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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KIM Hyemi

Eyes and Horns 원화 전시@Animafest Zagreb

김혜미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 <무쇠소년>(2004), <사적인 바다>(2007), <배다리전>(2014), <찰칵찰칵>(2017)을 만들고 2021년 6월 장편 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을 개봉했다. 필모그래피가 출렁이는 파도 같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이성강 감독, 선후배, 동기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어울렸고 출산 후 육아를 병행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스톱모션에서 3D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까지,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했던 이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앞 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세월이 어느새 20년에 가까워졌다.


지체 없이 나무의 집


<나무의 집>은 어떤 내용이에요?

울주산악영화제 제작지원작이라 테마는 자연 친화적인 걸로 정해져 있었어요. 여성의 육아랑 가정에 대한 이야기예요. 나무였던 여자가 산을 찾아온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되고 도시로 내려와서 같이 집을 꾸리는데, 그 여자의 나무 몸을 이용해서 가구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아이 장난감도 만들어요. 여자는 계속 자기를 재생시키고 남자는 계속 그걸 갈고 만들어서 필요한 물건으로 집안을 채우게 돼요. 햇빛이랑 물이 있으면 재생됐는데, 아이가 다 크고 나서는 여자가 더 이상 재생이 안 되는 거예요.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끼고 산으로 돌아가서 잔재를 묻었더니 다시 나무 자라난다는 내용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나네요.

여자 인간 버전이네요. 거기에 가족을 만들어가는 의미를 넣고 싶었어요. <클라이밍>은 출산과 임신에 대한 얘기였다면, 그다음 육아나 생활에 대한 부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업을 연결해서 하고 싶어서 제작지원에 급하게 냈어요. 계약은 10월, 11월 그쯤 했던 것 같은데. 공고가 2020년 7, 8월쯤에 났던 것 같아요.


한두 달 정도 기획을 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산속에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걸 생각했었어요. 산에서 조난을 당하거나 급박한 상황으로 바뀌어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걸 생각을 했었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나서 동네에 있는 정발산을 많이 올라갔어요. 밤에도 올라가 보고 그러다가 생각이 났어요.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스토리보드 하고 캐릭터 액팅 몇 컷이 진행된 상태예요. 아직 많이는 못 했어요. 내년 1월 정도까지 맞춰가면 될 것 같은데, 일이 겹쳐서 걱정이 되긴 해요. <클라이밍> 끝나고 마음이 싱숭생숭 이상했어요. 그때 한병아 감독님이 얘기를 하셔서 공동작업도 하게 됐어요. 제가 장편을 너무 오래 해서 자꾸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붕 뜨고 그랬어요. 작업을 하면서 중심을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오랜만에 2D로 하려니까 그림 그리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 궁지에 몰려가고 있어요. (웃음)


대책 없이 Climbing


<클라이밍> 작업은 언제부터 들어가셨어요?

전에 시놉이나 짧게 단편으로 썼던 게 있었어요. 트리먼트를 써서 2017년도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에 응모했어요. 2017년도에 기획서 내고 2020년 여름까지 계속 3년 반 정도 했어요.


단편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임신을 한 나랑 임신을 안 한 내가 만난다는 콘셉트였어요. 클라이밍이라는 소재를 정하고 더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과 주제를 고민해서 장편 트리트먼트를 쓰게 됐어요.


클라이밍은 어떻게 떠올렸나요?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 제약이 크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암장에 다니기도 하고 김자인 선수가 세계대회 우승을 해서 이슈가 많이 되던 참이었어요. 운동 자체도 멋있고 혼자 하는 것도 캐릭터에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체중에도 민감해야 되고 시합 방식도 라이벌과 경쟁하는 다른 경기랑 달랐어요. <클라이밍> 내에서 표현한 ‘리드’ 경기는 제한된 시간 안에 올라 완등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 시합 당일에 가서 홀드를 보면서 자기가 길을 만들어서 선택을 해서 올라가는 방식이에요. 실패해서 떨어져도 다시 올라갈 수 있어요. 인생을 살아가는 거랑 상징적으로 잘 어울릴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클라이밍 (2020)
클라이밍 (2020)

실제로 클라이밍도 해 보셨어요?

