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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LEE Yongsun

이용선

이용선 감독의 초기작 <Alone>(2010)과 <기억하려 하다>(2011)는 신기루 같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2014)는 강한 빛만큼 짙은 어둠이 이미지의 경계를 흐린다. 작품 속에서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는 서로 얽혀 아득하다. <화장실 콩쿨>(2015)과 <반도에 살어리랏다>(2017)는 완전히 다르다. 눈썹을 부릅뜨고 소리치거나 능청스레 비꼬는 선명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한다. 떨리던 감성에서 격렬한 풍자라니. 영혼이라도 바뀐 게 아닌 한,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빙의는 아니었다. 숨차게 달려왔지만, 처음부터 호흡이 남달리 길었던 이용선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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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조예슬 감독이 작년 SBA 단편 제작지원받은 작품 제작을 돕고 있다. 그것 빼고는 다 스톱된 상태다.

중지된 건 뭔가?

웹툰 두 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나서 장르를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니메이션으로 장편을 바로 내는 게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파격적으로 바꾸려고 웹툰을 시도했다. 내가 안 해본 것이어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그걸 하면서 어떻게 됐던지 간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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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니메이션과로 갔나? 회화과를 지망하면서 석고 정물 수채화를 한 2년 했다. 수채화는 잘 맞는 것 같았다. 지금도 하면 재밌게 할 것 같기는 하다. 학원에서 좋게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만화는 예전부터 노트에 깨작깨작 그렸다. 재수할 때 만화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바꿨다. 근데 만화 쪽 전문학원에 갔더니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충격이 되게 컸다. 원래도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비볐지만, 그때 좀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군대 전역하고 만화 공모전에 냈다. 같이 냈던 친구는 대상을 탔는데, 나는 아무 상도 못 탔다. 그때 '나는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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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은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인가? 청강대 3학년 졸업작품으로 기획했다. 그전에 단편 시나리오를 많이 썼는데, 그중 하나가 애니메이션 용 시나리오, <Alone>의 시나리오였다. 졸업작품은 보통 3학년 때 들어가는데, 나는 2학년 때부터 팀 구성을 끝내고 그때부터 준비했다.

다른 시나리오는 만화 시나리오인가? 그렇다. 소설은 한 번.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포기하고.

소설은 완성했나? 소설가 지망생 친구가 있다. 그 친구랑 이틀에 한 편 정도씩 단편 한 10페이지를 써서 서로 교환해서 보여주는 걸 했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 친구를 소설을 썼는데, 엄청 싸웠다. “시나리오를 이렇게 하니까 이해를 못하는 거야" “소설을 이렇게 이해를 못해" 그럼 바꿔서 써보자 했다. 그 친구는 시나리오를 썼는데, 나는 소설을 개판으로 썼다.

글 쓰는 훈련을 했네. 가르쳐 주는 데가 없어서 혼자서 연습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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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은 2년 동안 작업한 건가? 거의 1년은 버렸지만, 어쨌든 2년 동안 작업을 했다.

<Alone>과 <기억하려 하다>를 보면 둘 다 책이 중요한 모티브다. 생각이 되게 많았는데,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만들었던 것 같다. <Alone>은 시나리오를 시처럼 썼다. 그게 여러 군데서 평가가 좋았다. 학교에서도 주목을 해서 내가 잘 쓰는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때는 이론이 없고 그냥 감각으로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확실히 갈리는 작품이었다. 아직도 싫어하는 사람은 되게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되게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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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의 테마는 언제부터 생각했나? 전생까지 그렸는데. 여자가 굉장히 말괄량이거나 남자가 찐따거나, 멜로 코드의 전형적인 클리셰다. 찐따인 남자의 감성으로 푸는 그런 건데, 유머가 어떤 식으로든지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전생에 여자는 독수리였고 남자는 도마뱀인 먹이사슬 관계였다라고 설정했던 부분이 핵심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만들고 몇 년 동안 잘 몰랐다. 몇 차례 기회가 돼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분석하면서 그게 유머 코드였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했구나 생각했다.

<Alone> 타이틀 로고에 사람 들어가는 게 <A.I.> 생각났다. <A.I.> 엄청 좋아한다. 영향은 있겠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되게 좋아한다. <A.I.>도 울면서 몇 번을 본 작품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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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토스코핑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아니다. 로토 없다.

