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ion Note_The Square
- seoulanimator

- 2일 전
- 2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시간 전
<광장>의 의식적인 계기는 2015년이다.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서 일했던 아우구스트 보리의 인터뷰가 단초였다. 무의식적 계기는 중학교 때로 거슬러간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에서 주인공 '리명준'과 스튜디오 '밀실광장'이라는 이름 두 개를 가져왔다. 2019년까지만 해도 단편으로 기획된 이야기는 2020년 중편 프로젝트로 전환해 2022년까지 달리다가 <유니크 타임>을 위해 숨을 고르고 다시 2년을 달려 2025년 장편으로 도착했다. 6년 간의 대장정을 함께 한 김보솔과 오유진 감독은 한 차례 여정을 풀어놓고 2026년 1월 15일 <광장> 개봉 날짜에 맞춰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해 그들의 밀실로 돌아갔다.
제작노트: 광장
다시 광장으로
1961 광장
처음부터 제목이 <광장>이었어요?
보솔: 네
최인훈의 『광장』을 염두에 뒀을 것 같은데요.
보솔: 『광장』은 중학교 때 읽어놓은 상태였고 책을 다시 읽게 된 건 시나리오가 끝나기 2/3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윤구 선생님이라고 최인훈 작가의 장남이 하시는 특강을 우연히 간 적이 있었어요. 예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니까 특강을 가기 전에 다시 한번 급하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너무 놀랐죠. 너무 뛰어난 통찰력으로 쓰인 소설이라서요.
『광장』의 주인공이 남한에서 북한 갔다가 제3국으로 가는 젊은이니까 그 이름을 가져온 거 아니에요?
보솔: 맞아요. 그때 최인훈 작가가 북한을 바라보는 그 태도에 대해 감명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그게 제 시나리오 쓸 때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최인훈 작가님이 얼마나 진심으로 『광장』이라는 소설을 쓰셨는지 들었기 때문에 저 역시도 그 태도가 몸에 새겨진 것 같아요.
호원: 최인훈 작가가 『광장』을 쓴 게 스물여섯, 스물일곱 그 시기거든요. 감독님이 이거를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랑 비슷할 것 같아요.
군대 갔다 온 다음에 쓰셨나요?
보솔: 네, 근데 최인훈 작가님이 『광장』 군대에서 쓰셨대요.
호원: 최인훈 작가가 이 소재를 갖고 쓸 때의 젊음과 김보솔 감독이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젊음이 만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보솔: 저희 세대는 더 이상 북한을 의식하지 않잖아요. 통일이라고 생각하면 되게 멀어요. 문학 작품이나 미디어에서 통일을 말하는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선배들의 작품 정신을 계승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보리

<광장>의 시초가 된 스웨덴 서기관 기사를 아카데미 들어가기 전에 본 거예요?
보솔: 대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처음 보게 된 거예요.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엄청 없을 때였어요. 워낙 폐쇄적인 곳이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도 궁금해했지만, 그때 한국은 더 했을 거라 추측이 돼요. 그 스웨덴 서기관이 북한에서 3년간 근무를 하고 왔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생활상에 대한 인터뷰 기사였어요.
기사에서 아무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죠. 외로운 남자의 이미지에 꽂힌 거예요?
보솔: 이미지가 너무 특이했어요. 북한에다 외국인이 혼자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이상했어요. 사실 그 기사를 읽기 전에 이미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어요.
고등학교 때 한겨레 신문 창단 멤버셨고 정치 외교부 기자였던 리영희 작가의 책을 어떤 선생님이 추천을 해줘서 읽었었거든요. 그 영향도 있었고 미술사를 공부를 하다 보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알아야 하고, 남자라면 군대에서 북한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죠.
이런 게 쌓이다가 그 기사의 이미지가 트리거가 된 거죠. 거기는 정말 외딴섬이잖아요. 외국인이 갔을 때 사람들이 주변에서 말도 못 하게 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서 그 이미지에 강렬하게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교실의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 선생님이 남북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일본, 중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 한국의 핵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선생님의 말씀에 처음 다들 북한을 인식하게 됐던 거 같아요. 노무현 정부(2003-2008)에서 이명박(2008-2013)으로 넘어가는 사이였던 거 같아요.
문과였어요?
보솔: 이과였어요. 생물 선생님 수업이었는데, 생물 선생님이 몸살로 아프셔서 처음 보는 선생님이 올라와서 그 얘기를 해 주신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윤리 선생님이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이과에서는 들을 일이 없었죠. 그래서 그 말들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북괴라는 말을 썼었는데, 리영희 작가가 처음으로 북한이라는 말을 썼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햇볕 정책의 기조 같은 발언을 최초로 하신 분이셨대요.
미술 공부하면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알게 되면서 북한은 왜 저럴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몇몇 작품들 때문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계속 누적이 됐던 것 같아요. 김동원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송환>(2003)도 있었고 제가 양영희 감독님*도 좋아하는데, 양영희 감독님도 북한이랑 연계가 있으시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언젠가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은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나는 앞으로 상업이나 장르적인 영화를 할 건데, 이 마이너 한 소재로 한 번 만든다면 아카데미에서 만드는 게 최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어요.
*영화감독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가족의 나라>(2012), <굿바이, 평양>(2006), <디어 평양>(2005)
호원: <광장>을 만들 던 시기에 상업적인 곳에서는 <사랑의 불시착>(2019.12-2020.2, tvN) 도 있었고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도 있었죠.
보솔: 북한을 다루는 다른 미디어에서 특수 요원이 나오거나 군인이거나 과장된 사투리를 쓰거나 왜곡된 형태로 그려내는 거에 대한 반감이 좀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시나리오 작업할 때 고증을 철저히 하고 과장된 형태로 북한을 다루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통일이 될지 안 될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북한 사람들이 봤을 때 우리를 이상하게 그렸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호원: ‘이삭 보리’라는 이름은 재치예요?
보솔: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1957)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이삭 보리거든요. 스웨덴 말로 얼음처럼 차가운 숲이라는 뜻이래요. 근데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 자체가 화양연화를 가리키는 거거든요. <광장>에서도 보리가 복주를 잠깐 만나고 가잖아요. 그래서 적절한 이름이다 생각했죠.
호원: 저는 순우리말처럼 보리, 이삭? (웃음)
보솔: 그것도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부르기 쉬운 이름.
명준

탈북자 인터뷰까지 해서 전환을 맞은 건 중편 들어갈 때인가요?
보솔: 중편으로 기획되고 있을 때예요. 시나리오를 8개월 썼는데, 한 6개월쯤이 기점이었던 것 같아요.
외로움이 키워드였고 보리가 주인공이다. 거기서 외국인을 만나면 안 되니까 복주라는 캐릭터가 있고 까지가 초고의 큰 줄기였고 6개월 지나면서 질문이 네 페이지 정도 쌓였어요.
