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 Grace Nayoon RHEE
- 2020년 11월 24일
- 11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5일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맞붙은 조용한 동네 초입. 큰길 건너 오래된 상가 건물 두 층을 차지한 말끔한 찻집에서 이나윤 감독을 만났다. 2010년 대학원에 진학하며 10여 년을 미국에서 지내 2019년 8월 귀국했고 지난달 첫 개인전 '심연의 놀이터'를 열었다. 다음 달 초로 예정된 전시에서는 8년 동안 붙잡고 있던 작품을 마침내 내놓을 계획이다. 연달아 몰아치는 일정 사이 한 숨을 돌릴 겸, 오후의 티타임을 가졌다.
View (2009)
펜실베이니아 출신이다.
헌팅턴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땐가 앨라배마 쪽으로 이동을 해서 펜실베이니아 기억은 거의 없다. 앨라배마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있다가 여름 방학 때 한국에 와서 2학년 2학기부터 다녔다. 한국말이 그렇게 유창하진 않아서 처음에 좀 고생했다. 학교 갔을 때, 모르는 단어도 너무 많고 그러니까.
이번에 미국 대선 투표했나?
했다. 9월 중순쯤 부재자 투표 신청했는데 안 오는 거다. 10월 중순쯤에 다시 연락하고 이머전시 백업 밸럿으로 보냈더니 캘리포니아는 이메일로 안 받는다고 해서 팩스로 보냈다. 트럼프 되면 다시는 미국 안 가야지 했었다.
<VIEW>는 홍대 졸업작품이다.
2009년 2월에 졸업했다. 3학년 끝나고 겨울방학 때부터 졸업작품 준비한다고 아이디어 내고 그랬다. 처음 기획한 건 아예 다 버렸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 연습장에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한 가지 테마가 있더라. 뭐가 먼저 왔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 주제를 해야겠다고 그렸다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걸 항상 그렸던 거다. 학기 시작하고 이야기 구성하고 연습장에 있던 그림들을 토대로 (스토리)보드를 했다. 사실 그때 마무리가 다 안 돼서 졸업하고 4월인가 5월인가, 한 1~2개월 정도 고양이 시계 시퀀스를 만들어서 추가했다.
엄마의 교통사고를 암시하며 엄마가 사라진 후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그렸다. 분리불안을 느낀 적이 있나?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하셨다. 그것이 교통사고로 표현이 됐다. 나랑 내 동생이 똑같이 갖고 있는 기억이 있다. 우리가 미국에서 어머니랑 먼저 한국에 왔다. 그 당시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고 그 상황도 이해한 건 아니었는데, 차를 타고 뒤의 창문으로 집을 떠나는 걸 보는 기억이 똑같이 있더라. 신기하게도. 이게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는 장면이겠다 싶었다.
오일파스텔, 크레용 같은 것과 연필을 사용했다. 낙서의 이미지를 가져온 건가?
낙서는 보통 볼펜으로 많이 했다. 작품은 크레파스랑 오일파스텔이랑 색연필 이렇게 세 가지를 사용했다. 그때 당시 내가 즐겨 쓰는 재료이기도 했다. 또 애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니까 크레파스 같은 재료의 특성이 주제랑 맞지 않나.
<VIEW>에는 사운드, 음악 크레디트가 없다. 다 직접 작업했나?
작곡은 안 하고, 무료 사운드 소스 사용한 거다. 사운드 어떻게 작업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했다. 프리미어에 갖다 붙여가지고 믹스도 레벨 조절도 하나도 안 되어 있다.
캐릭터 디자인을 보면 사람들 머리가 컵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언제부터 등장한 캐릭터인가?
<VIEW>를 시작하면서부터 머리가 납작한 애들을 그렸던 것 같다. 왜 그렇게 그렸는지 모르겠다. 뭔가 의미를 갖고 머리를 잘라냈다고 생각 안 했는데,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있더라. 뇌가 날아가서 (웃음)
고양이 시계는 소장품인가?
