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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 KIM Yeonjeong x OH Hyunju x KIM Minju

8월 14일
20분 분량

김연정 x 오현주 x 김민주

사진 왼쪽부터 오현주, 김연정, 김민주
사진 왼쪽부터 오현주, 김연정, 김민주

연정, 오현주, 김민주는 청강문화산업대학에 정박한 줄라이필름스의 두 번째 물결이다. 2017년 입학 동기들이지만 각자 다른 시기에 졸업했고 <마이 리틀 월드> 작업을 하며 겨우 안면을 텄다. 셋이 일 년쯤 마음을 맞춘 뒤 연정과 현주는 <이 별이 필요한>(2025)의 애니메이터가 되었고 민주는 거듭 러브콜을 받아 회사에 들어갔다. 이들은 낮의 일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갈망을 채우지 못해 2024년부터 PEGS(페그스)라는 이름으로 뭉쳐 퇴근 후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을 그려왔다. 페그라니 작화지를 고정하는 금속은 녹슨 유물이 아니었나. 요즘 누가 종이 작화를 한다고. 그 "누"를 만났다. 한 번에 셋이나.


2026년 8월 인터뷰

우리는 페그스다!


우리 언젠가 함께 뭉쳐서 작업실을 하자

페그스는 어떻게 결성되었나요?

연정: 대학 동기 셋이 마이크의 프로젝트에 1년 동안 참여하면서 뭉치게 된 거예요. 마이크가 판을 깔아준 거죠. 2021년도에 다 같이 <마이 리틀 월드> 제작에 참여했어요. 


저희는 대학 내내 친구가 아니었어서 약간 색한 이였는데, 저희 세 명이 비전이 비슷하고 목표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서로 동의할 수 있고 지지도 해 줄 수 있어서 마이크 프로젝트를 나올 시점쯤에 우리 언젠가 함께 뭉쳐서 작업실을 하자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제가 2022년 12월쯤 제일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현주도 나오고 그다음에 민주가 나왔어요.


제가 서대문구 홍은동에 거주를 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둘이 은평구로 이사를 온 거예요. 타이밍이 왔다 해서 세 명이 발품을 팔아서 스튜디오를 찾으러 다녔어요. 또 학번상으로는 저희 후배인데 저랑 동갑인 조나현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도 저희랑 작품의 결이나 방향성이 잘 맞아서 넷이 모여서 시작을 한 거였어요.


학교 다니는 3년 동안은 일면식도 없었나요?

연정: 저희 학교에 CCRC(청강창조센터)라는 졸업작품 작업 공간이 있잖아요. 거기서 오며 가며 약간 알게 된 사이 정도였어요.


현주: 제가 연정 님 작품을 촬영하는 걸 뒤에서 봤었어요. 그때 용기가 안 나서 멀리서 바라보고 ‘저 사람 잘한다.’ 민주 님의 작품도 저희 학교 카페 게시글에 올라온 과제를 보고 ‘이 사람 잘한다’ 마음에 다 저장을 해놓았는데, 다 졸업하고 만나게 된 거죠. 그때 작업으로나마 알았던 분들이 진짜 실존하는구나. 얼굴을 트게 되는 순간이어어서 더 반가웠죠.


호원: 그때는 몇 명 정도 입학했어요.

현주: 170명대였던 걸로 기억해요. 170, 180명


호원: 170명이 같이 들어와서 졸업할 때까지 모르는 채로 졸업하는 경우도 많죠.

현주: 연정 님은 되게 대외적으로 활동적이신 분이라 모두가 알았어요. 연정 님이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으셨어요?


연정: 졸업 작품 할 때 학교에 애니메이팅을 중점으로 하는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코로나 때여서 더 서로랑 단절되는 게 안타까운 거예요. 그래서 온라인상으로 함께 활동을 하거나 소수가 강의실에 모여서 종이 작화를 했어요.


동아리의 회원은 아까 말씀하셨던 카페 같은 데서 모으는 거예요?

연정: 진짜 정석적으로 벽에 공고 붙여서 모집했어요. ‘어찌 됐건 모여서 같이 작화를 하자’ ‘대면해서 내가 뭘 느꼈는지 말을 하자’가 목표여서 선후배 없이 진짜 다 친구로 모여서 했어요.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인원이 25명 정도밖에 안 됐는데.


25명 밖에라고요?

연정: 온라인 카페에 100명이 넘게 들어왔었거든요. 실제 대면 활동을 할 때에는 25명 정도 분들이 같이 해 주셨었죠. 그때도 현주는 통학생이고 민주는 계속 보기가 힘들었어요.


현주: 두 분은 서로 휴학하는 시기도 달랐고 저는 휴학을 안 하고 바로 4학년까지 했거든요.


25명이나 되는 사람은 어디서 만나나요?

연정: 동아리 활동 내에 종이 작화 모임이 있어서 제가 작화실이랑 비품을 학교에 요청해서 빌렸어요. 특정 날 특정 시간에 모여서 야작 하듯이 했어요. 그래도 선배면 살짝 더 알잖아요. 1, 2학년 분들한테 제가 플리핑 하는 법이라도 소개해 드린다든가 수업에서 소화가 안 된 것들을 나누면서 같이 배워갈 수 있는 장을 만들려고 했어요. 친구들끼리 이 부분은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얘기하는 게 좋았던 활동이었어요.


호원: 그런 모임이 이전에는 학교에 없었어요?

연정: 영화 감상 동아리나 3D 동아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종이작화를 하는 모임은 이것뿐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어떤 상태예요?

연정: 열심히 활동하던 후배한테 “이제 네가 알아서 해” 하고 저는 졸업해 버려서 그 이후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제가 강사로 학교에 갔더니 제 수업을 듣는 학생이 동아리 장이라는 거예요. 비공식 동아리라 담당 교수님이 계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동아리 이름이 뭐예요?

연정: 물리클럽이요. 


