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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PARK Jaebeom

Eyes and Horns 원화 전시@Animafest Zagreb

홍익대 애니메이션학과 졸업 작품 <더미: 노 웨이 아웃>(2015. 공동감독: 김은성, 이두희) 이후 <빅 피쉬>(2017, 공동감독: 김정석), <스네일 맨>(2019),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2021, 공동감독: 이윤지)까지 줄기차게 스톱모션 작품을 발표하고 현재는 장편 <엄마의 땅> 후반 작업 중인 박재범 감독을 만났다. 졸업 후 3년은 광주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터로 일하며 스튜디오 요나를 창립했다. 2018년에는 막 부산으로 이전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광주 부산을 왕복하며 <스네일 맨>과 <엄마의 땅>은 물론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까지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만드는 박재범”은 바로 그 스튜디오에서 온라인에 접속했다. 전날 서울에서 녹음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이틀 뒤 벡스코에서 열린다는 넥스트콘텐츠페어에서 선보일 스튜디오 요나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편 하러 온 부산


어제까지 녹음을 하셨다고 그랬는데, 성우 녹음이었나요. 아니면 폴리 작업이었나요?

<엄마의 땅> 1차 성우 녹음을 했어요.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까 하루 만에 다 소화가 안 돼서 2회 차로 나눠서 하거든요. 어제 1회 차였고. 11월 말에 2회 차가 한 번 더 예정돼 있어요. 어제는 주인공 그리샤와 주연 일부 그리고 다른 조연들 일부 진행을 했어요. 배우분들 스케줄에 따라서 일정을 많이 나눴어요.


서울에 오셔서 녹음하신 거예요?

네. 꾸준히 함께 작업해왔던 닥터 에비뉴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녹음만 하고 바로 내려왔어요.


촬영은 완전히 끝났나요?

스톱모션 작업이 세트나 장비들이 부피가 큰데 계속 아카데미에 둘 수도 없어서 딱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을 다 끝내고 더 이상 촬영할 수 없게 만든 일부는 폐기해버렸어요.


<빅 피쉬>나 <스네일 맨> 같은 경우에는 입을 굳이 맞출 필요가 없는 거였잖아요 <빅 피쉬>는 대사가 한 마디인데, 입이 나오지 않았고 <스네일 맨>도 할아버지 수염에 입이 가려져 있거나 대사 하는 캐릭터를 원거리에 잡는다거나 하는 연출의 묘를 활용하셨는데 장편은 립싱크를 어떻게 표현하셨을지 궁금한데요.

스토모션은 촬영본 수정이 어려워서 애초에 가녹음 사운드 클립을 밑에 깔고 작업 했어요.

캐릭터별로 3D 프린팅 한 입 모양들이 아, 에, 이, 오, 우가 다 있거든요. 여기에 감정을 표현한 눈썹 모양, 입 모양을 결합해서 경우의 수를 만드는 거죠.


대사를 처음에 정해놓은 대로 해야 해서 녹음 대본을 다시 쓰진 않으셨겠네요.

8~90%는 그랬던 것 같고 현장에서 바꾼 경우도 있었어요. 대사가 안 정해진 경우도 있었어요. 진짜 모르겠는 대사들은 비워놓고 감정만 살려서 간 다음에 입 모양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대사 호흡에 맞추는 형식으로 한 것도 몇 컷 있어요.

아카데미 들어가셔서 2년 하고 장편 연구 과정을 이어서 하신 거예요?

2018년에 들어와서 정규 과정 1년 하고 2019년 5월부터 지금까지 장편연구과정을 하고 있어요.


<엄마의 땅>은 2019년 초에 기획을 해서 2021년 11월 현재 촬영을 마치고 녹음을 한 건가요?

맞아요. 원래는 중편 정도로 생각을 하다가 글을 써봤는데, 이게 줄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장편을 만들게 됐어요. 사실 장편 하고 싶어서 아카데미에 들어왔거든요. <스네일 맨> 후반 작업할 때 기획을 시작해서 계속 시나리오로 발전을 시켰어요.


<스네일 맨>이 20분이 넘는 작품인데, 아카데미 들어갈 때는 이 작품을 장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나요?

