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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 OH Seoro

  • 2020년 6월 24일
  • 11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14일

 VAF 2019 (사진: 감독 제공)
VAF 2019 (사진: 감독 제공)

고등학교 때 독학해서 만든 <머리봇>, 대학 복학해서 각잡고 만든 <ARTIST-110>, 2009년 취미로 시작해 지금까지 유튜브에 연재 중인 <쇼트 플래시 트랜스포머 시리즈>까지, 로봇에 대한 애정을 만천하에 드러낸 오서로는 2020년 5월 중순, 로봇이 주인공인 3D 애니메이션 파일럿 작업을 끝낸 참이었다. 그뿐인가 <(OO)>(2017)를 내놓은 다음, 국내외를 막론하고 광고, 뮤직비디오, 영화제와 전시 협업 영상들을 로봇처럼 쏟아냈다. 아니, 마법처럼 이라고 할까. 오는 길에 '마법당'에 다녀왔다며 인증샷을 보여줬다. 


유치원에서 떡 만드는 사진이 삿포로신문(1994년 12월 7일자)에 실렸다. 일본에서 태어났나?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10개월 후에 홋카이도에 갔다. 아버지가 거기서 교수가 되셨을 때다. 지금은 오키나와에서 계신다. 유치원까지 삿포로에서 다녔고 초등학교 때 오키나와로 갔다. 중간에 몇 개월 한국에 가서 유치원 잠깐 다녔는데 그 기억은 흐릿하다.  

 

기억나는 어린 시절은 언제부터인가?

삿포로 눈 축제라던가 길에 눈이 엄청 쌓여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파트에서 김치 담그고 있던 것도 기억난다. 오키나와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까지 살았었다. 3학년 2학기부터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다. 한국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한국어가 어려웠나?

말은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엄격하게 집에서는 일본어 쓰지 말라고 하셔서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려고 했었다. 그럼에도  첫 국어시험이 빵점이었다. (웃음) 여러모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일본은 시험지가 새하얗고 글자도 큼직큼직하고 일러스트도 컬러고 알기 쉽게 몇 장씩 됐는데, 우리나라는 커다란 갱지에 촘촘하게 ‘뭐 하시오, 뭐 하시오’ 명령하듯이 하니까 충격이 와서, 찍지도 못했다. 와서 3년 정도 있다가 6학년 때 다시 오키나와에 갔다.  


일본은 다시 적응하기가 괜찮았나?

3년이면, 어릴 때는 길게 느껴지니까 알딸딸했는지 뭐에 맞춰야 될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6학년에 돌아와서 계속 대전에 있었나?

중학교 때까지는 대전에 있었다. 대덕연구단지 자녀들이 많은 전민동에 살아서 한국의 교육열을 실감했다. 중학교는 어떻게 올라갔는데, 점점 딸리는 거다. 나는 여전히 교과서에 그림 그리고 공부를 안 해.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이미 놓쳤어! (웃음) 일본에서는 발표도 잘하고 되게 활발했다면, 중학교 때는 표현도 안 하려고 하고 내성적이고 소심해졌다.

 

어릴 때 만화 그리는 걸 되게 좋아했다. 만화가 [엄지와 검지를 최대한 벌리며] 이따 만 했다. 근데 완결 지은 게 없다.  ‘이야기 안 짜고 로봇만 그리는 직업 없나?’ 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2002) DVD를 사주셨다. 거기서 제작 과정을 보고 콘셉트 아티스트라는 존재를 알 게 됐다. ‘이런 직업도 있구나'하고 장래희망을 잡았다.   


<스타워즈>는 언제부터 봤나?

아홉 살에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1999)을 봤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새로운 희망>(1977)이라든가 <제국의 역습>(1980), <제다이의 귀환>(1983)이 나왔고 십몇 년 만에 신작이 나와서 난리 났을 때다. 그때 나도 극장에서 보고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던 것 같다.  