갖고 있는 가필드 알람 시계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거에 관한 일화를 풀어 쓰려다 보니까 고양이 시계로 표현했다.
첫 작품이 인상이 무서운 분위기라 갖게 된 생각인데, 공포영화 좋아하나?
아니다. 특히나 어렸을 때는 진짜 싫어했다. 공포영화 보는 건 아직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좀 상반된 감정인 것 같다. 보고는 싶은데, 못 보는? (웃음) 호러물이 갖고 있는 소스들은 매력적인 것 같아서 끌리기는 하는데, 막상 보기는 무서워서 잘 못 본다. 최근에는 그래도 많이 보려고 한다. 슬래셔는 안 좋아하고 심리적으로 쪼여오는 걸 좋아한다. 호러보다는 스릴러 쪽? 아니면 오히려 80년대 호러 영화들? 비주얼 적으로 허점이 보이니까 무섭다기보다는 재밌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볼려고는 노력은 하지만 (웃음) 무서워.
Insect Bite (2015)
졸업하고 바로 칼아츠CalArts로 갔다.
한 1년 반 정도 있다 갔다.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다. 전시도 하고 영화제도 그때부터 알게 돼서 해외여행 다니다가 2010년 9월에 들어갔다.
<Nail Scratch>는 손가락을 긁어서 피나는 이미지다. 실제로는 못하는 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건가?
테크닉적인 걸 테스트를 해보다가 만들었다. 복사기였나 스캐너였나, 내가 뭘 해보겠다고 실험을 하다가, 그 이미지가 마치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것 같아서 여기다가 물감으로 레이어를 만들어서 얹으면 긁은 것 같겠다. 그렇게 쉽게 접근했다.
칼아츠 시절 먼저 나온 단편이 <트라이앵글 TRIANGLE>인데, 작품 속에 스트레인저 시리즈가 보인다.
<트라이앵글>보다 <벌레 INSECT BITE>를 먼저 만들었다. 둘 다 칼아츠 수업 내에서 만들었다. ‘드로잉 테크닉’이라는 수업에서 주제를 던져 줬다. 곤충에 물리는 거, 떨어지는 거 'Fall'. 그 두 가지 주제 중에 하나를 골라서 아무거나 만들어라 했는데,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해야겠다 해서 <벌레>를 만들었다. 칼아츠 첫 학년 때 'First Year Short'라고 1년 동안 단편을 기획해서 만드는 수업이 있다. 거기서 만든 작품이 <트라이앵글>이다.
<벌레>는 진짜 빨리 만들었다. 한 달만에 만들었던 것 같다. 사운드 작업을 안 해서 내버려두었다가 나중에 사운드 작업해서 상영했다. 학교 다닐 때 만나던 친구의 친구가 항상 내 작품을 좋아해 줘서 새로 작품을 만들면 계속하고 싶다 했는데, 마침 딱 그걸 발견을 해서 ‘아 그럼 이거 해줄래?’ 하고 메일로 아이디어 주고받으면서 작업을 했다. 보통 작업할 때 사운드 디자인을 내가 러프하게 해서 준다.
TRI▲NGLE (2012)
학년작인 <트라이앵글> 제작 과정은 어땠나?
첫 학기 때는 매주 이것저것 짤막짤막한 실습을 해왔다. 그러면서 스트레인저 시리즈를 만들었다. 거의 2학기 때부터 기획으로 들어갔다. <트라이앵글>도 학기말까지 완성을 못했다. 컬러 부분에서 큰 트라이앵글이 나오다 쨍하는 거기까지 완성해서 마무리는 했고 그 뒷부분을 겨울방학 때 만들어서 완성했다. 뒤늦게 마감하는 게 습관인가 보다. (웃음)
스트레인저 시리즈는 <트라이앵글>를 염두에 두고 한 건가?
