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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 GIM Boseong


1965년부터 1999년까지의 음반 커버를 담았다는 김보성 감독의 첫 작품 <Dis COVERS>(2014)에서 비틀즈의 <헬프!>(1965)부터 벡의 <오들레이>(1996)까지 기억과 검색, 지인 찬스를 동원해 25개의 음반을 찾아냈다. 줄지어 건널목을 지나는 장면처럼 문외한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드럼 비트와 전자 기타 소리에 박자와 진폭을 맞춰 전개되는 수십 가지 이미지의 대부분은 알쏭달쏭했다.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애니메이션까지 하게 되었다는 그의 정체는 음악 애호가. 장르는 안 가린다. 손 대지 못한 힙합 버전 <Dis COVERS> 대신 D’uncanny의 '칸 사이 Wannabe'(2019) 축약 버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이적의 '돌팔매'(2020)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며 성덕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애호하는 대상은 뮤지션만이 아니다. 작업에 몰두한 VCRWORKS의 아티스트들을 등지고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회의실에서 김보성 감독을 만났다.


Intro

3월 31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VCRWORKS(이하 VCR)의 첫 게시물(2013년 11월 11일)을 다시 올리셨어요.

우연히 다시 봐서 올려봤어요. 아트웍을 전담해서 맡는 일이 차츰 줄어들다 보니 반갑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났어요.


VCR 인스타그램 계정은 직접 관리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관리를 못하고 있죠. SNS는 작업한 것들 홍보를 하긴 해야 되니까 열어두고 있긴 한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Dis COVERS>에 몇 가지 앨범 커버를 썼는지 기억하시나요?

거의 한 50개. 애초에 200개 정도에서 추려나갔었던 것 같아요.


기준이 뭐였나요?

제가 좋아했었던 음악가의 앨범이거나 제가 좋아했었던 앨범 표지 그리고 MP3가 나오기 전까지 제가 되게 좋아했었던 음악가들, 밴드들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1965년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선정한 것 중에 제일 오래된 게 65년이었던 것 같아요.


끝은 냅스터가 등장한 1999년인데, 99년의 앨범은 뭐였어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RATM인가 그럴 것 같은데…

Jeff Beck의 <Who Else> 앨범이네요.


좋아하는 음악가 중에서도 비중이 좀 더 커 보이는 밴드는 핑크 플로이드였어요.

맞습니다. 오히려 더 넣고 싶었는데, 다 못 넣었어요. 제가 <Dis COVERS>를 완성을 못 했어요. 그 상태로 공개를 해버렸고 배급도 안 맡겼거든요. 그래서 민망한데, 완성본에는 더 넣으려고 했었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지금도 제일 좋아해요.


어릴 때 음악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엄청나게 많이 들었어요. 원래는 음악 덕후였어요.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를 많이 접했어요. 레스페스트였나... 라디오헤드 뮤직비디오나 미셸 공드리 작업 보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조금씩 깨작대다 고3부터 제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만화나 애니메이션보다는 음악을 좋아하다가 그림까지 온 거죠.


제일 처음에 샀던 카세트테이프나 CD 기억하세요?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초등학생 때는 H.O.T.가 인기였으니까 그런 가수들의 테이프를 사지 않았을까요. 중학교 때부터는 힙합을 좋아했다가 록으로 가고. 장르는 진짜 안 가리고 거의 다 듣는데, 처음에는 힙합을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Dis COVERS>는 록 위주죠.

힙합 버전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워너비>가 나온 건가요.

그런 느낌도 있어요. 힙합 커버도 되게 좋아하는 게 몇 개 있어서 그런 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물론 못하고 있지만.


MP3 세대이신데, 어떻게 앨범 커버를 접하게 됐나요. 모음집 같은 걸 보면서 조사하셨나요?

저는 그래도 테이프/CD에서 mp3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기에 실제 음반을 접하기 쉬웠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문화였기도 하고 요. 실제로 테이프/CD 합치면 약 1000장 이상은 갖고 있을 겁니다. 이젠 시골에 있는 부모님댁 창고에 처박혀 있지만요. 인터넷으로 가수들 디깅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버 조사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굉장한 음악가들을 오마주 하면서 음악에 되게 신경이 쓰였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거에 대해서 전혀 (웃음) 결국 음악원 분이 드럼 비트를 만들어주시고 학교 선생님이 기타를 쳐 주시고 끝입니다. 그게 답니다.


