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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 LEE Jonghoon

  • 2020년 10월 24일
  • 9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4일


화창하고 선선한 가을날, 홍대입구역 근처 카페에서 이종훈 감독을 만났다. 그가 먼저 와서 잡아놓은 창가 자리에는 아이패드가 세팅되어 있었다. 공동대표로 있는 VCRWORKS의 멤버들도 현재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고 어디서든 작업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멋쟁이 도시인이지만,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이날 축구와 달리기에 푹 빠져서 애니메이션 감독은 부업이라고 넉살을 떨던 그는 조심스럽게 꿈꾸는 큰 그림을 펼쳐 보였다.


My Ball (2008)
My Ball (2008)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5기생이다. 

2004년에 들어갔다. 1학년 때까지는 기숙사가 필수고 2~3학년은 선택인데, 나는 3년 내내 기숙사에 있었다. 고향은 가평군 대성리고 오래 자란 데는 남양주시 금남리다. 북한강 앞이다.

애니고 입시 준비는 어떻게 했나?

집이랑 중학교가 버스로 한 시간 반 거리였는데, 중학교 근처 미술학원에서 6개월에서 1년 정도 공부했던 것 같다. 나는 애니메이션과 지망이라 실기 시험에서 상황표현으로 사람들이 엎어지는 걸 그렸다. 

'애니고의 애니과'라고 그때부터 확고했나.

학교가 만화과, 애니메이션과, 영화과, 게임과로 나뉘는데, 어렸을 때는 ‘만화영화' 만드는 사람이 꿈이어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과로 정했다. 월트 디즈니를 좋아했다. 극장에서 본 건 아니고  비디오나 TV에서 해주는 거 그리고 <디즈니 만화동산>. 조금 커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작품들 보면서 꿈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너무 시골에서 자라서 고등학교 와서 친구들 통해서 보거나 듣거나 했다. 

기숙사 생활 일과는 어땠나.

8시쯤 기상하고 아침 식사, 군대처럼 아침 점호도 있었다. 9시에 학교 가서 6교시까지 수업하고 저녁 식사하고 야작 시간이 있었다. 특성화고니까 과마다 자기 작업을 할 시간을 주었다. 더 늦게까지 작업할 사람은 밤 10시까지 작화 공간을 열어줬다. 그 사이에 기숙사에서 밤 점호를 하고 취침하는 식이었다. 


<몽상걷기>가 학년작이라고 했다. 졸업작품이 따로 있나.

1학년 때 반에서 팀을 꾸려 만든 첫 작품이다. 팀원이 나를 포함해서 4~5명이었다. 아이가 꿈속을 걷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내용이었다. 졸업작품을 만들진 않았다. 학년마다 작품 만드는 걸 권장하는데, 필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2학년, 3학년 때는 그냥 클립 같은 것만 만들고 놀았다. 슈퍼마리오가 버섯 먹고 근육맨 되고, 장난만 치다가 고등학교가 끝났다.

2007년 한예종에 입학했고 졸업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에>는 2017년에 나왔다.

1학년 때 짧게 한 편 만들고 2학년 때 <My Ball>(2008)이라는, 축구공으로 트래핑하면서 친구들이랑 노닥거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2009년에 군대를 갔다 2011년에 돌아와서 3학년 때는 큰 이슈나 담론을 가지고 팀 작업을 했다. 우리가 했던 <_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는 경쟁사회에 관한 것이었다. 퓰리처상 받은 '독수리와 소녀' 포토그래퍼 논란을 가지고 예술의 경계에 관한 걸 한 팀도 있었다. 3학년 다니고 1년 휴학했다. 4학년 때 졸업 준비하면서 VCRWORKS 공동 대표로 계시는 보성 감독님이 팀원을 모았다. 동문들과 그림을 그리는 모임처럼 시작된 게 VCRWORKS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2016년에 제출했고 졸업작품전을 2017년 1월에 했다.