  • 물리클럽 온라인 카페
  • 물리클럽 종이 작화 모임
  • 물리클럽 종이 작화 모임

호원: 동아리는 2D드로잉을 하는 친구들인가요?.

연정: 맞아요. 혹은 3D를 하는데, 연기 욕심이 있어서 2D 기본을 배워보고 싶다. 수업은 부담이 크니까 여기 와서 그런 걸 얻어가는 거예요.


연정 님은 평소 잘하는 친구들을 따로 눈여겨보는 게 아니고 나에게로 와라. 

현주: 원래 이렇게 잘하면 소문 나서 알아서 오게 돼있어요.


학창 시절 때 못한 걸 졸업하고 했어요

호원: 현주 님은 그 동아리에 안 들어갔어요?

현주: 저는 혼자 작업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학교 가면 교수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에게서부터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놓쳐서. 아직까지도 한이예요. 그때 수줍음도 많았고 통학생이라는 핑계로 수업 듣고  바로 갔거든요. 마이크 교수님 통해서, 연정 님 통해서 서로 교류하고 얘기하는 문화를 접하다 보니까 이제 자연스러워졌어요. 학창 시절 때 못한 걸 졸업하고 했어요.


민주 님은 청강 다녔을 때 다른 친구들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나요?

민주: 저도 연정 님은 건너 건너 알았어요. 제 친구의 친구여서 ‘쟤랑도 친구구나’ 정도로 아는 사이였고 현주 님은 뒷모습만 알았어요. 같은 야작실을 사용했었는데 항상 고정석에 앉아계셨어요. 그때만 해도 저희 학번은 1학년 때 다 종이 작화를 해야 했어서 항상 양옆에 자기 키만 한 종이 작화지를 놓고 혼자 앉아 계신 거예요. 뒤에서 보면서 ‘열심히 하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예전 작업물들 보여주실 때 알았죠.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야작실에 보통 몇 명 정도 있어요?

민주: 많으면 한 10명 적으면 한 자릿수? 보통 친구들끼리 신청을 해서 아무 자리에 앉아서 하는데, 같은 방에 있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죠.


야작실은 신청하면 일정 기간 같은 자리를 쓰는 건가요?

민주: 매번 신청해야 돼요. 


그럼 현주 님만 고정석이었던 거예요?

민주: 그래서 신기했어요.


현주: 제가 내향적이어서 항상 바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106호 맨 뒷자리에 앉았어요.


민주: 제가 뒷모습을 알았던 게  뒷문 바로 뒤가 투명 유리예요. 밖에서 볼 수 있었어요. (웃음)


현주: 그 종이가 다 마이크 과제 (웃음) 전공필수였어요.


전필 수업에서도 서로 잘 몰랐나요?

현주: 그때 수업이 안 겹쳤던 것 같아요.


연정:  강당에서 진행되는 대형 수업이다 보니까 사실 거의 알기 힘들었어요.


민주: 연정 님은 굉장한 마당발인데, 저는 닌자였거든요. 


사회성을 배웠죠

마이크의 수업이 마음에 들어서 같이 한번 해봐야겠다 하고 조인을 하신 거예요?

연정: 저는 제일 마지막에 합류한 멤버였어요. 12월에 종강 거의 다 됐을 때  “내 작품에 참여해 보는 거 어때?”라고 해서 들어가게 된 거였어요.


민주: 저는 같이 저녁을 먹었었어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불러낸듯 한데, 밥 먹을 때는 얘기 안 하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필름에 함께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러더니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서 계산기로 뭔가를 치는 거예요.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급여는 이 정도?” 이렇게 얘기하셨던 거로 기억해요. 그날 신이 나서 그때 친구들이랑 4학년을 하려던 계획도 수정하고 합류했죠


현주: 저는 통학생이니까 학교에 많이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DM을 받았었어요. 저는 마이크 덕분에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애니메이션 12원칙” 수업을 재밌게 들었던 기억으로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래서 DM 받았을 때 정말 행복했죠.


마이크가 나를 언제 어떻게 알아봤다고 생각해요?

민주: 과제 중에 좋게 생각해 주신 게 몇 개 있어서 저를 찾으셨어요. 실제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니셨고 당시 마당발이었던 연정 님한테 누구냐고 물어봤는데도 제가 닌자여서 연정 님도 모르셨던 거예요. 그때 교수님 수업도 들었었어요.  피드백 안 받아도 된다고 하셔서 ‘그럼 안 받아야지’ 이러고 도망가고 그랬었는데 그 후로 연락을 받았죠. 가끔 저녁 먹고 그렇게 조금 교류하다가 9~10월쯤에 연락을 주셨어요. 


현주: 저도 과제로.


연정: 저는 워낙 외향적이어서 마이크가 처음 왔을 때부터 친해지기 위해 작업물을 들고 자주 찾아갔고, 마이크가 영화제 간다고 하면 따라다니면서 친해졌던 거 같아요.


현주: 저는 간단히 피드백 수줍게 요청드리던 학생.


민주: 항상 얘기하는 “하이 바이 친구”였어요.


현주: 창작마을 복도에서 마이크 보면 “하이 마이크” 한 다음에 “바이 마이크” (다 같이 웃음)


연정: 마이크, 민주, 현주 다 내향인이어서.


민주: 사회성을 배웠죠.


스튜디오에서 서로의 첫 인상이 기억나요?

현주&민주: 너무 무서웠어요. 


현주: (웃음) 민주 님이 <연흔>(2021)이라는 작품에서 헤드 애니메이터로 작업을 하셨으니까 “민주 님 <연흔> 너무 잘 봤어요” 했는데, 민주 님이 “아, 네.” 그래서 ‘나랑 말하기 싫은가?’ 싶었어요.


민주: 그 시절 사회성 제로였어요.


민주 님은 뭐가 무서우셨어요?