<스네일 맨>은 처음부터 단편 기획이었어요. 딱히 장편 이야기 소재는 없었어요. 끝날 때쯤이면 그때에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빅 피쉬>할 때도 마무리할 때쯤에 하고 싶은 것들이 엄청 많이 생기더라고요. 분명히 아카데미가 끝날 때도 그런 게 생기지 않을까 했어요. 조금 막연할 수도 있는데, 신기하게 <스네일 맨> 마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스톱모션을 시작한 조치원


홍익대 졸업 작품이 <더미: 노 웨이 아웃>이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어요. 크레디트에 프로덕트디자인과가 나오더라고요.

애니메이션 전공 맞는데, 프로덕트디자인과의 도움을 받아서 거기 땡스 투에다가 적어놨어요. 조형대가 애니메이션, 디지털미디어, 영화, 프로덕트, 커뮤니케이션 다섯 개 전공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1학년 때는 서로 다 아는 사이고 2학년부터 전공이 나눠지는데, 친한 친구가 프로덕트디자인과여서 드릴, 샌딩기 3D 프린터 같은 장비나 아이소핑크 같은 재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더미>를 스톱모션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되게 빨리 했던 것 같은데, 학교에 들어갈 때는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졸업 작품 할 때 처음으로 스톱모션을 했죠. 뭔가에 이끌리듯이 했던 것 같아요. 학부시절 2D, 3D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 공통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이 컴퓨터 모니터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스톱모션 작업은 우리가 만든 세상이 모니터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손을 뻗으면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성취감이 있어요!


졸업 작품 할 때 돼서 뒤를 돌아보잖아요. 저는 당연히 2D, 그림 그릴 줄 알고 준비했었는데, 이때까지 했던 작업들, 과제들을 보니까 죄다 영상인 거예요. 친한 형들이랑 말도 안 되는 영상 찍고 영화 찍고. 카메라에 비춰진 걸 보는 게 더 익숙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라이트가 묻어 있는 것들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러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광고를 하나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거였던 것 같다 해서 스톱모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무작정 찾아다녔어요.


무슨 광고였나요?

<The Bear & The Hare>라고 영국의 블링크잉크 스튜디오에서 만든 존 루이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광고였는데, 피사체는 실제로 다 그린 것들을 레이저 커팅해서 만들었어요. 그때까지 스톱모션은 이런 거, 2D는 이런 거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아 이게 경계가 없구나. 믹스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표현적으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겠다 생각돼서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메이킹 영상을 봤는데, 작업하는 아티스트 분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이두희, 김은성 감독님 하고는 행복하게 작업하셨나요?

<더미>는 3월에 들어가서 그해 12월에 끝났어요. 재밌게 작업했는데,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다들 처음 작품 하니까 사소한 일로 큰 소리 내면서 부딪칠 때도 있었지만 엄청 지지해줬어요.


‘더미’를 소재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요?

더미는 제작하기 1년 전에 구글로 이미지를 찾아보다가 더미 인형 이미지를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되게 사람 같이 느껴졌다 해야 되나. 뭔가 애환이 느껴져서 얘들도 토이스토리처럼 사람들 다 퇴근하고 나면 뭔가 얘들만의 스토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글을 썼어요.

그때 보셨던 이미지는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의 더미겠군요.

맞아요.

더미 충돌 테스트를 하는 공간과 사물 디자인을 보면은 투박하면서도 집에서 볼 수 있는 드라이버나 나사 같은 공구, 이사할 때 쓰는 파란색 플라스틱 포장 박스 같은 실제감, 생활감이 보여요.

사실 디자인을 하나도 안 했어요. 구글링 해서 좋아하는 브랜드나 이런 공구들을 찾아서 후배들이랑 같이 만들었거든요. 다들 처음 스톱모션을 하다 보니까 아기들이 가지고 노는 아이클레이 가지고 누가 봐도 이건 드릴이구나 느껴지게끔 사진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자. 카메라에 담겼을 때는 디테일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을 거다 해서 전체적으로 투박하게 했어요. 디자인하는 시간이 많이 세이브됐고 재미있게 제작했어요.


스톱모션 작업이 처음이었으면 시행착오가 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엄청 많았죠. 다행히 그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수업이 있었어요. 3학년 수업이었는데 4학년인 저희가 찾아가서 졸업해야 되니까 좀 듣게 해달라고 했죠. 졸업 작품 하면서 그 수업을 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그냥 한 번 실습해보는 건데. 저희는 졸업 작품이니까 교수님 집에 가야 되는데 막 계속 붙잡고 이거 어떻게 하냐고 여쭤보고.



동료를 만난 광주


졸업하시고 바로 중앙애니메이션스튜디오로 취직을 하셨다고요.

