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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 Sasha LEE

이상화


2020년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는 졸업을 앞둔 청년 당사자의 암담한 미래 전망과 답답한 현실 인식을 냉소적인 노래와 화려한 춤사위로 전달한다. 작품의 지배 정서는 좌절이지만 예술가는 깔끔하고 아름다운 몰락을 그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대에 진학해 생계 고민과 적성에 따라 전공을 두 번 바꿨던 이상화의 졸업작품이자 데뷔작이다. 2024년 <고라니 아이돌과 나>는 과로에 시달리며 아이돌 가수에게서 위안을 찾는 직장인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파편화된 현대를 구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취향과 지식을 습득하고 날마다 새로운 온라인 밈을 수집하며 쇼츠와 릴스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삶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편재해 있다.


2024년 9월 인터뷰

단지 나를 위해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 (2020)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는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RISD) 졸업 작품인가요?

맞습니다. 전공은 애니메이션이고 그 위에 과가 필름/애니메이션/비디오라고 되어 있어요. 애니과여도 영화 봐야 되고 수업에서 영화 만들어야 되고 비디오 쪽은 미디어 아트 가르치고 섞여 있습니다. 


1학년 때는 수업이 공통이에요. 목공 하는 것도 배워보고 유리 공예하는 애들도 있고 별의별 걸 다 배우다가 2학년 때는 커리큘럼 하나씩 찍먹 해보고 3학년 되면 세 개 중에 골라서 들어가는, 약간 <메이플스토리> 같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요. 4학년 때는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졸업 작품을 만들어요. 


저는 페인팅을 하고 싶어서 거기 들어갔는데 중간에 전공을 두 번 바꿨어요. ‘페인팅을 해서 어떻게 살까’ 고민이 들어서 일러스트레이션 2학년 필수 전공을 다 듣고 시간이 남아서 애니메이션 기초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고 교수님도 저랑 잘 맞았어요. 그분이 제 인생을 바꿔놨다고 볼 수 있겠죠.


선생님의 성함이?

지나 카민스키(Gina Kamentsky)라는 분인데 비메오 치면 나올 거예요. 키네틱 아트도 만드시고 8mm, 16mm 필름에다 스크래치하는 작업들 많이 하셨어요.


그때 매력을 느꼈던 것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실험 애니메이션이었겠네요.

맞네요. 사실 고등학교 때 애니메이션 많이 봤어요. 일본 애니도 많이 보고 미국 애니도 많이 보고.


호원: 미술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그림은 옛날부터 계속 그렸어요. 초딩 때부터도 만화 그려서 애들 보여주고.


호원: 학원 다니면서 유학 준비할 때는 어떤 그림을 그리신 거예요?

아크릴화랑 소묘 데생하는 게 재밌어서 많이 했던 것 같고 조각하고 3D로 만드는 거는 어려워했어요. 애니메이션을 동경은 했는데, 미술학원 선생님 중 한 분이 자기가 “90년대에 애니메이션 해봤는데 힘들다. 돈도 안 된다. 하지 마라” 해서 그 길로 쳐다도 안 봤던 것 같아요. 그냥 보는 것만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 학원 다니면서 준비하고 졸업하자마자 RISD로 갔나요?

네.


애니메이션과에서는 수업이 어땠어요?

학교 자체가 감독이나 작가를 키우는 느낌이어서 전체적인 그림을 잘 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글 쓰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작품을 조율하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훈련을 받았어요. 사운드 디자인은 거의 필수적으로 했고 애프터이펙트나 3D 마야 같은 수업이 있기는 해요. 근데 애니메이팅 수업은 거의 안 듣고 제가 평소에 보던 것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 프레임 씩 똑같이 따라 해 보면서 놀았어요. 예를 들면 연기 모양이 어떻게 하늘로 날아가는지 아니면 머리카락 떨어뜨리는 게 현실이랑 만화에서 그리는 게 왜 다르지 주의 깊게 보면서요. 

 

대학 수업과 독학을 병행했군요.

저는 이쪽에 광적으로 관심이 많았어서 계속 그런 거를 찾았던 것 같아요.


호원: 음악은 언제부터 했어요? 

음악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만들어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고 그랬거든요. 음악은 너무 어렵고 배워야 될 것도 많고 장비도 중요한 것 같고 그래서 음악을 한다고 말하기에 두려운 게 있어요. 


그래도 한때 뮤지션을 꿈꿨던 건가요? 

취미로 해보자 이런 거였어요. 그때는 건반도 없었으니까 미디로, 마우스로 다 찍어보면서.


호원: 지금도 음악 계속 만드세요?

친구들이 가끔 사운드 디자인 해달라고 할 때 있어요.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을 하는 친구들인가요?

맞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부터 걔네들 거 해주기도 했었고 아직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활동은 몇 살부터 했어요?

초딩 때 네이버 블로그로 시작을 했어요. 네이버 카페에서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는 것들을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미디 쓰는 거 이런 거. 유튜브도 많이 봤었고.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를 기획한 첫 순간부터 떠올려볼까요?