없다고?

로토는 없는데, 촬영은 다 했다. 스케치와 실제로 촬영한 걸로 비디오보드를 만들었다. 움직임을 연구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걸로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되야겠다. 연출도 분석 많이 하고 군대 때부터 시작해서 <기억하려 하다> 정도까지 책도 많이 읽고 그랬다. 허세가 있었을 때다. (웃음)

로토스코핑이 아니면 어떤 기법을 썼나?

<Alone>은 러프 스케치를 하고 클린업을 따로 하고 그 위에다 콘테나 목탄처럼 퍼지는 재료로 한 장을 세 번을 그렸다. 채색 과정인 거지. 주인공 캐릭터 안에 물감이 번진다. 물감이 번지는 영상 텍스처를 촬영해서 만들었다. 애프터이펙트로 부분 부분 합성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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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을 선호하나? 석고 수채화를 했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데는 그림이 약간 올드해 보여야 되는 게 있다. 배경도 다 수채화로 그렸다.

콘테나 목탄은 스캔받을 때 번져서 골치 아프지 않았나? 맞다. 스캔 양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관리도 해야 했는데, 스캔을 하는 걸 팀원들이 좋아했다. 쉬니까 그때. 풀프레임으로 연필 작화를 하면 똑같은 걸 계속 그리는 느낌이 든다. 스캔을 하면 멍 때리면서 쉴 수 있다. 그때 하루에 200장 정도씩 분량을 정했다. 작화 하는 와중에 돌아가면서 한 친구가 스캔을 200장 정도 하는 시간을 부여를 했다.

작화 배분을 시퀀스 별로 했다. 1학년 때 선배들의 헬퍼를 하면서 턴어라운드 비율 정하고 그리는 걸 한다. 그걸 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이 캐릭터 네가 맡아서 해. 이 장면 네가 맡아서 해. 좀 삐뚤어지거나 틀어져도 상관없으니까 네가 처음부터 그려” 이런 식으로 사람에 맞춰 분배했다. <Alone>은 신마다 특징이 확확 다르니까 오히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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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량이 많은 프로젝트고 팀원만 일곱 명인데, 꾸리기 쉽진 않았겠다. 팀을 같이 하자고 몇 명은 제가 엄청 오래 쫓아다녔다. 2학년 겨울방학부터 학교가 아닌 곳에서 작업실을 운영했다. 그때 몇 명 뛰쳐나갔다. 너무 추워서. (웃음)

나도 인생에서 잠을 제일 안 잤다. 한 여섯 시간 자보는 게 소원이다 싶을 정도로. 거의 초인 상태로 1년이 진행됐다. 마지막에 한 명이 2주간 잠수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친구들은... 애니메이션과 가면 으쌰 으쌰 작업하는 로망이 있잖아. 나중에 찾아와서 내가 작업을 하면 계속 도와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럼 나는 “아니야, 나는 그렇게 비전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웃음) 팀원 이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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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2분은 당시에는 긴 편이었다. 초심자의 실수 같은 거다. 사람들이 이해 못할까 봐 설명적으로 연출하는 성향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좀 길게 나온 것 같다. 편집에 대한 개념이 진짜 희박했을 때였다. 물론 애니메틱 릴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타이밍 조절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렇게 타이트하게 하진 않았다. 풀프레임이고 한 장을 세 번씩 그리는데, 자를 수가 없다. 그러면 작화한 친구의 노력이 날아가기 때문에.

<Alone>은 엔딩 크레디트가 특히 길다. 음악 감독님이 같은 과 한 학년 선배였다. 실용음악과 떨어지고 이상하게 애니메이션과 에 온 선배였는데, 음악을 너무 잘 만들었다. 그때 교수님 연구실을 빌려서 사운드 부스 만들어서 그 형이 상주하듯이 하면서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에는 짧게 짧게 들어가니까 “엔딩 크레디트에 형 하고 싶은 거 한 곡 통으로 넣자” 이러다 보니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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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더빙과 한글 더빙 두 버전이 있다. 처음부터 영어 더빙 작품이었다. 대사도 시처럼 쓰여 있어서 한국말로 내뱉으면 너무 이상한 거다. 근데 영어는 조금 더 맛깔나게 와 닿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원 중에 미국에서 몇 년 살다온 친구가 있었고 내 동생이 영어를 굉장히 능숙하게 했다. 둘을 데리고 영어 더빙을 먼저 녹음을 했다. 릴이고 뭐고 다 영어로 만들었는데, 지나가시던 모든 교수님들이 툭 툭 “한국어로 만들어” 이러셔서 한국어 버전을 추가했다.

