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시 파켓 리뷰 : 윙크토끼
2014 | 16mins 22secs | dir. HONG Haksoon
<윙크토끼>는 딱 적당하게 지구와 달과 태양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결국 하나의 독자적인 우주를 그린다. 그건 감정이 가득한 우주이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때 그들의 눈은 마치 어떤 놀라움을 표현하는 것처럼 휘둥그레진다.
이미지를 따라 화면 아래 땅으로 내려가면 영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차례로 다양한 생물들과 캐릭터들을 소개받는다. 어떤 것은 “새”, “즐거운 여자”, “큰 바다 물고기”처럼 평범한 설명 같은 이름을 가졌다. 그리고 영화 제목과 같은 “윙크토끼”를 비롯해 “우유각소녀”, “우유각소년”, “사랑돼지”, “분홍징징”같이 조금 더 창의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이름도 있다. 대충 그린 아이의 스케치 같은 캐릭터들이 서로 인사하고,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말할 만한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 대신 우리는 그들의 세상에서 보통 일상을 보내는 캐릭터들을 따라간다. 작품의 감독은 이것을 “지루한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여러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과 전시, 회화와 『학페이지』라는 제목의 책 그리고 10,000점 이상의 스케치를 통칭한 윙크토끼 설계도 펼쳐낸 홍학순의 세계를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하나의 작업은 단지 이야기의 일부를 담고 있을 뿐이다. 홍 감독은 (윙크토끼의 공책을 영화 끝에 등장시킨 것처럼) 나중에 따라오는 작업에서 더 발전시킬 요소들을 심어 놓길 좋아한다. 첫인상은 불가피하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신에게 탐험해 볼 여유가 있다면, 윙크토끼의 우주는 광활하고 매혹적이다. 그 아이 같은 그림은 적절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는 거의 근본적인 진지함이 있고 역설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정과 관대함, 상호 이해, 창조와 사랑에서 생겨난다. 냉소적인 거리감 없이 깜짝 놀랄 만큼 직접적이고 천진난만하게 제시된다. 그런데 그건 이야기가 단순하거나 이해하기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이 세계의 생태계는 논리를 거스르고 캐릭터의 행동은 쉬운 해석을 피한다. 홍학순은 정말로 각각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결정한다는 것을 이제 완벽하게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순전히 시각적인 수준에서 홍학순의 그림은 더 많이 보면 볼수록 그 예술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의 타고난 구성 감각은 거시적 수준에서 가장 드러나는 미학적인 힘과 응집성을 유지하며 미시적 수준에서 그를 제약 없이 자유롭게 해 주었다.
고국에서 홍학순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국제적인 인정을 거머쥐는 건 더디다. 그렇더라도 이처럼 독특한 시각을 가진, 자신의 미학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으로 자기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모든 관객에게 궁극적으로 인정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달시 파켓
Koreanfilm.org 웹사이트 운영자로, 『뉴 코리안 시네마: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저자. 『버라이어티』 통신원을 지냈고 영화잡지 『씨네 21』에 기고한 바 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우디네동아시아영화제 및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1997년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