여름방학 때부터 졸업 작품을 잘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사이비 종교 얘기였어요. 운석이 떨어진다고 믿는 애들이 있고 주인공은 그걸 믿는데 이게 진짜인지 모르겠고 교주님을 언제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얘기하는 서사도 있는 좀 긴 내용이었는데, 디벨롭을 하다가 가지치기하면서 뿌리만 남기고 다 제거해 버렸거든요. 인물의 배경도 안 알려주고 내 감정만 가지고 노래를 부르잖아요. ‘자잘한 설정을 다 빼도 사람들이 궁금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예쁘게 만들면 어떻게든 봐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이비 종교 단체로 시작했는데 완성된 작품의 등장인물은 한국 고등학생들이에요.

원래는 어떤 섬에 고립되어서 운석이 떨어진다고 믿으면서 강강술래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 얘기는 어떻게 나온 거죠?

‘운석이 떨어져서 모두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인데, 결코 올바르거나 건강한 생각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극복하는 이야기를 해보자 해서 용기있게 사이비 종교를 설정해 두고 걔가 여기서 나가는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쓰다 보니까 내가 그 생각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사람들한테 하라고 시키는 게 위선 아닌가 해서 굴복해 버린 거죠.


<운석이 떨어지면 좋겠어>는 절망적인 정서인데, 기획을 할 때는 그걸 극복해야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니 재미있네요.

머리랑 가슴이랑 따로 노는 느낌인 거죠.


실험 애니메이션에 매혹되어서 애니메이션과에 간 것 치고 내러티브가 있는 작품을 했어요.

실험 애니메이션으로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페인팅을 포기했던 것도 그렇고 은근히 생존에 대한 방편들을 생각해 두고 어떤 게 최적일까 각을 재고 계산하는 게 들어간 것 같아요. 


서사 쓰는 걸 그래도 하려는 게 제가 진짜 좋아하고 존경하는 실험 애니메이션 작가님이 추상 작업을 하시면서 들인 노력과 작품의 위대한 멋짐에 비해서 조회수가 되게 적더라고요. ‘사람들은 서사가 있는 걸 좋아하는구나’ 뭔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있어야겠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술 쪽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은 작업의 화제성이나 작가의 스타성을 키우거나 아예 산업으로 진출하잖아요. 

저는 둘 다 하기 싫은 약간 이상한 사람이에요. 


거대하고 기만적인 사이비 종교 탈출기에서 다 모르겠고 한꺼번에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솔직한 심정으로 압축된 시기는 언제였나요?

메인프로덕션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던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만들기가 한결 쉬워졌어요. 얘네가 부르는 노래가 원래 사이비 신도들이 부르는 노래였는데 그거를 제가, 감독이 부르고 있는 거잖아요. ‘이거 진짜 잘못됐다. 하지만 어디까지 잘못될 수 있나 보자’ 하면서 노래 가사가 나오고.  


호원: 그 노래는 언제 만든 거예요?

그것도 10월쯤에 가지치기하면서 동시에 만들었던 것 같아요. 가사를 제일 먼저 쓰고 노래는 코드 최대한 조금만 쓰면서 쉬운 멜로디로. 원래는 가사가 “발에 무좀이 심해서 너무 힘들어요. 운석이 떨어지게 해 주세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거 가지고 부르는 느낌인데 좀 더 시리어스 해진 것 같기도 해요.



일상의 자잘한 절망에 대해서 ‘다 망했으면’ 하나요.

평소에 생각하진 않고


호원: 내 안의 소심한 저주를 겉으로 보였을 때 사람들이 비웃거나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라는 것도 있었는데

맞아요.


호원: 내 안의 자그마한 악마성을 이렇게 귀엽게 보여줘서

예쁘게 꽃이랑 해서


호원: 어떤 길티플래저를 느끼기도 하고

저 그런 거 좋아합니다.


호원: 누가 문제 제기하면 고약해지겠다 싶기도 해서

항상 그런 줄타기하는 거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인스타에 올리는 웃긴 애니메이션들 있잖아요. 스케치 스타일로 하는데 거기에도 항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재를 하나씩 갖다 씁니다.


본인의 졸업작품이기도 하고 졸업 시기에 있는 학생들 셋의 하룻밤 이야기가 됐어요.

대학교 졸업이 가까워지니까 그런 게 떠오르더라고요.


얼마만큼의 절망과 얼마만큼의 희망을 갖고 있었나요.

시작할 때는 절망적으로 만들었는데, 크리틱 시간에 교수님도 보여주고 친구들도 보여주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이런 걸 만들어도 되네’ 희망이 생기기도 했었고 공감해 주는 사람 많다는 게 기쁜 한편으로는 ‘얘네들이 다 슬퍼하고 있구나. 정말 세상이 안타깝다’ 이런 생각도 하고. 슬픈 일을 겪고 슬퍼하는 친구한테 “야 괜찮아 이겨낼 수 있어 너는 강하니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보다 엉엉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게 더 도움이 될 때도 있잖아요. 저는 옆에서 엉엉 우는 거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말을 미국에 있는 친구들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나요?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일본어에도 있는 표현이니까 일본 애니 많이 봤으면 알지 않았을까요?


꽃 캐릭터는 딱히 성격이 보이지 않는 그냥 다른 존재이기만 한 것 같고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성 없이 무조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대책 없는 성격도 아니에요. 이미지 톤도 기계적이고 차가운 느낌이에요.