콘셉트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발견한 다음에 애니메이션이 다르게 보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카툰네트워크라던가 디즈니를 다시 보게 된 게 캐릭터 움직임이었다. 애니메이팅, 액팅 된 캐릭터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재밌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때 들었다. 내가 좀 욕심쟁이다. 콘셉트 아티스트로서의 꿈이랄까 방향성은 유지한 채로 ‘이것도 한번 해볼까?’ 해서 플래시로 한번 만들어 봤다. 고등학교는 계룡에서 인터넷고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세 시간 정도 플래시 특강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진짜 못 알아먹겠더라. 그런데 애니메이팅에 대해 관심이 생기니 특강 기억을 떠올리며 독학을 하게 됐다.


머리봇 (2008)

처음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은 어떤 건가?

<머리봇>이라고 로봇이 머리만 남아서 도망 다니는 거다. 로봇 관절만 움직이면 되니까 그런 식으로 처음 애니메이션 제작을 해봤다. 당시에 블로그에도 올렸었다. (총 러닝타임은 20분에 달하지만) 완결 못난 채로 하드가 날아가 버렸다.        


머리봇 (2008)
머리봇 (2008)

그림 그리는 거에 대해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어머니는 걱정하다가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머니가 싸구려 태블릿을 사주셔서 처음으로 디지털 페인팅 신나게 했었다. 아버지는 좋아하는 걸 하는 건 좋아하는데, “네가 정말 좋아하고 정말 이거 아니면 안 되는 삶인지를 확실히 하라” 해서 힘들었다. 그거에 대한 증명을 해야 하는데, 나는 대회도 안 나가고 그냥 그림만 그렸으니까. 아버지는 표현이라는 걸 옛날부터 엄청 교육하셨다. 내가 생각하는 거, 내가 평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려고 중학교 때부터 독후감 쓰기를 계속 시켰다. (웃음) 일 년에 한두 번씩 볼 때마다 “(독후감을) 달라.” 제일 무서웠다. 


진로에 대한 확신은 얻었나?

고등학교 때 컴퓨터그래픽과였다. 2학년 때 나라에서 하는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디자인으로 동메달을 땄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 있던 내가 받은 최초의 공식적인 인정이었다. 

 

지방대회에서 동메달 따면 전국대회 출전 자격이 생긴다. 금, 은메달 받은 애니고 애들과 나란히 가서 전국기능경기대회 3일 또 시작. 최선을 다했다. 넓은 강당에서 컴퓨터 촤르르, 프린터 촤르르 있고 오늘의 주제는 우유곽이고, 오늘의 주제는 카드고 하루에 하나씩 과제가 바뀌는데, 바로 디자인 하고 인쇄하고 제출하고 심사위원들이 돌아다니고 나한테는 정말 새롭고 피 말리는 경험인데, ‘와 내가 이런 곳에서 이렇게 하고’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웃음)      

 

대회 나가고 성과도 있으니까 아버지도 슬슬 인정하셨다.

 

대회에는 담임 선생님이 선발한 건가?

미술 선생님이랑 담임 선생님이 진짜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셨다. 지금도 되게 감사하다.  


청강대 1학년 재학 중인 2009년부터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로봇에 관심이 있었고 트랜스포머 장난감도 몇 개 있었다. <트랜스포머>(2007)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실사 영화로 나온 거 보니까 변신이 난리난 거다. 이 복잡한 게 철컹철컹 변하는 자체를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들어서 짬 내서 플래시로 만들어 봤었다. 취미로.     

 


1학년 때 수업이랑 과제는 부담이 안 됐나?

엄청 많았다. 그 와중에 했다. 그 당시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제일 유명한 ‘옵티머스 프라임’, ‘범블비' 두 대만 만들었다가 메인 로봇 다섯 대 만들고... 그러면 적 진영 ‘디셉티콘'도 만들어야지 해서 1편어치를 다 만들었다. 2009년에 마침 2편도 나오니까, 2편도 만들어야 될 것 같고 중간에 그만두는 건 찝찝해서 계속 만들게 된 것 같다. 단순히 ‘기계를 움직이고 싶다’,  ‘캐릭터를 움직이고 싶다’는 그야말로 애니메이터로서의 욕구가 있었고 플래시는 컷아웃으로 할 수 있으니까. 


모양이 바뀌는 걸 위해서 그림을 새로 그리는 건 없이, 파트를 다 그려 놓은 다음에 그걸 움직여서 한 건가?

