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 LEE Jusuk
- seoulanimator
- 6월 24일
- 23분 분량
이주석

봄 나들이 인파로 북적이는 올림픽공원 옆 한적한 주택가, 묵직한 목재 현관문을 지나 좁은 계단을 오르면 은은한 조명에 천장이 낮은 작업실이 있다. 조용한 스튜디오 왼쪽 벽에는 이주석 음향감독이 제일 어려웠다는 <옷장 속 사람들>(2024), 오른쪽 벽에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빈방>(2016)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작업대 맞은편 모니터에는 고요사운드웍스의 첫 애니메이션 작업인 <바퀴 돈다>(2018)가 떠있었다. 대학원 시절 작업한 첫 애니메이션부터 꾸준히 협업하는 정다희, 김상준 감독의 작업들과 이번에 처음 만난 서평원 감독의 <도래지>(2025), 현재 진행 중인 김경하 감독의 <종이처럼 얇은,>의 사운드를 녹음실 스피커로 생생하게 들으며 시간을 잊고 애니메이션 사운드 얘기에 빠져들었다.
2025년 6월 인터뷰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어요
고요사운드웍스
사운드 스튜디오 이름이 고요예요.
2016년에 개업을 했는데, 예전부터 제 작업실을 낸다면은 한글로 된 이름을 내고 싶었고, 고요라는 단어의 뜻이 제 작업 스타일과 제 이미지하고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명함에도 혼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놓은 거고요.

고요사운드웍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저랑 같이 작업했던 선배네 작업실에서 일을 했어요. 제가 영화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영화로 시작을 했어요. 연출 전공이었고 사운드 전공으로 따로 하게 된 거예요. 영화학과를 나온 이력을 바탕으로 계속 작업을 했고요. 다큐멘터리랑 애니메이션도 하는데, 정다희 감독을 만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를 만드셨어요?
대학원 때 만든 게 하나 있고 학부 때는 비디오 촬영으로 작업한 게 있는데, 저는 주로 사운드만 했어서 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애초에 제가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 했어요. 90년대 중 후반에 유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서 재밌겠다.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다 생각하던 차에 영화과에 가면 애니메이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림도 모르고 연출에 대한 것도 전혀 모르고 막연한 생각에 영화과에 가면 뭐든 되겠지 하고 갔더니 학교에 녹음 시설도 잘 돼 있고 학생들끼리 부서를 나눠서 학부 내 동아리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가 돼 있더라고요. 더빙이나 이런 것도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자연스럽게 녹음으로 간 거죠.
호원: 그 전공 친구들은 예전부터 사운드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 같네요.
제가 상명대 영화학과에 갔는데,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었어요. 사운드 녹음실이라는 데를 처음 가봤는데, 있어 보이고 선배들이 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더욱 이끌렸던 것 같고요. 그때 사운드 말고도 촬영이나 편집 한창 작업 많이 하셨던 분들이 지금도 계속 왕성한 활동하고 계시고, 저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소싯적에 밴드부 활동을 했다거나 음악이나 사운드 쪽에 관심은
전혀 없고 음악은 하나도 몰라요. 취미생활 같은 거라면 아기 때 장난감 피슝피슝 갖고 놀던 게 재밌었던 거고 애니메이션은 성우들 더빙하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었어요.
실제로 더빙도 해보셨나요?
제가 하는 거는 작업할 때 부족한 소리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 데에 제가 들어가서 하고요. 보통 작업은 배우, 성우분을 모셔서 더빙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전공을 따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학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했어요. 졸업을 하고 상업영화 녹음 팀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2008년에 대학원 진학을 해서 사운드 공부를 하고 작업을 해왔습니다.
대학원 수업은 어떤가요?
사실 첨단영상대학원이라고 해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공학이 조인해서 작업을 한다 그래서 여기 가면 나는 애니메이션도 하고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 해서 갔는데, 그런 거는 거의 없었어요. 저는 사운드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시스템이 녹음 전공자들은 계속 녹음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제가 선배랑 같이 일을 하면서 2, 3년 동안은 계속 녹음실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단편도 하고 장편도 하고 학교에서 만든 영화는 다 둘이서 작업했어요.
한 학년에 인원이 몇 명 정도인가요?
한 기수당 10명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사운드 전공은 둘밖에 없었어요. 나머지는 연출 전공 촬영 전공 시나리오 전공 이렇게 있었고요. 그래서 한 명이 한 학기에 10개에서 15개 정도씩 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애니메이션 사운드
대학원 때 하신 <퍼플맨>(2010, 감독: 김탁훈, 유진영, 류진호, 박성호)이 첫 애니메이 작업인가요?
제일 처음으로 했던 게 김탁훈 선생님 작품이에요. 평소에 영화 작업하면서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해야지 생각했던 만화적인 소리들이 많았어요. 사막이면 자글자글 “츠으~” 물이 기화되는 소리가 나고 도마뱀이 기어갈 때는 키보드로 (자판을 긁어 누르며) ‘또르르르’ 삶은 계란 집을 때는 “뽀잉” 이렇게 썼고 다행스럽게도 다들 좋아하셨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애니메이션은 이펙트 라이브러리 소스로 해결이 안 되는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어요. 직접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MFA 졸업작품으로 사운드 작업을 하기 위한 단편을 만드셨나요?
저도 연습이 필요했고 이렇게 안 하면은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한 2년 정도 진짜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올까 말까 하고 거기서 계속 숙식하고 있어서 지금 봤을 때 한참 부족하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뭔가 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의 단편은 연출부터 다 혼자 만드신 거죠.
그렇죠. 사운드 위주로 진행되는 영화를 만들었어요.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갔는데, 한 번 일로 들어왔다가 한 번은 반대로 들어갔더니 벽이 막혀 있고 어디 열려 있고 이런 구조. 한 공간을 반복해서 돌게 되는 루프물을 만들었었습니다. 일부러 미로 같은 지하실을 골랐어요.
졸업하고 업계에서 일을 하시다가 독립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자연스럽게 흐름대로 간 것 같아요. 그때는 녹음실에서 어느 정도 일을 하면 나와서 자기 거 만드는 상황이었어요.
정다희 감독 사운드 작업
호원: <의자 위의 남자>(2014)이랑 <빈방>(2016)은 고요 전이었나요?