PD한테 탈북민 섭외를 해달라고 했어요. PD가 탈북민 카페에다가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되게 부정적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또 북한으로 이상한 거 만들려고 한다. 도와주지 마세요”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경기도에서 공장 다니시는 분이 한 분 계셨고 또 한 분은 오진하 감독님이라고 언어 코디네이팅까지 해 주셨고 지금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센터에 계세요.
그때 당시엔 그냥 탈북민이시구나 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보위부에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분과의 인터뷰 4시간 하고 나서 시나리오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명준 캐릭터가 굉장히 약했는데, 끝나고 그분께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불안했기 때문에”라는 말을 듣고 집에 와서 명준이 주인공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나리오를 완전히 뒤집어엎었죠.
저희 영화에서의 키워드가 ‘외로움’이었어요. 초고의 버전이 북한에 있는 스웨덴 외교관의 외로움이었다면, 인터뷰를 통해서 주인공과 키워드의 외로움이 명준에게 느껴져야겠다고 생각의 전환이 생겼습니다. 왜냐면 명준은 영화 안에서 시종일관 불안한 상태인 겁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어쩌면 ‘자유’를 느끼는 순간과 동일시되거든요. 외로움을 느끼기까지 훨씬 많은 레이어가 있는 거죠. 그 불안의 장막을 뚫고 명준의 외로움이 느껴지게 전달된다면, 이 영화는 나쁘지 않겠다고 확신과 생각이 들었죠.
호원: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북한은 너무나 잘 맞는 거예요. 극한의 상황을 세팅할 수 있는 현실 공간 하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는 못했던 공간. 그러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기도 하고 또 다른 게 북한이라는 세팅에서는 시선 게임을 할 수가 있어요. <광장>은 숨어 있는 시선으로 숨바꼭질을 하는 세팅이어서 궁금했었어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을 했을까 아니면 북한에 대한 이야기 세팅에서부터 출발을 했을까.
보솔: 저한테는 북한과 외로움이 결합돼서 동시에 일어난 스파크라서 우선순위를 찾기 힘든 것 같아요.

그분은 시나리오 고증만 하셨어요 아니면 그림 나오고 다른 것도 하셨어요?
보솔: 시나리오 고증을 제일 많이 해 주셨고 궁금한 것들을 포인트 잡아서 말씀드렸죠. 예를 들면 군복에 어깨 견장이 있고 목깃에도 견장이 있어요. 그걸 령장이라고 부른데요. 일종의 군대 특기가 무엇인지가 표시되는 견장인 거죠. 이런 미술 같은 고증도 도와주셨죠.
또, 계급이나 나이 차이에 따라 동지가 다르고 동무가 달라요. 남자 여자가 대답이 다르더라고요. “예”랑 “네”가 달라요. 북한은 스웨덴을 스웨리예, 파리를 원어민 발음대로 발음하려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시나리오 대사 문법에서 맞지 않는 것들을 교정을 받고 뉘앙스 훈련받았어요.
저는 처음에 시나리오 고증을 부탁드릴 때 “북한을 왜 이렇게 그렸어”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두근두근했거든요. “시나리오 다 다 읽어봤는데, 연구 많이 했네”라는 말 들을 때 진짜 기분 좋았거든요.
첫 번째 피드백으로 큰 수정 사항이 있었나요?
보솔: 대사나 지문 수정이 있었고 큰 지적은 없었어요. 근데 감독님 자체도 원래는 보위부 안의 예술 파트에서 배우를 하셨대요. 배우가 선택을 받는 직업이다 보니까 그게 싫어서 예술 감독으로 전향하셨다더라고요. 남한에 오셔서 그 연장선에서 독립 영화도 세 편인가 찍으셨대요. 그러다 보니까는 저의 입장을 너무 잘 이해해 주시고 존중해 주셨어요.
예를 들어 제가 “북한 이야기를 만들 때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이런 두려운 지점들이 있다” 그럴 때 감독님이 “나도 여기서 어떤 작품을 만들 때는 보수의 공격을 받고 어떤 작품을 만들 땐 진보의 공격을 받았다. 창작자라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면 돼” 이런 말씀해 주셨어요.
<홈>을 만들고 스스로 깨달은 거를 다시 확인받았군요.
보솔: 너무 도움을 많이 주셔서 저희 예산에서 어떻게든 자문료를 드리려고 했어요. 근데 두 번째 만남에서 그거를 거절하시면서 “그쪽에서는 도움을 받고 싶어 했고 나는 도움을 줬으면 됐지. 무슨 돈이 오가냐. 그거 아껴서 제작비 쓰시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보리가 명준에게 “돈 주겠습니다” 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보솔: 제가 이 작품 하면서 좋은 어른들을 알게 되었는데, 오성윤 감독님, 오진하 감독님, 정용진 음악 감독님 이렇게 세 분은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젊은 창작자고 처음 하는 사람인데, 경력이 너무 많고 경험 많은 분들과 같이 하면 내가 휩쓸리거나 끌려다니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어요. 근데 그건 진짜 기우였고 오히려 존중을 많이 해 주시고 어떻게든 도와주시려는 분들이셨죠.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GV에서 “주인공을 바꿔야 되겠다고 판단을 했을 때 이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어떤 게 좋은 작품인지에 대한 감이 있고 그게 흔들리지 않았어요?
보솔: 그거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게 훈련을 통해서 생기는 힘인 것 같아요. 대학교 때부터 뭔가를 만들다 보니까 ‘어 이거는 왠지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직감이 들면 괜찮게 아웃풋이 나왔던 경험들이 좀 있었어요. 주인공을 바꾸는 게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던 거는 인물한테 쌓여 있는 더 풀어야 할 레이어들이 보리보다 훨씬 두껍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명준은 평양에서 태어난 엘리트인데, 사는 데가 너무 살풍경한 게 좌천당한 사람처럼 보여요. 명준에게 괜찮은 집이 따로 있고 가족은 있는지 궁금해요.
보솔: 있겠죠. 거기는 감시용 초소 같은 데고.
호원: 보위부에서 일을 하고 대사관 일을 하면 출신 성분은 필터링이 된 거 아닌가.
보솔: 엄청난 엘리트죠. 7년간 정보 대학에서 공부를 해야지만 되고 보위부가 되는 것 자체도 힘들대요.
호원: 명준 입장에서 변곡점들이 있는데, 보리가 떠나기로 됐는데, 복주가 안 보이니까 명준을 붙잡고 복주 어디 있냐고 돈 주겠다 할 때 명준이 그전까지는 존댓말을 하다가 처음으로 반말을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명준이 보리의 노트북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보리가 내 사진을 찍고 내 폴더에다 넣어놔’.
보솔: 거기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좋아했던 거 아니냐.
유진: 사람들이 명준이 찐사랑이라고 (웃음)
복주

호원: 복주도 평양에서 태어났어.