암장에 가서 스태프들이랑 같이 단체 레슨도 한번 받아봤어요. 어렵더라고요. 체력도 너무 안 좋았고.


<클라이밍>은 처음부터 3D였어요?

3D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정지신 감독님이 3D기술 쪽으로 슈퍼바이저 역할을 해주셨어요. 그분이 계셨으니까 제가 3D로 도전을 해볼 수 있었어요.


아카데미 장편연구과정은 총 2년으로 되어있는데, 일단 1년 동안 시나리오 기획 개발을 하거든요. 스토리보드나 캐릭터 이미지 작업 디벨롭을 1년 하고 남은 1년 동안 제작을 해요. 학교에 계신 PD분이 인력이라든가 스케줄 같은 전체적인 관리를 했었는데, 제가 아카데미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 PD분이 계약이 끝나게 됐어요. 학교 측에서는 PD를 구해서 진행하라고 했는데, 그때 아카데미가 부산으로 이전하는 문제도 있고 변화가 많아서, 저와 정지신 감독님이 함께 임의로 팀을 꾸리게 됐어요. 아카데미에서는 3D로 하는 걸 반대해서 힘들었어요.


왜 반대했나요?

제가 3D 경험이 없다는 부분이 제일 큰 요인이었고 아카데미 예산과 시간으로 힘들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예요. 그런데 저는 하던 대로 하기보다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 개발할 때부터 아카데미에서 걱정과 우려가 계속되다 보니까 제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고 초반에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어요. <화산고래>(2014) 했던 박혜미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작품 생각하고 열심히 그냥 한번 해보라고 해서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제작했나요?

처음 1년 정도는 목원대학교랑 진행을 했어요. 학생들이 졸업작품 대체로 애니메이팅을 했어요. 3D감독님은 주로 모델링이랑 전체적인 구조를 만들어주셨고. 레이아웃이라든지 앵글이나 액팅이랑 영상에 관련된 것들은 학생들하고 같이 제가 진행 했어요.


시나리오나 스토리보드는 제작 들어간 이후에는 안 바뀌었나요?

스토리보드를 박혜미 감독이 해줬거든요. 하고 크게 한 번 수정하긴 했는데, 시나리오에서 크게 바뀐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캐릭터 디자인은

제가 그렸던 캐릭터 디자인을 3D감독님이 거의 똑같이 만들어 주셔서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실제 배우라든지 캐릭터들의 모델이 있나요?.

없어요. 기존 3D 마야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픽사, 디즈니 같은 거랑 차별성을 둬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클라이밍을 하기 때문에 마르고 팔다리가 길어야 한다. 눈으로서 예민함과 내적인 심리를 표현할 수 있게끔 눈이 커야 된다.' 캐릭터 디자인도 작품 속 내용이랑 주제랑 다 연결이 되는데, 임신에 대해 제가 갖고 있었던 두려움이나 선입견 같은 게 많이 반영이 되어 있어요.

‘나’는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대회에 집중하고 싶은데, 남자 친구는 임신을 했다고 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책임감 있고 보편적으로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주관적인 기준에서 최선을 다한 해결책으로서 얘기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예비 시어머니도 사실 그런 사람이 어딨겠습니까(웃음)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그럴 것 같은 것을 극단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시어머니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했나요.

원래는 간호사나 산부인과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는데, 퇴직하고 시골로 내려와서 양평의 주택 같은 데서 소일거리로 동네 동물들 출산 도와주는 인물을 생각했었어요. 남편은 좀 빨리 돌아가시고 외아들 우인이를 혼자 키웠다. 아들에게 집착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었는데, 그 부분이 올드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말인가요?