이지혜 작가가 아트디렉터로 졸업작품부터 이름이 올라있다.  김보성 감독의 <Dis COVERS>는 2014년 작품이고 이지혜 작가의 <버리는 섬>과 구자선 작가의 <곰으로부터>는 2015년 작품이다.

<Dis COVERS>나 이지혜 작가님의 <버리는 섬>, 구자선 작가님의 <곰으로부터>는 개인이 만든 졸업작품이고 <별이 빛나는 밤에>는 초기 기획을 한 상태에서 내가 수료를 하고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사업을 땄다. 지원금을 가지고 제대로 만들어 보자 해서 개인 작업을 팀 작업으로, 아트디렉터로 지혜 작가님도 붙고 팀원들이 애니메이션 같이 해서 공동 작업한 첫 사례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 (2017)


제목은 왜 <별이 빛나는 밤에>인가? 당장 라디오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내가 별이 빛나는, 밤을 되게 좋아한다. 작품을 기획할 때 항상 어떤 장면들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때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노인이 누군가를 위해서 기타 연주를 하는 장면이 딱 떠올라서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 했다. 

섬 배경은 어떻게 갖고 왔나?

로그라인이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니까 서정적일 필요가 있었다. 서정적이라는 키워드를 추출해 섬, 바다, 이런 것을 검색하다 산토리니를 처음 알았다. 너무 멋졌다. 그 공간을 활용해 보자 해서 그렇게 설정했다.


밤 장면이 예쁘다. 섬이 황금색으로 빛나서 보물섬 같다. 

내가 노란색을 되게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까 조명을 다 노란색으로 했던 것 같다. 노란색이 따뜻한 느낌이 있다.

캐릭터 라인이 굵은데, 일일이 리터치를 했겠다.

제작할 때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선이었다. 규칙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작화를 자세히 보면 프레임마다 선들이 굵기가 다르다. 멈춰 있는 이미지에서는 선의 강약이라든지 굵기가 멋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했는데, 제작하면서 되게 힘들었다. 디지털 러프 라인으로 간단하게 동화 잡고 필압 조절해서 리터칭 했다. 내가 좀 더 디테일한 사람이었으면 시간을 많이 들였을 텐데, 매번 달라지는 선을 '이거 느낌이다' 하면서 쳐버렸다. 

 

밤 장면에 검은 바탕에 가는 선으로  긁어서 만든 듯한 텍스처도 느낌이 좋았다. 

그 작업 정말 열심히 했다.


또 얇은 선으로 작업한 게  2017년 디자인아트페어를 위한 <MATTER>였다.

<MATTER>는 전체 스토리라인에서 처음과 중간의 한 장면만 영상을 만들어 합쳐 놓은 상태다. 

 

디자인아트페어의 주제 ‘디자인 너머 소재, 사물의 소리’를 받고 구상한 건가?

주제를 받고 VCRWORKS 팀으로 참여를 했다. 다른 작가분들은 나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거나 돌 표면을 가지고 작업을 하신 분도 있다. 내 작업 처음에는 물이 나오고 마지막 장면에는 캐릭터가 노란색 조각을 들고 있는데, 물과 흙과 식물, 이런 것들이 계속 만들어져서 깎고 조합하고 빚어서 빛을 만드는 얘기를 하려고 했다. 초기 기획은 Matter, 물질을 가지고 불가능한 걸 상상으로 풀어내려고 했었다. 인스타그램 프레임에 맞추려고 정사각형으로 제작했다. 


그해에 <ANICUP 2017 KOREA - JAPAN> 홍보 영상도 만들었다.

<ANICUP>을 하고 나서 많은 일들이 들어왔었다. 정말 재밌게 작업했다. 이렇게 재밌게 끝내면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있다는 거를 그때 새삼 또 배웠다. 재밌었던 작업이고 거기서 많은 기회들이 생겼다.


편해지길 (2018)


2018년에는 늘섬의 <편해지길>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다. VCRWORKS와 별개로 한 건가.