어떻게 3D 강의하시는 분이 음악을 하시게 되었죠?

서치원 교수님이 왕년에 기타 치신 걸 알고 도와달라고 했어요. 집에서 녹음하셔서 이건 어떠냐 하면서 계속 보내주셨어요.

<Dis COVERS>가 한예종 학부 졸업 작품이고 바로 전문사 진학을 하신 거예요?

원래는 졸업 후 외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게 되었어요. 취직도 계획에는 없었고요. 졸업하고 1년 정도 있다가 나갈 계획이었는데, 무산이 되고 뭐라도 적을 둬야 되니까 전문사로 진학했죠.


학교 다닐 때 VCR로 활동을 하셨잖아요.

예, 전문사 때.


Music Video

2015년 12월 <탈진>이 월간 윤종신과 한 첫 번째 뮤직비디오인가요?

그전에 <메모리>에 짤막하게 들어가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었고 그게 연이 돼서 <탈진>을 했습니다.

그때 윤종신 PD님이 생각하신 콘셉트가 애니로밖에 구현이 안 되는 거였고 제가 <Dis COVERS> 했던 것도 아시니까 부탁하셨던 것 같아요.


벡터 라인 잘라서 애니메이팅 하신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욱 TVP위주의 제작방식이어서 벡터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TVP 말고 쓸 줄 아는 툴이 많지 않았아요.


<탈진> 2015년 12월에 공개한 거잖아요. 작업 들어가고 제작하는 시기는 얼마나 됐나요?

2주 정도 잡았었던 것 같아요.


중간에 평원에 산과 커다란 사람 머리가 나오는데, <Dis COVERS>에서 존 레논의 <마인드 게임> 앨범 커버 나오는 부분이 연상되었어요.

윤종신 님이 그때까지 했었던 커버들을 합쳐서 배치만 했어요. 만드는 방식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Dis COVERS>는 철저히 Frame by Frame 방식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고요, <탈진> 애프터이펙트를 주로 사용한 모션그래픽 방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입니다.


감독님이 연출자로서 스토리보드 만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습니다. 콘셉트를 받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바로 다음 해 12월에 <그래도 크리스마스> 작업을 하셨죠.

그때 여러 사건 사고들이 너무 안타까운 것들도 너무 많았어서 일단 처음에 주요 이슈들, 기사들을 리스트업하고 우선순위를 매겨서 콘티로 만들었어요. 아트웍은 우연식 작가님께 부탁을 드리고 제작을 했죠.

뮤직비디오를 의뢰한 쪽의 요구는 뭐였나요.

이런 이런 사건들은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랬고 거기에다가 제가 뺄 거 빼고 추가할 거 추가하고 해서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2주 정도?

생각보다 콘티가 늦게 나와서 실 작업 한 2주. 그래서 미완성 부분이 있어요. 유튜브는 교체가 안 되니까 수정을 할 수 없었어요.


이 작업이 방송에 나오면서 VCR이 바빠졌다고 했어요.

(휴대폰으로 회사 실적 정리한 도표 확인) 진짜 그러네요. 2017년부터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PD

<그래도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이종훈, 이지혜 감독님이 하셨던 여러 작업들이 입소문 나면서 찾는 분들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내부 구조 조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구조 조정이라기보단 일러스트/출판/애니 동아리에서 좀 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 정체성을 갖고, 인원들을 추가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VCR은 감독님이 주축으로 다른 분들을 끌어들여서 만드신 거잖아요.

그렇게 시작한 거는 맞는데, 이제는 제가 주축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여러 분들이 있고 그 개개인이 다 강하기 때문에 저는 묻어가고 있습니다.


강한 개개인을 묶어줄 구심점 아니신가요.

그냥 묻혀서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2017년에 구자선 감독과 같이 작업하신 신치림의 <지금>은 분위기가 동화적으로 바뀌었어요.

기본적으로 콘티를 제가 짰고 공동 감독 느낌으로 구자선 작가님이랑 같이 했어요.

VCR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콘티를 짜는 쪽이고 아트 디렉터는 아트워크를 책임지나요?