2015년에 스톱모션 애니메이터로 시작해서 팀장까지 꽉 채워서 3년 정도 있다가 2018년 초에 나왔어요.


어떤 작품의 작업을 하셨어요?

아이들이 보는 TV시리즈 <갤럭시 키즈>랑 <쉿! 내 친구는 빅파이브> 작업을 했어요.


<빅 피쉬>(2009)는 퇴근 후랑 주말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하신 거라면서요.

저는 원래 회사를 갈 생각이 아니고 잠깐 경험을 했다가 다시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어떻게 하면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대표님께서 직원들에게 스튜디오에서 개인 작업을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를 흘리셨어요. 뭘 하고 싶다 하면은 최대한 지원을 해주겠다 하셨어요. 그럼 해야지! 가서 <빅 피쉬> 기획 발표를 하고 그때부터 진행을 했어요.


요나 빅 피쉬를 찾아나섰다는 <빅 피쉬> 제작기도 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업도 그렇지만 책 만드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책은 아카데미 정규 과정을 마치고 장편 기획 중에 만들었어요. <빅 피쉬> 기획할 때 일단은 단편을 완성하는 게 목표였고 그다음 목표가 도서 제작이었어요. 애니메이션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는 생각보다 책으로 애니메이션을 많이 배웠거든요. 학교에서 책 쌓아놓고 보고 그랬어요. 그래서 작품을 만들면 꼭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누군가는 그걸 볼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 기획을 했는데, 실제로 책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당시에는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도 되게 버거웠거든요. 끝나고 사실 좀 쉬고 싶었는데, <빅 피쉬>로 상금이 생겼어요. 그게 잘하면 딱 책 한 권을 만들 수도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어요.


그러면 제작진 인터뷰는 책 제작이 결정된 이후에 진행하신 거예요?

네.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겠지만 만들면서 아쉬워서 메이킹이랑 기록을 좀 남겨 놨어요. 상금이 생기고 나서는 인터뷰를 시작했죠.


제작진들에게도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책이 작품을 만들고 3년 정도 뒤에 완성되다 보니까 제가 책을 직접 전달해 줄 수 있는 분들이 몇 분 없었어요. 연락도 뜸해진 분도 있고 다들 생업에 바쁘다 보니까 택배로 보내드렸죠. 다들 책 받고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그때 생각난다”, “선물 받은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시고 해서 좋았어요. 이게 약간 추억 앨범처럼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바다 다음에 사막


캐릭터디자이너가 방글라데시에서 오셨다는 오뿌라는 분이었잖아요. <빅 피쉬>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지만 “특정 국가나 문화에 종속된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한다며 캐릭터를 디자인했다고 했고요. 이 캐릭터의 생김새와 움직이는 방식이 <스네일 맨>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 <빅 피쉬>와 <스네일 맨>은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었어요. <빅 피쉬> 프로젝트를 마치고 세월호에 대한 마음의 짐을 쉽게 내려놓고 있는 스스로를 경계했던 거 같아요. <빅 피쉬> 이후의 저 자신과 동시에 폭풍우 속으로 들어간 요나의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던 당시에, 회사 앞을 지나다 폐지 줍는 노인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산더미 같은 폐지를 리어카에 쌓아서 오르막을 오르고 계셨는데, 한쪽 팔이 없으신 불편함이 있으신데도 온 몸으로 리어카를 끄시는 거에요. 그 모습이 굉장히 의지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때 사막을 지나는 달팽이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바다와 사막, 반대 개념으로 상황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단추 눈 같은 스타일의 제작 방식은 계속 가져갔어요.


배경이나 캐릭터의 성별은 거울처럼 반대되지만 일관적인 캐릭터의 스타일이 연결 고리가 되는 거군요. 이전 작품의 캐릭터 애니메이팅과 촬영 노하우도 쓸 수 있었겠어요.

맞아요. 화면 비도 2.35:1이고 자연이 많이 나오고 24 프레임 기반으로 한다는 부분은 똑같아요. 전체적인 배경이나 상황만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배경을 사막으로 주인공을 아랍인으로 선택한 건 의외였어요. 어떻게 중동을 무대로 자식과 아버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나요?

<빅 피쉬>가 성경의 요나서, 요나가 빅 피쉬에 들어간 이야기잖아요. <스네일 맨>은 룻기에 나오는 룻의 가족들이 사막을 횡단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했던 거예요. 성경의 이야기가 배경인데, 다들 지금 중동의 상황들을 대입을 시키시더라고요.