민주: 현주 님이 그때 단발머리에 굉장히 빡센 화장을 하고 오셨어요. 저희가 5명이었는데, 그중에 혼자 그렇게 꾸미고 오셨던 거예요. 그래서 무서웠어요. (웃음)


연정: 졸작 시기가 코로나와 겹치긴 했지만 저희가 다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라서 항상 학교에 있어요. 민주는 CCRC 입구 자리에 있는 조였어서 제가 친구의 친구니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어느 날 저희가 같은 자취방 단지에 산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같이 청강대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오늘부터 친구 하자” 하고 어깨동무를 했는데, 진짜 반응을 하나도 안 하는 거예요. (웃음) 너무 무서웠어요.


민주: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연정: 현주는 ‘키가 큰 사람’. 애니과에 거북이 밖에 없는데, 야작실에서 혼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던 게 첫인상이었던 것 같아요.


현주: 연정 님은 첫 만남에 반말로 유명하시잖아요.


연정: 제가 반말론자예요. 저는 수평적인 환경이 창의성을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랑 함께 하려면 무조건 말을 놔야 된다. 


현주: 그래서 첫 만남에 말을 놨어요.


연정: 마이크와 일할 당시 저랑 현지를* 제외하고는 다 내향인이라 제가 먼저 “우리 말을 놓자” 했어요. 페그스에서도 당연히 반말을 사용하고 있고요.

*박현지 <플리에 & 리바운드>(2024) <소피의 마법일기>(2023)


호칭은 어떻게 해요?

연정: 그냥 이름으로 민주, 현주. 연정, 마이크 이렇게.


현주: 교수님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거 너무 싫어했어요. “낫 교수님” 그래서 마이크가 됐죠.


언제쯤 이렇게 의기투합을 하게 된 거예요?

연정: 같이 술 마시고 놀면 지한 화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같이 영화제 다니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까 느끼는 게 비슷한 것도 있고 또 저희 셋이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는 게 저희 각자한테 자극이 되고 재미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 중에 30~40년 지나도 애니 관둘 사람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뭉치게 된 것 같아요. 



민주 님이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 언제예요?

민주: 저는 좀 오래 걸렸어요. 일한 건 1년인데 저희가 4학년 때문에 조금 더 남아 있어서 셋이 한 2년은 거기에 같이 있었거든요. 저는 2년 차쯤에 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성격도 취향도 다르지만 작업적인 면에서는 서로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면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특히 캐릭터 연기와 애니메이팅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작업을 함에 있어서도 연기를 1순위로 둔다는 점이 잘 맞았어요.


연기라는 게 또 사람마다 좋아하는 연기가 있잖아요.

민주: 스타일을 넘어서 안의 본질이 느껴지는 걸 해주세요. 현주 님은 발랄하고 통통 튀는 움직임을 좋아하시고  연정 님은 조금 더 진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시는데, 그 안에서도 캐릭터 성격이 보이니까 표현 방식은 상관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마이크 작업을 할 때 여러분들의 역할은 어떤 거였어요?

민주: 클린업 아티스트로 클린업을 주로 했지만 엑스트라 신 남은 거 러프를 할 때도 있었어요.


작업은 어떤 식으로 했나요?

민주: 10시부터 해서 8시간, 7시 퇴근이었어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잡담도 안 하고 자기 작업만 하나요?

연정: 4시간 동안 점심시간 가져본 적 있어요. (웃음)


민주: 마이크는 점심도 먹지 않는데,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으면 이야기 꽃이 펴요. 그게 한 3시간 갈 때가 있고.


현주: 3시쯤 무조건 산책도 갔어요. 먼저 “산책?” 이러시면 다들 일어나서 CU 편의점 한번 갔다 오고.


민주: 그것도 한 2시간 했던 거 같아요. (웃음)


대화의 주제는 그냥 아무거나 나오는 대로 하는 거예요?

현주: 정말 다양해요.


연정: 그 테이블에서 나눴던 모든 담론이 엄청 철학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같은 주제나 퀄리티의 대화를 사회에 나와서 하기가 진짜 어렵다고 느껴요. 저희의 공유된 감수성 같은 게 그래서 생긴 것 같기도 해요.


민주: 저희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얘기를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누군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항상 의견을 물어봤어요.


연정: “민주 생각은 어때?” “현주 생각은 어때?” 이렇게.


민주: 저는 정말 말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몇 개월째 물어보니까 결국 대답을 하기 시작했어요.


여기 영어라는 허들이 있잖아요.

연정: 덕분에 영어가 늘었어요.


현주: 텀블러에 마이크가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친절하게 적어놓은 자료들이 있는 레인 플레이스라는 공간이 있어요. 한마디라도 얘기해보고 싶어서 그거 번역하면서 영어 공부했어요. 지금은 진짜 친한데 그때는 어색했거든요. 조금 일찍 오면 둘만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뭐라도 말을 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그 숨 막히는 정적을 벗어나고 싶어서 스몰토크를 해보려고 그걸 열심히 읽었어요.


줄라이필름스 재직 당시 페그스 멤버들
줄라이필름스 재직 당시 페그스 멤버들

동료들 덕분에 버틴 프로젝트였어요

하나씩 스튜디오를 떠나 독립을 하게 되었죠.

연정: 귀한 경험을 했다 생각하면서도 성장을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 1학년 때부터 애니메이터로 이런저런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이 별에 필요한>에 투입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스물한 살 때 <아만자>(2020)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한지원 감독님을 알게 됐어요. 이후 “이 별” 파일럿에 참여하기도 했었고 그 연이 계속 이어져서 장편 제작까지 가게 된 거예요.


현주 님은 연정 님 소개로 참여한 건가요?

현주: 저는 학생 때 외주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가 없었어요. 공고가 났어도 ‘뭘 내야 되지’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마이크 교수님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저희에게 일하면서 5일 중 하루는 너희들 필름을 만들라고 자유 시간을 주셨거든요. 그 시간에 틈틈이 했던 애니메이팅 클립들을 모아서 지원을 했어요. 그게 돼서 “이 별” 참여하러 떠났었습니다.


호원: 두 분 다 클라이맥스에서 한 거예요?

