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 KIM Joon

김준


“여행 온 것처럼 금방 떠날 것처럼” 하루하루 기록하며 오래오래 “도시를 살았다”. 미세먼지가 왔다 가고 긴 비가 내렸다 그치고 바람이 불었다가 눈이 쏟아지던 계절이 몇 번인가 돌아왔다. 하루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해가 한두 바퀴 돌아가는 동안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러다 한 번씩 멀리 가볼 마음이 든다.


김준은 2003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2013년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필명 의외의사실로 웹툰 마루의 사실」(시즌1: 2014.1.~2015. 2., 시즌2: 2016. 8.~12.)과 「의외의사실의 세계 문학 읽기」(2015~2016)를 연재했다. 근 몇 년간은 애니메이션 대신 웹툰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담은 종이책을 여러 권 냈다. 지금은 마루와 함께 하는 또 다른 계절을 웹툰으로, 2011년의 첫 만남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다. 2013년 서울 계동의 시간이 담긴 애니메이션 버전 의외의사실도 있다. 그전에 잠시, 여행을 말한다.



광주를, 혼자서


지금 광주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마루의 사실」 웹툰 작업을 하고 있어요. 2019년에 SBA 제작지원받은 애니메이션인데, 심사는 끝났고 마무리 작업을 좀 해야 합니다. 사운드 믹싱도 임시로 한 거라서 새로 작업해야 돼요. 제목은 <마루가 나에게 왔다>. 마루가 온 그 순간의 이야기입니다.


몇 분 정도인가요.

그때 완성 길이로는 8분 정도입니다. 그전에 제가 만든 작품들은 실사 영화 같은 시간이 흐르는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늘어나거나 모호한 느낌으로 이미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건 실제 공간에서 인물들이 움직이는, 어느 정도 사실적인 시간이 흐르는 이야기다 보니까 러닝타임이 짧게 되지는 않았어요.


서울에서 광주로 이사할 때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정말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어요. 아예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2016년에 이사를 와서 2012년인가 2013년에 그린 그림들을 정리했는데, 거기에 계속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몇 년 동안 지속된 결과로 결심을 했구나 했죠.


광주로 갔더니 어땠나요.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요. (웃음)


5년이면 적당히 지내서일까요.

정착을 못해서 그런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요즘에 코로나랑 겹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없어졌어요. 일을 해도 직접 안 만나고 계약서도 우편으로 주고받고 이게 겹쳐져서 작년부터 광주에서의 생활이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서울을 떠날 때는 관계에서 멀어지고 싶었는데, 광주를 떠나 관계를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어요. 너무 떨어져 있구나 이런 생각.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은데요.

달라졌어요. 서로 각각 다른 여러 사람을 만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서울에서보다 행동반경이 훨씬 더 작아진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어요. 콘크리트나 철로 된 거대한 서울의 풍경을 좋아해요. 잠수교를 지날 때 엄청 크고 기하학적인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강변북로를 지나갈 때 휑하기 짝이 없는 도로와 구조물이 있는 풍경들이 가끔 가서 보면 되게 좋더라고요.


서울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서울이 그런 게 그립기도 한데, 고향이라는 게 그립지만 막상 가면 옛날 같지 않고 그런 곳이지 않겠어요?

집 계약기간도 있고 얼마간 더 사는 동안은 여기서 최대한 즐겨보려고 합니다.


광주에서의 즐거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앞이랑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혼자 있는 게 좋아요. (웃음)

광주에 오기 몇 달 전에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했어요. 운전을 시작하고 보니까 이건 신세계더라고요. 제가 해보니까 운전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많이 다니지는 않는데, 광주는 차를 가지고 나가면 금방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게 좋아요.


광주에서 지내는 시간은 지금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나요.

네. 완전히 여기에 정착을 했다는 느낌은 안 드는 것 같아요. 서울에는 오래된 관계들이 많이 있고 광주는 그렇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냥 혼자 어딘가 잠깐 와 있다 이런 느낌입니다.


