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 JANG Nari
- 2020년 7월 24일
- 10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4일

2012년 골칫덩어리 백수 동생/아들을 벌레로 묘사한 <홈 스윗 홈>을 우리 집 일인 양 공감하며 봤다. 4년 뒤, 가장의 폭력으로 갈라 선 그 집의 지난 사정을 <아버지의 방>을 보고 알았다. 2017년 웹애니메이션 <한심해서 죄송합니다>와 <검은 악어>는 빠르게 스케치한 다 자란 딸의 현재, 작가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2018년 장나리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집에서 고양이 랭보의 밥부터 챙기고 이미 방영되었던 대하드라마를 들으면서 <아홉 살의 사루비아>를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은 2월에 마쳤고, 얼마 전에 사운드가 끝났다는 장나리를 만났다.
HOME SWEET HOME (2012)
<홈 스윗 홈>의 기획은 언제 시작했나?
4학년 때다. 교수님이 “사람들은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장면-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 이미지를 작업해야 한다” 나는 그 말이 기억에 남았고 작업을 할 때 항상 떠올리게 되었다. 나에게 각인된 장면은 누군가의 장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 나를 제일 힘들게 하던 게 내 동생이었고, 내가 못나고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인간이란 걸 알았다.
동생의 대출금 문제로 싸우다가 엄마는 나가라고 하고 동생은 비닐봉지에다가 옷을 막 넣고 울면서 나간다고 하고, 또 엄마는 얘가 밤에 나간다고 하니까 날 밝으면 가라고 하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이 동생이 “나갈 거예요!" 하면서 우는데, 얘가 내 동생인데, 얼굴이 정말 노인처럼 화악 늙어 보였다.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때 엄마랑 내가 동생을 어떤 눈으로 봐왔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말은 안 하지만 ‘이 한심한 놈’하는 그 눈빛. 눈빛으로, 한숨으로 때리는 거다. 그때 또 다른 의미로 엄마와 내가 동생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알게 됐다.
학교에서 처음 기획 발표를 했을 때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 동생은 나와 다르게 모난 성격도 아니고 밝고 애교도 많다. 극 중에서도 그런 천연덕스러운 성격들이 표현이 되는데 만원을 2만 원으로 갚겠다는 허풍도 잘 떨고 잘 웃는다. 동생을 그리면서 알게 된 게 집에서 미움받는 아이는 더 많이 웃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런 마음은 작업을 다 한 다음에 아니면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건가?
기획 단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저놈을 얼마나 벌레 같이 느끼는지, 그런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했다.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거 하면 떠오르는 문학 작품이 있다.
그런 순간이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 ‘이게 뭔 소리야?’라고 했다가 시간이 되게 많이 지나서 ‘어 그게 이런 거였나 봐.’라고 깨닫게 되는 (웃음) 나한테 『변신』은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읽었을 때는 뭔지 잘 이해를 못했던 것 같은데, 동생의 그런 일들을 보면서 그레고르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 그래서 누나가 화장품 병을 던져서 동생 등에 박히는 장면이 있는 거다. 오마주 한 거라고 할 수 있다.
동생은 사람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와 누나의 눈으로 볼 때는 벌레가 되고 집을 나가기 전에 다시 사람이 된다.
엄마와 내가 어떤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는지 표현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변신』을 생각하고 캐릭터를 그렇게 한 건 아니다. 그 집이 그 당시 우리 집과 구조가 똑같다. 한 열 평 정도 되는 되게 작은 집인데, 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싱크대 있고 화장실, 큰 방, 작은 방 있는데, 방에서 방을 잇는 통로 같은 작은 거실이 있었다. 내 동생이 키가 180이 넘는데, 그 긴 애가 이불을 둘둘 말고 현관 앞에서 자는 거다. 그렇게 길게 누워 있는 걸 보면서 변태 하지 않은 나비 같은, 애벌레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불 말고 누워있는 그 꼴이 애벌레처럼 보여서 벌레로 그리다가 『변신』이 떠올랐고 화장품을 던지는 장면들이 나중에 추가됐다. 처음에 의도한 건 아닌데, 어딘가 의식 속에 그게 있었나 보다. 집을 나가기 전에 사람이 되는 이유는 모진 시선과 말에 상처 받아왔을 동생의 고단함과 아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폭력을 겪은 자식에게 ‘지 애비 닮았다’ 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다.