연정&현주: 네. 인하우스에서 2년 정도 근무했어요. 


한국 최초 넷플릭스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은 어땠습니까?

현주: 김수정 님이라고, 함께 인하우스 애니메이터로 참여하셨던 정말 든든한 분이 계세요. 같은 학교 졸업생이시고 지금은 직장 동료이기도 해요. “지금 다시 ‘이 별’을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저는 반반인 것 같아요. 그때의 에너지는 그때만 나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 모여 좋은 시너지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어요. 함께한 사람들을 보며 버틴 프로젝트였습니다.


연정: 진짜 동료들 덕분에 버틴 프로젝트였어요. 모든 공정에 계시는 분들이 다들 본인의 최선을  내어주려고 하시고 저도 돌이켜 보면 제가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쏟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지 싶어요.


어떤 면이 그렇게 힘들었어요?

현주: 마감이요. 마감이 영어로도 데드라인이잖아요. (다 같이 웃음) 후반에는 저희가 합이 맞아서 감독님의 요구 사항을 조금 빨리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예요. 한 컷을 셋이 나눠서 하루 만에 하기도 하고 그런 에너지가 서로 나왔던 것 같아요.


연정: 이게 인하우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와의 협업 때문에 파일이 엄청 오고 가야 되는데, 그 안에서 합의해야 되는 언어들을 숙지하는 것도 오래 걸렸어요. 이 프로젝트는 내부에서 저희가 고안한 유기적인 공정이 있어서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마감을  지키는 게 어려웠어요. 특히 감독님께서는 타협하는 것보다 저희가 좀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게 푸시를 많이 해 주셨어요. 


유기적이라는 거는 뭘 말하는 건가요?

연정: 애니메이션 팀은 레드독이랑 컷을 나눠서 동시에 했어요. 프로덕션은 하나니까 저희가 레드독의 공정을 맞출 수도 있잖아요. 인하우스 팀은 원화를 많이 쓰는 편이었어요. 엘리스라는 리드 애니메이터분이 유럽 베이스이다 보니까 접근 공정이 완전 다른 거예요. 우리끼리의 효율을 찾을 수 있게 연구하는 기간도 있긴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인하우스 애니메이터들이 편한 방식으로 합의를 해서 작업하고 외부화해야 할 때는 그들의 언어로 바꿔서 발주를 해 주시고, 제작부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저는 작업자로서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는데, 프로젝트 전체로 봤을 때는 마감하기가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호원: 내부에서 무슨 색 바지 입고 그랬다고

현주: 갈색 바지 모임!


멤버들이었습니까?

연정: 저희 한 번 참여했어요. 그거 1회밖에 없었어요. (웃음) 


현주: 몸이 지쳤지 마음이 지치지 않았어요.


연정: 멘털이 깎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현주: 진짜 덕분에 똘똘 뭉쳤어요. 서로 너무 고마워서 밥 먹다 운 적도 있어요. 저녁 먹다가 연정 님이 감사 일기를 쓴다는 거예요. 연정 님이 나지막이 “근데 여러분 얘기밖에 없어요” 이러는 거예요.


연정: 그때 만나는 사람이 둘밖에 없으니까 (웃음)


현주: 수정 님이랑 저랑 먹다 내려놓고 진짜 (양쪽 눈에서 눈물 주룩주룩) 이렇게 울었어요.


인하우스 애니메이터가 세 명밖에 없었어요?

연정: 한창 제작을 하던 중반에는 내부 애니메이터가 10명 좀 넘게 계셨는데, 후반 2개월 마감 직전에 막 몰아칠 때는 인하우스 애니메이터가 3명이었어요. 이 인원으로 작업량 소화가 어려워서 제가 친구들을 많이 끌어들였죠. 현재 페그스 멤버인 수민과 원희*도 와서 도와줬어요. 진짜 모두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작품이에요. 저는 그때 진짜 한국에 있는 2D 하시는 분들이 다 와서 해 주시는 거 같아서 약간 감동받았었어요.

*정원희 <까마귀가 물어갔어 >(2021) 아트디렉터


현주: 진짜 그때 애니인들 다 뵌 것 같아요. 출근하면 못 보던 분들이 앉아 계셨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서로 성함을 제대로 못 나누고 가신 분들도 계세요.


브이시알은 거의 I들 세계거든요

한편 민주 님은 그때 뭘 하고 계셨나요?

민주: 제가 4학년을 하던 해 십자인대 파열을 당해서 목발 생활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휴학을 할까 하다가 졸업작품을 미완성 상태로 러프 단계만 편집해서 4학년 끝냈어요. 졸업할 때 다리 교정기를 계속 끼고 있어서 연정 님처럼 나가서 뭔가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본가도 서울에서 철수하고 지방으로 가셔서 나는 그냥 쉬면서 개인작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남아 있던 해였어요


현주: 저는 그때 마이크 통역으로 남아 있었어요.


민주: 그 시점에 마이크 전 크루분이 계시는 회사(VCRWORKS)에서 워크숍을 오셨었어요. 마이크랑 얘기하러 대표님과 PD님이 사전답사를 오셨었는데, 저희랑도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그때 마이크가 감사하게도 작품을 보여주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줬어요. 그로부터 한 일주일인가 뒤에 혹시 합류할 생각이 없느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때는 제가 이 회사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어서 바로 가기가 부담스러웠어요. 대신 서로를 알아갈 겸 외주를 받아서 작업하게 되었어요. 해가 지나갈 때쯤 또 제안을 주셔서 취직과 동시에 떠났죠.


외주를 하다가 낯선 사람 잔뜩 있는 사무실을 갔을 때는 어떠셨어요?

민주: 어게인이었죠. (다 같이 웃음) 사회성이 늘어서 3개월 정도 안에는 조금 풀렸는데, 적응하기 어려웠죠. 두 분이 행운이셨던 건 아는 분들이 많았던 건데, 저는 아예 없는 상태였거든요. 완전 새로운 사람들이었어요.