보솔: 사실 보리랑 둘이 만나는 셋업도 있었어요. 영화 안에서 만남을 시작하게 만드는 장면부터 보여줄 건가 아니면 이미 만나고 있는 상태로 보여줄 건가. 중편이라 48개 신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에서 삭제된 거는 보리가 혼자 자전거 타고 다니다가 사람들 많은 데서 넘어졌어요. 복주는 보리가 같은 자리를 맨날 도니까 맨날 봐왔죠. 다가가면 안 되는 걸 아는데 다가가요. 그때 보리와 말을 하게 됐고 복주는 용감한 애니까 호기심도 많고 해서 둘이 서서히 가까워진다라는 셋업이었는데, 빠졌어요.
호원: 복주 대사 쓸 때도 딴딴하게 쓰려고 작정을 했던 것 같아요. 보리랑 복주랑 같이 가다가 다리 위에서 누가 있는 거 보고 보리가 당황할 때 복주가 “길이 있는데 어떻게 사람이 안 지나갑니까” 그래서 ‘보리 하고 복주 관계에서 복주가 주도권을 쥐는 게 보여요,
유진: 복주가 등장신이 별로 없고 역이 작아서 저희도 너무 얇게 나오면 어떡하지 고민을 엄청 했거든요. 그래서 복주라는 인물이 적게 나오더라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게 대사에 신경 썼어요.
보솔: 저는 인물을 통틀어서 복주가 가장 용기 충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대사 안에서도 이 강인한 여성이 느껴져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복주 대사는 특히 많이 신경 썼어요.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북한을 버리고 나오고 싶어 하냐면 그건 아니에요. 명준과 복주에게는 내 터전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있죠.
보솔: USB로 입수되는 드라마 같은 거 보고 그러겠거니 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른대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유진: 게다가 복주의 직업도 북한에서는 승무원 같은 거라 자부심이 있어요.
보솔: 7~80년대 스튜어디스의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어요. 복주의 나이 설정이 지금 26으로 되어 있는데 26까지 되면은 밖에 나가서 안 하고 사무직 본대요. 그 정도 사회적 지위이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한 명씩 다 데리고 있고 거기는 차가 귀하니까 차가 와서 서서 용돈 주고 가고 그런대요.
보리와 명준은 모델이 있는데, 복주는 가상의 인물이어서 더 궁금한 거 같아요. ‘이 사랑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고 최대한 지금을 살아야지’ 어떻게 그렇게 앞날을 내다보고 통찰을 했을까.
호원: 이 세 캐릭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처음에는 보리에서 시작해서 둘이 러브라인으로 가다가 중간 지나고 나면 남겨질 복주랑 보리 사이를 어떻게든지 관리해 주려고 하는 명준이 점점 더 관객들한테 보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죠.
이전에 북한을 다룬 작품하고 다른 점이라고 남한 사람이 안 나오는 거예요.
호원: 할머니
보솔: 남한사람이에요.
호원: 진철이 가장 북한의 억양을 쓰는 사람이고 그다음에 서복주가 있고 그다음에 명준이 뉴트럴 한 말투고 보리 다음에 할머니가 제일 남한 쪽 말을 쓰는 스펙트럼이에요.
진철이 명준의 상사죠?
유진: 진철은 좀 아쉬워요.
보솔: 너무 납작하게 했다는 거를 저도 녹음하면서 뒤늦게 깨달았어요. 진철이 명준을 엄청 아꼈다는 기본 설정은 있어요. 24시간 안에 추방하는 게 할 수 있는 가장 약한 벌이거든요. 큰 처벌 안 받고 평양에서만 나가 있으라는 거죠.
보솔: 지금 바꾸라고 하면은 두 신을 바꾸고 싶은데 첫 번째가 개 짖는 소리 나오면서 철장에서 진철이랑 명준이랑 대화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거기가 마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나란히 한 곳을 보면서 앉아서 같이 담배를 나눠 피게 바꾸고 싶었고요. 엔딩 부분에서 기록실 들어갈 때 명준이 군복을 입고 나왔어야 된다
유진: 몰래 위장을 한다.
호원: 할머니는 분단 전에 스웨덴으로 가셨어. 다시 보니까는 복주랑 같은 선상에 놓여요. 보리가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다가 통화하면서 할머니한테
보솔: “저 여기 살까요?”
호원: 보리는 그전까지는 복주만 보이는 거야. 그래서 사랑에 매달릴 거야. 근데 “할머니는 왜 겁도 없이 스웨덴에 갔어. 안 무서웠어?” 할머니가 “무서웠지”라고 하니까 할머니를 통해서 복주의 마음을 알려고 했던 지점이 되게 좋았어요.
동료나 가족이나 친구나 복주의 주변 인물도 궁금하네요.
유진: 저희도 나름 전사는 많이 썼어요. 명준은 지금 이혼을 해갖고 어쩌고 저쩌고 이런 얘기도 하고 복주는 어떻게 어떻게 한다 했었는데, 이게 좀 더 길었으면 아쉬워요.
호원: <유니크 타임>이랑 평행우주 해가지고
유진: 저희는 오래 잡고 있었으니까 캐릭터한테 정이 가서 저희만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인물에 대해서 궁금해 주시는 분들이 진짜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되게 좋다 생각하고 있어요.
배경
북한도 사계절이 있는데 하필이면 겨울로 해서 눈 내리는데 장갑도 안 끼고 자전거를 타요.
유진: 저희도 색칠하면서 이거 맨손으로 하는 게 맞나.
보솔: 광장 초기에 서교동 아카데미 지하실에서 작업하던 시기였어요. 갑자기 눈이 엄청 많이 오길래 ‘한번 고증을 해보자!’ 하고, 자전거 타고 김밥을 사러 간 적이 있었거든요. 딱 100미터 타고 가다가 자빠졌어요. 눈 올 때 자전거 타면 안 되는 거구나…라고 그때 느꼈죠. 이것도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시련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장갑도 안 씌워준 건 아니고요?
보솔: 그런 의도는…
유진: 근데 더 춥게 보여야 좋죠.
호원: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왜 겨울이었을까 왜 눈이 내리고 진창길이었을 때였을까 했더니 자전거 바퀴로 자국을 남길 수 있는 계절이어야 했나.
보솔: 제일 중요했던 이유는 새해였어요. 제가 남북에 대해 생각하는 통일관이 이 이야기에 담겨 있으니까 뭔가 긍정적으로 끝나는 결말을 생각했어요. 하나의 전환점이 생기는 기점이 언제일까를 먼저 찾았고 그게 1월 1일이었어요. 그래서 새해 불꽃놀이 장면들이 나왔던 거고 겨울을 생각하다 보니까 북한은 습도가 높고 굉장히 추우니까 눈이 당연히 많이 내리겠구나.
초반에 눈에 띄는 게 김일성 옆모습 간판 같은 거예요. 이게 어디에 있는 그림인지 검색하는데, 인터넷에 북한 정보가 별로 없으니까 잘 못 찾았어요.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그곳의 자료들을 어떻게 찾고 구성하셨나요.