그런 부분이라든가 아들에게 집착하는 모습이라든가. 근데 저는 임신의 불안감을 드러냈을 때 감정의 폭이 더 커질 수 있는 방향으로 캐릭터들을 선택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일반 영화로 찍었다면 훨씬 톤이 더 현실적으로 내려왔겠죠.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보니까 미묘한 감정을 다 표현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랑 시작점이 다르다고 해야 되나. 과장되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과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좀 더 보일 수 있는 쪽으로 선택하자고 생각했어요


등장인물이 나와 나. 남자 친구와 그 어머니. 암장의 두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명확한 선택과 집중인가요?

인물이 많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반복이 돼서 3D로 할 수 있었어요. 제가 꼭 3D로 하겠다고 아카데미에 피티를 하면서 공간이 몇 퍼센트 반복이 되고 캐릭터가 이 인물로 몇 퍼센트가 나온다고 수치로 설득했어요.


작업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뭐였나요?

3D 경험이 없다는 부분이 제 최고의 약점이었던 건 맞았어요. 아무리 물어보고 설명을 듣고 해도 결과물을 못 보니까 굉장히 불안했어요. 제작 과정의 불확실함 때문에 많이 두려웠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도와주시는 분도 생기고 꾸역꾸역 진행을 하게 됐죠. 결국 제일 힘든 건 ‘내가 연출 방향에 잘 맞게 가고 있는가' 본인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는 거였어요. 기술력은 없지만 연출은 흔들리면 안 되겠다. 끝까지 생각한 대로 밀고 나가려고 매 컷 선택을 할 때 ‘주제에 맞나’, ‘이 신이 불안감과 두려움에 대한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가’ 고민했어요. 앵글도 2D랑 다르게 마야니까 바꿀 수가 있잖아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계속해서 바꿨었거든요.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제일 나은 걸 선택해 나가는 식이었어요.


기획은 집에서 하시고 제작은 목원대에서 하셨나요.

1년 가까이 목원대가 있는 대전과 일산을 왔다 갔다 했어요. 여름방학에는 방을 얻어서 지내기도 하고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온라인으로 확인을 하면서 1차 애니메이션이 6~70% 나왔어요. 학생들은 계약이 끝나고 졸업을 했고요. 그런데 문제가 60% 정도 완성된 걸 받아서 해줄 회사가 없더라고요. 회사 입장에서는 작업 방식이 다르고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중간에 받는 걸 되게 부담스러워했어요. 액팅을 하기 전에 뼈를 박는 리깅도 시스템이 다른 거예요. 업체를 찾아보는 것도 어려워서 중간에 몇 개월 쉬었죠. 그때 엄청 괴로웠어요. 남은 예산과 기한 내에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아는 분 소개로 V.DIVE라는 좋은 팀을 만났어요. 기술적으로 어려워서 못했던 클라이밍 신을 해주셨죠. 로프도 일일이 키애니처럼 잡아주셨어요. 제가 실사로 찍어서 이런 식으로 구현해 달라하면 안 된다 된다 얘기를 하고 액팅이 안 보이는 클로즈업으로 해서 약점을 감추는 식으로 조율을 하고 했어요. 그 팀이랑 그렇게 한 4개월, 5개월 정도 남은 컷과 리테이크 진행을 했어요. 감정 표현이 드러날 수 있도록 6~70% 정도의 얼굴 표정을 리테이크를 했어요. 제가 컷마다 글 콘티를 써서 드렸었어요. 나머지 클라이밍 신과 군중신 진행했고.


그러고 나서 이제 렌더링이 안 되는 거예요. 3D감독님 하고 학교 컴퓨터로 여름 내도록 했는데도 쓸 수 있는 컷이 거의 없었어요. 컵이 어떤 컷은 있었다 없었다 막 튀고 이상한 오류가 너무 많은 거예요. 렌더링도 전체적으로 세팅을 봐주고 조명도 쳐야 되는데, 그런 분들이 없어서 또 무기한 연기가 되면서 늘어졌어요.