VCRWORKS와 별개로 작업했다. 지금은 회사가 최우선이어야 되는 입장이라서 개인의 일도 회사의 일로 변경해서 진행하고 있다. 지혜 작가님이랑 자선 작가님, 개인의 색깔로 이미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계신 분들은 그런 요청이 많다. 팀에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팀으로 전환을 하는데, 일러스트 작업 같은 건 팀에 이야기하고 개인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늘섬의 경우 개인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가진 색깔이 있고 팀이 가진 색깔이 또 있다. 팀 색깔로 풀기에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늘섬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곡이었고 욕심이 나서 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작업했다. 기획은 완전히 혼자 했고 애니메이션은 외부 작가님들 두 분 정도 도움받았다. 

 

영상을 보면 풍경을 촬영해서 리터치를 한 느낌이 있는데, 실제 작업은 어떻게 했나?

곡을 듣고 일상의 파편을 모은다는 기획을 했다. 내 앨범에서 찾은 실사 영상과 기획 이후에 찍은 실사 영상을 적절히 활용해서 곡의 화자가 보냈던 시간의 파편을 기록하듯 연출했다.    


没有意外 No Exception (2019)


뮤직비디오 작업을 여러 편 했다. 차이쉬쿤의 <没有意外 No Exception>은 중국어 가사를 이해하고 시작했나?

국내 에이전시 같은 데서 가사를 번역해서 줬다. 이별에 대한 씁쓸하고 쓸쓸한 감정의 곡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국 인민들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엄청 유명했던 차이쉬쿤 본인의 이야기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는데, 무대에 서고 너무 바빠져서 이별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가사를 그대로 이미지로 해석하는 뮤직비디오도 있는가 하면 비유적으로만 해석하는 뮤직비디오도 유행하고 있었다. 가사에 맞게 몇몇 장면들을 편집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곡이 가진 감정을 우리가 새롭게 해석해서 스토리텔링을 했다. 뮤직비디오는 음악과 영상의 흐름을 맞추는 게 첫 번째기때문에, 가사랑 장면은 좀 다르지만 리듬에 맞춰서 편집했다.

퀄리티 높은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라 첫눈에 감탄하면서 봤다.

우리가 그걸 작업할 때 퀄리티 끝장을 보자는 다짐을 했었다. 외주 작업을 하면서 계속 타이트한 시간, 비슷한 비용, 비슷한 결과물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니까 팀 자체에서 약간의 회의가 있었다. 차이쉬쿤이 뮤직비디오는 시간도 넉넉(3개월)하고 예산도 많아서 이걸 전환의 포인트로 한 번 해보자 하고 다들 합심해서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그 전에는 어떤 부분을 포기했었나?

차이쉬쿤 프로젝트는 일시 정지하는 모든 순간을 완성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들어 보자는 욕심이 있었다. 그 전에는 30초짜리 프로젝트에서 5초를 멋있게 만들어 보자 그랬다면 <没有意外>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 힘을 주었다. 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아트워크 테스트라든지 장면 연구를 넉넉하게 했다.

 

이 작업하다가 비행기를 두 번 놓쳤다고 했다. 클라이언트 때문이었나?

우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분위기에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올라간 퀄리티에 따른 렌더 시간 파악을 못했다. 이전에는 10분이면 됐던 거니 20분이면 되겠지 했던 게 1시간이 걸렸다. 그때 자정 마감을 목표로 했는데, 자정이 넘어가고 새벽까지 렌더를 걸었다. 그거 끝내고 여행을 가겠다고 새벽 비행기를 끊었는데, 렌더가 안 끝났다. 겨우 끝내고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를 놓쳤다. 비몽사몽에 인천에서 타야 할 비행기를 김포 출발로 예약해서 두 번째 비행기도 놓쳤다.  

 

영상은 무사히 전달했나?

그렇다. 여행 가 있는 동안 뜨거운 반응을 전달받았다. 


VCRWORKS는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들과 프로페셔널한 활동을 시작한 줄 알았다.

