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 KIM Seunghee
- 2020년 3월 24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4일

봄이 오면, 물러나리라 생각했던 코로나19는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어버렸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얼마나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역설 중이다. 김승희의 신작 <호랑이와 소>(2019) 또한 타인과의 불가피한 관계를 증언한다. 작품 속에서 이혼한 엄마와 딸은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세상살이를 회고한다. 데뷔작 <심경>(2014)과 후속작 <심심>(2017)에 이어 세 번째 단편 <호랑이와 소>를 내놓으며 김승희는 이제 한 시절을 통과했다고 선언한다. 이 작품은 3월 하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처음으로 상영될 예정이었다. 부득이한 사태로 영화제가 두 달가량 미뤄지는 바람에 인터뷰는 서면으로 대체했다.
호랑이와 소 (2019)
2018년 파리국제예술공동체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호랑이와 소>를 제작했습니다.
해당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십 대 미대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늘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제 실력이 부족해서 품고만 있었습니다. <심경>을 만들고 <심심>을 만들면서 제가 스스로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고, 드디어 이 얘기를 풀어낼 만한 때가 되어서 꺼내 놓은 작업입니다.
제작과정은 간단합니다. 녹음 먼저 하고, 목소리를 편집하고 그 뒤에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음악을 넣지 않았습니다.
이 작업의 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실 마음 관리입니다. 아주 살짝살짝 눈치챌 수 있는 그런, 감각적으로 섬세하신 분이라면 캐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그런 저와 저의 어머니의 어두운 감정적 부분들이 있는데 그걸 지난 세월 동안 꾹꾹 눌러오다가, 작업을 통해 기억과 감정들을 꺼내는 과정에서 안팎으로 아주 아팠습니다. 병원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이성적이려고 노력하고,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작업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작업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고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출품을 어느 정도 진행한 지금, 이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겪어야 하는 어떤 과정을 통과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 선형의 시간 흐름 위에 지금 이 시기쯤 closer가 필요했는데, 이 과정이 그 closer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에서 파리 레지던시는 더 집중하고 침전해서 빠져들기에 좋았던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줬습니다.

소포 종이 같은 누렇고 거친 바탕에 라인 드로잉을 했습니다. 미술대학의 라이프 드로잉 수업이 떠오릅니다.
저의 내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억의 작업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종이에 드로잉. 커피 물을 먹인 종이와 연필. 목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연필만을 사용했습니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언제 녹음 했나요?
2018년 1월 신정 지나고 구정 되기 전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이. 녹음 분량은 한 2시간 정도? 됩니다. 2시간이 좀 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본인의 삶과 목소리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어머니는 처음에 좀 싫어하셨습니다. 왜냐면 어머니께서도 녹음하는 과정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묻어두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말하면서 감정적으로 과거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 마음의 아픔을 다시 겪는 과정을 지나셔야 하니까요. 완성한 뒤에 한 번 보여드렸는데 “수고했다.” 한마디 해주셨습니다. 아마 당신의 목소리를 영상을 통해 듣는 게 많이 쑥스러우신 것 같았습니다.
작업 중에는 의견을 구하지 않고 혼자 끌어안고 합니다. 설사 남의 마음에 들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소용인가, 한번 죽었다 살아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내 마음에 들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다만 작업이 끝나면 가장 먼저 보여주는 친척 언니가 있습니다. 아기 때부터 같이 지내서 저에게는 친언니 같은 분이신데 저를 가장 많이, 깊게 알고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제 작업을 보시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그걸 풀어냈는지 바로 알아차리는 그런 분이시죠.
인상적인 피드백은... 현재까지 보신 분들께서 다들 어머니께서 말씀을 참 재미있게 잘하신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그걸 전해 들으신 어머니께서 그런 칭찬은 처음 들어본다며 웃으시는데 어머니의 그런 표정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 그 피드백이 참 좋았습니다.
심경 (2014)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부했나요?
학교에 다니다 말았으니 전공을 했다고 말하기에도 그렇죠, 뭐. 일단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고3까지 입시 미술 테크닉만 배우다가 갑자기 개념 미술, 이런 걸 하게 되니까요. 미술 역사 배우고, 미학 이론 배우고, 작가 탐구하고, 개념 짜고, 뭐 그런 걸 배웠습니다. 저에게 맞는 미디엄을 찾아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영상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미대에서 무슨 테크닉을 가르쳐주지는 않죠.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게 한 NFBC의 작품은 뭐였나요?
코 회드만의 <츄츄 Tchou Tchou>(1972)라는 작품이고, 당시에 저는 학교를 뭐 거의 자체 휴강한 것처럼 잘 빼먹고 도서관 미디어 자료실에 가서 영화를 엄청 봤습니다. 그때 보게 됐습니다.
