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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 NOH Yukyung

<체험! 삶의 현장>(2022)의 성실한 일개미와 <무기력 어드벤쳐>(2023)의 자기에게 짓눌린 주인공은 존재의 의미를 묻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는 노유경 감독의 이야기다. 2014년 동기들과 졸업작품 <뽀삐 내가 잘못했어>(감독: 김민주, 노유경, 차사랑)를 만들고 곧바로 취직해서 10년 동안 줄기차게 일해 왔다. 2019년부터는 퇴근 후에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퇴사 후, 새 직장에 들어가기 전 두 달의 공백 기간에 주말마다 세 시간씩 <안녕이 아픈 천사들>의 작업 과정을 유튜브 라이브로 중계했다. 새로운 직장 생활 3개월 차인, 2023년 11월, 신작 영상 작업을 마무리하고 <앵무새 살리기(가제)>를 진행 중인 노유경 감독을 만났다.


현장 1 스튜디오

근황 토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막 퇴근하고 왔습니다. 퇴근 시간은 7시인데 브이씨알은 출퇴근 시간이 탄력적이어서 일을 하다 보면 8시에 가기도 하고 9시에 가기도 해요. 요즘 제가 좀 늦게 출근해서 늦게 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좀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작업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 워크 프로젝트의 애니메이션 R&D를 하고 있고요. <내 어머니 이야기>에도 잠깐잠깐씩 헬퍼로 들어가고 내일부터는 <건축가 A>의 클린업 가이드를 도와드릴 것 같아요.


8~9년을 모스테입스에 있다가 브이씨알웍스로 왔습니다.

모스테입스는 쿨한 개성이 있으면서도 플랫 한 맛이 있는 캐릭터였고 오래 있다 보니까 아트워크가 손에 익었었어요. 브이씨알은 잘하시는 분도 많고 스타일도 다양하고 캐릭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제가 더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작업이라서 처음에는 버겁다고 생각을 했는데, 점점 적응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부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니까

모스테입스에서는 전반적인 작업에 조금씩 참여했어요. 근데 여기서는 신을 받아와서 애니만 하고 피드백받고 클린업 하면 끝이라서 많은 파트에 관여할 때보다는 마음이 편하긴 해요.


작업 툴은 어때요? 개인 작업은 어도비 애니메이트를 주로 썼잖아요.

모스테입스에서도 애니메이트를 완전 메인으로 썼어요. 개인 작업도 거기에 영향을 받았어요. 여기서는 아무래도 tvp를 많이 쓰시더라고요. 근데 지금 메인으로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애니메이트가 필요하다 하셔서 좀 적용을 해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tvp도 쓰긴 하나요?

졸업 작품을 tvp로 했어요.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는 거 말고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첫 직장인 부즈도 모스스테입스도 강남 쪽에 있어서 걸어 다니다가 대학 졸업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지하철을 타게 됐는데, 처음에는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이북 리더기를 샀어요. 책 읽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책을 요즘 엄청 읽고 있어요.


어떤 책을 읽나요?

요즘에 제 주변의 핫이슈인 회복 탄력성 책을 읽었어요. 종이책을 읽을 때는 지식을 얻고 싶어서 정보 위주의 책을 읽었었는데, 집중력이 딸려서 완독률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기왕 산 거 재밌는 소설 위주로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현장 2 소셜미디어

6월부터 8월까지 두 달간 주말마다 유튜브 라이브를 했어요.

인어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라이브를 했어요. 제작 초기부터 한 건 아니고 고비를 넘어갈 때, 약간 후달릴 쯤에 라이브를 하면서 하면 작업을 의무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라이브를 하면 사람들이 채팅을 올리니까 작업하다가 채팅 보고 답변 하잖아요.