꽃이나 식물은 기후랑 습도랑 온도 이런 거 맞으면 알아서 싹을 틔우잖아요. 추우면 이파리 떨어뜨리고 가만히 있다가  따뜻해졌다 하면 나오고 아무 데서나 자랄 수도 있고 기계적이고 수학적이고 차갑고 무섭다 이런 생각을 함께 했는데, 꽃이 아름다움도 있으면서 그런 기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꽃을 썼습니다.


꽃이 비보잉 같은 거 하고 춤이 되게 화려합니다.

친구가 춤 동아리여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 학교에도 춤 동아리가 있어요?

당연히 있을 거 다 있습니다. 옆 학교랑 같이 춤 동아리를 하거든요. 저는 공연만 몇 번 구경하러 갔었는데, 그 친구가 했던 동아리는 케이팝 댄스 동아리였어요. 동아리 이름이 “대박”이었어요. 한국인,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도 있고 케이팝을 순수하게 사랑해서 하는 친구들도 있고.


춤은 가이드를 주신 거예요. 아니면 아무거나 잘하는 거 해달라고 한 거예요?

아무거나 잘하는 거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호원: 그 친구가 춤출 때 가이드로 삼았던 음악이랑 감독님이 썼던 음악이랑 비트가 잘 맞았어요?

가이드 소리 끄고 들었어서 음악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비트가 안 맞으면 제가 맞추면 되는 거고요. 사이사이에 프레임 하나만 더 그려내면 맞고 안 맞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애니메이션의 장점인 것 같아요. 


그렇게 화려한 댄스를 넣은 이유는 뭔가요?

꽃이 춤추면 멋있잖아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고. 원래는 강강술래 할 예정이었던 신도 친구들이 꽃 얼굴을 하고 솔로로 댄스도 하고 수영하는 자세도 하고.



호원: 스테이지 1 스테이지 2 스테이지 3처럼 첫 현실에서 시작해서 저주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다시 현실로 와서 끝나는 세 파트로 나뉘는데, 처음부터 그 플롯으로 잡아서 작업했나요?

처음에는 초반에 1분이 더 있었거든요. 사이비 종교 콘셉트는 없어졌고 실패한 미대생이 컵라면 먹다가  유튜브 보면서 방에 누워 있는데 거기서 노래 부르는 내용이었어요. 그것도 없애니까 진짜 뼈대만 남게 됐죠. 제가 불렀던 노래가 현실에서 쉽게 부를 수 있는 가사는 아니잖아요. 친한 친구랑 같이 “야 우리 뭐 먹을래” 이러다가 갑자기 “나는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 이러면 “너 왜 그래” 이럴 거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현실에 반대되는 영역에서 얘가 이 노래를 했으면 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세 파트라고 딱히 생각하지는 않고 작품의 에너지가 영에서 시작해서 올라가다가 후렴구 다음에 서서히 내려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구성을 짜고 난 다음에 피드백받으면서 크게 고치지는 않았나요?

많이 고치긴 했어요. 거기 들어가는 이미지들이 전부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여기에다 이걸 넣어야지 하고 계획을 했던 게 아니고 언젠가는 생각나겠지 이러면서 다른 거 먼저 그리고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호원: 음악이 어려웠어요. 애니메이팅이 어려웠어요?

음악은 진짜 쉬웠고 애니메이팅이 어려웠습니다. 화려하게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어요.


네온처럼 빛나는 색을 선택했던 이유가 있나요.

걔네가 노래 부를 때는 현실에는 없는 형광 주황, 형광 핑크색 같은 색깔을 쓰고 싶었어요. 운석이 실제로 그런 색깔일 리는 없겠지만 가상의 운석이니까. 그래서 네모 모양인 거기도 하고요. “이게 가짜다”라는 걸 확실하게 알려주려고요.


네모 운석 보면서 되게 디자인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육각형이었다가 아예 운석 같지 않은 운석을 그리자 해서 정사각형 네모로 했어요.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쳐내고 쳐내서

기본으로 돌아가자 해서. 엔딩에서 “빨리 가자” 이러는 고양이랑 뱀도 원래 사이비 종교 내용에서 나왔던 애들인데 뼈대만 남아서 역할이 아예 없어졌고.


아쉬우니까 친구로 등장시킨 거예요.

맞아요. 그리고 둘이서 하늘 보고 있으면 ‘쟤네 둘이 사귀나’ 이렇게 될 것 같으니까 그냥 그룹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세명을 등장시켰어요.


사이비 종교 얘기는 언젠가 되살아날 수도 있을까요?

아니요. 제가 거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 만들면서 다 해서 이제 보내줄 수 있습니다. 항상 하고 싶었던 운석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소원 성취도 했고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졸업은 언제 했나요?

5월에 졸업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고 가만히 있다 보니까 ‘아 이렇게 사는 게 맞아? 아메리칸드림이고 뭐고 필요 없다’ 7월인가 8월인가 한국에 왔습니다. 


들어와서 처음 작품이 공개된 곳이 인디애니페스트인가요?

인디애니페스트가 맞는 것 같아요.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처음으로 상도 받아보고 ‘나 가능성이 좀 있을지도?’ 자만하기도 하고. 그 뒤에 차례대로 부천인터내셔널애니메이션페스티벌도 되고 선댄스영화제도 초청을 받았지만 온라인이어서 새벽 2시에 줌 키고 했어요.


호원: 한 작품을 거의 혼자서 하는데 일정이 빠듯했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저는 오히려 좀 많이 남아서


호원: 작업하는 손이 빠른 편이에요? 