작은 스튜디오의 특성상 헤드급이 동시에 여러 포지션을 할 수밖에 없기에 디렉터가 콘티/아트웍/애니메이팅까지 하게 되곤 합니다. 저희 팀의 이지혜 감독님도 보통은 아트디렉터로서 역할을 수행하시지만 디렉터를 병행하시면서 스크립트/콘티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에서는 돼지 캐릭터가 한강을 지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요.

2호선. (창 밖 왼쪽 방향에 양화대교를 가리킴) 저기


왜 동물 캐릭터를 선택하셨나요?

구자선 작가님이 제일 잘하는 게 그런 캐릭터 귀엽게 그리는 거라서 그거를 꼭 써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돼지를 되게 좋아해서 카톡 프로필도 돼지고, 돼지 관련된 걸 엄청 많이 사기도 해요.


음악이 구자선 작가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겠다 생각해서 같이 하신 건가요.

캐릭터가 나왔으면 좋겠다 였어요. 저는 캐릭터가 있는 작업을 별로 안 하거든요. 그런데, 이거는 캐릭터가 있어야 되겠다 싶어서 구자선 작가님한테 SOS를 친 거죠.


차이쉬쿤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한숨>도 그렇고 <워너비>에 보이는 이태원 산동네 풍경도 그렇고 낯익은 서울의 풍경을 많이 담으시는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할 땐 직접 취재를 하는 편이에요. <한숨>에서 묘사되는 공간은 실제 한강의 서쪽부터 (예를 들어 방화대교) 사건이 일어나는 여의도까지 인데요, 그 구간을 실제로 취재하면서 화면의 나오는 구조물의 순서를 정했습니다. 서강대교-마포대교 사이 일대는 전부 기록해서 남겨두었고요. 워너비는 서교동, 이태원 등 평소에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사진들을 활용해서 작업했고요.


PD와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 최재훈 작가가 연출한 RMNCT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하셨죠.

RM은 제가 중간에 살짝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크레디트에 있지만 기여도가 크진 않고요. 실질적으로는 저희 팀에서 이진희 감독님이 주축으로 하셨어요.


그러면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로서 NCT 작업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재훈이 형 그림을 디지털로 하되, 최대한 그 맛을 내는 거를 연구를 했었어요. 어떻게 레이어를 나눈다거나 어떤 식으로 공략을 하는가를 NCT때 제가 만들어놨어요.


TVPaint로 작업하신 거죠.

네. 펜을 찾고 어떤 텍스처를 루프로 만들어서 애니메이팅 시키면서 불필요한 노동은 좀 빼고. 근데 그게 잘 안 느껴지게 그 사이를 추가하는 방식이라 좀 묘합니다.


터치가 섬세하게 들어가니까 작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툴로 해결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노동은 많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음악을 깔고 작업을 하셨어요?

아니요. 연출하고 그림 받아서 그냥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준 촬영분 비슷한 영상을 그쪽에서 편집했죠.


Sigh of Sighs

2015년에 『터미널』 작업을 하셨을 때 주로 소설책에서 문장을 뽑아서 이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셨는데, 평소에도 흑백 아니면 모노톤 작업들 많이 하시고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취향인 것 같아요. 실제로 성격이나 행동은 되게 실없고 경박한 스타일이지만..

그런 어두운 느낌들을 보면 좀 힐링이 됩니다.


어두운 걸 보면 힐링이 된다고요.

되게 밝고 희망찬 걸 보면 오히려 불쾌해지는 스타일이에요.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하는 느낌인가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가끔은 저 또한 큰 위안을 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숨 Sigh of Sighs>이 전문사 졸업 작품인 거죠. 입학과 졸업 사이가 좀 긴 것 같아요.