할 때는 그렇게 연관성을 가졌다고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때 당시에 안에 있는 게 토해져 나오는데, 그게 위로 분출할 것 같은 모습에 꽂혀있었던 것 같다. <트라이앵글>도 기획할 때 연습장을 봤다. 정말 단순한 그림이었다. <트라이앵글>에 나오는 동그랗게 생긴 애가 엄청 큰 삼각형을 던지는 장면이었다. 그 동작이… 그냥 하나의 그림이긴 했는데, 뭔가 그려지는 거다. 이걸로 이야기를 한 번 풀어봐야겠다 해서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봤다.
캐릭터가 셋이 등장하는데, 원래 둘이 있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는 순응을 하고 하나는 반항을 한다.
제일 처음은 이미지적인 걸로 시작했는데, 세 명의 캐릭터들이 어떨 것 같다고 캐릭터 설정을 하고 보니까 얘네의 관계가, 한 명은 순응을 할 것 같고 한 명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고 '얘 때문에 얘네 둘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 같다' 그런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됐다.
캐릭터는 말랑말랑 마시멜로우 같은데, 피를 분수처럼 뿜는다. 뭔가 터트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쌓인 게 많았다. 미국 가기 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되게 친한 친구와 여러 가지 일로 완전히 틀어졌다. 그 친구와 또 다른 친구와의 관계도 막 얽혀있었다. 사람 관계라는 게 나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제삼자가 들어왔을 때 반응할 수 있는 게 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런 이야기로 풀어졌던 것 같다.
사운드 크레디트가 두 명으로 늘어났다. 사운드와 사운드 믹싱. 학교에 컬래버레이션할 수 있는 과가 있었나?
칼아츠 1학년 때 프로덕션 수업에서 사운드 믹싱까지 준비를 시킨다. 학교 캠퍼스가 좁다. 음악과랑 씨어터랑 아트랑 필름이랑 다 같이 있어서 만날 기회가 많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 친구였다. 작업 스타일이 엠비언스랑 드로운 사운드drone sound 위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이거랑 하면 어울리겠다 싶어서 내가 부탁했다. 믹싱은 사운드 수업 TA였던 것 같다. 당시에 믹싱은 다 그 친구가 했던 걸로 기억한다.
Unicorn (2018)
필름 작업은 2학년 때부터 한 건가?
칼아츠가 1학년 때는 완전 기초적인 것을 가르치는 수업이 많다. 석사임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을 안 하다 온 친구들도 많다. 2학년 때부터는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정말 아무 틀도 없다. 나는 그런 게 잘 맞았다.
그때 추천을 받아서 들었던 수업들이 16mm 필름 사용하는 수업들이었다. 필름 디렉팅, 필름 비디오, 실험 애니메이션, 캐릭터 애니메이션과가 있는데, 필름 비디오 전공 수업에 16mm 필름 사용하는 수업이 되게 많다.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원래 텍타일tactile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필름으로 사진 찍는 거 되게 좋아해서 일부러 그런 수업들을 많이 골라서 들었다. 그때 만나던 친구도 그런 거랑 스톱모션 쪽을 좋아하던 친구라서 그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촬영기법을 배운다기보다는 재료 자체에 대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수업들이었다. 카메라와 필름이 주어지고 필름 종류마다 이런 이런 실험을 해봐라 그래서 직접 현상해보기도 하고 옵티컬 프린팅도 하고, 되게 자유로웠다. 필름은 수업 때 기본적으로 실습용으로 제공됐다.
작품 보면 필름에 스크래치가 많은데, 일부러 낸 건가?
내가 현상도 직접 했다. 정말 깨끗하게 하려면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깔끔한 비주얼, 그런 에스테틱을 원했던 건 아니어서 조심스럽지 않게 했다. 필름 막 구겨서 넣고 흔들고.
의도적으로 만들었나? 의도치 않게 원하는 게 나온 건가?
의도치 않게 원하는 게 나오기도 했고 내가 조심스럽게 하는 성격이 아니라 에너지가 그렇게 전달 된 것 같다.
