튜브나 이런 데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도 어디에도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작업을 하셨어요?

2D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었는데, 그것도 9분 정도 됐어요. 대학생이다 보니까 사랑과 이별에 꽂혀 있어서 그런 내용이었어요.


스타일은 어땠어요.

<서울소리>랑 비슷한데, 서정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색을 약하게 썼었어요. 색감의 차이는 있는데 그림체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서울소리> 이전에는 슬픔, 외로움 불안에 대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많이 공유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었고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우울한 시기를 보낼 때 사귀던 분과 이별을 했던 감정도 겹쳐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지금도 행복하면 작업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좀 우울해야 작업이 잘 되고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우울함이 동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저는 행복한 그림을 잘 못 그리거든요. 언젠가 하나 정도는 행복한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불안하다는 생각은 없으세요.

당연히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어떻게 수입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까’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면서 작가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끊임없이 하는 것 같아요.


생활리듬은 어때요?

예전에 돈독이 올라서 너무 심하게 일만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많이 안 건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남들이 보기에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작업을 하긴 하는데, 제가 다른 걸 안 해요. 그러니까 애니메이션 작업하고 자고 밖에 없어요. 오늘도 10시 반에 여기 나와서 작업을 하면 집에 가는 시간은 새벽 2시, 3시. 밖에 안 나가고 작업만 해요. 막 몰두해서 하지 않고 가끔 쉬고 과자도 까먹고 하면서 해요.


마감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컷 끝날 때까지 집중하다 보면 그 시간이 돼버리는 거예요?

마감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 마감이 없으면 저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요.


축구 좋아하시죠. 보는 게 좋아요? 직접 하는 게 좋아요?

둘 다 좋아해요. 축구를 하려면 거의 반나절 정도를 써야 되니까 지금은 못 하고 있고 작업이 조금 여유롭다 싶으면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정도 해요. 요즘 같은 경우는 살기 위해서 집까지 뛰어갑니다.


집까지 얼마나 걸려요?

직선거리로 1.5km 정도밖에 안 되는데, 제가 뛰는 걸 좋아하거든요. 너무 감질맛 나는 거예요. 불광천 따라서 디귿자로 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한 3~4km 정도 뛰어가요. 새벽 2시쯤에 컴퓨터 끄고 나가서 30분 뛰어서 집까지 가서 씻고 3시에서 3시 반쯤 누워서 딱 7시간 자면 한 10시에 일어나는 거죠. 자는 거와 애니메이션 작업을 빼면 아무것도 안 해서 안 건강해 보이는 걸 수도 있는데,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근데 토요일도 일요일도 안 쉬니까 조금 힘들긴 하죠. 하루 정도는 저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마감 때문에 못하고 있어요.


타이틀이나 로고 디자인은 학교 때 배운 건가요. 아니면 개인적인 관심으로 해보시는 거예요?

<아멘 어 맨>은 애초에 제가 생각한 명확한 디자인이 있었어요. A가 가운데 있고 AMEN이랑 MAN이 위아래로 있죠. 처음에 애들이 작은 새를 가지고 장난치다가 죽이잖아요. 동물들이 지나가다가 탁 덮이는 덫을 연상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무조건 이런 디자인으로 할 거야’ 했던 거예요. <아멘 어 맨>을 하면서 ‘로고 하나, 엔딩 크레디트 하나도 다 작품의 구성이다’ ‘쉽게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것 같아요. 그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틀>도 타이틀 디자인을 하면서 신경 썼던 것 같은데요.

잘하진 못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통제하고 싶으신 거 같네요.

맞아요.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 내려놓으면 좋을 텐데, 스스로 고통받는…


이제까지 한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나요?

없어요. 앞으로 하면서도 만족을 못할 텐데, 적어도 다음 단편은 부끄러움이 덜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간을 많이 두는 것 같아요.

 

인터뷰 2023년 3월 6일 @ 연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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