1학년을 다니고 1학년 때는 작업을 안 했어요. 회사 일하느라 2년을 휴학하고 이제 안 하면 잘리니까 가서 바로 <한숨>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기획했죠?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면서 졸작을 고민하던 와중이었던 것 같아요. 퇴근을 하면서 컴컴한 건물 계단을 내려가는 중에 잠깐 세월호 사건 생각이 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마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집단적 증후군에 시달리는 시기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근데 잠깐 스치는 걸 넘어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두웠고 건물 전체에 저 혼자여서 눈치 보지 않고 한참 그렇게 있었습니다. 나오면서 정말 이상했어요. 내 일도 아닌 일에 이렇게 분하고 눈물이 나는 게. 내가 왜 눈물이 나나. 왜 이렇게 화가 나나... 를 묻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식의 민감하고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를 하는 것에 부담이 컸고요, 그런 주제를 다루는 작업들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었었는데, 이거 말고는 표현하고 싶은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만들게 됐습니다. 다만 뭔가를 막 선동하고 죄책감을 유발하기보다는 그냥 그 당시 제가 느끼고 있었던 사회의 답답한 공기를 시각적으로 기록하자는 취지를 갖고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니메이션 연결보다는 다큐멘터리 같은 장치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연출도 보면 그냥 툭툭 이렇게 그림 이어 놓은 것처럼 가거든요. 작업 기간은 한 두 달 정도였어요.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서 완성한 게 두 달이라는 거죠.

스토리를 쓰기 이전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몇 개 그려놓긴 했었는데, 이야기적으로 엮고 작화를 하고 메인-포스트 프로덕션을 진행한 건 2달 동안 작업했습니다.


한강에 고래가 떠밀려온 것에서 시작이 되는데, 이야기라기보다는 이미지의 연쇄라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을 붙이고 싶진 않으신가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리뷰를 봤는데, 제가 생각해도 그렇거든요. 너무 노골적으로 말을 하고 다 대치가 되게끔 해놔서 두 번 얘기하기는 민망하죠.


국회의사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광화문이 어떤 의미인지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봐서 매혹됐던 거 보면,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1982, 감독: 앨런 파커), <세 가지 색 블루>(1993,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에요. 아직도 그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좋아요. 아직도 가끔 머릿속에서 그 장면들이 굴러 다닙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매료되게 만들었던 것들이 저에게 깊은 자국을 남기고, 취향을 형성하고, 이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숨> 만들 때도 이해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화면의 명과 암, 움직임, 음악 등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전달되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도리 없이 하고 났더니 해소가 되셨나요.

이런 무거운 소재를 가급적이면 안 다루는 게 낫겠다... 정도는 배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단편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밌었고. <Dis COVERS>는 배급을 안 맡겼었잖아요. 영화제나 이런 것도 궁금했었거든요.


개인 작업에 대한 욕망은 크지 않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제가 느끼는 애니메이션의 큰 즐거움이 혼자보다는 두 세명이라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욕망이 크지 않다기보다는 애니메이션은 팀플레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고요, 작은 부분으로 참여하더라도 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조직에 들어가고 싶지 않고 개인적인 명성도 관심 없어 그렇지만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죠.

저는 주변 사람들의 작업을 보는 걸 엄청 좋아해요. 지혜나 이런 사람들, 종훈이나 종환이도 마찬가지고… 약 16년간 그림 쪽에 있으면서 봐왔던 많은 재능이 넘치던 사람들이 생업으로 떠났어요. 다시 창작의 영역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죠. (특히 대중과의 교집합이 적을 경우에...)


VCR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그런 친구들이 계속 뭔가를 해볼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환영하는 작업이 아닐지라도 저희가 해보고 싶은 영상이나 책들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Rhythmens> 같은 경우, 전은진 정말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서, 은진 작가의 매력이 드러나는 애니메이션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2020년 1월, 저희가 스튜디오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생겼을 때 <Rhythmens> 제작을 들어갔습니다. 전은진 작가의 개성과 이지혜 감독의 노하우, 정말 너무 잘하는 VCR 애니메이터들이 결합했을 때 멋진 작업이 나오겠다고 예상했고, 그리고 실제로 그게 구현이 되었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Wannabe

<워너비>는 48시간 동안 애니메이션 만들기라는 설명이 있어요.

애니과에 음악 만들고 랩 하고 계속 앨범을 내는 친구가 있었어요. 음악을 듣다가 그 노래가 되게 좋은 거예요. 밤에 전화해서 “야 이거 1분 정도로 줄여서 나한테 보내줘” 해서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서울역 미디어캔버스에서 상영할 일이 있어서 이걸로 만들어야지 해서 요이땅 하고 토, 일 만들었습니다.


왜 1분이에요.

너무 길면 힘드니까.


음악을 잘라달라고 했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생각이었군요.

제가 그 친구한테 할 수 있는 선물이고요. 지금도 그렇게 하나 받아놓은 게 있어요. 공중도둑의 <하얀 방> 듣고 ‘이 사람은 진짜 짱이야. 한국에 이런 분이 있다니!’ 그래서 연락처를 알아내서 이 곡 뮤비 만들고 싶다 허락해 달라 이렇게 메일 보냈어요.