배경을 사막으로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 사막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성경이나 아랍 문화를 잘 알지는 못해요. 롯의 아들(모압)과 손자(아람) 이름은 그쪽 지역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의 옛날 지명이에요. 경계가 나눠졌을 뿐이지 옆에 이렇게 묶여 있는 가족 같잖아요. 그래서 이름을 따왔어요.

21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아니면 장편 대비해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요?

그때는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라고. 딱히 대사도 없고 그냥 상황 묘사랑 풍경들만 적어놨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분량이 정확하게 가늠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사실 15분 안에 끊고 싶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20분이 넘어갔어요. 그런데, 하나를 빼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냥 한번 다 쏟아내 보고 싶었어요.


사실 주변에서 다들 말렸죠. 아카데미에서는 크리틱이 필수니까. 그래 작품 의도는 좋고 응원하는데, 꼭 여기서 이렇게 만들어야겠냐. 그런데 나가면 어디서 만들 기회가 있나요. 그냥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나중에는 얘는 말해도 안 먹히는구나 하고 아무 말도 안 하시더라고요.


<스네일 맨>은 9월에 촬영 들어가서 12월 말쯤에 끝났어요. 밤새 라이트는 켜져 있고 같이 작업하는 분들이 서로 바통 터치해가면서 한 명이 끝나면 어디까지 했다 하고 자고 이어서 한 명이 촬영하고, 이렇게 4개월 촬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지 않나...


같이 작업할 스태프는 어떻게 모집하셨어요?

우선은 아카데미 동기인 촬영 감독과 PD가 메인 스탭이 됐고 그다음에 <빅 피쉬>를 같이 했던 스탭, 중앙에서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이 구성됐고 부산에 있는 대학생 친구들 몇 명이 모였어요. 간절하게 찾았더니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들을 나타나서 완성할 수 있었어요.


<스네일 맨>에도 크레디트에 외국인 스탭이 있어요. 페르시아어 자문도 했죠

사하르도 중앙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예요. 이란 친구고 애니메이터로 참여해서 주말에 광주에서 부산 왔다 갔다 하면서 촬영하고 가고 강행군을 했아요.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다들 배경이 중동이다 하니까 아무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해서 사하르를 통해서 아랍 문화권 친구들을 한테 작품 기획이랑 아트웍이랑 촬영분 일부도 계속 보여줬거든요. 혹시나 이걸 봤을 때 이상한 점이 있느냐. 이질감이 드는 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문화적으로도 안 되거나. 내가 실수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계속 물어보고 어른들한테도 물어봐달라고 그랬었죠. 부모님 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작품 속에 의식 같이 보이는 행위도 있는데,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느냐 밥을 먹을 때나 예의범절에 걸리는 게 있냐 없냐. 이런 거를 체크를 많이 했어요. 녹음할 때도 도움받고.


판타지적인 면으로는 달팽이가 등장하잖아요. 그 부분도 자문을 구하신 건가요?

사막의 달팽이는 처음의 기획이었어요. 달팽이가 뜨거운 사막을 걸어간다는 게 아이러니하잖아요. 제가 조사를 했는데, 실제로 사막에 달팽이가 있더라고요. 하얀 등껍질에 안에 달팽이는 새까맣게 생겼어요.

그래서 수레도 하얗게 만들고 할아버지 피부도 시커먼 색이 되었어요.


사막의 지형이나 캐릭터들의 옷에 종이를 쓰셨어요. 무게 때문인가요? 사막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인가요?

제일 중요한 거는 종이가 갖고 있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건조하고 바삭바삭거리고 그런데 또 유연함도 있고 카메라에 비쳤을 때 종이에 빛이 투과하는 느낌도 너무 좋았어요. <스네일 맨>을 처음 기획했을 때 봤던 폐지를 주어서 산처럼 쌓아서 가시던 남성분, 그런 것들이 다 연결이 돼 있는 것 같아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종이가 제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있어요.


재료는 어디에서 구했나요?

부산에 한지 필방이 있어요. 문구사에는 한지들이 몇 가지만 정해져 있어요. 서로 잘 어울리는 종이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녔어요. 부산에서 거의 다 찾았던 것 같아요.