<빈방>이 걸쳐있었던 거 같아요. 정다희 감독님은 제가 아직 대학원에서 활동하고 출강하고 그럴 때에 저의 대학원 선배인 조승연 감독님이 소개를 해 주셨어요. 정다희 감독님이 막 파리에서 한국으로 왔을 때 사운드할 사람을 찾다가 저랑 하게 됐고 잘 맞는 구석이 있어서 그 이후에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정다희 감독님이 뭐든지 다 잘하시는 분이라고 소개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승연 선배가 애니메이션 하는 친구니까 둘이서 한 번 잘 만들어 봐라 얘기를 해서 되게 설레는 마음으로 정다희 감독님을 만나러 갔던 게 기억이 나요. 감독이 자기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하고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고 이런 것을 얘기하지 않으면 작업할 때 어려운데, 그런 얘기들이 너무 잘 돼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열의가 생겨서 <의자 위의 남자> 작업을 했는데, 처음에 잘 안 굴러가는 거예요. 제가 그때 당시에 액션 영화도 있고 장르 영화도 있고 스케일이 큰 영화들을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베이스도 많고 규모도 큰 영화적인 사운드가 들어갔나 봐요. 그랬더니 이거는 다 아니라고 싫다고 해서 한 몇달 그거를 골라내고 정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서로 만족할 만한 작업이 됐고 결과물도 잘 됐어요.
의자 위의 남자 (2014)
제작사 로고 사운드(00:01~00:03)는 원래 있던 건가요?
이 영화 콘셉트에 맞게 제가 넣었어요.
<의자 위의 남자> 사운드는 폴리를 다 딴 거예요?
네, 다 녹음했습니다.
의자에서 나무가 자라는 사운드(01:10~01:14)는 어떻게 한 거죠?
나뭇가지를 비틀어서 주물주물하면서 만든 거예요. <의자 위의 남자는> 베이스 음이 좀 있지만 그래도 가벼운 감이 있다면 <빈방> 같은 경우는 전체적으로 무거워요. 그 무거움이 분위기에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다희 감독님은 옆에서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영화 쪽은 정말 자기 얘기를 많이 안 하기 때문에 감독에게 맞추기가 많이 힘들어요. 저도 연출 공부를 했었고 제 나름대로 영화를 해석하는 것도 있어요. 저도 납득이 돼야지 서로 이해를 하잖아요. 그런데 많이들 얘기를 안 하셔서 제가 작업하는 결과물 하고 본인이 예상하고 있던 소리 하고 다른 경우들이 빈번하게 발생했어요. 그리고 영화 사운드는 후반 작업에서 원래 촬영할 때 만들었던 소스와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는 느낌으로 가공한다면 애니메이션은 반대의 개념이니까 그렇게 얘기해 주는 게 저한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같은 감독과 두 번, 세 번 작품을 같이 하면은 작업 과정이 짧아지나요?
좀 짧아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영화는 달라지니까 모르죠. 정다희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최근에 한 <옷장 속 사람들>은 정말 어려웠고 지금 생각해도 답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언젠가는 저도 답을 찾겠죠.
현실에 없는 소리가 있잖아요. 빛이 들어오는 연출이나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 임팩트를 만들어 낸다든가. 이런 소리는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상상을 계속해요. 작업을 받자마자 영화 작업 끝날 때까지 계속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생각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거라면 비슷한 영상도 찾아보고요. 결국에는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빛이 나오는 거는 종이나 쇠 이런 것들을 치면 ‘띵~’ 이런 소리가 나잖아요. 그거를 녹음을 해서 가공을 합니다. 요즘에는 플러그인이 너무 잘 돼 있어서 원하는 걸 입력하면 비슷한 스타일로 나오게끔 돼 있어서 편해졌어요. 제가 만들어야 되는 소리 작업할 때 재미가 있어요. 소스에서 찾아서 하는 것도 있지만 그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이거 녹음해서 작업했나 유튜브 찾아보고 저도 만들어보고 기록하고 소스화 하고 라이브러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라이브러리는 어떻게 구성돼요?
작품마다 매번 다 분류하는 게 안 돼서 발이면 발 옷이면 옷 이런 식으로 이름만 구분해서 통째로 옮겨 놓습니다.
다른 작품에 쓴 거를 다시 쓸 때가 있나요?
진짜 급할 때 지금 시간이 없을 때만 써요. 사운드 작업의 귀찮은 지점이기도 하고 반대로 매력적인 부분일 수도 있는데, 이 장면을 위해서 녹음된 소리는 다른 데 잘 안 붙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건데도 느낌이 달라지니까 매번 새로 녹음을 해요.
호원: 감독하고 만나서 작품을 진행을 할 때 프로덕션 초기에 미팅을 하나요 아니면 후반 작업 때 만나서 바짝 하시나요?
그 두 개를 다 하는 게 모범적인 사례죠. 첫 번째 미팅에서 사운드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저랑 콘셉트 회의를 하고, 본 작업이 들어가기 전에 사운드 가이드를 아주 간략하게 해서 애니메이션 쪽 스케치나 이런 것들이랑 맞춰보고 이 방향이 맞는지 다르게 할 건지를 선택하는 스파팅이 있을 거고요. 마지막에 프리믹스 단계 작업을 할 거예요.
처음 혹은 두 번째 만났을 때 콘셉트의 방향을 정하면 서로 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어요. 백화점이나 마트에 온 것처럼 다른 건 없나요? 이런 식으로 막 고르려고 하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소스는 다른 작업에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또 쓰기 힘들어요. 지금 작업의 방향이 한두 개가 있으면 저도 집중하고 감독도 집중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이게 너무 많아지면 서로 피곤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중간에 이걸 잡아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호원: 프로젝트마다 시작점을 잡는 게 힘드실 것 같아요.
맞습니다. 출발점을 잡는 게 중요해요. 다행히 애니메이션 감독님들은 그걸 어느 정도 정해놓고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확실하게 얘기를 해 주세요. 정다희 감독님 같은 경우는 느낌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셔서 전체적인 느낌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의자 위의 남자>를 할 때는 처음에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렸잖아요. <빈방>을 할 때는 달랐나요?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마음이 앞섰다면 두 번째는 그 작품을 만들 시기에 서로의 상황도 알고 감독이 원하는 느낌, 내면의 감정도 제가 이해를 한 것 같아요. <빈방>이 애착이 가는 이유도 제가 감독을 제일 잘 이해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감독이랑 미팅을 하고 오디오를 만들고 다음 미팅에서 같이 보는데, 너무 좋아할 때는 저도 되게 뿌듯해요. 제가 생각했던 대로 만든 오디오가 감독이 원하는 것과 비슷하게 된 거니까. 하지만 그게 막 좋은 소리는 아니에요. 좋은 소리로 따지자면 끝도 없어요. 결국에는 이 영화에 얼마큼 잘 맞느냐 같아요. 음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이 화면에 잘 붙으면 괜찮아요.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어 간 게 잘 드러나서 좋았어요. <빈방> 작업할 때는 ‘두럭’이라고 폴리 사운드 위주로 작업하는 다른 녹음실 하고 협업을 했어요. 그분들 하고도 얘기가 잘 됐고 결과물도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호원: 감독들마다 자기 의도나 요구를 전달하는 언어가 있는데, 이제까지 같이 작업을 한 감독들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셨나 봐요.
