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ANIMATOR Mimyo's review #2

VCRWORKS


광화문을 메운 촛불이 청계천의 크리스마스트리로 변한다. 조리개가 조여지듯 아파트 단지에 석양이 스친다. VCRWORKS가 ‘월간 윤종신’과 협업한 두 뮤직비디오의 장면들이다. 2016년의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같은 해 대통령 탄핵 시위를 둘러싼 일상과 정치의 스냅숏들을 엮어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에 따스한 안부 인사를 전한다. 2018년의 <Slow Starter>는 동심을 간직한 도시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매일 몽상하다 점차 붕대에 뒤덮이는 자신의 몸을 발견한다. 좌절의 끝에 인물은 나비로 변해 하늘을 날아오른다.



두 작품 모두 시청자를 매료시키는 것은 일상에서 찾아낸 비일상적 감각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종잇장이나 필름이 넘어가는 듯한 사각형의 규칙적 운동이 터널의 불빛이나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로 드러난다. 기하학적 형태를 중심으로 풍경을 단순화시켜 이를 다른 대상에 연결하는데, 시국 및 세태의 다양한 상징물들을 감각적으로 몽타주 하는 중요한 기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Slow Starter>는 인물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아파트의 외벽이 90도 뒤집어져 바닥으로 기능하기도 하면서 수직과 수평의 감각을 비틀어놓는다. 마치 우주정거장의 풍경과도 유사한 감각으로, 인물의 몽상적 성격이 강조된다.


또한 두 작품에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고전적 상징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날리는 돈다발이나, <Slow Starter>의 별, 고치,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틈에서 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장면과 상징들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노란 리본, 주요 인물들의 얼굴, 청계천 광장, 엉뚱한 도안의 만장들, 가습기로 형상화된 굴뚝 같은 것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흥미로운 조형미로 여겨질 것이나, 2016년의 이슈들을 알고 있는 이에게는 쉴 틈 없이 기억을 환기하고 의미망을 찾아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들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많은 양의 이슈를 압축적으로, 속도감 있게 쏟아내는 전광판 같은 역할을 부여받는다.


<Slow Starter>의 경우 몸을 덮은 붕대가 신비롭게 흩날리며 인체가 빛을 발하고 카메라가 회전하는 것은 명백히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의 레퍼런스다. 단순한 오마주라기보다는 중요한 이중 반전 장치에 가깝다. 작중 인물의 꿈은 천체망원경, 은하수, 별똥별 등 우주적 세계로서의 하늘로 표현되며 그것이 빽빽한 아파트 단지와 대조를 이룬다. 좌절하던 인물에게 마침내 변화가 찾아왔을 때, 마법소녀 레퍼런스는 그 화려하고 극적인 성격을 강화한다. 변신의 결과는 우주와는 거리가 먼 한 마리 나비에 ‘불과’하다. 아파트 단지의 원경에서는 단순히 흰 날개인 나비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클로즈업 됐을 때 찬란한 무늬를 빛낸다. 일견 초라한 성취일지라도 무의미하지 않고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 작품의 메시지이며, 변신 장면은 이를 정서적으로 한 번 더 뒷받침한다.


<Slow Starter>는 원래 2016년 곡인데, 보컬리스트를 이승기로 바꿔 새로 녹음한 것이다. 뜨거운 목소리의 윤종신이 한결 다정한 질감의 이승기로 교체되면서 곡 역시 가볍고 동화적이며 도회적인 공기감을 띠게 됐다. 스포츠를 테마로 한 실사 뮤직비디오가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제작된 것도 이에 조응한다. 이에 애니메이션적 장치가 두드러지게 활용되면서 몽상적 세계의 개인적 성격이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위로의 의미도 적극적으로 부여하게 되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도 SNS와 직결된 시국 특성상 실사 푸티지가 그야말로 넘쳐나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함으로써 사건과 작품, 시청자의 거리를 조절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건을 담는 숨 가쁜 몽타주지만,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뜨겁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기억이 작품과 생생하게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 그래서 그야말로 연하장처럼 느긋한 공감대를 일으키는 작품이 되었다.


‘월간 윤종신’은 앨범 중심이던 전통적인 음악 작업의 사이클을 벗어난 작업이다. 장기간에 걸쳐 전력을 다해 제작하는 앨범에 비해 가볍게 다양하고 이례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방식이며, ‘기획’이 관여할 여지도 큰 편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와 <Slow Starter>는 곡의 기획 의도와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 그리고 작품에 담긴 표현기법이 매우 좋은 조합을 이룬 경우라 할 수 있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웹진 『아이돌로지』 전 편집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프랑스 파리8대학 및 대학원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일렉트로닉 음악가로 활동했다. 케이팝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비평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돌리즘: 케이팝은 유토피아를 꿈꾸는가』를 썼고, KLF의 저서 『히트곡 제조법』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