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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 KIM Boyoung


10월 초 바르샤바영화제 영화제에서 신작 <버킷>(2021)을 공개한 김보영 감독을 5년 만에 만났다. 전작인 <레버>(2018)도 영화제에 이어 여러 가지 상영회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데, 이미 다음 작품 <제일극장 으뜸관(가제)> 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 일상의 재미나고 짠한 순간들을 포착한 컷 만화 [반려인간], [김꽈백 작업실], [미숙한 미숙이]도 연재하고 있다. 여전히 생업을 따로 인데도 늦게 시작한 만큼 빨리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작업 열은 아주 뜨끈뜨끈하다.


연기 속의 <레버>


지금은 한국에 계시는 거예요?

지금은 서울이에요. 인천에서 이사 온 지 좀 됐습니다.


<먹이>(2015) 다음으로 발표한 <레버>(2018)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처음은 진짜 단순하게 시작해요. 무슨 이미지 하나를 본다든지 어디서 어떤 스토리를 들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시작하는데, 이거는 어떤 사진이었어요. 동물 도축 공장 이미지를 접하고 나서 만들게 된 얘기예요.


혹시 비건이신가요?

비건까지는 아닌데 요즘에 육식을 줄이고 있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하나씩 하나씩 해보려고요.


<레버>의 주인공은 첼로 연주를 유독 좋아하는데요. 김보영 감독님에게 꿈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거는 음악인 것 같아요. <버킷>의 주인공도 꿈이 기타리스트죠. 꿈은 음악인데 현실적으로는 다른 걸 하면서 살아요. 어머님이 성악을 하셨고 아버지와 동생이 모두 밴드를 했던 음악 가족이라서 일까요. 음악이라는 것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상으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나요?

글쎄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제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여서 음악을 자꾸 집어넣는 것 같은데, <레버>에서는 꼭 그게 음악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넣은 건 아니에요. 그냥 캐릭터의 과거를 첼리스트라든지 첼로를 치고 싶었던 사람으로 넣고 싶었어요.


나중에 이 남자가 진실을 알고도 계속 일을 하기로 선택하면서 일터 선배처럼 선글라스 끼고 담배 피우면서 빨간 차를 몰고 다닐 때 카 오디오에 “Cloud of Smoke - Oblivion(연기구름 - 망각)”이 떠요. 원래 있는 음악인가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만든 메시지인가요?

원래 없어요. 배경 전반에 깔려있는 안개에 대한 힌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자세히 보시면 여러 장면들에 뿌연 연기가 깔려 있거든요. 연기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나 죄책감 등을

뿌옇게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현재의 주인공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이고 등장할 때마다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만들어내는 현재의 주인공의 행동도 그 부분과 연결되어 있어요. 고통스러운 고민에서 벗어나 시야가 명확하지 않은 공간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주인공이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상태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주인공 과거 모습이 등장할 때마다 늘 안개가 깔려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고요. 마지막에 현재의 주인공이 담배를 태우면서 동시에 과거의 모습을 태워버리고 큰 숨으로 연기를 한번 뱉고 나서 음악을 바꿔버리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레버는 약자와 강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것보다 자기 내면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긴 설명을 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에서 음악을 힌트처럼 사용했어요.


저는 원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 모두 같은 욕망을 쫓으면서 똑같아지는 걸로 봤어요.

먼저 일을 시작한 사람처럼 표현된 그 사람이 주인공의 현재 모습이고 작품 처음에 등장한 사람은 주인공의 내면이나 과거의 모습들을 편집해서 넣었던 거예요.


제가 표현한 의도는 내면 갈등에 대한 얘기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좋아요.


공간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이게 <먹이>에서 봤던 고급 식당이 떠올랐는데, 도축장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셨으니 식당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일을 준 가드가 돌아다니면서 돈을 걷는 모습은 교회에서 헌금 걷는 것 같기도 했어요. 꽉 끼는 정장이 사제복 같기도 하고.

종교적인 쪽으로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게 돈이 아니라 먼저 어디를 당길 것인지 정하는 번호표거든요.


레버 옆에 놓여 있는 1, 2, 3 적힌 종이군요. 사실은 주인공이 커튼만 걷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생각 없이 레버를 당기지만, 진실을 보고도 계속할 거냐. 인간을 어려운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정말 이렇게 고개만 빼면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웃음)

만들다 보면은 자꾸 같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을 하게 돼서 이번에 <버킷>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구상해봐야겠다 했는데, 결국은 조금씩 나오더라고요. 근데 제가 <레버>에서 하려고 했던 얘기는 뭔가 제가 판단한다기보다는 그런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꿈이나 시각, 인생관 같은 게 바뀌는 게 안타깝다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도 경험했던 거니까.


이 사람의 사연이 너무 이해되죠. 비 오는 날에 고물차를 밀고 가는 장면을 보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난. 강요된 선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일말의 양심이랄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알면서도 하기로 정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모른 척 기만하지 않겠다고 귀마개를 하잖아요.