그렇다. 돌릴 때 위치만 바꾼 거다. 앞에 있던 게 돌아가면 안 보일 거 아닌가. 중간에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 편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

초반에는 만들기 쉬웠다. 보통 1주일 안에 끝났었다. 근데 뒤로 갈수록 기술이 늘어나니까 애프터이펙트로 합성하고 컴퓨터도 점점 느려지고. 디자인도 계속 디렙롭 돼서 요즘은 3주를 써야 되는 것 같다. 

군대 다녀오고 3학년 후반에 구독자가 10만쯤이었는데, 후배가 왜 유튜브 광고 안 했냐해서 “아 그런 게 있었어?” (웃음) 그때부터 생각보다 수익이 된다는 걸 알았다. 


SOCKPUPPET! (2010)

<속퍼펫!>(2010년)은 수업과제로 한 건가?

2학년 때 작화 수업에서 한 내 마지막 손작화 작품이다. 그리고 2010년 7월에 군대 갔다.

 

미국 애니메이션 같았다. 양말인형이라는 문화도 그렇고 

그런가? 일본에 살았을 때 <세서미 스트리트>가 유명했다. 무엇보다 하체는 안 그려도 되니까. 애초에 카툰네트워크를 즐겨 봤었고 칼아츠에서 나온 단편 영향도 받았다. 칼아츠는 그 당시만 해도 캐릭터 애니메이팅에 많이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단편이라는 세계를 접하고 ‘움직임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구나’하는 걸 알고 연출 욕심이 생겼다. 


속퍼펫 (2010)
속퍼펫 (2010)

ARTIST-110 (2014)

<아티스트-110>은 팀 작업을 했더라. 3학년 때인가?

2012년 4월에 전역하고 2학년 2학기에 복학했다. 3학년 때 만들고 싶은 작품 피칭을 세 번해서 뽑힌 것 중에 선정했다. 나는 군대에서 <아티스트-110>을 어느 정도 짜 왔다. 3학년 됐을 때 6~7명 인원의 팀을 짰다. 참여도가 달랐다. 세 명은 그래도 기획에 참여했고 제작은 뒤로 갈수록 내가 거의 7~80은 했던 것 같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언젠가?

고등학교 때다. 덩치 큰 로봇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수채화로 그렸다. 이 감성을 애니메이션으로 하고 싶었다. <월-E>(2008)에 대한 충격도 있었다. ‘앗, 누가 벌써 만들어 버렸다’ 하는 거. 나도 로봇 나오는 단편을 만들자 한 게 <아티스트-110>이다. 

 

처음 기획부터 16분인가? 만들다 보니 늘어난 건가?

처음에 스토리보드를 열심히 그리고 스토리보드 릴을 빨리 만들었는데, 합쳐보니까 20분이나 되는 거다.  '안 되겠다. 이거 못 만든다’해서 최대한 조합을 다시 했다. 앞부분을 팍 자르고 이 사건을 여기에 배치를 하고. 겨우겨우 엔딩 크레디트 빼고 15분짜리가 됐다. 그나마 로봇만 나오는 컷아웃이니까 완성할 수 있었다.


<트랜스포머>도 그렇고 컷아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디지털 컷아웃인데, 그림은 복사 붙여 넣기 하고 움직임만 다르게 했다. 비슷한 움직임은 갖고 오면 되고 구도, 레이아웃 바꾸고 색깔이랑 조명 바꾸면 감쪽같다. 그런 제작방식이니까 15분짜리는 할만했다. 

 

<아티스트-110>에서 로봇이 동물의 형상을 그리는 게 감정을 건드린다. 격납고의 그림은 동굴벽화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디벨롭할 때는 로봇이 자기가 봤던 여러 건물들의 외곽만 따라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창고는 유일한 자기만의 공간이니까. 저절로 거기에 그리게 됐다.    