영어 대본은 어떻게 썼나? 내가 쓴 걸 바탕으로 동생이 느낌을 살려서 번역을 해주었다.

보여주고 싶은 건 영어 버전인가? 지금이라면 한국어를 다시 더빙하고 싶다. 너무 축축 처지는 톤으로만 되어있다. 한국어 대사를 다듬고, 녹음을 잘하는 게 훨씬 더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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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팬인가? 최근 나온 몇 권 빼고는 거의 다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영향력이 엄청 크기 때문에 쓰다 보면 무라카미 느낌이 나온다. 그런데 무라카미 느낌이 알맹이가 없다. (웃음) 다른 사람이 흉내 냈다가는 큰일 나는 스타일 중에 하나인 거 같다.

‘기억하려 하다’는 단편 작품 속 주인공의 꺼내 읽는 가상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책인데, 『기억하려 하다』책의 저자가 거기 나온 인물이다. 소설책에... 너무 낯 뜨거운데 (웃음)

상상한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 잊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초반 소설들의 양상을 보면 비슷하다. 『상실의 시대』를 제외하고 『해변의 카프카] 전까지 다른 장편들을 보면 이 캐릭터가 이 캐릭터인가 막 섞인다. 약간 혼동되는 조합이 있다. 그런 식으로 잊히는 거다. 읽었을 때는 재밌게 즐겼는데, 나중에는 그것들이 왜곡된 형태로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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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과 <기억하려 하다>는 연애와 실연, <화장실 콩쿨>과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결혼과 이혼 이야기다. 관심사는 남녀 관계인가.

내가 항상 재밌게 봤던 작품들은 <화장실 콩쿨>이나 <반도에 살어리랏다>에 나올 만한 소재나 작품이었던 것 같다. (다른 한 편) 예술적인, 감성적인 작품 파트가 있는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작품을 좋아한다.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너무 좋아했다.

애니메이션은 비주얼적인 부분에 감성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초반에 말한 만화 시나리오는 사건 중심이다. 애니메이션은 조금 더 감성적인 파트를 계속 시도했다. 애니메이션은 그래야 되지 않을까 해서.

이상형이나 과거 연애 경험이 반영된 건 아니고?

그것도 맞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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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브라운관 TV가 계속 등장한다.

브라운관 TV는 나름 추억이 있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들을 빌려서 보면서 공부한다고 막 틀어놓고 그래서 애착이 있다. 라디오는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이 듣지는 않았는데, 나도 라디오 끝물 세대였던 것 같다.

음악도 많이 좋아하는 편이었나?

남들과는 다른 음악을 들으려고 했던 정도였다. 조예가 깊은 건 아니다. <기억하려 하다>는 전체 분량의 1분 정도로 음악이 짧게 들어가 있다. <Alone>에서 음악이 너무 튄다고 생각했다. 절제해서 쓰자. 정말 필요한 데만 쓰자고 생각해서 음악도 기억의 한 방편으로 딱 한 곡만 들리는 식으로 기획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음악이 없으니까 감정이 안 사는구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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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토스코핑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Alone>을 다 로토스코핑이라고 그러니까 그럼 로토스코핑으로 하자!

로토스코핑 작업은 실제로 어땠나. 그때 당시 접히는 HP 모니터에 타프대pegbar를 붙여서 종이를 대고 그렸다.

채색은 어떻게 했나? <Alone> 때부터 애프터 이펙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로토 브러시 기능으로 촬영된 인물들을 크로마키로 따서 텍스처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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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프로덕션에서 노하우를 얻은 건가. 팀원들은 다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노하우는 있었다. 거기다가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 퀄리티도 올릴 수 있는 방법들이 추가됐다. 또 풀프레임에서 투 콤마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다.