잘 되더라고요. 애니메이션 감독님들은 본인이 구상부터 그림도 그리시고 오래 작업을 하셔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전달을 되게 잘해 주시더라고요.
2024년 서울인디애니페스트 트레일러 사운드 메이킹 보면 혼자서 폴리 작업을 하시던데, 어느 정도 수준은 직접 하시고 어느 정도면 전문 스튜디오에 맡기나요?
기준이 되는 거는 예산이에요. 선을 정할 수는 없지만 되게 다이내믹한 장르 영화는 제가 혼자 할 수는 없을 거고요. 시간 내에 제가 할 수 있으면 제가 하고 그렇지 않다면 맡기는 편이죠.
호원: <빈방>은 레퍼런스 없이 완전히 빈 상태에서 시간의 파편 같은 먼지 두께의 소리를 내야 되는 작품이어서 되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빈방>도 되게 오래 했어요. 제가 작품의 느낌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은 안 걸렸어요. 그때 당시에 감독님을 보니까 갑자기 느낌이 오더라고요. 고독함과 외로움에 포커스를 맞춰서 어떤 소리가 좋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했던 것들이 잘 붙었어요. 사람 목소리도 들릴 듯 말 듯하게 나오고 먼지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할까 공간이 움직이는 걸 과격하게 할 건지 아니면 스무스하게 할 건지 움직일 듯 말 듯할 건지 이런 얘기를 많이 했고요.
애니메이션 하시는 분들은 저음의 음역대를 싫어하더라고요. 베이스가 쫙 올라오는 거를 다들 싫어하셔서 최대한 안 쓰려고 했는데, <빈방>은 좀 필요했어요. <의자 위의 남자> 때는 그런 거 다 빼고 깔끔하게 애니메이션 사운드로 이루어졌다면 <빈방>은 그 중간에서 타협점을 잡은 것 같아요.
저음역대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오는 낮게 ‘우웅~’하는 효과음 말씀인가요?
그런 거죠.
빈방 (2016)
전반적으로 이 ‘웅~’ 하는 소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 걸 포함해서 이 영화의 뒤에서 나오는 뒤틀리고 쿵쿵 떨어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렇게 두 영화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처음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무겁게 했는데, 많이 빼고 이 정도 선에서 맞춰놓은 거예요.
엠비언트 사운드는 어떻게 쓰시나요?
제가 영화 작업을 할 때 기본적으로 하는 엠비언스들이 있어요. 영화는 소리가 없더라도 모든 장면에 기본적인 베이스 작업으로 넣거든요. 그런 작업에 익숙해져서 애니메이션도 그렇게 해봤는데 다 좋아하시진 않더라고요. 너무 산만하다. 나는 이 포인트만 살렸으면 좋겠다 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에서는 분위기를 잡거나 어떤 느낌을 강조하고 싶은 장면에서만 엠비언스를 사용을 하고 있어요.
분위기는 주로 음악 쪽에서 도움을 많이 받아요. <빈방> 하고 <의자 위의 남자> 두 개 다 마상우 음악 감독님이 해주셨어요. 그분도 저랑 비슷하게 먼저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시고 조율을 잘하시는 편이라서 조화롭게 작업을 했어요. <움직임의 사전>(2019) 같은 경우는 김해원 음악 감독님이 해주셨어요. 김해원 음악감독님도 영화를 이해하고 분위기에 맞춰서 작업을 해줘요. 정다희 감독님 영화뿐만이 아니라 김상준 감독님의 <메아리>에서도 음악을 잘 만들어주셨고요.
최종 믹싱은 음악까지 다 받으셔서 직접 하시는 거죠.
음악 감독님 작업실 모니터 환경하고 여기하고 달라서 보통은 믹싱까지 거의 다 된 상태로 와요. 저는 볼륨 조절이랑 인점, 아웃점 잡고 어느 부분에서 EQ 다듬는 정도밖에 못해요.
영상에 맞춰서 음악을 앉힌 사운드 편집 파일 형태로 받으시나요?
네, 어떤 분들은 하나씩 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통째로 뽑아서 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프로툴 세션으로 넘겨주시기도 해요.
한 번에 한 작품만 하시는 거는 아니잖아요. 메소드 연기자들이 배역에서 빠져나오듯이 환기하는 시간들이 필요하신가요?
많이 필요해요. 원래는 한 번에 한 작품씩만 했었어요. 6월이 제일 바쁘거든요. 다들 부산에도 내야 되고 부천에도 내야 되고 누구는 졸업 작품도 해야 되고 하니까 너무 바빠서 스케줄도 항상 밀리고 제 마음대로 잘 안 돼요.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잖아요. 작업하기 전에 저도 워밍업을 해야 되는데, 점점 준비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하고 작업하기 전에 한 번 봐야 되는데, 보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작품 연락이 오고 이런 경우들도 있으니까 조금 힘들어요. 사운드 작업이 계속 들으면서 집중해야 되니까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게 아쉽지만, 적응해서 해야죠.
옷장 속 사람들 (2024)
<옷장 속 사람들>은 캐나다 가서 캐나다 스태프랑 작업하셨어요.
제가 여태까지 작업해 오면서 제일 어려웠던 작품이에요. 대사 없는 영화 많이 있고 음악 없고 소리 없는 영화 많이 있지만 <옷장 속 사람들>은 캐릭터 자체가 옷이 돼버리니까 처음부터 멘붕이 왔었어요. 발이 없이 옷만 움직이거든요. 뛰어갈 때, 움직일 때, 무슨 소리를 들을지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저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한 거예요. 정말 다양한 옷이 있고 각각의 옷마다 소리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거를 녹음해서 한 데 섞어 놓으면 어떤 소리인지 구분이 잘 안 가요. 그렇다고 제가 막 효과를 걸면 소리가 이질적이 돼버리니까 어렵단 말이에요. 제가 만들어 놓은 가이드 오디오를 가지고 캐나다에 가서 이렇게 해 주세요 부탁했고 그쪽에서 더 잘해줘서 믹싱까지 잘 마무리가 된 거예요.
호원: 인물이 그려져 있으면 그 사람의 무게 때문에 나오는 기본적인 소리가 있고 외양 때문에 굳이 옷이 스치는 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데, <옷장 속 사람들>에서는 모든 게 다 빠진 상태에서 옷만 움직이니까 옷의 소리가 부각이 되는 거죠.