보솔: 구글링은 당연히 거쳤고 인스타그램이죠. 그때 미술을 크리에이티브섬에서 했는데, 조혜승 대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까 책 하나를 소개를 해 주셨어요. 사진작가가 북한에 들어가서 생활상을 찍었던 사진집인데, 인쇄물로 나온 두 권의 책이 있거든요. 그 안에서 광장 안에 있는 프로파간다를 몇 개 그림으로 옮겨가지고 쓴 것들이 있어요.
<광장>을 보면서 랜드마크 같은 이미지인데, 나는 어딘지 모르겠어
유진: 저희도 몰라요.
한때 웨스 앤더슨 스타일이라며 북한 인테리어가 화제였잖아요. 너무 스타일이 다르니까 그런 것도 보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진: 초반에 미술을 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평양이 되게 알록달록하잖아요. 다 파스텔이고 옛날 80년대 옥색 이런 거 칠했을 때처럼. 그래서 이렇게 가야 하나. 근데, 너무 다 가짜 같고. 사실 진짜 선전용이잖아요. 안 맞더라고요.
보솔: 이야기 톤과.
유진: 진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었는데, 안 맞아서 많이 눌린 느낌으로 가게 됐네요.
인스타그램에서 러시아 가이드의 사진들을 많이 참고하셨다고 했는데, 그 거대한 광장이랑 이런 공간은 실제랑 얼마나 비슷한가요?
보솔: 실제랑 비슷하게 하려고 했었어요. 김일성 광장이나 주체탑 같은 주요 공간들은 아예 스케치업으로 만들었어요. 막판에 나오는 지하철 장면 같은 경우도 벽화가 양옆으로 다른데 엄청 길거든요. 그 벽화를 온전히 다 구성을 하기 위해서 유튜브를 다 뒤져서 조각조각 낸 다음에 이어 붙였어요. 최대한 고증을 하려고 했었어요.
호원: 만수대 광장하고 숙소하고 얼마큼 거리일까. 평양에서 사리원이 얼마큼 멀까. 내 머리의 사리원은 저기 꼭대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루 동안에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일까. 이게 지하철일까 기차일까. 막 헷갈리는 거예요.
보솔: 사리원 주소는 고증했어요. 오진하 감독님한테 감독님 이거 하루 안에 갔다 와야 되는데, 평양에서 지하철 타고 환승을 중간에 하더라도 갔다가 돌아와야 된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로 써주세요. 그분 머릿속에 북한 전역의 주소가 다 들어있으시거든요.
내가 그럼 실제 있는 주소를 써주겠다고 그래서 받았어요.
호원: 재밌는 게 명준이 보리의 컴퓨터를 켜서 클릭했을 때 평양 지도가 나오고 거기에 사진 찍은 별들이 표시가 되잖아요. 그거 보면서 구글 지도가 작동을 할 수 있나. 그거는 어떻게 했어요?
보솔: 실제 평양 사진이에요. 그리고 외교관들한테는 온라인이 오픈이 되어서 다 쓸 수 있대요.
호원: 보리는 동화책 샘플 번역하는 핑계로 조금 더 머물기도 하고 대외 활동도 해요.
보솔: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삐삐>(1969, SVT) 원작 작가가 너무 유명해서 실제로 그런 수교 사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유진: 초반에는 동화책 번역하는 얘기가 꽤 있었어요.
보솔: 아이들과 노는 그런 장면들도 있었고.
유진: 근데 이 얘기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보솔: 신 48개 안에 들어와야 되기 때문에 방해되는 신들 다 빨리빨리 걷어냈어요.
호원: 스웨덴 대사 쪽에서 동화책 ‘샘플’은 갖고 왔다고 하고 북한 쪽에서는 ‘표본’을 볼 수 있냐고 해요. 대사적으로 서로 부딪히게 하려는 의도였어요?
보솔: 맞아요.
호원: 광장은 원래 그렇게 숫자가 쓰여 있대요?
보솔: 김일성 광장에 마킹이 있는데 그게 군대 행렬 때문에 되거나 아니면 매스 게임 같은 거 할 때 마킹이 되어 있는 거잖아요. 근데 마킹이 공산주의 특징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마킹 자체가 이제 개성과 개별성을 지워버리는 마킹이잖아요. 북한이라는 체제 안에 군대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한 행렬에만 쓰이니까. 근데 걔네 둘은 특정한 마킹 하나에서만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그 마킹 하나에 특별함이 생기고 이미지로 잘 쓰일 수 있겠다.
호원: 구획이 없이 뻥 뚫린 게 광장인데, 그런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광장은 동원을 위한 공간으로 언제든지 전환이 될 수 있으니
보솔: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되는 공간인데, 그게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체제고.
호원: 복주가 “우리 다음에도 여기서 봅시다” 해서 전에도 저기서 만났나 아니면 만난 지가 1년이 넘었나.
유진: 그래도 오래 사귀었다. 그래서 새해 때마다 그렇게 번호를 정해놓고 몰래 만난다.
제일 강렬한 애정신이 포옹이에요.
보솔: 그 얘기는 저희 헤드 스태프가 “키갈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유진: 진짜 많이 들었어요. (웃음)
호원: 그래서 다리 밑으로 간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안 보이는 데서도 손 잡는 것밖에 안 해.
보솔: “잠이라도 자야 되는 거 아냐?”
유진: “얘네 왜 아무것도 안 하지? 싸울 때도 왜 이렇게 얌전하게 싸우냐.”
보솔: 그때마다 제가 했던 말은 “이거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고 그렇게 가는 순간에 아침 드라마 된다고.”
호원: 보리가 데려다주는 게 아니라 보리를 데려다줘. 보리는 여자친구 집을 모르겠구나.
보솔: 모를 수도 있죠.
주민들이 사는 지역까지는 노출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유진: 그래서 맨날 그냥 그 안쪽에서만 만났죠.
호원: 복주는 센터를 갈 수 있는데 보리는 센터를 벗어나는 순간에 그 동네 주민이 다 알아볼 수 있으니까.
보솔: 같이 가더라도 간격을 유지해야겠죠. 보리는 <첩밀밀>(1997, 피터 호)의 여명 캐릭터가 모델이었어요. 지질한 남자의 인상.
호원: 아슬아슬하게 엇갈린다는 거는 휴대폰이 없었을 때는 가능했던 설정이에요. 휴대폰이 등장하고 나서 간발의 차로 엇갈리는 거는 더 이상 지구상에서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인 거지. 근데 북한은 가능해!
유진: 보면 진짜 시대를 지난 것 같은 표현들이 좀 있어.
보솔: 2016년이 배경이에요.
호원: 보리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거야.
유진: 스마트폰이랑 피처폰이랑 그 차이로 볼 수 있죠.

사운드
호원: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평양이라는 거를 보여줘야 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감독님이 얘기한 것처럼 말투를 통해서 청각적으로 예민해지는 작품이기도 해요. 청각을 세워서 듣다 보니까 노래나 외부 소음도 들리는데, 우리가 평양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어봤잖아요. 사운드 감독님이랑 어떻게 소통을 하셨나요?
유진: 사운드 감독님이 고생을 많이 해 주셨어요.