내가 만든 작품들 중에 <기억하려 하다> 이미지는 가장 마음에 든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카페에서 남자가 여자 손을 볼 때다. 연필 소묘 같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건데, 해보고 싶었던 거다. 제작 시간이 허락되어서 팀원에게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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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려 하다> 팀원은 어떻게 섭외했나? 청강대는 졸업작품 만들 때 되면 PT를 통해서 팀원을 모집한다. 나는 PT 전에 핵심 팀원 한 두 명을 모아놓고 가는 편인데, 그때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서 PT로 대부분의 팀원을 구했다. “나 이런 거 할 건데 관심 있는 사람 들어오세요"

현재는 졸업작품 PT가 없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서 사람을 구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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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는 졸업하고 강사로 일하면서 작업한 건가?

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에는 웹애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리즈를 기획했었다. 그게 사실 <화장실 콩쿨>의 전신 같은 거다. 1화 작화를 끝냈는데,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포기했다.

봉준호 감독의 중편 <흔들리는 도쿄> (2008)를 재밌게 봤다.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그 해 뒷부분부터 다음 해 초까지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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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분짜리다. 애니메이션 단편의 기준이 30분이라는 것도 안 알아보고 그냥 만든 거다. <기억하려 하다>를 잠도 충분히 자고 쉽게 만들었다. 내가 이런 시스템으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까를 계산해봤을 때 똑같은 인원으로 30분은 충분히 만든다고 판단했다. <기억하려 하다>의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좀 더 길면 내가 원하는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나리오를 공들여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Alone>이랑 <기억하려 하다>는 여성에 대한 막연한 상상인데, 반대로 그런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자는 시도였다.

남자들은 너무 무섭게 생겼다. 일부러 무섭게 했다. 다 못 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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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만들었나. 졸업을 하고 학교기업에 반 취직을 했다. 학교 기업이 시키는 일을 하는 동시에 작업을 하겠다. 이 작품 졸업작품으로 제공하겠으니 내가 그전과 똑같이 학생들을 PT에서 뽑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협약을 했다.

로케이션 촬영은 어떻게 했나? 팀원 중에 한 명이 CU 사장님이랑 친했다.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 정도까지 이틀 정도를 빌렸다. 최소한의 멤버로만 가서 찍고 와야지 그래서 첫날 촬영 준비를 해서 갔다. 그런데 그날은 그 학생이 포함이 안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촬영하면 안 된대. 자는 친구를 깨워서 가니 오늘 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틀 분량을 하루 만에 다다다다 찍었다.

장비는 학교에서 빌렸나? 스테디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필을 많이 했는데... 그냥 DSLR이랑 학교 기본적인 장비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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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잘 안 바꾸나?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는 많이 바뀌었다. 일이 너무 많았다. 청강대에는 넓게 학생들 작업하는 공간이 있는데, 내가 거기 관리자였다. 컴퓨터 고장 나면 고쳐주고 프로그램 질문하면 대답해주고 이런 일을 했다. 수업도 하면서 작업을 처음으로 진행하다 보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다.

그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이 장면 빼자" "이 장면 그냥 몇 개만 그려”였다. 포인트가 되는 장면이 다 사라졌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보여줘야 되는데, 명확히 터치를 해줘야 되는 부분들을 슥슥, 날림이 많았다 팀원들 한테도 미안했었다.

아쉬운 게 너무 많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졸업작품 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했다. 1년이 지난 다음에 결과물이 안 나오면 그 친구들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나한테는 기간 안에 완성시키는 게 다른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어떻게든 끝내기 위한 생각을 진짜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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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심부름 갈 때 불어 랩이 나온다. 지준석 음악감독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그때 프랑스에 계셨다. 프랑스의 인디 음악 다큐를 만들려고 하다 만난 래퍼가 있는데, 작품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대. (웃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아 그 사람이 그런 꿈이 있어? 가져와. 넣자"하면서 넣었다.

주인공의 정신이 불안한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음악이 나오는 게 어울렸다. 불어 가사 내용은 알았나? 당시에 맥락만 체크했다. 문제없다는 것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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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콩쿨>에서 대 변신을 한다.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를 만들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떤 죄책감?