 

원래는 기계뿐인 곳에 나비가 들어와서, 로봇이 그림으로 그걸 알린다는 식으로 한 장의 일러스트가 나왔다. 이야기를 짜다가 나비보다는 로봇 눈 앞의 안내 인터페이스가 고장 나서 새로운 세계가 보이게, 색깔이 없어 보였던 동네에서 색이란 걸 알게 해서 ‘똑바로 가야 된다’,  ‘정해진 말만 지켜라’가 아니라 ‘맘대로 살아라’하는 (웃음) 일종의 해방, 일탈을 생각했다.  


Afternoon Class (2014)

다음 해에는 <애프터눈 클래스>를 혼자 작업했다. 전공심화는 혼자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인가?

4학년 자리가 있다. 움직임 위주로 딱 혼자 할 수 있는 정도의 분량으로 편하게 하고 싶었다. <아티스트-110> 만들 때 팀작업에 졸업준비위원회장도 맡아서 고생했다. ‘너무 각 잡고 분위기 무겁게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피곤의 기억이랑 ‘자고 싶다’, ‘쉬고 싶다’는 욕망으로 <애프터눈 클래스>를 시작했다. 여름방학 전에 러프하지만 애니매틱 완료하고 애니메이팅까지 들어갔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어서 방학 동안 토플 공부를 했는데, 시험 점수가 안 나왔다. 이러다가 작품이고 유학이고 망할 것 같아서 둘 중 하나를 골라야겠더라. 작업에 복귀해서 10월 말인가 다 끝냈다. ‘아 이제 내년에 어떡하지?’ 공부하려니까 또 하기 싫은 거야. 지쳐서 쉬자 했더니 <애프터눈 클래스>가 영화제에 되기 시작했다. 자그레브도 가고 안시도 갔다. 영화제 덕분에 유명한 감독들과 여러 나라 학생들을 만나고 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계속 알게 되니 궁금증이 해소되고 유학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또 여기서 본 사람 저기서 또 보고, 세계가 생각보다 좁고 애니메이션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게 됐다.   


아니, 그냥 아이처럼 신났다. 전 세계 사람들이 와서 내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터넷에 올리면 여러 사람이 보지만 반응은 모른다. 영화제에서는 옆에서 직접 반응을 하잖아. 특히나 안시에서 600석 700석 되는 큰 상영관에서 사람들이 웃고 리액션을 해주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섹션에서 내 작품이 제일 호응이 좋았다.      

 

나는 단편 애니메이션 연출은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최대한 열심히 하고, 졸업하면 애니메이터로든 콘셉트 아티스트로든 회사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걸 더 만들고 싶다. 그렇게 지쳤는데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부터 신기했다. 자기만족으로만 만든 줄 알았는데, 내 속에서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싶었다는 걸, 사실은 어릴 때부터 그러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애프터눈 클래스>의 테마는 ‘졸음'이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변신하는 모습이다.

배경은 대학교 일 수도 있고 고등학교 일 수도 있다. 캐릭터도 다국적으로 인종도 묘하게 했다. 그냥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걸로 퉁쳤고 순서는 썸네일 스토리보드를 와아 그려 넣었다. 졸리면 머리가 엄청 무거워지잖아. 눈꺼풀도 무거워지고. 그래서 무거운 물건으로 변신한다. 찰진 움직임, 모양이 변하는, 몰핑 하는 움직임을 해보고 싶었다. 내 감정 상태와 하고 싶은 시각적인 표현이 딱 맞아떨어졌다. 

 

제일 알기 쉬운 무거운 물건부터 무겁다고 느껴지는 대표적인 물건을 순서대로 놓고 졸림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시각적으로 구도든 움직임이든 타이밍이든 최대한 겹치진 않으려고 했다. 점점 더 고조되게 연출해보고 싶었다. 음악은 점점 빨라지고. 그냥 ‘팟’하고 변신하는 게 아니라 물건마다의 이미지대로 움직였다. 볼링공이 실제로 사람 머리 무게랑 같단다. 처음에 뒤뚱뒤뚱 철컹. 아령이 텅. 텅. 텅. 순서대로. 벽돌은 무너져 내려가고 두꺼운 사전이 펄럭 펄럭 펄럭. 고개를 들어 올릴 때마다 무게가 늘어간다. 머리는 휘도니까 장도리처럼 만들기도 했다.  