길에서 만든 방구석 이야기


그다음에는 굉장히 다른 분위기로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을 하셨어요. 공동 연출한 이윤지 감독은 <빅 피쉬> 때부터 같이 작업한 스태프였죠.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스네일 맨> 끝내고 2019년 5월부터 <엄마의 땅>을 시작했어요. 진행하고 있는데 되게 힘든 일이 많았어요. 장편이 처음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달 정도 작업이 스톱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2020년도에는 코로나도 있었고 제작비도 다 떨어지고 힘든 일이 겹쳐서 진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던 땐데,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코로나19 관련해서 창작자 지원 사업(일자리 연계형 온라인·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 지원)이 있었어요. 하자 하자. 이거를 만들고 <엄마의 땅>을 다시 돌릴 수 있는 원동력으로 쓰자.


기획을 진짜 가볍고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걸로 해서 방 한 칸, 등장인물 한 명 그리고 이야기도 어렵게 생각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있는 겪고 있는 것들로. <빅 피쉬> 이후에 작업을 같이 하고 있는 이윤지 감독님이 광주랑 부산을 왔다 갔다 하는데, 이 아까운 시간에 기획을 하자 그래서 서로 아이디어를 던지면서 얘기하다가 마감 전날에 써냈는데, 된 거예요.

최대 지원금이 990만 원인데, 큰 도움이 됐나요.

엄청 큰 도움이 됐어요. 작품을 만들 때 쓰다 남은 재료들 혹은 자투리를 이용해서 최대한 재료비를 아끼고 어차피 저희가 작업하려고 모여 있으니까 시간 남을 때 빨리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서 만들었어요. 기획까지 합쳐서 한 달 정도밖에 안 걸린 것 같아요. 뭔가를 그렇게 빨리 만든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장편 작업이 너무 힘들었는데, 라이트 한 걸 하니까 우리끼리 만들면서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즐겁게 하고 기한에 맞춰서 냈는데, 우수작으로 선정돼서 상금 받아서 장편 작업하는 데 또 보탤 수 있었어요.


사막 다음에 시베리아


<엄마의 땅>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시베리아에 있는 소수민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상의 예이츠 부족 마을에 사는 소녀, 그리샤가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샤먼의 말을 믿고 붉은 곰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곰 사냥꾼 일행이랑 마주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인데, 바리데기 설화랑 비슷한 이야기 구조예요. 시베리아 툰드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삶의 자세 같은 것이 깃들어 있는 이야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시베리아는 <스네일 맨> 사막의 반작용으로 떠오른 건가요?

맞아요. 이상하게 작품을 하면 그다음 작품에서 아예 반대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예전에 <최후의 툰드라>라는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봤던 게 생각이 나서 다시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봤을 때보다 더 좋고 이야기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은 건강하신데, 제가 어릴 때 아픈 엄마를 보고 느꼈던 무서움, 두려움 그런 기억이 있거든요. 이걸 이야기로 만들어봐야지 하고 찾다가 <최후의 툰드라>를 다시 보게 됐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확장시켰어요.

이번에는 캐릭터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빅 피쉬>와 <스네일 맨>으로 가족 상실에 관한 이야기는 완결 지었으니 완전히 다르게 가기로 한 건가요?

이전 캐릭터 디자인으로 하면서 좀 불편한 것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로는 대사 한마디로 하면 되는 것을 손짓 발짓으로 해야 하는 게 비경제적일 수도 있고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는 거였고 두 번째로는 인물의 표현이 제한된다는 거였어요. 감정이 크게 느껴지는 게 눈인 것 같아서 눈이랑 눈썹 부분을 바꾸니까 생김새가 달라진 것 같아요.


목각인형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떤 재료로 만든 건가요.

옷은 진짜 털이고 얼굴은 3D 프린팅 해서 레진으로 뽑아서 저희가 일일이 도색해서 만들었어요.


배경이 아주 광대할 것 같고 샤먼의 퍼포먼스도 화려합니다. <엄마의 땅>에서 특별히 자신 있거나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요?

매번 느끼는데, 자연을 표현하는 게 진짜 어렵더라고요. 저만 어려운 게 아니고 여러 파트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어려워했어요. 안 가봤으니까. 저는 여기는 어떻다 하고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말씀드려도 작업자들이 직접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안 나오더라고요.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어요. 사실 지금도 힘들어요. CG를 하고 있는데, 딱 봤을 때 이게 세트나 미니어처가 아니고 큰 공간이구나 느껴져야 되잖아요. 그거를 만드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키 배경이라고 할 만한 로케이션이 얼마큼 나오나요?

