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 Woo Jin
달력이 바뀌어도 계절은 같다. 수도권 기온이 연일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2021년 1월, 2020년 여름에 귀국해서 작화에 몰두 중인 우진 감독을 만났다. <바느질하는 여자>(2012)와 <뷰티풀>(2014)을 만들고 훌쩍 베를린으로 떠났던 그는 폴란드 작가 타데우쉬 칸토르에게 반해 한 동안 크라쿠프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The Glorious Table>(2017)을 완성하고 브이제이라는 제2의 정체성도 생겼다. 네 번째 단편 <산>(2019)으로 작업의 한 시절을 마무리하고 한국 신화를 모티브로 한 신작에 열중하고 있다. 달력의 뒷장을 그렇게 새로운 시절로 채워간다.
01
오늘도 작업했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받은 <나무아기(가제)> 작업했다. 있다 밤에도 할 거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설명한다면
삼신이랑 저승 신이 아웅다웅 싸운다. 태어나게 할 것 인가 말 것인가. 아기신이 듣기가 너무 시끄러우니까 “아 됐어. 내가 알아서 태어날게”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렇게 자기가 알아서 태어난 아기신이 삼신과 저승신에게 도망치면서 친절한 사람들, 칼바람, 화가 난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세계(?)를 겪다가, 그만 머리가 터지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진흙을 모아서 대강 머리를 만들어서 눈을 뜨고 보니까 커다란 짐승이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거다. 그 짐승이 아기신을 먹어버린다. 짐승 뱃속에 세계수 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거기 아기신들이 댕댕 달려있다. 누구는 머리가 있고, 누구는 없는 모양으로. 아기신이 제 마음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날 법한 일을 보게 된 거다.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던 미래를 본 아기신이 짐승의 배설물과 섞여 다시 바깥으로 나온 후, 자신이 태어났던 꽃, 태궁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이야기가 끝난다.
장대한 모험이다. 러닝타임이 어떻게 되나?
처음에 5분을 계획했는데, 절대 안 될 것 같다. 10분은 안 넘기려고 최대한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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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팟캐스트 <애니듣수다2>에서 6월에 완성하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8월은 안 넘기려고 한다. 내가 2년에 한 번씩 출품하는 걸 내 나름대로 루틴으로 잡았다. 8월에 끝내면 내년 후반에 하는 영화제 출품이 가능하다.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
지금 작화 들어갔다.
브이로그 보니 연꽃에 명암 열심히 넣더라.
시간을 잡아 먹어서 캐릭터에 명암을 많이 안 넣으려고 한다. 배경에 힘주고 캐릭터는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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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기획은 어떻게 하게 됐나?
<산>을 재작년에 끝내고 아이디어가 바닥나서 ‘나는 이제 단편 작업 못 하겠다’ 하는 와중에 슬라브 전통문화에 대해 연구를 하는 친구랑 얘기하다 보니 (한국이랑)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많은 거다. ‘문지방 밟지 말아라’, ‘물 떠 놓고 기도 함부로 하지 말아라’, ‘어디 가서 조용히 해라' 나도 할머니한테 그런 거 많이 듣고 컸는데, 걔네도 있는 거다. 그래서 그때 우리가 가진 뿌리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항상 ‘나는 왜 이렇게 살고 나는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가’ 의문을 가지고 살았다. 그 해답 같은 게 신화에 있더라. 무속신앙도 사람들에게 ‘하지 마라’, ‘이걸 해라’ 혹은 ‘이렇게 된 이유’를 알려준다. 그런 우리 설화, 우리 신화가 우리 정서에 잘 맞는 걸 텐데, 현대적으로 해석한 게 생각보다 없더라. 현대를 사는 우리한테 맞는 조언이 필요한데, 옛날이야기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 사람들한테 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신화 작업을 해보자. 오리지널 스토리를 현대에 맞게 변화시키는 작업을 기획했다.