<애프터눈 클래스>도 플래시에서 한 건데,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그리지 않고 A에서 B까지 이동하면 중간 프레임에 트위닝 기능을 적절히 활용했다. 변형하는 건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전통 작화 방식으로 했다. 직선형 또는 단순한 움직임은 일일이 한 장 한 장 그리면 지루하니까 트위닝 기능을 써서 단축시켰다.

 

무테 스타일이라서 좀 더 수월한 게 있었다. 만약 선이 있으면 매우 명확하게 그려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한 장 한 장 제대로 모양이 갖춰져야 하는데, 무테로 하면 형태가 중간에 조금 러프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스타일이 돼서 편하더라. 타이밍 잡을 때는 일반적인 러프 애니메이팅 스타일로 하고 완성시킬 때는 플래시에서 편리한 기능들을 쓴다. 


사운드 작업이나 음악은 어떤가? 

나는 영상물은 음악이랑 소리가 솔직히 반은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진짜 어떤 소리를 넣느냐에 따라서 정말 달라진다. 이거 무시하다가는 작품 인상이 너무나 바뀌고 의도대로 안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소리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한다.

 

작업할 때 사운드 작업은 언제쯤 들어갔나?

<애프터눈 클래스>는 2학기 개강하고 9월 말 10월 초부터 음악감독님들이 왔다 갔다 자주 했다.  그때는 기사님이 따로 마스터링도 하고 소리를 새로 넣기도 했는데, 최대한 내 의도대로 하려고 먼저 내가 가편집을 했다. 직접 어울리는 음악이랑 소리랑 찾아서 넣었다. <(OO)> 만들 때는 내가 다 했다. 사실 <(OO)>이야말로 폴리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 환경이나 시간이 아니다 보니까 소스 찾아서 했다.    


(OO) (2017)


<(OO)>에는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냈던 <짜내기>(2014)와 비슷한 장면이 있다. 비염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때부터 갖고 있었나?

비슷한 게 있었다. 얼굴에서 일어나는 걸 다루려고 했었는데, 그게 실제로 <(OO)>에 쓰였다. 

 

평소에 스케치를 하나? 아이디어 노트가 있나?

나는 머리가 정리된 후에 스케치를 할 수 있다. 일 따로 내 창작 따로 둘 수가 없다. 프리랜서는 모든 곳이 제작 환경이다. 뭔가 만들고 있는 중에는 다른 거에 집중하기가 싫더라. 아니, 하고 싶은데, 중간에 멈춰야 되는 게 너무 싫다. 최대한 안 쉬고 일을 빨리 끝내서 내 작업 할 시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지 중간에 또 일이 들어온다. 


졸업하고 청강대 테크니컬 디렉터(TD)로 있으면서 <(OO)>를 만들었나?

2017년에 2D TD로 들어왔다. TD는 스튜디오에 상주하면서 졸업 작품 만드는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거를 도와준다. 기술적인 것도 있고, 이야기 연출적인 부분도 많이 묻는다.

 

학생들이 졸업작품 하는 분위기 속에서 내 작품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OO)> 기획은 2016년에 시작해서 2017년 6월 말쯤에 완성이 됐다. 사실은 사운드 비용이라도 벌려고 제작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고 뜨기 전에 완성해버렸다. (웃음) 나는 완성하면 바로바로 보여줘야 다음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다림을 못 참는다.


<(OO)>은 비염 경험을 담았다. <애프터눈 클래스>처럼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러닝타임은 두 배다.