그때는 완전히 동아리였다. "우리의 가치를 잃지 말자! 졸업하고도 그림 그리자!" 뭐 이런 느낌으로. 회사처럼 된 건 2015년부터다. 우리 위로 가깝게는 스튜디오 쉘터와 스튜디오 루머, 멀게는 모스테입이라는 스튜디오가 잘하고 계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은 후배님들이 연락을 주면 뭐가 좋았고 뭐가 힘들 수도 있다고 우리의 노하우를 말해드릴 수 있다. 빠른 시작이 좋았고 필요하다고 본다.         

2014년부터 드라마 인서트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실질적인 외주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는 팀에서 나가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에 PD 역할로 계셨던 분이랑 우리 작가님들이 소일거리로 했던 VCRWORKS의 초창기 작업들이다.  


회사는 얼마나 다녔고 어떤 일을 했나?

3D 애니메이션 회사였는데, <플라잉 심포니: 키즈 콘서트>라고 클래식 곡을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하고 그 영상 앞에서 오케스트라가 합을 맞춰 공연하는 작품 20분~25분 정도를 구성하는 거였다. 공연 편성이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과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로 1시간이었고 나는 차이코프스키 연출 쪽이었다. 연출부랑 제작부로 1년간 일했다.

 

라이브 공연을 직접 봤나?

보고 울었다. 졸업한 직후에 회사 경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다녔다. 되게 힘들었는데, 공연 때 눈물 흘릴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예술의 전당이랑 고양 아람누리에서 공연했다. 아이들이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울었다. 그때 예술의 전당이 꽉 찼었다. 

VCRWORKS을 만들었을 때 본격적인 영상제작 스튜디오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나?

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팀을 나갔다가 회사를 마치자 보성 감독님이 "영상 쪽을 하자. 애니메이션 쪽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를 불렀다. 2015년부터 영상 외주를 겸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틀은 작가들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 덤으로 애니메이션 하면서 돈도 벌어보자’로 스타트.


2016년 즈음까지는 딱히 누구의 작업이라기보다는 VCRWORKS의 작업으로 크레디트를 올렸다. 그때의 일 자체가 누가 주도를 하기보다는 서로 의견 교환하면서 작업했기 때문인가?

맞다. 지금도 방식은 비슷한데, 이제는 논의는 같이 하더라도 프로젝트를 책임지면서 진행하는 디렉터의 역할을 확실히 쥐어주려고 한다. 우리가 진행하면서 생긴 일종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개별 작가의 스타일이나 브랜드를 키우려고 한 건가? 

그런 부분도 있다. 멤버가 여덟 분이 계시면 여덟 분이 색깔이 다 다르다. 초기에는 여덟 명의 각기 다른 색깔이 장점이 되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는 같은 니즈를 가지고 있었다. 같이 섞였을 때 나오는 색깔이나 힘도 있는데, 좀 더 주도적으로 진행하셨던 분의 색깔이 드러나더라. 

 

나중에 클라이언트 일 요청이 올 때도 어떤 감독님들의 색깔같이 특정 레퍼런스를 요청하기도 하더라. 그런 것들이 우리 팀의 무기이자 힘이니까 이쪽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또 팀 안에서도 개인의 만족이나 작가주의적인 것을 지켜주는 방안으로 필요했던 부분인 것 같다.


8명의 작가가 있고 스태프가 있다. 어떻게 운영되는 건가? 작가와 스태프는 어떻게 구분되나?

기본적으로는 구분을 하진 않는다. 여덟 분의 작가들이 다 디렉팅 할 수 있는 능력들이 된다. 우리가 프로젝트를 할 때는 다 같이 그 프로젝트를 한 번에 진행을 한다. 요즘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진행 시기에 따라 1번 프로젝트, 2번 프로젝트, 3번 프로젝트가 있으면 1번 할 때 지혜 작가님이 감독하면 다른 분들이 스태프로 붙는 식으로 유기적으로 하고 있다. 누구는 감독만 해. 누구는 애니메이터만 해. 이런 게 아니다. 물론 자기들이 잘하는 포지션이 있다. 지혜 작가님 같은 경우는 아트디렉팅, 나 같은 경우는 연출이나 애니메이팅 이런 것처럼. 