그리고 영화제에 갈 때마다 한중일 문화를 헷갈려하는 외국 친구들한테 짜증이 난 것도 있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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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료가 제일 도움이 됐나? 『살아있는 한국 신화』 많이 봤다. 진짜 재밌다. 아직 남아 있는 설화나 신화를 모아서 신동흔 교수님이 엮은 책이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 것도 있을 텐데, 나는 할머니가 서낭당 가서 기도하는 게 익숙했다. 할머니가 절에서 받은 법칙 같은 것도 빌려보고 우리나라 요괴 설화라든가 한국문화원이랑 문화재청에서 엮은 책자들, pdf 파일들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외할머니 댁에서는 얼마나 살았나? 태어나고 한 달 뒤에 갔나. 꼬물꼬물 댈 때 외할머니가 데려가셨다. 우리 집이 <기생충>(2019)에 나오는 지하방보다 더 나빴다. 집에 창문이 없었다. 외할머니 댁에서 다섯 살까지는 꼬박 같이 살았다. 그 뒤로도 반년은 시골에 있고 반년은 서울에서 부모님이랑 있다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계속 서울에 있었다. 외할머니 댁은 충남 서산에 강수리라고 골짜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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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외할머니 댁이 지붕은 요새 재료다.
내가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 태풍이 와서 지붕이 날아갔다. 장독대 쪽은 기와가 아직 남아있다.
오래된 재봉틀을 할머니가 쓰시는 걸 본 적 있나?
지금도 쓰신다. 나도 썼다. 바지 구멍 난 거 기우고 보자기 만들었다. 보통 겨울에는 시골에 할 일이 없다. (이불 바느질하는) 할머니 옆에서 할 게 없으니까 꽃 모양으로 바느질하고 그랬다.
그림도 그렸나?
어을 때 친구가 없었다. 동물 밖에 없어서. 절이나 시청에서 나눠주는 옛날 달력 있잖아. 할머니가 뭐라도 그리면서 놀라며 이장님이 나눠주는 커다란 달력을 갖다주셨다. 거기다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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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원예술대학교에 들어갔다.
집에서 학교가 30분 거리다.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동네에 예대가 있다 정도 알고 있었다. 입시하면서 계원 졸업작품들 보고 ‘재밌는 거 많다. 신기한 거 많다’ 그러면서 무작정 시험을 본 거 같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냥 그림이 아니라 움직이는 걸 만들고 싶었다.
첫 작품이 <바느질하는 여자>다. 팀 작업 위주인 계원에서 개인 작업을 했다.
시스템과 터부에 대한 이야기다. 작업이 너무 개인적인 얘기라서 누군가한테 설명하는 게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서 유산하셨는데, 마음 아파하시면서도 되게 쉬쉬하셨다. 그게 나한테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이 얘기를 숨기려고 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왜 우리가 이야기를 굳이 숨기고 살아야 되는가. 그게 성과 여성과 아이, 생명 등등해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문제와 연계된다. 나는 작업들이 뭉쳐있다가 요만큼씩 떨어져 나와서 ‘아 이 얘기를 해야겠다’ 하면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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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혀를 자르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태아 장면이 대구를 이룬다.
나는 (두 장면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관계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혀가 잘리는 건 우리가 보고도 침묵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오프닝이었다. 아이가 울고 소리 지르는데, 들리지 않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다. 내가 선택해서 듣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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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에 <뷰티풀>이 나왔다.
나는 작업할 때마다 ‘이게 끝이구나’ 생각한다. 친절하거나 예쁜 작업이 아니다 보니까 나에게 작업을 지속할만한 콘텐츠는 없다고 생각했다. 졸업하고 학원 강사 일을 했다. 회사처럼 출근하고 업무 보고 퇴근했다. 반복되는 일을 하다 지겨워서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때 내가 맡은 게 입시반 친구들이었는데, 학생들이 개성을 묵살당한 상태로 살다가 애니메이션 입시를 하려면 자기 개성을 쥐어짜야 되는 상황이 온다. 그 간극이 크게 보였다. 나도 겪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서 써서 여기저기 냈는데, 다 떨어지고 혼자 액팅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아니면 출근하기 전에. 그러다가 2013년도에 CJ 문화재단 제작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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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부터 직선과 곡선의 대립, 머리 떼어버리는 캐릭터 같은 작업의 원형이 보였다.