결국은 어떻게 렌더링을 하셨나요?

스튜디오 세븐슬로스에 사정 얘기를 해서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컷 별로 꼭 필요한 것만 얘기드렸고, 기본 조명으로 주광 정도만 정해서 갔어요. 5개월 정도 렌더링을 했어요. 렌더팜 쓰는 비용이 비싸 더라고요. 또 렌터팜을 쓰려면 누군가 책임지고 돌려야 되는데 그럴 사람이 없었어요. 세븐슬로스 내에는 전문 팀원들이 있기 때문에 거기 컴퓨터로 랜더링을 할 수 있었어요. 부분적으로는 온라인으로 걸어주는 사이트를 이용했어요. 세븐슬로스에서 마지막 리테이크 컷들까지 다 렌더링해 주셨고 기본 합성을 해서 보내주시면, 제가 받아서 추가 합성을 하고 최종 편집을 했어요. 세븐 슬로스는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집 컴퓨터로 장편 편집을 할 수 있나요?

여건에 맞춰서 하는 거였죠. 그때는 만들어 놓은 걸 출력해서 영상화시키는 것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어요. 나오기만 해도 감사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세븐슬로스에서 컷 별로 배경에 캐릭터 올린 기본 합성 아웃풋을 주면 제가 거기다가 좀 더 붙였어요. 자잘한 오류들도 제법 있어서 이후 애프터 이펙트에서 가리거나 연기 합성을 더하는 자잘한 합성들과 전체 편집도 제가 했고요.


2017년부터 2020년이면 아이는 몇 살이었나요?

2학년 겨울방학 시작할 때 아카데미에서 합격했다 얘기를 듣고 나서 3학년 4학년 5학년 때까지 했으니까. 지금 6학년이 됐죠. 박지연 감독r님이 공황장애 얘기하시길래 많이 힘들었나 보다 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까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애가 있다 보니까 무조건 밥 차리고 현실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나오게 된 거지 진짜 의욕도 없고 아무것도 하기도 싫고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지방으로 내려가서 작업할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학생들은 1월부터 10월, 11월 정도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방학 기간 동안은 제가 대전에 방을 잡고 내려가 있고 그 외에는 기차 타고 주말에 내려갔었죠. 초반에는 저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을 때라, 학생들의 도움이 정말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더 학생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가르침을 받고 했지요. (웃음)


육아를 하면서 작업까지 하신 거네요

그러니까 정신이가 하나도 없었죠. 맨날 (웃음) 그냥 닥치는 대로 했던 것 같아요. 뭐 하다가 카톡이 오면 파일 열어서 확인해 보고 그런 식으로 해서 카톡도 나중에 너무 보기 싫더라고요.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주저 없이 서울행


부산대에서 그림을 안 그리는 미술학과를 다녔다고 하셨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과인가요?

도자공예과였어요. 입시미술로는 구성을 했었어요. 저희 과는 찻잔 같은 거를 똑같이 정교하게 만드는 전통 물레 쪽이었어요. 저는 좀 더 조형적이거나 다양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관심도 없고 어려웠어요. 뮤직비디오를 좋아해서 영화 동호회도 들고 음악 감상 동아리도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 보면 잘 이해 안 돼서 맨날 자는 스타일이었죠.

예술 영화를 봐서 그런 건가요?

예술 영화도 당연히 자고 일반 영화도 재밌다 싶은 보는데, 웬만하면 잤어요. 근데 예술적인 분위기는 좋아했었어요. 영화 동호회는 선배가 하는 학교 앞 카페였는데, 주말마다 영화 보고 끝나면 주로 술을 먹었거든요. 그런 분위기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영화를 봤었어요?

거의 자서 (웃음) 예술 영화를 봤었죠. 일본 영화 그러면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 보고.


타르코프스키 이런 건 안 봤나요.