한겨례문화센터 애니메이션 수업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2011년입니다. 영상은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기술적인 정보가 저 자신에게 전혀 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 자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심경>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첫 아이디어 그리고 완성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심경>의 시작은..... 2012년부터 조물조물 시작했고, 뭔가 시작의 기점이 된 건 2013년 구정에 그린 아주 짧은 몰핑 애니메이션입니다. <심경>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 둥그렇게 파고 들어가는 원형의 토대가 되어준 부분입니다. 완성할 수 있었던 동력은, ‘이제 다 밑바닥을 쳤고 잃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 누구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 해도 되잖아. 그리고 싶은 거 그려도 되잖아.’ 그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철학에 관심이 많아 동양철학 수업도 듣고 그랬습니다. 기독교적 교리보다는 그런 불교나 동양의 철학 쪽에서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왜 나는 선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삶은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언젠가의 구원보다는 현생에서 어떻게 선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동양철학 쪽의 얘기들이 저에게 더 잘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골판지 상자를 쓰게 되었나요?
골판지 상자는..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 가게에서 가져왔습니다. <심경>은 제 아이덴티티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식당 아줌마의 딸, 난 그게 좋은데 왜. 뭐가 문제야.’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난 그게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마음에서 나온 작은 행동이었습니다.
음악과 사운드도 직접 작업했습니다.
음악 듣는 것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합니다.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좋아하면 만들게 된다는 말이 있듯, 저는 그렇게 제가 만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심경>은 악기를 직접 연주했고, 그걸 녹음해서 만들었고, 사운드 프로그램은 가라지밴드, <심심>은 기타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들은 디지털 악기를 사용했고 프로그램은 로직 프로를 썼습니다.
첫 작품이 수많은 영화제에서 각광받았습니다. 작품 공개 전략이 있었나요?
공개 전략 같은 건 없습니다. 출품 결과는 제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전략이란 그저 마음가짐 ‘누군가는 좋아할 거야’ 하고 포기 안 하고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출품했을 뿐입니다.
<심경>과 이후 작업에 있어 특별히 의미 있었던 영화제나 플랫폼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상도 받고 그 뒤에 트레일러를 만들고 그 트레일러에 나왔던 캐릭터 액션 걸로 영화제와 작업을 조금 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길의 시작점이어서 아무래도 저에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심심 (2017)
<심심>은 <심경>처럼 두 글자에 ‘마음'을 들어가 있습니다. 라임을 맞춰서 지었나요?
라임을 맞춰서 지었다기보다, 마음 얘기를 하니까 그래서 공통으로 “심”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게 되었습니다.
연달아서 마음을 탐구하는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만드는 수밖에 없어서 만들었습니다.
종이 접기를 활용한 스톱모션 재료들은 무거운 내용과 달리 밝고 놀이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반대로 무심코 벌인 장난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삶에서 신이 주시는 역경을 겪으면서 참 많은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질문에서 언급하신 "무심코 벌인 장난"으로 보신 부분은, 저에게는 "신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삶"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내 삶은 힘든가,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주어지는가, 왜 신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내가 이렇게 많이 깎여 나가야 할 만큼 못된 사람인 걸까,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 걸까. 그 가운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탱해준 사람들 덕분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심각한 얘기를 사실적으로 얘기하면 너무 무거우니까 반대로 표현했습니다. 반어법같이.
피의 연대기 (2017)
장편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의 애니메이션 부분을 작업했습니다. 김보람 감독의 제안을 선뜻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생리에 대한 영화였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단어, 그 얘기를 그렇게 시원하게 밖으로 꺼낸다는 생각에 저는 너무 신이 났었습니다. 감독님은 글을 쓰시던 분이셔서 영상을 구조화한 글을 보내주시거나, 주로 아이디어들을 문자로 표현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스타일을 많이 좋아해 주시고 믿어주셔서 표현면에서 많은 자유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2016년 여성영화제 트레일러와 2018년 굿즈 작업을 했습니다. 선이 굵은 활기찬 여성의 이미지였죠. <심경>과 <심심>, <피의 연대기>까지 짙고 자유로운 선으로 여성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늘고 예쁘게 표현된 그림에 반하는 것이 제 개인의 스타일이었는데 그게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에 대한 요구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5월로 연기된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신작 <호랑이와 소>가 공개될 예정입니다. 신작 공개를 앞둔 기분은 어떻습니까?
늘 그렇듯 출품을 시작하고 초반에 좀 불안했습니다. 이 작업에 제가 얼마만큼의 시간과 마음을 담았든 간에, 대외적인 결과는 일단 제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언제나 그에 상응하지 않으며,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이 안 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지금은 코로나 덕분에 아예 마음을 내려놓고 그동안 계획했던 다른 일, 개인적인 일들을 준비하고 정리하고 살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구상 중인 작업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업을 공개하는 방식에 있어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 지원을 지원하고, 제작을 하고 영화제 서킷을 도는, 이 사이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좀 오랫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공부도 하고 새롭게 나아 갈 방향을 준비하는 기간을 어느 정도 가질 것 같습니다.
2020년 3월 14~22일 by emai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