제가 한국에서 제일 빠를 수도 있어요.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쓰나요?

필요에 따라 다르게 쓰는데 회사 일을 할 때는 클립스튜디오 쓸 때도 있고 개인적으로 혼자 할 때는 포토샵 제일 많이 쓰고 퍼펫툴이나 그림자나 조명 넣고 합성할 때 에팩 쓰고 섞어서 쓰는 거 같아요.


장비는 어때요? 

맥 미니 하나랑 XPPen 액정 태블릿 하나 이렇게 했어요.


운석 스핀오프


<김밥 천국>(2020)이라는 유튜브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그거는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을 만들고 만든 거예요?

만들던 중에 만들었어요. 그때 사운드 관련한 수업을 하나 듣고 있었거든요. 사운드 스피커 23개가 돌아가는 멋있는 시스템 갖춰놓고 교실에서 칩 같은 거 조립해서 버튼 누르면 삑삑 소리 나는 거 했거든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건물이 다 닫혀서 진짜 뭐 해야 될지 모르게 된 그 수업 과제로 제출했던 애니메이션이에요. 유튜버가 되는 거를 꿈꾸고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때는 사실 제가 유튜브를 전혀 안 봤거든요. 


지금은 중독자가 됐나요?

중독자는 아니에요. 건강한 시청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김밥 천국>에 오이를 혐오하는 것이 나오는데 실제로 오이를 싫어하시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핫한 부먹찍먹, 민트초코, 파인애플피자 호불호에 대한 걸 놀리고 싶었어요. 저는 오이도 좋아하고 파인애플피자도 좋아하고 민트초코도 좋아하고 탕수육은 부먹도 좋아하고 찍먹도 좋아합니다.


거기에 아리아가 나오잖아요. 크레디트에 조준이라는 분이 노래를 했다고 나오는데, 성악 전공하신 분인가요?

아니에요. 룸메이트 중에 한 분이었는데, 영화 보거나 놀 때 갑자기 누가 선창하면 따라 부르는 우리만의 놀이 문화가 있었어요. 그때 자주 부르던 노래 중에 하나였어요. 가곡 같은 거를 21세기에 굳이 부른다는 게 웃기니까.


원래 가사대로 부른 거죠.

네. 구글에서 가사 검색해서 제가 부르게 했습니다.


그거는 그때 시간도 남고 수업도 있으니까 해보자에서 끝나는 걸까요?

그 세 명의 캐릭터들 가지고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서 포스타입에다가 만화(『설기네 해결사』)를 그렸던 적이 있어요. 12화까지 나왔었는데 주인공 멍멍이 캐릭터 설기가 운석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인데 술을 마셔야 MP 마나가 올라가서 초능력을 쓸 수 있어요.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채로 사는 세계관의 얘기였는데, 제가 중간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고 토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팀 프로젝트였어요?

선 그려주는 하림이라는 친구와 같이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반응이 좋았다면은 병행을 하면서 할 수도 있었을까요?

반응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애니메이션이고 감사하게도 마침 애니메이션 일이 많이 들어와서 동시에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랑 그렇게 끝낸 게 아쉬워서 새로운 거 하나 만들고 있어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네, 그리고 『설기네 해결사』도 어떻게든 완결은 내고 싶어서 짧게 에필로그라도 내야 되지 않을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혼자 유학생활을 했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변 환경이 변했는데 이런 것이 특별히 영향을 못 미쳤나요?

제가 환경에 영향을 좀 안 받는 편인 것 같아요. 친구도 많이 사귀는 편이 아니고 옆에 누가 있어도 마이 페이스로 잘 있어요.


호원: 나가서 실컷 작업을 했다가 한국 들어왔을 때 답답해하는 경우들도 생기거든요. 

그때는 가족들에게 괜히 코로나 옮기지 않기 위해서 집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국에 오니까 딱히 제약도 없고 ‘코로나 걸리면 격리돼서 치료받으면 그만이네’ 심각도가 좀 덜해졌다고 해야 될까.  미국은 또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가 불편한데, 저는 운전면허는 있고 차는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기숙사에 있었어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렌트했어요.


호원: 이제 진짜 재능 있는 친구들이 어디서 작업할지는 구애를 안 받겠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은 독립 애니메이션 만드는 데 돈을 주잖아요. 미국은 안 주니까 (웃음) 


‘화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먹고살아야 돼’ 그 타협점이 독립 애니메이션인 건가요?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잘하다 보니까 이걸 하면서 딱히 불만이 없는 거예요. 교과서적인 대답인데 그림 그릴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고 그림 그리면 사람들이 봐준다는 거에 감사하고.


인기를 얻어서 뭐 하겠다는 욕망 없어요?

저 은근히 그런 거 부담스러워해요. 인스타그램 팔로어 지금 4만 명인데 메시지 오는 거 답장 절대 안 하고 댓글도 안 살펴보거든요. 욕망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런 거에 얽매여서 스트레스받는 것도 안 좋아해요.


고라니 아이돌과 나 (2024)


호원: <고라니 아이돌과 나>에 별자리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원래 천문학이나 천체 물리학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바케모노가타리>(감독: 신보 아키유키, 2009)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중요한 장면에서 주인공 여자친구가 손가락으로 밤하늘 가리키면서 “저게 여름의 대삼각형이야” 알려줘요. 그 장면 패러디하는 겁니다.


