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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시 파켓 리뷰 : 빈방

2016 | 9mins 27secs | dir. JOENG Dahee

‘부재’ 속의 ‘존재’


그녀의 방은 비어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남자가 말한다. 벽은 휑하고 가구는 다 실려 나갔다. 그런데도 그 방은 조금도 빈틈이 없다. 그 방 안에 있겠다는 것은 이전 상태의 에너지를, 이전 거주자의 떠나지 않은 존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 방은 기억과 후회, 유대감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너무 꽉 차 고통스럽다.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누군가는 “부재의 고통”을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부재에는 아픔이 없다. 기억과 욕망의 계속된 존재가 “부재”를 견디기 어렵게 한다. 기억이 물건과 책, 낯선 소음 그리고 “너였던 먼지”의 형태를 취하는 정다희의 〈빈방〉에는 “부재”의 역설이 중심에 놓인다.

이따금 마그리트를 떠올리게 하는 정다희의 초현실적, 환상적이고 회화적 이미지로 이뤄진 영화는 인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외부세계의 관점과는 거리가 있다. 이미지마다 의미와 상징이 매달려있다. 그것도 고정된 것은 아닌 듯 영화가 진행되면서 의미도 바뀐다.

〈빈방〉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물질계 것이 아닌 듯하다. 물건과 공간은 매끄럽게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우리 눈앞에서 변한다. 벽은 커튼이, 책은 여행 가방이 된다. 우리가 더욱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내부 공간을 반복해서 통과하며 얻는 운동감도 있다.

이 내부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기억이 신중하게 다루어지며 또, 돌아다닌다. 오래된 기억에서 새로운 것이 구축된다. 이 영화에 악역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기억을 지운다고 한다. 방 안을 채우는 물건(그리고 사실은 남자 해설자)은 시간의 경과를 형태와 흔적으로 뚜렷이 느끼게 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어떠한 저항이 보인다. 시간의 작용에도 생존하려는 결심과 기억되려는.

그래도 관객에게 시간은 완전한 악역처럼 보이진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마무리 분위기를 조성하고 관객이 영화의 의미를 맞추도록 통합되지 않는다. 대신 관점을 바꾸고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가 시작될 때 나왔던 짧게 등장한 여자의 목소리는 끝에 다시 돌아온다. 영화 내내 여러 번 등장했던 커튼의 이미지가 옆으로 젖혀지며 처음으로 스크린에 따뜻한 백색이 범람한다. 넌지시 들려오는 새소리, 여인의 콧노래가 영화를 마치는 소리다.

 

달시 파켓

Koreanfilm.org 웹사이트 운영자로, 『뉴 코리안 시네마: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저자. 『버라이어티』 통신원을 지냈고 영화잡지 『씨네 21』에 기고한 바 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우디네동아시아영화제 및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1997년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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