맞아요. 너무 비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옷장 속 사람들>은 만들기 전부터 정다희 감독님 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게 좋겠다 계속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감독님은 어린아이를 등장시킨 거고 제 아이디어는 후반부에 이 옷이 원래 갖고 있던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던 거예요. 그리고 음악을 해 주셨던 루이지 알레마노 음악감독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음악은 캐나다 가기 전에 받았나요?
네, 가기 전부터 작업을 했어요. 출국 직전까지도 정다희 감독님 하고 저는 확신이 없었어요. 음악은 참 좋은데, 완성됐을 때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렇게 캐나다에 갔더니 루이지 음악감독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일단은 녹음하고 나서 잘 조율을 해보자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폴리 아티스트랑도 캐나다에서 작업을 하셨잖아요.
제가 가이드로 작업한 게 좀 투박했는데 캐나다에서는 폴리아티스트 카알라 바움가드너 선생님께서 요구 사항들을 잘 맞춰주셔서 원하는 느낌을 잘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 녹음을 해 주신 걸로 다시 작업을 하고 제 작업본을 믹싱 하시는 분께서 같이 믹싱 해 주셨어요.
캐나다 가서 이제 나도 갖춰야겠다고 결심한 게 돌비 애트모스
그거는 우리나라 녹음실도 많이 하고 계세요. 가기 전에는 사실 뭐 그렇게까지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아무리 가정용 오디오가 잘 돼 있다 하더라도 콘텐츠를 돌비 애트모스로 듣는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되실까라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었고요. 그 작업을 했을 경우에 소요되는 시간과 예산이 만만치 않거든요.
근데 막상 제 작업본을 그렇게 들어보니까 영화를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애트모스 버전으로 믹싱 한 것과 그걸 다운 믹스해서 5.1 채널로 마스터된 거를 극장에서 들어보니까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작업실에는 갖춰 놓을 생각입니다.
호원: NFB는 기술력이나 장비발로 운영이 되는 곳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장인 정신과 숙련된 노하우로 작업을 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제가 받았던 느낌도 그런 쪽에 가까워요. 정다희 감독님도 그렇고 다른 감독님 하고도 앞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 이 작업을 서로가 계속 같이 할 수 있는가에 의문이 있어요. 그런 얘기도 거기 계신 분 들하고 했었거든요. 우리는 그게 좀 불안하다 그랬더니 전혀 고민할 게 아니라고 얘기를 해 주더라고요. 거기 계신 분들은 다 60대, 70대분들이셨어요.
나이가 들면 감이 떨어진다 이런 고민인가요?
그런 걸 포함해서 돈도 돈이고 앞으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 AI의 발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얘기가 나와서 그런 얘기가 시작된 것 같아요. 그분들께서는 전혀 신경을 안 쓰시고 계시더라고요. 왜냐하면 자기들 작업 스타일이 아주 클래식한 방식이기 때문에 이거는 대체할 수 없다고 아주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어요. 물론 그러면서도 그런 툴들 많이 쓰기는 하시더라고요.
NFB는 예술과 다양성을 지향하는 공기관이라는 특수성이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각자도생 하듯이 작업을 하시잖아요. AI로 빠르게 작업하는 대안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AI가 만들어 놓은 사운드랑 더 수준 높은 사운드 차이를 모를 수도 있어요.
맞아요. 그런 게 항상 신경이 쓰이지만,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AI가 할 수 없는 부분들은 저희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감독하고 계속 소통하는 작업이 필요한 거고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부터 관객을 생각하다가 다시 안 생각하게 됐다고 하셨잖아요.
<옷장 속 사람들> 작업하다가 그렇게 됐어요. 영화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 보니까 이 작품을 이런 느낌으로 봐주기를 원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받아줬으면 좋겠다. 이 장면을 슬프게 느꼈으면 좋겠다’ 이 방향으로 계속 갔던 것 같아요. 내가 이 감정대로 충실하게 잘 만들면 보는 사람들이 따라올 텐데, 그걸 넘어서서 관객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런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옷장 속 사람들> 작업하면서 들었어요.
관객의 감정을 조정해야겠다는 욕망이 잔뜩 올라갔다가 <옷장 속 사람들> 작업하면서 내려간 거예요?
<옷장 속 사람들> 하기 전까지 계속 쌓였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자만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선 이런 느낌이니까 이렇게 받아들여라고 푸시를 했는데, 이 작업에서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보는 사람들이 다양하잖아요. 우는 분들도 계셨고 별 감흥이 없는 분들도 계셨고 이거를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극장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게 된 점입니다.
호원: 제작사에 한국이 있고 캐나다가 있고 프랑스가 있어서 여기선 이렇게 맞춰야 되나 저렇게 맞춰야 되나 지향점이 헷갈렸을 것 같아요.
정다희 감독님이랑 제가 원하는 방향하고 캐나다는 캐나다대로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코멘트하는 방식이 달라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여러 명이 간섭하게 되면 작품은 산으로 가는 것 같아요. 감독이 그 방향을 잘 잡아줘야 되고 저도 옆에서 잘 보좌를 해야죠. 저랑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캐나다를 갔던 거고요. 감독님이 저를 믿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에 아는 작업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친한 대학 선배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는데, 그 선배가 같이 작업하는 이주석 감독님을 소개해줬습니다. "모든 장르 다 하시고, 많이 해봤고, 다 잘해."라는 강력한 추천을 받았습니다.
<의자 위의 남자>
어떤 작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서로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작했어요. 주석 감독님이 사운드를 빵빵하게, 레이어를 가득 쌓아서 채워 주셨어요. 공을 많이 들이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남자가 꿈속에서 우주로 올라가는 장면에 있던 웅장한 소리가 기억납니다. 제가 처음 듣자마자 빼달라고 했어요. ㅜㅜ 이것도 빼주시고, 저것도 빼주시고... 그래서 감독님이 많이 당황하셨을 거예요. 그때는 음향 감독님이 좋아하는 사운드와 제가 좋아하는 사운드가 많이 달랐어요. 저는 고요하고 섬세한 소리를 좋아하는데, 음향 감독님 입장에서는 작업이 덜 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요구를 다 들어주셨고, 음향 감독님이 하고 싶은 작업과 감독이 하고 싶은 작업 사이에서 조율을 굉장히 잘해주셨습니다.
<빈방>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당시 가족에 어려운 일이 있어서 무척 힘든 시기를 보냈고요. 나쁜 일들이 겹쳐서 오는 듯한 시기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완성했을 때, 저는 녹초, 탈진, 번아웃이 되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이주석 감독님을 뵙고 돌아가는 길에 오랫동안 어깨와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운드가 잘 나올까 우려스러운 게 전혀 없었고, 첫 작업을 하고 나서 이 분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생겼습니다.