머리 없는 신체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 작업을 했다. 팔레드서울 신진작가로 선정돼서 개인전(<PLAY>, 2013년 6월 -15일)을 했는데, 그때 주제도 머리 없는 신체였다. 들뢰즈의 머리 없는 신체 이론을 배우면서 머리를 뽑아낸 신체가 움직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사회에서 ‘세뇌된 동작, 관습 같은 것들을 배운 사람들은 머리를 없애버리더라도, 교육받은 그대로 몸을 움직일 것이다’라는 게 커다란 작업의 모티브다. ‘머리가 필요 없는데, 왜 굳이 달고 다녀?’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기도 했다.
<뷰티풀>은 내가 보고 살았던 한국의 모습을 쉽게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머리가 다양하고 화려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걷는 건 똑같다. 머리만 보면 개성이 넘치는데, 하는 행동은 다 똑같다. 거대한 존재가 이들을 통제하고 여기서 좀 벗어나면 죽는다. 머리 없는 것들, 머리를 파괴시키는 것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계속 마음에 달그락달그락하고 걸리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도 개성이 있는데, 남들이 하니까 똑같이 하고 남들 시선 때문에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개인의 의문, 호기심처럼, 나는 개인의 집약체가 머리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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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직선적이다.
나는 국민학교 입학하고 초등학교 졸업한 세대인데, 국민체조 많이 했다. 월요일 아침 9시에 교장 선생님 훈화 듣고. 그게 우리가 처음 교육과정에 들어가면서 배우는 틀과 규칙, 법칙 이런 거다. 다들 일자로 맞춰 서서 움직이면 안 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거, 군대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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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여자가 신체 조각을 기워 새로운 생명을 만들었다면, <뷰티풀>에서는 거대한 포대 캐릭터가 신체를 수집해서 재조합한다. 같은 존재인데, 바느질하는 여자는 더 수동적이다. 머릿속에서 사회의 커다란 구조를 쌓았다. 빌딩이라면 바느질하는 여자는 지하실에 있는 사람이다. 눈도 가리고 귀도 가리고 말도 못 하는,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 바느질하는 여자는 그 자리에 평생 앉아서 주는 것만 그대로 하는 거다. 그 위에 쓰레기 수집가가 있다. 걸어 다니면서 쓰레기를 수집해서 만들고 다시 배치한다. 좀 더 능동적인데, 역할은 같다.
뭐가 ‘뷰티풀' 한 건가? 구조 자체가 완벽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같다. 노동자가 없어도 공장은 돌아간다. 아무나 바꿔서 놔도 되니까. 정치나 국가도 그렇다. 되게 곪아 터지고 속상한 게 많은 구조인데, 사람을 배제하고 보면 구조 자체는 참 예쁘다. 완벽하다. 무너질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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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에 <The Glorious Table>이 나왔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먹고사는 곳은 식탁이고 식탁에서 가정교육이 시작된다. 식탁에서 제일 자주 듣는 말이 "밥상머리 앞에서 뭐 하지 마" 이거랑 "네가 밥 먹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다. 노동자가, 어머니든 아버지든 집안의 구성원이 열심히 한 결과물을 식탁에 올려놓은 거다. 영광스러운, 위대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노동의 결과물이 식탁이다. 한국말로 어떻게 풀면 좋을까 생각하다 처음에는 “밥상머리 앞에서 뭐 하지 마”를 제목으로 붙였었는데, <위대한 식탁>으로 등재했고 내가 말할 때 가끔 <영광의 식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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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lorious Table> 캐릭터는 대장이나 위장,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이다.