보솔: 독립 쪽 실사 영화만 하시던 분이라서 단편 애니메이션은 하셨었는데, 장편 애니메이션은 처음이셨던 거예요.
호원: 여기는 사운드가 하나도 없죠.
유진: 애니메이션이니까 하나도 없어서 다 하셔야 되는데
보솔: 그래서 어려운 장면들은 제가 사운드 이펙트를 러프하게 얹어서 그 파일을 그대로 드리기도 했어요. 처음에 사운드 가편집본을 보내주셨는데, 그게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반 할 때 사당에 있는 스튜디오를 거의 주말마다 찾아가서 한 6시간, 8시간씩 일일이 초 단위로 보면서 이거 이렇게 넣어주세요 저거 넣어주세요 그렇게 하루에 5분 내지는 7분씩 나갔던 것 같아요.
호원: 평양 랜드 스케이프 사운드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거고.
유진: 그래서 소스 얻는 것도 좀 어려웠고.
보솔: 제일 어려웠던 게 장마당 그리고 불꽃놀이 신이었거든요. 근데 네덜란드 유튜버가 북한에 가서 실제로 북한에서 새해에 공연하는 음원이 있었어요.
아이고바트(iGoBart)
보솔: 맞아요. 그래서 바트 님한테 거기 있는 영상의 음원을 1분 정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메일을 보냈어요. 허락을 받아서 “반갑습니다” 그 1분이 들어가 있거든요.

음악
호원: 초반에 대사관 사무실에서 보리랑 명준이랑 대화할 때 어슴푸레하게 밖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보리가 그동안 CD에다 담아서 듣는 노래는 절대 안 들려주는 거예요. 그 CD가 복주한테 가게 될지 아니면 명준이 가지게 될지 하는 상황에서도 안 들리고 CD 타이틀도 없고. 굳이 외부에서 오는 소음으로서의 음악도 집어넣었는데, 왜 마지막까지 보리의 음악은 들려주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보솔: 초반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북한에서 아침마다 트는 새마을 운동 음악 같은 거예요. 아침 체조할 때 나오는 음악이고 우리는 안 들어봤던 음악이잖아요. 북한의 분위기를 관객들한테 몰입시키기 위해서 이런 게 흘러나오겠구나 일부러 주입하려고 집어넣은 거예요.
CDP는 원래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5~60년대 한국에 천재 작곡가가 2명이 있었는데, 한 명이 윤이상, 한 명이 김순남이에요. 윤이상 작곡가는 남한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김순남 작곡가는 월북해서 남한의 역사에서 지워졌어요. 그분도 러시아에서 한국의 오단조를 계승해서 현대 음악을 하셨던 천재 작곡가로 유명했거든요. 근데 북한에 가셔서 민주당 인사의 생일잔치에 피아노를 쳤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북한에서 손으로 악보를 베껴 쓰는 사보사를 하셨대요.
음악들을 찾아보면은 “산유화” 이런 곡들은 진짜 좋거든요. 그거를 편곡해서 CDP에 담으려고 했었어요. 시나리오를 다 쓰고 가편집 애니메틱을 딱 냈는데, 이 음악이 안 들어가야 될 것 같은 거예요.
만드는 사람보다 관객의 상상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기조는 항상 있거든요. 이 음악을 특정 짓는 순간 영화가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 감독님한테 “보고 나니까 안 들어가는 게 나은 것 같아요” 그랬더니 음악 감독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CDP 음악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호원: 명준이 방 빼면서 보리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진철이 먼저 나가고 명준이 따라서 후다닥 뛰어 나가요. 그래서 혼자 남은 후임이 헤드폰을 끼고 들으려고 해요.
보솔: 그 시점에서 명준이 CDP를 갖고 있잖아요. 거기다 복제했다는 설정이에요.
유진: 원래는 그 친구가 이거를 딱 끼고서 놀라면 거기 그때부터 이 CDP에 음악이 쫙 깔리는 거였는데,
보솔: 나중에 음악도 없어지고 하다 보니까 거기를 줄이고 표정도 (조금 덜 놀라게) 다운그레이드시켰죠.

영화 개봉되기 전에 OST가 애플뮤직에 올라가 있어요. 음원 표지는 복주예요.
유진: 음악 감독님이 해달라고 하셔서 그려드렸죠.
보솔: 원래 그림이 스크린샷 찍으면 좀 잘려 있거든요.
유진: 음원 표지 용으로 조금 늘려드렸어요.
배경도 겨울이니까 OST 들으면서 ‘이거 <러브레터>(1995, 이와이 슌지)인가’ 했어요.
보솔: 대학 때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창작자가 특강을 해주는 캠프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 현업에서 활동하시는 공연 기획자, 뮤직비디오 감독, 음악 감독, 영화감독 이런 분들이 오셔서 자기 작업 보여주셨는데, 음악 감독님만 우리 다 창작하는 사람들이니까 일문 일답 형식으로 궁금한 거 하나씩 받는 식으로 가자는데, 그분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중에 내가 영화 만들면 저분이랑 같이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음악 감독님이 A4 용지에다가 책 읽으면서 창작할 때 영향을 받았던 문구들을 쭉 적어서 프린트를 해 주셨었거든요. 나중에 이거를 갖고 가서 설득해야겠다 하면서 그 종이를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말씀드렸던 김순남 작곡가라는 미션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이 음악 감독님이 생각났어요.
PD님한테 음악 감독님 섭외해 달라고 그랬더니 처음에는 음악 감독님이 학생이랑은 작업 안 하신다고 거절을 당했었어요. 그러면 이메일 주소만 받아달라고 해서 장문의 편지를 보냈어요. 감독님이 한번 보자 그러셔서 음악감독님 상수동 작업실에 가서 이야기를 드렸죠. 감독님이 몸에 털 난 짐승들을 되게 좋아하세요. <홈>을 보시고 너무 좋아하셔서 같이 하게 됐어요. (웃음)
음악을 주고받기 전에 우리는 음악 없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감독님도 동의해 주셨고요. 인 아웃 점 잡으면서 제가 중요한 건 하게 생각했던 건 음악이 없는 부분이었고 나머지는 다 음악 감독님이 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처음에 저에게 헝가리 무곡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게 뭔지 몰라서 미팅하고 집에 와서 막 찾아보면서 들어봤어요.
사전에 그래도 이분의 음악을 들어보셨어요?
보솔: 저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도 정용진 음악 감독님이랑 작업하시기 전 것까지만 봤거든요. 옛날에 감독님이 작업하셨던 다큐멘터리는 봤었는데, 음악이 기억에 남지는 않았었어요. 그러니까 녹아들게 작업을 하시는 편이셔서 그냥 믿었죠. 대학 캠프 때 오갔던 대화들이나 이분은 예술가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듣지도 않고도 왠지 괜찮을 것 같았어요.