동생은 엄마가 나가자마자 일어나서 국을 흘리면서 퍼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안 치우고 놔둔다.
정말 그랬다. 꼴 보기 싫었던 거를 다 넣었다. 걔가 항상 종이 가방에 키보드를 넣어서 들고 다녔다. PC방 키보드. 자기 전용 키보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창문 바로 앞이 골목인데 들어올 때마다 항상 가래침을 한 번 칵 뱉는 소리가 들렸다.
배경도 실제 공간을 잡아서 참고했겠다.
가구나 이런 것들은 조금 다르게 그리는데, 집 구조 자체는 똑같다. 그냥 카메라 들고 찍으면 로케가 다 끝났다. 2009년에 『그가 내게 남기고 간 것』 원고 하면서 많이 찍었다.
김희연, 윤찬호가 이때부터 작품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남자분이 남편 친구다. 그렇게 해서 여자분도 연결이 되었다. 내가 성우를 모르니까 연기하는 사람을 찾다가 배우를 찾게 됐다. 연극 배우시고 여자분은 드라마에도 나왔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계속 같은 분들과 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웃음) 남자분은 공교롭게도 그분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와 비슷해서 <아버지의 방>에서 그 연기를 잘해주셨다. 되게 마음에 들었다. 그 연기가 내가 들었던 그 소리 같았다.
아버지의 방 (2016)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갔나?
졸업을 하고 나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 너무너무 작업이 하고 싶었다. 주변에 친구들은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나는 학원에서 남의 그림 봐주고 있으니까 ‘내가 애니메이션 한 적이 있었나?’ 꿈처럼 느껴지고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더라.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작업을 할 건데, 학위도 받으면 1석 2조네?’ 하면서 2014년에 대학원에 갔다.
<아버지의 방>을 2학년 때부터 시작한 건가?
1학년 때부터 기획은 계속하고 있었다. 딱 그 시기에 이종사촌 언니가 결혼을 했는데, 내가 처음 본 결혼식이다. 왕래가 많은 집은 아니었지만 내가 알기로 이모부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셔서 ‘저 언니는 아버지가 없는 결혼식을 하고 있어.’라는 거만 알았다. 그런데 자꾸 감정이입이 되면서 많이 울었다.
그 결혼식을 보면서 아버지가 없는 내 결혼식을 상상했다. 아빠의 인생에서 내가 없는 시간들을 생각했다. ‘부모라면 당연하게 겪을 수 있는 순간들이 내 아빠한테는 없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민 같은 게 조금. 용서를 했다는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는 참 안 됐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면서 그 결혼식 때 엄청 운 거지. 그 일이 있고 좀 지나서 기획을 했다.
스토리를 정해놓기 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간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뿌리를 들어내는 일이었다. 축약하지만 디테일해야 했고 그래야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인공에게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보여주어야 그다음이 납득이 될 테니까 구조적으로 필요한 것을 생각했다. 이거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어떤 장면들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면 소스가 너무 많았다. 뭘 빼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각각의 장면들이 나한테는 다 강렬했다.
실제 경험을 담았다. 구조를 짜다가 새로 만들기도 했나?
약간 편집된 건 있겠지만 만들어낸 건 없다. 길거리 포차 같은 데서 술을 먹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 보면 못 본 척하고 갔는데,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공사장 앞에서 주인공이 부끄러워하는 걸 보여주게 했다. 엄마 없이 집에 동생이랑 둘이 있는데 늦게까지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집에 있는 온갖 흉기들을 다 숨겨놓고 보일러실이나 옷장 안에 숨어 있었다. 책상 밑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술이 다 깨져버렸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로 쓰면서 분노의 샤프질을(웃음) 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있었다. 길에서 머리채 잡혀서 끌려가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던 것도 고등학교 때 겪었던 일이다. 나이 대는 다를 수 있지만 작품 속의 사건 자체는 전부 다 있었던 일이다.
(부모가) 싸우고 있을 때,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지금 이 순간을 상상했다. 누군가는 지금 웃고 있을 거야. 그래도 어딘가는 나같이 맞고 있거나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겠지? 이런 생각을 어릴 때 했었다.