감독으로서의 죄책감? 완성이 중요해서 감독으로서의 책임을 유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제일 큰 건 작품이 재미없는데 내가 다른 핑계를 대면서, 재밌다는 포장을 하면서 하지 않았나. 시나리오 단계부터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감독으로서의 역할이지 않나 생각했다.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가 끝나고 몇 달만에 <화장실 콩쿨>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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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0분이다. 짧은 걸로 재밌게 만들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야기의 힘을 통해서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 단편애니메이션은 비주얼과 이야기가 결합되면서 나오는 감성을 바탕으로 사람들한테 훅훅 다가오는 감정이 있는데, 나는 비주얼적인 장점을 그렇게까지 살릴 수 있는 감독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했던 비주얼들이 재미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아서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는 걸 쓰는 게 목표였다.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는데, 난데 없는 건 아니다. 예전에 그린 <난감한 카툰>에 비슷한 강아지 캐릭터가 나온다. 2005년 2006년쯤에 그린 거다. 그림 카페에 올리면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내 첫 캐릭터고 애착이 많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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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 이야기도 이전부터 구상했나? 기러기 아빠라 그러면 재미가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 모티브가 된 작품이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심슨가족>이다. 그다음에 루이 C. K.라는 미국 코미디언이 만든 시트콤 <루이>다. 좋아하는 작품들이 다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도 주인공을 일단 아빠로 하자는 생각이었다. 아빠한테 뭐가 제일 끔찍할까 생각을 했을 때 (보고 싶은 딸을) 며칠 있으면 만나는데, 못 만나는 상황이 생기고 딸의 미래를 위해서 여기서 현실을 극복해내야 되는 설정이 재밌다고 느꼈다.

나는 바닥에 붙어있는 스토리를 굉장히 좋아했다. 드라마가 중심이 된 스토리를 좋아했는데,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들 중에 내가 가장 판타지스럽게 생각한 거다. 가장이 자식을 정말 사랑하는 부분이 나한테는 용이 나와서 파이어볼을 쏘는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혼자 몰입하고 두근두근해하고 흥미 있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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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찰떡 같다. 특히 김 과장이. 직접 다 썼나?

그렇다. 전체 작품을 통틀어서 내가 잘 만든 캐릭터가 두 개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최대구랑 김 과장이다. (웃음) 나는 사투리를 잘 몰라서 사투리 없이 대사를 적어서 갔고 녹음 당일 (성우분들에게) 사투리 쓰실 수 있으면 쓰셔도 된다고 했다.

경상도 출신이셨나?

대구 쪽이었던 거 같은데, 너무 잘 쓰시는 거다. 성우 연습하시니까 사투리 안 쓰시고도 굉장히 말을 잘하시는데, 사투리를 쓰니까 현실적으로 딱 붙더라고. 김 과장(이승훈)과 아내(이슬), 두 분이 사투리도 맛깔나게 쓰셨다. 대사도 즉흥으로 했는데, 그렇게 잘하시더라고.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녹음할 때는 녹음 엔지니어분이 경상도 출신이었다. 담배 피우면서 여쭤봤다. “사투리 자연스럽죠?” 그러니까 “아주 집안에서 싸우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래서 ‘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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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콩쿨>과 <반도에 살어리랏다>의 메인 성우들이 같다.

<화장실 콩쿨>은 30분밖에 안 되는 주제에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그거를 학생들이랑 할 수가 없어서 성우학원에 찾아갔다. 원장님이 연습 프로그램으로 넣으면 학생들 포트폴리오가 된다고 흔쾌히 받아 주셨다. 그런데 성우분들한테는 돈을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계속 걸려서 <반도에 살어리랏다> 때 그분들을 다시 모았다.

<화장실 콩쿨>이 인디애니페스트에서 3관왕을 했다. 작품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면서 각광을 받았다.

그런 반응을 학교 내부 상영회에 처음 경험을 했다. 나는 다른 작품들 완성했을 때랑 마인드가 똑같았다. 상영회를 한다길래 가서 봤는데, 정말… 학교 상영회는 사람들도 바글바글 하면서 잘 웃고 그러잖아. <화장실 콩쿨>을 틀었을 때 반응이 엄청났다. 사람들이 왜 이러지? 그렇게 웃긴가? 이런 생각을 했다. 기분은 좋다 이러면서 끝나고 내려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별로 안 친한 사람들이 와서 악수를 하는 거다. (웃음) “야 잘 봤다" 이러면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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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의 길을 개척한 것 같다.