봤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로 자고. 저는 공포 영화를 좋아했었거든요. 심리 스릴러나 유혈이 낭자하는 스타일 좋아했어요. 부산영화제에서 <밝은 미래>(2003), <큐어>(1997)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봤어요. 묘한 느낌으로 오더라고요. 공포스러운 장면은 별로 없는데, 심리적인 공포를 건드리는 느낌이 너무 새롭고 좋아서 그때부터 그런 류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무슨 영화 수업에서 <하나와 앨리스>(2004)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의단편 중에 꽁꽁 묶는 거(<Undo>(1994))를 보여줬는데, 그것도 되게 멋있는 거예요. 그때 한참 유행했던 말이 컬트였어요. 저는 메이저보다는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영화 동호회 선배가 그때 한예종 시험을 준비를 했었어요. 또 영화아카데미라는 데가 있는데, 너도 관심 있으면 둘 중에 가라 해서 전형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저는 학비 부담이 없는 아카데미에 지원을 했어요. 영화는 모르겠고 미대 나왔으니까 애니메이션 쪽은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합격됐죠.


지금은 영화 아카데미가 부산으로 갔지만 그때는 부산에서 서울로 가야 했잖아요.

서울로 가니까 너무 좋았죠. 서울로 오고 싶었거든요. 그때 미셀 공드리가 스톱모션이라든지 여러 가지 기법 활용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런 게 좋아서 애니메이션 쪽으로 관심이 있었어요. 막연하게 음악에 맞춰진 영상이 재미있었어요.

아카데미를 2002년에 올라가신 거예요? 서울에서 월드컵 난리 나고

축제였죠. 갔더니 너무 좋은 거예요. 술 먹고 놀고 그런 거 좋아하니까. 그때는 가게에서 모르는 사람들도 전부 술을 다 같이 마시고. 지하도를 건너면 다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지나가고 완전 장난 아니었거든요. 과실에서 행정 업무 봐주시는 분들도 치킨도 사주시고 즐겁게 2년을 잘 보냈어요. 졸업하고 진로 같은 게 걱정이 되잖아요. 이성강 감독님이 <천년여우 여우비>(2007) 작업을 준비하고 계셔서 스태프로 지원을 했어요.


그때 이성강 감독님이 아카데미에서 강의하셨나요?

2학년 때 교수님으로 오셨었어요. 이성강 감독님이 영화 <살결>(2005) 할 때도 스태프 하고 싶다고 해서 제작팀으로 일 했었고 아카데미 졸업하고 나서 <별별 이야기>(2005) 스태프도 했어요. <여우비>는 한 10개월 일하고 프로젝트가 끝났어요. 그리고 저는 서른 정도 돼서 결혼했죠.


계산 없이 무쇠소년

<무쇠소년>(2004)이 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거예요?

네. 1학년 때는 드로잉으로 실습작품 했었고 두 번째는 셀에다가 그려서 오일 파스텔로 채색하고 필름 카메라로 찍었어요. <무쇠소년>도 35mm로 스탠드 카메라로 찍었어요. 반 오브제처럼 유리판 띄워놓고 컷아웃으로 움직이고 뒤에는 종이 그림 배경 움직이고 촬영하고. 조그마한 방 안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고독하게 찍었는데 묘한 추억으로 남았어요.

<무쇠소년>은 어떤 생명체가 자기 갑옷을 벗는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위험이 있다고 항상 조심하라고 어른들이 말하던 데를 가서 진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만들고 싶었어요. 물리적으로 녹이 슬고 몸을 탈피하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찾다가 아연판으로 하게 됐어요. 원래는 영상이 그렇게 어둡진 않은데, 필름을 텔레시네 뜨고 어두워져서 잘 안 보이더라고요.

제가 본 버전이 크레디트가 잘려 있는데, 13분 가까이 되거든요. 필름 시대의 작품 치고는 긴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게 얼만큼인지 생각을 하고 해야 되는데, 뭐가 있으면 제가 단도리 없이 그냥 해버리는 거예요. 제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안 찍어 봤거든요. 필름도 처음 만져보는데, 다 찍으면 청량리에 있는 35mm 현상소에 가서 러시 확인하고 나중에 색보정도 봐야 된다고 하고. 디지털로 하면 편했을 텐데, 별 대책 없이 ‘아 필름으로 해보고 싶다’ 했던 것 같아요.