배경이 없어서 <애프터눈 클래스>보다 빨리 만들 수 있었는데, 중간에 일 하느라 1년이 걸렸다. <(OO)>은 재채기, 콧물, 코막힘 같은 비염을 앓으면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은유만으로 이어 붙였다. <애프터눈 클래스>처럼 순서 정하는데 머리를 엄청 짜냈었다. 재채기는 뭐부터 시작할까 하다 무기들, 총, 대포, 폭탄 이런 걸 터트렸다. 코 풀 때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물이 나오는 이미지를 모았고 다시 무겁게 자연재해, 환경파괴 비슷한 거랑 엮어서 하다가 땅에 묻힌 주인공의 코를 파내고 시원하게 들어가는 마지막 판타지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리듬감이 중요했다. 재채기랑 콧물 나오는 순서는 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걸로 비유할지는 애니메틱을 만들고 정한 것도 있다. 리듬감부터 찾고 조금씩 구체적으로 리듬감에 맞는 상황이 뭘까 생각하며 집어넣었다. 이거 넣고 저거 넣고 한 번 틀어보고... 편집에만 한 달 이상 걸렸다. 너무 머리 아프니까 한 2주, 3주는 안 본 적도 있다. 딴 거 하다가 머리 맑아졌을 때 ‘아 이렇게 보이는 구나'하고 다시 했다. 최종적으로는 6분으로 고쳤는데, 원래는 애니메이팅까지 한 게 7분 넘었었다.


‘이제는 끝이야’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나?

못했다. 그냥 '이대로 가봤자 더 이상 좋은 거 안 나오겠다. 여기가 내 한계니까 이 정도에서 만족하자’했다. 내가 졸업작품 하는 학생들한테 첫 주차부터 "어차피 작업 기간 동안 나온 생각 이상이 나올 확률은 낮으니까 고민하지 마라. 시간만 버리니까." 라고 얘기한다. (웃음) 

 

사운드는 직접 하고 음악은?

<애프터눈 클래스> 때 했던 정혜지 음악감독에게 부탁해서 러닝타임 확정하고 작업했다. 이번에 파일럿 만든 것도 그분이 음악을 하셨다.


2017년부터 외주 작업을 많이 했다. 첫 외주는 어떤 건가?

대학교 때부터 했다. 세 명 팀으로 일산경찰서에 어린이용 영상 하나 만들어 드렸다. 돈은 안 받았으니 외주라기보단 재능기부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잘 만든 것 같다. 그다음에 작은 아버지가 갑자기 빙수 회사를 차리셔서 홈페이지용 오프닝만 공짜로 만들어 드렸다. 편집 외주, 어린이 콘텐츠용 애니메이팅, 오는 건 다 받았다. 점차 캐릭터 디자인 외주도 받고 일본 쪽 일도 하고 뮤직비디오 시작할 때쯤부터 큼직큼직한 일을 하게 됐다.      


'아메바컬쳐' 뮤직비디오 두 개를 했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비디오키즈다. 실사 계열을 주로 하셨던 분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해보고 싶어 해서 졸업한 후배 타고 연결됐다. 처음에 만든 <Dive>가 2개월 걸렸고 그 다음에 한 <Glow>는 2~3주 안에 만들었다. 나중에 그린피스랑 <Tipping Point>도 했다. (뮤직비디오 작업은) 팀으로 했었으면 나았으려나 싶지만, 혼자 하다 보니 제작기간이 촉박해서 제대로 기획할 시간이 없었다. 


2019년 3월부터 5월까지 덴마크에 머물면서 Viborg Animation Festival (VAF) 트레일러 만들었다.

두 달 반 동안 주말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하긴 했는데, 내 작품처럼 하니까 좀 해소됐다.

 


가서 기획부터 시작한 건가?

2018년 말 정도에 VAF 책임자인 모튼Morten Thorning씨가 한국 오셨을 때 덴마크 대사관에서 만났다. 영화제 테마가 한국이라길래 한국에 대한 애니를 만드는 건가? 오프닝인가? 타이틀인가? 비주얼이 그런 건가? 했더니 슬로건은 ‘휴먼 임팩트'라는 거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될 내용이라는 비전이 있었다.

 

그런데 덴마크 가기 전에 이번에 만든 파일럿 <ORANGEBACK + HOO-D>(가제) 각본을 새로 해서 애니메틱을 하기로 했다. 한동안 지연돼서 죽은 줄 알았던 프로젝트다. 어느 정도 한 다음에 덴마크 가서 초반에 마무리 지어서 보냈다.

 

한 달 트레일러 기획해서 스토리보드 썸네일로 얘기하고 착착착하다가 톤코하우스 서울 전시에 들어갈 루핑 애니메이션을 또 병행해서 만들었다. 전시 오프닝 가서 다이스 츠츠미Dice Tsutsumi랑 다른 분들 보고 싶었는데, 나는 덴마크에 있었다. 화상 채팅으로 파티하는 것 보면서 나 혼자 작업하고 있었다. 