3개월이면 엄청 단축 됐네요.

민주: 환경이 진짜 달랐어요. 저희는 얘기도 많이 하고 산책도 우르르 나갔다고 들어오고, 연정 님도 현주 님도 외향적인 면이 있어서 어쨌든 굉장히 활기찬 분위기였어요. 브이시알은 거의 I들 세계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서로가 낯을 가렸던 거 같아요. 작업에 더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더 강했던 것도 있고요.


처음에 가셔서 했던 일은 어떤 거예요?

민주: 그때 당시에 많이 했던 게 <브롤스타즈> 게임 무비였거든요. 고질라랑 협업하는 <브롤스타즈> 무비부터 시작해서 계속 그런 걸 했었죠.



외주를 할 때는 뭐 하셨어요?

민주: 그때도 <브롤스타즈>였어요. 


돌파구 아니면 도피처

<이 별에 필요한> 다음에는 어떤 거를 하셨죠?

연정: “이 별” 끝나고 그 한 해 기억이 거의 없어요.  


현주&민주: 일을 많이 하셨잖아요.


연정: “이 별” 이력 덕분에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 별” 끝나자마자 KT 콜라보 광고에 참여를 했었어요. 그거부터 해서 계속 촘촘하게 일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카디(KARDI)라는 밴드의 뮤직비디오 일부를 제작했었고 학교 강의를 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작년에는 학교 강사로 적응하는 와중에 프리랜싱도 하면서 엄청 바쁘게 지냈어요.


현주: 저는 “이 별” 딱 끝나고 불안함이 증폭이 돼서 저를 덮쳐 왔어요. ‘나 이제 뭐 하냐’


민주: 외주도 했거든요? 


현주: 민주 님의 소개로 브이시알에서 잠시 외주 작업을 했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지원해보고 싶었던 스튜디오 피보테에서 채용 공고가 나서 지원했고, 올해로 2년 차가 됐어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만들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멀리 제주 본가에 있는 강아지가 그리워 10초짜리 영상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셨어요. 그 반응이 힘이 돼 퇴근 후에도 제 작업을 계속하게 됐고, 영상이 알고리즘을 통해 많은 기회가 생기면서 제 작업으로 외주 의뢰도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피보테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셨어요?

현주: 입사 후 뮤직비디오와 게임 PV 등 다양한 작품의 애니메이팅을 경험했어요.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작업도 많이 하면서, 익숙한 방식에만 갇혀 있던 느낌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어요.


민주 님도 가장 최근에 작업한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어요.

민주: 뮤직비디오는 제 친구인 하라 님*과 전에도 한 번 했었거든요. 하라 님이 아지카진(Azikazin Magic World)이라는 팀에서 연락이 와서 뭔가 재밌는 걸 해볼 수 있을 거 같다 혹시 할 생각이 있느냐라고 했을 때 좀 고민을 하다가 했어요. 회사 일의 돌파구 아니면 도피처처럼 색다른 걸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했었던 게 되게 좋았어요. 

*정하라 <프로즌 핸즈>(2024), <까마귀가 물어갔어>(2021)



그때 이후로 간간이 외주 일을 하게 됐어요. 현주 님이 저한테 같이 하자고 하시기도 하고 김경하 작가님** 일도 했었어요. 개인 작업에 애니메이터 할 생각 없냐 해서 그때는 제가 연차 내고 쉬는 기간에 잠깐 가서 했었거든요. 

** 김경하 <종이처럼 얇은>(제작 중), <햄스터, 여우>(2015)


경하 작가님이 정다희 감독님이랑 자주 일을 하셨어요. 이번에도 일을 제안을 받으셨는데 시간이 안 되셔서 저를 대타로 추천해 주신 거예요. 다희 감독님께서 “팬이시라면서요”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기간도 안 물어보고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하겠습니다!” 했는데, 결론적으론 진짜 재밌었고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전에는 최대한 효율을 신경 써서 하려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욕심이 났어요.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감독님인 데다 감독님도 기준이 좀 높으신 편이고 저도 헤드 애니메이터니까 욕심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무리를 많이 했죠. 개인적으로 2차 출근이라고 불렀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야근도 다 하고 끝나고 여기 와서 밤새 일을 하는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저희가 사람을 많이 썼어요. 관리하는 일도 새벽까지 하고.


민주 님 성격 상 관리하는 게 제일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민주: 카톡이니까. 사실은 대면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사람이랑 친해지는 걸 어려워하는 거 이전에 소통을 할 때 쓰거나 그려서 드리는 것보다 1차적으로 말로 할 수 있으면 편했겠다는 생각을 일 하면서 많이 했어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자아를 분리할 수 있게 된 것도 도움이 됐죠. 친해지는 거랑 같이 일할 때 소통하는 거는 또 다른 것 같아요. 저도 나아지고 있죠.


이 뮤직비디오 작업이 들어가서 끝날 때까지가 언제쯤이에요?

민주: 기획은 한 달 더 있었다고 하셨는데 제작은 4월에 시작해서 6월 말쯤 끝났어요.


두 달 내내 힘들었나요?

민주: 회사에서 야근을 하거나 주말 출근을 해야 될 때가 있었어요. 일이 겹치면 회사가 1순위가 돼야 되잖아요. 저는 머릿속에 난리가 나죠. 너무 급해서 연정 님한테도 SOS 요청하고 그랬었어요.


최애의 뮤직비디오 기획을 봤을 때 만족스러웠나요?

민주:  제가 팬이니까 감독님께서 기획할 때부터 연락을 자주 주셨거든요. 그냥 구경하라는 의미도 있고 가끔은 의견을 구하실 때도 있었어요. 팬의 입장에서 어떤 게 더 나은 지 그래서 감사하게도 많은 걸 봤죠. 기획이 1안, 2안이 있었는데 저는 강경하게 후자를 밀었죠. 여러 의견이 오가는 기간이었고 감독님도 고민하시던 차에 제가 장문으로 “저는 이거여야 돼요” 메시지를 보냈어요. (웃음)


그래서 관철됐어요?