<옷장 속 사람들>
NFB에서 포스트 프로덕션을 하게 되면서, 2023년 9월에 주석 감독님과 함께 캐나다로 갔습니다. 한 달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어요. 캐나다에 체류하면서 NFB에서 작업한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혼자 갔으면 그렇게 까지 재밌지 않았을 텐데,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고, 좋은 친구이고, 작업적으로 언제나 믿고 의지하는 이주석 감독님이 계셔서 모든 일들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함께 작업하는 경험이 언제나 좋았습니다. 이주석 감독님은 프로페셔널하고 좋은 작업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경험이 많으시고 인품이 좋으셔서, 작업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들을 잘 해결해 나가십니다. 또, 제가 감독으로서 경험이 쌓이고 풍부해지는 동안, 같이 일하는 작업자도 좋은 경험들이 쌓여서 그것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중년, 노년 될 때까지 계속 같이 재밌게 작업했으면 좋겠습니다. :)
정다희 감독 (2025년 3월 27일 이메일)
김상준 감독 사운드 작업
고요사운드웍스에서 제일 처음에 했던 작업이 뭔가요?
그때가 2016년도니까 <바퀴 돈다>를 작업실에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호원: 김상준 감독님은 뉴욕에 계시잖아요. 온라인으로 소통하셨나요?
작품이 끝나고 가끔 한국에 들어오실 때 지난 얘기들을 합니다만, 작업 시작 전에는 많이 못 해요. 대신에 김상준 감독님은 장문의 글과 콘셉트 아트와 콘티, 작업 과정을 많이 준비해서 보내주세요. 그걸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게끔 정리를 잘해주세요.
이 장면에는 이 사운드 이렇게 지시하기보다는 작품의 전반적인 정보를 주고 작업하게 하는 건가요?
네,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고 이 신은 뭐 때문에 만들었고 여기서 필요한 감정은 뭐고 전체 타임라인에서 전개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줍니다.
김상준 감독님 첫 번째 피드백이 어땠나요?
피드백 정말 많았어요. 첫 번째 작업은 누구와 작업하든지 간에 항상 겪어야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나뭇잎이 말라서 떨어지는 장면(01:00~01:06)을 제가 처음에 작업했던 거는 그냥 바스락 정도였어요. 피드백이 시적인 표현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이 사람이 말라가는 느낌, 되게 건조하고 훨씬 더 타들어가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완전 다른 건 아닌데 이 부분을 강조를 하고 저 부분은 좀 놔주면 좋겠고 이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장면마다 코멘트가 엄청 많았던 거 아니에요?
많았죠. (웃음) 통화하기도 그렇고 글로 계속할 수밖에 없는데, 그냥 보내는 게 아니라 정말 젠틀하게 길게 쓰셔요. 애니메이션 하시는 분들은 작업 매너가 좋구나 새삼 느끼고 있어요.
호원: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사운드가 도입이 되었을 때 그리지 않은 거는 사운드가 나올 수 없다. 그려진 거는 다 사운드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세팅을 하기 때문에 장면 잡아놓고 그게 움직인다고 하면 감독들이 머릿속으로 그린 사운드를 전달하는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작업이 편하지만 저 소리를 만들어내야 되니까 어렵죠. 그런 면에서 저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타는 듯 말라가는 소리는 어떻게 만드셨나요?
벌써 한참 전이라서… 저 때 종이를 찢었거나 물 달구면은 증발할 때 ‘츠으~’하잖아요. 그거를 섞어서 넣었던 것 같아요.
바퀴 돈다 (2018)
폴리 작업 영상 보면 화면에 보이는 거랑 생뚱맞은 재료를 가지고 비슷한 소리를 구현하잖아요. 평소에 물건이 내는 소리를 유심히 관찰하시나요?
그런 거 확실히 있어요. 의외로 집 안에 있는 물건으로 거의 다 해결이 되더라고요. 특히 주방 도구를 많이 활용하게 되고요. 공구류를 써서 작업하게 됩니다.
인디애니페스트 트레일러 때 쓰셨던 큰 톱은 보통 집에는 없는 도구잖아요. 사운드 작업을 위해서 장만한 건가요?
그거는 제가 작업실 수선을 할 때 가지고 있었던 장비예요.
김상준 감독님 다음 작업은 <비둘기>(2019)였는데, 두 번째 작업은 피드백이 좀 짧아졌나요?
그런 건 아니에요. 김상준 감독님도 자기 스타일하고 너무 다른데 이렇게도 한번 해보고 싶다 했던 것 같은데, 완전 다른 느낌의 영화를 만드셨어요. 이거야말로 제 나름대로 진행을 하고 나서 피드백대로 수정을 했어요. 음악은 이민휘 음악감독님이 해줬어요. 김해원 음악감독이랑 이민휘 음악감독님은 둘 다 뮤지션인데 종종 영화에서도 같이 작업을 하거든요. <비둘기>도 음악에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고전영화처럼 검은 바탕에서 첫 번째 챕터 소개할 때 (00:43~00:53) 영사기와 카메라 셔터 사운드가 들려요.
저한테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에서 많이 하던 거여서 갖고 있는 영사기를 돌려서 녹음했어요. 낡은 느낌을 내려고 필름 소리도 같이 넣었어요.
잘 어울리는 소리인데, 감독이 스토리보드를 그릴 때 그 소리를 생각했을까 궁금했어요.
글쎄요. 사실 되게 난해했어요. 제가 작업한 베이스에서는 배경도 있어야 되고 인물의 대사도 있어야 되고 색깔도 그렇고 다양하게 정보가 있어야지 오디오를 넣을 건데,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정말 마음이 가는 대로 작업을 했어요.
호원: 같은 지하철이라도 서울, 도쿄, 뉴욕이 다르고 전국이 다르고 길거리에 북닥북닥한 자동차 소리도 다 다를 텐데 그 도시에 대한 성격 잡아주세요 하는 디렉션은 없었나요?
저희도 딱 들으면 느낌이 오잖아요. 그래서 라이브러리 소스에서 갖다가 썼어요. 배경이 없기 때문에 엠비언스도 제 임의대로 한 거죠.
호원: 보도블록이 무슨 소재냐, 고층 건물이 얼마큼 빽빽하게 있느냐, 그 도시에 어떤 차종이 있느냐에 따라서 소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작업하면서 제가 많이 문의를 했던 부분이에요. 처음에는 작업용으로 온 거는 배경이 아예 없고 인물만 있었기 때문에 바닥도 문도 재질이 뭔지 모르겠는 상태라서 제가 하나씩 물어보고 소리를 넣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비둘기잖아요. 비둘기 소리는 어떻게 하셨어요?