작업할 때도 유튜브 방송 틀어놓고 들으면서 작업을 하거든요. 클린업 같은 거는 타이밍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단순 노동이라서 유튜브 방송 보듯이 채팅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 거기에 대한 답하고,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떠들면서 작업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가끔가다 한 장씩' 그림 제작 과정 올리는 시리즈 첫 편은 짧게 배경 음악만 넣었다가 목소리 설명 넣고 아바타 넣고 점점 진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유튜브 라이브만 하려고 했었는데 콘텐츠도 올리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근데 막상 마땅한 콘텐츠가 없는 거예요. 제가 출근 브이로그를 찍을 수도 없고, 하는 게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다 보니까 이거라도 활용할까. 마침 숏폼도 한창 눈여겨보던 때였어요. 회사에서 숏폼을 노리던 때여서 저도 같이 연구를 했었는데, 타임랩스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올린 게 조회수가 되게 잘 나오는 거예요. ‘뭐야 이거는 나도 하는데' 그래서 했었었죠. 과거형이 되는 거는 요즘에 그림을 잘 안 그려서…


아바타는 사운드에 맞춰서 움직임을 주는 건가요?

어도비에 캐릭터 애니메이터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말이랑 제 카메라 모션에 맞춰서 캐릭터가 움직여요. 입도 소스를 마련해 두면 저의 입모양에 따라서 얘가 말을 하더라고요. 퇴근하자마자 이런 프로그램이 있구나 해서 바로 뚝딱뚝딱 만들어서 테스트해 보고 다음 날 적용했습니다.


애니메이트가 잘 활용하면 진짜 좋은 프로그램이라서 많이들 알면 좋겠다 해서 만들어 본 거예요.

모스테입스 5년 차 됐을 때 생존 플래시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부즈, <뿌까> 만드는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사수분한테 플래시를 3일을 배우고 그분이 떠나셨어요. 제가 프로그램을 오로지 생존을 하려고 배웠고 그걸로 돈도 벌고 일도 하고 결국엔 제 작품도 만들어서, 딱 이것만 알면 정말 활용을 많이 할 수 있다. 고급 기술은 아니고 간단하고 필요한 것만 집대성을 한 축약본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틱톡 계정은 어때요? 틱톡은 유튜브보다 확 빠르게 와닿나요?

확실히 유튜브보다는 붐업이 된다고 해야 되나 좀 더 반응도 많고 댓글 반응도 좋고 좀 과격하지만 피드백이 재밌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들인 공에 비해 너무 짧게 소비돼서. 저는 유튜브나 숏폼보다는 회사 다니고 텀이 긴 작품을 만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인 작업을 온라인에 게시했어요.

제가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그림을 일주일에 한 장도 안 그리는 거예요. 명색이 미대 졸업생인데(웃음) 근데 열망은 항상 있었어요. 그림을 워낙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리는 게 안 돼서 인스타그램을 개설해서 챌린지처럼 하루에 한 장이라도 아니면 못 해도 일주일에 한 장이라도 올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복잡한 그림도 아니었어요. 오브젝트 하나, 배경도 단색, 이런 식으로 해서 올리던 게 계기가 돼서 약간 집착할 정도로 할 때는 하루에 한 장씩 퇴근 후에 무조건 올릴 때도 있었죠.


그림은 보통 하루에 완성하나요.

제가 셰이프에 좀 신경을 많이 쓰고 텍스처는 심플한 편이라서 그림 그리는 시간도 1시간 반? 그렇게 길지가 않아요. 유튜브 들으면서 놀듯이 그림 그리고 이걸 과연 업로드해도 될 것인가 이런 고민도 없이 그냥 오늘은 이거다 하면서 올리고 다음 날을 위해 자고 이랬었죠.


그렇게 1~2년쯤 쌓인 걸 보고 전시 제안이 들어온 건가요?

맞아요. 음악 공연을 주로 하고 작은 전시도 겸 하는 아이다호라는 카페에서 ”그림이 좋으니 한번 합시다” 제안을 주셔서 처음 전시를 했어요. 그런 식으로 소소하게 같이 해요 제안을 주셔서 그래서 전시를 몇 번 했어요.