결국은 아빠를 남겨놓고 나머지 식구들이 나와버린다. 과거의 기억을 상자에 담아 버리는데, 실제로 집에 안 푼 상자 같은 게 있나?
엄마 집에 일기 같은 게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죽고 싶다고 쓴 적 있다. 그 일기를 울면서 썼던 기억이 나는데 나중에 그 일기를 찾아보려고 하니까 찢어버렸는지 없더라. 눈에 안 보이니 잊혀지기 마련이더라. 근데 그냥 지금 안 보일 뿐이고 그 상자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근데 차마 버리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 안 하고 있을 수 있지만 언젠가 또 열어 볼 수 있다.
열 순 없지만, 어쩌다 한 번씩 생각나는 거다. 사람이 365일 내 상처와 아픔을 생각할 순 없으니까. 어떤 순간, 내가 결혼식에 불현듯 떠올렸던 것 처럼 그런 식으로 생각이 나는 거지.
구두 신는 장면이 눈에 띈다. 그냥 구두를 신고 바로 나갈 수도 있는데 신발 뒤축을 밟았다가 손가락을 껴서 신는다.
그때는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작업이 될 수도 있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은 ‘그냥 힘든 건 다 하자’, ‘힘들면 좋은 거야', ‘힘들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라면서 했던 것 같다. 생각나는 건 다 넣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나온 장면이 아버지를 떠나고 박스가 화면 오른쪽에 크게 있는데, 주인공이 그 앞을 지나가다가 한 번 보고 그림자에 걸려서 '아이쿠'하는 장면이다. 아직 내 마음에 저게 존재감이 큰 거다. 그거를 신경 쓰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다. 처음에는 그냥 큰 상자를 소녀가 보다가 지나가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리다가 그림자 라인에 걸려 넘어지고 싶은 거다. (웃음) 그러면 조금 더 이 아이의 마음이 잘 표현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즉석에서 들어간 장면들이 있다.
<홈 스윗 홈>을 동생도 봤나?
부끄러워서 만들고 한 2년 지나고 보여줬는데, 내가 자기의 슬픔을 보고 있는지 몰랐다며 울었다. 작가로서는 만듦새에 있어서 아쉬움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동생한테는 좋은 작업이었다. 작품으로 하는 치유는 이런 거였어. (웃음) ‘정말 내가 이런 교과서 같은 말을 실현하네’ 생각했다.
<아버지의 방>은 작품으로 치유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모르겠다. 현실이니까. 내 안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한 작업이었는데, 작품이 다 끝나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도저히 받아들일 용기가 없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용서한다는 게 가능한 일 일까. 내가 낼 수 있는 용기는 이제 그것을 마주 볼 수는 있는 정도이지, 용서까지는 아니다. 작품에선 학대받은 아이가 방을 나갔지만 사실 내 안에는 그 아이가 아직 있는 것 같다. 아주 조금의 변화라면, 내가 처음에는 아버지를 미워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동정심도 있다. 딱 그 정도.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2017)
<아버지의 방>으로 대학원 졸업을 하고 2016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에 참여했다.
졸업을 2월에 하는데, 놀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는 거다. 졸업할 때 완전하게 더 못해서 졸업 상영회 하고 한 두 달 만들어서 마무리하고 창의인재 공고 떠서 신청했다. 딱히 원대한 꿈을 가진 건 아니다.
학원 강의는 계속했나?
내가 대학원 들어오기 전에 학원 강사를 했지만, 학부 때도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 게 한이 됐다. 나도 돈 버는 거 말고 내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학원 다니면서 번 돈을 대학원 다니면서 다 쓰고 빈손으로 나왔다. 대학원은 되게 행복하게 다녔다.
졸업할 때 마음이 더 급했겠다.
그래서 창의인재를 한 거다. 졸업하고 나서 배급도 막 맡기고 그때쯤이다. <한심해서 죄송합니다>는 졸업작품 만들 때 내 모습이다. 내가 엄마랑 냉전 중이었다.
엄마는 얘가 뭐할지 걱정돼서?