민주: 네. 이게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감독님도 다른 일 하시던 게 있는데, 계속 밀릴 것 같으니까 중간에 엎어질 뻔도 했었어요. 제가 너무 하고 싶고 또 감독님이 하신 작품으로 보고 싶어서 그때 또 연락을 했죠. “사람을 더 모아서 하면 된다” “제가 관리를 하겠다” 제가 자신감이 넘쳐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모든 걸 뒤로하고 “저는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한 거죠. 나중에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게 영향을 많이 줬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최애의 피드백도 들으셨어요?

민주: 처음에 스토리보드가 나오고 회의가 한 번 있었는데 제가 따라갔어요. 그때는 모든 게 확정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양쪽에서 다 클라이맥스를 많이 고민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시는 걸 들었죠. 신났어요. 


그때가 작업할 때 중에 제일 좋았던 때인가요?

민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작업할 때는 신날 새가 없었죠. 초반이 제일 업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연락을 받았을 때가 최고의 순간이었나요?

민주: 네, 제일 기뻤던 것 같아요. 다희 감독님이라는 것도 큰 영향이었어요. 감독님의 작품을 너무 좋아했었고 그 작품이 가진 섬세함이 좋았어요. 산업적인 작품을 위주로 하던 차에 더 섬세한 액팅을 해볼 수 있을 거 같았죠.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 더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도 있어서 제일 신이 났던 것 같아요. 작업할 때는 진짜 온 마음을 다 했던 거 같아요. 공개가 되니까 기쁘고 뿌듯하고 신나고 허탈하고 공허했어요. 다른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그게 헤어진 감정이라 그러더라고요.



현주 님은 기억에 남는 뮤직비디오 작업이 있으세요?

현주: 회사에서 작업한 최근 공개된 모코(mo.co)의 뮤직비디오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현주: 연말에 작업실에 앉아 있는데 그게 뜬 거예요.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한 노래라 ‘이건 그냥 연말에 작업실에 앉아 있는데 그게 뜬 거예요.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한 노래라 ‘이건 그냥 못 넘어간다’ ‘이거는 표현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라고 작업을 했는데, 제 인스타그램 게시글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게시물이 됐어요.


민주: 제가 그 노래를 먼저 들었거든요. 들어보니까 현주님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이거 들어봤나” 물어봤었어요. 근데 마음에 안 든대요. 근데 몇 주 뒤에 갑자기 “이 노래 너무 좋지 않아?” 이러는 거예요. (웃음)


현주: 노래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시상식 무대의 연출과 연주가 더해진 걸 보고 이건 그냥 못 넘어가겠다싶었어요. 저는 뭔가 정말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그런데 그걸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게 저한테는 더 자연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좋았던 순간을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릴스에 올리는 일이 어느새 취미가 됐어요.


연정 감독님도 뮤직비디오 하셨다고 했는데

연정: 앞서 말씀드린 카디 뮤직비디오 때 애니메이터로 두 분의 도움을 받았어요. 제가 예산을 꾸리고  애니메이션 파트 30초 분량을 제작했어요. 그 기회를 주셨던 구자욱 감독님이 애니를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써드아이비디오라는 실사 커머셜이나 뮤비를 주로 제작을 하는 스튜디오의 감독님이신데, 제가 부족함이 많았음에도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평소와 아주 다른 스타일의 캐릭터를 가지고 협업하는 경험이 진짜 좋았거든요.



커머셜이나 뮤비는 빠르게 압축적으로 매력을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방면으로 제가 순발력이 되게 없다고 많이 느꼈고, 저는 애니를 시작한 계기가 장편이었거든요. 롱폼의 형태가 저한테 잘 맞는다는 걸 뮤직비디오를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케이팝 산업이나 커머셜 분야가 빠른 트렌드의 전환과 함께 계속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하니까 이전에 제작한 것들이 흘러가 버리잖아요. 전 그런 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커머셜에 참여하는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주변에 제가 지지하는 작가님들의 작품을 보조하는 식으로 하면서 메인 작업은 독립 중편을 제작하고 있어요. 제가 만약에 커머셜을 해야 된다면 친구의 작업이면 좋겠어요. “이 별” 할 때도 그렇고 저는 제가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민주: 저희가 퇴근하고 와서 해야 되는 상황이라서 러프만 저희에게 맡겼거든요. 연정 님이 그 위에다가 타이 다운을 해 주셨어요. 제가 러프를 형태를 덜 맞추고 움직임 자체에 집중해서 프리하게 해 놓으면 기깔나게 형태에 맞춰주고 조금 더 다듬으며 발전시켜 주신 게 결과물이 좋았거든요.


저도 뮤직비디오를 할 때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이 경우는 저희가 일하고 있고 연정님이 완전 풀로 하시던 상태였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타이다운은 많은 기술력을 요구하다 보니 어려워해도 러프는 너무 아름답게 작업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했으면 좀 더 밀집되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제작 시간에 제한이 있어서 아쉬웠던 것 같아요.


저희가 마이크 영향을 받아서 러프는 프리하게 하고 타이 다운을 하면서 다듬자라는 사고가 강하게 박힌 거 같아요. 러프는 그 본질이고 타이다운은 그 겉껍질이니까요. 그래서 러프를 누가 하던 누군가 타이 다운에서 잡아준다면 일관된 퀄리티의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일 오래 걸리는 게 형태 맞추기라고 생각해요. 현주 님 작업 했을 때도 제가 러프만 해드렸어요.


현주: 저는 너무 든 한 게 러프 잘하시는 애니메이터시고 동시에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잖아요. 서로의 니즈를 알아서 연정 님이나 민주 님한테 “이거 느낌 알지?” “너 제일 잘하는 거 해줘” 하면 그냥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럼 저는 그 아름다운 러프 위에 다듬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민주: 살짝씩 느낌이 다르긴 한데, 그거를 한 사람이 마무리를 지으니까  결과는 최종적으로 한 사람이 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지금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

어떻게 낮에도 밤에도 그렇게 열심히 일 하면서 행복할 수 있죠?