왜냐면 뼈가 없으니까. 앞으로 다른 이야기를 해도 캐릭터는 이걸 기준으로 만들 것 같다. 뼈가 없는 움직임. 내가 좋아하는 액팅,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바뀐 것 같다. 더 해체해 보고 더 이상하게 만들어 보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재활용 쓰레기통 같은 상자는 물질의 순환을 의미하나?
아니다. 우리가 생산해 내는 물건들이 우리의 정체성인데, 그걸 계속 사장시키는 거다. 카피 & 페이스트 된 아이덴티티다. 다 똑같은 상품을 생산하고 그게 계속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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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반찬 투정하지 마 Don'T Be Picky>라는 협업 프로젝트를 했다. 그게 <The Glorious Table>이 된 거다. 2014년 크라쿠프에 놀러 갔다가 건축하는 친구랑 근현대사 이야기를 했다. 폴란드랑 한국의 역사가 비슷한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어떻게 바뀌었나? 폴란드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나오면서 자본주의가 들어왔는데, 아직도 노동자 계층의 힘이 강한 편이다. 그렇다고 잘 사는 건 아니고 다 같이 힘들게 산다. '남한이 공산주의였다면 저렇게 됐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새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폴란드에 광산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카토비체인데, 카토비체 광부들이 대부분 어렵게 살고 있고 노숙자가 많다. 빈집도 많다. 사람들이 빈집 앞에 모여서 노숙하는 광경이 골목마다 있다. 그 친구가 그분들을 돕는 시민 단체에 속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문제 제기를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나랑 붙었고 폴란드 노동자 단체와 콜라보해서 비톰과 카토비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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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컸다. 초등학교 옆에 공장이 있었다. 그분들 생각도 나면서 내가 놓친 한국 사회의 부분을 지금 보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못 봤던 엄마 아빠 세대의 한국 사회를 보고 있구나 생각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노동에 대한 이야기, 공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국에 가져와서 프로젝트를 넓혀갈 생각이었다. 2015년에 시나리오로 써서 단편 작업을 시작했고 작품의 90%인 노동자와 컨베이어 벨트의 장면은 그때 작업을 끝냈다.
2016년 3월부터 겨울까지 <반찬 투정하지 마>관련 전시와 공연을 했다. 크라쿠프 오르간 페스티벌 Krakow Organ Festival에서는 <바느질하는 여자>랑 <뷰티풀>도 함께 세 작품을 모자이크처럼 맵핑을 했고 크라쿠프 국제 작곡가 축제Krakow International Composer Festival에서는 오케스트라와 맵핑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16년 말에 아이가 상품에서 태어나서 노동자로 돌아가는 장면을 만들고 2017년 5월경에 사운드 마스터링을 끝냈다. 그때 타이틀을 <The Glorious Table>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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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어떻게 시작했나? 이걸로 이 (머리 없는 신체) 주제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느질하는 여자>도 내 개인적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때까지 했던 사회니 시스템이니 노동자니 신체니 하는 것들은 ‘왜 나는 이렇게 살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 집에서 폭력을 행사하셨다. 그것 때문에 내가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것들이 비질비질 나오니까 짜증이 났다. '이걸 확 마지막으로 하고 끝내야겠다' 해서 캐릭터 이름도 아빠, 딸, 아들로 했다. <산>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도 아버지한테는 가해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얘기했지만, 우리 집이 엄청 가난했다. 사회에서 약자였던 아버지도 힘들었겠지. 사회에서 당한 폭력을 집에서 폭력으로 푼 거에 대한 변명을 하면서 '나도 피해자다"'하시니까... 그러면 다 가해자고 다 피해자구나. 그런데 나는 화가 나니까 이 작업을 해야겠다. 이래서 나온 게 <산>이다. <산>은 결말을 진짜 고민을 오래오래 하다가 결국에는 장면 하나를 못 만들고 끝냈다. 결말이 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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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인가? 내가 산을 무서워한다. 그냥 있는 산이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에 있는 산이 무섭다. 우리나라는 산이 되게 많아서 한국 전쟁이나 범죄 현장이나 가난한 집들 무너져 있는 근현대 사진을 보면 항상 산이 걸려있다. 그런데 그게 덤덤하게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나한테는 느껴지는 거다. 방관자로. 모든 걸 다 알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대한 존재처럼 보였다. '이 폭력도 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나야 된다'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도시는 아름답고 자연은 무서운가? 도시는 삭막하고 외롭다고 해도 어쨌든 아웅다웅 모여 있다. 그게 기하학적으로 정리된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이미 소란하기 때문에 나한테는 인간적으로 보이는데, 산 아니면 바다, 그런 큰 자연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신 같은 존재다. 거대하고 무섭고.