호원: 그 삼각형이 고라니 얼굴이 되고 제일 밝은 별 베가랑 성운 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우주 덕후라든가 별자리 덕후여야지 나오는 것 같아서

덕후라고 하기에는 허접 수준이라서 미안한데,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럼 어느 정도 관심이에요?

어느 계절에 어느 별자리가 보이고 하늘을 보면 이거는 이 별자리 같다는 할 수 있어요.


2022년 텐트영화제 때 <눈이 감기고 나는 고라니 아이돌의 꿈을 꾼다>라는 제목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고라니 아이돌과 나>가 나왔습니다.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 만들고 다음 해부터 기획했어요. 저는 열중하고 있는 작업이 없으면 어딘가 공허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무언가라도 붙잡고 있자’ 그래서 떠올리게 됐어요. 인디애니페스트 수상했을 때 재생산과 사회성에 대한 작업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게 고라니였어요. 


단편을 계속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한국 웹툰이 유행이니까 우리도 해보자 해서 공모전에 내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만화 쪽으로 좀 해보려다가 ‘애니메이션 상도 받게 되네. 다른 영화제에서도 불러주네. 와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 (영화제) 가서 다음 작업에 집중을 하게 된 거 같아요.


호원: 유학 가기 전에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하지 않은 케이스인가요?

독립영화를 좋아했어요. ‘영화감독이 되면 재밌겠다. 근데 나는 인맥 같은 거 쌓을 자신이 없으니까 영화는 안 해야지.’


내향형 인간이라서?

영화는 아무래도 협업을 해야 되잖아요. 그걸 할 자신이 없었어요.


어떤 점에서 독립영화에 흥미를 느꼈나요?

유명한 것들은 ‘어차피 좋은 애들이 나와서 좋은 일하고 멋있게 싸워서 이기겠지’ 쉽게 질렸던 것 같아요.

 패턴이 반복되면 재미없으니까. 근데 독립영화는 이걸 보면 다르고 이 감독 거를 보면 또 다르고 이런 데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고라니 이야기에서 제일 처음 떠올렸던 건 뭐예요?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는 귀여운 핑크색 고라니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돌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러브 라이브!>(2013 감독: 쿄고쿠 타카히코), <아이돌마스터>(2014, 감독: 니시고리 아츠시) 이런 거 열심히 봤고요.


아이돌 문화에 팬으로서 관심이 있었거나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고라니 아이돌이 먼저 떠올라서 아이돌을 공부했다는 거군요.

그것도 사이비 종교와 연결이 되는 것 같긴 해요. 주인공이 숭배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거를 고라니 아이돌로 하기로. 저는 어떤 캐릭터가 딱 정해져서 이거 아니면 안 되겠는데 하면 거기에 맞춰서 둘러싼 이야기를 만드는 식으로 작업해요. 


호원: 고라니가 먼저였어요. 아이돌이 먼저였어요? 

고라니가 먼저였어요.


고라니를 숭배하는 베가는 같이 나왔어요?

고라니가 나오고 걔는 얼마 안 돼서 나왔어요. 원래는 마름모가 아니라 사다리꼴이었는데, 별자리 모양이랑 똑같이 생기게 해야겠다. 마름모로 평행이 되는 게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는, 연결 안 되는 인생 같아서 바꿨어요.


호원: 메인 캐릭터 셋이 동그라미, 세모, 네모.

맞아요. 


극단의 효율을 추구하는 

추상화 (웃음)


다른 둘은 분명히 동물인데 베가는 A4 용지인가? 했어요,

<오즈의 마법사>(1939, 감독: 빅터 플레밍)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이 모티브였거든요. 파란색이고 탁 치면 금속 소리 날 것 같은, 사람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사람이 되고 싶은 양철 나무꾼처럼 걔도 심장이 없잖아요.


일반 군중은 비둘기로 설정했어요.

<메아리>(2023) 김상준 감독님의 <비둘기>(2019)를 인디애니페스트에서 보고 저는 비둘기가 되게 마음에 들었거든요. 거기서 가져왔어요.


배경은 한국인 것 같은데 다 영어를 쓰고 노래는 또 한국말로 해요. 

저는 어렸을 때 미국 락 메탈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요새  외국 친구들이 케이팝 들으면서 한국어 배우잖아요. 언어만 반대로 됐지 ‘내가 고딩 때 중딩 때 하던 거랑 똑같구나’ 평소에 사람들이 쓰던 거와 다른 언어의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 느끼는 이상한 소외감 같은 거를 표현하고 싶어서 설정을 그렇게 했는데, 그것 때문에 자막 넣는 게 되게 어려워졌어요.


호원: <고라니 아이돌과 나>의 스토리 라인이 어느 정도 다듬어진 거는 언제쯤이었어요?

2년 전 쯤이었는데, 스토리는 한 번 스토리보드 짤 때 이런 흐름으로 가자 하고 그 뒤로 거의 안 바꿨고요. 3년 중에서 1년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기획한다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생각이 잘 안 돼요, 저는 눈앞에 뭐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먼저 만들어본 다음에 괜찮으면 이대로 하고 별로면 다시 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기획 단계에서도 이미 돼 있는 게 많았어요.


미국 인디 애니메이션 작가 돈 허츠펠트랑 아일랜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데이비드 오라일리가 생각나더라고요.