 

계약직으로 모신 스태프분도 계시고 워낙 급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경우는 오랫동안 같이 연락해 온 외부 프리랜서 분들이랑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쯤에 '스물아홉서른'의 아이디어를 올렸다. 만화를 만들려고 했던 건가?

그룹으로 『한타스』라는 출판 만화 잡지를 만들었는데, 1호에 단편 만화 「추위를 찾아서」를 실었다. 그때도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다. 그다음 번 매거진에 「스물아홉서른」이라는 단편 만화를 만들려고 기획했다. 완전히 자전적인 얘기다.  스무 살 초반이 배경이었는데, 그때는 하루하루가 다 시트콤 같고 별것도 아닌 게 되게 크게 느껴졌다. 만화로 구성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했던 기획이다. 시리즈처럼 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다. 간단한 시나리오는 써봤는데, 동료들 피드백이 "아직은 때가 아니다"였다.


추위를 찾아서 (2015)
추위를 찾아서 (2015)

언제가 때인 건가? VCRWORKS에서 만화 프로젝트를 론칭하는 때인가?

만화는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기획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대상과 소통하기에 작품의 메시지가 구체적이지 않다. 좀 더 깨우침을 얻게 됐을 때, 다시 기획을 해보지 않을까.


건축가 A (2022)


<건축가 A>는 VCRWORKS에서 다 같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인가?

내가 '스물아홉서른'과  <건축가 A>의 최초 콘셉트를 가지고 동료들과 회의해서 선정된 게 <건축가 A>다. <건축가 A>는 내가 기획과 감독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팀의 중편 프로젝트,  나아가서는 시리즈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다. 

중편 시리즈라고 한다면 구체적인 포맷이 나와있나?

넷플릭스의 <릭 앤 모티>라는 작품이 20분 편성으로 시즌에 10편 내지 11편인데, 그 포맷을 기준으로 삼았다. 얼마 전에 영화진흥위원회에 20분 기획으로 시나리오를 제출해서 중단편 제작지원을 받았다. 지금은 중편 한 편에 대한 시나리오로 지원금을 따냈지만, 지금 제작되는 편이 이후 시리즈의 프롤로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큰 그림을 꿈꾸고 있다. 지원작은 내년 10월에 마무리될 것 같다.


젊은데, 나이가 많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작업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도 <건축가 A>도 노인이 인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맞다. 할머니가 나온다. 이게 <별이 빛나는 밤에>하고 가끔 GV 하면서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분은 "나이가 많으신 분이 만든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셨는데, 정말 감사한 피드백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만들어 버렸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한참 젊은 내 또래의 가수가 부르는 거를 보는데, '저 사람이 알고 부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작품을 한 거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건축가 A>에서 건축을 의뢰하는 주인공이 할머니다. 작품의 콘셉트 상 집을 짓는 재료를 의뢰인의 지난 삶에서 가져오는데, 아무래도 많은 세월을 겪은 할머니의 인생에서 더 재밌는 재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접근했다. 이번에는 대사가 있는 작품을 쓰려고 하는데, 시나리오에서 받았던 피드백이 "대사가 할머니 연령대에 맞는 대사가 아니다.” 그때 또 한 번 현타가 왔었다. 진짜 고민을 하고 해야 되는데, 일단 감정만 던져 놓았다. 그런데 내가 길거리 지나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보는 걸 되게 좋아한다. (웃음)      

집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던 건 아니고?

정말 많이 사랑받았다. 지금은 외가도 친가도 떠나셨는데, 사랑 많이 받았다.


소셜미디어에 작업들을 티저처럼 보여준다. 팬들에게 기대감을 쌓아두려는 전략인가?