나는 어려서부터 시키지 않아도 다 잘하는 딸이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가지는 의미는 컸는데, 아마 믿었던 딸이 배신을 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 엄마가 나의 모든 선택과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되게 많이 했다. 뭐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맨날 방에 처박혀 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너는 뭐하러 미대를 가 가지고, 그냥 간호대 이런 데 가면 돈도 잘 벌고, 이모 보라고. 어? 제부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얘기를 하면서 (웃음) 자존감이 막 떨어졌다. 그런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나조차도 내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고 ‘진짜 난 잘못 살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방> 만들고 있을 때 한 번 크게 싸우고 너무 화가 나서 집에 잘 안 갔다. 계속 학교에서 밤새 작업하고 아침에 집에 가서 잠깐 자고 다시 저녁에 학교에 왔다. 집에서 내가 뭘 먹은 흔적을 안 남기려고 거의 컵라면으로 살았다. 맨날 앉아 있는데 컵라면을 먹으니까 진짜 살이 엄청 찌는 거다. 추리닝 바지에 몸이 맞아지더라. (웃음) 다른 덴 말랐는데, 배만, 진짜 중간만 엄청 쪘다. 엄마가 화해의 제스처로 냉장고에 나 좋아하는 것들 사다 놓았는데, 그게 썩어서 버릴 때까지 손도 안 대던 시기가 있었다. 거의 반년인가 얘기를 안 했던 것 같다.
한심해서 죄송합니다>의 캐릭터는 <아버지의 방>할 때 체중이 불어난 자신이 반영된 건가?
그건 아니고, 태블릿을 내가 책상에 놓고 썼다. 기울여 쓴 것도 아니고 평평하게 놓고 써서 맨날 고개를 직각으로 꺾고 있는 거를 그대로 그린 거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부모님 앞에서 정말 면목이 없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그렇게 이중적으로 디자인된 거다.
엄마가 정말 눈총을 쏘고 눈칫밥을 먹는 장면이 재밌었다.
한국말은 참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흔하게 쓰는 표현을 이미지로 그리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가 말로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걸 그대로 그렸다. ‘눈칫밥', ‘눈총’, ‘등이 따갑다’. ‘가시방석'도 하려고 했다. 가시가 몸을 뚫고 나오는 그런 걸 하려고 했는데, 빨리 끝내야 된다는 생각에 ‘안돼. 이런 잡생각은 하지 말자.'하고 다 없앴다. 창의인재 할 때는 작업하면서 떠오른 거를 다 안 넣었다. 완성이 목표니까. 그래서 짧게, 난 쓰레기야 이러면서 구겨지는 엔딩.
창의인재는 연재물을 하는데, 한 편짜리 <한심해서 죄송합니다>와 세 편짜리 <검은 악어>를 했다.
웹애니니까 다른 분들은 시리즈로 만들 법 한 에피소드를 했는데, 나는 ‘그냥 생각나는 건 다 해야지’였다.
생각난 게 그 두 가지 아이디어였나?
둘 다 현재 나의 모습이다. 그때 내가 『인간실격』을 읽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인간실격』이 뭔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런 느낌 있다. (웃음) ‘나 같은 게 태어나서...’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게 있어서 제목도 ‘한심해서 죄송하다’고 약간 비꼬는 듯이 했다.
검은 악어 (2017)
<검은 악어>처럼 옆집에서 자살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나?
내가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뭐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도 소란스럽고, 어떤 늙은 여자가 “아이고 이놈아, 아이고 이놈아"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가 보지도 않았다. 그게 다고 안에서 들었다. 30분 정도 시끄럽고 나서 엄마가 왔는데, 남자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을라고 했나 보더라고 그랬다. 우리 집 부엌이랑 옆집이 되게 가까웠다. 그때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했었다.
<검은 악어>는 세 편으로 나눠 났다. 각 제목이 길다.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현실 비판 의식도 보인다.
그때 그 집주인이 벽지를 안 떼고 도배를 했다. 벽지를 다섯 겹 여섯 겹 계속 덧바르면 말려서 뜬다. 그래서 내가 핸디코트를 발라놨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 갈라진다. 다시 뜬 벽지의 갈라진 부분을 메우고 있는데 ‘진짜 집이 구질구질하다.’ (웃음) ‘난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까.’ 이 생각을 하는데, ‘근데 이 집도 내 게 아니네?’, ‘이것도 월세야!’ 그때 내가 느꼈던, 그러니까 일기처럼 쓴 거다.