제약 없이 사적인 바다

<사적인 바다>는 <여우비> 끝나고 작업하신 거예요?

<여우비> 졸업하고 일이 없으면 불안하니까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에 냈어요. 감정을 표현하는데, 왜 제약이 있어야 되나. 주인공이 흘린 눈물이 사적인 바다가 되면 어떨까. 도시가 잠기니까 누전이 되고 전기를 고치는 전기공과의 만남을 생각을 해서 글을 썼어요.


연출 의도가 감정을 표현하자인데, 연애할 때 감정 표현을 잘 못하셨나요?

연애 분위기가 나긴 나는데, 연애 코드는 안 나와요.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제 표현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표현을 작품으로서 즉각적으로 하는데, 저는 계속 어려움을 느꼈어요. '이야기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정을 드러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적인 바다>는 드로잉이잖아요. 종이에다 그리셨어요?

네. 작화지 스캔받는데 미쳐버리겠는 거예요. 채색은 컴퓨터로 했어요. 포토숍에서 페인트 툴로 붓고 저장하고.


포기 없이 배다리뎐

3년에 한 편씩 하다가 건너뛰어서 7년 후에 <배다리뎐>을 내셨어요.

결혼하고 애도 빨리 생겼어요. 출산하고부터 나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전에는 고생을 하거나 뭔가를 얻으려고 되게 노력을 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20대 때니까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그냥 술 먹고 노는 게 좋았어요. 아기 낳고 나니까 이제 애 엄마로서의 인생이 남은 건가. 그거밖에 없나. 아이가 너무나 작고 연약하잖아요. 모든 걸 다 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책임감이 무섭더라고요.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나로서 내 걸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되나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아이 낳고 몸은 힘든데도 시나리오를 써보려고 되게 노력했어요. 아카데미 연출 동기 중에 김경모라고 친한 오빠가 장편 준비하고 시나리오 쓰고 그랬거든요. 제가 쓴 것도 보여주고 피드백을 듣고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여기저기 내봤어요. 제일 중요한 건 같이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을 했어요. 그 경험이 저한테는 인생에서 큰 계기가 됐어요. 처음으로 이야기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아기 낳고 뭘 만들 수 있다고는 아예 생각을 못 했었지만, 글은 쓸 수 있잖아요.


장편 시나리오 투고 작품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선녀와 나무꾼의 모티브로 했어요. 원래는 선녀가 아이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잖아요. 근데 기억상실증이 걸려서 돌아가지 않고 나무꾼 남편하고 계속 살면서 옷을 만들며 자아실현을 하는 거죠. 그때는 서바이벌이 유행이었어요. 선녀가 원래 하늘나라 공주였는데, 공주가 갖고 있는 옥새를 노리던 하늘나라의 다른 세력이 서바이벌 대회에 나간 모습을 보고 찾아오고 선녀가 기억을 떠올리고 하늘나라 일도 해결하고 서바이벌 프로에서도 우승해서 자아 성취도 하는 내용이에요. 이야기 구조나 시나리오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열심히 썼어요.

<배다리전>은 CJ문화재단 지원작이었는데, 원작이 있었나요?

오리지널 시나리오예요. 부천에서 전통문화 소재로 글을 쓰는 공모전이 있었어요. 갑자기 공고가 났는데, 남편이 그때 케이블 드라마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김원석 극본, 박종원 연출)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있었거든요. 남편이 읽던 『원행』이라는 책을 보고 배다리 이야기 아이디어를 얻어서 급하게 썼어요. 그 공모전은 안 돼서 묵히고 있었는데, CJ에서 처음 보는 제작지원이 있어서 거의 그대로 냈어요.


효에 대한 사극이라니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에요.

