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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ANIMATOR 그 여름

그 여름ㅣ최은영 | 문학동네 | 2018

그 여름 | 한지원 | 레드독컬쳐하우스 | 2021

시골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이경과 수이는 연인 사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은 모두 서울로 올라가지만 부상 때문에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한 수이는 대학생이 된 이경과는 달리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경비를 배운다. 서울에서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누리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두 사람의 삶은 조금씩 벌어져 간다.

한지원의 <그 여름>은 레드독컬처하우스와 라프텔이 공동 제작한 7부작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10여분 길이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이으면 1시간 정도 분량이 된다. ‘굳이 이렇게 나눌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원작인 최은영의 동명 단편소설이 커버하는 시간이 꽤 긴 편이라 이 형식도 나름 의미가 있다. 시리즈의 형식은 1시간짜리 영화였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그린다.

각본만 보면 이는 <TV 문학관>이고 동시대의 현대문학을 각색했다는 차이점만 뺀다면 <무녀도>나 <소나기>로 대표되는 연필로 명상하기의 문학 각색물 시리즈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여름>이 GL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퀴어 캐릭터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는 단계를 넘어 이런 캐릭터들을 다루는 이미 고정된 장르로 들어간다. 라프텔에서도 이 작품에 #GL 백합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이 장르는 작품의 탐미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각색은 조연 캐릭터 한 명을 삭제하고 후반 전개를 조금 축약한 걸 제외하면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그리고 그 충실함은 정교한 애니메이션을 통한 텍스트의 재해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20년 전 과거를 재현한 비슷한 시대를 다룬 실사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단지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시청각적으로 아름다운 결과물이 이 이야기를 그려내는 최선의 방법인가? 이것은 사실 원작을 읽을 때도 드는 생각이다. 이경과 수이의 이야기는 이별로 끝난 달콤 쌉싸래한 연애담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냉정하다. 단순히 두 사람이 어른이 되어 달라졌다는 것만으로는 이들의 관계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졸업 이후 서울로 올라왔지만 한쪽은 집안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공부하고, 다른 한 명은 대학을 다니면서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이들 관계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후자이다.

<그 여름>은 계급의 이야기다. 이 모든 것은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게 바깥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후자인 이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원작을 읽는 독자들도 이경의 변명 뒤에 가려진 비겁함과 잔인함을 인식한다. 이건 효과적인 이야기 전달 방법이긴 한데, 과연 영상 각색물, 특히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GL의 언어로 이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최선인지 의심하게 된다. 각색물은 그 과정 중 아름답지 못하고 그래서도 안 되는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다. 모든 것이 꼭 아름답기만 할 필요는 없고 어떤 각색은 원작과는 다른 길을 통해 소재와 주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듀나

소설뿐 아니라 영화 평론 등 여러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SF 작가. 1992년부터 영화 관련 글과 SF를 쓰며, 각종 매체에 대중문화 비평과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장편소설 『민트의 세계』, 소설집 『구부전』, 『두 번째 유모』,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 특급』,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연작소설 『아직은 신이 아니야』, 『제저벨』, 영화비평집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 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등 약 40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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