로케이션은 마을, 집 안. 낭떠러지가 있는 언덕 그다음에 숲, 강이 다 이긴 한데, 이걸 일일이 만들어야 되니까 생각보다 만들 게 되게 많았어요. 머리를 썼던 거는 각도별로 약간 모양을 다르게 만들어서 그때그때마다 돌렸었어요. 좀 다양한 공간인 것처럼 보이게 레이아웃을 계속 다르게 했어요. 산이나 언덕은 어떻게 레이아웃 시키느냐에 따라서 거리감이나 공간 자체가 달라지고 거기에 조명을 어떻게 때리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그런 걸로 같은 세트인데 다른 공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세트들을 철거를 하셨는데, 그래도 이것만은 하고 남긴 게 있나요?

동굴 세트를 다 남겼는데, 놔둘 공간이 없어서 어머니 지인분 농장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어요.


<스네일 맨> 하고 <엄마의 딸>은 단독 연출인데, 다른 작업들은 다 공동 연출을 하셨어요. 공동 연출을 하는 이유, 연출 파트너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파트너를 선택하는 기준은 이제는 확실히 있어요. 작품마다 경우가 달라요. 그때 당시에는 우연도 있었고요. 저는 감독이라는 직책 자체에는 크게 욕심이 없었어요. 그때 이런 역할을 하고 이런 걸 하면 같이 감독이다 이렇게 시작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근데 작품을 계속하다 보니 제가 더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더 강해졌어요. 그래서 단독 연출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더미>의 이두희, 김은성 감독님은 두 분 다 스톱모션에 관심이 있고 각본을 마음에 들어 한 경우인가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졸업을 해야 되는데, 저는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고 혼자는 무섭고 힘들고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때 시나리오도 없는데, 제가 같이 하자 해서 팀이 이루어졌어요. 두희는 그림을 잘 그리고 아는 후배들도 많았고 은성이 형은 영화 쪽 아시는 분도 많아서 장비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연출, 은성이 형은 촬영, 두희는 아트워크, 각자 잘 하는 걸 맡은 거죠.

<빅 피쉬> 같은 경우는 초기에 정석이 형과 스토리보드까지 기획을 같이 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회사에 가서 또 만나게 된 거예요.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는 일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은 이윤지 감독님하고 의기투합한 거예요. 대상이 아무래도 30대 여성이니까 이윤지 감독님을 투영하다시피 했어요. 공동 연출을 할 때는 제가 그 당시에 제일 가지지 못한 거를 가진 사람과 하는 것 같아요.


장편 다음에 중편


<짱뚱이네 똥 황토>라는 제목으로 영진위 제작지원을 받으셨는데, 어떤 작품인가요?

아카데미 나가서 만들 첫 작품일 것 같아요. 이정호 PD님이 아카데미 교수님으로 계시는데, 예전부터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계셨어요. 이걸 스톱모션으로 한번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셨는데, 제가 심적인 여유가 없어서 거절했는데, 계속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원작이 어릴 때 워낙 많이 봤던 만화책이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봤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 다른 거예요. 이런 인물들이 나왔고 이런 내용이었나 하면서 이거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똥 황토가 특별했던 게 오진희 작가님이랑 만화를 그리셨던 신영식 작가님이 같이 다른 건 만화책으로 만드셨는데, 집필하시다가 신영식 작가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셔서 똥 황토만 동화책이에요. 이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글이 아닌 또 다른 어떤 게 되는 좋은 계기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요새 너무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많잖아요. 똥 황토를 볼 때 약간 행복하더라고요. 오랜만에 꾸미지 않은 뭔가를 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스톱모션은 전체를 한지로 만들려고 기획을 하고 있어요.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지원할 때는 기획서랑 캐릭터 디자인한 거랑 시나리오만 있었는데, 이제 애니메틱까지 됐어요.


<지혜로운 방구석 생활>에서 대사가 와닿아서 <엄마의 땅>이나 <짱뚱이의 똥 황토>의 대사도 잘 쓰셨을 것 같아요

대사가 늘 어렵더라고요. 제가 말을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작가분들이 대사 쓰는 게 대단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지금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짱뚱이는 사투리여서.


제작 중인 작품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엄마의 땅>은 2022년 초에 완성 예정이고 <짱뚱이의 똥 황토>는 2023년에 나올 것 같습니다.

 

Zoom 인터뷰 2021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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