*<1004> @IDAHO (2022.10.06-11.06) <갓기천사> @ Gallery MOMENT SERIES (2023.08.05 - 08.19)


현장 3 개인 작업

무기력 어드벤쳐 (2023)

<무기력 어드벤쳐>는 모스테입스 다닐 때 만들었나요?

그렇습니다. 영상 완성은 2023년 2월에 했어요. 사운드를 성훈* 가 오래 공을 들여서 작업하느라고 배급을 6~7월쯤에 했습니다.

*정성훈, <뽀삐 내가 잘못했어>(2014) 음악과 <체험! 삶의 현장>과 <무기력 어드벤쳐>의 사운드를 담당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체험! 삶의 현장> 끝나고 잠깐 비었을 때 러프한 스케치를 하나 그렸는데, 엄청 커다란 발이 나를 밟고 있는 거예요. 마음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그런 것만 그리게 되더라고요. 이 이미지가 마음에 꽂혔어요. 제가 번아웃이 온 지 몇 년 됐는데, 진짜 이 악 물고 회사를 다녔어요.


<체험! 삶의 현장>을 만들면서 새로운 재미도 찾고 영화제도 여기저기 갔다 오고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영화를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무슨 내용으로 만들까 하다가 무기력한 거랑 내가 어쨌든 이겨냈다 이런 게 섞여서 만든 게 <무기력 어드벤쳐>였어요. 애니메이션 만들면서 절실히 느꼈던 게 ‘티끌 모아 태산’이었어요. 뻔한 말이긴 하지만 뭐든 작은 걸 시작하면 이게 불어나면서 뭔가 커다란 것으로 돌아온다. 이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체험! 삶의 현장> 그렇고 <무기력 어드벤쳐> 그렇고 둘 다 회사 다니면서 만든 거잖아요. 퇴근하고 조금씩, 주말에 조금씩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한 거예요?

평일에 회사 일을 하다가 주말에는 저 하고 싶은 대로 만들다 보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저는 애니를 할 때 거기에 빠져서 잘 움직이는지 계속 확인하는 걸 좋아해서 작업이 정말 재밌었어요. 그리고 밖에 나가는 보단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오히려 좋았습니다.


무기력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무기력해질까 봐 뭔가를 했던 게 아닌가.

제가 뭔가 안 하면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이 사회에서 필요한 부품이 되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어요. 진짜 누워만 있으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심한 거예요. 그게 고통스러워서 이것저것 이것저것 하게 돼요.

작품들이 인생철학 책 같아요. <무기력 어드벤쳐>에서 눈물방울을 모아서 바다를 만드는 거나 <체험! 삶의 현장>에서 흐르는 강물에서 순간의 유한성을 깨닫는 거나.

제가 골치 아픈 걸 싫어해서 굳이 사서 철학책을 보지는 않고요. 그냥 살면서 느낀 것을 모아서 전체적인 구성이나 주제를 생각해요. 살면서 몇 가지 이벤트로 인해 깨달은 토픽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거를 풀어내는 거죠. <무기력 어드벤처>는 번아웃, 작은 시작으로 벗어나는 방법 이런 거를 좀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림의 테마가 천사가 많았잖아요. 1004를 주제로 전시를 하기도 했었고. <무기력 어드벤쳐>에도 뱀도 나오고 영향이 좀 많이 남아 있나 싶은 데, 얼마나 교회를 다녔어요?

저 모태신앙이에요.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셨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셨어요. 유치원도 교회 유치원 다녔고 중학생 때까지는 매주 교회에 가서 주말 아침에 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제가 상징 같은 것도 좋아하거든요. 그냥 예쁜 오브제가 아니고 거기에 숨은 뜻이 있는 걸 좋아해서 애니메이션에도 아는 사람은 캐치할 수 있는 걸 많이 넣고 싶었어요.


아직 다니나요?