정용진 음악 감독님은 원래 홍상수 감독님이랑 작업을 많이 하셨던 분이고 장르 영화를 안 하셨던 분이었는데 그냥 왠지 괜찮을 것 같았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음악 감독님도 엄청난 시네필이시고 장르 영화를 너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셨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장르영화 필모그래피가 많이 없으셨어요. 주로 다큐 쪽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감독님 자체도 새로운 장르를 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초기 음악 가안을 받았을 때가 지금이랑 거의 비슷하거든요. 음악을 듣다가 음악에 홀려서 편집을 못 했어요. 엔딩 크레디트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것만 몇 십 번을 들었던 것 같아요.
성우
성우는 어떻게 섭외를 하고 연출했나요?
보솔: 일단 스웨덴 사람을 쓸 거냐 말 거냐의 고민이 있었어요. 해외 영화제 돌면서 왜 안 썼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시도는 했습니다. 스웨덴 사람을 구하려고 했는데 못한 첫 번째 이유는 코로나가 심해서 다 스웨덴으로 돌아갔었어요. 가녹음을 할 시기가 2021년이니까 엄청 심할 때죠. 외국인들이 알바 채용하는 사이트에다가 공고를 올려서 그래도 두 분이 연락이 왔습니다. 이케아 직원과 LG전자 엔지니어. 제가 스크립트를 거기다 써놔서 샘플을 받았죠. 문제는 이분들이 연기가 안 됐어요.
그러던 찰나에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03, 코사카 키타로)이라는 자전거 레이싱 하는 애니메이션을 봤어요. 그게 스페인 배경인데, 일본어로 녹음이 되어 있잖아요. 전혀 어색하지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영화가 결국엔 남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명준은 북한, 보리는 남한을 상징하게끔 만들기 때문에 그냥 한국어로 가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리고 북한 말을 훈련을 해야 되는데 성우 분들은 대본 들고 와서 녹음실에서 바로바로 하고 가시는 분이니까 그분들께 되게 무리한 부탁이거나 제작비 예산을 굉장히 많이 초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우 분을 쓰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대신 발성 때문에 연극을 베이스로 했던 배우를 찾아야겠다 조건이 있었어요. 필름메이커스에 스크립트랑 상황을 적고 목소리 샘플을 보내달라고 해서 250개 정도 받았어요.
그때 보리랑 명준을 찾으려고 했는데, 남자 배우는 하나도 못 찾았어요. 그중에 압도적으로 목소리가 돋보이는 여성분이 있었어요. ‘와 이분은 복주다! 이 목소리가 다 이긴다.’ 너무 다이아몬드 같은 목소리인 거예요. 아무리 들어도 이분을 이길 만한 분이 없다. 그래서 복주로 캐스팅이 됐어요.
250분의 필모들을 보다가 우연히 탈북민을 소재로 한 영화를 하나 알게 되었어요. 거기서 탈북민을 연기하시는 한 배우님을 보고 헤드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이분이다!’라고 생각하고 섭외전화를 드렸죠.. 그분이 전운종 선배님이셨어요. 명준 연기를 너무 잘하셨죠. 보리는 끝까지 고민하다가 거의 막판에 서독제 배우 프로젝트에서 이찬용 배우님을 봤어요. 23년에 2등을 하셨거든요. 그분의 목소리가 보리랑 맞다고 생각해서 캐스팅했고 이유준 선배님이나 남기애 선배님, 송철호 배우님은 전운종 선배의 추천을 받았어요.
그리고 오진하 감독님께 시나리오 고증을 받을 때부터 “감독님 나중에 저희 언어 코디네이팅도…” 하면서 밑밥 작업을 했어요. 몰랐는데, 원래는 할리우드에서도 와서 북한 언어 코디네이팅을 받고 한국에서 내놓으라는 배우 분들도 그분한테 언어 코디네이팅을 받으셨더라고요. 젊은 친구가 참 애쓴다는 느낌을 받으셨는지, 가엾어 보이셨는지 그냥 해주겠다고 해서 배우들과 같이 가서 한 3회를 코디네이팅을 받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표상
호원: 명준이 어쩔 수 없이 보리 짐을 집에다 갖다 놓고 자전거를 타고 간단 말이에요. 명준의 집은 건너편인데, 자전거가 길게 한 바퀴 선회를 하고 나서 자기 숙소의 건물로 들어가는데, 어두우니까는 미로처럼 착착 돌아가는 거예요. 짧은 거리인데, 일부러 심리적으로 꼬았구나.
저는 감시한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 바로 앞에서 산다는 걸 안 보여주려고 돌아간다고 생각했어요.
유진: 맞아요.
보리: 두 개 다 들어가 있었어요. 그때가 딱 15분이거든요. 15분 안에 주인공이 바뀌어야 된다. 그 전환의 포인트에 무게를 주려고 일부러 거기를 롱테이크를 쓰려고 했죠.
유진: 자전거가 화면에서 한 번 사라지잖아요. 거기서 한 번 낚고 다시 돌아오는. 원래는 보리가 사는 관저의 구조를 가운데가 뚫리게 미음(ㅁ)자로 설계를 했었거든요.
호원: 중정이 있고
유진: 이 형태가 한 번은 멀리서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있어요. 여하튼 서로 마주 보고 있어서 보리는 사실 명준이 가까이 사는 걸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거죠.
보리: 그래서 “멀잖아요” 대사를 일부러 넣은 거죠.
유진: 멀리 살고 있는 줄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든 거고 명준은 아직도 안 들켰다고 생각하는 거죠.
관객도 알고 보니 가까이 사네 이 느낌을 주고 싶어서 열심히 했죠.
호원: 명준이가 보리 숙소에서 자기 숙소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어요. 얘가 보는 입장이다가 상대방의 위치에서 자기의 위치를 바라볼 때 객관화가 되겠구나 그 설정이 보여서 딱 정리가 되더라고요.
유진: 맥주 마시는 장면이 깨진 창문을 통해서 바로 쭉 가잖아요. 그러니까 명준이 처음에 갈 때는 보리랑 그 마음의 거리가 이렇게 돌아갔지만
보솔: 그 균열 사이로 이제
유진: 일직선으로
보솔: 흘러가는 거죠.
저는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돌아왔을 때 <타인의 삶>(2006,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생각이 많이 났었어요. 명준하고 비밀경찰이 겹쳐서. 작업을 하실 때 그 작품도 레퍼런스가 되었나요?
보솔: <타인의 삶>을 많이 참고했죠. 그거랑 같지 않게 가려고 남북한이 다른 점은 뭐지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아요. 그래서 도청하는 장면도 그렇게 많이 안 들어갔거든요.
호원: 조르조 데 키리코 그림이 <광장> 전체를 압축한 거기도 하고 이 그림 안에서 확장이 돼서 이 <광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연결을 시키기로 했어요?
보솔: 거의 초반에 결정이 난 것 같아요. 저도 이탈리아 화가인데 넣어도 되나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이 그림 한 장이 저희 이야기를, 굴렁쇠를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애가 명준을 대변하는 것 같은 거예요. 스웨덴 작가들도 많이 찾아봤는데, 영화나 캐릭터를 설명해 주는 그림은 없었어요.