맞아요.


<버킷> 속의 꿈


제작하실 때 음악을 먼저 정하고 시작하시나요?

<레버>는 중간 맞는 음악을 찾았는데, 이번에 만든 <버킷>은 처음부터 음악을 만들고 시작했어요.


<버킷>은 10월 초에 바르샤바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하셨어요. 언제 완성하신 거예요?

첫 완성은 작년에 했는데, 8월 말, 9월 초까지 계속 수정을 했어요. 영화제 직전까지 하다가 겨우 겨우 맞췄어요.


그러면 이제 더 이상은 손대지 않을 겁니까?

더 이상 안 보려고요. 수정을 하고 싶은데,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요. 토할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기획한 작품이에요?

제가 어디선가 본 영상에 자판기에서 살아있는 꽃게를 뽑는 장면이 있었어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얘기를 쓰게 됐어요.


여기는 주인공은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택시 운전사인가요.

거기서 매일매일 직업이 바뀌어요. 커다란 자판기들에서 뭐든지 뽑아 쓸 수 있는 세상에서 한 소녀가 돌아다니면서 관찰자 시점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겪게 되는 얘기예요. 배경이 거의 주제라고 할 수 있어요.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감독님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거의 다 블랙코미디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프지 않아>랑 <흉내> 빼고는 너무 어둡다는 평을 많이 있었어요. 자꾸 어두운 쪽으로 간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서. 이번에 신경을 써서 어둡지 않게 가려고 노력했어요.


만화 속의 삶


2017년부터 세 가지 일상툰을 작업하고 계세요. [반려인간], [김꽈백 작업실], [미숙한 미숙이] 생활을 위한 일도 하시고 극화체 웹툰도 연재하고 일상툰도 그리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느낌인데, 이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당시에는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했었고. 그 무렵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떠났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미친 듯이 집중할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때.

[반려인간]은 털동생들과 함께 사는 인간들 이야기고 [미숙한미숙이] 언제나 미숙한 미숙이를 [김꽈백작업실] 음식, 낙서, 근황, 생각들을 그리고 있어요.



필명을 김꽈백은 꽈배기의 꽈배기인가요?

맞아요.


꽈배기 좋아하세요?

네. 정말 단순하죠. 바꾸고 싶은데, 이제 와서 바꾸기가... (웃음)


삶 속의 애니메이션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지금은 애니메이션 <(가제) 제일극장 으뜸관>하고 생업,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새로 만난 작가분들이랑 얘기를 했는데 <레버>나 이전에 했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을 그냥 두는 게 너무 아까우니까 그림책 형식이나 그래픽 노블처럼 출판을 해보지 않겠냐 해서 같이 준비하고 있었어요.


<(가제) 제일극장 으뜸관>은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공인가요?

공연을 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요. 실패나 갈등을 통해 성숙해지는 시간이나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될

여유가 없는 개인은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게 되고, 사회는 표면적 성공으로만 대상을 쉽게 분류해버리는 현상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작품 역시 만들면서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요. (웃음)


<제일극장 으뜸관 (가제)> 제작 과정
<제일극장 으뜸관 (가제)> 제작 과정

영화관이 아니라 공연장이군요. 언제쯤 완성하실 예정이세요.

목표는 올해였어요. 일단 1차 완성은 올해 안에 끝내고 한 반년 정도는 수정 작업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신작은 <버킷>보다 더 밝은가요?

지금 목표가 조금씩 밝아지자여서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만들면서 계속 생각이 바뀌니까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가제) 제일극장 으뜸관> 끝난 다음에도 하고 싶은 작업들이 머릿속에 줄 서 있나요.

예전에는 정말 많았거든요. 리스트업 해놓고 하나씩 하나씩 도장 깨기 하듯이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늦게 시작했으니까 다작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작업을 꾸준히 많이 하셨죠.

그런가요. 저는 지금 너무 늦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거든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작업하는 데 영향이 있었나요?

제가 거의 실내에서 작업을 하니까 작업 과정에 있어서는 별로 영향이 없어요. 그거보다는 전시가 잡혔다 취소된다든지, 상영이 온라인으로 전환된다든지, 아예 없어진다든지 이런 일이 많아서 좀 안타까웠죠.


여러 가지 만화 프로젝트도 진행하시지만, 좀 더 매력을 느끼는 건 애니메이션인가요?

네. 애니메이션 만드는 게 신체적으로도 엄청 힘든데, 어느 한쪽에서는 휴식도 되거든요. 뭔가 안에 들어있는 걸 쏟아낼 수 있는 거라 포기가 안 되네요. 이게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좋아하는 감독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작품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 아직 모두 털어내지 못했고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있어서일지 모른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아무래도 한동안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내용들이 더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한 주제들이 저만의 시그니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소재와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다가 결국 완결 편이라 할 만한 작품이 나온 후에야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벗어나는데 집중하면 오히려 어색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따라가려고 합니다.


 

Zoom 인터뷰 2021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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