오라일리 작업은 저도 참고를 진짜 많이 했어요.


‘이것이 신세대의 분열적인 세계관인가’ 했습니다.


호원: 저는 작년의 서평원 감독의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과 서새롬 감독의 <스위밍>과 재작년의 한지원 감독의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의 설정들이 이 안에 다 들어가 있어서 ‘이게 독립 애니메이션의 종합 결정판인가’ 생각했어요 

제가 쇼츠로 맨날 온갖 애니메이션이나 인터넷 밈을 모아서 종합 결정판 만드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그 작품들도 영화제 가서 봤으니까 그런 게 흡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신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 영향도 있지만 이 세대가 경험하는 세계의 영향이라고 보는 거예요.

진짜 10초면 온갖 영상을 다 볼 수 있고 자극이 너무 많은 시대다 보니까 그거를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는 느낌으로 만들긴 했어요.


호원: 오프닝이 옆으로 누워서 바다를 바라보는 거잖아요. 지금 세대가 휴대폰을 통해 세상을 보는 그 사이즈죠. 우리가 쇼츠를 통해 바라보는 세로 형 프레임의 세상을 이 작품에서는 가로로 누워서 기존의 영화적인 프레임으로 구성을 한 게 충격적이었어요. ‘이거는 지금의 세대가 세상을 되게 짧은 단위로서 경험을 하는 영화구나.’

저도 유튜브, 인스타그램 활동을 좀 많이 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보이는 애니메이션을 그리려고 하니까 지금까지 공부했던 비율대로 그리는 컴포지션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되더라고요. 이 화면 비율은 사람이 서 있거나 그런 거는 보여주기 좋은데 옆으로 탁 트여 있는 거는 보여줄 수가 없어서 시야가 막힌 느낌이라 답답한데, ‘이게 대세라니까 따라야지’ 이런 좌절도 섞인 것 같고 릴스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들이  나타났던 것 같아요. SNS마다 선호하는 가로 세로 비율도 다르고 어떻게 보면 정사각형으로 만드는 게 정답인데도 그러면 죽는 공간이 생기는 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항상.


케이팝 아이돌은 단체인데 하나로 집중했잖아요. 이거는 유일신을 상징하는 건가요.

사슴을 숭배한다는 토테미즘적인 이미지도 쓰고 싶었고 여러 명 있으면 애니메이션 그리기도 어렵고. 주인공이랑 고라니는 무조건 한 마리 여야 새들이 떼를 지어서 다닌다는 것이 강화가 될 것 같았어요. 


사실 제일 먼저 고라니 그릴 때 참고했던 분들은 “퍼퓸”이라고 일본 아이돌 분인데, 3인조이긴 하지만 하나로 뭉친 느낌을 생각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것도 다 시키다 보니까 좀 이상한 아이돌이 된 것 같네요. 역기도 들고 보깅 댄스도 추고.


고라니 아이돌의 특이한 자세를 보면서 예전의 장도연이 하이 모델 흉내 내던 게 떠올랐는데, 이게 감정적 거리 두기를 하는 건가 했어요.

그런 것도 있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포즈로 물을 마시고 말도 웃기게 하는 걸 통해서 얘가 사람은 아니라는 걸, 너네랑 같은 레벨에 있는 인간은 아니라는 거를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고 고통도 느끼는 존재를 그리려고 아이돌을 설정한 게 아니고 베가라는 사람이 섬기는 유일신을 그린 거예요.


호원: 베가가 거문고자리에서 제일 밝잖아요. <해리포터>에서도 시리우스가 제일 블랙 가문인데 천체에서 제일 밝은 별이어서 아까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에 관심 있냐고 물었던 거예요.

필요할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호원: 하늘의 별을 본다는 건 되게 낭만적인 거잖아요. 결코 냉소적인 인물이 될 수 없는 설정이에요.

작품이 전체적으로 냉소적이긴 한데 ‘그래도 희망거리를 주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아무래도 균형이 그쪽으로 쏠려있지만 다 만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서 처음으로 봤는데 ‘나 이때 왜 이렇게 어둡게 만들었지?’ 생각했어요.


근데 기억에 남는 거는 엄청 환한 장면들이에요. 시작부터 바다도 반짝반짝하잖아요. 아침도 새하얗게 빛나고, 어두운 이야기에 반비례해서 더 환하게 만들었다 싶어요.

아이러니하게 어두운 이야기인데 색깔이 밝은 거를 주로 쓰면 재미를 많이 느낄 것 같았어요. 전에 만든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도 그렇고 제가 작업할 때 흰색을 거의 안 쓰는데 <고라니 아이돌과 나>는 안 해봤던 거를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호원: 이미지들이 막 변하기도 하고 거의 폭발하기도 하는 게 있는데, 에너지일까요? 아니면 혼돈, 혼란스러움, 폭주 이런 걸까요?

폭주하는 느낌으로 에너지 파박! 하고 제 안에 있는 에너지와 혼돈을 표현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클라이맥스는 클라이맥스다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이렇게 다양한 기법을 넣어야겠다고 계획했나요?

인스타 넘기다 보면 진짜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그들을 다 포괄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넣어보려고 한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애니메이션 기법을 수작업 하자’ 이런 거는 대놓고 ‘난 다양화 할 거야’니까 싫었어요. 그래서 아스키 아트 같은 걸 넣고.