보리 집의 액자는 명확하게 무슨 그림인지 안 보여주더라고요.
보솔: 그거는 금강산입니다. 보리의 집은 외교관들이 공유하는 오피스텔 같은 거일 텐데 특정 그림을 걸기가 어려웠고 북한의 그림이 있을 것 같다. 구할 수 있는 그림 중에 가장 해상도가 높은 걸로 했어요.
호원: 대부분은 삶은 달걀이었는데, 마지막에 생달걀이 나오잖아요.
보솔: 저희 영화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불가능의 가능성을 말하는 영화”예요. 이미지 한 장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엄청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에 가느다란 실금이 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영화라고 보거든요. 달걀은 그 균열의 의미 그리고 불가능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오브제죠.
계란 자체가 일부러 영화 안에서 비논리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었거든요. 통일을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잖아요. 보리가 명준에게 먹으라고 넣어준 달걀이 사실 들어갈 수 없는 지퍼 안 주머니에 들어 있었어요. 창문에 던진 달걀도 사실 날달걀이면 그걸 깨고 들어갈 수 없죠. 그리고 이게 날달걀이어야 했던 이유가 삶으면 달걀의 부화 가능성이 없어지잖아요.
삶은 달걀은 죽음을 상징하고 날달걀이면 아직 살아있는 상태를 상징하잖아요. 삶은 달걀인지 죽어 있는 달걀인지는 깨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죠. 균열이 한 번 탁 갔을 때 이게 살아 있었던 달걀이구나라는 거를 확인하게 만들고 그다음 컷에서 명준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게 설정을 한 거죠.
나는 자꾸만 『데미안』인가? 내가 너무 정석대로 해석을 하는 건가?
유진: 아니에요. 그것도 생각했어요. 사실 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 생각하니까.
보솔: 클리셰의 상징성이 있죠. 그것도 고려를 했었어요.
달걀을 아주 많이 쌓아놓고 먹어요.
유진: 북한에서 단백질을 먹을 게 별로 없으니까 달걀을 많이 먹었어요. 첫 장면도 나중에 추가된 신이고 계란에 대해서 좀 고민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이걸 넣어도 한 번에 봤을 때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많은데, 어떻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연출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53분이었고 20분 가까이 추가됐겠네요.
보솔: 그게 0번으로 신이 추가가 됐죠. 원래는 숫자에서부터 시작하는 장면이었거든요.
또 다른 장면들은 뭐가 있습니까?
유진: 지하철 신을 컷 추가해서 재미있게
호원: '이건 첩보물이야' 이러면서 거기 10분
얼개는 다 짜여 있고 살을 조금 더 붙인
유진: 처음부터 장편용으로 썼으면 훨씬 더 잘했을 텐데, 45분으로 하니까 저희도 시나리오가 모자란 느낌이 살짝 있어요.
보솔: 인물의 서사를 쌓는 부분들이 약하다는 피드백들을 받았죠. (한숨) 근데 물감 3개 쥐어주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채로운 화풍을 그리라고 말하는지.
유진: 다음 거 잘해야겠다.
보솔: 다음에 제약이 많이 풀리니까 훨씬 잘해보겠습니다.
중편은 1년 안에 제작해야 됐었을 거고 예산도 그만큼만 줬는데, 제작기간이 총 5년인가요?
유진: 거의 6년인데…
돈 떨어지고 어떻게 했어요?
보솔: 인건비 채우느라고 외부 작업했어요.
유진: 콘티하고
보솔: 그때가 스트레스가 제일 심했어요. 공장은 스톱돼 있는 상태에서 아카데미에서는 빨리 끝내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내 것도 아닌 다른 사람들 거 해주고 있을 때 진짜 죽고 싶더라고요.
호원: 결과물 보고 아카데미에서 뿌듯해하지 않아요?
보솔: 미안해하시죠. 그때 저의 목소리에 힘을 못 실어주셨던 교수님들도 미안해하시는 것 같고 최주영 교수님이 회의 때 한마디도 못해준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어요.
유진: 근데 이해가 솔직히 돼요. 저희도 검증을 할 작품이 있는 것도 사실 믿을 만한 구석이 없으니까 걱정이 많이 되셨을 거예요.
보솔: 그렇다고 제가 중간 과정을 공유드린 것도 아니고
유진: 망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셨겠죠.
뭔가 결과물을 아카데미에 줘야 되잖아요. 2025년 졸업 상영회 때 제출한 거예요?
보솔: 24년도 7월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내고 싶어서 한 90% 완성된 버전을 한번 공유드렸었죠. 심사용이기도 했고 그걸 통해서 뒤에 일정을 설득시킬 수 있었어요.
애니메이션 VS 라이브 액션
호원: 실사 영화 쪽 사람들이 이 작품에 한 방 맞듯이 아마 반응을 했을 거예요. 서독제에서는 특히 작년 올해 다 애니메이션이 최우수 장편을 받았기 때문에
<광장>은 2025년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상을 받았다.
감독님은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어야 했던 이유를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보솔: 북한이라는 지역 자체를 촬영을 할 수는 없으니까 물리적인 제한을 좀 벗어나고 싶은 게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해왔던 장르였다는 너무 당연한 대답이 있는 것 같고 세 번째는 애니메이션으로 하면은 이 마이너 한 이야기가 좀 더 보편적으로 사람들한테 다가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폭력적인 것도 한번 중화가 되는 게 있고 너무 무거운 이야기도 좀 쉽게 다가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했을 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않을까.
애니메이션도 기법이 엄청 다양하잖아요. 그림에 애정을 갖고 작업하시지만 대세는 3D 애니메이션이고요.
유진: 3D 생각은 전혀 해본 적도 없어요.
보솔: 컷아웃을 제안받긴 했었습니다. 너무 중요한 포인트가 그거는 제가 작업하면서 제가 흥이 안 난다고 말씀드렸었어요. 그리고 키 스태프가 저희 둘밖에 없을 텐데, 우리의 베이스가 2D였으니까.
유진: 만약에 다른 걸 해보려면 저는 스톱모션이 재밌을 것 같아요. 재범이가 하는 걸 옆에서 보는데 정말 매력적인 장르다. 미술 만드는 것도 좋고 또 스톱모션은 잘만 해놓으면 엄청 현장감 있게 할 수도 있고 뎁스 이런 것도 잘 나오고 룩을 너무 멋있게 잘 뺄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직접 하나하나 하는 장인 느낌도 있고.
호원: 뽀얗지 않고 까끌까끌하기도 하고 뿌연 톤 앤 매너를 유지하시더라고요.
빨갛게 얼굴 다 터 있어요.
호원: 추워서이기도 하고 홍조 띤 수줍음이기도 하고
유진: 표정도 뭔가 좀 더 있는 것 같고
보솔: 2D는 라인에 미색 발라서 보여주면 뎁스가 얇아 보이는 게 싫었어요. 저희가 가장 효율적으로 택할 수 있는 전략이 배경에 텍스처 한 번 바르고 인물도 볼이랑 코 터치하자 그리고 그림자 경계를 날카롭게 안 가고 거기도 텍스처 넣자 이거 세 개였어요.