<바퀴 돈다>의 개구리는 제가 녹음을 한 건데, 비둘기는 소스로 한 거예요
채집한 개구리 소리가 아니고 본인 목소리로 하셨다고요?
네, <바퀴 돈다>는 개구리가 말도 하고 개구리 소리도 내는데, 캐릭터가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 가지고 많이 상의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언어를 하나 만들어 주면 참 좋겠는데 그게 불가능하면 둘 다 쓰자라는 주의였어요. 결국에는 둘 다 쓰게 됐고 감독님의 아이디어는 페트병을 우그러뜨려서 개구리 소리를 내자였고 저는 볼에 바람을 머금고 입으로 개구리 소리를 내자였어요.
마찬가지로 <비둘기>는 비둘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소스에서 찾아 썼어요. 최근에 김상준 감독님이 아주 짧은 스릴러 공포 쇼츠 같은 걸 만드셨어요. 약간 괴기스러운 장면이 있어서 비둘기 말고도 다른 새들을 섞어서 씁니다. 여기서는 비둘기는 소스로 해결을 하고 사람들은 감독님 목소리를 제가 효과를 걸어서 썼어요.
비둘기 (2019)
창문이 열린 장면에는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서평원 감독님 <도래지>에도 철새가 나오고 김경하 감독님은 <종이처럼 얇은,>에서 직박구리 잡아다가 비명을 지르게 한 것 같았다고 했어요.
스튜디오 베란다 난간에 가끔 새들이 앉아 있을 때 잽싸게 녹음한 거를 가공해서 밖에서 나는 것처럼,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작업을 하고요. 김경하 감독님 거는 오래 걸렸습니다. 소리 찾는 것도 힘들었고 깨끗한 소리를 채집하는 게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직박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인터넷 뒤져서 비슷하게 내는 소리를 계속 찾아서 영상에 있는 거를 따다 쓰는 방법으로 했어요. 조만간에 만나서는 새소리를 녹음하러 갈 생각이에요.
호원: 영화 속에서 접하는 오디오 감독은 <카페 뤼미에르>(2003, 감독: 허우 샤오시엔)나 <봄날은 간다>(2001, 감독: 허진호)처럼 채집을 하는 건데, 항상 그렇지는 않으시죠.
항상 그렇진 않지만, 우리가 접하는 독립 영화나 애니메이션들이 도시 주변에서 많이 만들어져서 틈만 나면 가서 녹음해서 라이브러리화 하고 있어요. 게다가 여기 공원도 있어서 많이 가는데, 잘 붙는 게 있고 또 안 붙는 게 있지 않습니까? 산책을 가더라도 최대한 잘 붙는 곳을 찾아가죠.
그때의 모습은 유지태처럼 붐 마이크 들고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은 녹음기 하나 들고나가서 채집해 옵니다. 학부 때는 소리 채집 MT도 한두 번 갔어요.
깨끗한 소리를 채집할 만한 장비가 잘 나와 있나요?
예전에 비하면 몇 년 사이에 엄청 기술의 발전이 있었어요. 대신에 가격도 올라갔겠지만, 정말 시끄럽지만 않다면 웬만한 노이즈 제거도 잘 돼요.
호원: <빅 피쉬>(2017, 감독: 박재범)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여서 바닷소리를 위해서 박재범 감독님이 직접 팽목항 가서 녹음을 해왔거든요.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을 보여줘요.
사운드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그 소리가 뭔지 모르겠지만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 어렵거든요. 최근에 이솔범 감독님이 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제목이 <글라이더> 예요. 실제 글라이더를 날리는 장면이 있어서 제가 글라이더를 조립을 해봤더니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른 거예요. 결국에는 도화지를 접어서 펄럭펄럭하면서 녹음을 했었거든요. 엠비언스든 어떤 오브제의 소리든지 간에 타깃이 있으면 그 소리는 확실히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아리>의 소리를 채집하러 조그만 녹음장비 들고 아파트 단지 돌아다니셨나요?
작은 녹음기는 다른 소리들이 많이 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때는 유지태처럼 장비 챙겨서 갔어요. 여기 아파트 단지랑 공원이랑 다니면서 채집을 했어요. 전에 녹음한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위해서 다시 녹음해서 썼어요.
여름 소리는 매미 소리랑 온갖 곤충들 소리인가요?
네, 돌아다니면서 매미 있으면 가서 녹음하는 거예요. 혼자 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거죠.
메아리 (2023)
제가 멘토처럼 따르던 선배의 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짧은 대화 속에서도 투박하지만(!?) 그 안에서 또 감독님의 따듯함이 느껴졌고, 그 이후 제가 매번 작업을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흐름 속에서 꼭 만나게 되어야 할 분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미국에 있어서 주석감독님께 끝까지 의지하게 되는 것이긴 한데, 최종믹스 그리고 어떠한 음향 작업도 제가 주석님 작업실에서 함께 한 적은 없습니다. 음향감독님께서 중간중간 단계를 보내주시면 최대한 소화해서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바퀴 돈다> 때는 첫인사부터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이메일로만 인사를 나누고, <바퀴 돈다>가 잘 끝나고 나서 꼭 얼굴을 보고 싶어 카페에서 약속을 잡아 서먹서먹하게 한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자리에서 <비둘기> 말씀을 드렸었고요. <메아리> 때도 이메일로 제안을 드리고 작업도 이메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물론 작업이 끝나고 나서 주석님 작업실로 빵 들고 찾아갔습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항상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주석 감독님께 많은 부분을 의지해 왔습니다. 특히 초반 작품들은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 주석 감독님은 자신의 감각으로 먼저 소리를 제안해 주시곤 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석 감독님께서 저의 취향을 조금씩 더 알아주시고, 저 역시 감독님의 결을 이해하게 되면서 작업이 더욱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메아리> 작업은 프로젝트의 아주 초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 단지 “이런 아이디어가 있어요, 함께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저의 막연한 제안에 선뜻 함께하겠다고 해주셨거든요. 그러고 나서 여름 소리를 채집하러 나가셨다는 이야기를 이메일로 전해주셨는데, 그 문장을 읽으며 마치 가을 녘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나가는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그렇게 하셨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그 순간이 지금도 잔잔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메아리> 이후부터는 제가 좀 더 편해져서 인지, 더 자주 놀러 간 것 같아요. 인디애니페스트 때에는 이메일로 제안을 드렸지만, 작업 도중에 작업실에 찾아가서 음향을 함께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디애니페스트 음향작업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 인터뷰내용 방향이 좀 엇나갈 수도 있겠지만 인디애니페스트 트레일러 사운드 작업 시에 주석감독님께서 직접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만들어서 보내주셨는데요, 말발굽소리, 안장 쇠가 부딪히는 소리 등 폴리사운드 들을 직접 이것저것 특히나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너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작업을 거듭할수록, 주석 감독님만의 고유한 색과 결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직접 현장을 느끼고 담아낸, 더 ‘살아 있는’ 소리에 가까워졌달까요.