장형윤 감독이나 연상호 감독도 있다. 알고 봤더니 그분들이 다 갔던 길이더라.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이나 <창>(2012)이나 학교에서 배우던 시절에 재밌게 봐서 크게 생각은 못했다. 그런 작품들도 있으니까 나도 해도 되겠지 했었는데, 아무 영화제에서도 안 뽑아주고 뒤늦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화장실 콩쿨>을 만든 게 제일 잘 한 일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반도에 살어리랏다>보다 <화장실 콩쿨>이 더 재밌고 캐릭터도 더 잘 만들었다고 생각을 한다. 나도 본선 심사위원을 한 번 해봤지만, 상을 세 개나 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더라. 기적이 일어난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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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반도에 살어리랏다> 작업에 들어간 건가?

<Alone> 때 세운 목표가 있었다. 서른다섯 살까지만 애니메이션을 하자. 마지막은 장편을 만들고 끝내자. <화장실 콩쿨>이 짧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형태의 이야기라면 더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있으면서 장편들이 어그러지는 걸 너무 많이 봤다. 나는 <화장실 콩쿨> 스타일로 만들면, 큰 도움을 안 받아도 많은 인원이 없어도 장편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학교에서 매년 겨울만 되면 “내년에 나가야 돼" 이러다가 봄이 되면 “작년이랑 똑같이 계약 다시 할래?” 이런 게 계속 반복이 되는 게 좀 끔찍했다. 그래서 다시 단편으로 갈 게 아니면 장편으로 가자. 장편을 할 거면 빨리 기획을 하자. 내가 강사기 때문에 강사의 현실은 전문적으로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의 형태는 <화장실 콩쿨>에서 발전시켜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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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물들이 연상될만한 소지는 배제했나? 안 좋은 부분들을 짬뽕시켰다. 현실은 이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 하지 않다. 취재도 몇 번 했다. 강사 분들은 "너무 많지" 하면서 얘기해주셨고 전임교수님들은 교수님들 나름대로 젊었을 때의 고충이나 그런 짓을 저지르지 못하게 우리 학교는 이런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얘기해주시고 그랬다. 교수사회는 충분히 드라마 시리즈로 나올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연기 강사를 떠올렸나? 맨 처음에 생각한 건 자기 계발 강사였다. <거대한 태양이 온다> 때도 생각했던 건데, 작품 안에는 이야기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영역이 있더라. 깔끔하게 다듬어서 연출된 비주얼만으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그 예술적인 영역의 표현은 노래나 음악이나 어떤 춤. 풀어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바로 사람들한테 전달할 수 있는 어떤 압축된 형태, 순간적으로 몰입해서 전달할 수 있는 형태다. 주인공이 그런 형태랑 연결될 수 있으려면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장편이고 나름 드라마가 있으니까 넓게 봐서 춤의 형태의 하나인 연극을 하면 어떨까 해서 연기 강사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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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청산별곡」에서 따왔다. 연기수업에서 목을 풀 때도 쓴다. 책을 찾아봤더니 연극배우들이 연습을 할 때 쓰는 작품 중에 하나였다. 이걸로 풀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제목은 더 뒤에 투표로 정했다. 그 전 제목은 ‘코리안 드림' (웃음) 내가 <아메리칸 뷰티>(2000)를 좋아해서 그런 제목을 가지고 싶었다.

SBA 제작지원 냈을 때 ‘코리안 드림'이었나? <오준구>였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 이름은 어떻게 짓나? 그냥 탁 떠오르면 짓는다. 끝이 ‘구’로 끝났으면 했고 성은 어울리는 것 같아서 ‘오.. 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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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인데, 진짜 연기파 배우 같다. 주인공인데, 외모가 너무 가혹하지 않나?

오준구는 심슨이 모티브였다. 심슨을 한국형으로 그린 거다. 심슨과 똑같이 오준구도 머리카락이 세 가닥이다. (머리가) 한국식으로 빠져서 옆머리가 남게 되었고. 눈도 동그랗게 비슷하다.

장편을 쓸 자신이 있었나?