공중도둑은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평소에 음악을 이것저것 듣나요?

이제 저는 새로운 음악을 디깅하는 열정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근데 와이프가 아직도 덕후예요. 차에서 틀어줬는데, 제가 깜짝 놀란 거예요. 이게 말이 돼? 이런 사람이 있어? 한국에 많이 없는 장르이기도 하고 한국에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반가웠죠.


음악 취향의 레이더가 새로운 것을 향해 있나요?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김현식, 신중현, 김정미 등 예전 노래도 정말 많이 듣고 좋아합니다. 다만 공중도둑은 그냥 되게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갈망을 긁어 주는 느낌이랄까. 뭔가... 김밥만 먹다 보면 떡볶이도 먹고 싶잖아요?


<Rhythmens>의 음악을 공중도둑이 맡았잖아요.

제가 작년 <Rhythmens> 들어가기 전에 공중도둑에 완전 꽂힌 거예요. 어떤 후회가 있었냐면 제가 신해철을 되게 좋아했고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그 뒤로는 내가 진짜 좋으면 미루지 말아야겠다 하는 게 있었어요. 공중도둑을 듣고 너무 좋아서 찾아봤는데 뮤비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너무 답답해서 ‘내가 하나 만들어야지’, “내가 만들게 해 달라” 그렇게 해서 허락을 받은 거예요. 근데 제가 일하느라 작업을 못하고 있어요. <Rhythmens> 음악을 뭘로 하지 하다가 공중도둑 생각이 나서 의뢰했고 지금까지 모든 편의 음악을 해줬어요.


<Rhythmens>를 했으니 <하얀 방> 작업은 언제 나올지 기약할 수 없게 되는 건가요?

사실 한동안 퇴근 후에 작업을 조금씩 하거나 콘셉트도 막 그려놓곤 했었어요.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들을 먼저 잡아나가는 편이라서 비공계 계정에 계속 쌓아놓는데, 어느 순간 여유가 없어지면서 그 흐름이 끊겨버렸네요... 이런저런것들이 마무리되면 다시 시작해봐야죠.

개발 중인 스타일은 <한숨>에서 봤던 스타일이라고 유사하네요.

평소에 편하게 그림 그릴 때는 저렇게 그리는 편입니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좀 더 역동적인 것들도 들어가는 방향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워너비>는 이틀 만에 만드신 거잖아요. 리서치나 스타일 개발 안 하고 만드신 거예요. 아니면 제작 전에 그 과정이 있었나요.

그거는 제가 좋아하는 타이포 애니메이션을 활용할 수 있었고 예전에 작업실 옥상에서 찍어놨던 풍경에 택수(D’uncanny) 불러서 핸드폰으로 쑥 찍은 다음에 로토스코핑 한 거라 그런 과정이 필요 없었어요.


Stoning

<워너비>와 <Rhythmens> 사이에 이적의 <돌팔매>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셨잖아요. 감독하고 PD를 다 하셨어요.

그런 작업은 커뮤니케이션도 애니메이팅도 감독도 제가 하는 게 편해서 한 거죠.


감독이나 피디가 뮤지션이랑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직접

제가 작업할 때는 제가 하는 게 편합니다.


여러 가지 의뢰가 들어올 거 아니에요. 욕심나는 프로젝트는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시나요?

오히려 반대를 무릅쓰고 할 때가 많죠. 팀 내부에서는 하지 말자는 것도 제가 커리어 상 해야 될 것 같다 받기도 했어요. 이적은 제가 워낙 팬이니까 당연히 내가 해야지 이렇게 됐고 팀에서 모션적인 애니메이팅은 제가 주로 하니까 자연스럽게 분배가 되는 것 같아요.


모션 느낌은 뒷부분에 나오고 처음에는 전통적인 캐릭터 애니메이션 같거든요.

패닉 2집이 이우일 작가 아트워크인데, 옛날에 그런 정서가 있잖아요. 90년대 그것에 열광했던 세대들이 있잖아요.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그렇게 괴짜 같은 느낌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어떤 걸 좋아할까 하다가 이우일의 요즘 버전 아트 디렉터를 구한 거예요. 그 옛날 패닉을 요즘 버전으로 바꿔보고 싶었어요.