화면 스크래치는 <VIEW>부터 보였다. 화면을 긁고 싶은, 화면을 가만 놔두고 싶지 않은 것은 오래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 같다. 내 성격이 작업 방식이랑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인내심을 갖고 깔끔하게 뭔가를 그리는 성미랑 잘 안 맞아서. 당연히 컨트롤이 돼있긴 하지만, 그림도 표현 자체가 직설적이지 않나. 스크래치 같은 것도 직설적인 표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매끈한 화면을 보면 더럽히고 싶고 찢어버리고 싶나?
아니 그렇진 않은데, 내가 매끈한 걸 그린다는 상상이 잘 안 된다. 어려울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필름 작업을 했던 것이 연도 상으로는 <말 HORSE>만 2012년이고 <유니콘 UNICORN>이랑 <시시포스 SISYPHUS>는 2015년으로 되어 있다.
사운드를 나중에 넣어서 발표만 늦게 했을 뿐이지 다 학교 다닐 때 했다.
필름 작업들은 나이트메어 시리즈라고 부르는 건가?
그걸 졸업작품으로 하려고 한 10부작 정도로 기획을 해놨다. <유니콘> 먼저 제작하고 나머지를 해야겠다 했는데, 다른 방향으로 간 거다. 나머지도 기회가 되면 만들고 싶다. 아직도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다.
카메라와 16mm 필름만 주어진다면?
꼭 필름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풀어내고 싶은 아이디어는 있다.
<말>은 진짜 고전 흑백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취향인가?
필름 작품들보다 보니까 그런 취향을 가졌던 같다. 그 이미지 자체가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흑백으로 촬영했지만 파란색 말이 노란 들판에서 불에 타는 이미진데, 그 상황이 너무 로맨틱하다.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관통하는 설명이 있을까?
그 시리즈가 사실은 내가 꾼 악몽들이다. <유니콘>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그 당시에 진짜 꿈을 많이 꿨다. 다 동물들이 나타나는 꿈이었다. 졸업작품 준비해야 된다는 압박이랑 만나던 친구와의 관계라던가 전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까 그런 꿈들을 많이 꿨던 것 같다. 관통하는 주제는 그 당시 내 상황이 동물들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거 같다. 고양이도 나오고 다람쥐라던가 토끼라던가. 박쥐라던가 그런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꿈에서 동물들이 항상 공격적이다.
대표적인 동물이 토끼다. 토끼가 보기와는 다르게 실제로도 포악하다고 한다.
토끼라는 게 순수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강한데, 이상하게 내 꿈에서는 되게 포악하다. 나를 막 공격하고. 내가 느끼는 불안함이 토끼라던가 다람쥐라던가 설치류로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나의 이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유니콘>에 등장하는 토끼는 겉모습도 귀엽지 않고 뒤에는 키메라처럼 다른 동물들과 합쳐져서 무시무시해진다. 스톱모션 작업은 수업이 있어서 필름이랑 결합한 건가?
홍대 다닐 때는 계속 2D를 했고 칼아츠 가서 <트라이앵글>도 그렇고 <벌레>도 그렇고 계속 2D를 했다. 2D는 이제 내가 할 줄 안다.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 스톱모션 해봐야겠다 했다. 그때 수업을 듣기도 했고. <유니콘>이 처음 해봤던 스톱모션이다. 그전에 자잘하게 과제로 했었지만. 재밌기도 했는데, 이건 혼자 하기 어렵구나 깨달았다. 혼자 커버해야 되는 게 너무 많은 거다. 라이팅이라던가 세트 디자인하는 거라든가. 너무 많은 모자를 써야 했다.
<유니콘>에는 배우도 등장한다.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들이었다. 남자는 같은 반 친구였고 여자는 다른 학년이긴 했는데 원래 구면인 친구였다.
본인들의 눈이 파진다는 걸 알고 했나?