시각적으로 재미있었다. 공간이 왜곡되었는데, 현실 공간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검은 악어>를 했을 때는 공간을 다 비틀었다. 투시에 맞지 않는 공간들을 계속 그렸다. 굉장히 평면적인 공간이 뒤틀린 거를 그리면 어떨까? 하면서 필요 없는 거 다 없애버리고 선으로만 만드는 식으로 해봤다. 잘 만들겠다는 욕심을 처음부터 내려놓고 시작을 해서 나 혼자 이것저것 낙서해 보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여자가 외출해서 들어오게 될 때 보게 되는 남자는 자살 시도한 남자와 같은 남자인가?
그걸 알 수 없게, 주인공도 ‘쟤가 걘가?’라는 생각으로 한 거다. 앞에 남자가 실려 나갈 때도 주인공과 눈이 마주치는데 그 얼굴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순간을 살고 있었을 남자에게서 나도 할 수 있었던 선택을 보는 거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 남자와 마주치는 장면을 그렸다. 실제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비 온 후 웅덩이는 좋아하는 이미지인가?
비가 오면 아스팔트에 얇게 물 막이 생기면서 건물이 다 비친다. 사진을 찍어도 그게 너무 예쁘게 보였다. 그림 그리고 싶어서 넣었다.
아홉 살의 사루비아 (2020)
신작이 '죄책감'에 대한 거라고 했다. 제목을 정했나?
<아홉 살의 사루비아>다. '사루비아'는 '샐비아'의 일본식 발음이다. 배경이 90년대 중반의 작은 동네라 그 시절의 느낌을 맞춰주는 게 필요했고, 내가 실제로 많이 따서 먹었던 꽃이기도 하다다. 초등학교 화단에도 '사루비아'라고 적혀있었다.
아홉 살 소녀에게 사루비아는 달콤한 것이었고 그 달콤한 것에 대한 욕망이 도둑질을 하게 했으니, 사루비아는 주인공에게 욕망과 죄 그 자체였다.
『데미안』과 옛날 TV 애니메이션 <감바의 모험>에 나오는 캐릭터를 보고 구상했다. 초등학생 때 어린이 세계명작을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째서 『데미안』이 '어린이' 시리즈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이해를 못해서 다 읽지도 못하고 덮어버렸다. 싱클레어의 허세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죄의식에 대한 내면의 묘사는 어릴 적 내가 했던 도둑질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동네에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나도 그랬고 주변 아이들도 그것이 범죄인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어른들은 몰랐던 아이들의 세계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내가 아는 죄와 모르는 죄들을 병치시키는 것이 정체 모를 수치심을 표현하고 주인공의 혼란스러움을 그리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도둑질을 들켰던 사건이 내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죽음은 언제나 열려있는 선택지라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나는 죽고자 한다면 당장 이 차도로 뛰어들 수 있다. 여기서 한 발만’ 이런 생각들을 종종 했다.
<감바의 모험>에서는 어떤 쥐가 항상 주사위를 들고 다니면서 그 날의 운세를 점쳐보는데,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인생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주사위가 멈추기 전 까지는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잘 맞는 퍼즐 조각을 찾은 것처럼 주사위를 연출 소재로 정하게 됐다.
러닝타임이 6분 40초인데 총 40컷 남짓이다. 컷 대신에 화면 전체를 애니메이팅 해서 장면을 전환시킨다.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것에 욕심이 있다. 작업 중에 그 선택들을 후회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수고스러운 만큼 좋은 장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어딘가 부족한 작업 같다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불안을 수고로 채웠다. 또 오랜만에 제대로 작업한다는 생각에 모든 컷을 타협 없이 최선을 다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해서 유독 그런 컷이 많아졌다.
전작들과 달리 집 밖 세상에서의 첫 번째 모험이다.
공간이 바뀌긴 했지만, 주로 표현한 것이 주인공 내면의 이미지라 방을 벗어났다고 특별히 다른 느낌이 있지는 않다. 항상 방 안이었지만 방마다 새로운 스타일로 다른 재미를 가지고 작업해서 이번에도 작은 오브제들이 조금 바뀌었다 말고는 딱히 없다. 아마도, 여전히 내향적 작업이라 그런 게 아닐까.
2020년 6월 18일 @망원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