저 역시 작품을 만들며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주석 감독님은 매번 몇 단계 더 레벨업 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함께한 작업들이 거듭될수록 새로운 결의 소리가 담기고, 예상하지 못했던 감각들이 작품 안에 깃들어요. 그래서 매 작업이 신선하고, 다음에 함께 할 작품이 더 기대됩니다.
김상준 감독 (2025년 4월 2일, 4월 3일 이메일)
서평원 감독 사운드 작업
서평원 감독님은 인디애니페스트 트레일러 폴리 사운드 작업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이렇게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하셨대요.
그걸 보고서 연락을 주시다니 놀라긴 했어요. 저는 이렇게 하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서평원 감독님께서는 많이 없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도래지>는 오히려 녹음 작업을 하고 나서 애초에 감독이 가이드로 넣었던 음악과 사운드보다 감정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었어요. 감독님은 이게 더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이걸로 OK가 난 건데요. 더 울림이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평원 감독님의 가이드보다 감정적으로 약해진다고 느끼셨어요?
이 작품을 처음 받았을 때 내용에 대해서 감동을 받았어요. 제가 넣었던 소리들 몇 가지가 이 흐름을 깨는 것 같아서 어떻게 작업을 해야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두루미 소리를 내는 게 어려워서 우산에다가 천을 이어 붙여서 펄럭펄럭하면서 날아가는 거 했는데, 제가 봤을 때 계속 어색해서 감정을 해치지 않나 싶었는데, 감독님은 좋아하셨어요.
가이드 사운드를 얼마나 세세하게 한 거예요?
순천만에 가서 녹음을 해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물론 자세하게 들으면은 뒤죽박죽이고 소리가 안 좋긴 한데, 오디오가 갖고 있는 느낌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거칠지만 최대한 그 소리를 살려 썼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원하는 다른 소리들을 추가로 많이 집어넣었죠.
처음 받았을 때는 그림이 완성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잘 설명이 안 돼 있었거든요. 새끼 두루미가 그물에 걸려서 아버지가 몸을 돌려서 들어가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저게 철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건가 싶어서 처음에 작업할 때는 넘어가는 소리를 넣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야생동물을 마주할 때는 부리에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숙이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지점들에서 추가로 작업을 했고요. 그물도 낚싯줄처럼 소리가 안 나는 거였지만, 철사를 끊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아서 철사 소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두루미가 날아가는 소리 말고 두루미 울음소리 같은 것은 라이브러리로 하신 거예요?
네, 원래는 계획은 직접 가서 녹음해 오자였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소스를 썼어요.
특정 부분에서 제가 과격하게 쓰는 부분들이 있어요. 제 느낌대로 막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감정선 하고 감독님이 만들 때 감정선이 다르기 때문에 원래 의도와 벗어나는 지점들이 이런 데 같아요, 어미 두루미가 새끼 두루미를 보호하러 달려오는 장면을 제가 원래는 공포 영화처럼 만들었었거든요. 쿨다운 시간 갖고 나서 보니까 지금의 선에서 정리하길 잘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업해 가면서 처음 받았던 인상에서 바뀌는 부분을 감독님들이 좋아해 주셔서 다행인데 또 아닌 분들도 계시니까 조심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선배님들이 항상 오디오가 너무 지나치면 영화에 해를 가하기 때문에 맞춰가는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감독님 하고 저랑 둘 다 같이 의견이 맞아서 공을 들였던 게 날아가는 장면인 것 같아요. 최대한 시원하게 가보자 그래서 신경을 좀 많이 썼었습니다.

호원: 3년 전부터 인디애니 감독들이 바람의 맛을 느꼈어. (웃음) 한지원 감독 <마법이 돌아온 날의 바다>도 그렇고 김상준 감독 <메아리>도 그렇고 작년에 이문주 감독 <뉴-월드 관광>도 그렇고. <메아리> 보면서 마지막에 바람이 아파트 단지를 휘감는 장면이 너무 와닿았어요. 나의 바람 요리법 같은 게 있나요?
그거는 정말 못 볼 때까지 반복해서 보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진짜 몇 프레임 차이로 느낌이 완전히 바뀌니까 한 며칠을 그거 하나 가지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테니스 공하고 바람하고 마지막에 야호 이 시퀀스에서 김상준 감독님 하고 피드백이 많이 오고 갔어요. 바람도 바람인데, 아이들이 창문 열고 야호 하는 타이밍도 바람에 맞춰서 하느라고 시간 많이 들었어요.
호원: 사운드가 어떻게 작품을 한 단계 위로 올려주는지 확인을 하면은 앞으로 하는 감독들이 그 기준에 맞춰서 영상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정다희 감독님, 김상준 감독님 하고 작업한 것들을 보고 다른 분들도 연락할 것 같아요.
그거는 확실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정다희 감독님 작업 이후에 애니메이션 계속하게 되는 것 같고요.
김상준 감독님이 제작하신 2024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오프닝 영상의 사운드를 작업하신 걸 보고, 저도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정리해서 바로 이주석감독님에게 DM을 드렸고, <도래지>에 사운드 감독님으로 함께 참여해 주셨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실 이주석 감독님과 함께 하는 작업과정 자체였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댁에서 작업하시는데, 들어가면 매번 강아지가 반겨주었거든요. 그렇게 편안한 작업실 분위기에서 함께 작업하는 것도 좋았고, 작업기간 내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을 담아주셨던 것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다음에 또 같이 재밌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서평원 감독 (2025년 4월 7일 카카오톡)
김경하 감독 사운드 작업
김경하 감독님 <종이처럼 얇은,>은 사운드는 없고 영상만 있는 애니매틱을 받아서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6분짜리인데, 1차로 돼 있어요. 이번 달 말에 새 편집본이 올 거예요.
이 장면에 무슨 사운드를 넣어달라는 가이드는 없나요?
콘티에 여기에 무슨 소리 무슨 소리 이렇게 쓰여 있기는 해요. 저는 그걸 가지고 일단 만들어 보는 거죠. 영화는 앞뒤로 영상이 더 있는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제가 받은 건 이렇고 아직 작업할 게 많이 남아 있지만 그림이 와야지 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풀 영상인 상태에서 넘기는 것보다 어느 정도라도 있으면은 미리 받아보는 걸 선호하시는 거예요?