모르고
보고 뭐라고 하던가?
별말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웃음)
Sisyphus (2015)
<시시포스>는 재미있는 인형들이 나오는데, 기성품인가?
그렇다. 계속 넘어지는 롤러스케이트 타는 토끼는 미국에서 친했던 친구의 어린 시절 장난감이다. 친구네 집에서 인형을 보여줬는데 그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이것도 뭔가를 엄청 기획하고 했다기보다는 인형이 자꾸 넘어지는 상황을 촬영해봐야겠다 했다.
밑에 있는 고블린 같은 인형도 친구 건가?
걔네는 내 건데, 누르면 목소리 나오는 인형이다.
<시시포스>는 편집이 하나도 없다. 촬영된 그대로가 작품이다. 혼자 뒷마당에서 카메라 설치하고 촬영을 했다. 인형이 계속 넘어지니까 다시 일으켜야 되는데 카메라도 내가 눌러야 되고 너무 정신이 없었다. 뒷문을 열면 부엌으로 연결되는 집이었는데, 들어오니까 벌이 막 기어 다니고 있는 거다. 다리를 다친 건지, 날개를 다친 건지. 그런데 뭔가 그 상황이랑 이 상황(계속 넘어지는 인형)이랑 너무 들어맞는 거다. 그래서 그 벌을 촬영했다. 작품을 만들면 우연적으로 들어맞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뭔가 엄청 계획을 하기보다는.
<유니콘> <호스> <시시포스> 세 필름 작업이 칼아츠 졸업작품인가?
졸업작품으로는 놀이터, <더 플레이그라운드 The Playground>를 기획했다. 2학년 때 졸업작품 기획하는 수업이 있다. <유니콘>이랑 그런 것들로 악몽 시리즈를 하겠다 발표까지 했는데, 뒤늦게 놀이터 아이디어가 생각난 거다.
밤에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데, 어떤 남자가 앞에 지나갔다. 유유자적 걸어가는 걸 보고 있는데, 잠깐 생각에 빠져서 다시 보니까 그 남자가 없는 거다.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이 놀이터를 통해서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그 놀이터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보여 준 놀이터인가? 다음 전시에서 보여줄 놀이터인가?
두 개 다 맞다. 이번에 전시했던 실사 촬영 작업이 원래 기획이었다. 그때만 해도 졸업작품은 악몽 시리즈로 하고 놀이터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재밌게 해봐야겠다 했다. 그런데 하면서 아이디어가 자꾸 막 디벨롭되니까 나 이거 애니메이션으로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 그래서 그런 길로 빠지게 됐다.
The Playground (2020)
2월에 공개할 스톱모션 작업은 얼마만큼 했나?
12월 2일부터 전시를 한다. 필름은 거의 다 완성됐고 포스트 작업이 조금 남아있다. 컬러 작업은 친구가 전시 1주일 전에 마무리해주는 걸로 했다.
스톱모션 말고 다른 기법들이 섞여 있는 건가?
내가 하던 모든 걸 총동원하는 느낌이다. 16mm 필름, 이번 전시에 보여줬던 장면들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고 스톱모션도 있고 아주 조금이지만 2D 엘리먼트도 있고 페인트 온 글라스도 있다.
7~8년의 기간 동안 조금씩 해온 건가? 아니면 한참 놔뒀다가 지금 왕창 몰입해서 만든 건가?
스톱모션으로 해야겠다 생각을 한 게 2013년 1월이었다. 졸업이 5월이었고. 그때 시작하니 당연히 완성을 못했다. 그때 촬영이 실사는 다 끝났고 스톱모션은 절반밖에 못 끝냈다. 졸업하고 나서 스튜디오를 한 두 달 빌려서 따로 촬영했다. 고맙게도 칼아츠에서 친했던 교수님이 장비를 빌려주셔서 촬영은 그때 다 마무리했는데,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게 잘 안 됐다.