<산>에 등장하는 아이 캐릭터도 <뷰티풀>에 나온 포대 같이 딸의 몸을 수거하는 존재로 보았다. 역할은 같다. 아이는 딸의 아들이다. 아들은 그 상황을 방관하는 존재다. 자기는 이 폭력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한 거야. 폭력 안에서 안주한다. 아들은 상황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 그래서 (딸의) 머리를 다시 갖다 놓는 거다. <바느질하는 여자>나 쓰레기 수집가랑 똑같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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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lorious Table>의 신체들은 군무 공연을 하는 것 같다. <산>의 딸은 독무를 추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춤을 좋아한다. 어릴 때 뛰면서 춤추면서 꽹과리 치고 장구치고 그랬다. 초등학교 때 지역 사당패가 있어서 거기 가서 장구를 치다가 중학교 때부터 메인 리더 꽹과리, 상쇠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도대회에서 은상 받았다.
춤이 절제된 상태에서 감정을 은근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he Glorious Table> 은 사람들의 박자가 다 정해져 있다. 배경 앰비언트 사운드 빼고 몸 폴리 사운드만 따서 들으면 박자가 생긴다. 군무 연출도 의도적으로 했다. 행진을 하든 같은 일을 하든 동시에 움직이면 군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산>의 딸은 나갈 수 없는데,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움직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박자를 맞춰서 보여주면 좋겠다 했는데, 그러니까 신파가 되더라. 그래서 최대한 몸을 늘리고 몸을 정리하는 동작을 보여주면서 무작위로 나온 동작이다.
지금까지 말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음악이 없다. 의도적으로 피한 건가?
BGM이 들어가면 너무 거기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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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브이제잉을 한다. 나는 전자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사물놀이를 해서 그랬는지 국악도 많이 들었다. 브이제잉은 2016년 7월에 시작했다. <The Glorious Table> 끝나고 슬럼프가 나를 쳤다. ‘이제 애니메이션 못하겠다.’ 그때 WTP의 브이제이가 영국으로 가는 바람에 공석이 생겼다. 내가 방에서 곰팡이처럼 썩어가고 있으니까 친구가 “너 나와서 이거나 해” 하면서 허겁지겁 프로그램 배워서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브이제잉은 라이브 에프터이펙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음악 하는 친구, 디제이나 프로듀서를 따라서 영상을 송출하면서 효과를 집어넣고 그때그때 분위기를 극대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 반응이 바로바로 온다. 사람들이 미치는 게 눈 앞에서 보인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신나는 거다. 애니메이션은 한 1년을 작업을 해야 보여줄까 말까 하는데, 이렇게 보이니까. 그때부터 아직까지 코가 꿰어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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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브이제잉을 한다. 나는 전자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사물놀이를 해서 그랬는지 국악도 많이 들었다. 브이제잉은 2016년 7월에 시작했다. <The Glorious Table> 끝나고 슬럼프가 나를 쳤다. ‘이제 애니메이션 못하겠다.’ 그때 WTP의 브이제이가 영국으로 가는 바람에 공석이 생겼다. 내가 방에서 곰팡이처럼 썩어가고 있으니까 친구가 “너 나와서 이거나 해” 하면서 허겁지겁 프로그램 배워서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브이제잉은 라이브 에프터이펙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음악 하는 친구, 디제이나 프로듀서를 따라서 영상을 송출하면서 효과를 집어넣고 그때그때 분위기를 극대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 반응이 바로바로 온다. 사람들이 미치는 게 눈 앞에서 보인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신나는 거다. 애니메이션은 한 1년을 작업을 해야 보여줄까 말까 하는데, 이렇게 보이니까. 그때부터 아직까지 코가 꿰어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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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소스는 얼마나 준비하나?