연정: 저는 아침형이어서 보통 작업실에 출근을 제일 먼저 하고 제일 먼저 퇴근하거든요. 제가 아침에 나오면 두 분이 출근을 안 하고 여기 계세요 “뭐야 오늘 회사 안 나가?”하면 “아니 이제 나가야지” 하고 밤을 새우고 회사에 가시는 거예요. 그러고 또 와서 여기서 자요. 


민주: 저는 짧은 기간이니까 했는데, 진짜 광기는 현주 님이죠.


연정: 거의 6개월 정도를 그런 생활을 지속하고 있어서 ‘정말 튼튼하다.’


현주: 개인 작업과 회사 일을 같이 하다 보니 늘 바쁘지만, 지금은 피곤하다고 느낄 틈도 없는 것 같아요. 회사 작업에서는 정말 제가 못해본 애니메이팅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면서 배울 수 있는 재미, 개인 작업에서는 마음껏 표현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어요. 제 작업의 원동력은 결국 재미예요.


이렇게 꽉 채워서 지내는 것도 지금이라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개인 작업이 취미이기도 하니까, 애니메이션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거죠.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불안에 빠질 틈도 줄어드는 것 같아요. 이런 생활을 40대까지 계속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잡을 수 있는 기회에는 조금 욕심을 내보고 싶어요.


민주: 연정님도 아닌 척하지만 저녁에 오셔서 같이 일을 했어요. 결국 작업에 대한 갈망 때문인가. 어쨌든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게 비슷해요. 비는 시간을 잘 못 쓰는 것 같아요.


연정 님이 말씀하셨던 중편 제목이나 있나요?

연정: <이런 파랑도 있다> 저희끼리 “이 파랑”이라고 줄여서 말하고 있어요. 주인공 이름도 파랑이고 피부색이 파란 친구가 나오는 작품이에요.


<이런 파랑도 있다> 제작과정
<이런 파랑도 있다> 제작과정

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연정: 저는 제 안에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 많은 것 같아요. 뚜렷한 형태는 없다가 경험이 쌓여서 어느 날 이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 되면 그때 작품으로 꺼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장편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나름의 감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쪽염색을 하는 영상을 본 거에요. '의식주'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빠르게 기계화되고 사치스러워 진 게 '의' 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굳이 사람 손이 제일 많이 가는 방식으로 염색을 하는 모습을 본 거죠. 거기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과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이후 더 구체적으로 사료를 찾아보면서 ‘노동이라는 게 결국 제 몸으로밖에 못한다’ ‘노동이라는 것 자체는 되게 고독하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그 고독을 서로 알아볼 때 연대가 생기는구나. 이게 내가 하는 노동의 의미가 될 수 있겠다.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그리고 마침 파란 색채에 대한 저의 심상을 시각적으로 풀고 싶었어요. 


쪽 염색장에서 피부가 파랗게 태어난 파랑이는 날 때부터 주어진 역할을 그저 수행하는 인물인 거예요. 근데 얘랑 반대되게 본인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는 친구가 한 명 나오거든요. 변화하는 세상 안에서 그 두 인물의 경험을 통해 제가 삶에서 느꼈던 창작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좋았던 거 힘들었던 거를 쭉 풀어놓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호원: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요?

연정: 15분에서 20분 정도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최대로 도전해 보는 것 같아요.


호원: 지금 기획 단계예요?

연정: 시나리오를 계속 고치고 있는데, 그래도 이야기는 많이 다듬어졌고. 페그스에 차은이라고 유일한 팀원이 한 명 있거든요. 같이 아트 방향성도 잡아보고 애니메이팅 테스트도 해보는 상황이에요. 주변 친구들과 선배님들께 조언을 받아서 이야기가 확정되면 올해 연말부터는 완전 제작에 몰입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중편 정도는 되야겠다고 판단한 건가요?

연정: 네. 저는 투자 안 받고도 장편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것 같거든요. 그냥 친구들한테 “이건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 해서 장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또 장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옛날부터 있기는 하거든요. 뭐 이건 먼 미래 이야기고 아직은 제가 경험도 부족하고 저 스스로 탐구해야 될 게 많다고 생각해요. '단편을 졸작이랑 개인작으로 한번 만들어 봤으니 중편도 몇 번 만들어 보다가 장편으로 가자’ 그거를 좀 더 추진력 있게 하고 있어요.


장편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인가요?

연정: 네 (웃음) 근데 징검다리라고 하면 파랑이 캐릭터한테 미안하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경험한 재밌는 것들이나 흥미로웠던 감각을 모아서 펼쳐두면 비슷한 흥미의 사람들과 공감할 수도 있고 저만의 어떤 시각에 대해 환기가 되지 않을까 해요. 현재를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산 현재가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작품을 지속하기만 해도 제가 나중에 죽을 때가 됐을 때 되게 삶이 행복할 것 같아요. "나 20대 때 어땠지?”하면 “이 파랑” 보면 알 수 있고. 저는 그래서 계속할 거예요.


현주: 현재를 열심히 살 거라는 문장이 저를 올렸어요.


현주 님이 하겠다고 했던 단편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요?

현주: 연정 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제 삶에서 좋았던 순간들을 모아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저에게는 그게 사랑의 경험이었고요. 4년 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을 시작해 애니매틱까지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멈춰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10초, 15초짜리 쇼츠를 계속 완성하면서 조금 용기가 생겼어요. 쇼츠를 모아 단편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고, 짧은 작업을 끝내본 경험 덕분에 오래 미뤄둔 단편도 너무 잘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저에게 단편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큰 작업이었는데, 그 무게를 조금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는 4년 전 만든 애니매틱을 러프 단계까지 끌고 가는 게 목표예요. 오래된 숙제를 끝내고 싶어요


민주: 내용도 알려주시면 안 돼요?