네, 그래야지 저도 준비를 하고 분위기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 선택을 해야 되니까 미리 아는 게 훨씬 좋아요.

호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움직임에 따라서 리듬이랑 템포랑 잡아놓고 사운드가 거기에 맞추는 식인데
그림이 이미 완성돼 있고 오디오가 들어갔을 때 원래 생각했던 템포가 바뀌게 되는 상황이 좀 생기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편집을 또 하게 되는 것보다는 미리미리 같이 작업을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게 저한테 더 좋은 것 같아요.
크레인이 나오는 장면에는 그림 한 장만 있는데, 기계 소리가 나는 건 분위기를 위해서 넣어둔 건가요?
이거는 제가 몇 번째 받은 영상이에요. 그전 스케치에서는 움직이고 있었고 채색이 들어간 버전은 안 움직이고 있고 이런 컷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거에 맞춰서 해놨지만 완성본 그림은 또 다르게 올 수도 있죠.
중간중간 업데이트를 받으시는 걸 선호하는 편이신가요?
러닝 타임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경우는 그게 더 안 좋을 수 있어요. 어느 정도 다 정해진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조금씩 바뀐다면 미리 받는 게 작업량을 줄일 수 있어서 도움이 돼요.
호원: 독립 단편 같은 경우는 작업 기간을 어느 정도로 하나요?
5분짜리라고 치면 단순하게 사운드 채워 넣는 작업은 하루면 할 수 있어요. 제가 하는 것과 감독과 같이 하는 것과는 완전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한 번 작업하고 서로 만나서 수정하고 완성 나올 때까지는 몇 주는 걸려요.
이제까지 작업한 감독들은 기획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컨택트 했으니까 3년도 더 걸라는 거 아닌가요.
길다면 그럴 수 있죠. 그 감독님 생각할 때마다 그 작품 생각이 먼저 들고 그래서 작업 기간을 정하기도 애매해요. 서로 일정도 확인하고 얼마 큼까지 하는데 일주일 그리고 나머지는 주고받고 피드백받으면서 완성본 나올 때까지 일주일 이주일 이렇게 됩니다.

이전에 참여했던 정다희 감독님의 <옷장 속 사람들>의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이주석 감독님과 정다희 감독님께서 이미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 하셨었고, <옷장 속 사람들>의 후반작업 소식을 알음알음 들어왔던 터라 내적 친밀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다희 감독님의 <빈방> 사운드 디자인을 정말 좋아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디애니페스트에서도 사운드 작업이 너무 깔끔하고 아름다워서 누가 작업했을까 궁금해지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주석 감독님이 크레디트에 올라왔습니다. 그땐 이미 작업 의뢰를 드린 상황이었지만, 당첨된 복권을 가진 사람마냥 신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막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종이처럼 얇은,> 사운드 작업을 하며 ‘이게 바로 사운드 디자인이구나.’ 하고 감탄했었습니다. 짧은 제작일정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거주지 때문에 영상 파일과 씬노트만 전달하며 작업을 부탁드린 상황이었는데, 저로선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물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히 화면 속 인물이나 소품의 재질 등에 딱 맞춘 소리를 넣어 리얼리티를 살리는 게 아니라 영상 속 공간과 캐릭터, 소품 등의 조화를 깊이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그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소리로 그 공간이 존재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직박구리가 온 힘을 다해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는 소리가 필요했는데, 새를 더빙룸에 잡아넣으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정확한 넣어주셔서 굉장히 기뻤던 때도 생각납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작업하는 프로의 표본 같은 이주석 감독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통하는 동안 작업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많은 걸 보고 배웠습니다. 아직 작업이 남았지만, '이 아름다운 사운드 작업을 누가 했는지 아느냐' 며 동네방네 사방팔방 떠들고 다닐 수 있도록 영상 작업도 멋지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독님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경하 감독 (2025년 4월 17일 서면)
사운드의 향방
사운드 작업으로서 존경하는 분이 있나요?
올리비에 칼버트 Olivier Calvert라고 <컨택트>(2016, 감독: 드니 빌뇌브) 이펙트 사운드하셨던 분인데, 사운드를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실험적인 모습들이 많이 있어서 인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저도 제가 작업했던 영화나 스타일에 갇혀서 그 안에서 변형만 하는 정도지 한 장면을 위해서 대뜸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 보는 기회는 많이 없어요. 팀으로 작업해서 그분이 다 한 것 같지는 않지만,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점이 놀라운 사운드였나요?
영화에서는 외계인이 말을 걸고 상형문자가 만들어지는 소리가 있어요. 어떻게 저런 소리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는 거죠. 우리는 시간 때문에 기존의 이펙트 돌려서 딱딱 넣고 외계인 목소리라고 한다면 필터 걸고 끝일 건데, 거기서는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소리를 실험적으로 했던 거 아니겠습니까? 저렇게까지 하는 의지가 되게 부럽고 완성도 있는 오디오를 만들어서 더 좋았어요. 그게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처럼 멋있는 소리가 아니고 독립영화스러우면서도 거칠지만 인상적인 오디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을 보고서 한번 보고 싶었어요. 정다희 감독님과 아는 사이라 캐나다에서 만나 뵀어요.
감독을 꼽으라면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스타일이 오디오로 봤을 때 제가 추구하 스타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분 영화가 영화가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우티풀 Biutiful>(2010)이라는 영화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고요.
같이 작업하셨던 감독님들이 사운드 아티스트로서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 않은지 궁금해하셨어요.
폴리 작업을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전혀 다른 물건으로 소리를 내는데, 소리로 스토리텔링하는 거를 하고 싶어요. 그거 말고도 하고 싶은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간 여유가 없었어요. 작업실을 옮기면 바로 시행할 계획입니다.
소리로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말로 설명을 하는 게 있을까요?
그림이나 이런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처럼 보여주게 될까요?
올린다면 유튜브 같은 포맷이 될 것 같은데, 글쎄요. 막상 해보면 또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호원: 사운드 스케이프처럼 공간 안에서 사운드가 구조적으로 잡혀 있고 영상이나 동선이 거기에 맞춰서 가는 것도 있고
설치미술 같이 전시 공간에서 하면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재미는 있을 것 같아요. 정다희 감독님 작품을 전시장에서 몇 번 했었거든요. 그게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졸업 작품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거였으니까 그런 공간을 실제로 해서 사운드 구현하는 방식도
네, 괜찮죠. VR로 하면은 괜찮지 않겠냐부터 해서 이런 얘기를 정다희 감독님 하고 많이 했었어요. 저도 빨리 뭐든지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2025년 5월 18일 @ 방이동
진행: 이경화, 나호원 / 정리: 이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