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시 파켓 리뷰 : 흉내
2013 | 1mins 30secs (2014 | 3mins 20secs) | dir. KIM Boyoung
당신과 나 사이의 공간
대사 없는 작품에서 말을 대신하는 것은 몸짓이다. 김보영 감독의 〈흉내〉 중심에는 여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특유의 몸짓이 있다. 바삐 길을 걸어가던 여자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를 주시한다. 스쳐 지나기 직전, 그녀는 머리카락을 귀 뒤쪽으로 쓸어 넘긴다.
그건 관심을 얻으려는 몸짓이다. 그녀는 남자가 자신을 알아차리길 바란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르는 듯 곁눈질도 않고 지나친다. 이어진 만남에서 그녀의 감정은 더 분명히 보인다. 거울을 보며 외모를 확인하고, 길에서 마주칠 수 있게 되돌아간다. 그리고 서로 만나는 순간, 그 몸짓을 반복한다. 그러나 또다시 반응은 없다.
남자의 시선을 끄는 것이 명확히 있긴 하다. 그는 반려동물 가게 창에 붙어 오래도록 강아지를 본다. 마치 그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쓰는 것처럼 강아지와 마주친 그의 눈이 웃음 짓는다. 다음날, 그는 개와 산책하는 여자를 지나치다 무릎을 굽히고 개의 머리를 분명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흉내〉는 인간과 개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엇갈린 신호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의 세계에서 짝짓기 의식은 대개 뽐내기 중심이다. 공작은 화려한 깃털을 펼치고 사슴은 경쟁자와 뿔 잡이를 한다. 인간은 자신감은 부족하고 잔꾀는 넘친다. 자기의 본래 모습으로 마음에 둔 남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여자는 남자의 취향에 맞추기로 한다. 신중하게 온라인 구매를 한 뒤, 여자는 남자가 도저히 무시 못할 대상으로 변장한다. 과연 감정도 따라 생길까?
〈흉내〉의 세계는 단색으로 추상에 가깝도록 단순하다. 넓은 이마와 조그만 눈 코 입을 가진 캐릭터는 표정이 적다. 사운드 트랙은 새의 노래와 심장박동, 발소리, 짖는 소리와 숨소리뿐, 목소리는 없다. 김보영은 시각과 서술적인 요소를 아주 단순화하여 작품에 담긴 모순과 의도를 예리하게 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놀란 여자의 표정은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묘사한 상황에 대한 교훈을 전달하려는 것 같지만, 이 끝 장면에는 그 충격을 복잡하게 하는 기이함과 우스꽝스러움이 있다. 그리고 작품은 끝난다. 제작진 소개 자막은 단지 두 줄에 불과하다. (김보영은 혼자 작품을 만들었다) 짧은 음악이 터져 나오고 화면은 어두워진다.
〈흉내〉는 겨우 3분 조금 넘을 뿐인데, 인간 조건에 대한 어떤 진실을 포착하고 사라지지 않는 인상을 창조한다.
달시 파켓
Koreanfilm.org 웹사이트 운영자로, 『뉴 코리안 시네마: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저자. 『버라이어티』 통신원을 지냈고 영화잡지 『씨네 21』에 기고한 바 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우디네동아시아영화제 및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1997년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