유진: 예산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하게 되더라고요.
스태프는 어떻게 구하셨어요?
보솔: 인스타그램,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게 전부였죠. 홍대 애니과에서 제일 잘하는 친구였던 지금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인 친구가 한 명 있었고 유진 동기 중에 그때 마침 칼아츠 졸업하고 한국 온 친구가 한 명 있었고 홍대 친구가 또 한 명이 있었어요. 그리고 원화가로 한 20년 활동하신 분께 소개받아서 한 달 동안 같이 했던 분이 계셨어요. 근데 다 실패했죠.
여은아 감독이 <홈> 할 때 자문을 해주면서 원화가 구해도 합을 맞추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속되게 말해서 두세 달은 삽질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거 어차피 쓰지도 못해요”라는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광장>을 하면서 이게 안 맞춰지는구나 더 절실히 깨달았죠. 왜냐하면 제가 유진의 그림체를 맞추는 것도 끝까지 안 됐는데, 당장 그분들이 들어와 가지고 그 캐릭터 디자인에 안 맞춰지는 거죠. 그래서 이건 그냥 안 되는 거다라고 상정을 하고 나중에는 클린업이나 뒤에 보이는 엑스트라를 그리는 것 그러니까 전체 완성도 밸런스에 크게 지장이 없는 부분들로 선회해서 쓰게 됐어요.
호원: 실사로 찍었으면 이 영화가 사실적이냐 아니냐로 계속 갔을 거예요.
보솔: 대학 때 촬영을 너무 많이 해서 그것밖에 쓸 수 없긴 하지만 사실 고전적인 할리우드 레이아웃이 어떻게 관객을 몰입시킬 것인가에 따라 발전한 문법이잖아요. 그걸 지키다 보니까 카메라도 삼각대에 붙여놓고 아이 레벨에서 찍는 것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그러는 것 같아요.
호원: 세트를 구현을 하든 현장에서 찍든 실사였다면 이 작품의 정조인 외롭고 차갑고 습윤한 분위기가 화면에서 안 살았을 같아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여백까지도 잡아놓는 게 있어요.
유진: 애니메이션이 매력적인 게 이미지까지 합해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려 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이미지는 베리에이션이 너무 다양하니까. 저희가 하는 게 실사로 찍어도 무방한 샷들이 많은데, 진짜 이건 취향 차이인 것 같아요. 그림도 너무 실사적인 게 있고 완전 물성으로 하는 게 있는 것처럼, 저희의 지향점이 그쪽에 있는 것 같아요.
호원: 영화가 최상의 표현을 할 수 있는 매체는 더 이상 아닌 게 되었어요. 이 작품처럼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상상의 공간에서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를 정서적으로 전달을 하는 거는 라이브 액션도 쉽지 않은 지점이니까 잘 된 것 같아요.
2026 광장
호원: 스페셜 땡스 투 맨 마지막에 최인훈 이름이 나오는데, 생전에는 따로
보솔: 2018년도에 돌아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2019년도에 제가 『광장』 특강 갔었고 재밌는 얘기 그때 되게 많이 해 주셨는데, 최윤구 선생님 조세희 작가님 아드님이랑 친구래요. 대학교 가서 만났대요. 우리 집 통화 음질이 너무 안 좋은데 그 얘기를 하다가 조세희 작가의 아드님도 우리 집도 통화하기 되게 안 좋다고 그 얘기를 하고 집에 와서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최인훈 작가님이 도청당해서 그런 거라고 너무 당연하듯이 알고 계셨다고.
어릴 때부터 집에 사람들이 최인호 작가를 보려고 아침부터 이렇게 줄을 섰대요. 일산에 2층 집에 사셨나. 뭐라도 한 말씀드리려고 근데 그런 사람들이 하도 오고 가니까 안기부 직원이 항상 차 타고 저기 멀리서 자기 집을 보고 있었대요. 맨날 보는 아저씨니까 학교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고 인사하고 갔다가 돌아와서도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불러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너도 나중에 커서 너희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명준 같은 사람 아니면 경비원 같은 사람이네요.
보솔: 소설에서는 리명준이 배 타고 가다가 뛰어내려서 자살하잖아요. 박근혜 때였나. 뉴스 한참 소란스러운 것들을 보면서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리명준을 죽이는 게 맞았을까”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말씀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지 생각을 하다가 최근에 <세계의 주인>(2025, 윤가은) 만든 김세훈 PD님이 과거에는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영화를 끝냈다 하면은 요즘은 내가 생각하는 이 세계에 옳은 답은 이거야 라고 던져주는 식으로 영화가 끝나는 게 자기가 생각하는 요즘 시대의 거장의 추세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갑자기 연결이 딱 됐었어요. 어쩌면 뭐라도 나은 쪽의 선택을 내려주는 것이 요즘 시대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뜻에서 최인훈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용기가 필요해서일까요.
보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유진: 저는 이미 질문만 던지는 것들은 많이 나왔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는가와 더 좋게 보내는 거에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생각해”하는 거 보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알 수도 있는 거 같아요.
<귀멸의 칼날>이나 <체인소 맨> 같은 현란한 작품들이 난무하는 시국에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그리는 돌직구 같은 작품이어서 좋더라고요.
유진: 저희도 <체인소 맨> 만들고 싶어요.
보솔: <케대헌> 너무 만들고 싶죠. (웃음)
호원: <광장>이 만약에 큰 투자를 받았다면 결말이나 풀어나가는 방식이 달라졌을까요?
보솔: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호원: 명준이 복주를 데리고 탈출을 기도를 하고
보솔: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거는 북한 세계 안에서 갈무리를 해야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호원: 어차피 보리는 떠나게 돼 있는 거고
보솔: 투자자가 이렇게 애매하게 끝내시면 저희는 투자 못합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됐을까.., 하아
호원: "감독님 예술은 단편으로 하시고 장편으로서는 부를 한번 맛보시죠."
보솔: 그래도 제 뜻대로 했을 것 같아요.
호원: 영화제는 한 달에 두 곳 정도 도시는 거예요.
보솔: 12월까지는 그랬던 것 같고 이제 개봉에 앞서서 <광장>을 또 수정하고 있거든요.
어떤 수정을 하시나요?
유진: 작화가 모자란 부분들이랑
보솔: 편집의 듀레이션을 조금씩 수정하고 있어요.
호원: 다음 작품은 누구 작품이에요? 순번을 정하셨어요?
보솔: 시나리오 빨리 쓰는 사람. 원래는 턴이 유진에게 있는데
유진: 저는 그냥 생각만 하고 있고 보솔은 이미 트리트먼트가 나와서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어요.
보솔: 초고를 내서 미팅을 하기로 했어요.
인터뷰 2025년 12월 13일 @ 망원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