현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느꼈던 감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표현할  있을지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사랑했던 사람이 선물해 준 식물을 통해  마음을 느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작품에는 여자 주인공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식물을 돌보는 방식으로 이어가는 장면이 나와요.  순간이 제가 살면서 느꼈던 사랑을 가장  보여주는  장면이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야기를 5분 정도의 단편으로 완성하는  목표입니다.


<(가제) 식물> (제작 중)
<(가제) 식물> (제작 중)

대략적인 마감을 잡았나요?

현주: 민주 님이랑 같이 마감을 하기로 했는데, 2년 뒤였나요?


민주: 내년! 


현주: 큰일 났다. (웃음)


연정:  2년 뒤면 “이 파랑”이 먼저 나올 수도 있어요.


현주:  저희 목표가 연정 님보다는 빨리 끝내는 거예요. 


민주: <잔든자>를 하실 때 저희들이 하던 작품을 연정 님이 <잔든자> 끝내고 나서도 끝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작품 나오기 전에는 끝내야 한다.


잔든자 (2024)
잔든자 (2024)

현주: 연정 님이 <이 별에 필요한> 하시면서 <잔든자> 같이 하셨거든요. 이거에 저희가 너무 자극받아서 “우리도 할 수 있다!” 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민주 님은 지금 어떤 걸 하고 계세요?

민주: 개인작은 <바다에게>라는 제목의 졸업 작품을 계속하고 있어요. 학생 때 ‘대작을 내야 된다’ ‘뭔가 의미 있는 걸 해야 된다’라는 강박이 생기니까 잘 안 되는 거예요. 이걸 시작하게 된 계기는 마이크의 여름 워크숍이었어요. 여행 가기 전 짐을 싸는 액팅을 해보라고 했는데, 제가 살짝 착각해서 스스로를 레퍼런스로 캐릭터를 짰거든요. 근데 올라오는 작업들을 보니까 다 자기가 아닌 거예요. 근데 캐릭터를 이미 짰으니 그냥 액팅을 했는데, 그 클립을 좋게 봐주셔서 “이걸 늘려서 작품을 만들어라”가 된 거죠.


<바다에게> 캐릭터 디자인
<바다에게> 캐릭터 디자인

제가 헤엄도 안 치고 튜브에 둥둥 떠 있는 걸 좋아하는데 스무 살 때 부모님이랑 바다에 놀러 가서 전 바다에 떠 있고 아버지는 옆에서 헤엄치시고 어머니는 해변에 앉아 그 순간을 즐기던 날이 있었어요. “이런 단순한 순간도 필름이 될 수 있나?” 하는 질문에 마이크가 “그렇다!”라고 대답해 줬어요. 그렇게 대단한 뜻 없이 재밌게만 해보자 해서 시작된 거였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넣고 싶은 사람도 너무 많아지고. 내 친구들도 다 좋고 내 가족도 다 좋은데, 이거 어떡하지 하다가 다 걷어내고 가족과 바다에 좀 더 집중한 필름이 됐어요.


뭔가 대단한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며 시작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작업해 가는 과정에서 의미가 생겨나긴 했어요.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가지는 특별함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명절 때나 겨우 만나지만 어릴 때 항상 함께하던 가족들, 이제는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어릴 적 애착 인형, 바다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느끼게 된 완전함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기승전결이랄 것 없이 주인공이 짐을 싸고 가족들이랑 해변에 가서 튜브 타고 놀다가 가족들이랑 집에 돌아가는 얘기입니다. 제가 했던 모든 생각이 다 읽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놀러 가는 이야기이고 보는 분들도 저희 가족들과 같이 바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며 만드는 필름입니다. 


여름 워크숍은 3학년 되기 전에?

민주: 네 일할 때 작업 하던 거예요. 2021년도 여름에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저도 아는 게 많이 없던 때라 효율이고 뭐고 모르고 그냥 들이박았던 거죠. 그래서 액팅 다 해놓고도 뺀 것도 엄청 많아요. 그리고 제가 액팅 연습 삼아 종이 작화로 시작을 해서 계속 종이 작화를 하고 있거든요. 그게 또 속도가 안 나는  원인이지 않나. (웃음)  


<바다에게> 제작과정
<바다에게> 제작과정

여기 작업실 이름이 페그스잖아요.

민주: 제가 정체성이죠. 제가 없었으면 페그스일 수 없죠. (웃음) 


연정: 전 종이 작화를 가르치는걸요. (웃음) 


현주: 저는 안 하네요. (웃음) 


연정: 현주 님은 길이가 페그스, 페그스의 쉐입 (웃음)


민주: 재미로 지었던 이름인데, 연필을 붙여서 이름을 만든 스튜디오도 있었고. 브이시알은 테이프니까 “우리는 페그스다!” 이러면서 대충 지었던 건데 오래 쓰고 있죠.


  • PEGS 김연정 작업 공간
  • PEGS 김연정 작업 공간
  • PEGS 오현주 작업 공간
  • PEGS 김민주 작업 공간

자 그럼 여러분들이 보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뭔가요?

연정: 저희가 미래니까 열심히 해야죠. 저희도 선배들 덕을 보고 있고 후배들도 저희 덕을 봤으면 좋겠어요.


민주: 저희가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후배 분들도 많이 보게 됐거든요. 볼수록 여러 가지 의미로 점점 나아지는 게 보여요. 마이크가 얘기하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친구들이 하려고 하는 게 보이고 있고 작업에 대한 열망이나 산업에 대한 생각도 저희 때보다도 더 활발해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저희 때나 그 이전에 그런 분들이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불씨가 모여야 큰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불씨가 점점 모여드는 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애니메이션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작품이니까요. 확실히 사람들이 미래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현주: 민주 님의 말에 깊이 공감해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표현 방식이 애니메이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부터 진정성 있게 표현하려는 마음으로 계속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저도 미래니까요. (웃음)

인터뷰 2026년 7월 25일 @ 불광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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