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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_Getting Used to Loneliness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 Getting Used to Loneliness | 2023 | 11mins 48secs | dir.서평원  SEO Pyoungwon


온전한 하나를 담은 입방체

서평원의 전작 <로드킬> (2017)은 서늘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모의 불화 속에서 자신이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주인공 소년의 태도는 무기력과 차분함 사이를 오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감정은 날카롭게 충돌하는 이미지 스타일로 대신 분출되었다. 작품 속 부모는 모르지만,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는 명확히 전달되는 소년의 마음속 갈등. 그래서 우리는 소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다. 사춘기의 예민한 심리 상태를 정교한 연출로 다루어 낸 <로드킬>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이것이 고등학생 작품이라고?” 이런 식으로 작품의 퀄리티를 창작자의 나이와 견주는 태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하고 만다. “나는 꼰대입니다.” (그렇다, 부끄럽지만 부정할 수 없다.)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물음표가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감독이 몇 살이지?” (아, 정말 꼰대스런…) 비겁한 변명으로 들리긴 하겠지만, 창작자의 연령대를 되묻는 까닭은 그저 단지 민증을 까서 나이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작품에 그득 배인 경험치에 대한 리스펙트 때문이다. <로드킬>이 10대 소년의 불안에서 시작하였듯이,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은 20대 청년의 불안에서 출발한다. 서평원은 어디까지나 자기 또래와 같은 출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렇지만 작품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삶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쥐락펴락하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동료 이경화 감독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인생 n회차’가 묻어난다. 인정!)


사회 초년생인 주인공 성준은 솔로이다. 이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직장 선배 민석이 배드민턴 동호회를 함께 하자 권한다 (좋은 선배인지, 갑질인지…). 그곳에서 뭔가 연애의 시작이 보일 것만 같다. 이 정도의 노선만 충실히 따라도 그럴싸한 청춘 로맨스 한 편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관계가 하나 더 추가된다. 성준과 통화하며 안부를 챙기는 할머니. 괜히 이야기 밀도를 성기게 만드는 부가 설정은 아닐까? 판단하기는 이르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감독은 이러한 관계들을 다루면서 스타일의 변화를 가미한다. 직장과 동호회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장면에서는 원시 시대의 모습이 교차된다. 사냥, 수렵, 채집에 빗대어 생존의 원초적 성격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테다. 스타일의 전환 속에서도 동작의 연속성이 유지되어 나름 잔재미를 만든다. 조금 더 과감한 시도는 주인공의 내면을 다룰 때 적용된다. 2차원 이미지는 3차원 공간과 오브제로 전환한다. 왜, 어째서? 그것은 단지 사회라는 외부의 세계와 자기 자신이라는 내부의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의도에 머물까? 물론 그 정도의 목적이라도 괜찮다.

내면의 세계를 3차원으로 세팅한 의도가 설득력을 발휘하는 지점은 그곳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설정에서부터이다. 말하자면 대놓고 마음의 구멍을 외형적으로 구현하였다. 구멍 너머에는 암흑, 절대 고독, 미지의 우주가 있다. 이를 2차원 이미지로 그렸다면 즉각적인 임팩트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나의 작품 속에 여러 스타일을 끌어오고, 하나의 스타일에서 다른 스타일로 건너뛰는 시도는 <로드킬>에서 이미 확인했다. 잘만 구사하면 멋진 연출이 나오고, 복잡한 심리를 전달하는 힘도 크다. 그렇다면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도 동일한 연출 전략인가? 아니다. 이번에는 그로부터 좀 더 나아간다.



2차원과 3차원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까? 사회적 공간과 주관적 공간은 별개이기 때문에, 그저 서로 다른 차원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곁가지로 뻗어 나간 할머니와의 관계가 여기서 작동한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할머니가 성민의 내면, 3차원 공간으로 들어온다. 성민보다 더 큰 상실의 구멍이 생겼을 할머니는 성민과 함께 비어 있는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이 정도면 꽤 무난한 설정과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15분 이상의 러닝 타임이 필요한 관계들과 다양한 세팅을 담고 있지만, 작품은 12분 이내에서 깔끔히 정리한다.

분명, 할머니의 상실을 위로하면서 자신의 상실을 극복한다는 풀이법은 스토리 전개로는 납득할 만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2차원의 바깥세상과 3차원의 내면 세상을 풀어내야 하는 연출이다. 그냥 그대로 남겨둬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저 결코 합일을 이룰 수 없는, 각각의 차원이라고 한들 이야기 전개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서평원은 아주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바로 성준의 방을 하나의 정육면체 공간으로 투영해서 그려낸 지점이다 (6분 50초 지점에 등장한다). 현실의 2차원 장소이면서도 심플한 3차원 내면이 맞물린 이 장면을 통해 작품 전체의 중심이 잡힌다. 작품 초반에 나왔던 퇴근 후 집 앞에 이르는 동선이 한번 더 반복된 직후의 장면이면서, 바로 그다음에는 천장을 바라보는 1인칭 시점, 그리고 마음속 구멍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내면으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야기 전개로 보자면, 점차 혼자에 익숙해지면서도 뭔가 새로운 단계로 나가기 직전,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어째서 감독은 이 지점을 이러한 장면 설정으로 포착하였을까? 말이나 글로 명확하게 잡아내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의 변화 지점. 또는 성숙해지는 것인지 익숙해지는 것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시기. 하지만 이야기의 다음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객에게 일러주어야 하는 단계. 이 장면 덕분에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은 입체적인 시점,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이 글 앞부분에서 삶을 제 손바닥 위에 놓고 바라본다는 표현을 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지 않은 채, 평면적이거나 편협하지 않게, 입체적으로 두루두루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의 확보!


재주가 많고 재능이 넘치는 젊은 감독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들보다는 낯설고 새로우면서도 활기 넘치는 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평원은 그런 기대에 하나를 더 얹는다. 작품 속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우리에게도 나눠준다. <로드킬>이 그러했고,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 시선이 참신하면서도 노련하다. 덕분에 나는 입방체를 바라보는 시점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호원 Joint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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