길면 1분짜리가 있고 짧으면 15초짜리도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개, 12개로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 100개 된다.
<Unconfirmed Report of the Cell>도 브이제잉 소스인가?
그렇다. 갑자기 만들어서 그다음 날 파티에 썼다. 소스 자체는 2016년인가 2017년인가 만들어 놓고 2018년에 짜집기 해서 영상을 뽑은 거다. 융털을 만들면 예쁘겠다 해서 모델링하다가 나온 것들을 짜집기 한 거다.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 내 의식의 흐름을 잡아 놓은 것 같다.
이제까지 했던 드로잉이랑 완전히 다르다. 3D를 썼고 폴란드 냄새가 난다.
브이제잉 소스는 2D로 할 시간이 없어서 다 3D로 작업한다. 블렌더나 시네마4D로 만든다. 원래 가지고 있던 그로테스크한 아트워크가 많다. 브이제잉에는 내장 같은 거 많이 쓴다. 색감은 아무래도 폴란드 살면서 전시 보고 뭐 하고 하면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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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초에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브이로그는 일이 하도 없어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한 거다. (웃음) 찍는 거는 찍는 만큼 걸린다고 해도 편집하고 자막 치고 업로드하고 수정하는 거 하면 다섯 시간 최대로 잡는 것 같다. 비하인드나 메이킹 필름처럼 나름대로 모아 놓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Shower Monologue> 폴리 워크숍 영상도 만들었다.
원래는 (계원예대) 오윤석 교수님이랑 하는데, <Shower Monologue>는 돈이 없어서 내 동생 스튜디오에 가서 했다. 동생이 재즈 기타를 친다. 폴리는 내가 너무 재밌어하는 작업이다. 오 교수님이랑 작업할 때도 내가 다 짊어지고 가서 1초부터 땡 하고 끝까지 다 만든다.
배우 조셉 고든 래빗 만든 아티스트 커뮤니티다. 초기에 가입만 해놓았는데, 조금씩 성장하면서 많은 컬래버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더라. <Shower Monologue> 팀 PD 중 한 명이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나한테 연락을 했다. 마침 시간이 좀 비어서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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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는 한 명이었나? 그렇다. 원래는 애니메이션 안 넣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프로젝트가 바뀌면서 애니메이터 구한 거다. 내용이 되게 더러웠는데, 검열을 거치면서 애니메이션도 넣고 좀 귀엽게 나왔다. 그때 처음으로 펜으로 작화했다. 영상이 먼저 있었고 메인 프로듀서랑 에디터까지 한 보조 프로듀서가 있었는데, 그 둘이랑 행아웃으로 회의를 계속하면서 스토리보드를 같이 작업했다. 1~2주 정도 걸려서 스토리보드를 그쪽에서 마무리 짓고 내가 최종본을 받아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했다.