서울을, 또 다시


2013년에 의외의사실 프로젝트를 애니메이션과 연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방안과 방의 밖이라는 의미로 <안과 밖>이라는, 그때 살던 동네와 집이 나오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입니다. 올해 마무리를 해서 내놓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때는 작품에 대해서 자신감이 너무 없었어요. 만듦새나 그림 자체가 완성이 안 된 건 아니고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그거를 어떻게 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될지 그때는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보니까 편집을 조금 바꾸고 필요하면 중간중간에 손이 많이 안 들어가는 그림을 넣고 내레이션을 손보면 스토리를 완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내레이션이 들어가거나 기승전결 서사가 있는 작업을 하진 않으셨죠.

그래서 어려웠던 거예요. 그런 면에서 연습이 안 되어 있는 데다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배경이 되게 구체적이었어요. 그때 살던 동네와 집이 나오고 공간은 움직이지 않는 완전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인데, 그렇다고 서사구조가 아주 분명한 것도 아닙니다. 영상에 말을 넣는 것도 그 당시 너무 어색해서 마무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작품은 그대로인데, 시간이 흘렀잖아요? 그 사이에 웹툰도 하고 여러 일들을 겪고 보니까 마무리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레이션은 직접 녹음했나요 성우나 배우를 썼나요.

직접 녹음을 했어요. 그래서 전문적인 사람이 다시 해야죠.


음악 작업은 안 하셨나요.

믹싱 녹음실 가서 작업을 하긴 했는데, 음악 사운드 작업은 전체적으로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의외의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요.

학교 졸업하면서 회사 이름으로 만들었어요. 빨리 사업자등록을 내러 가야 되는데, 이름을 못 정해서 그때쯤에 읽고 있던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펼쳐서 목차를 훑어봤어요. 그중에 상호로 어울리는 제목이 「의외의 사실」이었어요. 의외의사실로 공식적으로 뭘 하진 않고 2004년쯤부터 블로그 이름으로 쓰다가 웹툰을 시작하면서 필명으로도 썼죠. 애니메이션을 할 때는 본명으로 했는데, 웹툰을 할 때는 필명을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쓰다 보니까 책이나 일러스트 외주를 할 때도 의외의사실이라고 쓰게 되었어요.


그럼 이제 애니메이션 크레디트는 김준인가요 의외의사실인가요.

작년에 제작지원작 제출을 할 때는 김준이라고 했는데, 조금 고민이 돼요. 애니메이션이랑 웹툰이나 다른 작업이 사실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거든요. 웹툰을 시작하고 나서는 애니메이션을 아예 안 했어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섞고 싶으니까... 웹툰으로 작업했던 거를 애니메이션화 하기도 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화 형식의 이야기랑 애니메이션으로 같이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결국에 작가 이름은 의외의사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웹툰도 애니메이션도 일상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장르물을 꿈꿔 본 적은 없나요.

장르나 서사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 왜 누군가는 장르물을 하고 나는 그쪽으로 가지 않나 생각했었어요.

제가 나오는,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언젠가부터 픽션 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픽션이라는 건 뭘까 계속 생각을 하는데, 장르물로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픽션을 하신다면 보르헤스나 이탈로 칼비노처럼 난해하고 몽환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에요. 장르물은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좋아하고 장르물 안에서의 관습에 굉장히 익숙해져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장르물은 스토리든 인물이든 오랫동안 만들어져 온 거기서 가져오고 변형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기반이 전혀 없어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인물들이 나와서 급격한 서사 구조를 만드는 쪽을 좋아해 본 적이 없거든요. 흐름이 느리고 굴곡이 없고 그런 것만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누구나 이게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하는 일상 만화에서 벗어나야지 오히려 더 솔직해지거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미묘하게 픽션인가 아닌가 이렇게 갈지 어떻게 갈지가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고민이긴 해요.


「의외의사실의 세계 문학 읽기」를 애니메이션화할 생각이 있으신데요.

제가 실제로 제일 많이 받아들이는 예술 장르는 책이고 책 중에서도 문학이라서 문학과 관련된 작업을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웹툰에서 다루지 않았던 것을 넣어서 여러 개의 영상으로 만들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기획이 들어간 건 아닙니다.


한국문학보다는 외국문학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오랫동안 외국의 오래된 소설들만 읽었는데, 최근에는 지금 막 나오는 한국소설을 많이 읽고 있어요.