일 년에 한 번씩은 '이거 해야 돼’ 잠깐 프로젝트 열었다가 또 얼마 못 가고. 2019년 1월에 '진짜 완성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사운드 작업을 맡겨버렸다. 나 혼자의 의지로 잘 안 되니까, 누군가 인볼브 되어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도 내가 해야 되니까 (웃음) 컬러도 잡아 놓고 사운드 작업 끝내고 했는데, 한국을 놀러 오면서 또 안 하게 됐다. 결국 이런 큰 데드라인이 있어서 완성을 하게 됐다.
2019년에 완성하려고 했을 땐 영상은 픽스된 상태였나?
편집은 픽스가 됐었다. 이게 지체가 됐던 이유가 있다. 내가 에프터이펙트를 진짜 못한다. 근데 <더 플레이그라운드>가 후보정이 많다. <유니콘> 때 잠깐 하긴 했지만, 이렇게 긴 스톱모션 작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실수가 많았다. 예를 들어 배경을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처음 촬영할 때부터 잘 설정을 했으면 고생을 안 했을 텐데 그런 계획이 부족했다. 이미 했으니 어떡해. 수습을 하려다 보니까 에펙으로 해야 되는 게 너무 많았다. 그게 하기 싫어서 미루는 게 반복되다가, 뭐 어떻게든 됐다.
Help Me Help You (2017)
2017년에는 학교 친구들과 CG RIBS를 했다. 주축이 돼서 꾸려나갔던 것 같다.
나 포함해서 6명이었다. 다 칼아츠 출신들이다. 학년도 다른데, 제일 친한 친구들이었다. 다 졸업을 하고서 자기 개인 작업을 이어가는 게 쉽지가 않아서 고민을 했다. CG RIBS가 있기 전에 다른 모임이 있었다. 학교에서처럼 서로 작업하는 과정 보여주고 서로 피드백 주는, 그래서 뭔가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는 모임이었다. 인원이 한 10명이었는데, 자꾸 부딪히는 일이 있어서 흐지부지 없어졌다.
그런 것도 있었다. 개인 작업을 병행한다고 하면 되게 중요한 얘기를 해야 될것 만 같고 의미가 있어야 될 것만 같은 부담을 가질 때가 많다. 진짜 즐기면서 만들 수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내가 돈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좋아서 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우리 뭐가 됐든 하나를 같이 하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서 되게 재밌었다.
<헬프 미 헬프 유 Help Me Help You>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
우리가 어떠한 주제를 이야기 할까 하다가, 처음이니까 간단하게 자화상으로 정하자. 자화상이라는 게 나를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작가로서 어떠한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거를 재밌게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인트로처럼? 그렇게 주제를 잡아서 각자 자기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걸 보여줬다. 작업은 각자 하고 앞 뒤로 이어가는 엘리먼트만 같이 정했다. 아쉬운 게 그 후에 이것저것 이어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서로 바쁘니까 진행이 안 됐다. 근데 공개한 건 <헬프 미 헬프 유>뿐이지만 그 외에도 별 이상한 프로젝트들 같이 많이 했다.
2013년에 졸업하고 2019년에 한국 오기 전까지 6년간 미국에서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일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그냥 살 만큼은 벌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내가 그냥 버는 만큼 버는 거고 그런 마인드였다.
주로 지인들이 일을 주었다. 사실 칼아츠를 나온 것도 인맥, 네트워크를 만든 게 제일 크지 않나. 거의 모든 일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소개해주거나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소개해주거나 해서 잡았다.
프리랜서 일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나?
탈라 마다니Tala Madani라고 잘 나가는 화가 분이 있다. 원래 유화 위주로 하시는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싶어 하셔서 그분이랑 작업을 했는데 새로웠다. 애니메이터랑 페인터랑은 생각하는 과정이 다르더라. 소통하는 과정이 어렵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서로 원하는 거라든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기도 하고, 챌린징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많이 한다. 지금도 연습장에 스케치, 낙서 많이 하나?