5월에 귀국할 때는 VAF 트레일러를 끝내고 온 건가?

거의 완성처럼 보이게 했지만, 더 하고 싶은 게 있었다. 6월 중순에 마무리해서 보냈다. 

 

9월에 VAF 본 행사 가기 전에 <디어 아마존> 전시 오프닝 작업을 했다.

5월에 돌아오자마자 했다. 연락받은 건 덴마크 있었을 때였다. 그것도 2주 동안 병행했다. 


<Dear Amazon> 컬러 스크립트
<Dear Amazon> 컬러 스크립트

 녹색 톤이 비슷했다. 약간 이어지는 느낌도 든다.

<디어 아마존>도 똑같은 주제더라. 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시기도 겹쳐서 내 버릇 나온 거다.  


의뢰가 들어오면 거절 못하고 다 받는 건가? 

거절 못해서 병행하는 것도 많았다. 내가 큰 일 하는 동안에는 연락이 없다가 끝날 때쯤? 끝나기 일주일 전? 끝나고 일주일 후 정도에 연락이 많이 온다. 어떻게 그 타이밍을 아는지 신기하다. 


2009년 유튜브, 2011년 텀블러, 2015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페이지, 2018년 트위터를 시작했다. 다 관리할 수 있나? 뭘 주로 쓰나?

SNS별 방문객이 안 겹친다. 내 애니메이션만 봐도 유튜브, 페이스북, 비메오에서 다 처음 본 사람들처럼 반응한다. 유튜브는 구독자가 20만 넘어서 거기 올리면 조회수가 그만큼 오르나 했더니 1년이 지나도 조회수가 1만이었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 봤는지 지금은 400만이 봤다. 갑자기 팍 오르더라. 유튜브는 구독자보다 영상의 조회수, 영상이 어떻게 퍼져나가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올리고 3일 만에 조회수가 200만을 넘었다. 지금은 250만인지 300만인지 모르겠는데, 퍼지는 게 빠르더라. 비메오는 지금도 조회수가 높은 편이 60만인가... 

 

인스타그램에는 2019년 말에 아이패드 용 그림 앱 Procreate 5에 애니메이션 기능이 생겨서 짧은 루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올린 게 조회수가 40만~45만 명으로 제일 높다.

한편으로 유튜브 조회수는 <트랜스포머>가 많은데, 좋아요 수는 <애프터눈 클래스>가 더 많은 게 신기하다. 통하는 게 다른 것 같다. 어디에 올리든. 대신에 유튜브에 <트랜스포머> 외의 영상을 올리려면 <트랜스포머>를 올리고 보너스로 올리는 식으로 해야 한다. <트랜스포머> 안 올리다가 딴 거 올리면 구독자가 화내! 팬 관리를 해야 한다. (웃음) 


의뢰받은 거 다 하고 개인작업을 한다면?

장편이 될 만한 이야기가 꽤 정리됐다. 우주를 배경으로 혜성과 우주 탐사선이 나오는데 조금씩 디벨롭하고 싶다.

 

단편은 일상을 소재로 뭐든 다 재밌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제 갈 때마다 사람들이 후속 편은 뭐냐? 방귀냐? 똥이냐? (웃음) 다 그 얘기하니까. 너무 비슷한 거 말고 지치지 않는 걸로 하고 그 다음에 할까? 생각하고 있다. 상어 인간들 나오는 것도 해보고 싶고. 

 

매드 사이언티스트 여왕이 백설공주를 암살하려고 만든 사과 캐릭터들이 주인공인데, 보디가드 드워프가 방해를 해서 계속 실패하는 약간 <톰과 제리>의 톰 같은 캐릭터 아이디어도 있다.     

사이보그 요소가 있는 소녀들이 나오는 마법소녀물 아이디어도 있다. 옛날에 <꼬마 마법사 레미>를 되게 좋아했다. 그게 20주년이다. 홍대에 테마 카페가 있어서 여기 오기 전에 들렀다 왔다.  

2020년 5월 21일 @동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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