완성되고 난 다음 어떻게 전개되었나? 그 친구들이 내 작업을 좋아해서 작년 핼러윈 때 조셉 고든 래빗이랑 제시카 알바 ASMR에 내 작업이 쓰였다. 그렇게 홍보가 조금씩 되는 건데,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지는 않더라. 다들 하는 소리가 캘리포니아에서만 유명하대. (웃음)
거기 올린 작품은 계속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가? 내가 허락을 한 것에 한해서는. 우리가 만든 프로젝트를 어디서 사용을 했거나 상영을 해서 수익이 생기면 분기별로 1/N로 나눠 가진다. 아티스트한테 카드를 줬는데, 보면 돈이 들어와 있다. 크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성의 표시를 한다. 활동을 많이 하면 많이 번다. 나처럼 드문드문하면 그만큼만 버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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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 가기 전에 베를린에 있었다. 2014년 거의 통으로 베를린에 있었다. <바느질하는 여자>를 들고 오타와를 갔을 때 어떤 감독이 베를린이 내 작업이랑 맞을 수 있다며 가보라고 했다. 갤러리가 많은 거리 가까운 데 숙소를 잡고 도착한 날부터 방 구하러 다녔다. 메일을 100통 넘게 보냈다. "나는 누군데, 방 보러 가면 안 되겠냐" 그렇게 해서 방을 열몇 개를 봤을 때 다행히 같이 살자는 친구들이 있어서 2주 만에 호스텔에서 이사했다. 노이쾰른에 살았다.
전시도 했다. 한 30유로 줬나? 엄청 싸게 자전거를 하나 사서 포트폴리오를 들고 갤러리를 다 돌았다. 가서 무조건 보여줬다. “나 이런 거 한다” 영어도 잘 못해서 적어 갔다. 여차하면 이렇게 얘기를 해야겠다. 같이 살았던 친구 중 두 명이 베를린 예술학교 학생이었고 한 명이 다른 예술학교 학생이었다. 걔네들의 친구의 친구가 어디서 공연을 하는데 거기 놀러 갔다가 마음에 들었던 갤러리 오너가 우리 노는데 껴있어서 밀어붙였다. "내 걸 다시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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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베를린에서 개인전 할 때 <드럼 Drum>을 만들었다. 머리가 없는 신체, 사회 속의 노동자들을 보여주는 단상이다. 내 세계관에서는 바느질하는 여자가 올려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뷰티풀>이고 한편으로는 노동자 계층이다. 사회를 유지시키는 사람들을 보여준 게 <드럼>이랑 <플레이>다.
나중에 그 전시장 맞은편 공연장에서 브이제잉을 했다. 그때 AX APE라는 실험음악 팀의 크리스토퍼 가트지스Christopher Gartges가 보고 나에게 협연 제안을 해서 2016년 베를린 아트위크 때 AX APE x VJ ZIN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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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간 결정적 계기가 크라쿠프의 한 박물관에 감명을 받아서였다.
크리코테카Cricoteka다. 타데우쉬 칸토르Tadeusz Kantor는 진자 진짜 진짜 멋있다. 작업이 진짜 강하다. 퀘이 형제도 이 사람 영향 많이 받았다.
그 영향이 작업에 반영되었나?
<The Glorious Table> 마무리를 거기서 하게 된 계기였다. 지금도 극을 구성하는 방법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대사를 치는 타이밍이 되게 특이하다. 폴란드 극은 건조하고 어둡고 침울한 게 극대화되어 있다. 대사를 사용하는 방법, 다이얼로그가 들어가는 방법이 퍼즐 맞추는 것 같다. 티키타카 되는 게 아니라 대사가 거기 들어가야만 해서 들어간다.
대사 들어간 작업을 한 적 없다. <나무아기(가제)>에 대사가 나오나? 아니다. 대신 나는 동작으로 만든다. 여기서 저기까지 달려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이렇게 되고 동작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 이런 식으로 내 나름대로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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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을 돌아보자면 <바느질하는 여자>는 앉아서 팔이 바늘이듯 실이듯 쭉쭉 늘어나고 <뷰티풀>은 전후좌우로 직선적이고 <The Glorious Table>은 전방위로 유동체처럼 움직였다. <산>에서는 예측할 수 없이 연속되고 분절된다. 움직임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발전하는 것 같다. 발전하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다. 작화를 항상 더 잘하고 싶은데, 내가 좀 게으른 편이다. 움직임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시작을 한 거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나무아기(가제)> 다음 계획이 있나? <나무아기(가제)>가 시리즈가 됐으면 좋겠다. 엄청 많은… 우리는 만 신이잖아. 욕심대로 된다면 신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Zoom 인터뷰 2021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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