완전 변절했습니다. 중학생 때 전도사님이 별로여서 안 나가기 시작했고 '여태 다녔는데 왜 난 믿음이 안 생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종교에 대한 생각도 계속하고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 해서 관뒀죠. 아직도 그런 이미지는 좋아해요. 상징을 채용하기도 하고.


모태 신앙이었으면 엄마가 뭐라고 하지 않았나요?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셨죠. 지금은 안 다니지만 몇 년 전에 “아빠가 담배 끊으면 제가 교회 다니겠습니다” 해서 몇 개월 다녔어요.


담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체험! 삶의 현장>에서 주인공이 엄청나게 좌절을 했을 때 술 담배를 하잖아요. 근데 술 담배를 안 하지 않나요?

전혀 안 해요.


타락의 상징, 절망의 상징은 술, 담배였나요?

제일 보편적으로 알기 쉬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체험! 삶의 현장 (2022)

<체험! 삶의 현장>이 졸업하고서 처음으로 만든 작업이잖아요. 번아웃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었나요?

그때는 번아웃을 이겨내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제가 부즈 다닐 때 어떤 대리님께서 앵무새를 키우셨는데, 그의 자손들을 저한테 분양을 해 주셨어요. 두 마리와 알콩달콩 살다가 한 마리가 갑작스럽게 아팠어요. 한 반년을 같이 출근을 해서 1시간마다 약을 먹일 정도며 간호했는데, 3월쯤 봄 되기 전에 먼저 갔어요.


저 대학생 때 외할머니랑 외삼촌이 동시에 암에 걸리셔서 저희 집에서 같이 살면서 엄마가 간병했는데, 정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그때는 죽음의 의미가 잘 안 와닿았어요. 단지 슬프고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무뎌지는 정도였었는데. 정말 건강하던 코코가 몇 달 아프다가 제 옆에서 밥을 먹다가 토하면서 죽었거든요. 너무 충격이 커서 출근해서도 일을 못 했어요. ‘과연 사후 세계가 있을까’ ‘이 친구는 어딜 갔을까?’ 일을 안 하고 구글링만 했어요. 거기에서부터 살고 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한 고민이랑 잡생각에 몰두해서 죽음, 삶, 인생에 대한 고민을 엄청 많이 했어요.


삐삐가 남아있어서 그 당시에는 좌절을 할 수가 없었어요. 생각을 계속하면서 저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한 게 태어나고 죽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이 거대한 무력감을 어떻게 이겨내 버틸 수 있을까 하다가 어차피 사는 거 죽을 때까지 긍정적으로 사는 게 최선의 선택이겠구나.


졸업하고 나서 항상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긴 했어요. 근데 회사가 너무 바쁘고 저는 사회 초년생이니까 못 만들고 있었는데 이런 전환점 같은 큰 깨달음을 얻으니까 이거다 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애니메이션에 착수한 건 언제쯤이었어요?

코코가 2019년에 죽었거든요. 방황을 하다가 2021년 봄쯤에 콘티부터 시작해서 한 1년 정도 만들었어요.


작업에서 물에 대한 모티브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절없이 흐르잖아요. 내가 좋은 순간에 멈추고 싶다 해도 멈출 수가 없는 게 강이나 흐르는 물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체험! 삶의 현장>에도 배치를 하고 … <무기력 어드벤처>에도 물 같은 게 나와요. 생명력과도 관련된 모티브라서 물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체험! 삶의 현장> 제목은 유행했던 밈에서 나왔다고 했어요.

인터넷에 웃긴 글이 되게 많잖아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웃긴 거 위주로 보기도 하고 트위터에서 알티되는 거 보고 “현장 삶의 체험”이었나 말 순서 바꾸는 말장난을 좋아해서 머리에 박혀 있었어요. 제목을 진지하게 짓는 편이 아니에요. 진지한 걸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시시콜콜하게 웃긴 걸 좋아해요. 그래서 <체험! 삶의 현장>도 말장난으로 시작했어요


<무기력 어드벤쳐>는 제목이 처음부터 나왔어요?