호원: 그게 스토리보드 상에서 이미 다 반영이 됐던 거예요? 

즉흥적으로 들어간 게 많았습니다. 계획을 하면 ‘이거 별로인데’ 하면서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충동적으로 넣은 것들이 살아남은 게 많았어요.


스토리보드에서 이 장면은 대충 혼돈이야 그리고 혼돈의 소스들은 작업을 하면서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거 넣고 며칠 있다가 와서 ‘그때는 이런 것도 넣었으니까 이제는 새로운 거 해보자.’


예전에 만든 소스 중 여기다 넣으면 어울릴 것 같은데 해서 들어간 것도 있어요?

운석 떨어지는 거 하나 있어요.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의 옛날 버전 육각형 운석이 카메오 같이 잠깐만 나와요.


사실 고라니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교통사고가 아닐까 하거든요.

고라니가 멸종위기 동물인데 한국에서는 너무 많고 한반도의 최상위 포식자예요. 곰돌이도 없고 호랑이도 없고 늑대도 없는 곳에서 고라니라는 풀 뜯어먹을 것 같은 애가 최상위 포식자라는 게 한국의 자연스럽지 않은 웃긴 것들을 표현해 주는 것 같기도 해서 고라니가 신격화된 세상을 만들게 된 것도 있는 것 같고 자전거 타고 가면서 자주 봐요. 밤에 “까~악” 이런 소리를 듣다 보니까 고라니에 대한 거를 만들고 싶은 것도 있었어요.


고라니가 떠나가 직전 장면에 실사로 달리는 걸 넣었어요.

새벽 3시에 작업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달리면서 핸드폰으로 찍었어요. 원래 그 부분에 넣고 싶었던 밈 영상이 있었어요. 웅장한 BGM이 깔리고 어떤 일본 사람이 미친 듯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섹스를 하면 죽을 수도 있지만 나는 무조건 섹스를 해야겠어”하는 30초짜리 틱톡 밈 같은 영상이었는데, 그거를 갖다 쓸 수는 없으니까 대체제로 넣은 거예요. 그런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지지 못하는 것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몹시 격렬하게 욕망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시퀀스는 진짜로 이 사회의 분열적인 양상을 담은 거네요. 


호원: 이 작품은 SNS 쇼츠의 톤이고 구성이고 이미지죠. 보편적인 관계에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하더라고 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규정을 하는 형식이 있는데 <고라니 아이돌과 나>는 딱 지금의 형식인 거죠.

그런 식으로 불친절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쪽의 영향이 있는 것 같고, 제가 인스타 스크롤하는 주범이기도 하니까 만드는 것도 제가 하고 보는 것도 제가 하고. 자극을 슉슉슉 주지 않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애초에 제가 누군가가 페이스 느린 거 보면 좀 답답해하고 그래요.


호원: <운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는 뮤직비디오의 문법이거나 호흡이었는데 이 작품은 뮤직비디오에서 더 치고 나가더라고요. 진짜 미디어 문법, 미디어 감수성을 애니메이션에 갖고 들어오는구나.

외주 일하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다 보니까 뮤직비디오마저도 질려가지고 아예 한 단계 더 이상하게 해 보자는 쪽으로 나아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아이돌도 등장하고 본격적인 곡이 두 곡 들어가잖아요. 오피셜 트레일러에는 본편에서는 안 나온 노래의 뒷부분이 있었어요. 음악은 둘 다 풀로 만들어 놓고 필요한 만큼씩만 썼던 거예요?

굳이 끝까지 들려줄 필요는 없었어요. <도청 도청> 노래는 만들면서 고라니는 어떤 사람일까 웃기게 가사를 써보자. 주인공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한데 크리피 하기도 하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초차원적인 존재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가사를 이상하게 썼던 것 같아요.


호원: 아까 손이 빠르다고 하셨는데 제작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어요?

중간에 다른 작업하면서 빠지는 기간들이 많이 있었는데, 3년 정도 이거를 했어요.


전작에 비하면 5배가량 길어졌잖아요. 처음부터 이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 계획이었나요?

제가 시리즈로 된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걸 하기 전에 ‘15분 이상의 내용을 내가 끌고 갈 수 있을까 만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해서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되게 짜증 많이 냈어요. ‘아~

짧게 할걸.’


어떤 게 그렇게 짜증이 났어요? 

애니메이팅은 빨리빨리 했는데, 편집을 하면서 신마다 동일하게 색깔이나 조명, 상황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호원: 엔딩 크레디트를 봤는데, 사운드 쪽 하고 보이스만 다른 분들이 오고 결국 혼자 다 했어요. 

남한테 맡겼는데 마음에 안 들게 나오는 걸 두려워하다 보니까 제가 다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제가 봤을 때 제가 한 게 제일 만족스러우니까. 저를 위해서 만든 작품이기도 했었고.


외곽선을 안 쓰는 스타일 추구하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좋아해요. 선 적게 쓰고 스케치하는 것도 귀찮아서 안 하고 바로 색 부어 버리면 편하니까 끝까지 가게 된 거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캐릭터 형태를 더 단순화시키는 거 같네요.

맞아요.


호원: 테두리 선 없이 2D 위주로 작업을 하던 사람이 3D를 만질 때 이질감을 느끼고 불편해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뒷부분에 갈 때까지 가보자 하고 과감하게 때려 넣다시피 한 건가 싶었어요.