새로운 한국소설이 재밌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관심사가 변했기 때문인가요.

어느 분야에 들어가는 건 뭔가 열쇠가 되는 것 같은 하나의 작품이 있는 것 같아요. 아 이건 내 마음에 맞다. 이 작가는 참 좋구나 하면 거기서 가지가 뻗어나가요. 저한테 그 열쇠는 황정은이었습니다. 처음에 읽고 너무 좋아서 황정은의 모든 소설을 읽으면서 따라갔죠. 어떤 문학상 수상집에 소설이 실리면 그 해의 여러 작품이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읽다가 많은 작가를 알게 됐죠.



여행을, 사실은


2011년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베트남에 계셨어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시죠. 2003년 포르투갈이 첫 여행인가요.

첫 해외여행이에요. 제가 자발적으로 간 여행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여행을 싫어하나요.

가서 짧게 풍경을 보는 거에 그렇게 감흥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가족들도 같이 여행을 자주 가지는 않았어요. 보통 여행은 여기 가서 보고 그다음에 저기도 가서 보고 또 다른 데도 가서 보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 군데를 계속 가는 걸 좋아해요. 베트남에서도 한 번 가면 거기를 또 가는 게 좋은 거예요. 가게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그날 갔으면 그다음 날도 가서 또 보고 비 올 때도 가서 보고. 사람 많을 때도 보고 적을 때도 가보고. 그래서 사는 공간, 집 아니면 주변 공간. 내가 어디를 자주 가야 된다면 그 노선. 이런 거에 되게 애착을 가지는데, 잠깐 새로운 풍경을 한 번 보고 돌아와서 다시 갈 일이 없는 곳에 대해서는 매력을 별로 못 느끼더라고요. 많은 곳을 받아들이기에는 용량이 적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2011 베트남 여행

책과 영화, 음악이 여행에 비유되잖아요. 여행에 대응하는 활동을 평소에 즐기니까 딱히 여행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 아닐까요.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베트남 그림을 보니까 다시 어딘가를 가서, 평소에 있지 않았던 곳의, 보지 않았던 풍경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엄청 들었어요.


7~8년 정도 지나면 크게 기분 전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주기가 기네요. 시간이 빠르네요.


2011년은 애니메이션을 7~8년 정도 했을 때였습니다. 2013년에는 웹툰을 도전 만화부터 시작했죠. 유튜브를 생각하는 시기에 또 여행에 대한 생각이 드는 게 아닌지 개인적인 대전환을 앞두고 그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닐까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베트남을 갈 때도 그전까지 해오던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웹툰 작업을 했는데, 이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고민이 되거든요.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을 때도 웹툰을 시작했을 때도 이 표현 방식이 좋다 하면은 몇 년 동안은 다른 거 안 보고 굉장히 빠져서 했어요. 그렇게 있다가 수면 밖으로 나오는 타이밍이 오는 것 같아요.



일상을, 여전히

2011~2013년 의외의사실 표지를 보면 공교롭게도 인물이 다 누워있어요.

제가 원래 그런 이미지를 좋아하거든요. 몸이 물체나 무게가 없는 뭔가처럼 어디 놓여있거나 날아가거나 하는 식의 표현들. 그리고 그때의 저는 저 스스로를 되게 작게 만들면서 조용히 사이사이로 슥슥 지나다니는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많이 그렸어요.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운동은 하지 않고 오랫동안 등을 구부리고 책상에 앉아서 그림만 그렸더니 몸이 고장 나서 작업이 어려워지는 순간들이 왔어요.. 몸이 실제로 막 아프거나 병이 생긴 건 아닌데, 집중력이 떨어져요. 책상에 앉아있을 때 작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내가 이제 작업을 하기 싫어졌나 보다. 그림 그리기 싫어졌나 보다 어떡하지? 생각했었는데, 불편하니까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죠. 요즘에는 누워있는 자신을 그리지 않아요. 무의식적으로 항상 나를 그리는데, 앉아있을 때는 꼿꼿하게 앉아있고 스트레칭하는 나를 그린답니다. (웃음)

Zoom 인터뷰 2021년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