마지막까지는 ‘손가락 세우기’였어요. 제목 짓는데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었죠. 영어로는 ‘One Little Finger’거든요. 모스테입스에서 동요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그중에 ‘원 리틀 핑거’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걸 한 100번 듣다 보니까…


철학은 좋아하는데 ‘이렇게 살아야 돼’ 이런 건 별로 안 좋아해요. ‘티끌 모아 태산’은 너무 교훈 주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GV에서 뭔가 멋있는 이름을 짓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작품 제작 후반쯤에 <디지몬 어드벤처>가 갑자기 생각났어요. 멋있는데 웃긴 뉘앙스를 주고 싶어서 <무기력 어드벤쳐>라고.


인스타그램 초기 그림을 보면 빙산과 배가 떠 있는 보랏빛 바다가 있어요. 지금 작업하는 작업과 느낌이 비슷해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 하고 모티브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오래 갖고 있던 이미지다 있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그림 한 장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아트워크 훈련이라고 먼 훗날 제작할 애니메이션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쌓는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있어요.


안녕이 아픈 천사들 (2024 공개 예정)

인어와 미라가 주인 공인 작품은 제목을 정했나요?

<안녕이 아픈 천사들>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챗GPT가 지어 줬습니다. 처음에는 ‘빛과 그림자’였습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한 70% 정도 진행됐을 때 백수가 돼서 지원을 넣어봤어요. 탈락 심사평에 제목이 안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챗GPT에 “만남과 이별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한 20개 지어줘” 하니까 대부분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고 <안녕이 아픈 천사들>이 분위기 있어 보였어요.


<안녕이 아픈 천사들>의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어 이미지는 2014년부터 스케치를 계속했던 거예요. 배에 떠밀려온 미라도 한 10년 전부터 연습장에 그려뒀던 건데, 인어가 먼저 친구를 떠나보낸 설정이에요.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마련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닮은 애를 데리고 와서 어리석은 짓을 했구나를 깨닫고 첫 번째 친구의 돌무덤 옆에 새로운 무덤 돌을 하나 쌓는 걸로 끝납니다.

언제부터 작업에 돌입했나요?

제가 <무기력 어드벤쳐> 만들 때 남은 한 마리 앵무새 마저 죽었어요. 이별이 저한테 첫 번째보다 더 셌어요. 첫 번째는 남은 삐삐를 위해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이제 진짜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거예요. 코코가 가고 나서 삐삐랑 저만 남아 있는 기분이 계속 들었는데, 이 친구마저 가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어떻게 또 이겨내야 되잖아요. 이별을 어떻게 해야 좋게 볼 수 있을까 생각을 했죠.


예전부터 북극, 얼음산이라든가 외로운 느낌 그리고 누군가를 케어해 주는 그런 설정은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될지 답이 안 나와서 계속 묵혀놓고 있었거든요. 이별에 대한 주제로 버무려 봐야겠다 싶었어요. <무기력 어드벤처>를 하던 중에 다음 작업에 대한 생각은 했었고 들어간 거는 작년 말이에요.


뽀삐 내가 잘못했어 (2014)

졸업 작품 <뽀삐 내가 잘못했어>는 세 사람이 같이 만들었잖아요. 팀원 중에 누군가가 강아지를 키웠나요?

아니요. 그때는 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서 한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친구들이랑 어떤 얘기할까 하다가 횡 스크롤이 하고 싶었어요. 게임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걸 하고 싶어서 아이가 가출한 강아지를 찾는 꿈속의 여행을 했어요.


연출 의도가 “잘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저 그거 너무 창피해요.


왜요?

너무 거만해서.


“나 이렇게 애니메이션 잘해" 이런 느낌이었어요?

네, 그때는 제가 애니메이션 계의 슈퍼 루키가 될 줄 알고 자신만만했었죠. 지금은…


아니에요?

많이 많이 죽었습니다. (웃음)


학교에서 말리는 tvp로 작업했어요.