마지막에는 진짜 ‘끝까지 가자’ 했어요. 이런 게 있으면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되겠다 해서 선화도 그렸고 3D 나오는 것도 환기시키는 게 필요할 때 새로운 기법을 쓰는 게 제일 쉬운 해결책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쓴 기법 중에 다음 작업에 사용해보고 싶은 것도 있나요?

3D는 계속 써보고 싶어요. 2D랑 이질감이 든다는 면에서 쓰고 싶기도 해요. 수작업 애니메이션은 조금 그리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동경은 하는데 도전을 못하는 입장이고요. 



호원: 해부학적인 드로잉도 직접 다 한 거예요?

드로잉 중 몇 개는 만화 그렸던 하림 친구가 그려줬어요. 백과사전 연필그림 같은 고라니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어요.


호원: 18세기 박물지에 나올듯한 그림부터 3D 모델링까지 이미지의 향연이 쫙 펼쳐지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나중에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면 정지시켜 놓고 ‘어 얘는 이렇게 그렸네?” 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서 진짜 열심히 그렸어요. 0.5초도 안 보여주고 지나가는 것도 의도적으로 넣어 봤어요.


속도감이 빠르긴 해요. <운석>에서도 주인공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필름으로 넘어가는 장면 있어요. 삶에서 어떤 장면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지나가요. 

제가 좀 성격도 급하고 그런 속도감이 있는 것 같아요. 과속운전 같은 거 안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표출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호원: 만든 입장에서 관객들한테 이 작품이 어떻게 읽히기를 원하는지도 궁금해요.

표현 방식이 과격한 것도 있는데 그런 거에 대해서 상처를 덜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 줄로 요약하면 ‘세상이 이런데 난 너무 슬퍼’ 이런 내용이라 ‘공감받으면 좋을 것 같다.’ 사실 관객을 생각하고 만들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저를 위해서 만들었어요.


호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GV 때는 따로 코멘트나 질문 나온 건 없었어요?

기억에 남았던 거는 “중간중간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이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감독: 이와이 슌지)에 대한 패러디가 보인다. 이 영화들을 좋아해서 넣으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에요. 거기에 “좋아하긴 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제네릭(generic) 한 작품들이어서 0.5초만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호원: 제일 고민스러웠던 장면이나 고민 고민하다가 빼버린 설정이 있었어요?

공연장 빌려서 고라니 퍼슈트 입고 촬영하려고 했는데, 제작비와 기간 때문에 포기했어요. 할걸.


전시 그리고 SNS


2023년 광화문의 갤러리에서 <내일의 인간>(갤러리도스 2023.9.6-9.11)에 <버섯 제국> 1, 2, 3으로  참여했어요.

아이러브드로잉이라는 아이들을 교육하기도 하고 전시도 하시는 단체에서 을지로오브에서 제가 전시했던 거(<세운상가 소녀의 사랑>  2022.10.22-11.6) 보고 같이 해보자고 연락 주셨어요. 아이러브드로잉의 예전 전에 아이들이 그린 바이러스가 지배한 동물들이 있었거든요. 어른 버전을 하겠대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내일의 인간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에 대한 전시인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했죠.



영상을 보러 갤러리까지 가려면 확실한 메리트가 있어야 될 텐데 하는 고민을 해요. 한 번 정연두 작가님이 멕시코에 이주한 한국인들에 대한 전시 했던 거를 우연히 봤는데, 진짜로 가야금 같은 거 뜯으면서 판소리 노래 부르는 게 영상이랑 같이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의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근데 너무 어렵다. 이 답을 찾는 거는 나중에 하자 일단 내가 하는 거나 잘하자’ 했습니다. 


을지로오브에서도 미리 만들어놓은 영상을 틀어 놓은 게 거의 90%였기 때문에 ‘내가 어떤 걸 제공해야지 사람들이 굳이 먼 걸음을 하면서 오게 할 수 있을까?’ 두 차례의 전시는 이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근데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파인아트를 계속했다면 갤러리에 그림 걸어놓는 전시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림을 그릴 때는 ‘내 그림을 어떻게 전시해야지’ 이런 생각들을 안 했었어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좋았던 것 같고 미래 계획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크고 나서 보니까 그림을 저장할 공간도 필요하고 차도 있어야 되고. 진짜 열심히 그려놓고 그림 버리시는 선배들도 많더라고요. 디지털 영상을 만들면 물질적인 쓰레기는 거의 안 남잖아요. 뭐가 남는다는 게 부럽기는 한데, 이런 단점도 있구나.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은 그렇게 크지 않은 건가요.

이런 말하기 죄송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걸 열심히 안 해도 작품을 좋아해 주시길래 이런 쪽으로 버릇 없어진 것 같아요. 


새로 들어간 작업은 어떤 거예요?

세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어요. 하나는 하림 친구랑 하고 있는 만화로 우주 배경으로 랍스터 타고 다니는 오리 카우보이가 주인공입니다.


두 번째 거는 좀 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것 같은데, 호랑이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데리고 다니는 여고생이 레이싱 게임을 해서 자기 소원을 이루려는 내용이에요. 중편 제작 지원이 내년에도 남아 있다면 노려볼 생각인데, 진짜 가볍게 대충대충 그리면서 채색도 덜해서 유튜브 같은 데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