최근에는 많이 안 한다. 아이디어 위주로만 그리지 그림을 앉아서 그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쉽다.
‘제시카는 너무 멍청해'는 선이 공들여 정리된 이미지였다, 따로 구상하는 시리즈인가?
애니메이션으로 기획을 해보려고, 어디에 지원해보려고 공들여서 만든 거다. 항상 아이디어는 많다. 어떤 걸 추진해서 끌고 갈 거냐 결정을 잘해야 되는데, 그중 하나다.
컵 캐릭터처럼 생긴, 본인 캐릭터 같은 ‘우울한 나나의 일상'도 시리즈처럼 했다.
데일리 두들로 시작을 했는데, 뭔가를 걔로 하면 재밌을 것 같다 생각은 했다. 이모티콘 같은 걸 만들까 아니면 그림 시리즈로 만든다거나? 아직 구체적인 건 없다.
서커스 시리즈 일러스트레이션을 판매했다. 뭔가 하면 시리즈로 진행하는 하는 거 같다.
그때도 서커스에 꽂혀서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만나는 친구가 링링브라더스Ringling Bros. 서커스 책자를 갖고 있었다. 90년대 그 친구가 어렸을 때 갔던 거였는데, 책자 자체가 너무 예쁜 거다. 사진이랑 그런 게.
칼아츠에서 여름방학 때 아티스트가 스타트업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사업 아이템으로 아트 토이 같은 걸 기획을 했다. 그때 서커스 테마 기획이 맞물렸던 것 같다.
작업 양이나 작업의 스타일이나 시간이 꽤 들었을 것 같다.
오일파스텔로 작업을 했다. 그림이랑 애니메이션이랑 다른 게, 아무리 시간이 들어도 그림은 빨리 결과물이 나오잖아. 애니메이션은 이미 내 머릿속에 완성이 천만 번은 됐는데, 아직 손이 안 따라오니까 그걸 끌고 가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 의미로 그림 한 장을 그려내는 것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기법 실험도 계속했다. <Playground on Fire>를 작업했을 때 이미 놀이터 애니메이션을 하겠다 생각했었나?
놀이터 계획이 있었지만 이거를 여기에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때 실크스크린을 처음 배워봤다. 애니메이션을 하니까 그냥 이미지를 하는 것보다 애니메이션 해봐야겠다 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게 힘들거나 지겹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나?
작업하는 굴레에 들어가면 괜찮은데, 들어가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제작 자체보다는 아이디어 내고 기획하는 게 재밌다. 제작에 들어가면 재밌는데 그 문턱을 넘는 게 어렵다. (웃음)
그래서 누군가 마감을 잡아주길
그런 성격이더라. 뭔가 정해져 있어야 나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끝낸다.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스트럭처가 있으니까 많은 작업을 했는데, 사회에 나오면서 뭘 먼저 해야 되고 뭘 어떻게 진행해야 되고 하는 방향성을 잃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강의하는 건 어떤가?
1년이 지났는데, 나도 배우면서 하고 있다. 나름 재밌기도 하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도 공부하는데, 내가 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게 커지는 것 같다. 그런 자극은 확실히 있다.
다음 작업은 ‘제시카는 너무 멍청해'가 될까 아니면 다른 작업일까?
‘제시카'는 언젠가 하고 싶다. 악몽 시리즈를 책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생각 중이다.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되게 큰 변화였다. 미국에 오래 있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온 거다 보니까 당시에 느꼈던 게 컸다. 그때 느낀 것 그리고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좀 더 구체화시켜서 애니메이션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러 개의 아이템 중에서 특별히 더 구체화된 건 없나?
시나리오 다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런 걸 먼저 하면서 다른 걸 구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금 전시를 두 번 하면서 너무 푸시한 거는 있지만, 빨리 다음 걸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긴 것 같아서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새 작업을 오랫동안 못해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었다.
2020년 11월 12일 @동부이촌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