<화장실 콩쿨>이 재밌다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사실 <거대한 태양이 온다>도 중편에서 장편으로 가려고 준비를 한 거다. 두 편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확장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을 쓰는 건 힘들었다.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계속해서 피드백을 받는 팀이 있다. 2016년 여름 몇 월까지 완성해야 됐는데 “너 시간 안에 다 못 쓴다”는 판단이 나왔다. “안돼 나 무조건 써야 돼"라고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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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 6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 만들어진 것 같다. 시간 나면 아무데서나 썼다. 노트북도 하나 있고 작업실 컴퓨터도 있고 기숙사 컴퓨터도 있고 왔다 갔다 거리면서 계속 썼다. (웃음)

최기호 교수 방에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먼저 범하기 때문이다"라는 뜻의 한문 액자가 걸려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들어있었나? 화면을 구성하는 비주얼적 디테일들은 제작 아이디어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다. 시나리오는 큰 틀에서 캐릭터의 감정 연출이 나오게끔 쓴다. 비주얼적 디테일들은 그때그때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추가해서 쓰려고 한다. 연구실을 최대한 꼰대스럽게 꾸며보라고 배경 그리는 친구한테 부탁했는데, 그 친구가 재밌게 해왔다.

오준구가 이혼한 뒤에도 강아지가 등장한다. <화장실 콩쿨>에서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강아지였기 때문에 한 번 정도 등장시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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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콩쿨>이랑 <반도에 살어리랏다>에서 캐릭터 등장할 때 이름과 설명이 붙는다.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상, 모큐멘터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2D 애니메이션인데도 카메라 계속 핸드핼드된다거나 줌인이 모큐멘터리식으로 들어갔다가 빠진다거나, 그게 현실 감각을 늘려준다고 생각했다. 페이크 다큐 보면 인터뷰부터 하고 시작하는데, 실제로 <반도에 살어리랏다> 캐릭터 테스트 작화할 때 인터뷰하는 것처럼 했다.

붓터치된 캐릭터별 이미지가 멋지더라.

팀원 중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친구가 그렸다. 내가 봤을 땐 되게 잘 그리는데, 항상 자기는 못 그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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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의 여왕> (감독 최지희, 2020) 재밌게 봤다. 멘토로서 얼마큼 개입했나? 시나리오는 직접 써서 까이는 과정이 없으면 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기간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둬놓고 소재를 뽑아내는 방법을 쓴다. 그 친구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밌는 소재를 낸 때까지. 스터디룸을 빌려서 세 명이 들어갔다. 막 이걸 하고 싶다 얘기하면, 내가 거기서 훅이 뭐냐? 재밌는 게 뭐냐? 장르가 뭐냐? 질문한다. 그 친구가 이렇게 하면 재미없겠네요 다른 거 하고 그걸 계속한다. 서로 어떻게든 재밌는 아이디어를 내주면 되게. 핵심적인 부분은 최지희 감독이 뽑아냈겠지만 아이디어는 멘티 두 분이 공동으로 냈다. 그러면 나는 어떤 구조로 가져갈 수 있는지, 어떤 형태의 위기들을 만들 수 있는지를 조금씩 제안했다.

시나리오 강의를 해도 될 것 같다.

창의인재는 지금 당장 뭐라도 괜찮은 걸 만들고 싶은 절박한 분들이라서 되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했다가는 바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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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을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을 그만하겠다는 계획은 달라졌나?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만들고 난 다음에 엄청 허탈했다. 하고 싶은 것 했으니까 인기 있을 거 하자는 생각으로 웹툰 두 편을 기획한 건데, 나랑 썩 맞지 않았다. 코미디 쪽으로 생각을 더 해봐야겠다.

다른 분들이 성인용 장편이나 TV시리즈를 하신다면 기획 단계에서 재밌게 뽑아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걸 제공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은 장편 만드는 거 자체가 너무 큰 도전이라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올해는 중편 이상의 시나리오 한 편을 쓰는 게 목표다. 조예슬 감독의 <울렁울렁>이랑 차기작 할 때 도와주고 싶다. 나머지는 그냥 되는대로.

학교를 나와서 제작을 어떻게 꾸려갈지 고민이겠다. 돈만 있으면 한다. 스태프를 꾸리는 거는 문제가 없다. 이전보다 비주얼적으로 잘 만드는 시스템도 발전되어 있다.


Zoom 인터뷰 2021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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