그런 게 지속적으로 돼야지 진짜 전략일 텐데, 열심히 해야겠다. 개인 작업이면서 팀 작업인 동시에 어떤 서사를 가진 시나리오를 쓰고 작업하는 게 <별이 빛나는 밤에> 이후로 두 번째다. 첫 작품 이후 텀이 3년이 넘으니까... 욕심나는 동시에 너무 두렵다. 내가 부담 안 받는 편인데, 이상하게 작품은 부담이 많이 된다.  

자기 작업의 완성에 대한 기준이 높은 건 아닌가?

쓸 때 없는 고민과 게으름이다. 내가 아직도 객관화가 덜 됐다고 본다. 완성에 대한 기준이 높다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많이 줄어 있는 상태였다. 주변에 잘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자극과 동시에 부담이 된다. 어쨌건 시작을 하면 자연스럽게 풀어질 문제인데, 제대로 시작을 못하고 있어서 갖는 불안감인 것 같다.  

 

2015년에 발행한 터미널 후기에 언젠가부터 그림을 즐기지 못했다고 했는데, 일로 하면서부터인가?

나중에 그림보다 재밌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트워크 만들 때보다 연출할 때 더 재밌고 더 좋아하다 보니까 이미지 다루는 것보다 콘티 짜는 일이 많아졌다.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끝없이 하는 분들이 바로 옆에 계시다. 그런 분들 옆에서 그림 그린다는 얘기를 하기가 조금씩 부끄러워졌다. 그림이 재미는 있지만 한때는 되게 부담이었다. 그때는 나를 잘 몰랐었다. 지금이야 명확하게 나는 연출이 더 좋은데, 그때는 나는 그림도 오래 그렸는데, 그림도 잘 그려야 되는데, 왜 이렇게 안 그리지? 그런 부담을 느꼈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숲과 해변 간 영상이 있다. 여행 좋아하나?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좀 탈이다. 빨리 <건축가 A> 작업해야 하는데, 얼마 전에도 오토바이로 제주도까지 갔다 왔다. 서울에서 완도항 터미널 가서 배에 싣고 제주도로 건너갔다. 

 

완도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갔나?

그렇다. 한 10시간? 쉴 때는 무조건 사람 없는 데로 가버린다. 지방 도로로 산길 거쳐서 완도까지 갔다. 그렇게 갔다 오면 아이패드에 애니메이션 클립으로 만들 스케치를 해놓는다. 이게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영상 다 녹음했다.   

여행할 때 기록을 주로 영상으로 남기나?

나는 영상으로 남기는 편인 것 같다. 이종훈이라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이미지화시켜서 올리는 채널에는 짧게라도 움직임을 넣거나 꼭 음향을, 그 현장음을 넣어서 올리고 싶더라. 여러 가지 감각에 영향을 받는다. 보고, 소리 듣고, 느끼는데, 이미지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 한 장으로 그릴 때보다는 움직임을 넣었을 때 나란 사람의 힘이 조금 더 생기는 것 같다.  



크리에이터스풋볼클럽(CFC)은 열심히 하고 있나?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같이 계신 분들이 너무 왕성하게 활동하신다. 이렇게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쪽 계통이 운동을 많이 안 하니까. 지금 우리 본업이 축구선수다. (웃음) 단체 운동은 정말 사람들을 빨리 가까워지게 한다. 평소에도 작업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니까 얼마 안 됐지만 서로가 서로한테 각별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 CFC 애니메이션 만들지 않았나?

축구만 하다가 작가님들이 그래도 우리 작품 만드는 사람들인데, 이런 활동도 하자 해서 시작했다. 운동도 하면서 작업도 공유하니까 좋더라. 

 

마라톤도 하지 않나? 운동으로 단련한 체력을 애니메이션에 쓰는 건가?

나도 애니메이션이 부업이다. (웃음) 체력으로 애니메이션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애니메이션에 안 쓰고 있다. 좀 더 써야 할 것 같다. 

 2020년 10월 7일 @동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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