1학년, 2학년 때 종이 작화 하느라 정말 고생을 해서 이건 안 되겠다 해서 tvp로 진행을 했어요. 성훈 씨가 또 신문물, 최첨단을 달리는 프로그램 이런 걸 되게 좋아해요. 그때도 저한테 tvp를 알려줘서 덕분에 좋은 결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시스루 치마를 입고 있어요. 다리 움직임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죠 치마로 가리면 잘 안 보이니까.


나의 이 멋진 움직임을 보여줘야

그렇죠. 그렇죠. 다리 움직이는 걸 보셔야 되는데. (웃음)

바지는 안 어울리고 치마가 보조적인 움직임이 있으니까 좀 더 예쁘겠다 싶었어요.


졸업하자마자 부즈에서 1년 반을 보내고 모스테입스에서 9년 해서 훌쩍 10년이 지난 거군요.

2014년에 취업을 했는데, 벌써 2024년이 와버려서 약간의 현타가 ‘나 뭐 했지?’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애니메이션 회사 세 개를 경험했고 단편 작품도 두 편 만들었고 지금 세 번째 작업 중 아닙니까?

영상은 다 마감했어요. 세 번째죠. 성훈 씨한테 또 부탁을 할 차례가 왔고 또 다른 거를 만들고 싶어서 콘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제목이 나왔어요?

가제가 <앵무새 살리기>입니다. 앵무새들 한창 아플 때 네이버에 검색해 보잖아요. 검색창에 앵무새를 치면 항상 앵무새 죽이기가 뜨는 거예요. 그 책 제목이. 너무 짜증 나는 거예요. 앵무새를 왜 죽여. 거기에 힌트를 얻어서 앵무새 살리기로.

삐삐까지 보내고 나서 제 스스로는 새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아직도 꿈에 새가 나와요. 항상 나오는 새의 펫샵에 가야 한다는 꿈을 계속 꿔요. 모스테입스 다닐 때 주변에 미용실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새를 분양하는 거예요. 가게에서 키우던 새가 새끼를 낳았으니 한 2만 원만 내고 데려가십시오. 이렇게 써붙여놨더라고요. 삐삐 보낸 지 한 세 달 정도 됐는데 그걸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지끈했어요. ‘내가 데려다 키워야겠다 근데 그러면 이 고생을 되풀이하겠지. 지금 주머니에 2만 원이 있나. 은행에서 돈을 빼와야 되나’ 그때 옆에서 성훈 씨가 “지금 당장 저 새를 키울 이유가 전혀 없다. 니 마음이 안정되면 해라”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마음속에 응어리진 죄책감, 책임감 같은 게 확 풀어져서 한 달 정도는 걱정이라는 걸 안 하면서 살았어요. 그 이벤트가 기억에 남아서 ‘과연 무엇 때문에 내가 마음이 편해졌던 것인가’ 고찰하고 싶어서 단편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특별히 새가 좋아했나요?

새를 좋아하긴 했어요. 애기 때 엄마랑 같이 놀 때도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면 엄마가 항상 거기다 부리랑 날개를 그려주셔서 엉망징창 새를 그려주셨었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앵무새 키우면서 유대감이 엄청나게 쌓이면서 '새는 정말 짱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새에 대한 집착을 하기 시작하고(웃음) 작품에도 새가 나오게 됐죠. 새를 너무 좋아해요. 겉으로 보면 쉐이프가 단단하고 강해 보이는데 손에 쥐면 너무 부드럽고 가녀려요.


애니메이션을 10년 정도 했더니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나요?

저 스스로를 판단을 하자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이상적인 움직임 같은 게 있어요?

제가 형태는 재밌는데 플랫 한 앵글을 좋아해요. 군더더기 없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브이씨알에서 일하다 보니까 앵글이라든가 움직임이라든가 구체적인데, 열심히 해서 얻어가는 게 있길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 2023년 11월 22일 @ 서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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