<배다리뎐>은 제가 개입이 안 된 작품인 것 같아요. <무쇠소년>이나 <사적인 바다>, <찰칵 착칵>은 제가 개입되는데, 전통 소재로 픽션을 만든 거죠. 어떤 배가 필요한 소년이 배를 못 쓰게 됐는데, 정조랑 같이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야기 자체로만 썼어요.

주인공 개똥이를 괴롭히는 삼총사의 외모가 특이해요.

보통 애들이 떼로 다니니까. 대장과 그 옆에 떨거지인데, 한 명은 각설이고 한 명은 땡중 이런 느낌으로 생각했어요. 각설이는 머리가 뽀글뽀글하게 하고 외형적으로 서로 부피감이나 크기가 다르면 재미있을 것 같았죠.

계속 우는 엄마나 개똥이 챙기는 똘똘한 여자아이도 재미있는 캐릭터였어요. 개똥이는 이 여자애는 물론 왕한테도 되바라지게 구는데. 혹시 그때 아이가 말을 안 들었나요?

그냥 애니까 솔직하고 당차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애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나 당연하고 절실하니까 그 정도 도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본 것 같아서 재미있게 후루룩 빨리 썼어요.


작업은 혼자 다 하신 거예요?

작업도 오랜만에 하려니까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지원도 언제 될지 모르니까 띄엄띄엄 닥치는 대로 했던 거 같아요. 작화지에 하려고 했는데, 엄두가 안 나서 장형윤 감독님 작업실(스튜디오 지금이아니면안돼) 갔더니 박지연 감독님이 티브이페인트를 가르쳐줬어요. “간단해. 이거 그리는 거고 이거 지우는 거고”하면서. 지금이아니면안돼에서 스태프를 소개해줬어요. 제가 레이아웃이랑 원화를 그려서 그분한테 드리면 동화를 해 주고 작화 도움을 받고요. 그때도 처음 티브이페인트를 해보니까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필름 하다가 작화지 스캔받아서 하다가 태블릿으로 그리려니까 되게 힘들더라고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걸 할 수밖에 없었던 건가요?

그렇죠. 이게 더 용이할 것 같은데, 모르니까 항상 배워서 했어요.


미련 없이 찰칵찰칵

그리고 3년 지나서 <찰칵 찰칵>을 하셨습니다.

<배다리뎐> 끝나고 2015년도니까 애가 7살 때였구나. 계속 제작지원에 냈는데 안 되다가 서울시 공모가 있어서 급하게 썼어요. 실제 토끼 탈을 씌워서 촬영을 하고 로토스코핑을 하면 쉽지 않을까 해서 했는데, 그것도 어렵더라고요. 작화는 제가 다 했어요. '아트웍에 조금 더 신경을 쓸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주제가 서울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잖아요. 아버지의 서울 구경은 개인적인 일화인가요 아니면 완전한 픽션인가요?

실제로 아버지랑 그렇게 다녀본 적은 없어요. 근데 다 커가지고 어색한 느낌이 든 적은 있었죠. 그 느낌으로 서울을 같이 구경하면서 유명한 곳을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야기 쓰는 거는 좋아하는데, 기술력이 없다 보니까 비주얼 구현하는 게 잘 안 됐어요.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없으신 것 같네요.

그림 한 장만 봐도 스토리가 막 느껴지는 너무나 멋지고 뛰어난 분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저는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나 연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시리즈 물도 써보고 싶고 실사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클라이밍> 때는 완성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지금은 제대로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클라이밍>은 진짜 개봉할 줄은 상상을 못 했었거든요. 그런데 많이 안 보니까 그만큼 허무한 생각도 들었어요. 앞으로는 이왕 고생을 하면 성과도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성과는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보고 좋아해 줬으면 해요.

2021년 6월 15일 <클라이밍> 개봉 전날 GV
2021년 6월 15일 <클라이밍> 개봉 전야 시사회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인터뷰 2021년 9월 4일 @망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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