<돌팔매>는 패닉 결성 20주년을 기념하는 곡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패닉 때 멤버 김진표 님이 피처링을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뮤비에서도 예전 패닉 팬이었던 분들이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패닉의 뮤비를 봤을 때 뭔가 예전 느낌이 들면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패닉 2집이 이우일 작가 아트워크인데, 90년대 중반에 있었던 뭔가 괴짜 같은 정서와 그런 것들에 열광했던 친구들이 있잖아요 (반에서 한 2-3명쯤 있는). 그렇다면 그런 친구들이 만약 2020년에 살고 있다면 어떤 걸 좋아할까 고민하면서 아트 디렉터를 구했어요. 아트 디렉터인 미오 님이 개성 있는 캐릭터에 강하시다 보니 초반에 캐릭터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세기말에는 그로테스크한 서커스였는데, 2020년에는 해골과 유령이 동행하는 판타지예요.

미오 님이 요즘의 감수성을 정말 잘 표현해주시는 분이니까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면서 그분한테 완전 맡긴 거죠.


Outro

가장 최근에 한 월간 윤종신 작업이 김종환 감독님이 연출한 <슬로 스타터>인데, PD를 하셨어요. 엔딩 크레디트에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나옵니다. 2015년부터 7년 동안 하시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렇게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초기엔 저희가 완전 초짜 스튜디오다 보니 굉장히 죄송한 상황, 불안 불안한 순간들이 많이 연출됐었는데 이젠 그래도 전보다 쬐..끔은 안정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업 기간도 별로 안 변했나요.

이제는 작업 기간이 확보가 안 되면 안 받죠. 저희가 되게 급하게 만들었는데, 뷰 수가 많이 나와버려서 너무 창피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가급적이면 예산은 아니더라도 기간은 최대한 확보를 해야 작업을 합니다.


<슬로 스타터>는 얼마나 확보했나요?

그래도 두 달 정도는 한 것 같은데요.


두 달은 기획부터인가요?

네. 세 달이면 베스트고 두 달 정도면 그래도 할 만한 것 같습니다.


김종환 감독님은 VCR의 역동 담당이신가요.

김종환 감독님이 오시면서 정말 저희 팀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죠.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인 애니메이팅이 저희 팀의 주력이었는데 파워풀한 애니메이팅과 자유로운 카메라 워킹이 새로 장착되었습니다.


크레디트에 VCR만이 아니라 스태프를 올린 건 이쪽에서 요구한 것인가요?

<지금>인가 할 때 요청을 한번 드렸던 것 같고요.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넣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Rhythmens>가 스튜디오의 오리지널인 거잖아요.

맞습니다. 거의 처음으로 하는 오리지널.


초기 에피소드의 연출과 PD를 맡으셨죠.

<Rhythmens>는 전은진 작가님이랑 이진희 감독님, 이지혜 감독님, 김지환 작감님이 주축으로 만드시는 프로젝트고 저는 1이랑 5편 연출 정도만 한 거예요. 제가 기여를 한 게 있다면 전은진 작가님한테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서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한 것입니다.


5편까지 나왔는데, 다음 계획도 있나요.

SNS로 은진 작가님이 계속 일러스트 공개하시면서 일단은 유지 정도인 것 같아요. 다음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고 싶어요.


스튜디오의 두 번째 오리지널 <건축가 A> 작업 중이시죠?

지금 한창 하고 있어요. 5월 말까지 <건축가 A>를 완성을 하게끔 하는 게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무인 것 같고요. 이종훈 감독님이 오랜만에 작업을 하는 거잖아요. 나오는 걸 볼수록 더 좋아지겠다는 느낌이 있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개인적인 작업이 나온다면 <하얀 방>일까요?

네. 애니메이션 일을 지속하려면 맨날 하는 작업과는 다르게 좀 환기를 시키면서도 다른 쪽 뇌근육을 단련해야 할 것 같은데, 가끔씩 이런 필름을 만드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멀지 않은 시기에 착수해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창작하는 근력 말고 신체적인 근력 단련은 안 하십니까?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살 빼야 돼서 걷기랑 뛰기, 등산하고 있습니다. 신속한 체중감량을 기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 2022년 4월 1일 @서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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